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일시정지 - 과학 선생들의 현대 과학 다시 보기 양철북 청소년 교양 7
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 지음 / 양철북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고 있는 현대의 과학기술은 과연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걸까? 과학이란 누구도 건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는 걸까? 쉼 없이 달리기만 하는 과학이 과연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 그것이 인간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잠시 멈춰 살펴보자는 것이 이 책의 기획 목적이다.

     과학문명이 가져 온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들, 과학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동물들과 인간이라는 현실, 첨단의 과학 기술이 인체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나노 기술과 유전자 조작 식품들에 관한 이야기 등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재미있는 주제들이 담겨 있다. 현직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저자들은 어려운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써 주고 있다.

 

2. 감상평 。。。。。。。

     내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과학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과학 기술이 바꾸어 놓을 미래에 관한 유토피아적 모습만을 잔뜩 써 놓은 책들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막상 그 책들이 예상했던 시기가 가까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다지 낙원으로 변해가는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늘어나고, 그 주요한 역할을 과학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단 로봇들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담긴 식의 방식이 아니라도,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고 잡아 주지 않는다면 과학은 언제라도 파괴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역습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 비해 뒤늦게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한 가지 중요한 축이었던 서양의 과학기술에 관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과학적인 것은 사실’이라는 명제를 일종의 공리로 삼고, 여기에 ‘사실이란 가치중립적인 것’이라는 공식을 더해 온전한 과학 중심의(좀 더 정확히는 과학연구의 주체로 생각되는 인간 이성중심의) 세계관을 건설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과학중심의 세계관은 거침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애초에 그 영역이었던 자연의 질서 혹은 법칙을 넘어 인간 사회의 운영에까지도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과학이 인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과학 자체가 가진 힘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선량한 방식으로 이용하고자 노력했던 선진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 문제는 과학에 담겨야 하는 그런 가치들이 사라지고 대신 눈앞의 이득과 이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 모임’이라는 모임 명은 이 책이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들의 집합임을 알려준다. 온 나라 전체가 미친 듯이 효율과 성장이라는 가치만을 따라 달리고, 여기에 ‘가치중립적인 과학’이라는 가상적 개념이 더해지면서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균열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 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생명이라는 ‘가치가 담긴 과학’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매우 시의적절해 보인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정도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딱 맞도록 쉽게 쓴 저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대개 이 정도면 일반 성인들에게도 무난히 읽힐 수 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데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고, 

그러기 위해 상당한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매일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쓴다. 

이것은 부도덕한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할까?

 

 

1. 요약 。。。。。。。

     실천윤리학자인 저자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기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부’를 제안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것 중 매우 일부만(약 5%) 기부를 하더라도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 이후에도 기부자는 이전과 같은 삶을 유지하는 데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기부에 관한 실제적인 연구와 발표를 지속해 온 저자답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관한 실질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적인 기부문화를 권장하기 위해 기부자와 기부 액수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것을 제안하며, 나아가 소득 정도에 따른 실제적인 기부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2. 감상평 。。。。。。。

     과학문명의 발전과 자유로운 무역,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계몽주의자들 - (경제적) 자유주의자들 -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은 틀렸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세 가지가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과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선택을 이어나가다보면 최적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론임이 드러났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여전히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수정액’을 여기저기 칠해가며 보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허영심을 적당히 만족시켜 주면서(현실을 인정하면서) 현실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부’라는 전략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부를 늘리기 위한 실제적인 방식에 관한 연구도 철저하게 이전의 ‘문제를 만들어 낸 생각들’ 안에서 찾고자 하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저자의 한계가 발견된다.

     저자의 인간 이해는 여전히 진화론에 입각한 발전주의적 견해에 머물러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어떤 속성은 그것이 생존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먼 지역에 사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보다 자기 집에 있는 아이에게 더 많은 비용을 들이고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종족번식의 본능에 더 이롭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이해는 곧 그런 방식이 옳은 것이라는 가치판단까지 더해준다. 문제는 이 견해는, 왜 그러면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본성에 충실한 선택을 바꿔야만 하는가에 대해 딱히 대답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 생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바꾸고 불리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같은 방식으로 강간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그것 자체에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진화론적 윤리학에서는 실제로 등장한다)

     이런 난점을 저자도 인식했기에,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라는 전혀 다른 ‘감성적 논법’을 사용해서 청자들을 설득하려고 시도한다. 모두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것이 출근 시간에 조금 늦는 것 같은 약간의 손해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논법의 연장선상에서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아이를 구하는 데 적은 비용이면 되는데도 사치품을 구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충분히 설득적인 논법이긴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자연스럽지 못한(다른 말로는 충분히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이니 말이다.(만약 그랬다면 이런 책을 쓸 필요가 없었을 테고) 요컨대 저자의 전제와 주장 사이에는 일종의 ‘도약’이 필요한데, 저자는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눈을 돌리도록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인간관이 필요할 듯하다.)

