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대신, 과거 전체를 거부하거나 과거와는 뭔가 다른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애쓴다.

혁명운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및 비판능력의 저하는 이들을 필연적으로 체제내화시키고, 보수화 경향으로 인도한다.

노동계급 지도부의 계속된 배신행위와 혁명적 지도력의 위기가 결합된 반동과 부패의 시기에는 사기꾼들과 돌팔이 약장수들이 도처에서 준동하여 암약하기 마련이다.

제국주의국가들에서 국가권력 장악의 주요한 장애물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취약성에 부수하는 조직된 노동운동 지도부의 점증하는 보수적 경향이다.

상대적으로 후진군에 고립된 혁명은 제국주의 세계시장의 점증하는 압력을 견뎌낼 수 없었다. 단지 군사적인 압력 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압력을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노동관료들은 새로운 계급이 아니며, 자신을 재생산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어느정도까지는 자립성을 갖춘 역사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승리를 거머쥐지 않는다면 사회와 인류문명 전체가 파멸할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에서의 불가피함.

<오늘날의 공산당선언> : 선언이 발표 90주년을 기념하면서, 선언에서 아직도 유효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정리해내고 있다. 트로츠키는 선언이 계속해서 수정 보완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오직 선언이 서술된 기초인 ‘과학적 유물론의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한다고 하였다.

우리시대에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을 거부한다면, 혁명투사는 물론이고 단순한 정치평론가도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조국은 선진자본주의국가들에게는 가장 귀찮은 역사적 방해요소지만, 여전히 해방투쟁을 벌여야만 하는 후진국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요소인 것이다.

이론이란 보편화된 현실 그 자체이다.

<10월 혁명의 교훈> : 10월 혁명 자체에 대한 기록이나 논문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10월 혁명의 교훈을 도출해야 하는 이유를 강변하고 있고,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독재에 대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간의 논쟁, 4월 테제를 둘러싼 임시정부에 대한 태도, 7월 봉기를 둘러싼 소비에트에 대한 태도, 10월 봉기에 대한 결정, 등 혁명의 각 시기에 지속되었던 당내의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1917년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급격한 전환기에 봉착하면 진보적 정당들도 당분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 결과, 과거에는 옳았으나 이제는 모든 의미를 상실한 구호들을 외치는 경우가 너무 자주 있었다. 과거의 구호들은 이 경우에 역사의 급격한 전환이 갑자기 닥친 만큼이나 빨리 그 의미들을 갑자기 상실했다. ” 따라서 이러한 전환이 너무 갑자기 일어날 경우, 그리고 지난 시기의 관성과 보수적 활동방식이 당 주요 기구들을 지배할 경우,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준비해왔던 결정적인 혁명의 순간에 당은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당은 위기에 의해 파괴되고, 혁명운동은 당을 제치고 멀리 앞으로 나아가 패배로 줄달음치게 된다.

전략은 전술을 폐기하지 않느다. 노동조합운동, 의회활동 등의 문제들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장악을 위한 결집된 투쟁에 종속되는 하위수단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전술은 전략에 종속된다.

효과적인 수영법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물에 뛰어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혁명이론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혁명이 전개될 당시 드러난 온갖 견해들이 실제로 어떻게 현실의 시험을 거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역사의 무대에 완성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 공산당이 그 내부에 사회민주주의 경향과 볼세비키 경향을 동시에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리고 이 두 경향들은 정치권력 장악문제가 즉각 제기되는 혁명시기에 가장 명확하고 공개적이며 가식없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레닌의 일시적인 전술적 후퇴는 정치노선의 전환이 아니었다. (4월 테제와 5월의 크로슈타트 수병에 대한 레닌의 상이한 태도를 평가하면서)

4월당 협의회의 결정은 원칙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 내의 이견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이와 반대로 사태가 지행되면서 이견들은 좀더 구체적 형태를 띄었다. 그리고 혁명의 가장 결정적 순간인 7월에 가장 날카롭게 표현되었다.

부르주아혁명과 노동자혁명 사이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의회주의 학교가 권력장악의 유일한 또는 필수적인 훈련소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권력으로 향한 길은 반드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길로 통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앙상한 추상에 지나지 않으며 교조적 공식일 따름이다. 그리고 이 추상은 노동자 전위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기구라는 이름 하에 노동자전위를 사회민주주의 명찰을 단 부르주아 계급의 허깨비 야당으로 만들고 있다. 노동자의 정책은 초등학생들의 수학 공식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살아있는 운동에 의해 도출되어야 한다.

