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21)



한국전쟁 때 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조금이라도 고향이 가까운 바닷가에 얼기설기 천막들을 치고 머물기 시작했다가 4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천막들이 그대로 판잣집으로 변하면서 동네를 이룬 곳이 인천의 한 바닷가에 있었다. 어깨를 옆으로 돌려야만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처음 그 동네에 들어선 사람은 대부분 길을 잃고 헤매게 마련이었는데, 그 좁은 길 옆에 나 있는 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고 부엌이어서 방문을 열어놓고 사는 한여름에는 온 동네가 한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누구네 집에 밥숟가락이 몇개인지조차 훤히 알고 지냈다.

‘노동과건강연구회’ 해산총회의 눈물

1981년엔가 내 친구 하나가 빈민활동을 한다고 그 동네에 방을 얻어 들어갔는데 이사간 지 일주일이 되도록 그 동네 공중변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집집마다 변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로 자동 세척되는 커다란 공중변소가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곳까지 가는 길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어서 열심히 걷다보면 같은 길을 자꾸 맴돌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친구는 하는 수 없이, 세숫대야에 일을 본 뒤에 물을 붓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은 다음, 작은 수채 구멍을 통해 버리는 방법으로 급한 일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1983년 초, 토요일마다 그곳에 찾아와 주민과 노동자들에게 진료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서울대병원의 한 ‘아리따운’ 간호사가 후배들과 함께 나타났다. 김은희(44)씨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10년도 훨씬 더 넘는 세월 동안 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다루는 모든 현장에서 김은희씨를 볼 수 있었다.

1986년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자전문병원 ‘구로의원’이 설립되었을 때에도, 1988년 노동과건강연구회가 창립되었을 때에도, 15살의 나이 어린 소년 문송면군이 단 두달의 온도계 제조작업으로 수은에 중독되어 뼛속까지 시커멓게 썩어들어 사망했을 때에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황화탄소중독 때문임이 밝혀지기 시작했을 때에도, 회사 정문 앞 아스팔트 도로 위에 산재사망자의 시신이 든 관을 놓고 백수십일이 넘는 농성을 했을 때에도, 그 밖의 유기용제·카드뮴 중독을 비롯한 산재노동자사건의 모든 현장에서, 나는 유가족들을 붙들고 함께 오열하거나 사람들에게 사건의 내용에 대해 호소하거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노동자 건강의 적’인 권력과 자본을 규탄하고 있는 김은희씨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1998년 12월, 김은희씨가 젊음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동과건강연구회’가 더 큰 조직으로 태어나기 위해 10년의 활동을 마감하고 해산총회를 하는 날, 사회를 맡았던 김은희씨는 회의장 바깥 길가에서 대성통곡했다. 총회 전까지는 오히려 “더욱 큰 발전을 위해 해산이 불가피하다”고 사람들을 설득했던 그였지만, 정작 총회 당일에는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총회 장소에 들어왔다가는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 없어 다시 뛰쳐나가기를 되풀이했다. 결국 그날 사회를 진행하지 못했다.

그날 밤 길모퉁이에서 오랜 시간 김은희씨를 달래던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 조태상(32)씨다. 두 사람의 나이 표시가 잘못된 줄 아는 이도 있겠으나 아니다. 남편 조태상씨는 아내 김은희씨보다 정확하게 12살이 젊다. 흔히 말하는 ‘띠동갑’(개띠)이다. 이들 부부는 “우리는 완전히 개판이지요. 뭐…”라고 곧잘 농담을 하곤 한다.

지금 민주노총의 산업안전보건차장으로 일하는 조태상씨는 또다른 의미로 우리나라 운동권의 ‘정통파’이다. 대학에서 관련학과(사회복지학)를 전공했고 노동운동단체가 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찾아가 공개채용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시작했다.

사건의 단초, 송광사의 저녁 예불

초등학교 6학년 때 장티푸스를 심하게 앓으면서 “간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은 뒤, 자라는 동안 그 꿈이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가 결국 간호사가 된 김은희씨나, 고등학교 때 일찍이 한해에 중·고등학생이 500명씩이나 자살해야 하는 이 ‘썩을 놈의 제도권교육’에 문제를 제기하고 노동현장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진학한 조태상씨가 가지는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에 인생을 거는 ‘외곬’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두 사람이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지극히 세속적인 관심을 한번 풀어보자. 솔직히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먼저 눈치챈 주변 인물들 중 한 사람이다. 몇해 전, 여럿이 아랫녘 남도지방으로 노동조합 교육을 간 일이 있었는데, 올라오는 길에 두 사람이 송광사의 저녁 예불을 보고 싶다고 일행에서 빠졌다. 그때는 몰랐으나 몇년 뒤에 나도 송광사의 장엄한 예불을 보고 그 칠흑처럼 깜깜한 길을 걸어내려오는 경험을 해본 뒤 깨달았다. 코앞이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어두움이 고체의 질감으로 주변을 감싼다”는 표현이 실감나는 숲길을 순전히 동물적 감각과 본능에만 의지한 채 걸어내려오는 경험을 하고나서 깨달았다. 김은희와 조태상 두 사람이 손을 마주잡은 채 이 길을 함께 걸어내려갔다면 이것은 분명히 ‘사건’의 단초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을…. 만일 그날 저녁에 내려가지 않고 장엄한 예불을 목도한 뒤에 그 감격을 품고 산사에서 함께 잤다면 그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는 것을…. 하여, 둘이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깜짝 놀랐으나 나는 놀라지 않았다. 두 사람도 최근에 와서야 “그날 이후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한다. 그러니,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몸달아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어서 빨리 송광사의 저녁 예불을 찾아가볼 일이다.

