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자료 채집이 공부의 반입니다”  
구본준 기자 이정아 기자
  

창조는 자료에서 나온다. 자료 자체는 과거의 흔적일 뿐이지만, 자료가 쌓이고 엮여 발효가 되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글이 익는다. 수없이 자료를 모으고, 그 속에 담긴 공통의 씨앗을 골라내 새 싹을 틔우는 사람, 자료들을 잇는 생각의 고리를 찾는 사람. 저술가는 그런 사람이다.

민속학자 주강현(51)씨는 그런 점에서 가장 ‘아키비스트(기록관리전문가)’적인 저술가라고 할 수 있다. 주씨는 자신이 관심갖는 분야에 관한 한 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으고 또 모은다. 자료란 쌓이면서 생명력을 갖는 법. 당시에 한번 쓰고 버려지던 것들을 모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때 자료는 진정 자료가 된다. 주씨는 그렇게 자료에서 책을 뽑아내는 저술가다. 그 자신도 스스로 아키비스트란 인식이 강하다.

지난 1995년 전통 미륵사상을 다룬 책 <마을로 간 미륵>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주씨는 그 해 <한겨레>에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란 시리즈를 1년 동안 연재하면서 이름을 알린다. 이듬해 이 시리즈를 묶어 나온 같은 이름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리고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팔리며 판매부수 30만부를 넘겼다. 이후 주씨는 <조기에 대한 명상>(1998) <왼손과 오른손>(2002) <개고기와 문화제국주의>(2002) 등 전통문화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저작들을 이어 펴냈다. 2003, 4년 동안 잠시 책이 뜸하나 싶더니 지난해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를, 올해에는 <독살><두레><관해기1·2·3> 등 무려 5권의 책을 펴내며 예전보다 더 왕성하게 저술활동을 펼지고 있다.

주씨의 이런 왕성한 생산력이 바로 자료에서 나온다. “생각해보세요, 신문에 전면으로 1년을 연재하려면 그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불가능한거죠. 사람들은 제가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로 갑자기 등장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만큼 오래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써왔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최근 다시 활발하게 책을 내는 것 보고 일부에서는 ‘다작’이라고 말하는 것도 언제나 학술분야 책을 쓰고 자료를 모으는 기본작업을 물밑에서 계속 해온 것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주씨의 출세작은 1996년 <우리문화의 수수께끼>지만, 첫 책은 1987년 <민족과 굿>(공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이전에 쓴 책만 10여권으로 학술서와 대중서를 꾸준히 내왔다. 그리고 <우리문화~> 이후로는 거의 해마다 3~4권을 써 저서가 40여권을 넘는다.

실제 주씨의 연구실인 일산 ‘정발학연’은 자료실 수준을 넘어 개인이 만들어낸 도서관에 가깝다. 책 2만여권, 녹음테이프 2000여개, 사진 20만장이 한치의 틈을 용납하지 않고 빼곡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 곳에는 집필용 컴퓨터말고 사진용 컴퓨터가 따로 있다. 혹시 바이러스 때문에 자료가 날아갈 수 있어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고 사진만 보관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제본기. 주씨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보면 당장 필요가 없어도 그 자리에서 출력한다. “나중에 언제 다시 검색해서 찾아보겠습니까. 봐서 쓸만하다 싶으면 그 때 뽑는 게 더 시간을 절약해줍니다.” 이런 출력지들, 각종 다른 자료를 항목별로, 또는 시기별로 모아서 제본한다. 메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어떤 것이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반드시 그 자리에서 종이에 적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에 입력하고, 원본은 따로 메모함에 보관한다.

출장이나 여행길에는 반드시 빈 바인더나 클리어파일을 가지고 간다. 현지에서 거저 구할 수 있는 모든 서류-관광안내서, 교통시간표, 홍보용 전단, 어촌계 서류 따위-를 모조리 집어넣는다. 여기에 여행에서 적은 메모까지 넣어 여행에서 돌아오면 자료철 1권이 새로 생긴다.