 

     이런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장려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태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태도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결코 기계론적 인간관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 숭고한 행위가 온갖 악한 행위들 사이에서도 오늘까지 인류를 지속시킨 주된 원인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왜 우리나라에는 빌 게이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릴 때에야 사회 환원 운운 하며 생색을 낼 줄은 알지만, 그렇게 내 놓은 돈으로 무슨무슨 장학회를 만들어 친인척을 이사장으로 앉혀 놓고 거기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은 여전히 누리는, 눈 가리기 식이기 일쑤인 모습을 우리는 좀 더 많이 봐왔으니까.

 

     우리나라도 책임 있는 부(富)에 관한 논의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일반화되지는 못한 것 같다. 언젠간 이런 것들이 상식이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재는 자신의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에 천재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것도 충분히 시대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1. 요약 。。。。。。。

      앞서서는 땅을 중심으로 한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로마의 여러 가지 노력들을 다뤘던 시오노 나나미는 이제 잠시 그 시선을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한 명의 인물에게 고정시킨다.

     포에니 전쟁 이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 로마의 패권과 그에 뒤따른 사회, 경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이라는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오랜 암중모색의 시기를 지나고 마침내 40대에 들어 로마 정계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후 잠시도 쉬지 않고 본래의 목적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그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삼두정치를 시작함으로 실질적으로 로마의 국체를 바꾸기 시작한다.  

     이후 오늘날의 중부 유럽인 ‘갈리아 지방’을 로마의 패권 아래 두기 위한 전쟁을 시작해 엄청난 영토를 로마에 편입시키지만, 그 동안 카이사르의 생각을 눈치 챈 원로원 세력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삼두의 또 다른 머리인 폼페이우스를 자기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카이사르의 폼페이우스의 대결은 5권으로 으로 넘어간다)

 

 

2. 감상평 。。。。。。。

     로마인 이야기라는 대규모 연작을 집필하면서 무려 두 권을 한 사람의 이야기에 헌정한 시오노 나나미답게, 카이사르에 관한 서술을 하는 내내 그에 대한 사랑이 흘러넘치다 못해 바닥을 적실 정도였다. 그가 결정하면 그것은 필연적인 무엇이 되고, 그가 선택하는 방식은 언제나 최선의 것이었다. 이쯤 되면 카이사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신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실제로 고대 로마에서는 그를 신격화 했으니, 어쩌면 시오노 나나미는 진정한 고대 로마제국의 충성스러운 신민일지도 모른다. 그의 종교까지도 고대 로마식으로 바꿔버리는..)

     물론 어떤 국가에 새로운 정체(政體)를 도입하는 일은 상당히 섬세하면서 예술적인 감각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그것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라면 충분히 말할만한 ‘꺼리’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말 같지도 않은 논리를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카이사르가 한 일은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고 있었던 권력을 실력으로 빼앗아 자신에게 집중시킨 것뿐이다. 그리고 사실 그런 정체는 이미 로마에도 있었고, 로마 인근의 국가들에서는 오히려 일반적이었던 제도였다.(다시 말해 그가 독창적인 무엇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가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은 힘과 재물의 인위적인 결합이었고, 자신의 세를 불리기 위해 채택한 것은 타 민족에 대한 침략이었다.

     어찌 되었건 발전했지 않느냐는 말은 꽤나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주장이다. 때문에 저자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침략전쟁을 서술하면서, 그가 점령한 뒤 세운 로마 군단 기지가 있었던 장소들이 오늘날에도 도시로 남아 있다는 서술을 반복하면서 은근히 ‘그들을 개화시켜 주었다’는 식의 논리를 담아내고 있다. 이는 ‘로마화 = 문명의 발전’이라는 공식으로 전면에 제시된다. 일제의 식민화가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는 주장과 어쩜 이렇게 닮아 있는 걸까.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유능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지켜보는 것은 물론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말 그대로 문무에 능한(여기서 ‘무’는 직접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용력’보다는 ‘전략과 전술’을 가리키지만) 인물이니까.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3권까지 지속해 온 로마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큰 틀이 상당히 축소된 듯한 느낌이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침략은 방어선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당시 로마 사회의 빈민들의 문제는 외적의 침입이 아니라 심각하게 벌어진 빈부격차로 인한 것이었다. 과연 그런 로마사회의 불안이 단지 정체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일까에 관한 의문은 이번 권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재미와는 별개로 저자의 사관(史觀)이나 평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라 마드레 - 공존을 위한 먹을거리 혁명
마이클 폴란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생태적 비용, 사회적 비용,
 그리고 시스템이 요구하는 엄청난 공적 지원금까지 고려한다면
 
산업형 농업 시스템은 결코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기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게 만들었다.

