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병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차 안에서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10m 앞 쯤 세워져있던 레토나가 맹렬히 후진을 하더니... 쾅!!
 
덕분에 차 전면 오른쪽이 완전히 박살.
 
차는 공업사에 입고시켜놓고
 
오늘은 제 차보다 잘 나가는 렌트카를 몰고 다녔죠. ㅎ
 
 
근데.. 살짝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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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맨 2008-12-0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다치시진 않으셨나 모르겠네요. '아픔'이라는 말이 마음이 아픈건지 몸이 아픈건지 모르겠지만, 얼른 나으시길 바래요.

노란가방 2008-12-04 22:09   좋아요 0 | URL
온몸이 뻐근하고, 쑤시고 그러네요.
사고 당시엔 별로 증상이 없었는데.. ^^;;
 
천국과 지옥의 이혼 믿음의 글들 20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타고난 감정은 그 자체로서 고귀하거나 저급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거룩하거나 속되다고 말할 수도 없단다.

하나님이 고삐를 잡고 계실 때 모든 감정은 거룩하지.

그러나 감정에 고삐가 풀려서 그 자체가 우상이 되어 버리면

예외 없이 부패해 버린단다.

 

1. 줄거리 。。。。。。。

 

     C. S. 루이스가 판타지 문학의 형식으로 쓴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그 곳’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주인공은 이제 막 함께 도착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도착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자식과 남편, 혹은 자신의 지적세계와 평판 등 온갖 종류의 세속적(하나님께 속한 것과 반대되는 의미에서)인 집착을 더 소중하게 여겼고, 결국 천국의 문 앞에서 뒤돌아 나가고 만다. 자신을 인도하는 이와의 여행을 계속 하며 천국의 속성에 대해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된 주인공은 마침내 그 곳의 앞에 다다랐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이 꿈인 것을 깨닫고 깨어나게 된다.



 

2. 감상평 。。。。。。。

 

     사실 천국과 지옥을 여행한다는 모티브는 매우 오래된 소재이다. 이미 700여 년 전 단테는 ‘신곡’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통해 중세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당대의 사회와 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했고, 350여 년 전 존 번연은 ‘천로역정’이라는, 지구상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작품을 통해 근대의 청교도 혁명기 당시 영국의 의식화된 신앙생활을 비판하며 천국에 이르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진짜 영적 준비에 대해 길을 제시했다.

     이 작품 ‘천국과 지옥의 이혼’ 역시 전작들처럼 작품이 쓰일 당시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에 관해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의 맥을 이어가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테는 중세, 번연이 근대의 관점을 바탕으로 천국과 지옥을 상상했듯, 루이스는 현대의 좀 더 발전된 ‘천국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는 차이는 있다.

 

     19세기를 넘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신학계에서 가장 관심 있는 주제로 떠오른 것이 ‘천국론’이었다. 2,000년에 걸친 기독교 신학의 연구는 신론(神論)을 비롯해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등 신학의 여타 제 분과에 걸쳐 (종종 상반되는) 많은 주장들과 이론들을 내어 놓았고,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아직 천국론만큼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저자인 C. S. 루이스는 성경의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관한 기록이 가지는 상징성과 실재성을 적절하게 잘 포착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그의 견해가 잘 드러난 이 소설에서, 그는 판타지 문학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용해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매우 쉽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특히, 현세에서의 삶이 끝난 이후 그 사람의 선택(이 선택은 사후에 다시 주어지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살아 있을 당시의 삶의 방식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인다)으로 결정되는 천국과 지옥이 소급되어 생전의 삶까지도 변화시킨다는 생각은 너무나 탁월한 지적이다.

     루이스가 생각하는 천국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 보다 ‘그 분’을 더 많이 사랑하고 그 분에게 자신을 내어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야 자신이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을 ‘정말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천국의 신비이다. 이것은 어떤 ‘자격’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덧셈과 뺄셈을 통달해야 곱셈과 나눗셈을 할 수 있다는 말처럼 하나의 ‘선제조건’에 관한 이야기인데, 루이스는 이 부분까지도 어깨에 붙은 빨간 도마뱀이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절묘하게 표현한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의 필력과 성경에 관한 깊은 조예는 오늘의 어떤 유능한 신학자(사실 그는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나 소설가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이번 작품 역시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작품이다. 볼수록 매력이 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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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맨 2008-11-04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노란가방님의 책 이야기를 참 재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모티브'는 '모티프'라고 씌여져야 혼동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

노란가방 2008-11-04 06:52   좋아요 0 | URL
모티프는 프랑스어이고, 모티브는 영어? 뭐 그런게 아닌가봅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때에 따라 혼용을 하면서 사용했는데 말이죠.. ^^;;
 
늑대토템 1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김영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초원은 너무도 복잡해서 무슨 일이든 하나가 또 다른 무엇과 항상 연결되어 있지.

