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사건의 영향 - 1934년 프랑스 우익의 쿠데타에 붙여」

공동전선은 다양한 가능성들을 열어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공동전선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오직 대중의 투쟁만이 결정할 뿐이다.

위대한 전쟁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멋진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행위이다. 이 정의는 내전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 물리적 투쟁은 정치투쟁의 다른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군사기계 뒤에는 기술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사냥감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소총에 총알을 장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너무 신중한 사냥꾼이 말한다. 그러나 사냥감이 나타났을 때 장전하면 너무 늦는다.

'만약에' 라고 생각하는 것은 투쟁형태가 부르주아계급의 선의에 따르며 계급이해의 비타협성에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다시 한번, 프랑스는 어디로?>

경기의 요동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타도하기에 좀 더 쉽거나 좀 더 어려운 상황을 조성할 뿐이다.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상승했기 때문에 과거의 방식대로 선전, 선거활동, 조직 등에만 치중하면 승리가 저절로 성취될 것이라는 개량주의적 환상이 조금씩 생겨났다.

맑스주의자와 레닌주의자에게 선동은 언제나 대중과 나누는 대화이다.

혁명적 위기가 다가오면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지도자들이 대중의 보수적 경향 뒤로 숨어버린다.

지방자치선거와 의회선거는 계급역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아니다.

노동계급 지도자들은 대중 앞에 혁명적 군력장악의 임무를 계속 제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총파업의 정치적 의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총파업에 대해서 감히 입도 뻥끗하면 안된다. 총파업을 투쟁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곧 혁명투쟁을 부인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노동계급을 파시즘 세력에게 팔아넘기는 범죄행위가 된다.

기회주의와 모험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현대적 기술로 무장한 군대에 대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주장만큼 공허하고 진부한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군대의 핵심부를 획득하거나 최소한 중립화시키지 않고는 혁명은 승리할 수 없다.

결정적인 것은 단결 자체가 아니라 단결의 실제적 내용이다.

독재의 기초는 노동자 민주주의다.

<결정적 단계>

대중은 행동을 통해서만 배운다. 이들에게는 이론적인 연구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세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스탈린은 러시아의 인민전선을 제압했던 10월혁명의 이름으로 프랑스의 인민전선을 지원했다.

<결정적인 순간>

원하든 원치 않든 지구가 계속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확인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계급투쟁의 법칙들은 우리가 인식하든 않든 독립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혁명계급의 혁명적 공세가 제때에 객관적 요인을 돕지 않는다면 혁명적 상황은 반혁명적으로 변한다.

투쟁전선에 제일 먼저나서고 제일 나중에 물러서는 혁명정당의 도리

<프랑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논조는 정치적 내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내용인 것입니다.

<중도주의와 제4인터내셔널>

중도주의의 치명적인 질병은 자신의 일반적인 원칙으로부터 전술적 조직적 결론들을 용기있게 도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혁명운동의 역사 전체는 중도주의자들이 이렇게 사실들과 사상들을 가지고 숨바꼭질하는 행태를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혁명가는 정치적 거처를 두 곳에 둘 수 없습니다. 영혼을 위해 부르주아 거처에 있다가 현실정치를 위해 노동자 거처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중성은 노동자 혁명과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공동전선"은 대중조직들간의 문제일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트로츠키주의와 노동자농민사회당>

분파가 무엇인가? 가능하면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자신들의 올바름을 당에 설득시키려는 목적으로 당내에 생각이 가장 가까운 자들이 일시적으로 규약없이 자발적으로 모인 그룹이다.