저돌적으로 투쟁하는 대신 대중이 시기를 기다리면서 단호하고 능력있는 전투적 지도력을 요구할 정도로 성숙했을 때 봉기는 일반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다.

레닌은 7월 시기의 사건들을 겪은 후, 소비에트를 절대시하는 경향에 대해 투쟁했다.

부르주아의회가 노동계급에게 어느 정도 정치훈련을 시켜준 바면, 부르주아계급 역시 의회를 통해 반혁명 전략을 훨씬 더 많이 고안했다. 이제 부르주아 계급은 의회를 통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사적 소유의 주요한 지주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가장 혁명적인 정당도 조직보존주의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의 활동에 필요한 안정성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으로 정도의 문제이다. 조직 보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보수주의는 노선의 혁신과 행동의 대담함을 통해 일상의 틀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운신의 자유와 결합되어야 한다.

당의 거대한 도약기에 장애물로 등장하는 지도자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그 하나는 주로 혁명의 난관과 장애물만을 보는 지도자이다. (중략) 두 번째 유형의 지도자는 피상적이고 선동적 방식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는 난관과 장애물에 정면 출돌하고 나서야 이것들을 인정한다. (중략)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이 두 유형은 손을 맞잡고 함께 행진한다.

<러시아혁명에 관한 세가지 사상> : 1905년 혁명을 거치며 드러난 농민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의 레닌과 트로츠키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레닌과 트로츠키는 독재의 사회적 성격과 임무라는 문제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멘셰비키의 자유주의적 전망과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농민을 비사회주의적 계급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런 규정이 결코 절대적이며 고정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전에 마르크스는 농민이 조급하게 판단하지만 동시 이성적으로 판단할 능력도 있다고 말했다. 정세가 바뀜에 따라 농민의 성격도 그만큼 바뀐다. 노동계급독재는 농민을 감화시키고 재교육시킬 수 있는 거대한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10월혁명을 옹호하며> : <러시아혁명사>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0월 혁명의 간략한 개략과 역사적 의의, 혁명의 의의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배계급도 자발적이고 평화적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포기한 적이 없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이성에 기초한 주장이 무력에 기초한 주장을 대체한 경우는 없다.

이미 수명이 다한 사회질서를 쓸어버리기 위해 진보적 계급은 자신의 시간이 왔음을 이해하고, 권력장악 임무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식적인 혁명투쟁의 장이 열린다.

세계자본주의의 사슬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보수정치와 달리 혁명정치는 은폐와 기만을 배격한다. 이것을 나는 그동안 믿어왔으며, 지금도 믿고 있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노동자국가의 최고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비 오듯 쏟아지는 불행은 얼마나 처참한가! 혁명의 결과는 그로 인해 야기된 희생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결과를 낳지 않는 허망한 질문이며 철저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마치 역사과정이 대차대조표로 계산될 수 있는 모양이다!

자유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은 인생 대부분을 육체노동에 바치도록 더 이상 강요되지 않는다. 둘째, 인간은 자신의 등뒤에서 작동하는 맹목적이고 알 수 없는 시장법칙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다. 이간은 계획의 범위 내에서 자신의 경제를 자유롭게 운영한다. 사회구조를 X선으로 철저히 찌고, 그것의 모든 비밀을 파헤치고, 그것의 모든 기능을 인간의 이성과 집단적 의지에 복종시키는 것이 이제 경제운영의 목표가 된다.

통제되지 않는 시장법칙을 합리적인 계획으로 대체하고, 생산력을 인류의 필요에 조화롭고 충실하게 기여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 과업이다.

<스탈린주의와 볼셰비키주의> 스탈린주의의 죄악을 볼셰비키주의로부터 도출하려는 무정부주의자들을 비롯한 일부 세력에 대한 비판. 스탈린주의와 볼셰비키주의의 본원적 차이점 서술.

전위는 최소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진지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적 진지는 막대한 희생을 대가로 치른 과거의 투쟁경험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이 방침을 종파적인 것으로 여길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물결과 함께 새롭고 거대한 파도를 준비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소비에트국가의 타락을 순수 볼셰비키주의의 진화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은 여러 구성요소 중에서 순수논리에 따라 분리해낸 오직 한 가지 요소만을 내세워 사회현실을 무시하려는 것이다.

