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밥을 해 먹다.

맨날 라면만 끓여먹는다고 뭐라고 해서리...;;

 

쌀 씻을 필요도 없고, 그냥 물이랑 전기밥솥에 넣어서 버튼 누르고

고추장에 비벼서 김과 함께 간단히 저녁 식사.

내일은 참치캔이라도 한 놈 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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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 저녁...

 특별히 '쌀 사리곰탕면'을 끓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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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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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1. 줄거리 。。。。。。。

 

     요동과 중원의 주인이 명에서 여진족이 세운 후금, 곧 청으로 넘어가고 있을 무렵, 한반도의 조정에서는 여전히 ‘대의(大義)’를 앞세운 신료들에 의해 끝까지 명의 황제 쪽에 붙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결국 청은 용골대를 대장으로 한 정벌군을 조선으로 보냈고, 말만 할 줄 알았지 칼 한 자루 들고 나가 싸울 기개는 없었던 신하들은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도망을 간다.

     딱히 무슨 계획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새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이들, 하지만 곧 죽어도 절개는 지켜야 한다는 꼿꼿함만큼은 지키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남한산성. 포위를 당해 날이 갈수록 배는 고파오지만, 어울리지 않게 날마다 호사스러운 말잔치가 벌어진다.

     그리고 이윽고 다가온 마지막 날.



 

2. 감상평 。。。。。。。

 

     국사과목에서 일반적으로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불리는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써 낸 작품이다. 선 굵은 작품들을 써 내는 작가가 쓰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주제. 성공하는 이야기도 없고, 찬란하게 타오르는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비좁은 성 안에 틀어박힌 채 우왕좌왕하는 군상(群像)들만 보인다.

     하지만 역시 김훈이라는 이름은 가볍게 볼 이름이 아니었다. 작가는 그 답답하고 불쌍하기까지 한 상황을 그려내면서 ‘말(言)’이라는 열쇠를 건져낸다. 작품 전체에서 ‘말’이 지나치게 과장된 채 터져 나오고 있으며 - 이를테면 성 안에서 발견한 밴댕이 젓 한 단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말이 얽혀야만 하는 - 이는 상황에 대한 직접묘사가 전해줄 수 없는 분위기를 잘 전달해 준다.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며 지껄여대는 말들을 모아 놓고 보면, 결국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번번이 빠지는 상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말이라기보다는 그저 말을 하기 위해 뱉어내는 말의 홍수는 현대사회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텔레비전만 켜면 온통 정치인들의 말잔치로 가득하고, 인터넷 마당에도 날마다 설전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의 말의 충돌이 그렇게 길어질수록, 가장 큰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힘없고 약한 이들이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어느 사회나 말 잘하는 사람은 자기 몫을 챙겨먹을 수 있으니까. 정말로 민(民)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해 나가야 할 텐데, 예나 지금이나 정책 담당자들의 생각은 그들에게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나보다 약한 이들을 위한 실제적인 논의들이 신문과 방송을 가득 채우는 멋진, 아니 제대로 된 세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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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사회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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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돈이 모이면 그 돈을 부동산에 바친다.

벌이가 시원찮으면 빌려서라도 바친다.

부동산을 잘 모시는 사람일수록 높은 계급이 되고,

‘아파트신’과 ‘빌딩신’과 ‘토지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층 계급으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단지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요건 중 하나일 뿐인데,

부동산을 신처럼 모시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

 

1. 요약 。。。。。。。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 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 모두가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일까?

     저자인 손낙구는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신분적 장점을 적극 활용해 모은 국가 통계자료들을 토대로, 한국 사회 부동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지적하려고 애쓴다. 나아가 저자는 토지의 공공성과 사회성을 근거로 하는 토지 국유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2. 감상평 。。。。。。。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이라는 해학적 백과사전에서 ‘암세포’를 ‘다른 세포들을 고려하지 않고 불멸성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증식하다가 마침내는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죽여 버리는 자폐증이 걸린 세포’라고 정의한다. 암세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속성, 즉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자기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태도가 결국 모두 함께 죽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집 부자는 혼자서 1,083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 2위는 819채, 3위는 577채, 5위는 476채, 6위는 471채, 7위는 412채, 8위는 405채, 9위는 403채, 10위는 341채를 가지고 있다. 판잣집, 비닐집, 움막에 사는 사람이 6만 명에 달하는 세상에서도, 자기만의 불멸성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증식하고 있는 이들이야 말로 이 나라의 암세포는 아닐까.

