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쉘 실버스타인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 소년을 사랑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소년이 어렸을 때,

나무는 소년에게 놀이터가 되어 주었습니다.


소년이 나이가 들어 돈이 필요했을 때,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팔아 돈을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소년이 좀 더 나이가 들어 집이 필요할 때,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잘라 집을 짓도록 해 주었습니다.

 
소년이 이제 중년이 되었을 때,

나무는 자신의 몸통을 잘라 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이 노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

나무는 기꺼이 자신의 그루터기를

소년이 앉아서 쉴 곳으로 내어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후회없이 사랑하려면,

이 나무처럼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처럼 평생을 한 사람만 기다리면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름답긴 하겠지만,

그런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찾으면 됩니다.

그 자신이나 그를 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요.

지나치게 감상에 빠진 모습은,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들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 받지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을 해야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물론 사랑은 정확한 손익을 따져야만 하는 장사와는 다릅니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나도 이만큼은 받아야 돼'라는 생각은

사랑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죠.

하지만 성경의 사랑법에 따르면,

사랑을 하는 두 당사자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퍼주는 것은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을 줄 수 있는 그 순간이 되었을 때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무는 소년이 자신에게 왔을 때,

그 시점에서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었습니다.

나무는 뒤의 일을 계산해 가며,

잘려나가는 자신의 가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무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선뜻 자신의 몸통을 잘라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무는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소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사랑을 담아 주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란 감정이 싹이 틀 때 지나치게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진짜라는 확신은 어디서 얻지?'

'혹시라도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그렇다면 한 번에 다 줘서는 안 돼.'

 


이런 생각들은,

대개의 경우 '사랑'이란 것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지고지순한 그 무엇,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하지만 사랑은 일상적인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의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친절, 배려, 때로는 그냥 미소만으로도

훌륭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이 시작될 때,

한없이 두려워 하고 있다가

결국 그 사랑을 떠나보내고 후회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이별을 할 것이 두려워서 꽁꽁 싸매어 가지고만 있으면,

후회의 분량이 작아질까요?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한 사람은,

마음이 아프긴 하겠지만, 후회는 오히려 더 적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 주고 싶은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다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두려워하며 걱정만 하는 사람은,

해 주지 못한 것, 표현하지 못한 것들이

후회라는 이름으로 깊이 새겨지게 됩니다.

슬픔이 훨씬 더 오래 가게 되죠.

'그 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이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랑을 시작하셨거나,

사랑을 할 기회를 만나게 되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2주 간의 사랑이든,

2개월의 사랑이든,

혹은 그 이상이든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는 걱정이나 불안은 조금 뒤로 내려놓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더라도

가장 적게 후회하는 사랑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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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기간 위문을 위해

오랫만에 얼굴에 위장도 해 보고..

방탄헬멧도 써 보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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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야 형제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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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여자들은 모두 널 보고 싶어 해."

작은 소리로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박하 비슷한 향이 났다.

'해로울 게 없으니까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1. 줄거리 。。。。。。。 

 

     서른이 훨씬 넘도록 함께 사는 형제. 둘은 기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둘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특히나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는 더!!)를 수월하게 해 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그래서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취미생활로 보내고 있긴 했지만, 나름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사랑 때문에 숱하게 상처를 받기도 했던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가 없었던 것인지, 형제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세상과(그리고 여성들과?) 소통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소통의 방법은 자신들의 집에서 여는 작은 카레 파티에 그녀들을 초대하는 것.;;; 그들의 이 ‘소심한 용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2. 감상평 。。。。。。。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에서는 자주 소소한 일상들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서술되곤 한다.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작가의 손을 거치고 나면 참 ‘문학적인 무엇’으로 바꾼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그다지 특별해보이지 않은 두 형제를 특별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게 작가적 능력인걸까. 

     여자들이 보기에 그다지 매력이 없는 두 형제, 실외활동보다는 실내 활동을 더 좋아라하고, 직소 퍼즐 같은 것에 몰두해버리고, 책에 담겨 있는 세계에 빠져버리는 모습 등은 거울을 볼 때마다 보는 내 모습이기도 해서 읽으며 살짝 당황스러웠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도 마미야의 냄새가 느낄지도..;;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은 많이 읽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냉정과 열정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쿄타워』같은 작품들로 이어지는 그녀의 작품세계에는 한결같이 ‘사랑중독증’과 같은 지독한 애착을 ‘진정한 사랑’으로 그려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작품도 그런 우려를 안고 읽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기우였다.


     이번 작품에는 사랑에 빠져(혹은 애착을 사랑으로 알고) 허우적대는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에 만족하며, 자신들의 마음에 찾아온 바람에 약간의 흥분을 느끼면서 바람이 이끄는 대로 작은 시도를 하고, 그 추이에 따라 고조되기도, 좌절하기도 하는 좀 더 실감나는 인물들이 내용을 채운다. 다만 내용이 극단적으로 치닫거나 깊이 천착하는 것이 아니니 읽으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은 좀 적어진 느낌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여자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집안 분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나도 이제 때가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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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유모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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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을 개선하려고 할 때 저 같은 지식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한 일은

나중에 진정한 힘을 지니고 나타날 하층민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 놓는 것밖에 없을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숙명일지도 모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꾸로 보기’의 역사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역사서술의 주체였던 남성적, 권력자적인 입장이 아닌, 상대적 약자인 여성적, 비 권력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시각으로, 그가 얼마나 방탕하고, 자기중심적이었는지를 비꼬고, 시성이라고 불리는 단테가 얼마나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관심한 채, 오로지 자신의 이상만을 쫓다가 죽었는지를 꼬집는다. 칼리쿨라의 말(馬)의 시각으로 로마의 황제를 그리는 부분은 재미있는 시도였다.

     심기를 껄끄럽게 한 부분은, 여전히 이번에도 드러나는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이다. 이 책에서는 성경, 특히 복음서와 관련해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하나같이 자기 멋대로의 해석이다. 대부분 자유주의적인 성경해석이며, 굳이 자신의 전공분야도 아닌 것을 쓰려는 이유가 미심쩍은 부분이다.

     이번에도 저자의 영웅숭배는 여전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에서 이것은 특히 더 잘 나타나는데, 저자의 눈에 든 인물은 모든 행동이 극도로 치켜세워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한없이 깎아내려지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글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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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친김에 부식꺼리를 좀 더 구입했다.
 
고추참치 두 개와 목우천 햄 하나,

달걀 열 개랑 포도씨유,

마지막으로 동그랑땡까지.

이정도면 앞으로 한 달은 버틸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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