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베틀 경문수학산책 18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이상원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신이 수학자였는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신이 우주라는 천을 짜 내려갈 때 수학이 그 베틀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고 믿는다.

 

. 요약 。。。。。。。                       

 

     이 책이 꽂혀 있던 서가는 ‘수학’과 관련된 책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 당연히 이 책 역시 수학책이다. 물론 수학책이라고 해서, 교육과정표에 맞게 각종 공식들을 소개하고, 문제들을 실어 놓은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조명해보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굳이 수학서적에 ‘신의 베틀’이라는 이상야릇한 이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때문에 처음에는 책의 제목을 잘못 이해했었다. ‘신의 베틀’을 ‘신의 배틀(battle)’로 이해했던 것. 이름만 들으면 무슨 SF 소설인가 싶지만, ‘배틀(battle)’이 아닌 ‘베틀(loom)’이다. 베틀은 직물을 짜는 기계를 말하는데, 저자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이 세상을 수학이라는 베틀을 사용해 짜 내려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이 책의 당초 목적은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교한 수학적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제목부터 상당히 문학적이더니, 내용의 전개방식에서도 그런 티를 내기 위해 애를 쓴 면면이 보인다. 책의 내용은 단순히 이런저런 내용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독자와 동일시된다. 마치 체험놀이기구를 타는 사람처럼, 독자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조수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고가면서 사람들이 수학적 진술과 그들의 종교적 심상을 어떻게 연결시켜왔는지를 살피게 된다.

 

 

. 감상평 。。。。。。。                    

 

     나름대로 애를 쓴 책으로 보인다. 흔히 서로 대결구도를 가진 것처럼 생각되는 수학적 사고와 종교적 사고가 역사적으로는 오랫동안 서로 연결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숫자들과 기호들, 공식들을 일일이 의미 있는 숫자로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그러기에는 종종 나 같은 비전공자들이 읽기에 지나치게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실제로 이 세상에 나타나는 각종 정교한 수학적 원리들은, 그 모든 것이 단지 우연히 된 것이라는 설명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지 않는가. 또, 소위 과학적 사고의 핵심 중 하나인 ‘보편타당성’이나 ‘필연성’과, 진화에 있어서의 핵심 원리인 ‘우연’은 도무지 어울릴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야심찬 의도에도 불구하고, ‘수학사 전반에 걸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으려고 하는 약간은 인위적인 노력’ 때문에 책의 중반에 들어가서는 약간 긴장도가 떨어진다. 종종 그 근원이나 원리가 의심스러운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에 불과한 주장들을 대단히 중요한 무엇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게다가 특별히 성경과 관련된 여러 세부설명에 사실과는 좀 다른 내용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나 사상들에 대한 설명에서도 같은 식의 오류들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든다.(여러 가지로 책에는 마이너스적 요소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신’은 기독교적인 신은 아니다. 그저 이 세상을 계획적으로 창조했을 것으로 가정되는 가상의 어떤 존재나 힘, 의지에 대한 설명으로 보일 뿐이다. 잘 해봐야 이신론(理神論, Deism)적 신의 개념이라고 할까? 하지만 수학과 신이라는 개념을 연결시키고자 했던 저자의 시도 자체는 꽤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결론이 좀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것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순진한 착각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그들을 얼마나 추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있다.





 

. 줄거리 。。。。。。。                    

 

     당연히 모든 언론들은 일제히 그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방송사와 제작자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만으로는 더는 충분치 못한 순간이 왔고, 그들에겐 고통의 쇼가 필요’하다는 책의 첫 문구처럼,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허약해지고 쓸모없게 된 사람들을 골라내 죽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채찍질을 당하며 필요없는 공사에 동원되는데도, 사람들은 비난을 할 뿐 여전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 중 한 명인 파노니크(CKZ 114)는 이런 반인륜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빼어난 외모와 함께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납치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선발된 ‘카포’들 중 하나인 즈데나 또한 그런 그녀에게 매료되면서,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 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파노미크는 수용소를 나올 수 있을까? ‘집단 수용소’라는 프로그램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 감상평 。。。。。。。                    