정치인의 견해가 애매모호하면 할 수록 그리고 그가 남의 비판을 참는 능력이 적으면 적을 수록 그에게는 날카로운 논쟁이 비하하는 발언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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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당한 혁명
레온 뜨로츠키 지음, 김성훈 옮김 / 갈무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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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이후 러시아에 대한 분석

트로츠키가 누구인지, 그리고 제가 왜 트로츠키의 저작을 권하는지에 대해서는 지난 <인민전선 비판> 후기에서 대략 말씀을 드렸습니다.
트로츠키는 오랫동안 당내의 비판세력으로 남아있었지만, 1933년 소련 공산당이 히틀러의 집권을 눈감은데 대해, 더 이상 소련 공산당의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 해에 ‘국제공산주의자동맹’ 을 창립하고 코민테른 (소련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각국의 공산당 연합. 본래는 ‘제3인터내셔널‘ 이라고 합니다.) 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조직 (제4인터내셔널) 을 준비하게 됩니다.

<배반당한 혁명>은, 볼세비키당 중앙집행위원으로서 1917년 혁명을 이끌었던 트로츠키가 스탈린을 위시한 관료집단에게 장악되어버린 볼세비키당에게, 그리고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에 던지는 파산선고와 같습니다.
그는 이 저작의 후반부에 ‘평화적인 해결책은 불가능하다’ 라고 못박으면서, 다시 한번 정치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소비에트 공화국은 자본주의로 복귀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1917년 이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연방 해체 이전의 소비에트 연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배반당한 혁명>은 러시아의 각 분야에 대한 트로츠키의 세심한 분석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 사회주의는 포커판의 조커(Joker)가 아니다?

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이후, 한국에서는 소련의 사회체제에 대한 규명 논란이 한참이었을겝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서구에서 이미 반세기 전에 논란이 되었던 얘기들이 이제야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옵니다. 제가 소개하는 <배반당한 혁명>이 1936년에 출판되었고, 정통 트로츠키주의와는 견해를 달리하는 토니 클리프의 분석이 1948년에 출판되었습니다. 물론, ‘소련은 곧 죽었다 깨어나도 사회주의며, 연방의 해체는 곧 사회주의의 몰락이며 동시에 위대한 자본주의의 승리‘ 라는 사람들도 있었죠. 가장 많았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오해 중 하나는, 바로 사회주의를 포커판의 조커(Joker) 쯤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두고 회심의 조커를 던져 일어난 마술인 것 마냥 생각하고는, 그 결과가 시원치않자 이내 비방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들이 마르크스-엥겔스의 이론을 조금이라도 읽어주는 예의를 보이기를 바랍니다.

저의 조약한 수준에 비추어봤을 때에도, 사회주의는 언제든 내키는 대로 꺼내어 쓸 수 있는 조커가 아닙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계획적인 생산을 하지만, 이 형식만을 가지고 사회주의라고 얘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형식은 사회주의를 구성하는 일부분일 뿐이며, 생산수단의 국유화나 계획적인 생산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공기업, 공공의료, 공공교육, 계획경제, 등으로 존재하니까요.

마르크스는, 경제체제의 변화 발전이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 일어난다고 분석하였습니다. 미래의 어떤 시대도 과거보다는 뛰어난 생산력을 가지고 있는데, 일정시점이 되면 노예제니 봉건제니 자본제니 하는 한 시대의 고정되어 있는 생산관계와 갈등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의 이론에 따른다면, 사회주의는,
‘생산력’ 에선 자본주의보다 나은 생산력을 보유할 것인데, 이는 ‘생산관계’ 의 변화를 통해서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인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경쟁에 따른 무정부적인 생산‘을 ’공공소유와 계획적인 생산‘ 으로 변경하는 것을 통해서, 생산력이 월등히 나아진다는 것이죠.

생산력 없이 생산관계만으로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달성된 노동생산성과 무관하게 소유형태만 가지고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이다.“


# 자본주의도 아닌, 사회주의도 아닌

그래서, 트로츠키는 시작을 러시아 각 산업부문의 낙후된 생산력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것을 통해서 이전에 기대할 수 없었던 훌륭한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생산력이 월등히 낮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그는 암소에의 비유를 드는데, “암소가 사회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암소의 수가 너무 적거나 암소의 유방이 너무 왜소할 경우는 불충분한 우유 공급으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난다.” 는 것입니다.

