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강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두 눈을 뜨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게 직접적으로 자신과 연관이 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도 금방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충분히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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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오이도까지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간 곳은 소래 포구.
 
 



아쉽게도 물은 다 빠져있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어쩌면 저 배들은 데코레이션일이도 모른다고 한다..;;


 



포구까지 왔으니 회를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시장을 돌기를 세 바퀴....;;;


 



마침내 팔뚝만큼 굵은 농어 두 마리를 잡았다. ㅎㅎ

 


시장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경고문. 

인간과 동물의 본질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철학적 질문이 담겨 있다.;;


 




말리기 위해 여기 저기 널어 놓은 생선들.

어렸을 때 시골(군산)에 가면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라 괜한 향수가 느껴진다.


 



완전 배가 부른 상태였음에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구입한 통새우 튀김..

너무 맛있다.... ㅠㅠ

 


 

그다지 많은 준비 없이 당일로 다녀왔지만

재미있게 보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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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지식하우스에서 나온 세 권의 책.

고정관념 Q 시리즈의 유대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리더스가이드에서 트리플 서평 이벤트에 당첨돼서 받았다.

한 번에 세 권의 책을 읽고 그걸 하나의 서평으로 담아 낸다는....;;

 


이 책은 성경을 주제로 한 책.

리더스 가이드에서 마일리지 4000원이나 주고 받았다.

정가는 20,000원!! ㅎㅎ


 

한 번에 네 권의 책을 받으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과연... 살이 빠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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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정당한가 고정관념 Q 13
오드 시뇰 지음, 정재곤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의 운명은 외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을 비롯한 구대륙의 열강들과, 유럽과 미국에 근거를 둔 시오니즘 단체들,

그리고 양극체제를 이끌었던 두 강대국은 번갈아가며, 혹은 동시적으로

이 지역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고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1. 줄거리 。。。。。。。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정당한가’라는 도전적인 부제목이 달려 있는 책이지만, 책의 내용은 꼭 팔레스타인 독립에만 맞춰놓은 책은 아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특정 지역과 특정 사람들에 관한 다방면의 ‘고정관념’을(이 책은 ‘고정관념 Q'라는 시리즈물로 나왔다) ‘역사’와 ‘사회 ․ 일상생활’, ‘정치 분야’의 세 가지 큰 항목으로 나눠서 다루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항상 테러를 통해 투쟁했다’나 ‘아라파트는 평화를 원치 않았다’와 같은 약간은 어이없는 ‘고정관념’(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있다는 말인가) 항목도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랍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피난민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을 이끌고 싶어한다’와 같이 미처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주는 제법 수준 있는 항목들도 있다.


 

 
 

 

2. 감상평 。。。。。。。   

          

     팔레스타인은 너무나 먼 땅이다. 한국 교민이 몇 명이나 그 땅에 살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지간해서는 우리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기독교인의 경우는 비기독교인에 비해 성경을 통해 얻은 지리적, 역사적 정보가 조금 더 있기는 할 테지만, 그나마 2,000년 전의 사정이고 근대사에 이르면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보통 사람들은 이란과 이라크,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치를 정확히 가리키는 것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

     땅이 넓은 것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자원이 매장되어 있지도 않다. 주산업은 농업이고, 국토의 대부분은 사막이나 광야라고 불리는 척박한 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 지역에 관한 책까지 나오는 이유는, 역시나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 ‘분쟁’ 때문이다. 비단 ‘아마겟돈’ 이야기의 배경인 ‘므깃도 평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도, 세계 3차대전의 유력한 후보지들 중 한 곳인 팔레스타인.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아주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져 오는 짧은 뉴스 영상이 대부분.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군이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는 장면을 보면서, 뭔가 문제가 있나보다 하는 식이다.

 

     팔레스타인을 다룬 이 책은 그 지방에 관해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제작되었다. 때문에 매우 기초적인 오해들부터 바로잡아 주고 있으며, 텔레비전이 비춰주는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나름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세련된 이미지와 팔레스타인의 원시적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선과 악의 구도나 문명의 수호자와 야만적 공격자라는 그림을 떠오르게 하지만, 어느 정도는 조작된 것이 사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어떻게든 이겨보겠다는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군 측의 선심성 공약들은 한 개의 땅에 두 개의 민족의 국가를 보장해주겠다는 모순된 약속이었고, 비단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분쟁을 일으키는 데 소위 선진국들의 이기적 정책결정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국제 관계에 있어서 결코 ‘선의나 공정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참 슬픈 현실이다.
 

