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츠 고우 재테크
양맹수 지음 / 블루패밀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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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유가증권, 부동산까지 재테크의 세가지 종목에 대해서 각각의 노하우(Know-how)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종목별 뿐만 아니라, 연령별, 직종별로도 분류하였구요.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라 시기성은 다소 떨어집니다. 요즘에는 일간지에서도 재테크를 고정적으로 다루고 있고, 관련 서적도 물밀듯이 쏟아져나오니까요. 인터넷 상의 커뮤니티(Community)까지 광범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만큼, 몰라서라기 보다는 (초기자본이) 없어서 재테크를 못한다고 봐야겠습니다.

20대에 모아서 30대에 결혼하고, 30대에 모아서 자녀 양육 및 교육비로 사용하고, 40대에 모아서 노후준비를 하는,
그래서 "인생은 60세부터" 라고 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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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 10년 젊어지는 내 몸 개혁 프로젝트 KBS 비타민 1
KBS 2TV 비타민 제작팀 엮음 / 동아일보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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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던 내용이 한권의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1장, 2장은 신체부위와 영양소 별로 분석적으로 다루고, 3~5장은 생활습관, 성생활, 노화, 등을 특색있게 다룹니다.

무조건 읽고 외우려 하기 보다, 신진대사 과정을 이해하면서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주의깊게 본다면, 자신에게 꼭 맞는 건강관리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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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아 관리
칫솔의 크기는 치아의 2.5배 정도가 적당.
칫솔은 4주가 지나면 세균이 번식하므로 교체요망.

2. 허리
허리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복근과 신전근을 강화하는 운동이 필요.
다리 꼬고 앉는 것이 허리에 더 낫다.

3. 식이섬유 (양파, 무말랭이, 곶감, 등)
소장에서는 영양소를, 대장에서는 수분을 섭취하는데, 불용성 식이섬유는 대장에서 수분을 빼앗기지 않아 변의 양과 수분을 더해준다.

4. 지방
지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방의 양과 질 때문 ; 올리브유(동맥경화를 예방) - 트랜스지방산(인스턴트 음식, 바삭바삭한 음식에 많음)

5. 술
술이 세다는 것은 분해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일 뿐, 몸에 덜 해롭다는 것은 아니다.
음주 전에 우유를 마시면 위벽이 보호되며, 음주 후에는 비타민과 수분을 보충해준다.
'필름이 끊긴다' 는 것은, 알콜에 의해 신경간의 전달을 방해하면서 발생하는 것.

6. 복부비만
복부는 혈관과의 소통작용이 원활하여, 복부비만일 경우 혈중 콜레스테롤을 높히는데 주요하게 작용한다.
앉아서 몸통돌리기, 반윗몸 일으키기, 등이 좋다.

7. 변비
일주일에 3회 이상 변을 보아야 정상이다.

8. 잠
잠은 체내시계에 따르므로, 잘수록 체내시계가 길어진다.
잠들기 전 따뜻한 우유를 마시면 숙면에 좋다.

9. 조루
1분 이내에 사정하는 것을 뜻하며, 감각 조절훈련을 통해서 극복이 가능하다.

10. 근육
근육은 운동 중이 아닌 휴식 중에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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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역설
샹탈 무페 지음, 이행 옮김 / 인간사랑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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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우리는 이 둘을 합해, 흔히 ‘자유민주주의’ 라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역사도, 추구하는 가치도 다릅니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이죠. 그것이 오래 전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도 자유주의란, 적어도 봉건주의의 몰락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가 멸망한 이후 봉건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민주주의도, 자유주의와 함께 등장하게 됩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그렇게 만나, 자유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전통은 ‘평등’ 입니다. 물론, 노예와 여자는 평등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을 부여받은 귀족 남자들은 평등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대의 민주주의가 아닌 직접 민주주의였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가 구별되지 않는 평등이었죠.
민주주의에 반하는 자유주의의 전통은 ‘자유’ 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그리고 법치(法治)를 중요시하죠.
결국, 자유민주주의에는, 때로는 양립할 수 없을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어떻게든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라고 불리우는 국가들의 정치체제를 보면, 자유주의적 전통과 민주주의적 전통의 요소들이 각기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법치나 재산권의 인정, 등 자유주의적 전통에 비해, 민주주의적 전통은 다소 왜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냉전의 종식과 함께 대다수의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선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복지를 통해 민주주의적 전통을 유지하려고 했던 많은 국가들의 실패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구요.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와 같이,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적 전통을 잃어가며 자유주의로 기울어가는 경향에서 비롯됩니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사상가들을 등장시킨 후, 그(녀)들을 각기 왼편과 오른편에 위치시킵니다. 오른편에는 자유민주주의의 불균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롤스와 하버마스를, 왼편에는 자유민주주의에 파산선고를 내린 슈미트가 자리하게 됩니다.

롤스와 하버마스는 위기에 처한 자유민주주의를 구출하려고 합니다. 롤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개인 간의 합의를 통해서, 하버마스는 평등한 논의절차(심의절차)를 통해서, 자유와 평등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슈미트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상반된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균형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균형을 잃고 파산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죠.

저자는 우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완벽하게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슈미트의 그것이죠. 저자는 롤스와 하버마스와 같이, 자유민주주의의 완전한 균형을 가정하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슈미트와 같이 자유민주주의에 파산선고를 하지 않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태생적인 모순과 적대를, 경쟁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데에 탈출구를 마련합니다. 경쟁적 대립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존재조건이라는, 경쟁적 다원주의가 그것이죠.