레닌은 “달콤한 공산주의적 헛소리” 보다 적들의 냉소적인 말을 더 유익하게 여겼다.

불리한 역사적 조건에서는 볼셰비키당도 볼셰비키주의를 상실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한 지류인 사회민주주의는 권력을 장악한 뒤 자본주의의 공공연한 대리인이 되었다.

국가, 심지어 노동자국가조차도, 계급적 야만의 소산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최종 목표 즉, 국가의 폐지에 관해서 무정부주의자들과 완전히 일치한다.단순히 무시해버림으로써 국가를 폐지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에서만 마르크스주의자는 국가주의자이다.

무정부주의사상은 자유주의적 합리주의의 포로이다.

위험의 근원은 정책이나 전술이 아니라 노동계급독재의 물질적 취약성에 있었다.

단일정당의 지배는 스탈린 전체주의정권의 법률적 출발점 역할을 했다.

볼셰비키주의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인 제국주의시대를 분석했다. 즉, 쇠퇴하고 있는 자본주의시대의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분석했다. 즉, 쇠퇴하고 있는 자본주의시대의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분석했다. 총파업과 봉기의 상호관계 및 노동계급혁명시대의 당, 소비에트, 노동조합의 역할을 분석했다. 또한 소비에트국가론, 이행기경제론, 자본주의쇠퇴기의 파시즘과 보나파르티즘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마지막으로 볼셰비키당 자체와 소비에트국가의 타락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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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계급들 사이의 합의나 교제가 불가능해지면 민주적 기관들의 토대는 사라진다.


볼셰비키당은 부르주아국가가 소수민족에게 의무적인 시민권이나 국어를 강요하는 것도 단호히 거부했다. 반면에, 자발적인 계급적 규율로 여러 민족의 노동자들을 가능한 긴밀하게 결속시키는 것을 진정 성스러운 임무라고 생각했다.


볼세비키당의 지도를 받는 대중이 승리할 위험성이 커지는 것에 비례하여 그루지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러시아 화해주의자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루지야 내의 반동세력과 유대를 더 긴밀히 했다. 그리고, 소비에트가 승리하자마자 러시아의 단결을 주창했던 이들은 분리 독립의 나팔수가 되었다.


화해주의자들에 의해 기가 꺾인 소비에트가 아니라 공장위원회를 토대로 삼아야 한다. 혁명승리 후 소비에트는 권력기관으로 새로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군사작전을 수립할 때, 나보다 더 겁많은 인간은 없을 것이다. 나는 모든 위험드과 불행을 겪을만한 일들을 다 과장한다. 그러나, 일단 결정하면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것만 빼고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볼셰비키당이 고도로 단련되었다는 증거는 이견, 동요, 심지어 공포의 전율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제때에 내적 위기를 통해 당을 정비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건에 결정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에 있다.


구 권력을 타도하는 것과 권력을 스스로 장악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대장장이가 빨갛게 달아오른 쇠를 맨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은 곧바로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 이 임무에 적합한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음모를 통해 대중봉기를 조정하고, 음모를 봉기에 복종시키고, 음모를 통해 봉기를 조직하는 것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봉기의 기예”라고 불렀다.


소비에트 자체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소비에트는 강령과 지도부에 따라 다른 목적에 봉사할 수 있다.


노동계급정당이 단호하게 인민대중의 희망과 기대를 제때에 혁명적 행동으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혁명의 밀물은 급격하게 썰물로 바뀌게 된다. 이때 중간계층은 혁명 진영에서 눈을 돌려 반혁명 진영에서 구세주를 찾는다.


자본주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우선, 국가권력을 필요로 하는 계급관계의 살아 움직이는 체제이다.


결과를 미리 예측하기가 가장 어려우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봉기의 임무는 군대를 자기편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철도역, 발전소, 탄약고, 식품점, 급수시설, 드보르초비 교량, 전화교환소, 국영은행, 대형 인쇄소 등을 점령했다. 전신국과 우체국은 완전 장악되었다. 모든 곳에 믿을만한 경계병들이 배치되었다.


혁명의 일반적 조건이 주어진 경우에 봉기는 실제적인 기예의 문제이다.