대원칙, 매일 밤 만난다!

그러나 12년의 세월을 뛰어넘어야 하는 사랑이 어찌 쉬웠으랴. 조태상씨가 먼저 김은희씨에게 명확하게 심경을 밝힌 뒤, 두 사람은 “한강 주변을 걸으며 함께 많이 울었다”고 했다. 소설책 몇권은 됨직한 긴 얘기 중에 하나만 소개하자. 조태상씨가 ‘연애’ 당시 지켰던 원칙들 중에는 “매일 밤 김은희와 만난다”는 것이 있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김은희씨였지만 조태상씨는 어떻게 해서든 실제로 김은희씨를 매일 밤 만났다. 그런 지극한 사랑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김은희씨는 지금 ‘서울노인복지센터’의 기획홍보 일을 맡고 있다. 어찌 보면 인생의 대전환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딱히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노인들은 일제 말, 한국전쟁, 근대화 등 우리 역사상 중요한 시기의 모든 고생을 감당한 세대이다. 그들이 일흔살쯤 되었을 때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우리 세대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이고, 그것은 노동자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루 5천명의 노인이 다녀가고 2천명에게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그곳에서 김은희씨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노동자’와 ‘노인’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공통점은 모두 소외된 계층이라는 것이다. 소외된 계층에 대한 두 사람의 관심은 일생 동안 지속될 것이다. 내가 볼 때에는 그것이야말로 12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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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상식

1. 기업 지배구조의 여러 형태: 주주 모델 - 이해관계자 모델, 외부 통제 시스템 - 내부 통제 시스템
2. 위탁경영(본사에서 인력을 파견) > 프랜차이즈(브랜드, 품질관리, 조직운영, 경영방식, 등에 대한 본사통제) > 라이선스(기술이나 브랜드의 일정기간 공여)
3. 산업 진화에 따라 변하는 핵심 성공 요인: (도입기) 혁신성 - (성장기) 규모의 확대 - (성숙기) 원가 관리력 - (쇠퇴기) 철수 전략
4. 다국적 전략(현지화)과 글로벌 전략(표준화)
5. 유럽 축구구단의 사업 다각화: 에이전트, 이벤트, 스포츠 신문과 케이블 티비, 인터넷 홈페이지와 소프트웨어 개발, 스포츠 용품 판매. 스포츠 마케팅(45%) - 중계권료(23%) - 입장료(22%) - 상금(8%)
6. 대한민국 발전 모델, 강소국: 스웨덴(9위, 65%), 아일랜드(11위), 네덜란드(8위), 핀란드(1위, 70%), 스위스, 싱가포르 * 국가경쟁력과 10대기업GDP비중
7. 시장 세분화: 나이, 성별, 교육정도, 가구의 크기, 계급적 구분, 인종, 종교, 수입과 지출, 인성, 태도, 라이프스타일, 성적 취향에 따라 분류

* 단어정리

1. 차등의결권: 의결권에 차이가 있는 주식을 따로이 발매하는 제도. 적대적 M&A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 사용 중이다. 기업의 가치평가를 낮춘다는 단점도 있다.
2. 유술: (1) 유도의 모태가 된 일본의 옛 무술 (2) 유도의 북한어
3. 세션: 밴드의 정식회원은 아니지만, 특정 무대에 함께 참여(입회)하는 것.
4. 오마주[hommage]: 영상예술에서 어떤 작품의 장면을 차용함으로써 그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나타내는 것
5. 시크하다: 세련되고 멋있다
6. 잭팟: 복권이나 도박에서 당첨자가 없어 쌓인 거액의 돈.
7. 느와르: 범죄와 폭력의 세계를 다룬 영화
8. 프리스티지[prestige]: 위신, 위세, 등과 같이 심리적 상징적 가치의 요구 (↔ 퍼블릭 상품)
9. 무어의 법칙: 마이크로칩 기술의 발전속도에 관한 것으로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컴퓨터의 성능은 거의 5년마다 10배, 10년마다 100배씩 개선된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10. 코스프레[Costume Play]: 복장놀이
11. 플래시몹: 이메일이나 휴대폰 연락을 통해 약속장소에 모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황당한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불특정 다수의 군중.
12. 여피족: 젊고(young) 도시화된(urban) 전문직(professional)
13. 보보스: 부르주아 보헤미안
14. 노노스: no logos no design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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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경제학
정해승 지음 / 휴먼비즈니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저자는 소속 회사에서 ‘새로운 놀이공간’을 만드는 태스크포스에 참여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분류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에서도, 크게 연예산업과 스포츠산업을, 마지막 장에는 사회 전반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각 분야의 성공사례들을 소개하거나 트렌드를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고, 말미에 제조업 사례를 덧붙여 일반화하려는 노력이 그다지 깊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기존의 ‘스타 이미지‘ 와는 다른 털털한 매력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이효리의 사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끌어낸다거나, ’문희준 안티 현상’ 을 의도와 결과가 다른 메피스토 패러독스로 일반화하거나,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연예기획사로 성공한 양현석의 사례를 삼성그룹 분화 이후의 CJ그룹의 사례와 묶어내는 방식은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그룹 신화의 ’따로 또 같이‘ 활동방식에서, 확고한 브랜드를 바탕으로 사업의 위험요소를 줄이려는 프랜차이즈 성공 키워드를 끌어내는 정도는 꽤 좋은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려는 취지에는 다소 못미친다는 것이죠.