올해만 5권…저서 무려 40여권

주씨의 이런 자료정리는 출판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주씨 책을 다뤄본 편집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주씨의 강점은 3가지. 어떤 것을 책으로 써야할지 아는 기획력, 답사와 취재 열정, 그리고 방대한 자료다. 특히 자료에서 사진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책에 들어가는 시각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저술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 사진을 단순하게 책에 집어넣는 컷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진 자체가 중요한 자료라는 점을 인식해서 오래전부터 중시해왔습니다. 민속학의 특성상 그 순간 찍어놓지 않으면 사라지거든요. 이미 제가 찍은 뒤 사라진 것들이 허다합니다.”

주씨는 “자료가 공부의 반”이라고 말한다. 기본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모으는 과정 자체가 연구와 저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며,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일반자료가 진정 자신만의 자료로 변한다는 게 주씨의 지론이다. 또한 자료는 ‘아이디어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 연구하고 쓸 거리가 많다보니 모을 것도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주씨가 모으고 있는 자료에는 80년대 민중집회·연희 등의 자료도 있다. 당시 ‘대동제’ 행사 진행 및 준비자료들, 팸플릿, 심지어 기획회의록 등을 보관중이다. 앞으로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란 생각에 그때부터 모아놓았던 것들이다. 이런 자료의 힘은 주씨 저술의 핵심이자 강점이지만, 반대로 문체나 구성면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료를 풍성하게 다루다보니 내용이 장황해지고 중언부언하는 느낌을 주며, 산만하다는 평도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출판시장에서 주씨의 자리는 확고해보인다. 민속문화란 분야에서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는 글쟁이는 주씨가 유일하다. 이는 주씨 개인에겐 아픔을 겪은 대가이기도 하다. 주씨는 80년대 초반부터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농촌 문화와 해양문화를 취재하고 주민을 인터뷰해 녹음하고 사진을 찍어왔다. 그렇게 10년을 보낸 뒤 저술가로 이름을 알렸고 책으로는 성공했지만, 교수가 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후 주씨는 “교수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각오로 저술활동에 더욱 매달려왔고, 자신이 교수들보다 민속학을 알리는 데 더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바다’ 화두로 세계 항구 답사중

최근 몇년새 주씨는 ‘바다’를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다. 조기라는 물고기 한 마리로 서해안을 조망한 책 <조기에 관한 명상>으로 시작한 바다 연구는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를 거쳐 올해 나온 <관해기>로 기본틀을 갖췄다. ‘바다에 대한 온갖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관해기>는 앞으로 주씨가 연구하고 글 쓸 것들의 단초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주씨가 바다를 자신의 분야로 미리 잡은 것은 오랜 관심에서 나온 것인 동시에 아직 아무도 다루지 않은 ‘블루오션’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즘 주씨가 매달리는 일은 아시아 주요 나라의 항구 답사를 통해 제국주의사와 해양교류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푸념하면서도 주씨는 매달 어김없이 해외 현장을 찾아간다. 조만간 그 결과가 또 다른 책으로 선보일 것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출처: 씨네21)
 
영화라는 게 파괴 행위를 즐겨다루다보니 본의 아니게 TV로 생중계된 9·11 사건은 수백만명에 의해 마치 진짜 재난영화처럼 경험되었다. 그렇다면 9·11을 다룬 영화는 재난영화에 대한 재난영화가 되고 마는 걸까?

올리버 스톤의 새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어떤 의미에서 1974년작 <타워링>의 리메이크라면 <플라이트 93>은 70년대 <에어포트> 시리즈의 재구성된 후편쯤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가 큰 스케일의 영화라면 후자는 좀더 추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둘 다 재난을 극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영화 이후 가장 중요한 미국 역사를 다룬 영화로 선전될 테고 <플라이트 93>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후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서는 첫 영화로 자리잡으려 할 것이다.