특히 늑대들은 초원은 물론 다른 동물들과도 연결 고리로 모두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이 고리가 망가진다면 초원의 목축업은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는 거야.

 

 

1. 줄거리 。。。。。。。

 

     1960년대 중국. 아버지가 자본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숙청되어 몽골 지방으로 밀려 온 천전이라는 청년이, 초원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도시 인텔리였던 그가 초원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접하면서, 초원을 경장지로 만드는 것이 곧 개발이고 발전이라는, 농경사회 중심의 개발전략의 문제점을 깨닫게 된다.

     특히 천전이 매력을 느낀 것은 초원의 늑대. 처음에는 유목에 피해를 주는 늑대를 왜 모두 죽이지 않는지 의문을 가졌던 그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초원의 생태구조를 이해하게 되면서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삶을 이어 나가려는 초원 사람들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내친김에 천전은 아기 늑대를 한 마리 꺼내와 직접 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초원의 생산력을 늘린다는 미명아래 반농반목(半農半牧)이라는 정책을 급격히 추진하게 되고, 이는 초원에게도 늑대에게도 큰 위기로 다가온다. 그리고 30년 만에 돌아온 초원의 모습은..

 

 

2. 감상평 。。。。。。。

 

     무척이나 두꺼웠던 소설이었다. 이런 두꺼운 책들은 좀 더 오랜 즐거움을 선사해 줄 수도 있고, 오랫동안 손에 들고 다닐 것이 생겼다는 만족감까지 준다. 물론, 내용이 흥미로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소설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우선 소설 전체에 담겨진 강한 생태주의나 자연주의적 관심 때문에 ‘자연주의적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마구잡이식 개발논리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늑대는 유목민들이 키우는 양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반대로 양들이 먹을 풀을 싹쓸이 해버리고 말들이 달리다가 걸려 넘어지게 하는 구멍을 파대는 마르모트나 산토끼, 그리고 가젤 등의 숫자를 적절하게 줄여주어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주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중앙 관리들’은 그저 초원을 갈아 논과 밭으로 만들고, 돌로 만든 집(초원민족들은 이동식 집을 짓는다)을 세우는 것만이 발전의 증거인 양 멋대로 생각해 버린다.

     40년 전 미개발 상태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왜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이 떠오르는지... 과연 시간이 지난다고, 장소가 바뀐다고 사람들의 지능까지, 사고력까지 발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편으로 이 책은 깊은 동서양을 총괄하는 역사를 ‘늑대와 양’이라는 사관(史觀)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는 면에서, 역사서적 측면이 가미된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소설 속의 천전(곧 작가)은 유목민족을 늑대로, 농경민족을 양으로 비유하며, 역사적으로 왜 높은 문명수준을 자랑했던 농경민족들이 항상 유목민족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정복을 당했는지를 ‘민족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저자의 이런 분석은 언뜻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상황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라는 문제점도 동시에 안고 있다. 한 나라가 망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또, ‘민족성’이라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무엇에 근거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책의 곳곳에 묻어 있는 ‘중화사상’이 마음에 걸린다. 저자는 대중화사상에 근거해 현재 중국 땅에 있었던 모든 왕조와 나라는 곳 중화인이라는 식의 논리를 강요한다.(이런 면은 특히 ‘늑대 토템과 지적 연구’라는 마지막 장에 부각된다) 이런 논리의 자연적 결과로 ‘원래부터’ 중국에 속한 영토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점이든 중국 왕조가 점령했었던 지역은 모두 중국 땅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해 나가는 경향도 보인다. 이런 생각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 잘 드러난다. 

     “농경과 유목의 두 형제민족이 함께 열심히 싸운 덕분에, 2천여 년 전부터 중국에 속했던 영토를 지금까지 보존할 수 있도록 해 준거야.”

     물론 저자가 책의 곳곳에서 중국의 정책이나 방향에 대해 반대의식을 표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대한 중국’, 혹은 ‘중화사상’이라는 개념 아래 적용되는 것일 뿐이다.

 


     저자의 초원 생태에 대한 깊은 연구와 그에 관한 서술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늑대의 습성에 관한 연구는 어느 생태과학서적에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수준이다. 또, 자연 그대로의 삶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당장 오늘날에 적용해도 괜찮을 정도다. 책 두 권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몽골 초원에서 생활하는 듯한 느낌을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다.(자꾸 불에 그대로 구운 고기가 먹고 싶어진다는..)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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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라는 일본 작가의 단편소설집과

 신경숙 작가의 미출간 신작 '엄마를 부탁해'(곧 출판 예정)


재밌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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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감기님이 오시려나...

 
열도 나고,

무기력하고,

머릿속는 온통 헝클어져 있고,

하루 종일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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