‘경제학’ 이라기 보다는 ‘경영학’ 에 가깝습니다. <엔터테인먼트 경제학> 보다는, (가칭) <엔터테인먼트 트렌드 읽기> 정도가 더 정확한 제목이 되지 않았을까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아이템과 트렌드를 정리하고자 하는 분들께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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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오철우 기자 

권선희(35)씨는 책 만드는 일엔 빠끔한 출판사 편집기획자다. 아침 9시쯤 서울 동교동 서너평짜리 오피스텔에 출근하는 그는 늘 팩스부터 살피며 일을 시작한다.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에서 온 책 주문을 모아 오전 중에 창고·배본회사에 연락해 책을 서점에 발송하게 한다. “책 주문량을 확인할 때 가장 즐겁고 비로소 내가 출판사 경영자임을 느낀다”고 한다. 다른 동료·직원이 없는 그는 ‘사이’ 출판사의 1인 출판인이다. 그가 곧 출판사다. 출판계의 뚜렷한 현상이 된 ‘1인 출판’ 확산의 명암을 권씨의 사례를 통해 짚어봤다.

30대 중반, 홀로서다

권선희씨는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출판사에서 일한 편집자였다. 한때 수백만권이 팔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편집기획자였던 그가 느닷없이 독립선언을 하고서 외롭고 위태로운 창업의 길에 들어선 건 지난해 가을. “10년차 경력에다 30대 중반 나이에 이르니, 박수칠 때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꼭 성공할 기약은 없더라도, 평생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출판 경영·영업엔 경험이 없는 편집자인 그가 출판사를 차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출판사 창업을 하는 이는 주로 영업부장들이었습니다.(예,넥서스 前사장-고려원 영업부장출신) 전국 서점의 복잡한 유통망과 인맥을 쌓은 영업자가 뛰어난 출판인이었죠. 전국 유통망에 책을 깔고 수금하는 데 능력을 발휘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 중심체제가 된 지금은 ‘책만 제대로 만들면 팔린다’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게 된 셈이죠.” 한국출판아카데미에서 강의하는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의 말이다.

권씨는 어떻게 창업했나.

권씨는 지난해 11월 출판사를 차렸다. 씨앗 자본은 2000만원. 그렇지만 그가 하는 일은 여전히 편집기획이 대부분이다. 외국서적을 번역할 때 필요한 저작권 대행, 표지 디자인, 조판과 편집·교열까지, 그리고 책을 출간한 뒤엔 유통회사 한 곳에 전국 서점 유통을 통째로 맡겼다. 책은 물류창고 회사에 맡기고 권씨가 직접 관리하는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내보내게 한다.

”최근엔 자잘한 영수증 처리 같은 회계 업무도 회계사에 맡기는 1인 출판도 많아요. 전체 흐름을 기획·관리하고,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책 정보들을 얻거나 예비 저자들을 만나 새 책을 구상하는 게 나의 주된 업무죠.“

1인 출판을 지원하는 여러 작은 회사들이 생겨났다. “꽤 규모 있는 출판사들은 홍익대 부근에 많이 몰려 있습니다. 그 주변인 동교동엔 디자인·조판·편집을 대행하는 프리랜서 사무실들이 꽤 늘고 있어요. 이곳을 중심으로 1인 출판 사무실들이 여럿 들어서 공생하고 있죠.”

도전…두려움…

권선희씨는 자유롭다. 젊기에 야무진 열정도 넘쳐난다. 다른 회삿일에 얽매일 일도 없으니 맘 편한 것 같다. 그렇지만 그는 “정체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어떤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할 때, 제목과 표지디자인을 최종 결정할 때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불안감은 막연합니다. 내가 홀로 내린 결정이 맞는지 가장 두렵죠(->해결책은?

사람이 재산이다. 표본 30명=충성도 및 애정있는 독자집단->편집자와 독자가 직통하는 핫라인 개설). 아는 사람들이 사무실을 찾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여러 의견을 묻고 듣고 있지만, 창업 1년이 다 됐는데도 아직 불면증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진 못한 것 같아요.” 얼굴만은 밝다.