 

1. 요약 。。。。。。。

      당신이 먹고 있는 음식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우선 그것은 충분히 경제적인가? 오늘날 대량생산을 목표로 삼아 이루어지고 있는 대규모 산업적 농업 및 축산업은 일반적으로 노동집약적이었던 근대 이전 농업보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이 책은 그런 견해에 반대를 표한다. 화학비료와 농약, 그리고 많은 연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등 외적인 요소를 고려한다면 결코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말이다. 오히려 당장에 돈이 들어가지 않는 환경적 자원들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추가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은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가 조금 멀게 느껴진다면, 조금 더 쉬운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우리가 대형 마트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플로리다 산 오렌지와 칠레산 포도, 그리고 하루에도 수백 명이 사다 먹는 삼겹살은 호주나 캐나다에서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렇게 멀리서 왔는데 왜 이런 것들은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것들보다 쌀까? 자유로운 국제무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 뿐일까? 이 책은 말한다. ‘식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질도 함께 낮아져야 한다’고. 식품을 싸게 팔기 위해서는 대량생산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한 많은 작업들(그리고 그 ‘작업들’ 중에는 인체와 자연에 해로운 많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이 필요한데,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인간의 몸에 독성을 쌓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식량생산 방식이 인체에 유익할리 만무하다. 당장은 조금이라도 싼 ‘가짜 식품’들에만 손이 갈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것은 당신은 물론 당신의 가족들, 당신의 2세, 3세 후손들의 건강을 담보로 한 통장잔고 늘이기 그 이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책에는 대규모 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종자들을 끊임없이 구입하도록 만들기 위해 재생산 능력을 인공적으로 제거한 씨앗들(터미네이터 종자)을 만들어 내고,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GMO 작물들을 대규모로 재배함으로써 생태계 전반에 걸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소규모 농업 종사자들을 일거에 실업자로 만들어 버리고,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생산된 작물들을 소비하기 위해 인체에 해로운 또 다른 식품을 만들어 결국 국민 건강을 해치는 미국 정부의 농업정책과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추가적으로 실려 있다. 

  

2. 감상평 。。。。。。。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소규모 자영농들의 모임에서 비롯된 ‘테라 마드레’라는 운동은 그 이름부터가 ‘어머니, 땅’을 의미하는 의미심장한 공동체이다. 그 시작은 대규모의 기업적 농업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핍박받는 자들의 모임이었지만, 이제는 점차 규모를 늘려 전 지구적으로 아무런 회의(懷疑) 없이 널리 퍼져가고 있는 ‘자유무역이야말로 정의’라는 신앙에 대항하려는 정치적인 제스처(혹은 혁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사실 테라 마드레라는 이름 자체도 이른바 ‘가이아’나 ‘모신(母神) 신앙’을 떠올리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대중에 기반한 사회 혁명, 혹은 개량은 필연적으로 대중에 대한 교육이라는 쉽지 않은 난관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는 거다. 아무리 공정무역이 어떻고, ‘좋은 음식’이 어떻고 해도, 정의보다는 당장의 주머니를 더 걱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오늘날에 그런 손에 잡히지 않는 이야기가 쉽게 먹혀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업이 의미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럼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 책은 약간의 방황을 보여준다. 물론 대중에게 이 운동에 대해 소개를 하기 위해 전반적인 내용을 다양하게 설명하려는 취지가 엿보이긴 하지만, 덕분에 책을 보면 이 운동의 사상적 자리를 잡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담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소개를 위한 것인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는다.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책 속에도 잠깐 언급되었듯이 이것은 단순히 무엇을 먹을지를 선택하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기호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훨씬 쉽게 이 문제는 해결되었으리라.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경제구조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관의 왜곡(바른 것 → 개인적 이익)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좀 더 싼 것을 찾는 소비자들은 질이 떨어지더라도 값싼 생산품을 만드는 생산자를 낳고, 이 모든 과정을 묵인, 혹은 지지하는 정부의 정책은 다시 이런 악순환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쉽게 말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고민이 되는 상황인데, 이 책의 저자들은, 그리고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소비자들의 의식구조 개선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시작점을 찾고자 하는 듯하다. 물론 그 시작으로서는 매우 훌륭한 태도이지만, 그 이상을 정말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경제구조를 바꾸는 작업에까지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정도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될 지에 대해서는 쉽게 낙관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걱정은 걱정대로 하더라도, 당장 우리가 매일의 일상에서 하는 수많은 선택들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녁식사를 위해 장을 보는 것은 단순히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은 어떤 경제구조를 지지하느냐를 표현하는 매우 정치적이면서 사회참여적인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이 (꽤나 더 비싼) 지역 사회 생산 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유있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가대표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어린 시절 자신과 여동생을 미국으로 입양 보낸 어머니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현태는, 그가 국가대표 스키 점퍼가 되면 엄마가 먼저 찾아올 것이라는 방 코치의 말을 믿고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스키점프팀에 들어간다. 학창시절 잘나가던 스키선수였지만 약물복용 문제로 쫓겨났던 칠구와 늙은 할머니와 바보 동생을 놔두고 군대에 갈 수 없었던 흥철,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참여한 재복이 모여 마침내 공포의 외인구단이 만들어진다. 아, 여기에 흥철의 좀 모자란 동생 봉구도 후보 선수로 추가.