1905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짜르가 통치하던 봉건 러시아는 굉장히 낙후한 국가였습니다. 산업혁명을 이룩한 서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노동자 보다는 농민이 월등히 많았죠. 1917년에 혁명을 일으켜 직접 정부를 장악했지만, 이미 낙후되어 있던 생산력에 대한 파급효과에는 한계가 분명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혁명 직후 치러야했던 국내외의 전쟁들로 산업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따라서, 트로츠키는 이렇듯 생산력이 낙후한 소비에트 공화국을 두고,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이행기 체제’ 라 규정하였고, 소비에트 공화국이 사회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혁명을 통해 수립한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나은 생산력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계획 생산과 더불어, 상품 가격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함께 존재하는 이행기 체제이지만, 전자는 지향되고, 후자는 지양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에 실패한다면, 다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죠.

실제, 소비에트 공화국은 내전 기간 국유화, 노동의무제, 곡물징발제, 식량배분제, 등의 ‘전시공산주의‘ 정책을 실시했지만, 내전이 종식된 1921년에는 신경제정책(NEP)을 통해 자유농을 인정하고, 농산물 판매를 허용하며, 사기업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행기 체제란, 실로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이었죠.

“소련이 생산과 분배의 안정을 확보한 사회주의의 첫 단계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는 중요한 사실 때문에 소련의 발전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기 보다는 모순에 가득찬 것일 수 밖에 없다.“


# 생산력,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혁명의 객관적 요소

제가 장장 두어달에 걸쳐 읽었던 3권짜리 <러시아혁명사>의 대단원에는, 혁명 직후에 열렸던 전러시아소비에트대회가 묘사되고 있는데, 이 대회에서는 각 분야에 대한 결의문이 채택됩니다.
이 중에서 주목해볼만 한 것이 바로 ‘토지문제’에 대한 결의문인데요, 소비에트 정부는 토지문제에 관한한 사적소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토지정책이란,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공동으로 생산하는 것이지만, 소비에트 정부는 이를 강제적으로 집행하는 방식을 반대했던 것입니다.

소비에트 정부는 몇 개의 집단농장을 설립해 집단생산 방식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농민들을 설득하려고 했죠.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집단생산이 가능하도록 농기계를 비롯해서 충분한 생산력이 확보되어야 했던 것이구요.

하지만, 비록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1921년 이후 시행했던 신경제정책은 시장주의의 요소를 반영하고 있었고,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부의 불평등을 조장하게 됩니다. 농촌에서는 부농(쿨락)이 탄생하게 되고, 농민계층의 분화가 일어납니다.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테러를 통해 권력을 찬탈한 경우가 아닌 이상, 정부의 성격이란 국민들의 성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예로, 대규모 공단이 밀집해있는 울산이나 창원과 같은 도시에서,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나 지역단체장이 당선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업화가 뒤처지면서 집단농장 계획이 지연되자 일시적으로 허용했던 시장주의의 결과로 농촌의 분화가 고착화되고, 이는 곧 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개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탈린이라는 소부르주아 관료집단의 집권배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자 노력했고, 이행기 체제의 모순적 성격에 덧붙여 내전으로 인한 적군의 사기저하, 세계혁명 - 주로 1923년 독일혁명 - 의 패배, 좌익반대파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 레닌의 병환과 사망, 등을 결론내립니다.

