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국세청과 검찰에게 당한 수모보다 더 아프고 슬픈 것은,

올바른 이상을 추구한 행위를 어리석은 짓으로 모욕하는 세태, 

그런 현실을 보는 것이다.

 

1. 요약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그가 직간접적으로 남긴 기록들과 그와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완성된 평전이다.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서술 자체도 ‘나’를 주어로 사용해 이루어지긴 했으나, 본인이 직접 기록한 부분 이외의 내용들은 필연적으로 편집자의 ‘평가’가 들어가기 마련이니 어쩔 수 없다. 다만 노무현재단이나 유시민 씨 모두 가능하면 감정적인 평가를 넣지 않으려고 애를 썼기에, 과도한 미화나 영웅 만들기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책은 노 전 대통령의 힘겨웠던, 그리고 그 시대 소시민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런 일들로부터 시작해, 그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꾸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 오른 후 그가 느꼈던 것들에 대한 소회 등이 차분한 어조로 기록하고 있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 이야기라고 할까. 

 

 

2. 감상평 。。。。。。。

 

     분명 그는 원칙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모자랄지 모른다. 우리들 모두가 그랬듯, 그도 때에 따라 타협도 했고, 소신을 굽히기도 했다. 그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이런 면에서 엄격한 도덕적 율법주의자들은 그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런 타협의 가운데서도 ‘원칙’을 버리지는 않았다. 때문에 다른 어떤 비난을 가하더라도 그에게 ‘기회주의자’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의 삶을 되짚어 보면 시종일관 권력을 부당한 방식으로 이용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에 대항해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안타까운 것은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던 그의 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지해주지 못한 현실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말한 대로, 손에 쥔 것들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그를 끊임없이 비난했고, 손에 쥔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가 하려던 일이 어떻게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외롭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새로운 정부가 시민들을 통제하고 짓누르는 것을 경험한 후에야 그가 꿈꾸었던 것이 어떤 세상이었는지 어슴푸레 느끼게 되었지만... 언제나처럼 한 박자 늦은 각성이었다.

 

     책 전반에 회한과 후회, 자책이 깊게 묻어난다. 아마도 이 책이 정치인 노무현의 오랜 실패와 좌절, 그리고 잠깐의 성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자신의 지지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퇴임 직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몇 개월 동안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분노가 더해지면서 책의 분위기는 마치 짙은 잿빛구름처럼 무겁고, 어두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철저하게 혼자가 됨으로써 모두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떠남은 아쉽지만, 그가 남긴 유산들은 분명 혁명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분명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특별히 국가권력과 시민 사이의 적절한 관계형성에 있어서 그는 중요한 발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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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전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주인인 몽룡을 따라간 기생집에서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방자. 춘향을 꼬셔보려는 주인 몽룡의 의도를 알면서도 자꾸만 그녀가 떠오르는 데 별수 있나, 전설적인 연애 고수인 마 노인으로부터 비결을 전수받아 춘향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싸움도 잘하고, 힘도 세고, ‘고기까지 잘 굽는’ 그가 놀라운 연애 기술까지 습득하자 춘향은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되지만, 어머니 월매의 주장에 따라 몽룡과도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과거를 위해 한양으로 떠난 몽룡을 대신해 남원에 남아 춘향을 돌보며 나름대로 성공을 하게 된 방자. 하지만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아 있었고, 마침내 과거에 급제한 몽룡이 돌아오면서 그의 위기감은 사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시작된 변학도의 수청 요구. 이를 거부한 춘향은 결국 옥에 갇히게 되고 방자는 춘향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지만, 결국 몽룡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게 된다. 드디어 기다리던 어사출두가 이루어지지만, 그 모든 것 뒤에 숨겨진 반전.. 방자는 그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2. 감상평 。。。。。。。

 

     개봉한 지 이틀 만에 영화를 보고 나와, 슬슬 감상평을 쓰려고 영화 관련 정보를 찾던 중 뉴스를 하나 발견했다. 방자전이 춘향의 정절을 모욕했기에 상영금지를 요구한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내용. 인터넷에서는 이와 관련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냥 영화 홍보의 일환을 위한 노이즈 마케팅은 아닌가 살짝 의심도...