 

     대학원 시절 어느 날 ‘성토모’라는 동아리가 조직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의 약자 성토모. 모임에서 나눠준 팜플랫에는 토지 공개념에 기초한 각종 경제정책들에 관한 내용들, 그리고 그에 관한 성경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성경에 근거한 토지제도란 구호는 매력적이긴 했지만 과연 비그리스도인들이(그리고 어쩌면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사람들이) 이 운동에 공감을 하게 될까 싶은 생각이 좀 더 앞섰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1984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그 동아리의 생각이 꼭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 이유는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이 책에도 언뜻 고대 이스라엘의, 그러니까 성경의 토지관련 규정의 긍정적 측면이 살짝 실려 있기도 하다.) 결국 성경적 토지정의라는 것도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자유(성경에서 ‘구원’로 표현되는)에 관한 것이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부동산 투기로 번 돈으로 헌금할 생각 대신에, 성경적 관점에서 땅과 사회정의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세상과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토지 공개념에 기초한 국유화라는 저자의 부동산 문제 해법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책에서도 언급된 ‘사유재산 절대주의’가 손댈 수 없는 진리처럼 숭배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런 주장은 충분히 ‘빨갱이’라는 말 같지 않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쉬울 거고. 하지만 결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도로와 편의시설로 인해 얻게 된 부가가치를 소수의 땅부자들만 향유하는 현재의 사태는 결코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부당한 일이다.

     만국의 그리스도인들이여 단결하라. 성경적 토지정의를 회복시키는 일은 그대들의 사명 중 하나이다. 땅에 충만하라(히브리어 원문은 ‘땅을 완성하라’ 의미도 담고 있다)는 그 분의 첫 번째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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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참나무 2008-09-10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동산 계급사회에 대한 감상평 정말 잘 읽었습니다. 노란가방님께서 언급하신 성토모는 지금도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한 번 방문해보시죠... 지금은 성토모를 모체로 발족한 '토지정의 시민연대',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 '토지+자유 연구소'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답니다...

노란가방 2008-09-10 18:17   좋아요 0 | URL
좋은 뜻을 가지신 분들이 널리 연합한다면 꼭 좋은 일이 이루어질겁니다. ^^
 

 

  

지하철을 타고 잘 가지 않던 곳에 가야할 때가 있다.

그냥 한 번에 갈 수 있다면야 다행이지만,

두 세 번 갈아타야 할 경우라면 걷는 것도 일이다.

자칫 갈아타는 위치보다 먼 곳에 일부러 걸어갔다가

다시 고생하며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가능한 적게 걸어서 지하철을 갈아타는 위치.

(어쩌면 이건 나를 위한 글일지도..;;)

이왕이면 딱 맞는 위치에 서서 먼 길을 편하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이런 정보가 잘 나와 있다.

지하철 노선 검색 페이지를 이용하면 목적지까지 가는 최단거리와 소요비용,

그리고 몇 번째 칸의 몇 번째 문에서 타면

최소한으로 걸어서 편하게 갈아탈 수 있는지도 나온다.

 

 

하지만 모든 여행에 그렇게 먼저 인터넷을 검색하기는 어렵다.

가끔은 긴급하게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이럴 때 한 가지 팁이 있다.

 

 

지하철 역 바닥을 보면

선명한 노란색으로 된 타일이 줄지어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타일은 올록볼록한 입체감이 있다.

이름하여 '점자 블록'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물이다.

 

 




 
 

포인트는 바로 이 '점자 블록'을 따라 걷는 것이다.

점자 블록은 아까 말했던 대로,

시각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블록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지하철을 타고내리는데

문제가 없도록 말이다.

 

 

그냥 걷기도 쉽지 않은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거라면

당연히 가능하면 적게 걷고도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므로 처음 가는 길을 갈 때는,

가능하면 점자 블록을 따라서 걷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점자 블록이 '최단거리'를 기준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최단 거리보다 한 칸 내지 두 칸 정도 멀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을 터.

 

 

아마도 비 장애인들이 최단거리를 이용하기 위해

서로 밀치고 뛰어다니는 것을 설계자가 본 듯 하다.

자칫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시각 장애인으로서는 위험하니까

차라리 한 두 칸 옆에서 인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볼 때

점자 블록을 이용하면 편하게 지하철을 갈아탈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혹시라도 내 관찰이 틀린 경우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나한테 직접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는 않기 바란다.

그건 우리나라의 행정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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