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좌지우지 하려는 ‘제국’으로서의 전략이, 일방적인 식민지 정복에서 더욱 노골적인 식민지 쟁탈전쟁으로, 그리고 경제지배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70년대 이후 발행된 미국의 채권에 허덕이는 남미의 고통스런 목소리는 오래되었으며, 이런 폐해들은 ‘신자유주의 전략’이라는 하나의 화두로 이미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두에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저항과 연구, 조직적인 행동도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운동, 세계사회포럼, 반세계화 시위, 등이 그것입니다.
기존의 문제제기가 제3세계의 피해자와 저항세력들의 목소리였다면, <경제저격수의 고백>은 이러한 미국의 경제지배 전략을 수행해 온 내부자의 목소리입니다.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해서, 경제지배 전략의 매커니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덧붙여, <경제저격수의 고백>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경제지배 전략을 두고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질 수 있는가?”라며 의아해하며, 이는 곧 “믿을 수 없다.”는 의혹을 발생시키기도 하는데요, 존 퍼킨스의 구체적인 행적과 은퇴, 집필을 앞둔 갈등과 고민은 이런 의아함을 씻어줄 것입니다. 경제지배는 소수 음모집단의 ‘007작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합법적이고 세련된 외양을 갖추고 있고, 수많은 전문 인력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받아들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논리를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음모론은 모순적인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할 뿐” 이라는 그의 외침이야 말로 이 책의 진정한 의의가 될 것입니다.
- 존 퍼킨스는 다국적 컨설팅 회사의 직원으로서, 1971년부터 인도네시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그는 토목, 건축, 통계 전문가를 동행하여 해당 국가의 곳곳을 둘러보며, 산업 발전계획을 수립합니다. 컨설팅은 단지 제안에 그치지 않으며, 차관 제공, 업체의 선정까지 이릅니다. 이것이 바로 경제지배의 합법적이고 세련된 외양입니다.
- 문제는 대상 국가들이 대부분 남미, 중동,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라는 점에 있습니다. 대규모 개발에는 노동력을 둘째 치고라도 돈과 기술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컨설팅 회사가 노리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통계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계획안, 초호화 로비, 심지어 정보기관이나 군의 동원은, 컨설팅 회사에 대한 모종의 신뢰관계를 만들기 위해 적절하게 선택적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 대상국가의 지도자들이 이를 수락하는 순간, 차관을 제공할 세계은행을 설득하고, 토목 건축회사들을 소개하는 것도 컨설팅 회사의 몫입니다. 엄청난 금액의 달러화는 굳이 대상국가에게 갈 필요조차 없이, 미국 내 계좌에서 이체될 뿐입니다.
- 대상 국가들이 차관을 바탕으로 설립한 기반 시설들이, 채무를 이행할 수 있는 수익을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컨설팅 회사의 계획에 없습니다. 의아하지만, 채무를 이행할 수 없을 정도의 계획을 고의적으로 세우기도 합니다. 대상 국가가 채무를 이행한다면 응당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로 막대한 이자를 비롯해 대상 국가의 정치와 경제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상 국가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약간의 양보와 더불어 기민하게 대처할 준비도 되어있을테구요. 에콰도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는 산유국으로서, 콜롬비아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알짜배기 운하로서, 컨설팅 회사의 대상 국가가 되었습니다.
- 물론, 이런 고수익의 전략이 아무런 장애 없이 진행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차관을 들여와야 하는데 자국의 자원으로 충분한 돈이 비축되어 있는 국가도 있었고(사우디아라비아), 경제니 통계는 모르지만 컨설팅 회사의 장미빛 계획이 ‘계약의 체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눈치 챈 지도자(에콰도르 하이메 롤도스, 콜롬비아 오마르 토리호스)도 있었으며, 지도자는 부패했으되 국민들과 재야의 지도자들이 이를 간파하고 저항한 경우(이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컨설팅 회사 대신 정보기관이나 군이 동원되었던 것이죠.
- 전략이 실패한 경우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뿐이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대한 부는 로비라는 또 다른 부에 의해서 무너졌고, 콜롬비아의 훌륭한 지도자는 정보기관의 테러에 의해 무기력하게 무너졌지만, 이란의 대중적 봉기,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대한 지지는 아직 미국의 전략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국가들은 우리에게 (외신보도를 맥락 없이 인용하기 좋아하는 언론 덕분에) 소위 ‘테러국가’ 내지 ‘말썽꾸러기’로 알려져있구요.
- 존 퍼킨스는 경제저격수를 통해 각국을 돌아다니며 황폐화되어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콜롬비아의 오마르 토리호스와 같은 소신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과, 911 테러로 드러난 드높아지는 중동 국가들의 저항을 목격하며 책을 집필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양심의 가책을 넘어, 경제지배 전략에 남발된 환수되지 않은 막대한 차관, 미국의 쌍둥이 적자라는 위태한 세계 달러경제에 대한 우려이며, 보복테러와 보복전쟁으로 이어질 악순환 속에서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저항의 목소리입니다.
- 은퇴를 고민하며 그는 부하직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직접 정보기관에 의해 포섭된 자신과는 달리, 그저 컨설팅 회사의 직원으로서 전문적 지식과 능력을 빌려주고 있는 그들, 하지만 분명 경제지배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손과 발이 되어있는 그들을 말입니다. 그는 “음모론이야 말로, 모순적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더불어, 경제발전에 대한 잘못된 이해야 말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가 풍부해진다는 의미에서 경제발전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제3세계 국가들에 전에 없던 기반시설과 산업시설이 개발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를 것입니다. 헐벗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고작 2$를 쥐어주며 하루 12시간씩 노동시키는 당신 기업가들을 경제발전의 주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장과 일하는 아이들, 그리고 당신들이 아이들에게서 빼앗아간 수천 수만달러의 몫이 바로 경제발전이니까요. 이들이 없다면 당신들이 약탈해 간, 소위 ‘합법적 이윤’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제발전의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당신들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