오래전 수잔 손택은 “우리는 오로지 영화를 통해서만 자신의 죽음뿐 아니라 도시의 멸망, 인류의 파괴까지도 겪는 판타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썼다. 그뿐 아니라 우린 그걸 즐기기까지 한다! 지난 세기말 극장을 도배한 구식 재난영화들은 도시 전체를 날려버리는 특수효과 범벅으로 그저 얄팍한 인간 호기심에 호소했다. 1998년 <타이타닉> 다음으로 흥행한 세 영화, <아마겟돈> <딥 임팩트> <고질라>는 모두 뉴욕시의 파괴를 담고 있다. 2001년 9월11일, 묘한 우연이겠지만 할리우드는 뉴욕의 파괴에 연루된 듯 느꼈다. 알 카에다가 할리우드를 베낀 것일까? 그 뒤 며칠간 스튜디오와 경영자들은 영화를 거둬들이고 다시 편집하고 취소하는 난리를 펴야 했다.

사회적 책임의식을 지닌 재난영화의 출현

2004년 여름 우리는 책임감을 느끼는 듯한 새로운 종류의 재난영화를 맞게 된다. 구식 재난영화들에서는 자연재앙이 테러리스트였다. 탐욕스럽고 부정직하거나 어리석은 개인의 잘못이 존재하는 한편, 제도는 본질적으로 건강하고 충분히 내재화되어서 자연스럽게, 흔히 제복을 입은 지도자가 혼란을 뚫고 출현하곤 했다. 하지만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의 위기를 이용해 공공연히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며 대통령 선거의 한 부분으로 어설프게 자리잡았다.

몇달 뒤 인형극 <팀 아메리카>가 새로운 사회적 책임의식을 지닌 재난영화를 조롱했지만 2005년 여름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이런 영화들의 첫 흥행이 달성된다. <우주전쟁>은 고의적으로 9·11의 고통을 상기시키며 별 볼일없는 아버지가 영웅적 시민이 된다는 정치적 상징까지 담아낸다. 영화는 처음 경험하게 한다기보다 최근의 사건을 다시 상기시키며 경험케 하려는 의도를 지녔다(최근 <새>의 리메이크였고 조류독감을 다룬 TV영화 처럼 그 여름의 또 다른 재난 쇼였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국가 지도층을 비판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최근 개봉된 <포세이돈>은 구식 재난영화인데 단지 1972년 <포세이돈 어드벤쳐>를 다시 만들어서만 아니라 순수한 오락흥행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관객은 재앙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다. 재앙에서 비롯된 액션과 생존의 서스펜스가 초점이니까. 수백명의 엑스트라는 우리의 오락을 위해 ‘죽어’가지만 아쉬울 건 하나도 없다. 문학적 비평 용어로 말하자면 <포세이돈>은 희극에 속하는데 결혼할 두쌍의 남녀를 배출하며 끝난다. 그렇다고 9·11의 그림자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70년대 초 고전적인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영향의 재난영화들은 대개 최고 공직자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들이 지닌, 고난 속에서 피어나오는 영웅주의를 보여준다. <포세이돈>도 전 뉴욕 시장을 주요 인물로 갖추고 있다.

<플라이트 93>은 구식 재난영화를 닮아서 미국식 삶에 온전히 참여하려면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에어포트>나 <포세이돈>과 달리 재미있지 않고, 그저 의무적으로 봐야 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해외시장에서 영화가 어떻게 반영될지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아마 이 영화를 즐길 관객은 알 카에다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폴 그린그래스의 영화가 상영되기 12일 전, 법정에서 93호 비행기 녹음 테이프가 돌려졌을 때 자카리아스 무사위가 활짝 웃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스펜스를 불안감으로 대체

<플라이트 93>은 왜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보고 싶어할까? 영화는 상업적 제품일까, 아니면 갖춰야 할 지식이거나 일종의 단체 치료에 해당되나? 그린그래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에 힘입어 <플라이트 93>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고 들린다. 하지만 영화는 극적 재구성이다. 존재하는 전화 통화들과 기내 녹음에도 불구하고 비행 도중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장과 조종사들, 퍼스트 클래스 승객 한명, 승무원 한명이 찔려 죽었다는 정도 추측할 수 있으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를 경험하게 된다.