 

     하지만 저자의 문제 제기는 단지 그런 비윤리적이며 시청률지상주의에 빠져있는 방송 제작자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사태가 이지경이 된 더 큰 원인으로 시청자들, 대중들을 꼽는 듯하다. “이런 파렴치한 방송을 보는 이상, 시청자들이 이 방송을 만들어냈다고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파노니크의 말은 이를 잘 대변한다. 사람들은 한없이 ‘집단수용소’를 비난하지만, 동시에 너나 할 것 없이 그 프로그램의 열렬한 시청자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리모컨으로 다음에 죽게 될 사람들을 투표하기까지 한다! 그것이 스토리상의 죽음이 아니라 실제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울러 위의 두 가지에 대한 고발은 자연스럽게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부작용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먹고 사는 언론, 비평가들, 정치인들 모두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저자는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물론 저자는 비난만으로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통해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묻고 있다. 거추장스럽게 꾸미는 것들이 모두 제거된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자는 그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 가장스러운 프로그램을 중지시킨 것은 협박과 위협이었고, 그 목적은 단지 한 개인에 대한 사랑이었다. 물론 파노미크의 작은 투쟁이 수용소 내에서 잔잔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이일을 어찌할꼬?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질 수 있다. 하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로 시작하는 자전적 소설류(‘사랑의 파괴’, ‘배고픔의 자서전’, ‘공격’ 등)와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시작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고발이 담긴 작품들(‘적의 화장법’, ‘오후 네 시’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후자 쪽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한동안 저자의 자전적 소설들만 읽으며 보냈었는데, 오랜만에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말 그대로 깨끗한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다. ‘수국꽃 정사’의 묘사력이나, ‘나락’에 나오는 사회적 음모에 대한 비판, ‘죽음비용’에 나타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찰, ‘히나마츠리’의 감동, ‘장미도둑’의 동심어린 서술... 어느 것 하나 버릴 데가 없을 것 같은 책이다.

        일본 작가가 쓴 책을 몇 권 읽어보기는 했지만, 이 책만큼 감동을 주는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보다는 덜 냉정하고, 베르나르보다는 문학성이 더 강한 느낌이다.



        단편소설들의 모음집인 이 책은, 각 이야기마다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작품들이었다. ‘나락’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유능한 인재를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조롱했는지,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남을 밟고 올라가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으며, ‘죽음비용’을 통해서는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값으로 얼마가 적당할까 하는 생각꺼리를 제공하면서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어떤 죽음일까.


        역시 소설에는 문학성이 들어가야 하는가 보다. 그동안 많이 읽었던 역사소설류에서는 잘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이 진하게 배어들어왔다. 좋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나토노트 1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다. 제목인 『타나토노트』는 '죽음'과 '여행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를 합쳐서 만든 조어.




     이 소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그리고 있다. 일종의 독약을 통해 죽음에 이르게 만든 뒤, 전기충격으로 깨어나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임사체험을 시키고,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후세계의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는.. 말만 보자면 허황되기 그지 없는 내용이지만, 베르나르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고 여러가지 철학적인 질문들을 소설 안에서 던지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저자는 여러가지를 소설 안에서 말하고 싶어한다.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구분, 이와 연관되어 천국과 지옥에 대한 사색, 인과응보, 숙명론, 영생과 같은 기독교적인 주제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이는 저자가 무신론자, 적어도 기독교적인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서양에서 태어났기에, 기독교적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베르나르에게서 나타나는 위의 주제들은 온통 뒤죽박죽인 채,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 이성의 가치를 매우 높게 보고 있기에, 이성에 따라 합리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선을 이룰수 있다는 생각이 엿보이고, 모든 종교는 하나라던가, 종교의 목적은 평화라는 주장까지 보인다.

     근본적으로 하나님, 혹은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배제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그 안에서 던지고 있는 여러 질문들에 명쾌한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언제나 회의주의자와 계몽주의자의 사이에서 왔가갔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점이 내가 베르나르에게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작가 개인으로써의 베르나르의 소설은 상당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
더글라스 에이브람스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많은 남자들이 전투에서는 용감하지만,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 여자들과 맞서는 것은 두려워하죠."