“집단화의 진정한 가능성은 농촌의 위기의 깊이나 정부의 행정적 열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생산자원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 즉, 대규모 농업에 필요한 기계를 제공해주는 공업의 능력에 달린 문제이다.“


# 껍데기 사회주의

스탈린은 1922년에 공산당 서기로 집권하면서, 경제 5개년계획과 농업에 대한 강제집산화를 실시합니다. 강제정책에 의해 몇년 사이에 거의 100%의 농장이 집산화되었고 스탈린 정부가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상은 집산화의 진정한 목적인 생산력의 발달은 이루지 못한 껍데기 집산화에 불과했고, 응당 농민들은 집단농장에서 보다 개인의 텃밭에서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스탈린은 토지정책 외에도, 1936년에 스탈린 헌법을 제정할 때 까지 가족, 군대, 여성, 정치, 예술,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정책들을 집행하였는데, 이 정책들의 일관된 특징은 ‘목적과 수단이 혼동된 껍데기 정책’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성들을 가사에서 해방시킨다며 병원, 탁아소, 유치원, 학교, 공공식당, 공공세탁소, 보건소, 등을 확장했지만 공산당 관료들이나 스타하노프 운동원들만이 특권적으로 이용했고, 낙태를 금지했으며, 군대에 계급제도와 장군직위를 부활시켰으며, 사회주의가 이미 완성되었다면 정당 설립의 자유를 억압하고, 온갖 검열제도로 예술표현의 자유를 차단하였습니다.

그는 소비에트 공화국이 처해있는 이행기 체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멸해가야 할 것들을 정책적 강제로 없애려 하였고, 이는 노동자 대중을 대상화시키고 강제를 집행해야할 관료기구를 비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중의 자발성이 최대한으로 발현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사회주의로부터, 그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던겁니다. 이미 사회주의를 이루었다는 공허한 선언만이 나돌았습니다.

체제화된 인자들로 재구성된 볼세비키당은 1933년 모스크바 재판으로 불리우는 피의 숙청, 스페인과 프랑스에서의 인민전선 전술, 1939년 파시스트 히틀러와의 불가침 조약, 그리고 마침내 ‘일국 사회주의론’을 주창하기에 이릅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공화국에 개혁의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한번 정치혁명을 통해 관료체제를 대체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로 복귀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 ‘퇴보한 노동자국가론‘ 과 ’국가자본주의론‘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혁명이란, 소수의 폭력으로 권력을 찬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혁명의 목적은 권력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주체를 바꾸는데에 있습니다. 그 주체가 없는 소수만의 폭력으로 이룩한 권력찬탈은 혁명도 아닐뿐더러, 지속되지도 못할테니까요. 사회주의자는 테러리즘에 반대합니다.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은, 단지 소비에트 공화국의 체제를 분석하고 스탈린 관료체제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주의 혁명 일반의 원칙과 법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몇몇 지식인들이 그러하듯 공상적으로 개발된 사회모델을 끼워맞추려 애쓰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가져올 체제의 위기와 대중의 고통을 확신하기 때문에, 단지 이것을 예비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실패도 성공도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것이겠죠.

초반에 말씀드렸던 것 처럼, 트로츠키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공화국을 이행기 체제에서 자본주의로 후퇴하고 있는 노동자국가로 바라보았지만, 이들은 스탈린 집권 이후의 소비에트 공화국을 노동자국가와는 거리가 먼 국가자본주의로 바라봅니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이 러시아를 침공할 때 실천적인 차이를 드러냅니다.
실제, 트로츠키는 멕시코에서 암살당하기 직전에 코민테른을 대체할 제4인터내셔널을 창립하는데, 그의 사후에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자칭하는 사람들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방어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치기도 했어요.

저는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트로츠키주의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공화국과 여타 자본주의 국가를 동일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소비에트 공화국의 노동자들이 정치혁명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완전한 자본주의로 퇴보할 것이라고 분석했으니까요.
그가 이러한 분석을 발표한 것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10년전의 일입니다. 더구나, 북한에는 노동자들 스스로 세운 권력이 존재하지도 않았구요.

저는 앞으로 이 부분을 좀 더 파고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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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전선 비판
레온 트로츠키 지음 / 풀무질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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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세된 상상력, 사회주의


우리가 기껏해야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91년에 ‘현실 사회주의’라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당시 젊은이들은 사회주의를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배우기 이전에, ‘사회주의의 패배’를 먼저 배워야 했죠.


