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전쟁 금언 밀리터리 클래식 2
나폴레옹 지음, 데이비드 챈들러 엮음, 원태재 옮김 / 책세상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아군이 그렇게 하기를 적군이 바라고 있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적이 그것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장르를 뭐라고 구분해야 할까. 군사학? 내 서평들을 분류해 놓은 폴더에는 군사학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으므로(그다지 군사학에 관해 읽은 책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서평은 역사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야만 할 듯싶다. 



        이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이미 다 말하고 있다. 책은 나폴레옹이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전쟁과 관련된 금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총 일흔 여덟 개의 금언들이 실려 있는데, 이 금언들을 편집한 챈들러는 각 금언들과 관련이 있는 실제적인 예나, 금언에 대한 해석을 매 금언마다 붙여 놓고 있다. 

        책의 내용이 전쟁과 관련된 금언이기 때문에 약간은 전문적인 느낌이다. 당연히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와 같은 전쟁과 관련되지 않은 금언들을 실려 있지 않다. 병력의 배치와 이동, 병사들을 다루는 법, 지휘관의 자질 등에 관한 금언들만이 기록되어 있다. 




        책의 초반부에 있는 약간은 지루한 서론만 빼고 본론만 본다면 군인이 아니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진정한 유익은, ‘원리’의 제시부분이다. 비록 총과 칼이 맞부딪히지는 않더라도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쟁이 아닌가. 그런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한데,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을 자신이 처한 상황의 내용들과 적절하게 대응시킬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그 효과를 직접 보여준 그 ‘원리’들을 이용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통일된 지휘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금언은 실제 어떤 일을 할 때, 중구난방 식의 일처리가 아니라 분명한 지휘계통을 세우고, 효과적인 지휘를 함으로써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전공하지 못한 부분의 전문가의 생각을 듣는 것은, 언제나 처럼 꽤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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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 버스로 둘러 싸 놓은 서울 광장.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헌법 제 21조 1항과 2항은 이렇다.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서울에만 온통 몰려 있는 각종 행정기구들을 지방으로 옮기겠다는 정부에게

600년 된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끌어다가 '관습헌법' 위반이라고

위헌이라고 우겨댔던 헌법재판소 사람들은 이런 일에는 못 본 척 어물쩍 넘어간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광장'은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 터'라고 정의되어 있다.

쉽게 말해 광장이란 사람들이 모이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우리나라의 '광장'은

사람들 못들어가게 잔디나 심어 놓고 평소에는 줄을 둘러 놓더니,

모일라 치면 경찰들로 막아버리는 곳이다.

국어사전의 '광장'이라는 항목을 어서 빨리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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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제 방에 있는 허브 이름입니다.

언제부턴가 제방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좀처럼 자리를 비워주지 않고 있는 녀석이죠.. ^^;;
 

 

이 녀석이 처음 제 방에 들어온 것이... 
 
언제더라... 한 1년 가까이 되는것 같군요.

어느날 어머니가 갑자기 사 오신 화분 하나.

이제부터 제 방에 두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이 녀석은 제 방에 입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제 손바닥 보다도 작은 화분에 몸을 싣고서,

정말 오래 버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다시 쳐다보게 됩니다.

 


로즈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말에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거 빨리 죽지 않느냐고.. 자기집에 있던 것은 금방 죽더라고..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저희 집에 있는 녀석은 아직까지 살아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시련(?)도 있었죠..

제 성격 탓이 아닌가 한데........

별로 관리를 못했거든요.

모... 자기가 방 한 쪽에 얌전히 앉아있겠다면야..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말 그대로 그냥 놔두었죠..

 


그러던 어느날..

학교를 다녀와서 우연히 창가를 보니까,

그새 녀석이 풀이 죽어있지 뭡니까.

그 작은 화분에 손바닥 길이만한 허브 세 포기가 있었는데,

한 포기가 말라버렸더라구요..

 

갑자기 안쓰러운 느낌이 들어서

서둘러 물을 주고, 물뿌리개로 잎을 적셔 주었죠.

그렇게 하고 햇볓에 놔두니

다음날엔 나머지들은 다시 생생하게 기운을 차리더라구요.

안타깝게도 처음 녀석은 그냥 죽어버렸죠.. ㅜㅜ

 


그렇게 해서 관심을 갖게 된 허브 화분.

요즘은 그래도 화분 겉흙이 마르지 않게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구여.. ^^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손바닥 길이를 훨씬 더 넘어서게 자라버렸습니다.

생각 외로 너무 크게 자라서,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입니다. ^^;;

 

 
모.. 차로 끓어 먹으라는 사람도 있고,

그냥 잘근잘근 씹어먹어도 좋다는 사람도 있고..