     어떻게든 땅을 차지하고 국가를 유지하려는 이스라엘과, 역시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 선과 악이나 흑백논리로 문제를 접근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책의 상당부분이 이런 흑백논리를 수정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국가나 국민이라는 집단체가 단 하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순진한 견해야말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이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정작 일상생활로, 특히 서민들의 생활로 들어가면 서로 협력하며 지내다가도 국가 차원으로 빠져 나오면 대결양상으로만 치닫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관한 초보자용 개설서로 보면 훌륭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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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지 - 3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폭력을 먼저 시작하는 측은

타인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인간으로서 승인하지 않는 억압자들이지,

억압과 착취와 차별을 당하는 피억압자들이 아니다.

불만을 먼저 터뜨리는 쪽은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만을 사랑하느라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1. 줄거리 。。。。。。。

 

     교육학 관련 책인 줄 알고 꺼내든 책이다. 남미에서 태어난 저자는, 유럽의 침략 이래도 오늘날까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억압적 사회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을 다룬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이론서’나 ‘혁명지침서’라는 느낌이 좀 더 강하다. 

     저자가 교육의 타깃으로 삼은 사람들은 주로 ‘무식한 농민’이나 ‘근시안적인 노동자’들이다. 그들을 그렇게 부르고 무시하는 ‘억압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당한 이유 없이 그저 빼앗기고, 모든 기회를 봉쇄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저자의 관심대상이다. 저자에 따르면, 억압자들은 교육을 통해 그러한 사회구조를 ‘자연스럽고’,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바른 교육’, 즉, ‘억압자를 위한 교육’(이 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다)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교육의 형식은 ‘은행저금식 교육’이 아니라 ‘대화식 교육’이다. 피교육자를 단순히 입금되는 돈을 저금해 두는 통장으로만 여기고 계속 교사가 기억해야 할 내용을 쏟아 넣는 방식의 교육으로는 사회비판적, 사회변혁적 시각을 갖기 어렵고, 반대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내용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대화식 교육’이라는 생각이 또 하나의 핵심주장을 이루고 있다.

 


2. 감상평 。。。。。。。

 

     확실히 남미 쪽 상황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책이다. 하지만 꼭 남미에만 국한된 상황을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다. 비록 그 형태나 겉모습은 약간 다를 수 있겠지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꽤나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자유와 평등이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근본적 신념이긴 하지만, 경제적 ․ 사회적 불평등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힘 있고 가진 이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어이없게도 소수의 가진 자들을 위한 구조는 상당히 많은 못 가진 자들에게 지지되고 있다. 이 책의 첫 판이 나온 지 벌써 수 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책의 유용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착잡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교육의 목표’에는 상당부분 공감한다. 현실과 유리된 교육은 결국 죽은 교육일 수밖에 없고, 그런 교육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도무지 도움이 안 되는, 다시 말해 모순된 구조를 강화시키는 교육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영어를 많이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화식 교육’이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는 상황인가 하는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교육이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교사의 수급, 교육 환경의 구성, 예산 문제 등) 당장 프레이리 식의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남는다.

     또, 이럴 경우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인 ‘혁명’을 통한 해결방식에는 필연적으로 폭력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우려가 든다.(저자의 생각에도 언뜻 이런 생각이 묻어 나온다) 결국 폭력을 통해 또 다른 질서를 세우겠다면, 그 질서의 정당성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문제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에의 어려움이라는 말이다. 체 게바라의 투쟁이 아무리 아름다운 목표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부군을 죽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에 속한 사람들이 억압자들과 동일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또, 혁명세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피델 카스트로나 스탈린 식의 권력독점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프레이리가 꿈꾸는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일 지 나로서는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무지를 ‘게으름’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 그러한 문제들은 비단 개인적인 요인들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단결되지 못한 노동자는 언제나 고용주들의 만만한 상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느슨한 농민들의 연합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강하게 결합해 있는 거대 재벌들과 정치인들을 이길 수 없다.

     물론 이런 문제를 지적한 것이 프레이리 한 명 만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의 독특한 점이라면 ‘교육’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좌파 빨갱이니 극우 꼴통이니 하는 식의 극단적인 이념적 분쟁만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정작 중요한 ‘인간’이 소외당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인간보다 이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누가 심어 놓은 것인가!

 

 

     내가 속한 기독교적 전통의 입장에서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은 ‘혁명적 상황에서의 폭력의 정당화’라든지, ‘궁극적인 사회 구원의 동력으로서의 인간’ 등의 주제가 그런 예이다. 하지만 저자도 책에서 말했듯이(“나는 그리스도교도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나와 의견을 달리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것으로 확신한다.”) 진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불의를 그냥 두고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저자의 이력에도 어느 정도 드러나듯(WCC에서 일했다고 한다. WCC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약어), 현실에 대한 진단에 기독교적 용어들이 몇몇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특히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주제어로 설명하는 부분(“불만을 먼저 터뜨리는 쪽은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만을 사랑하느라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은, 마치 ‘자기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주제를 설명하던 아우구스티누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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