당신들이 사회주의자이냐 소련주의자이냐, 한 연방국가의 해체가 어떻게 사람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느냐 반문해보기도 합니다만,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던지는 반문보다 중요한 것은, 80년대 한국의 사회주의란 곧 소비에트 연방을 뜻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일겁니다.


여하튼, 그들은 여러 제도권 정당으로 시민사회운동으로 흩어지면서, 동생들에게 ‘사회주의‘를 물려주지 못하고 ’사회주의의 패배‘라는 가치판단까지 함께 물려주었습니다.

우리의 사회주의적 상상력은 거세되었고 우리의 사고는 자본주의를 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해악들을 지켜보면서도, ‘어쩔 수 없다’ 가 합리적인 사고로 자리잡았습니다.


소련주의자가 중국주의자가 북한주의자가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패배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로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거세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을 때, 한국에서야 난리가 났겠지만 유럽에서는 그만 못했을겁니다. 스탈린, 혹은 소비에트 연방이 정치적으로 사망한 것은, 유럽에선 오래 전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들은 소비에트 연방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리법석을 떨지 않았습니다.


# 트로츠키를 읽읍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주도했던 레닌은 1924년에 병환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기 권력을 스탈린이 승계하게 되죠. 많은 사람들이 1917~24년의 러시아와, 1924년 이후의 러시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스탈린이나 레닌이나 패배한 사회주의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레닌 사후에도, 레닌주의를 계승한다며 스탈린과 대립했던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볼세비키당(소련 공산당)의 일부였는데, ‘좌익반대파‘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제가 소개하려는 트로츠키가 바로 ’좌익반대파‘를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1917년 혁명에서 활약했고, 소비에트 공화국의 외무인민위원(외교부 장관)을 맡았으며, 1918년부터의 내전에서는 적군(赤軍, 소비에트 공화국군)에서 활약했습니다.


좌익반대파는 1929년에 결성되었고 당내 비판세력으로 자리하다가, 스탈린에 의해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1933년 스탈린이 파시스트 히틀러의 집권을 수수방관하자 비판에서 더 나아가 대안세력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1936년 이후의 인민재판과 숙청의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트로츠키도 1939년에 소련비밀경찰에 의해 망명국 멕시코에서 사망하게되죠.


좌익반대파의 비판은 응당 스탈린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어떤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었습니다.

우리가 좌익반대파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과, 트로츠키 저작을 읽어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자본주의)사회의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 사회주의적인 분석을 빼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류는 사회주의에 대한 짧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사회주의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이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존에 우리의 시선이 스탈린의 러시아에 머물러 있었다면, 스탈린 집권 이전의 러시아와 집권기의 좌익반대파와의 논쟁, 스탈린 러시아 이후의 좌익반대파의 행보에 대해서 주목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


# 인민전선


<인민전선 비판>은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의해 러시아에서 쫓겨난 후 망명지에서 집필한 저작입니다.

트로츠키가 이런 제목의 책을 집필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가 집필한 몇편의 원고를 묶어 출판한 것입니다. 미국의 패쓰파인더 출판사(PathFinder, 길을 찾는 사람들?)에서 그의 영문판 저작을 많이 출판하고 있죠.


인민전선이란, 노동자 정치세력과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공동전선을 뜻합니다.

당시, 스탈린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하나로 뭉쳐서 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죠. 쉽게 얘기해서 일단 싸움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뭉쳐서 파시즘 먼저 없애자는 것입니다.


충분히 허무맹랑할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김명수씨는 “우리나라 좌익의 역사 자체가 인민전선노선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선거를 들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02년 대선에서도 이런 얘기들이 있었죠. 한나라당 이회창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니, 어차피 당선되지 않을 권영길 대신 노무현에게 표를 몰아주자 이런 것이죠. ‘노무현도 싫지만 이회창은 더 싫으니, 反이회창의 공동전선을 만들자‘ 뭐 이런거요.