     영화관에 들어간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이 스캔들(각본만), 음란서생을 찍었던 그 감독이란다. 대충 감이 오는 듯. 이 감독더러 욕망과 성에 대한 깊은 탐색과 같은 예술적 무엇을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식으로 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뭐.. 내가 보기엔 그냥 손쉽게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영화 방자전에서도 베드신은 극의 전개상 필수불가결한 장면이라는 느낌은 딱히 들지 않고, 그저 어서 지갑을 열고 이 영화표를 사라는 유혹의 몸짓만 보일 뿐이다.

 



     그러면 스토리라도 탄탄하다면 이런 저런 악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반론을 제시할 수 있을 터. 이 영화를 두고 볼 때, 도입과 전개 부분에서는 꽤나 재미있게 흡입력을 가지고 있지만, 절정을 지나 결말부에 이르면 지나치게 서둘러 수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 그대로 용두사미라고나 할까. 개연성이 없는 결말은 어떤 설득력도 가지지 못하고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수확은 김주혁의 핸섬 방자도, 최초로 베드신을 찍어봤다는 조여정의 몸매도 아니고, 변학도 역을 맡은 배우 송새벽이었다. 이미 다른 몇몇 작품들에서 꽤나 인상적인 조연으로 연기했던 모습을 보기는 했으나, 이번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영화 후반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마노인 역의 오달수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두 명의 맛깔 나는 조연이 아니었다면, 영화의 평점은 거의 바닥을 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말리기까지야 하지 않겠으나.. 그냥 딱히 꼭 봐야할 영화라고 추천까지 할 영화는 결코 아니라는 데 내 손톱(?)을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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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 『운명이다』를 읽으면서

개표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이제 막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네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하룹니다.


다들 투표 잘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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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깡패 같은 애인 - My Dear Desperad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취업이 돼서 서울로 올라온 세진. 하지만 회사가 세 달 만에 부도가 나면서 산동네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옆집의 깡패 같은 사내 동철을 만난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스펙도 쌓았지만 지방대 출신인 세진은 좀처럼 취직을 하지 못하고, 동철은 그런 세진을 무관심한 듯 바라본다.

     잇따른 취업 실패에 속이 상한 세진과 역시 보스를 대신해 감옥에 다녀온 대가로 자리를 얻어 생활을 하고는 있으나 잇따라 ‘가오’가 나지 않는 일만을 겪게 된 동철은 우연찮은 기회에 서로를 위로하게 되고, 점차 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2. 감상평 。。。。。。。

 

     영화의 전체 얼개가 지난해 봤던 ‘똥파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주인공인 깡패가 한 여자를 만나 변하게 되고 그 여자도 깡패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한다는 스토리.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욕으로 도배가 되었던 똥파리보다 이 영화가 훨씬 더 가볍고 대중적이긴 하지만, 또 이 영화에서 정유미가 맡은 세진이 더 밝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녀의 로맨스 외에도 ‘청년실업’이라는 또 하나의 주제가 매우 가볍게 등장하고 지나간다. 세진이 동철의 옆방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도, 그리고 동철과 가까워지게 된 계기도 모두 이 이유 때문이었고, 지방대 출신의 세진의 말을 통해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진지한 해결책에 대한 모색 정도는 아니고 말 그대로 ‘그냥’ 살짝 언급 정도. 잘만 요리했으면 이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그런 소재였는데, 아쉽게도 감독은 그냥 영화적 환상으로 가볍게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만다.
 