 

 

. 줄거리 。。。。。。。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서양에서는 돈 주앙이라는 인물이 제법 유명하다. 스페인 사람인데, 발음하기에 따라서 돈 후앙, 돈 지오반니 등으로 불리는 바로 그 사람.(모짜르트나 슈트라우스 등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이 책의 주인공인 돈 주앙은 카사노바처럼 엄청난 바람둥이로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개의 옛날이야기가 어느 한 편의 완성된 스토리가 아니라 지방마다 서로 다른 버전들이 있는 것처럼, 돈 주앙 이야기도 서로 다른 일화들이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앞서 소개한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의 곡들이 서로 다른 것처럼)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수집해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재미있게 재구성해 놓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스페인의 세비야. 지금이야 스페인스 수도가 마드리드로 옮겨졌지만, 옛날만 하더라도 큰 항구도시로 유명했던 곳이다. 콜럼부스가 스페인의 여왕에게 자금지원을 받고 배를 띄운 곳이 바로 여기 세비야(세빌리야)다. 돈 주앙은 그 도시에 살면서 많은 여자들과 연애행각을 한다. 세비야에 사는 모든 사람은 그를 알고 있고, 마치 연예인을 훔쳐보기 좋아하는 오늘날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주앙의 행위 하나하나를 보면서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보게 된 아나 아가씨에게 한 눈에 빠져버린 주앙. 그는 어떻게든 아나의 마음을 얻고자 하지만 생각대로 쉽지만은 않다. 또 그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상황은 더욱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과연 주앙은 아나 아가씨의 사랑을 얻어낼 수 있을까? 작가는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자연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된다)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주앙과 한 패가 되도록 만든다. 중세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바람둥이의 순정 이야기가 펼쳐진다.


 


 

. 감상평 。。。。。。。                    

      

      또 책 겉종이에 ‘출간도 되기 전에 세계 유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느니, ‘전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느니 하는 수식어들이 잔뜩 붙어 있는 책이다. 뒤표지에는 각계각층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찬사들이 또한 길게 줄을 서 있다.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하면 책의 가치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런 식의 과대포장 된 책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화려하기만 하고 정작 맛이 없는 과일들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리고 대개 정말로 중요한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지 드러내지 않는다.(대통령이 이동할 때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똑같이 생긴 차 3대가 함께 움직인다고도 하지 않는가.) 아무튼, 이 책에 실려 있는 '무한히 위대한 영도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개들 때문에 일단 마이너스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책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스페인이라는 매우 독특한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책 속에 잘 재현에 놓았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 로마식의 문명 건설이 이루어졌고, 기독교의 로마로의 침투에 발맞추어 기독교화 되었지만,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아래 한 동안 놓이게 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게 되었던 상황. 스페인 사람들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과 태도 등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제대로 보인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작품 안에 제대로 복원해 놓았고, 때문에 독자는 책을 통해 마치 직접 그 시대 그 장소에 가 있는 것처럼 스페인이라는 독특한 나라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배경적 장치들을 넘어서 직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우선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에 그다지 많은 개연성이 보이지 않으며, 저자는 그다지 할 말이 없을 때마다 남녀의 잠자리에 대한 묘사를 하기에 바쁘다.(물론 사람들의 행동이 언제나 논리적 추론의 결과는 아니지만.) 또, 책이 애초부터 ‘잃어버린 일기’라는 이름을 갖는다면(요즘 유행하는 ‘팩션’으로 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책 안에 등장하는 서술을 하는 주인공은 당대의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종종 ‘지나치게 현대적인’ 생각들이 등장하고, 처음의 장치(‘잃어버린 일기’라는)는 책 안에서 그다지 효용이 없어서 그냥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로만 보일 뿐이다.



     스페인이라는 이색적인 배경에, 돈 주앙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뭔가 크게 한 건 터뜨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그에 상당하는 만족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스페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