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동 - 앨빈 토플러
앨빈 토플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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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래쇼크>, 80년대 <제3물결>에 이은 엘빈 토플러의 미래학 시리즈 최종판입니다. 그의 저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읽는 이를 질리게 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는 각국의 문헌과 통계, 르포기사를 참고하고,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인터뷰하였습니다. 그의 성실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사회 전반이 변화하는 근본적인 힘이 산업과 경제의 변화로 부터 기인한다는 그의 견해는, 그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관점입니다. 이 관점은 <권력이동>에서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다만, <권력이동>은 <제3물결>에서 묘사한 사회의 변화에서 권력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입니다.

<제3물결>에서, 그가 3차 산업으로의 발달에 대해서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제조업의 발달 못지 않게 정보산업의 발달은 무척이나 많은 변화들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것 역시 제2물결 사회에 속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관점은 <권력이동>에서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는 권력을 구성하는 3대 요소를 폭력, 부, 지식으로 정의한 뒤, 제2물결 사회에서 제3물결 사회로 이동하면서, 권력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지식의 특성, 즉 폭력이나 부와는 달리 분산적인 특성에 의해, 미래사회의 권력은 집중이 아니라 분산될 것이라는 낙관입니다. 어떤 국가이든 정보산업 내지는 지식산업 발달에 집중한다면, 그곳으로 권력의 축이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하지만, 정보산업 중심의 사회가 과연 농업이나 제조업 중심의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가에 대해서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지식은 폭력이나 부에서 분리되어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가치가 아니니까요.

그것은 의존적으로 작동하죠. 산업의 측면에서 보면 자본에 의존하고, 권력의 측면에서 보면 폭력이나 부에 의존하구요. 주목받는 지식이란, 지식 일반이 아니라 산업지식이니까요. 누가 인문학을 거들떠보기나 하나요.

많은 세계적 기업들이 연구 분야와 마케팅 분야를 제외하고 생산은 외주나 하청의 방식으로 하고있다지만, 연구와 마케팅이 부를 창출하고 권력을 창출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산에 대한 지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지식의 비중이 아무리 높아진다 한들, 생산이나 권력 자체가 분산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칼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을 지적했습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란, 생산자본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데, 마르크스 역시 이것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죠. 100명 1,000명의 노동자에게 지속적으로 지급해야 할 임금으로, 1,000명분의 일을 할 수 있는 기계(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니까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기술과 노동을 분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자본을 구성하는 요소로 보았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비중일 뿐, 근본적으로는 자본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토플러와는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술의 발달, 지식의 발달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낮춰 이윤율을 떨어뜨리고, 체제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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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 옮김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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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선 이 책의 제목이 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으로 번역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ffective people' 이 꼭 '성공하는 사람' 을 의미하는 것을 아닐테니까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예의 자기개발서 처럼 자기관리의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는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공의 열쇠를 찾는 사람 처럼, "대체 7가지가 무엇이냐?"고 궁금해하는 분들께 이 책은 실망을 안겨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습관이 형성되는 구조에 대한 것입니다.

1.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 : 반사적 행동과 주도적 행동
2.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 인생 헌법과 자기사명서
3.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 : 황금알 이론과 시간관리 4사 분면
4. 승-승을 생각하라
5. 먼저 이해하고 이해시켜라
6. 시너지를 내라
7. 끊임 없이 쇄신하라 : 운동을 통해서 주도성이라는 습관의 강점을 개발하자.

책은 차근차근히 읽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암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번호는 나열을 위해 붙여진 것이 아니라, 선후관계를 의미합니다. 1번 습관을 익히지 못한 이들은 2번 습관도 좀처럼 익히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패러다임'과 '습관' 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하구요.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매번 무너지는 계획 앞에 좌절하는 당신이라면, 새로운 계획표 대신 자신이 지금 진정으로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 부터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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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빨리 석방된다
김주덕 지음 / 서음미디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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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가 구속되면 그의 무죄를 생각하기 보다는, 구속시킨 국가기관의 공신력을 먼저 믿는 경향이 있다. 즉, 구속 자체를 어떤 판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구속이란 공권력에 의한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구금 절차로서, 검찰의 일방적인 정황증거 만으로 개인의 신병을 장기간 구속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구속 수사 원칙' 입니다.
국가와 공권력을 마치 가치판단의 절대적인 기준인 것 처럼 물신화하는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주덕 변호사는 오랜 검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검사일 때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비약하자면, 책에 정리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곧 검사가 피의자 내지 피고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죠.