새 재난은 공동체로 경험된다. 실시간의 사용을 통해 <플라이트 93>은 관객의 참여를 의도했다. (최후의 카타르시스가 부재하는) 영화의 줄거리가 쏙 빠진, 이젠 악명이 나버린 예고편처럼 관객은 영화의 액션을 따라했다. 예고편은 <인사이드 맨>을 보려고 앉아 있던 관객의 주목을 “납치해버렸다.” 소문에 의하면 AMC 로이스 링컨 스퀘어 극장에서 충격을 받고 화난 관객이 예고편 상영을 멈추게 하기 위해 단합했다고 한다.

영화의 결말이 뻔하니 <플라이트 93>은 서스펜스를 불안감으로 대체했다. 비행기 자체 장면들보다 연방 항공관리국과 공군사령부 장면이 두배는 더 길다.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했을까? 시달리던 공항 관제탑 요원은 울부짖는다. “군대를 동원하려고 했지만 아무 대답이 없어….” 군대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찾지 못한다(관객은 플로리다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대통령을 상상하겠지). 그린그래스는 승객이 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관객이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긴장감을 이리저리 뒤틀며 재난의 기선을 제압하고 있다. <우주전쟁>이 9·11을 이용해 비난과 호평을 받았듯이 <플라이트 93>이 “너무 일찍” 만들어졌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누가 그렇게 말했을까? 이미 TV에서 두번이나 극화된 이야기가 영화로 너무 일찍 만들어질 수 있을까?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만든 은 극화된 내용 중간중간에 가족들의 인터뷰를 집어넣었고 A&E채널에서 채널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다큐드라마 <플라이트 93>은 600만 시청자를 끌어들였다(영화 <플라이트 93>보다 더 느긋하고 좀더 친밀하게 구성된 TV 다큐드라마 <플라이트 93>은 가정 내 시청을 위해 만들어져 승객과 고통받는 가족들간의 전화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유려한 교외 거주 지역을 주로 보여줬다).

영화 <플라이트 93>만큼 예술적이거나 일관적이지 못하다 하더라도 TV 다큐드라마 <플라이트 93>은 호평을 받았고 보수적인 <내셔널 리뷰>는 찬사를 보냈다. “악당들은 박스 커터를 휘두르고 알라를 외치며 사람들을 죽였지만 미국인들은 선거에 참여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며 이에 대항한다.” 드라마는 그 사실성뿐만 아니라 정치성으로 인해 칭찬받았다.

사실주의에 입각한 암울한 재난엔터테인먼트영화

부시가 2001년 후반과 2002년 내내 93호 비행기를 얼마나 자주 언급했나를 생각하면 <플라이트 93>의 백악관 상영이 아직 없다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영화는 일찌감치 라디오 진행자인 러시 림보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아냈다. 이 토크쇼 스타는 <플라이트 93>을 고무적이라고 칭찬하며 비행기 내에서 보여진 것과 같은 리더십을 강조하고 “테러리스트들을 향한 증오에 가까운 분노가 넘쳤다”고 자신의 영화 시청 경험을 묘사했다. 림보는 화를 내며 자신의 확신을 더욱 굳혔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왜 우리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지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림보가 개봉 전 잘려나간 파블로브식 자막을 본 것이 분명하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였다.) 림보는 여기에 정치적 결론을 더한다. 부시 행정부의 93호 비행기 강조를 염두에 두고 림보는 미친 좌익이나 93호 비행기를 이용해 부시를 질책할 것이라고 대통령을 두둔했다.