시야를 마지막 봉기의 순간에 한정시키지 않을 경우에만 10월 혁명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적 체포는 복수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 문제가 결정된다. 무엇보다도 코르닐로프와의 명백한 유착행위에 대해 정부는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야 한다. 사회주의 장관들은 가택연금에만 처해질 것이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하층 인민의 결의문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인민대중의 창조적 능력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핵심적으로 중요한 일은 농민으로 하여금 이 나라에 더 이상 지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민 스스로가 모든 문제들을 결정하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기회주의인가? 아니다, 이것은 혁명적 현실주의이다.


혁명이 시작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가 보편적 복지의 왕국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혁명의 적들은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맹목적인 적대감 때문이 아니라면 사회주의가 펼칠 마술에 대한 지나친 숭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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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이것은 혁명대중이 혁명의 법칙들을 인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대중의 의식은 우연히 변화하지 않으며, 이론적으로 설명 가능한 객관적 필연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대중의 의식은 예측 가능하며 지도가 가능하다.

궁핍만으로 봉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만약 이 설명이 옳다면, 대중은 언제나 봉기를 일으킬 것이다. 사회체제가 파산했음이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되면 대중은 더 이상 궁핍을 참아내지 않는다.

유물론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서술자의 임무이다.

주관적 의지와 객관적 현실의 불일치는 삶과 예술에서 비극은 물론이고 희극의 원천이기도 하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특히 정치분야는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과 정당은 오직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서만 영웅적이거나 희극적일 수 있다. 혁명을 나무토막으로 막으려 했던 혁명가들을 비꼬지 않고 묘사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고, 현학자들을 위해 객관성을 배신하는 것과 같다.

혁명상황에서 가장 해로운 정책이 바로 애매함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병자의 몸에 과감히 칼을 댄 외과의사와 마찬가지로 혁명정당은 절대로 동요하면 안된다.

권력을 잡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혁명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결정적 요인은 대중의 의식상태이다.

대중의 환상을 일체 공유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최소한의 손실 속에 필요한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대중을 도와야 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대중정당인 볼세비키당은 대중과 같은 입장에 서야 했다.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유산계급은 혁명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 계급은 더 이상의 혁명 진전을 막기 위해 반동세력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 혁명으로 타도당한 계급들의 호의를 사려는 조치를 취하는 순간, 이 혁명적 자본가계급은 인민대중의 분노를 촉발시킨다.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은 계급적 차이를 간과하고 판에 박힌 뻔한 말들로 간단히 판단해버린다. 또한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모두가 다 잘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들은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유일하게 다수의 지도자가 된다.

기존 질서를 변화시켜야 할 때에는 폭력을 거부하다가 이것을 방어할 때에는 가장 무자비한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이 정치폭력을 반대하는 자들의 일반적인 도덕이다.

자유주의의 원칙은 경찰체제를 동반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무정부주의는 자유주의에서 경찰을 제거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순수한 산소를 흡입할 수 없는 것과 꼭 같이 경찰이 없는 자유주의는 사회의 붕괴를 가져올 뿐이다. 자유주의의 그림자인 무정부주의는 대체로 자유주의와 운명을 같이 해왔다. 계급모순이 첨예화되면서 자유주와 함께 무정부주의도 사망했다.

대중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들에서 소비에트는 점점 더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에 대당할 수 없었다.

볼세비키당은 언제나 소비에트 보다는 대중 사이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반면에, 화해주의자들은 여전히 대중들보다는 소비에트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볼세비키당은 세력이 약했을 때에도 미래가 있었다. 그러나 화해주의자들에게는 과거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과거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돌팔이가 아니다. 우리는 대중의 의식에 기초해서만 활동해야 한다. 소수로 머무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소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대중을 지배계급의 속임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는 비판을 수행할 것이다. 우리 노선은 올바른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 모든 피억압대중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들에게는 다른 탈출구가 없다.

신중함은 제동장치이지 원동력이 아니다. 제동장치를 밟은 채 앞으로 나아간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신중함만으로 무엇을 이룬 사람 역시 하나도 없다. 그러나 투쟁은 역관계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대담해지려면 우선 신중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에게 권력이 넘어간 후에야 조국을 방어할 것이다. 리가가 함락되든 페테르부르크가 함락되든 우리는 부르주아조국을 방어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노동계급혁명을 주장한다.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 우리는 조국방어주의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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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에 대중이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혁명의 가장 명확한 특징이다.

수십 년동안 진행되는 반체제 세력의 비판은 대중의 불만을 배출시키는 안전밸브에 불과하다.