고소 - 경찰수사 - 검찰수사 - 공판 - 형집행 으로 이어지는 형사사건의 절차와 법률용어들이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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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의 권력
윤기설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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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의 권력>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책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의 천국(네덜란드), 주35시간 노동제의 폐지와 고용 후 2년 이내의 자유로운 해고(프랑스), 임금인상 없는 노동시간 연장 합의와 실업급여 축소(독일), 임금동결(일본), 무노동무임금의 관철과 대체근로의 허용(미국),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의 제약(영국).
아무리 둘러봐도 양보하고 빼앗기는 것 밖에 없으니, 이쯤 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무척이나 염치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얻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내어주는 대가로, 경쟁력이 확보되고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는거죠.
하지만, 세계적인 경쟁체제에서는 경쟁력의 강화가, 곧 투자와 고용의 발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력의 강화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기 때문이죠.

확실히 잃고, 불확실하게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제5의 권력>이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하지만, <제5의 권력>은 반쪽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첫번째, 기존의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 두번째, 이것은 한국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세계 노동운동 공통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훌륭한 노동조건을 가진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운동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들은 확실히, 빼앗기고 있고 양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5의 권력>이 이것을 두고 마치 대안인 것 처럼 포장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느 노동운동의 지도자도 이러한 변화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차악을 선택할 뿐이죠. 그런데, <제5의 권력>은 이렇게 말합니다. "거봐, 쟤네들도 이렇게 하잖아."
온전한 진실은,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해있지만 아직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덥썩 물어서는 안되는데, <제5의 권력>이 그러합니다.

노동운동은 <제5의 권력>과는 다른 방식의 변화를 준비하고 이뤄내야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시장이 세계적으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기업가들이 국가 간의 장벽을 넘어 투자하기란 점점 더 쉬워지고 있습니다. 안정된 고용을 유지하는 데에 그치는 기존의 노동운동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기업가들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안정된 고용이란 환상을 추구하다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겁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싸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행이 자본주의는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그마저의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는 더 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해야합니다.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공동의 요구를 가지고 싸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싸움을 조직할 수 있는, 전국적인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보탬]
노동조합을 만들고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자본주의가 인정한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법률입니다.
대화, 타협, 운운하기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필수조건이라는 것이죠. 쉽게 얘기해서 노동 3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대화나 타협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자가 이것을 이해하고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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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KBS 드라마 <서울1945>를 보고 있는데, 대하드라마가 늘상 그렇듯이 논쟁이 되고 있어요. 그 관련 기사를 찾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드라마와 학계의 논쟁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79년 10월에 출간된 책입니다. 계엄 하에서 판금 조치될 정도로, 그간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해방전후사를 다루며 인기를 얻었던 책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하며 지난 3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긴장관계 속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재출간을 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한국정치학회는 이 논쟁을, 비판과 반비판을 넘어 통합적으로 논의하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다고 하는군요.

언뜻 좌우파 이념 논쟁으로 비추어지는 이 논쟁은, 사실 민족주의를 제외한 확실한 논쟁점이 없어보입니다. 이념 논쟁은 불명확해요.
이들이 간신히 논쟁을 전개할 수 있는 이유는, 이념과 상관없이 양 진영 사이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인데요, 비약하자면 한쪽 진영에는 민족주의 좌파와 우파들이, 나머지 한쪽 진영에는 탈민족주의 좌파와 우파들이 뒤섞여있는 것이죠.

저는 이 논쟁이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없구요.
일전에 <이정 박헌영 일대기> 독서후기를 쓰면서,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한 어리석은 접근 중의 하나는, '왼쪽이 옳으냐 오른쪽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며, 자칫 소모적인 비난으로 치우치기도 합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두 책을 둘러싼 학계의 논쟁은 이런 제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합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그것은 민족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시장의 세계적 통합을 추진하는 체제이고, 사회주의 역시 세계적 생산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방식과 주체만 다를 뿐 경제의 세계적 통합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죠.

따라서, ‘민족주의 좌파‘, ‘민족주의 우파‘는 모순적인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은 한국에서나 쓰이는 것이에요. 모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이 오늘날까지 공공연히 사용되는 이유는, 체제가 무엇이냐를 떠나 어느 누구도 분단을 원하지 않았던 해방전후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있는 까닭이죠.

사람들은 간혹, 현실이 불만족스러울 때 과거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식민지 운운하는 민족주의 좌파와 역사적 정통성 운운하는 민족주의 우파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통일 정부 만능주의든, 정통 정부 만능주의든, 역사와 이념을 부적절하게 뒤섞은 것입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사고에요.

탈민족주의 우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해방 직후의 자주적인 정부 구성에 대한 열망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와 1950년대 자본주의 경제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오늘날 북한의 폐쇄경제를 두고 결과론적으로 해방전후사에 개입하는 것도 그렇구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진영에서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탈민족주의 좌파에 귀를 기울여 볼 생각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과거에 집착하는 이들과 현재를 합리화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유의미한 역사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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