이라크 침공 준비가 처음 진행되기 시작한 2002년 봄 이후 줄곧 부시는 93호 비행기 승객의 영웅적 희생을 말했다. “승객은 납치된 비행기가 살인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좀더 숭고한 목적을 이루고자 결심했습니다. 이 경우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기도문을 외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고하고 그들은 비행기를 추락시켰습니다.” 이렇게 93호 비행기는 알라모나 바탄의 전투처럼 영광스러운 패배로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린그래스의 해석은 교조적이지 않다. 음모론보다 관리들의 무능력을 주목하고 납치자들과 승객이 자신들의 신에게 호소하는 것을 보여주며 국가주의적 호소를 피하고 있다. <플라이트 93>은 집단화된 영웅주의를 보여주는데 몇몇 승객이 더 영웅적이었다고 간주하는 가족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심지어 기내 서비스 카트를 밀고 돌진한다는 의미를 암시하고자 부시가 9·11 두달 뒤 슬로건 처럼 처음 사용한 “굴립시다(Let’s roll)”라는 말도 들리지 않는다.

<플라이트 93>은 애국적인 자기 희생이라기보다 궁지에 몰린 승객이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동기로 행동했다고 제안한다. 조종실로 돌진한 것도 비행기를 조정해서 착륙시키기 위해서였다(이렇게 되면 사실상 부시가 묘사한 것처럼 “숭고한 목적을 이루고자 기도문을 외우고 비행기를 추락시킨” 쪽은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이 된다).

(역사가라기보다) 상업영화 감독인 그린그래스는 관객과의 계약에 더 관심이 있다. 영화를 보는 경험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린그래스가 주는 것은 부시가 93호 비행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이다. 조작의 천재였던 앨프리드 히치콕이 <새>에서 보여준 것처럼 시원한 종결의 부재에 음악이 없었다면 관객의 동요를 더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절정에 이르러 <플라이트 93>은 사실주의를 통해 이야기의 암울함을 보여준다. 이 새 재난영화가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무언가를 제공하겠지만 당신은 돈을 내야 그걸 얻을 것이다.
 
글: 짐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빌리지 보이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얼마 전 알라딘 회원 로쟈님의 서재를 통해서 안건모씨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식인들의 어려운 글쓰기와 <좋은 생각>의 나쁜 글쓰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비판' 보다 '통렬한'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구나 비판을 하지만, 그 처럼 통렬하게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죠.

"<작은책> 작업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아나? 철학사상연구회에서 항상 글을 연재하는데, 원고를 받아서 쉽게 고치는 게 제일 어렵다. 엄청 어렵게 쓰니까, 무식한 노동자들도 그냥 술술 읽을 수 있게 애를 쓰는데 힘들다."

"<좋은 생각> 같은 잡지도 있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그 잡지는, 내가 '조선일보하고 비슷하다'고 욕을 할 정도다. 그 책에 따뜻한 글들이 많지만, 거기에는 현실이 없다. 내가 양보하면 세상이 다 따뜻해진다는 게 결론이다. 그렇게 사람 생각을 마비시키는 글이다. 그런 잡지는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많이 나오고 잘 팔린다. 그런데 그 책들은 결론이 없고 현실이 없다. 아빠가 택시기사인데, 아빠가 어렵고 힘들고 고생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왜 힘들고 고생하는지는 안 나온다. 비정규직 엄마가 일하는데, 비정규직이 만들어지는 그 구조가 있지 않나. 그런 건 안 나온다.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행복했다, 그런 내용이다. 저런 책이 널리 퍼지면 안된다고 본다."

-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통해, 그가 그동안 <작은책>과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두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20년간 줄곧 시내버스를 몰아온 한 노동자의 인생과, 내림과 동시에 잊혀져버리던 시내버스 안의 사람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시내버스 회사의 부조리, 또 그것을 바꾸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 그는 아무런 기교 없이도, 유쾌하지 않은 일상을 유쾌하게 써냅니다. 20년간의 소외된 노동도, 막히고 덥고 짜증나는 시내버스 안의 풍경도, 불법과 합법의 폭력이 난무하는 노사 대립의 현장도, 어둡고 외로운 노동자로서의 외침도, 그의 글 안에서 만은 어둡고 칙칙하지 않습니다.