당시 프랑스에서도 1934년에 우익 파시스트들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당시 소련과 연계가 있었던 프랑스 공산당이 급진당과 사회당에 인민전선을 제안하고 구성하게 됩니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으로 치자면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에게 공동정부 구성을 제안했다고나 할까요.

이때 트로츠키는 우익 파시스트들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글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사회주의 세력들에게 인민전선의 파멸성에 대해서 조언합니다.


더구나, 당시 스탈린의 진정한 의도는 파시즘에 맞서서 싸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1933년에 이미 스탈린과 독일공산당은 히틀러의 집권을 수수방관했습니다. 스탈린은 독일이든, 프랑스 영국이든 좀 더 세력이 강한 국가와 동맹을 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스탈린은 영국 프랑스와 불가침 조약을 맺기 위해서, 프랑스 급진당과의 인민전선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39년 8월 20일, 영국 프랑스와의 교섭이 결렬되자, 곧바로 히틀러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독소불가침 조약‘입니다.


물론, 1929년부터 스탈린에 대해서 비판해왔던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이미 러시아 공산당이 1917년 혁명 당시의 공산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1933년 히틀러의 집권을 수수방관했을 때부터 스탈린이 파시즘에 맞서 싸울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경고해왔었죠.


# 부메랑


인민전선의 해악은 단순히 스탈린의 비밀외교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노동자의 정당이 부르주아 정당과 공동의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게 되죠. 이를테면, 민주노총의 관료들이 노사정 합의기구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동자 대중의 투쟁을 가로막는 것 처럼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 정당 스스로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을 억누르며 자신의 힘을 약화시키는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힘을 잃어버린 노동자 정당마저도 부르주아 정당에게 버림을 받게되죠.


프랑스의 경우 1936년에 인민전선정부가 이루어졌고, 레옹 블룸이 최초로 사회당 출신 수상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사상 유래없는 총파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전체 800만 중 200만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러나, 공산당과 사회당이 이 파업물결을 가로막게 됩니다. 탄압이 계속되자 대중들은 사회당 블룸 수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됩니다. 공산당과 사회당은 점점 지지를 잃어가며 정부 내에서 급진당에게 자리를 내어주다가 급기야 쫓겨나게되죠.


저는 노사정위원회나 대국민연석회의 제안과 같은 협력제안을 보며, 인민전선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물리적이고 극단적인 투쟁 대신 대화를 하고 타협을 해야한다는 것이 노사정위원회의 기조인데, 이 협상테이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 프랑스의 공산당 사회당이 그러했던 것 처럼 대중들을 통제하고 억누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협상테이블의 특성이니까요.

대화를 전면 부정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을 억누르는 대가로 들어가는 노사정위원회라면, 그것은 언젠가 자신의 목을 노리는 칼이 되어 돌아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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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전선 비판>과 <랜드 앤 프리덤>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인민전선 비판>을 읽고 있습니다.
'인민전선'이란, 사회주의정당이 부르주아정당과 공동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과거 스탈린이 지배하던 러시아공산당과 제3인터내셔널(각국 공산당들의 연합체)가 각국으로 내린 지침이기도 했죠.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과 합작한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레온 트로츠키라는 혁명가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같이 주도해놓고도 나중에 스탈린에 의해 추방당하고 살해까지 당한 혁명가인데요,
그는 스탈린의 제3인터내셔널이 혁명성을 상실했다며,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 제4인터내셔널을 창립하자고 주장하게됩니다.