얼마전에 본 텔레비젼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로즈마리를 잘라서 고기 요리에 사용하더군요.. ^^
 

 

저두 연구 끝에 얼마 전에 살짝 잎 몇 개를 잘라서 씹어봤습니다.

우선 로즈마리 자체가 향이 엄청 진하거든요..

요즘은 커피들을 다들 자주 마셔서리,

어지간히 진하지 않은 향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로즈마리는 그걸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을만한 강한 향을 가지고 있죠.

그냥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손에 향이 남아있을 정도니..
 

 

그래서 첨엔 잔뜩 기대하고 씹었습니다.

이걸 입에 넣고 씹으면, 입안 가득히 그 향이 넘칠라나..

근데... 그냥 풀 맛이더군요.. ㅡㅡ;;

향은.... 거의 안 납니다. (켁..)
 



그렇게 키워온 로즈마리..

이젠 화분이 작은지 좀 우울해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도 빠뜨리지 않고 주고, 햇볕도 좋은데...

자꾸 풀이 죽어 있는 것이..

흙 속에 양분이 다 된건지..

아님 작은 화분에서 살 수 없을만큼 커진건지..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중입니다.

 


어쩌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빨리 이렇게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영영 기억에서 지워져버릴 것 같아서,

이렇게 급히 글을 쓰고있죠.. ^^

뭔가를 잃어버린다는건,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슬픈일이니까요..
 

 

로즈마리를 볼 때마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은 화분 하나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금방 병이 들어버리고 만다는 것.

그리고 그 병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것은

관심을 가져주는 일부터 시작이라는 것.



 

사람에게도 역시 적용되는 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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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7-11-1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전에 허브 레몬밤을 키운 적이 있는데, 첨에 잘 자라다가 분갈이를 안해주어서 그런지 나중에 말라버렸어요.ㅠ_ㅠ 그 뒤로 식물을 함부로 키우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정말 그게 중요하겠죠.

노란가방 2007-11-12 07:1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도시에 살면서 식물이라는 생명을 키운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로즈마리란 녀석도 원래는 그냥 마당에 심어 놓으면 잡초처럼 잘 자라는 녀석인데 좁은 화분에 가둬두려니 답답해 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거겠죠?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서방세계에 대한 경고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1991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단지 정치적 계산의 낮은 차원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 뿐만 아니라

무엇이 고상한 것이며 무엇이 명예로운 것인가에 대해

서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간있는 서방의 법률학자들이 최근에 개발해 낸 용어는

“법적 현실주의”라는 말인데

그들은 그 말을 어떤 것의 도덕적 평가를 배제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솔제니친이라는 저자의 이름보다는, 손봉호라는 추천자의 이름 때문에 사게 된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솔제니친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이 책은 솔제니친이라는 인물이 미국과 영국에서 했던 연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솔제니친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접하게 된 나로서는, 책 안에 살짝 등장하는 저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 그라는 인물을 재구성 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 러시아에서 반체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추방 된(강제수용소가 아니라 추방된 것은 서방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정치적 인물들을 러시아로서도 함부로 할 수 없었기 때문) 이력 때문인지, 그의 논조는 대단히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을 넘어서) 적대적이다. 

        저자의 학문적인 수준이 결코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거의 책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가 충만한데도, 책의 수준이 떨어져보이지는 않았다. 저자는 특별히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그러면서도 사회에 대한 매우 세련된 분석을 통해 공산주의가 어떤 식으로 서방을 속여 왔으며, 어떻게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비판하고 있다. 


 

        우선 저자의 현실에 대한 분석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날카롭다는 데에서 저자의 관점에 대한 호의적인 의식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항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단호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현실인식에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지 않은가 하는 느낌도 든다. 어느 정도 시대적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포르투갈이 곧 공산화 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는가. 오늘날 미국 공화당의 국제정세 인식이나 우리나라의 한나라당의 수구파들의 현실 인식이 저자와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에 있어서는 매우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서방 세계가 안고 있는 질병의 근본 원인을 영적인 부분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는 탁월했다. 전반적으로 기독교적인 숭고한 가치가 정치의 영역에서도 발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에, 심정적으로 유사성을 느낄 수 있었다. 



        공산주의의 폐해를 피해 서방으로 와서 서방의 세속화를 비롯한 각종 문제를 인식하게 된 저자로서는 조국 러시아가 나아가야 할 길은 서방과 동일한 길이 아니라 영적인 가치를 회복한 새로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저자를 통해, 오늘날 서방식의 현대주의의 문제점의 극복을 위해 무조건적인 공산사회에 대한 동경을 꿈꾸는 또 다른 극단적인 잘못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좋은 반론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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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동생 야고보 유골함의 비밀 - 찬우물 고고학 시리즈 1
허셜 섕크스 외 지음, 이원기 옮김 / 찬우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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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유골함이 발견됨으로써

우리는 과거에 야고보에 관해 알려진 것 대부분을

재검토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어떤 사람이 골동품상으로부터 유골함 하나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그 유골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몰랐던 소장가는, 어느 날 그 유골함을 저자에게 보여준다. 여러 고고학 관련 잡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던 생크스는 그 유골함에 써 있는 글귀를 보고, 유골함이 매우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임을 알아본다. 유골함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동생(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이자,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고, 야고보서의 저자로 알려진 바로 그 야고보의 유골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생크스의 주장이다. 

