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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 - 청소년인권 이야기
공현 외 지음 / 메이데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하지만 그 경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경쟁을 하려 했던 것 아니었던가요?
끝없는 경쟁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그런 경쟁은 그만둬야 합니다.
1. 요약 。。。。。。。
청소년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청소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의 반인권적 상황들을 직접적으로 직면시키고 있다. 1부에서는 입시경쟁으로 규정되는 한국의 학교문화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지에 관해 논하고 있고, 2부에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강압적인 여러 규제들의 인권침해 요소를 다루고 있다. 3부에서는 학교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제한당하는 많은 것들을 지적하고, 4부에서는 좀 더 제도적인 부분에서의 인권침해를 다룬다.
2. 감상평 。。。。。。。
군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가까이가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군대 안에서 만나는 모든 병사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물론 ‘합쇼체’ 같은 아주 높임법은 아니지만, 그보다 약간 낮은 ‘해요체’를 사용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란 그 사람의 정신구조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에,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낮추다보면 그 사람보다 내가 뭔가 우월하다는 착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사들이 단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거나 계급이 낮다고 해서 ‘낮은’ 사람들은 아니니까.(말을 놓는 간부들이 꼭 병사들을 낮춰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권이란 그 사람의 성별이나 나이, 사회적 위치, 종교 등에 관계없이 인정되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권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류 역사에는 이것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주 존재해왔고, 그 중 하나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 즉 청소년들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억압과 고통의 감수를 강요하고 있는지를 여러 가지 면에서, 특히 구조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의 가장 큰 장점은 명쾌하다는 데 있다.(또, 폼도 난다!) 구조는 어차피 현실의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 된 권력양상을 그리기 때문에 좀 덜 중요해 보이는 건 과감히 생략해 버린다. 그럴 때 이 책 처럼 무언인가 문제를 지적하는 책의 경우 한쪽을 완전한 악으로, 다른 쪽을 완전한 선으로 가볍게 선을 그어버리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증거를 자신의 논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가져다 붙이는 현상이 일어난다. 쉽게 말해,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사복을 입을 경우 경제적 격차로 인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학교 측의 주장에 대해, ‘학교에서 사회의 불평등을 몸으로 겪은 청소년들이야말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교복폐지를 주장하다가도(105),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다수가 입시경쟁에서 탈락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학교 내에서 겪는 차별이나 열등감을 꼽기도 한다.(230) 영상물, 게임, 음악 등의 선정성 판단 기준에 있어서도 ‘그 내용이나 맥락이 성폭력적이거나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것인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인지, 인권침해적인지 같은 것은 판단’해도 된다는 투로 말하다가도 금새 ‘별 같지도 않은 가사 한두 개 가지고’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판단한다고 조롱하기도 한다.(253)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겠다는 말인지, 또 그 ‘별 같지도 않은 가사 한두 개’란 누구의 판단기준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인지, 가사 한 두 개 정도는 봐줄 수 있다는 것인지 하는 것들은 불분명하다.
논지를 위해 상대를 과하게 비난일색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많다. 학교란 처음부터 폭력을 주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136)라는 설명이나 가정에서 자녀세대를 부양하는 모습을 ‘청소년들이 가정의 지원으로 생활을 보장받는 것은 경제적 지배의 성격이 있다(233)’는 말로 평가절하 하는 부분이 그 예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가정의 해체(277), 학교의 전복(137)이라는 나머지 주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에 대한 술 담배의 금지는 그들이 제대로 된 판단력이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라는(252), 의도하지 않은 부분을 비난하는 오류도 보인다.
구조화는 비판하는데는 용이한 부분을 제시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썩 유리하지 못하다. 요컨대 ‘모든 것이 반대로 된 나라’ 따위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책 자체에서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소년들의 가장 당면한 문제 중 하나인 대학입학과 관련해 입시 폐지와 대학평준화가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는 이도 있는가 하면(73), 결국 그런 것들도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25-27) 저자들은 자신이 맡은 단락의 말미에 공통적으로 ‘청소년들의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문구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28, 87, 112 등), 그래서 무엇을 만들기 위해 뒤집어엎고 때려 부수자는 것인지 목표에 대한 설정은 약하다.(대안이 부족하다고 해서 비판의 의의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굳이 책으로까지 만들었다면 뭔가 좀 보여주는 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동성애나 페미니즘에 관한 논의는 갑자기 왜 따라 붙었는지 모르겠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주장들을 하는 것이야 그렇다고 쳐도, 굳이 청소년 인권을 다루는 책에 끼어들어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감히’(이건 저자의 표현이다) 선언함으로써 또 하나의 흑백논리를 펼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책에서 말하는 청소년 인권과 관련된 많은 제안들과 현실에 대한 고발은 새겨 들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지 자기주장의 끊임없는 되풀이에서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런 태도는 결국 스스로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그래서 인권이라는 매우 대중적이며 당연한 주장을 하면서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장애물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