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가 이렇게 멋있는건,

자신이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천천히 그 '때'에 순응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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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사이좋은 세상'에서 도토리 후원 시작.
 

(도토리 나무에 내 이름도 보인다. ㅋ)

 

여기 저기서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아예 정기후원을 시작해 볼까 생각중이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다 함께 도우면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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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함이란

약한 이들에게는 강하게,

강한 이들에게는 약하게 대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상대에 따라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며,

그 때의 기준은 오직 자신의 이익일 때,

우리는 그를 비열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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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왜건, 인생을 달리다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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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았다.

믿는 것과 꿈꾸는 것은, 미래가 있는 사람만의 특권이다.

믿었던 것에 배신당하거나, 꿈이 산산조각 나거나 하는 것도,

미래를 차단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틀림없이 행복인 것이다.

 

1. 요약 。。。。。。。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하고 만 가장(家長) 가즈오. 하지만 가족으로부터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따위는 기대할 처지가 못 된다. 아내는 바람이 나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지고, 아들은 친구들로부터의 따돌림으로 히키코모리가 되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제 죽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그 때, 한 대의 오디세이 왜건(일본에서 출시된 차의 이름)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을 태우고 그들의 인생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순간을 다시 체험하게 해 주는 오디세이 왜건. 가즈오는 왜건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젊었을 때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와 함께 삐뚤어진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애를 쓴다.

 

 

 

2. 감상평 。。。。。。。

 

     사람들은 살면서 수많은 후회를 하곤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즈오는 썩 괜찮은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미세한 균열이 오래 전부터 생기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때 조금 더 아내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그 때 아들과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하는 후회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수없이 하는 그런 종류의 후회들이다.

     자연히 ‘가즈오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다. 현실에서는 그런 식의 ‘다시 사는 것’이 허락되지 않기에, 독자들은 가즈오를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기대한다. 다시 사는 삶에서 그는 아내를 용서하고, 아들을 이해하고, 아버지와 화해를 한다. 참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만, 후회 속에서만 했던 일들을 저자는 소설이라는 문학적 도구를 통해 실현시킨다. 문학의 멋진 힘이다.


 

     주인공은 일의 결과를 알고 있기에 현재의 삶을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이 점은 아들과의 첫 드라이브에서 사고를 당해 죽고 만 아버지의 영혼이 남아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을 태우고 그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기점이 되는 순간을 다시 체험하도록 해 준다는 불교적 설정을 희석시켜준다. 책 속에 드러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끊임없이 돌고 도는 윤회관도, 죽으면 끝이라는 유물론적 허무주의도 아닌, 직선적 시간관을 살아간다. 시간과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역시나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시간관에서야 가능한 법이다.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중요한 기점들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켰음에도 결국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아.. 물론 아주 작은 변화는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한 한 두 번의 행동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쌓여 나가는 일상적인 작은 경험들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좀 더 관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특히 쉽게 소홀해지기 쉬운 가족에게 좀 더 애정을 담아 행동하자.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해체화 과정이 일본에 못지않게 빨라지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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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진리
낸시 피어시 지음, 홍병룡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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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사실은, 우리가 인간의 사고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인간적 사고체계의 산물,

곧 프란시스 베이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는 점이다.

 

1. 요약 。。。。。。。

 

