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너려던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방금 바뀌어서,

제법 기다려야 했죠..



그런데, 저 쪽 횡단보도에

개(중간 크기 이상이었으니, 강아지는 아닌듯 싶습니다 ㅡㅡ;)두 마리가 건너려고 하는게 보이더라구요.

그 길은 신호가 아직 안바뀌어서

자동차들이 계속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말이죠.



왕복 6차선 도로라 제법 폭이 넓었고,

개 두 마리는 차가 다니지 않는 3차선은 쉽게 건넜지만,

나머지 차가 달리는 3차선은 쉽게 건너지 못했습니다.



하얀색 개, 노란색 개.

둘이 사이좋게 붙어서 가더라구요.

애인, 아니 애견(愛犬)사이(?)인가.. ㅡㅡㆀ



아무튼, 두 마리 개가 차에 치일것만 같았습니다.

다행히 자동차들이 미리 경적을 울려서

두 마리 개들은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고,

사고는 나지 않았습니다.



'횡단보도'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바닥에 흰 색으로 그려진 선 몇 개가 전부고,

그 외 다른 차로와 차이는 전혀 없는, 그냥 땅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곳을 아스팔트로 덮고, 선을 그리고, 신호등을 세우고 하더니,

그 곳은 신호가 없이는 쉽게 건너지 못할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곳에 도로를 만들고, 횡단보도를 그리고, 신호등을 세우고 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생명들의 의견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겠죠.

인간 위주로 규칙을 정해놓고, 그냥 밀고 나가버린겁니다.



어쩌면, 저도

혼자서 멋대로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해놓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 맞춰주기를 강요하며 사는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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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오직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인간들의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줄거리 。。。。。。。                      

 

     세계적인 대 문호(참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톨스토이가 쓴 세 개의 우화를 모은 책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오게 된 한 청년의 눈을 통해 인간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의 욕심과 허영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약사 빠른 형들과는 달리 우직하지만 진실한 삶의 태도를 보이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바보 이반’.


 

2. 감상평 。。。。。。。                    

 

     세 이야기 모두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어렸을 때 ‘세계명작동화집’의 어디에선가 봤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설교나 강연에서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잘 알려졌다는 뜻도 있지만, 그 내용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잘 짜여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세 개의 동화 같은 이야기들의 주제는 공통적으로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작가는 이 철학적인 질문을 참 쉽게 이야기로 풀어낸다. 아마도 ‘탁월함’이라는 단어는 이런 데에 사용하는 것일까.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라는 단어가 익숙해져버린 이 시간 한국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들이다.

     내용은 참 쉽다. 비단 성인들만이 아니라 좀 더 어린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에게도 충분히 읽힐 만한 책이다. 물론 사전 지식에 따라 책을 읽고 깨닫는 정도도 달라지겠지만, 뭐 어떤가. 어린 아이들에게 성인에 해당하는 기대를 하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니까.

     한 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히 생각하면서도 모두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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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그것이 달콤한 그리움일지 쌉쌀한 그리움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리워할 수 있기에 행복할 것이다. ‘졸업’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1. 줄거리 。。。。。。。                      

 

     서로 독립적인 네 개의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학창시절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자살을 하고 난 뒤 십 수 년 만에 찾아 온 그의 딸을 만나게 된 남자(졸업), 어머니의 죽음을 얼마 앞두고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과의 대화를 시작한 또 다른 남자(행진곡), 학생들에게 매우 엄한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역시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아버지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새어머니에게 닫힌 마음을 가지고 수 십 년을 살아온 아들의 이야기(추신)가 깔끔한 필치로 풀어 나온다.

 


2. 감상평 。。。。。。。                    

 

     타이틀인 ‘졸업’은 이 책 전체의 주제를 한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서로 다른 네 개의 이야기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은 한 가지의 주제로 묶인다. 바로 ‘졸업’이다.