그는 아침 9, 10시쯤 출근해 보통 밤 10, 11시쯤 퇴근한다. 토요일은 물론이고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다. 아니. 거의 항상 출근하고 있다.

권씨가 지난 7월 낸 첫번째 작품 <갈리아 전쟁기>는 그에게 작은 희망이었다.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로마 고전에 정통한 고정 독자층이 국내에 이처럼 꽤 있는 줄은 몰랐어요. 많진 않았지만 번역이나 편집에 대해서도 의견을 보내주고 분명한 반응이 일어났어요. 편집기획을 평가하는 고급 독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건 희망입니다.” ‘책의 품질만 높다면 독자는 있다’는 믿음, 거꾸로 ‘이젠 책의 품질이 높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창업의 경험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고 한다. 그는 1인 출판인을 일러 “대형출판사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틈새의 고급 독자를 위해 활동하는 게릴라 편집자”라고 말한다.

성공보다 더 많은 좌절

1인 출판은 앞으로도 더욱 늘 것이라고 대부분 출판인들은 내다봤다. 권씨도 그렇다. “기존 출판사에서 나이 들도록 편집 전문가로 성장할 길은 우리나라에선 현재 없어요. 난처한 처지가 되기 전에 빨리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부분 편집자들이 지닌 생각일 겁니다. 출판사의 낮은 임금도 한몫하고요.” 그는 “10년차 정도 경력을 지닌 주변의 여러 친구들도 1인 출판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그렇지만 1인 출판이 다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권씨도 그게 불안하다. 서적유통 회사는 그 성공과 실패가 확연히 드러나는 현장이다. 서적유통사 송인서적의 윤성기(46) 관리이사는 “책 한 권 내고는 더 내질 못해 좌절하는 1인 출판들도 꽤 많아졌다”며 “1인 출판이 계속 책을 내는 확률은 30%도 되지 않는데 요즘 성공 사례들만 너무 부각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1인 출판인들이 새 책을 들고 유통회사를 찾는 일은 성수기인 여름을 앞둔 봄철에 크게 늘었다가, 가을엔 크게 주춤해진 상태라고 그는 전했다.

권씨는 요즘 “1인 출판의 한계도 분명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사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새 책을 꾸준히 펴내야 하지만 쉽잖은 일이다. 또 꽤 큰 비용이 들어가는 출판 기획은 지금으로선 꿈도 꾸지 못한다. 틈새 시장만을 겨냥해야 한다. 그는 “소수의 고급 독자를 위해 책을 내는 일은 즐겁지만 언제까지 1인 출판에 머물러야 할지 아직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 초에 창업한 1인 출판 에코의서재 대표 조영희씨도 “책을 꾸준히 내어 생존하기 위해선 1인 출판 규모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라며 “여력이 갖춰지는 대로 동업자 또는 직원을 늘릴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60대 편집자가 없는 출판계”

1인 출판을 깊게 바라보면 출판계의 시각은 다소 엇갈린다. ‘고용된 편집자’에서 ‘자기 브랜드를 키우는 편집자’의 시대로 넘어가며, 이제 자본이 아니라 편집기획으로도 성공을 예감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전망은 무수한 편집자들한테 기회와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1인 출판이 활성화하는 배경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인 출판이 늘어나는 데엔 전문 편집기획자을 길러내지 못하는 국내 출판사들의 영세적 출판 구조가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기획자들은 무엇보다 ‘단명하는 편집자 문화’를 꼽는다. 20대에 출판사에 첫 발을 내디딘 편집자는 10년, 20년의 경력을 쌓으며 30·40대로 성장하면, 이내 퇴출의 압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편집기획자를 자주 물갈이 해야 신선한 기획력이 산다’는 일부 출판 경영철학도 이런 분위기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만일 가족 중심 경영 때문에 불거지는 갈등까지 겪게 되면 창업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만다. 한 편집기획자는 “편집기획자들이 1인 창업에 나서는 근본 배경을 짚어보면, 그 본질엔 가족경영을 벗지 못하는 출판사가 전문 편집자 양성에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나이’는 1인 출판인들이 말하는 주요한 창업 동기다. “솔직히 말해 40대가 되면 편집기획자의 생산성도 떨어지고 회사 처지에선 고액봉급자 직원에 대해 부담을 느끼게 되겠죠. 40대에 관리자가 될 수 없다면 결국 출판사를 떠나야 합니다. 달리 갈 데가 없어요. 30대 중반만 돼도 그런 압박은 현실이 됩니다.” 다른 편집기획자의 말이다. 이 때문에 50·60대 나이에도 편집 현장에서 전문가로 일하는 편집자는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출판사 ‘편집자 모시기’

바닥에서 편집자들의 1인 출판 바람이 불고 있다면, 꼭대기에선 대형출판사들의 편집자 모시기 바람이 불고 있다. 유능한 전문 편집자를 영입해 자금을 지원하고 마음대로 책을 내게 하면서, 동시에 대형출판사들의 브랜드를 확장하고 매출과 수익도 늘리자는 포석이 이런 움직임에 깔려 있다. 이른바 ‘임프린트’(imprint)로 불리는 일종의 소사장 제도는 출판계의 새로운 화젯거리다.