여튼, '인민전선'은 중국 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등 당시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되어 있던 각국의 사회주의정당이 채택한 전술인데요,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의 그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귀에 솔깃하지 않나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절대 화해는 없다' 던 러시아공산당이, 각국의 사회주의정당에 부르주아정당과 동맹을 맺으라 지시를 내리다니.. 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스탈린 이사람도 나름대로 숨을구멍은 만들어놓았습니다.
'파시즘'이 그것인데요, 1930년대이면 1919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이 재무장에 들어가면서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할 그 즈음일겁니다. 물론, 히틀러 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선배이긴 하지만.

여튼, 파시즘이 바로 스탈린의 숨을구멍이 됩니다.
'부르주아정당이든 사회주의정당이든, 일단 파시즘부터 몰아내고 보자' 라고 주장한거지요.

'인민전선'을 선택한 여러 나라 공산당 중 하나가 스페인의 POUM(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입니다.
POUM도 스페인의 여러 정당(8개인가 9개)과 연합해 공동정부를 구성하게 되고,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랑코 라는 파시스트군대에 맞서 전쟁을 시작하게되죠.
<랜드 앤 프리덤>의 주인공 데이빗이 그렇습니다. 그는 영국사람이었지만, 스페인이 파시스트에게 넘어가면 영국도 유럽도 파시스트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주장에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여자친구만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떠납니다.

'파시즘부터 몰아내자'
여러분의 귀에도 솔깃하지 않나요? 이것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 1930년대 스페인

1930년대 스페인이 권력의 위기상태였습니다.
위기에 휩싸인 기존 정부를 둘러싸고, 파시스트들 뿐만 아니라, POUM을 비롯한 노동자 세력도 광범위하게 존재했죠. 이들은 붕괴한 공화정 위에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정당들이 공동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이전처럼 서로의 이해를 곧이곧대로 주장하기는 힘들죠. 공동정부 구성이란 곧, POUM이 그들을 믿고 따르는 노동자 세력들을 통제하고 잠재워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혁명의 열기는 사그러들고, 공동정부는 파시스트에 대항한 전쟁을 수행합니다.
POUM에 소속되어있던 당원들은 정부군과는 달리 민병대를 구성해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민병대란, 국가가 소집한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군을 뜻하는데, 이들은 장교도 투표를 해서 뽑고, 중요한 전술과 전략을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는 민주성을 보여줍니다.
(여담이지만, 저도 군생활 할 때 차기 분대장을 투표로 뽑았더랬죠. ^^)

민병대는 정규군처럼 훈련을 받지도 못했고, 무기도 부실하지만, 파시스트에 대한 분노로 혁명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세력을 넓혀갑니다.

# 공동정부 구성의 함정

문제는 공동정부 구성이, POUM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제함으로써, 기존의 정부를 위기에서 구출해주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의 적이었던 파시즘이 어느정도 물러나자, 다시금 POUM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을 선심으로 구해주었더니,
뭍에 올라오자마자 되려 빠뜨리는 격입니다.

결국, POUM은 불법화되고, POUM의 지도자들은 체포되어 처형되죠.
더욱이 POUM의 와해와 함께 노동자 세력이 와해되자, 파시스트 프랑코가 쿠데타에 성공해 기존의 정부를 전복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 30여년간 스페인에서는 군사정부가 지속되죠.

주인공인 데이빗은 영화의 초반부에 POUM의 민병대에서 전쟁을 치르다가,
팔이 다치는 바람에 마르세이유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눈치챕니다. POUM이 되려 탄압을 받고 있었던거죠.

데이빗이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즈음에는 이미 POUM이 불법화 된 이후입니다.
그리고, 정부군이 나타나 POUM의 민병대 마저도 해체시키고, 데이빗의 새 여자친구 블랑카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배신감에 오열하는 POUM의 민병대원들을 보여주며 끝을 향합니다.

# 스탈린

사실, 스탈린이라는 자는 1917년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혁명으로 건설한 사회주의 국가를 접수한 이후(1924년? 25년?),
혁명 당시의 볼셰비키당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됩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전에 파시스트 히틀러와 이면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바 있고, 공개적으로는 프랑스, 영국, 등과 동맹을 맺었죠. 어떻게든 자신이 장악한 국가를 위협받고 싶지 않았던겝니다.