그리고, 현실 자유민주주의 정치로 돌아온 저자의 시선은 80년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당에 머무릅니다.
저자에게 70년대 유럽의 복지국가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적 가치가 발전적으로 경쟁하는 모델인 것입니다. 하지만, 70년대 시작된 불황과 이를 타개하고자 했던 자본주의 국가들의 방책이란, 복지의 축소, 노동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공공부문의 사유화, 등 자유주의적 그것이었죠. 이것을 두고 신자유주의(새로운 자유주의) 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대변하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당의 대응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경쟁적 다원주의에 따르자면, 좌파정당들은 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민주주의적 공세를 벌이며 경쟁했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80년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당들은 ‘제3의 길‘, ’중도좌파‘ 를 표방하며 변화를 꾀했습니다. 이름을 그럴싸 하지만, 이것은 실제, 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선 경쟁의 포기, 즉 민주주의적 가치들에 대한 포기였어요.
설사, 이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한들, 그것은 롤스와 하버마스의 그것처럼 불가능한 프로젝트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완전한 균형은 불가능하며, 오로지 경쟁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할 때만이, 일시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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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자가 설정한 대립구도에는 문제는 있습니다.
소개되는 학자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서로 다른 농도의 답변을 하고있지만, 그 전제로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등한 축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이전에 자본주의가 있었습니다. 자유주의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았던 봉건사회에서 시작되었고, 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봉건사회를 전복하고자 할 때, 필요에 의해서, 종속으로 등장했다고 봐야합니다. 실제 민주주의 최소의 절차인 보통선거 마저도, 자유주의 시대 이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까요.
자유주의가 불러온 근대의 민주주의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통해서는 자유주의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자가 주목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당의 행보 역시도 다르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변화는 70년대 자유주의의 강세(신자유주의)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데요, 이것을 단순히 ‘자유주의에 굴복했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포기했다‘ 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분명히 그렇지만, 단순히 선택하고 포기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들이 표방해왔던 ‘분배와 복지‘ 내지 ’노동권‘ 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는, 소극적인 민주주의, 자유주의에 종속된 민주주의에 불과합니다. 이 종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70년대와 같은 자유주의의 위기 앞에서 민주주의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여집니다. ’예정된 포기‘라고 할까요.

따라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발전적으로 경쟁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가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히려, ‘호황과 불황‘으로 표현되는 자유주의의 허용폭 속에서,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확대되거나 축소된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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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맨 2020-02-2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탁월한 정리가 돋보이네요. 특히 이윤의 많고 적음에 따라 한 사회에서 허용되는 민주주의(=평등)가 달라진다는 정리가 좋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에 종속된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네요
 
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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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
조정래 선생께서 <인간연습>을 내어놓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4년 만에 출판되었다는 선생의 소설은, 30년의 옥고를 치루고 출옥한 한 비전향 장기수의 말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선생이 전향을 했다는 자극적인 보도기사도,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거창한 소개글도 그리 마땅치가 않습니다.

소설은 사회주의의 몰락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30년의 옥고를 마치고 출옥한 두 노인은 소련의 해체 소식에 “이거 우리 헛산 것 아니오?” 라며 허탈해합니다. 오랜 친구의 고발과 체포, 사상전향을 목적으로 한 경찰 검찰 교도관의 폭력, 연좌제로 인한 가족들의 고통과 외면, 몸과 마음의 병환을 이기지 못한 전향의 아픔으로, 이미 반쯤 무너져있는 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는, 그들이 그동안 겪어온 고통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엇이었죠. 그것은 살아가기 위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의 상실이었으니까요.

같은 무게의 고통 속에서,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죽지 못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소설은 박동건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윤혁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태백산맥>과 <한강>이 분단 현실에서의 고통을 짚어왔다면, <인간연습>은 고통 이후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박동건의 죽음이든 윤혁의 삶이든, 고통 이후를 말합니다.

윤혁을 보호감찰하는 형사와의 대면에서, 우리는 소설이 쫓아온 윤혁의 삶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윽박지르고 비꼬는 형사에게, 윤혁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할 뿐입니다. 소설은 다시 그를, 어떻게든 살고있는 윤혁의 삶의 자취를 쫓습니다. 그리고, 이제 등장하는 두 사람과의 관계는 윤혁이 살아가는 이유, 즉 선생이 말하고자하는 사상 이후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기준과 경희. 부모를 잃은 이 아이들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다 윤혁의 도움을 받으며 인연을 맺게 됩니다. 이들은 몇일에 한번씩 윤혁 할아버지를 찾아와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손주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강민규.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되면서 윤혁을 만나게 된 그는, 간간히 일거리를 구해오거나, 보호관찰중인 윤혁이 접하기 힘든 사회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가 자연스레 전하는 소련의 해체와 관련한 토론회 내용 - 공산당의 일당독재, 이기적인 인간 본성에의 어긋남, ‘무오류’라는 당의 독선 - 이나 시민단체의 활동 - 진보와 보수의 균형 - 이, 사상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윤혁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죠.

소설은 결국, 기준과 경희, 강민규와의 관계 속에서 윤혁이 새로이 선택하는 삶을 통해서 보여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한 보육원에서 기준과 경희를 비롯한 아이들을 돌보는 삶을 선택하죠. 강민규를 통해서 ‘모색’되었던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삶의 방식은 대화와 독백에서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육원에 자리잡은 이후 윤혁을 찾아온 강민규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나 자네 보고 싶은 적 한 번도 없었어.”

저는 이것이 선생이 말하는 ‘분단문제의 마무리’인 것 같습니다. <태백산맥>에서도, <한강>에서도, 그리고 <인간연습>에서도, 선생께서는 삶을 모습을 통해서 시대의 아픔을 비출 뿐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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