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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제국 -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0년 2월
평점 :
1. 요약 。。。。。。。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와 소아시아, 중앙아시아, 나아가 지중해 동부 일대를 포괄하는 하나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나 사마천, 김부식 등 각각의 사가들에 의해 서로 다른 것으로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기존의 고대 세계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을 모두 뒤엎고 진시황이 알렉산드로스와 동일인물이며, 부여의 대소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같은 인물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하나의 고대 세계의 정신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샤머니즘’이며, 고대 세계 전역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의 유사성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2. 감상평 。。。。。。。
저자는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남아 있는 자료가 부족하니(어쩌면 누군가가 고의로 없애버렸을 수도 있으니) 자료들 사이의 넓은 간격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워야만 고대 역사의 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낸다는 것 자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기에, 모든 역사 기술에는 어느 정도 역사가의 상상력(전제나 추측)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상상력을 뒷받침 할 만 한 어느 정도의 논리적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역사가의 주장은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그저 개인의 ‘의견’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뭐라 할 수 없겠으나, 역사서로서는 함량미달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면 이 책은 어떤 논리적 정황이나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저자는 크게 두 가지를 근거로 제시한다. 지중해 동부와 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의 공통점과 같은 지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들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물들의 발음상의 유사성이 그것.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사실 이 두 가지는 ‘증거’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수백, 수천의 개체가 수억 개 이상의 유전자까지 동일하게 진화되었다’는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설명을 믿는 것이 아니라면, 인류는 한 쌍의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을 것이다. 그 조상들로부터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고대의 유물에서 발견되는 공통점들은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이것은 원줄기로부터 멀리 나온(시간이 많이 지난) 오늘날에 왜 문화권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가 크게 달라졌는지도 설명해 준다. 나아가 발음상의 유사성이라는 것도 지나치게 자의적이어서 어디에서는 발음의 유사성을 취하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단어의 뜻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그것도 아니면 한자의 이두 발음까지 꺼낸다. 그 유사성이라는 것도 긴 단어의 한 부분만 일치하는 듯 보이면 곧바로 연결시키는 식(중국의 노나라가 ‘로도스섬’의 첫소리를 옮긴 것이라는 주장, 326쪽)이니 이래선 강아지와 망아지는 원래 같은 동물이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책은 저자의 지나친 상상력으로 인해 일찍부터 산으로 올라갔고, 좀처럼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세워 놓은 역사적 가정에 각종 서적과 유물을 꿰어 맞추는 식으로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역사가가 피해야 할 잘못된 접근방식이다. 특히나 책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성경에 대한 언급은, 그것의 역사적 가치를 최소한으로 인정하는 가장 진보적 해석을 취하는 학자들조차 동의하기 어려운, 기초적 사실관계에 있어서의 잘못된 인용들을 남발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다른 여러 역사서들에 대한 인용과 해석부분에 있어서도 그 진실성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거의 유일한 공헌은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 살았던 고대인들에게 때때로(‘항상’이 아니다) 나타나는 매우 놀라울 정도의 공통적 기억에 관한 발견과 그 자료들에 대한 매우 견실한 수집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점만으로도 이 두꺼운 책은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지나치리만큼 자주 등장하는 저자의 억측과 자의적 연결은 책의 가치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리며, 특히 책의 구성은 엉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