- 그 모든 일상에 저자 안씨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온갖 공장과 노동일을 전전긍긍하다가 시내버스를 만나 비로소 안착했다는 버스 노동자 안건모, 당골 손님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정겹게 인사하는 안건모, 회사의 불법적인 착취와 부당노동행위, 게다가 뒤통수까지 때리는 어용 노동조합 앞에서 "내일부터 월차 적치하세요."라고 던지고 나와버릴 수 있는 안건모, 불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버스일터 모임을 통해 동료들의 목소리를 모으고자 노력하는 안건모. 그런 안씨가 있기 때문에, 일상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 이제는 <작은책>의 편집장이 된 안씨. 그가 더 많은 '안씨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쉽고, 자신있고, 당당한 '안씨들'의 목소리가 더욱 울려퍼지도록, <작은책>을 응원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9-07-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리뷰를 쓴 분들에게 뒤늦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으신 분 같습니다.
저는 지금은 월간 <작은책>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언론 운동, 문화운동으로 바꾼 셈이지요. 노동자들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구경하시고 작은책도 널리 퍼뜨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www.sbook.co.kr
02-323-5391
 
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
오세철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 술자리에 예의 빠지지 않는 정치 얘기.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논쟁이 무르익는 것과 함께 막차 시간이 다가오면, 소소한 일상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옮깁니다. 그리고는, 시간에 맞춰 터덜터덜 집으로 향합니다.

- 이것이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는 국민 일반의 정치 참여는 아닐까요. 정치인의 그것과 국민들의 소소한 일상이 서로 떨어져있지 않을진데, 우리는 늘 이것을 분리합니다. 전자에는 격렬한 논쟁으로, 후자에는 한숨섞인 자조로 대합니다.

- 정치가 청와대나 여의도에만 갇혀있을 때, 우리는 4년 내지 5년에 한번 정치에 참여할 뿐입니다. 물론, 좀 더 적극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의회정치 내에서는 정당을 만들 수 있고, 바깥에서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정부와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의회민주주의 아래에서, 정치가 국민들의 뜻을 올바르게 대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정당이 국민에게 다가오던지, 국민이 정당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술자리 정치 얘기는, 이 두가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공허합니다.

- 과거를 돌아보건데, 두 가지 방법 바깥에 술자리 정치 얘기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중적인 시위가 있었습니다. 가장 대중적이라 꼽히는 60년 419, 87년 610 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419는 대통령을 하야시켰고, 610은 대통령 직선제를 따냈습니다. 결코 무기력하지 않았습니다.

- 술자리 정치 참여와 대중적인 시위를 통한 정치 참여. 전자에 비해 후자는 무기력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인데요, 그것을 비제도적 정치 참여의 한계라고 일반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제도적 정치 참여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비제도적 정치 참여는 일상적이지 못한 것이죠.

- 사회주의 정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합니다. 정당이라는 책임있는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장점과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참여라는 장점을 한번에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죠. 직업적 정치인이 아닌 국민들로 구성되는 정당이 바로 그것입니다.

- 물론, 사회주의 정당이 기본시하는 위와 같은 명제는, 자본주의 정당도 얼마든지 추구하고 있는 목표들입니다. '진성당원제'가 대표적인 경우가 되겠죠. 소수 몇몇이 내는 거액의 후원금이 아니라, 다수 당원이 모은 소액의 당비를 통해 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취지입니다.

- 따라서, 이러한 형식만 가지고 사회주의 정당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내용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포함한 어떤 정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우리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 내용입니다. 이러한 정당의 정치적 목표가 활동 형태를 규정합니다. 이 정당에게 집권은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 사실, 우리에게 '사회주의 정당' 보다 더 익숙한 것은 (그나마 최근의 일이지만) '진보 정당'입니다. 우리는 기존 정당과의 차별성을 '표방'하는 정당들을 뭉뜽그려 진보 정당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기준에 따르자면, 아직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정당은 아직 한국에 없는 셈입니다.