     졸업이란 무엇일까? 졸업은 무엇인가를 ‘끝맺음’, ‘완성’을 가리킨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졸업을 하지 못하면 그저 ‘거쳐 간 것’에 불과하다. 졸업과 거쳐 간 것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후자는 학력위조의 주요 유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졸업에는 또한 ‘시작’의 의미도 있다. 한 단계를 잘 마쳤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보다 상위의 것으로 넘어갈 수 없다. 언제까지나 ‘미완성’을 안고 있고,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의 장애물로 작용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졸업’을 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관문에서 그들은 ‘그냥 지나쳐’버렸고,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의 삶에 문제를 일으킨다.(거짓말을 쓰는 작가,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아들, 죽음에 민감한 관심을 가진 제자,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 등) 시간이 흘렀지만, 시간 자체가 그들을 치유해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졸업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문제들을 ‘직면’해야 했으며, 그들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넘어가야만 했다.

 

     한편 주인공들이 그러한 ‘직면’을 하게 된 동기가 ‘죽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키에르케고르 식의 ‘실존에의 직면’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확실히 죽음이란 사람을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올해 초 오랫동안 입원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보는 가족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두 달에 가까운 중환자실의 생활, 그리고 다시 일반병실에서의 몇 개월 동안. 온 팔과 손에 주사 바늘을 찔러대 더 이상 바늘을 꽂을 혈관을 찾기가 어려워 목과 가슴을 통해 직접 혈관을 빼 내야 했던 시술. 두 차례에 걸친 심장 수술과 그 때문에 망가져 버린 신장. 쇼크 상태에 빠져 새벽에 전화를 받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달려갔던 일. 비쩍 마른 아버지의 발을 붙잡고 기도했던 일. 병원에서 로비 의자에서 잤던 밤들까지. 소설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죽음에 가까워진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온 가족이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사람은 죽음과 같은 큰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야 자신의 실존을 보게 되나보다.

 

     지금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 사실은 오해나 억지일 수도 있다는 것, 또, 삶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좀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 등, 바쁜 일상 때문에 흘려보낼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삶을 보는 방식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좋은 책이다. 오랜만에 참 많은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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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 카르타고 3부작 1부
로스 레키 지음, 이창식.정경옥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술에 취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일부러 우리들의 이성을 흐리게 하지 않아도

인생살이는 이미 충분히 어둡고 낯설지 않은가.

 

1. 줄거리 。。。。。。。                      

 

     로마가 아직 지중해 전역을 영역권에 넣기 전, 이제 막 이탈리아 반도를 그들의 세력권 아래로 편입시켰을 즈음, 지중해에서 로마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카르타고였다.

     하지만 이미 첫 번째 전쟁(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장화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발끝에 인접해 있는 시칠리아 섬에 대한 영유권을 빼앗기고 만다. 카르타고 국내의 정세는 평화파와 강경파로 분열이 되고, 이대로는 로마의 패권주의에 카르타고마저 삼켜질 것을 걱정한 하밀카르는 로마에 배상할 패전배상비를 벌기 위한다는 이유로 스페인지방으로 향해 힘을 기른다.

     새로운 카르타고라는 의미의 ‘카르테헤나’를 건설하고 착실히 군비를 증강시키는 하밀카르. 하지만 그는 평생의 소원인 로마파멸을 보지 못한 채 죽고, 이제 그의 소원은 아들인 한니발에게 이어진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힘을 비축한 뒤 마침내 수 십 마리의 코끼리들과 수만의 병사를 이끌고 한 겨울의 알프스를 넘어 로마 본토로 침공을 개시하는 한니발.

     알렉산드로스, 피로스와 더불어 고대 3대 무장으로 꼽히는 한니발의 여정이 회고록의 형식으로 창작되어 나왔다.

 

 

2. 감상평 。。。。。。。                    

 

     한니발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에 관한, 나름대로 생동감을 부여하려고 노력한 소설로 보인다. 고대 로마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이후 로마의 국가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준 인물로서의 한니발은 역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인물임에 틀림없다. 연전연승의 상승장군이자, 그의 적이 당시 한창 발흥하고 있는 로마군대라는 점은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영웅이라는 소재야 말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꺼리가 아닌가.