대중은 사회재구성에 관한 준비된 계획을 가지고 혁명에 돌입하지 않는다. 다만, 구 체제를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격렬한 감정으로 혁명에 돌입할 뿐이다. 계급대중의 지도적 부위만이 정치강령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혁명의 시험과 대중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혁명의 근본적 정치과정은 대중이 사회위기로부터 도출되는 문제들을 서서히 이해하는 데에 있다.

혁명의 각 단계들은 지도적 정당들의 변화에 의해서 확인되는데, 정당 내의 더 과격한 분파가 항상 덜 과격한 분파를 밀치고 등장한다.

지도조직이 없다면 대중의 혁명에너지는 피스톤 실린더 안에 들어가지 않은 증기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질 뿐이다. 그러나, 역시 원동력은 피스톤이나 실린더가 아니고 증기에게 있듯이 혁명의 원동력은 대중에게서 나온다.

관념주의자들과 절충주의자들이 제아무리 법석을 떨어도 의식은 객관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푸가초프 반란은 귀족계급의 이익을 지켜주는 관료적 절대주의체제의 강화를 가져왔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의 경제발전은 수공업 길드와 공장제 수공업 시기를 건너뛰었다.

러시아사회의 일반적 발전과정에 조응하여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생산지는 공예-길드가 아니라 농업이었으며, 도시가 아니라 농촌이었다. 여러 시대를 거쳐 형성된 영국의 노동자계급은 과거의 짐을 고스란히 지고 있었다. 반면,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환경, 유대, 관계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과거와 날카로운 단절을 겪으면서 도약하였다. 바로 이 점이 짜르체제의 집중적인 억압과 함께 러시아 노동자들을 혁명사상의 가장 대담한 결론들에 쉽게 동화되도록 만든 요인이었다.

제2인터내셔널의 정치적 파산과 함께 발발한 전쟁은 정치적으로 노동자들을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다.

케렌스키도 이렇게 한탄했다. "그렇다, 자유러시아는 그렇게도 많이 말하고 그렇게도 많이 준비했던 위로부터의 쿠데타를 제때에 성사시키기에는 너무도 행동이 굼떴다. 러시아는 자생적인 폭발 즉, 혁명을 저지하기에는 행동이 너무 느렸다.

전제적 반봉건적 체제에 저항하는, 따라서 귀족계급에 저항하는 혁명은 그 첫 단계에서 일반귀족들 뿐 아니라 왕실 사람들을 포함하여 최고 특권상층부의 비체계적이고 일관되지 못하나마 진정한 협력을 얻는다.

장교가 지도적 병사를 살해하기 위해 권총 방아쇠를 당기려는 결정적인 순간, 카유로프와 추구린 같은 지도자를 가진 군중 가운데 누가 총을 쏴 장교가 쓰러진다. 바로 이 순간이 시가전의 운명 뿐 아니라 그날 전체 또는 봉기 전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혁명의 주요한 현장은 나라의 수도이다.

사회혁명당 좌파의 최근 지도자 므스티슬라프스키는 2월 봉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당 사람들이 마치 성경에 낭는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졸고 있을 때, 혁명은 갑자기 찾아왔다."

운동이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고, 병사들이 스스로 거리로 나섰다. 대게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생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결국 '자연발생적으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자연발생성 사상으 자연과학보다 사회과학에서 더 부적절하다.

혁명은 아직 자기에게 걸맞는 의례를 갖추지 못한다. 거리는 연기가 자욱하고, 대중은 아직 새 혁명가요를 배울 생각이 없다. 회의는 마치 홍수가 난 강물처럼 원칙도 없이 무질서하게 진행된다. 소비에트는 자신에 대한 열정으로 목이 멘다. 혁명은 막강했으나 아직은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다.

혁명과 반혁명 모두는 독재체제 수립을 강력히 요구하는데, 이는 이중권력의 참을 수 없는 모순에서 나온다.

소비에트도 모든 대의기구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결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직체계상에서 연유하는 불가피한 측면을 반영한다. 다만, 이러한 결점들을 최소화하는 데에 소비에트의 강점이 있다.

군대는 언제나 자기가 모시는 사회를 그대로 모방한다. 다만, 사회관계를 응축된 형태로 표현하여 이 관계의 긍정적 부정적 특징 모두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회와 차이를 보인다.

사회는 그리 이성적이지 않아서 사회주의를 위해 경제적 문화적 조건이 성숙한 바로 그 순간에 맞추어 노동계급독재를 수립하지는 않는다. 인류가 그렇게 이성적으로 진화했다면, 일반적으로 독재나 혁명은 필요없었을 것이다.