본래 영·미 출판계에서 정착해 출판사 인수합병(M&A)의 토대가 된 이 제도는 최근 2~3년 새 국내 대형출판사인 랜덤하우스중앙과 웅진씽크빅이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편집자들이 자금 지원을 좇아 이동하고 기존 출판사들의 경영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다.

국내 처음으로 임프린트를 도입한 랜덤하우스중앙은 두앤비컨텐츠, 북박스, 드림하우스, 울프, 키즈랜덤 등 아홉가지 브랜드를 전문화해 운영하고 있다. 웅진씽크빅은 웅진지식하우스와 웅진주니어에 더해 외부 편집자를 영입한 리더스북, 노블마인 등 두가지 브랜드를 더 내고 있다. 모두 3년 계약이며, 출판 기획·편집은 임프린트 대표의 독자적 결정에 맡긴다고 한다.

웅진씽크빅 임태주(39) 출판신사업팀장은 “책의 미래는 이제 유능한 편집기획자의 손에 달려 있다”며 “1인 출판을 꿈꾸는 편집기획자는 자금을 지원받아 좋은 책을 많이 낼 수 있고 대형출판사는 유능한 여러 편집인재들을 모아 브랜드를 다양화할 수 있다”며 임프린트 제도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랜덤하우스중앙의 최봉수(44) 사업운영실장은 “임프린트가 정착한다면 출판계에 편집기획 인재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구조도 마련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프린트를 도입한 출판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를 경계하는 출판계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대형출판사들이 브랜드를 확장하며 출판시장 잠식을 가속화할 것이며, 매출·수익 성과로 평가하는 편집의 경쟁체제를 극대화해 결국 출판문화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창업 직후에 여러 차례 임프린트 참여 권유를 받았다는 권선희씨는 “아직은 내가 만들고 싶은 나의 책을 출판하고 싶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한 시대의 작가와 독자는 편집기획자를 통해 창조된다. 그래서 편집자는 종종 “지식 사냥꾼” “지식의 조직가”로 불린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 1인 출판과 임프린트의 바람은, 이런 편집기획자들이 차지하는 몫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또 편집기획 자체가 ‘브랜드 가치’로 평가받기 시작하는 사례들이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국내 독서인구가 이젠 해방 이후 2, 3세대를 맞으며 수준 높은 책을 찾는 고급독자들도 생겨나고 있다”며 “책 한 종이 수백만권씩 팔리는 ‘대중출판’ 시대가 물러나고 ‘전문출판’ 시대가 오는 이 때에 1인 출판이든 임프린트이든 단기적 성장·성과에 매달리기보다 독자·작가와 함께 오래도록 성장하는 편집기획 체제를 갖추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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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8-0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공보다 더 많은 좌절이 뼈에 와닿네요

sb 2006-08-0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인출판에 소사장제까지. 출판산업도 소위 '3D'가 되어가는군요.
 

(출처: 이홍|리더스북 주간 wizard-hong@hanmail.net)

뻔할 것 같은 질문 하나, 출판기획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발행된 모 주간지에 ‘베스트셀러를 만든 7가지 노하우’란 제목을 붙인 기사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만든 노하우가 마법의 주술처럼 몇 가지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놀라움에 흥분지수가 극에 달하려는 즈음, 혀를 날름거리며 기어가는 한 문장 때문에 눈앞이 아찔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개에 필요하기에 그대로 인용한다.

“대박을 터뜨린 출판기획자들은 ‘베스트셀러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구나! 베스트셀러란 하늘에 기원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구나. 그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세상은 그들을 ‘스타급 출판기획자’ 또는 ‘대박 기획자’라고 부르는구나. 대박은 고사하고 어떻게든 병살타라도 면해서 한순간에 ‘스리 아웃’으로 ‘게임 오버’ 되는 참사만은 면해야겠다고 발버둥치는 대다수의 이웃들에 비하면 그들은 참으로 부러운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장담하는 대박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잡다하고 구구한 잡설 필요 없이 한 큐에 끝내버리는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정이 그렇다면 제발이지 부탁이니 그 비법을 가르쳐만 주소서. 이 은혜 백골이 진토가 되어 넋이 사라진 다음에라도 잊지 않으리다.

하지만 “대박을 터뜨린 출판기획자들은 ‘베스트셀러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에 이어진 기사의 내용은 무슨 출판강좌나 문화센터 같은 데서 들었던 이야기들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예의 낯간지러운 몇몇 출판사의 성공담을 등장시키고 있었다. 출판동네에 사는 선수들은 다 안다. 책이 성공하면 “독자의 요구에 구체적으로 답을 해주었느니” “방법론을 제시했느니”하면서 그럴듯한 ‘론’을 만들어내지만 좀더 정확한 뒷담화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한 기자의 수고로운 취재를 가볍게 폄하하거나 출판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 아니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그럴 의도는 없다. 다만, ‘베스트셀러’란 단어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출판기획의 본질과 그 과정에 대한 역겨울 정도의 왜곡 현상을 바라보면서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이 무슨 ‘정치’처럼 여겨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만큼은 지울 수 없다.