 

     이 책은 한니발의 ‘회고록’이라는 형태로 쓰였다. 다시 말해 저자의 시각은 철저하게 한니발 중심적이다. 당연히 저자는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을 미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흔히 ‘포에니 전쟁’은 로마법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질서’에 대항하는 ‘야만적인’ 카르타고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는 감이 없지 않은데, 이 책은 적어도 그런 부분에 관한 오해를 제거하는 데 한 가지 목적을 두고 있다. 카르타고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야 말로 야만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적어도 책의 초반 몇 구절은 매우 직접적으로 그런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엉뚱한 데서 깨지고 만다. 소설 안에 되살아난 한니발의 모습은 시종일관 로마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불타 있는 인물이다. 이 복수심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좀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는 그저 아버지로부터 로마에 대한 복수심을 물려받았고, 종종 그 이유를 묻는 주변의 질문에는 ‘무시’로 일관하고 만다. 오히려 이 부분이야말로 한니발의 ‘야만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가.

     이런 무조건적인 증오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저자도 그 점을 눈치 챘는지, 중간에 한니발의 아내가 로마인들에게 능욕을 받는 장면을 삽입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소재 자체는 충분히 흥미를 끌만 하지만, 저자의 서술은 지나치게 현대적이며, 주인공에게 시종일관 맹목성을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서술에 신뢰도나 사실성이 떨어진다.

 

     전쟁에 관한 묘사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으며, 대개는 그저 맞부딪히고,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한니발의 중무장기병대가 적들을 처치했다는 식의 반복만 보인다. 그렇다고 한니발의 전략가적인 면모를 충분히 드러내지도 못하고 있어서, 그는 그저 복수심에 불타서 시종일관 로마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평범한 무장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전쟁과 전후처리에 대한 묘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오직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고대의 보복 방식들’ 뿐이다. 손목과 팔다리를 잘라내고, 코와 귀를 베어내며, 사지를 찢어죽이고 포로를 거세하며 생매장하는 모습들은, 일 년이 멀다하고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인들의 성향에는 잘 맞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영 질색이다.

     고대 이야기에 대한 지나치게 현대적인 이야기. 점수로 치면 10점 만점에서 4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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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화사 세미나리움 총서 3
휘트로 지음, 이종인 옮김 / 영림카디널 / 1998년 9월
평점 :
절판


 현대인들은 주어진 일상을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래야 현대 사회의 복잡한 기능을 제대로, 또 효율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시계가 점심시간을 가리키면 식사를 한다.

 물리적 시간의 객관적 순서와 개인적 경험의 시간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점점 더 개인적 ‘지금’을
 시계와 캘린더에 의해 결정된 시간 일정에 맞추도록 강요당한다.



        와, 멋진 책이다. 제목부터가 나 같은 사람들에겐 매우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시간의 문화사’라.. 

        그동안 많이 읽어왔던 특정시대사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역사책들과는 달리, 역사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는 책이었다. 이정도의 간단한 설명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책을 읽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다른 책 2, 3권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책 하나 읽는데 3주나 걸리다니..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읽은 만큼 남는 것도 상당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인간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져 왔는가를 다루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두루(물론, 저자가 서양인인 만큼, 그의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가 정확한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살피고 있다. 

        가장 주목해서 볼 만한 부분은, 인류의 시간에 대한 관념이 기독교에 이르러서 극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여러 부분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천지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선형론적 역사관이 기독교의 산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지만, 저자는 여기에 오늘날 세속적 역사관이 아무리 기독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아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집어내고 있기도 하다. 또, 영국의 청교도들의 사상이 ‘시간의 균일성’을 사람들에게 확고하게 인식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통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무조건적으로 기독교의 교리에 근거한 역사적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서술의 양상이나, 기독교에 할애하고 있는 지면 등을 고려해 볼 때, 대체적으로 균형적인 서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과연 ‘시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해왔는가에 대해 한 번쯤 깊은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모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려고 했으나, 절판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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