레닌은 운동의 내적 논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수립했다. 바로 이것이 레닌의 최대 장점이었다. 그는 자기 계획은 대중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대중이 스스로의 계획이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이것을 실현하도록 도왔을 뿐이다.

공장과 연대의 적극적 대중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장점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는 여전히 대의기관이며, 따라서 의회주의의 한계와 왜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대의기관은 대중투쟁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쉽게 대중투쟁에 대한 보수적 장애물이 되어버린다. 바로 이것이 소비에트 형태를 포함한 대의제도의 고유한 모순이다. 대표들을 계속 물갈이하는 것이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제적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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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해악은 자본가계급의 사치가 아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은 상당한 기간 동안 필요한 물질적 기초로 남아 있을 것이며 경제정책의 오류를 교정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이다.

개별 농민기업에 대한 우유부단, 거대 계획에 대한 불신, 최소 경제개발 속도의 옹호, 국제문제에 대한 방기 등이 전부 모여서 "일국 사회주의" 이론의 핵심을 구성하였다.

집단화의 진정한 가능성은 농촌의 위기의 깊이나 정부의 행정적 열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생산자원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 즉, 대규모 농업에 필요한 기계를 제공해주는 공업의 능력에 달린 문제이다.

이미 달성된 노동생산성과 무관하게 소유형태만 가지고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이다.

소련이 생산과 분배의 안정을 확보한 사회주의의 첫 단계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는 중요한 사실 때문에 소련의 발전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기 보다는 모순에 가득찬 것일 수 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를 이어주는 교량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 체제는 일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욕구를 가장 잘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여 계획 생산을 도모하는 체제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주의라는 이름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암소가 사회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암소의 수가 너무 적거나 암소의 유방이 너무 왜소할 경우는 불충분한 우유 공급으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난다.

도급제의 비밀을 발명한 것은 소련 관료들이 아니었다. 이 제도는 외부적인 강제가 가해지지 않으면서 노동자를 옥죄는 제도인데, 이것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 가장 적합한 제도" 라고 생각했다.

루블화를 더 많이 손에 넣기 위해 노동할 경우 사람들은 "능력에 따라" 즉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신경과 근육의 상태에 맞추어 노동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 일하게 된다. 도급제 방식은 조건적으로 그리고 엄혹한 필요 상황에서만 정당화 될 수 있을 뿐이다.

노동자국가에서 대중에 의해서 행사되는 강제력의 강도는 착취의 경향 즉 자본주의로의 복귀 위험과 정비례한다.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새로운 체제에 대한 대중의 충성심의 정도에 반비례한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지 않다. 개개인에 의한 비리난 권력남용의 가능성과 불가피성을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남용들을 억압해야 할 필요성 역시 마찬가지로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취하는데 있어서 특별한 억압기구는 필요치 않다. 이것은 무장한 인민들 스스로가 알아서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문명화된 인민이 싸움하는 사람들을 뜯어말리고 여성을 폭행하는 행위를 그치게 하는 것과 같이 아주 단순하고 쉽게 인민들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10월 혁명에 의해서 확립된 혼인법과 가족법은 당당한 긍지의 대상이었는데, 이제 부르주아 국가들의 법률창고로부터 대대적인 차용을 하면서 고쳐지고 찢겨졌다.

사회주의는 금욕주의가 아니다. 정반대로 기독교의 금욕주의와는 아주 적대적이다. 사회주의는 번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러한 관심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프롤레타리아의 독재체제는 미래의 문화가 아니라 과거의 야만상태를 반영할 뿐이다.

소련 정부가 제국주의 정부와 상업적 외교적 군사적 협상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이것이 해당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제한하거나 약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볼셰비키당의 원칙이었다.

평화주의 구호, 자본주의 하에서의 국제적 군비축소, 중재재판소 등은 반동적인 유토피아일 뿐만 아니라, 근로인민에 대한 노골적인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합의를 통해 군비축소가 실현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명백히 화상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새로운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무기가 있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전쟁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검열은 군사기밀을 방어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일에 대해서도 간섭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계급이 아니라 지휘할 수 있는 위치이다. 엔지니어와 의사들을 계급이 없다. 그러나 사회는 이들을 필요한 위치에 배속시키는 수단을 찾아낸다.

어떤 군대로 군대를 양성하는 사회체제보다 더 민주적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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