서론이 길어졌다. 이 시점에서는 ‘출판기획이 무엇이냐’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인 인터넷이 무엇인가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난 출판기획이 ‘무형의 계획을 유형의 숫자로 전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상품인 책에 무슨 숫자냐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너무 결과만을 추종하는 게 아니냐고 질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도식 나열이나 관념적인 미사여구 남발은 출판기획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독자를 자기 손에서 갖고 놀 수 있다는 자만심이나 언론과 친분으로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만성 따위도 마찬가지다.

출판의 과정이 과학이어야 한다면 근거 분명한 ‘숫자’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베스트셀러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사기다. 하지만 크거나 작거나 숫자가 분명한 책을 만들 수는 있다.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진실’이다.

뻔할 것 같은 질문 둘, 인터넷과 출판기획은 어떻게 만날 수 있나

콘텐츠 관리가 기획의 핵심이던 시대를 편의상 제1세대라고 한다면 제2세대에서는 인적 관리가 그 중심을 차지한다. 시기적으로 보면 대략 2000년 전후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종합적인 네트워크 관리의 시대이고 토털 마케팅의 시대다. 여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콘텐츠 관리와 인적 관리가 모두 포함된다.

네트워크의 핵심은 종과 횡이라는 기본을 넘어 입체적인 ‘파워’로 완성되어야 한다. 종적, 즉 수직성이 강한 네트워크는 집중성은 있으나 탄력성이 떨어진다. 다양성 추구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횡적 네트워크는 그 반대다. 그렇다고 둘 중 하나라도 만만한 것은 없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처럼 네트워크라는 게 중요하다보니 “기획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출판계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정은숙 사장은 소문난 마당발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구효서, 인생은 지나간다』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바 있다. 주제는 틈새를 노려라, 뭐 이런 것이었겠지만 결론은 역시 네트워크다. 아무리 틈새를 노려 제안을 했어도 네트워크, 즉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제안인들 가능했으랴. 이런 일부 마당발 출판사 사장은 출판계 후배들에게는 연구대상이다. 

스타들이 수십 년 내공으로 만든 네트워크를 후배들이 단숨에 따라가는 것은 겸손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후배들의 능력이 무조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아날로그’ 방식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네트워크에는 계량화될 수 있는 ‘숫자’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이 그 무엇이 바로 노하우, 즉 실력이다. 이게 어디 배워서 훔쳐지는 것인가?

출판기획에서 인터넷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차원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실로 오랜 꿈이었다. 혼자서 은밀하게 깨알같이 메모해두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수천 배의 정보가 출력된다. 내가 알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사진까지 뽑아서 이력서를 제공해주니 첩보영화가 따로 없다. 아날로그 방식이 제공해주었던 인간적인 정서와 노하우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정보에 대한 접근성에 있어서는 질과 양 모두 풍부해진 것이 사실이다.

앞서 출판기획이란 ‘무형의 계획을 유형의 숫자로 전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출판기획이 인터넷과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하나의 문화상품으로서 존재하는 책에 대한 기획자의 책임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이란 문화가치성과 상품가치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의 소재나 인적 동향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욕구를 통해 시장에서 판매 예측, 그리고 이를 촉진하기 위한 체계적인 홍보전략 등을 총괄하는 것이다.

판매 사이즈를 수립할 수 없는 기획은 무의미하다. 특히 실용적 컨셉트의 책에서는 선택을 넘어 필수의 조건이다. 10만 부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책이 그만한 함량을 가졌다면, 엉성하고 관념적인 ‘베스트셀러 이론’을 들먹이거나 기자들과 술판을 벌이는 것으로 일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5천 부에서 10만 부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수적이며 그 모든 프로세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다차원적인 네트워크를 점검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인터넷이 가진 놀라운 인터페이스가 탐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출판기획에서 인터넷을 활용한다고 하면 지식검색을 통한 아이디어 제공이나 필자 소재 파악 등을 먼저 생각한다. 이는 고성능 계산기로 덧셈이나 뺄셈만 반복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진정한 인터넷의 활용은 이런 1차원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무형의 계획이 숫자로 전환되는 과정은 간단하게 표현할 수 없는 변수의 연속이다. 이런 변수들을 넘어 안정적인 상수를 만들어내는 데 인터넷이란 도구가 유용하게 사용된다. 살과 땀이 교차하는 직접성은 부족하지만 다양한 가상적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디지털 네트워크가 가지는 중요한 자원이다.

본론1_ 출판기획에서 블로그는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인터넷의 활용, 그 가운데서도 블로그는 단연 최고의 기대주로 등장하고 있다. 블로그란 ‘web+log’의 합성어이다. 인터넷 항해일지라고 불리지만 쉽게 말해서 웹상에 올리는 개인일기라고 보면 된다. 1997년 미국의 데이브 와이너가 만든 ‘스크립팅 뉴스’가 최초의 블로그였다는 다수의 지지가 있지만 블로그의 기원에 대해서는 장충동 족발집만큼이나 ‘원조’가 많아 그 소개가 무의미하다.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대략 2002년 상업 블로그 사이트www.blog.co.kr가 열리면서부터라고 하는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이라크 건축가인 사람 팍스가 만든 블로그가 소개되면서부터다.