- 물론, 그동안 사회주의 정당을 조직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수한 시도가 있어왔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결실이 없었던 것 뿐이지요. 사회주의 정당의 내용과 형식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그간의 얘기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의 저자인 오세철 교수가 말하려는 바가 그것입니다.

- 오세철 교수는 정년을 5년 남겨두고 그가 오래도록 몸담았던 연세대학교 교정을 떠나왔습니다. '좀 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는 1975년, 32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연세대 교수가 되었지만,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의 유신반대 투쟁을 보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자 故이한열의 죽음을 보면서 직접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 그는 먹고사는 문제의 궁극적 표현이었던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정치 활동의 궁극적 표현인 정당 조직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정치연합, 민중당, 민중회의, 민중정치연합, 정치연대, 노동자의 힘, 사회주의정치연합(준)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가까이 그는 사회주의 정당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은 무게와 더불어 무기력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며, 동시에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단체와 조직의 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처음에 말씀드렸던 사회주의 정당으로서의 형식과 내용은, 그가 강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내용과 형식에 입각해서만 정당을 조직하려는 그의 노력은 오늘도 '사회주의정치연합(준)'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각각의 길을 걸어온 사회주의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조성해, 정당을 조직하기 위한 내용과 형식의 문제를 토론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동시에 한국 사회주의 정치 운동사를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고,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보급하기 위한 (가칭)사회과학대학원을 설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는 지난 20년의 한국 사회주의 운동을 회고하는 그의 문제의식이 담긴 칼럼 모읍입니다. 다소 일관성 없이 난삽한 면이 있지만, 그가 좀 더 체계적이고 일관된 작업으로 미래의 사회주의자들에게 디딤돌을 놓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기자의 자질
(1) 상대를 압도하는 기질과 끈기 (2) 문학과는 다른 언론인으로서의 글쓰기 능력 (3) T자형 능력

- 부족한 부분
(1) 맞춤법: 한번 공부해야..
(2) 독해력: 읽고 정리해서 코멘트 다는 연습이 필요. 코멘트에는 핵심 내용과 자기 생각, 두가지가 들어갈 것.
(3) 글쓰기: 시간 정해서 쓰고, 쓰기 전에 평가요소 숙지하고, 자주 쓰는 수 밖에는.
(4) 시, 단편소설 습작: 이건 읽어야 뭘 쓰지.
(5) 시사문제: 사실을 관점으로
(6) 글 그림 그리기
(7) 작문은 펼치는 힘이다.

- 글쓰기 평가요소
(1) 단문 위주로 쓰는가
(2) 리듬을 타고 있는가
(3) 문단의 길이는 적당한가
(4) 레토릭이 있는가

- 시사문제 정리
1. 이론: 시장주의의 의미와 가치, 다수결 원리의 의미와 가치, 엘리트와 대중의 관계, 법과 윤리의 경제, 사실과 진실
2. 정치: 대통령 중임제와 내각제,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와 전망, 참여정부의 역사적 의미, 대북포용정책의 한계와 성과, 6자 회담의 의미와 한계, 한미동맹의 변화와 전망
3. 경제: 부동산 문제의 실체와 해결방안, 양극화의 원인과 해소방안, 성장과 분배의 관계, 재벌개혁론과 국민경제론, 삼성공화국, 조세정책과 빈부격차, 한국형 복지정책
4. 사회: 뉴라이트 평가와 전망, 국민들의 탈정치화, 출산 아동 노인 문제, 교육 3불 정책, 한류의 전개와 전망,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
5. 언론: 시민저널리즘, 인터넷과 신문, 방송의 공식성과 상업성, 신문법 위헌 논란, 언론과 정치권력, 광고와 언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