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잘 가지 않던 곳에 가야할 때가 있다.

그냥 한 번에 갈 수 있다면야 다행이지만,

두 세 번 갈아타야 할 경우라면 걷는 것도 일이다.

자칫 갈아타는 위치보다 먼 곳에 일부러 걸어갔다가

다시 고생하며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가능한 적게 걸어서 지하철을 갈아타는 위치.

(어쩌면 이건 나를 위한 글일지도..;;)

이왕이면 딱 맞는 위치에 서서 먼 길을 편하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이런 정보가 잘 나와 있다.

지하철 노선 검색 페이지를 이용하면 목적지까지 가는 최단거리와 소요비용,

그리고 몇 번째 칸의 몇 번째 문에서 타면

최소한으로 걸어서 편하게 갈아탈 수 있는지도 나온다.

 

 

하지만 모든 여행에 그렇게 먼저 인터넷을 검색하기는 어렵다.

가끔은 긴급하게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이럴 때 한 가지 팁이 있다.

 

 

지하철 역 바닥을 보면

선명한 노란색으로 된 타일이 줄지어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타일은 올록볼록한 입체감이 있다.

이름하여 '점자 블록'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물이다.

 

 




 
 

포인트는 바로 이 '점자 블록'을 따라 걷는 것이다.

점자 블록은 아까 말했던 대로,

시각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블록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지하철을 타고내리는데

문제가 없도록 말이다.

 

 

그냥 걷기도 쉽지 않은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거라면

당연히 가능하면 적게 걷고도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므로 처음 가는 길을 갈 때는,

가능하면 점자 블록을 따라서 걷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점자 블록이 '최단거리'를 기준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최단 거리보다 한 칸 내지 두 칸 정도 멀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을 터.

 

 

아마도 비 장애인들이 최단거리를 이용하기 위해

서로 밀치고 뛰어다니는 것을 설계자가 본 듯 하다.

자칫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시각 장애인으로서는 위험하니까

차라리 한 두 칸 옆에서 인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볼 때

점자 블록을 이용하면 편하게 지하철을 갈아탈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혹시라도 내 관찰이 틀린 경우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나한테 직접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는 않기 바란다.

그건 우리나라의 행정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손에 쥔 게 너무 많은 사람은,

더이상 다른 것을 쥘 수 없는 법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에 있는 광기를 인식하고
그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은 더 나빠질까? 아니, 사람들은 보다 올바르고 보다 행복해질 것이다.

 

1. 줄거리 。。。。。。。

 

     슬로베니아의 한 수녀원에서 베로니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자살을 하기 위해 수면제 세 통을 한 알, 한 알 삼켰다. 하지만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던지, 정신을 잃은 채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빌레트라는 이름의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의식을 되찾은 베로니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긴 했지만, 의사로부터 희망적인(?) 말을 듣는다. 다량의 수면제 섭취로 인해 심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고, 일주일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소견을 들은 것이다. 어차피 자살을 하려고 했던 차에 잘 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베로니카의 심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살을 시도한 시한부 인생의 베로니카와 그녀를 둘러싼 정신병원 안의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흥미로울 뻔 한 드라마.

 

 

2. 감상평 。。。。。。。

 

     혹시나 하고 읽었으나, 역시나 하는 결론이었다. 이 작가는 그를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게 만들어 준 『연금술사』라는 작품에서 도대체 벗어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연금술사』에 이어 『11분』, 『오 자히르』, 그리고 이 책까지 네 권의 소설을 읽어봤지만, 모든 소설은 한결 같이 인간 내부에서 발산되는 힘과 에너지에 집중해서 그것을 표출하라는, 쉽게 말해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라는 메시지만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정신병원과 광기(狂氣), 자살에 실패한 여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한 이번 작품에서도 이 점은 변함이 없었다. 언뜻 일상적인 삶의 진정한 가치라든지, 사회적 편견을 뛰어 넘는 사랑 이야기 같은 ‘좀 다른’ 주제를 담아 낼 수도 있었겠지만, 파울로 코엘료라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가져다주어도 늘 똑같은 비빔밥만 비벼댄다.

 

 

     무엇이 이 작가의 작품들을 늘 똑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걸까? 아마도 작가가 지나치게 설명을 덧붙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의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작가는 굳이 작품 속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대사를 통해 자신이 직접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그것도 꽤나 구체적으로. 그래서 마치 뉴에이지 영성운동의 지침서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 여기에 작가가 청년기 경험했다는 히피 생활에 대한 동경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보인다.

     문득 작품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코엘료는 사람들이 보다 올바르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느라 사람들 내부에 숨겨두었던 탐욕과 폭력성이 드러나 더 큰 혼란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작가는 사람 내부에 있는 힘이 선한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악한 무엇일수도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엔...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오늘 발견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모양의 구름.


 

나 여기서 구름이랑 논다.. 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사람을 기쁘거나 슬프게 하는 건,

엄밀히 말해 기억이 아니다.

처음 얼마간은 기억 때문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과 감정은 분리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사람을 기쁘거나 슬프게 하는 건,

오직 감정 뿐이다.

감정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낸다.

비극은 더욱 슬프게, 희극은 더욱 기쁘게.

 

결국 사람들은 어떤 '기억'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 만들어 낸 기억'일 뿐이다.

당연히 더 슬퍼지고, 더 기뻐지는 법.


 

이런 의미에서,

기억을 더욱 정확하게 만드는 순간

기억과 감정은 분리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억이란,

'감정이 만들어 낸 가짜 기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