블로그의 등장은 각 포털의 위상을 뒤흔든 원인이 되었다. 국내에서 부동의 1위를 자랑하던 다음을 밀어낸 것은 네이버이고 네이버 최고의 주력종목은 현재 단연 블로그다. ‘구글의 폭격’이라는 말이 있는데 라이코스, 야후 등의 선발 주자들을 단숨에 KO 시킨 구글의 주 종목 역시 블로그다. 구글은 지금도 야후 등에 비해 블로그에 엄청난 지원을 쏟아 붓고 있다. 구글의 툴바는 공개적인 방식으로 개인이 좋아하거나 자주 들르는 사이트와 콘텐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간단하게 분석되어 타깃마케팅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 되고 있다. 2005년 현재, 각 포털에 널려 있는 블로그를 방문한 네티즌의 숫자는 이미 13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블로그는 ‘개인의 기록’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1인 미디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거대 미디어에 의해 지배받는 개인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인터넷을 통해 이를 다수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블로그가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담고 있는 쓰레기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거칠 것 없이 확산되는 원인은 지배당하는 문화에서 지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학습에 연결시킨다면??????)

이처럼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된 블로그는 이제 비즈니스 차원에서 그 활용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블로그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은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2004년 <뉴욕타임스>는 “기업 간부들이 블로그 사이트를 기업 홍보와 마케팅 등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고객과 직원들에 대한 비공식 대화 채널로도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기업들에서 블로그 활용은 이미 개인의 차원을 벗어난 것이다.

인터넷 강국답게 한국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있다. 외국계 보험 회사인 푸르덴셜이 한국형 블로그인 미니홈피를 자사 홈페이지에 도입한데 이어 삼성생명도 관련 사이트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 영업에 관심을 보여 온 보험사들이 역시 선도적으로 블로그 도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교육, 온라인게임, 온라인서점 분야의 기업들도 블로그 사이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블로그를 개설할 경우 고객들의 홈페이지 접속 빈도와 체류 시간이 늘어나 손쉽게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판기획에서 블로그는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현재 수준에서도 블로그는 출판기획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개인이 만든 블로그는 전문 사이트의 정보량을 충분히 능가한다. 방대한 콘텐츠를 무한정으로 제공해주는 주유소의 기능이 가능하다. 둘째, 전문성과 콘텐츠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라는 인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 발굴에 있어 이전과 다른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셋째, 요즘의 블로그는 고립된 개인에서 벗어나 관련 블로그끼리 네트워크화 하는 경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한 댓글 기능에서 벗어나 관심사를 공유하고 오프 공간으로 이를 확대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넷째, 역시 개인 블로그와 다수가 모인 카페가 네트워크화 되고 카페는 역시 유사한 카페와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써 현란한 종과 횡의 입체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다섯째, 이런 네트워크 작업을 통해 불확실한 변수를 예측 가능한 상수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을 가능하게 한다.

본론2_ 블로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첫째,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결론에 해당하는데,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염탐하기 전에 ‘나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야 한다. 즉 스스로 ‘블로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신이 아직 미니홈피나 개인 블로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출판기획자라면 ‘상당히 치명적인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블로그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첨단 네트워크에서 소외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인터넷을 훌륭하게 이용하고 있다면 평균의 수준은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블로거가 되지 않겠어”라고 고집하는 게 블로거가 되는 것에 비해 어떤 이로운 점이 있는지 사례를 나열하며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런 무관심이나 고집이 출판기획의 질과 양을 풍성하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블로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거의 모든 해답은 스스로 블로거가 되었을 때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많은 블로그는 글자 그대로 시시콜콜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블로그를 시시콜콜하게 만들지 말자고 계몽한다면 그 사람은 당장 미친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하지만 출판기획자의 블로그가 이처럼 시시콜콜해서는 곤란하다. 지인 관계에 있는 몇몇 편집자의 블로그를 방문하면서 놀랐던 것은 ‘프로 정신’의 과감한 실종이었다. 출판기획자에게 주어진 천형 같은 운명 중 하나는 심지어 자는 중에도 산신령을 만나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출판기획자가 만들었다는 블로그가 개인적 배설에 치중하고 있다면 이미 게임 오버다.

출판기획자 스스로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블로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블로그 세계가 펼치는 본질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눈팅만으로는 곤란하다. 우연히 관심 있는 블로그를 발견하고 방명록에다 만남을 구걸하거나 책을 내자고 조르는 글을 갈기는 수준으로는 입체적인 기획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블로그가 가진 마케팅 기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블로그의 진정한 가치는 콘텐츠의 발견이나 저자 섭외의 용이성보다 마케팅의 확대에 있다.