        과연 그런 명문 하나만을 보고서 그것이 정말 그 당시의 물건인지, 그리고 그 당시에 새겨진 것인지, 또 설사 그것이 진품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를 이르는 것인지 하는 산적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저자는 매우 여러 장에 걸쳐서 그 유골함이 진품이며, 그 당시 요셉이라는 아버지를 두고, 예수라는 형제를 둔 야고보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증을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주장한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은 또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앞서 생크스가 유골함의 진위여부에 대한 글을 썼다면, 둘째 부분을 쓴 벤 위더링턴은 그 야고보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 쓰고 있다. 내용상으로 앞의 것에 2배가 약간 안 되는 분량이었다. 

        위더링턴은 성경과 그 이외의 몇 가지 참고문헌들을 통해 야고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 사실 그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야고보라는 인물이 초기 기독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 그런 그가 왜 오늘날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가 등의 문제를 그리 깊지 않게 써 내려가고 있다. 

        한편의 ‘야고보 전기(轉記)’를 쓰듯이, 야고보의 탄생부터 그의 삶, 죽음까지를 시간의 순서에 맞추어 진행한다. 



        야고보의 유골함이라.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기 위한 참고도서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사실 내가 서 있던 서가에 있을 책이 아닌데, 왜 그 곳에 꽂아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우리 학교 사서들 책 분류 기준은 뭔지..) 

        책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생크스는 이 유골함의 발견을 역사적인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책 제목에 ‘비밀’이라는 매우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의 이 발견의 중요성 때문에 그것을 부인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것을 대비해(사실 일부분 이런 예상은 맞았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그 유골함이 진짜 서기 1세기 경의 것이고, 명문 역시 그 시기에 새겨진 것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지나치게 장황해 보이는 ‘증명과정’은, 단지 나에게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불확정성이 얼마나 많이 개입되는가 하는 점과 인간들이란 다른 사람이 좀 좋은 것을 찾아냈다고 하면 그에 대한 시기심과 의심이 얼마나 놀랄 만큼 잘 발휘되는가 하는 점뿐이었다. 뭔가 발견되었다고 하니까 하나같이 나서서 ‘그건 가짜요.’라고 외치며 이름을 내보려고 하는지. 



        사실 이 유골함의 발견으로 달라지는 것이 있는가? 내가 보기엔 그다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선 생크스가 참고한 통계학적 자료들은, 솔직히 말하면 지나치게 짜 맞춘 듯한 느낌이 든다. 요셉이라는 아버지와 예수라는 형제를 가진 야고보라는 인물이 몇 명이나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정말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고 하더라도, 그 유골함은 그 이상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다. 

        저자들은 그 사실을 통해 야고보가 예수님의 친동생(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낳은)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밝혀줄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믿음’에 관한 문제지, 이런 고고학적 발굴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극단적으로, 야고보가 예수의 친동생이었다라고 쓰인 글이 발견되더라도 그 신빙성을 쉽게 증명하기는 어렵다.) 

        또,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내용인 야고보의 일생에 관해서는 더더욱 알려주는 것이 없음은 분명하다. 책에 나온 것처럼 유골함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가 부유했다거나 하는 주장은 옳지 않고(유골함은 상당히 싼 가격이었다.), 그 유골함이 정확히 어디서 밝혀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의 죽음과 장례에 관련된 어떤 정보를 얻어내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2부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유골함의 발견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추론했다기 보다는, 이런저런 고대의 문서들과 현대의 주석가들의 글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했을 뿐이다. 요컨대 새로운 무엇인가가 나왔다기보다는 이미 알려졌던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대해 비판만 하는 것도 좀 미안한 일이 될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이 발견으로 인해 ‘과거에 야고보에 관해 알려진 것 대부분을 재검토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면,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는데 좀 더 흥미를 갖도록 만든다면,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영향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후반부의 내용들은 비록 유골함으로부터 직접 추론한 것들은 아니라고 하나, 야고보라는 인물에 대해 제법 상세하고 일관된 정리를 하고 있다. 기록된 자료들도 제법 여러 권을 찾아가며 쓴 것처럼 보인다. 야고보라는 인물에 관해 알고 싶으면 책의 후반부를 중심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과대포장된 면만 아니라면 무난한 느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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