     ‘완전한 진리’라는 책의 제목이 썩 잘 지어진 것 같지 않다. 어떻게 보면 저자가 잘난 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드니 말이다. 도대체 누가 자신의 책을 ‘완전한’ 무엇으로 부를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의 영어 제목인 ‘Total Truth’는 ‘완전한 진리’보다는 ‘총체적 진리’로 번역하는 것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의역을 해 보자면 ‘진정으로 일관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길’ 정도가 좋지 않을까.(물론 이러면 제목이 너무 늘어지는 감이 있겠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총체적인 진리’를 제시하기 위해 쓰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총체적이지 못한, 일관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식을 전제한다. 이런 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은 책의 2부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의 원인을 계몽주의시대 이래로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의 기준은 인간 이성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진화론’을 예로 든다. 진화론에 따르면 모든 것은 물질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그 물질들이 발전하고 있는 중간단계일 뿐이다. 모든 것은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탐구되어야 하며, 인간의 정신, 감정, 영혼과 같은 것들은 착각일 뿐이고 완전히 화학적 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진화론적 전제는 우리의 ‘경험’과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인간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진화론적 전제에 따르면 모든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뇌의 특정한 부분에 특정한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서 생기는 작용일 뿐이라면, 왜 어떤 사람은 전혀 사랑을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을 느끼는가. 왜 어떤 사람은 바나나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싫어하는가. 매우 간단한 이런 질문들에 진화론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진화론의 사회학적 적용으로 넘어가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진화론적 사회학자들은 ‘도덕’이나 ‘윤리’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일련의 견해 정도로 설명해버렸다.(사회계약론은 이런 견해를 거의 정설로 만들어버렸다.) 절대적인 인간 행동의 기준 따위는 한심한 소리로 치부되고 만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미국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설문조사를 통해 얻어낸 결과는 이런 견해의 위험스런 결론을 잘 보여준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어내라고 했는데, 결과를 종합해 본 결과 나온 것은 마약, 술, 섹스(그들이 특별히 불량한 학생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였다. 이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서 도덕을 ‘결정’하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사실 이러한 도덕적 붕괴현상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드물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진화론에 충실한 삶을 산 결과는, 전혀 윤리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학생이 윤리학자들의 주장을 잘 외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A+ 학점을 받는 것으로 드러나고 만다. 

     여전히 사람들은 ‘도덕’을 필요로 하고, ‘윤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화론적 전제와는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 ‘사실과 가치의 영역의 분리’였다. 소위 사실의 영역은 여전히 진화론적 전제가 작용하는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탐구가 되지만, 가치의 영역은 그와는 조금 다른 세계로 종교나 윤리의 세계이다. 결국 사회의 와해를 막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전제와는 다른 일종의 ‘도약’을 감행해야만 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만이 ‘일관된 삶’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창조-타락-구속으로 이어지는 기독교 세계관의 전제들은 이 세상에 대한 일관된 그림을 제시해 주며, 사실과 가치를 분리하는 ‘신앙적 도약’을 감행할 필요가 없는 좋은 길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1부에서 저자는 현 상황을 분석하며, 세계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이력을 소개한 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다윈주의(Darwinism)로 대변되는 ‘이성중시의 세계관’이 얼마나 널리 퍼져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이 어떻게 자체적인 모순에 빠져있는지를 밝힌다. 3부에는 이런 현실에 교회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이유가 미국교회의 예를 통해 설명된다. 4부에는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고 이전에 설명된 내용을 종합하며 마무리를 하고 있다.

 

 

2. 감상평 。。。。。。。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요즈음, 아마도 이 책이 올해 읽은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한’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저자의 스승인 프랜시스 쉐퍼 식의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설명과 폭넓은 교제를 통한 많은 분야들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 그리고 많은 강연과 상담들을 통해 얻어진 사실적인 경험들은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주요 요인이다.

     저자는 미국인이지만 도예베르트(H. Dooyeweerd)나 카이퍼(A. Kuyper) 등으로 이어지는 네덜란드 개혁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독교 세계관이 그 쪽에서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 스승인 프랜시스 쉐퍼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최근 몇 년간 제법 많은 세계관 관련 책들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실천적인 부분이 강한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책에 실려 있는 많은 논지들은 당장 꺼내 사용해도 될 만큼 시의성이 강하다.(변증적 성격이 강한 쉐퍼의 제자답다.) 뿐만 아니라 서양철학 전반에 걸친 깊은 연구는 저자의 논의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저자는 소위 ‘무조건 믿어라’는 식의 강요를 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이 정말인지 한 번 이야기해보자’는 초대가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신앙과 실제 삶의 영역에서의 분리로 인해 고민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특히 학생들),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거의 1,0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미주나 생각해볼 질문들을 제외하면 본문은 약 700페이지로 줄어든다.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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