출간 두 달 만에 12쇄를 출고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은 저자의 블로그에 연재 중이던 글이었다. 증권가와 케이블 방송 등에 ‘시골의사’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의 블로그에는 하루 평균 2000명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하고 있으며 2005년 6월 현재 누적 방문자가 48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시골의사와 이웃 블로그를 맺은 숫자만도 2000명이 넘는다. 저자의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블로그에 올라가자 엄청난 댓글이 붙기 시작했다. 초반의 선전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이 책의 출간과 관련된 각종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옮겨간 블로거가 수백 명에 달했다. 그 블로그에 방문해 기사를 확인한 네티즌까지 합친다면 블로그를 통해 노출된 인원은 간단하게 수십만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오며 그 숫자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다소의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었다지만 출간한 책은 코어 타깃이 다른 에세이집이었다. 예산 문제로 일간지에 광고 한 번 싣지 못했고, 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요 신문사 서평에서도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역시 인기 저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터넷 서점에서의 노출도 ‘특별하지’ 못했다. 쟁쟁한 필자들이 널려 있는 문학 분야에서 유명한 문인도 아닌 의사가 쓴 첫 에세이집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면서 선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라는 조롱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하루에도 수천 명씩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해주는 충성스런 우군이 있었다.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감동적인 내용은 입에서 입으로, 다시 블로그에서 블로그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저자 사인회에서는 연예인이 아님에도 밀려든 독자들로 인해 인원을 제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골의사와 그의 블로그가 계획되지 않은 순수한 1인 미디어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징기스칸이 운영하는 ‘인맥을 만드는 CEO 파티cafe.naver.com/ceoparty.cafe’는 1인 미디어의 범주를 넘어선 기업형 네트워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대의 인맥 만들기’를 꿈꾸는 징기스칸의 블로그에는 430여 개의 이웃 블로그가 유형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비즈니스에 목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고스럽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징기스칸의 블로그에서 진입로를 발견할 수 있다.

징기스칸은 블로그뿐만 아니라 같은 이름의 카페도 운영하고 있는데 역시 유사한 성격의 카페들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 카페 역시 각기 다른 카페들과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한 카페를 통해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수십 개에 달하며 그 인원만 해도 5만 명을 넘어선다. 징기스칸은 블로그와 카페 운영뿐만 아니라 ‘인맥코디네이터’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몇몇 출판사와 협력관계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세미나 개최는 물론 책 홍보 및 이벤트 행사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는데, 초기 코어 타깃에 접근해 집중적인 홍보를 꾀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광범위하게 가지를 뻗고 있는 충성스러운 네트워크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의 성공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것이다.

넷째, 이러한 블로그 역시 진화의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무한대로 늘어날 것만 같았던 이메일은 다양한 기능을 장착한 매신저 때문에 절대 강자의 위치에서 밀려났다. 하이텔이나 천리안 같은 인터넷 통신 이야기가 지금은 옛날이야기처럼 회자된다.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다. 블로그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인기가 높아진 것은 제작과 운영의 편리성 때문이다. HTML 언어를 몰라도 되고 특별한 웹 에디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아도 평균 정도의 페이지 제작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워드프로세스를 다룰 수 있는 정도라면 눈 감고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게 블로그다. 하지만 차별성과 심플한 고기능을 추구하는 욕구의 팽창은 블로그의 운명이 결코 안정적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되 고정적인 도그마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블로그 역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오늘날 블로그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생뚱맞은 태도라면 블로그가 무슨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되는 것처럼 맹신하는 건 오지랖 없는 사고다. 블로그가 무한한 가능성과 절대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활용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는 건 출판기획자 몫이다. 책은 사람이 읽고 편집은 신이 한다고 했던가?

블로그의 진정한 가치를 이용하라

마무리하자. 난 이 글을 쓰면서 ‘기술적 분석’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분석의 함정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다. 들쑥날쑥한 글 솜씨 때문이니 어려운 주제로 날 골탕 먹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탓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대박을 내는 출판기획자가 될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들고 있는 책의 정확한 포지션을 확인하고 가능한 그 높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을 꾸려내는 일이다. 그게 바로 ‘숫자가 분명한 기획’이다. 특히 실용서를 만드는 출판기획자라면 최소한 손익분기점을 찍을 수 있는 사전 판매계획은 필수다. 대박은 그 다음의 일이다.  
     
우리가 블로그에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힘보다는 잠재된 가능성 때문이다. 잠재성이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과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블로그는 스스로가 힘을 가진 이상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의 능력이 도구의 힘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도구가 만든 함정에 빠져 눈이 멀게 될지도 모른다.

혹시 출판기획자의 블로그 활용술이 블로그를 이용한 대박상품 만들기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 글을 쓴 나는 삽질을 한 것이요,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여러분은 삽질을 구경한 어처구니가 된다. 진실은 그게 아니다. 출판기획자에게 필요한 진정한 블로그 활용술의 핵심은 출판기획자 스스로 최고의 블로거가 되라는 것이다. 주변인의 위치에서는 콘텐츠 발굴도, 인적 관계의 형성도, 마케팅도 모두 형식적이고 1회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주변인의 위치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블로거가 된다면 자신이 원하는 많은 것을 획득할 수 있다. 블로그에 관한 한 이게 최고의 답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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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8-0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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