히틀러와 이면 조약을 맺은 것 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아무튼 그는 프랑스, 영국, 등을 속이기 위해서 '인민전선' 이라는 정책을 각국 공산당에 내려보내는겁니다.

쉽게 얘기해서, 자기가 살자고 남을 이용한거죠.
그는 이미 혁명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동지를, 그것도 부르주아들에게 판 셈이니까요.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 자신의 통치를 위해서, 그는 동지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의 부르주아들도 속인 셈입니다.

# 백미

그래서일까요?
<랜드 앤 프리덤>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켄 로치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영국, 스페인, 독일 3개국이 함께 투자해서 만들었더군요.
모두 스탈린에게 속은 나라들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한가지 더.
보통 소자본으로 만들어지는 노동영화가 TV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길래 의아했는데,
스페인 내전을 다룬다한들 POUM의 노동자들, 사회주의자들 보다는, 스탈린의 배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요 충분히 그럴법 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훌륭한 반공영화인 셈이죠.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그러했듯이 말이죠.

<랜드 앤 프리덤> 케네스 로치 감독, 이안 하트 주연, 1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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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0
김영진 지음 / 책세상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저도 영화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폼나는 영화비평에 반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관람한 후에 종종 느꼈던 쓴 뒷맛 때문에요.

일례로,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였죠.
늘상 등장하는 주인공 남녀의 성교 장면인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어요.

기대에 못미쳤다기 보다는, 예상과 달랐다고 할까요.
쉬이 잊혀지지 않는 쓴 뒷맛이었죠.

명확한 주제를 가진 '책'이라기 보다는, '비평 모음' 이라 하는 편이 낫겠군요.
영화비평가 김영진씨는 포르노, 예술영화, B급영화, 블록버스터, 크게 네가지 장르의 영화에 대한 비평을 모두어 주었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예술영화 장르에 등장하는 이름이었으나,
그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느낀 쓴맛은 포르노 장르에서 이해되었습니다.

김영진씨는 포르노 장르에서 <거짓말>이라는 영화를 집어드는데요,
'도무지 끌리지 않는 섹스'. 제게 <거짓말>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섹스를 통해 7년전 선화를 만나고자 하는 헌준의 행동은 무척이나 비틀려있는 것이었죠.
더구나, 잔인하게도 사실적이었구요.

" <거짓말>은 성의 미학을 표현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 것은 이 사회의 권력체계, 특히 성의 권력체계를 향해 반미학적인 방법으로 시비를 건 것이다. '어린 여자가 나이든 남자를 때리는 행위가 변태적이라면 거꾸로 수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가하는 억압은 정상일까'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

쉬이 잊혀지지 않았던 쓴맛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감독의 비꼬움과 냉소에 한대 맞은거죠.

김영진씨는 포르노에서, '남성의 권력' 이상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WAP(포르노에 반대하는 여성들)와 자유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인데요, 다른 측면이란 '욕망' 입니다.

남성의 권력을 강요하고 왜곡한다는 점에서는 쓰레기임에 불과하지만, 사회적으로 억압된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포르노의 문제에 대해서 WAP의 주장처럼 '반포르노법' 과 같은 국가권력의 힘을 빌리게 되면, 결국은 의도하지 않게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압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입니다.

포르노를 '남성의 권력'이 아니라, (분명 그릇되었지만) '욕망의 표현'으로 넓게 바라본다면,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이란, 포르노 뿐만 아니라 주류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재밌습니다.

인상깊었던 포르노 장르에 대해서만 얘기했지만, B급영화, 블록버스터 부분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헐리우드 스튜디오가 경영난과 TV의 등장을 맞아, 거대 미디어 자본과 어떤 변신을 꾀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제작이나 배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굉장히 생생히 그려져있답니다.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이제 저도 영화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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