     우여곡절 끝에 연습을 하다가 겨우 독일에서 열리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경기에 참가하게 된 스키점프 팀. 하지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를 위해 창단했던 체육회 관계자들은, 유치가 무산되자 올림픽 출전권을 따온 그들에게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는다. 자비를 털어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올림픽에 출전한 그들. 하지만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 감상평 。。。。。。。

 

     나흘의 시차를 두고 보게 된 해운대와 국가대표. 한국형 재난 영화라는 야심찬 타이틀을 가지고 제작사의 계열사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상영관 점유율을 높여 흥행을 유도한 해운대였지만, 미숙한 연출력과 흠이 보이는 컴퓨터 그래픽은 기대한 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했었다. 반면 이 영화 국가대표는 처음부터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았던 영화였다. 스포츠를, 그것도 비인기종목을 전면에 내세워 흥행이 된 것은 ‘우생순’이 거의 유일했으니까. 바로 얼마 전 개봉했던 ‘킹콩을 들다’ 같은 영화는 처참하게 실패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게 그대를 하지 않고 봤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든 느낌은 ‘이 영화 괜찮다’였다. 스포츠가 가진 속성상 ‘승부’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인데, 이 때 이 승부를 더욱 긴장감 넘치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꺾어야만 하는 상대편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 때 이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비열하거나 악한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극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곤 하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선택한 것은 스키점프라는 혼자 하는 운동.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은 온전히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가야 하는 깔끔한 스포츠였다.(물론 영화 속에서는 주최 측의 농간이 살짝 등장하기도 하지만) 때문에 이 영화에서 성공을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오직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얼마나 잘해내느냐고, 자연히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도 응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다. 감독은 영화 속에 관객들이 내내 미워할 수 있는 악한 인물들을 배치하지 않는데,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감독은 이름 꽤나 있는 주연급 배우들을 총동원하지 않는 대신 연기력이 있는 두 명의 배우(성동일과 하정우)를 전면에 배치해 극을 이끌어 가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영화의 흐름을 무난하게 연결시켜주는 조연들의 열연이 버무려지면서 영화는 진한 맛을 우려낸 곰국과 같은 느낌을 준다. 드라마 ‘반올림’의 또 하나의 히로인인 이은성은 이 영화에서 꽤나 비중 있는 조연 역을 하며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느낌이다.(‘다세포 소녀’ 같은 쓰레기 영화에 출연해 길을 잃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컴퓨터 그래픽도 무한 반복질로 만든 어설픈 해일이나 컴퓨터 게임 오프닝 장면 정도의 수준이었던 건물 침수 장면보다 훨씬 나은 느낌이다. 스포츠의 특성상 스피드를 적절하게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사실 ‘우생순’은 이 점에서 좀 아쉬운 감이 있었다), 감독은 스키점프라는 특별한 종목의 느낌을 꽤나 사실적으로 살려냈다.(아마 돈은 훨씬 적게 들였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올해 봤던 열세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괜찮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