     투캅스 때부터 봐왔던 박중훈 식의 톡톡 튀는 개그 코드가 두드러진 영화였다. 상대 배우였던 정유미는 박중훈의 연기에 그런대로 무난하게 보조를 맞춰주고 있다. 영화 제목처럼 ‘깡패 같은’ 애인이었다면 딱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영화엔 ‘깡패인’ 애인이 등장한다. 딱히 강도 높은 폭력신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칼부림 장면은 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 장면만 아니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데이트를 할 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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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 조수석 앞 수납공간에는 비닐장갑이 한 상자 들어있다.

차량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정비를 하려고 둔 건 아니고,

(그럴 목적이라면 면장갑을 두는 게 맞다)

이곳 화천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일 년 쯤 지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챙겨 가지고 다니게 된 아이템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두고 보면 이곳 화천은 동서의 중간지점,

거기에서 북쪽으로 불쑥 올라간 곳에 위치해있다.

(위도 상으로는 개성보다 위쪽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있는 곳은 최전방 휴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

살고 있는 사람들의 90%는 군인이고,

면회객들을 제외하고는 유동인구랄 게 거의 없는 동네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군부대들이 많다보니 따로 개발이 된 곳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엄청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다 합쳐보면 동물들이 살기에 딱 좋다 싶은 곳.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생활 한 지 2년 동안

평소에는 보지도 못한 야생동물들을 잔뜩 보고 말았다.

이곳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은 고라니.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갑자기 튀어나와 놀래키기 일쑤고

눈이 많이 온 밤엔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면

주차 해 둔 내 차 주변을 한 바퀴 삥 돌고 간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멧돼지도 심심찮게 발견되는데,

길가다 한두 번 마주친 적도 있지만,

주로 GOP 지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데

큰 놈은 2m 가까이 되는 것도 있다.

그 외에도 도시에 살 때는 볼 수 없었던

산토끼, 너구리, 가재, 매, 독수리,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쁜 새들이

사시사철 사방을 뛰어 다닌다.

(꿩들은 아예 차가 지나가도 피하지 않고 고개만 돌릴 정도다;;)

 

 

 

문제는 그 녀석들이 살고 있는 곳에 사람들도 살기를 원했다는 것.

사람들이 오고가야 하니 길이 나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길은 점점 더 넓어진다.

거기에 석유에서 뽑아낸 시커먼 덩어리로 땅을 다져놓으니,

이 녀석들이 움직일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녀석들이니 꽤 익숙해졌을 테지만

그래도 그 시커먼 길 위를 빠르게 지나다니는 쇠붙이들은

여전히 큰 위협이다.

 

내가 비닐장갑을 차에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녀석들 때문이었다.

일이 있어서 읍내를 오고가던 중 미처 달려오던 자동차를 피하지 못해

길에 쓰러져 죽어 있는 동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걸 봐 버렸다.

굳이 동물들의 사체를 밟고 다니는 운전자들은 없겠지만,

빠르게 다니다 보면 필히 이리저리 치이는 사체들이 나오게 된다.

그 후 급한 일이 아니면 최소한 길 한 쪽으로라도 치워주어야겠다고 결심한 것.

 

 

첫 번째로 수습하게 된 것은 고라니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죽지 않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새끼를 밴 상태였는지 사고의 충격으로 핏덩이가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녀석이 의식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었겠지만,

그 녀석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물론 동물들 다니는 곳에 길을 냈다고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도로라는 게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쓸 데 없는 곳에 나지는 않는 법이다.

(물론, 이 나라에선 상상치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게 일상이지만)

더구나 여기에 있는 많은 군부대들을 생각하면

왕복 2차로라는 길은 좁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 길을 냈다면

동물들의 편의도 조금쯤 생각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

또.. 그렇지 못해서,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혔다면

함께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조금쯤은 예의를 표해 달라는 건

지나친 부탁인 걸까.

(뒤에 들은 말인데 그렇게 사고로 죽은 고라니가 발견되면

식당에 팔기 위해 금방 누군가가 와서 수거해 간다고 한다.)

 

오늘도 여전히 내 차엔 비닐장갑이 실려 있다.

그 자리에 장갑이 있다는 걸 잊어버렸으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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