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9
조세현 지음 / 책세상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기억 하나

 

'아나키즘' 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00년에 상영한 유영식 감독의 영화 <아나키스트>입니다.
장동건, 정준호, 김상중 과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열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었어요.

장동건 오빠를 보기 위해서 <아나키스트>를 관람한 제게,
아나키즘이란, 곧 '명분 있는 테러' 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종횡무진하던 무대가 1920년대 상하이 였다던지,
이들이 늘상, 거사 직전에 사진 찍기를 즐겨했다던지, 하는 사실들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죠.
항일 비밀 결사체 '의열단' 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그랬습니다.

# 기억 둘

시간이 지나 인트라넷 책마을 시절에, 저는 다시 '아나키즘' 을 접하게 됩니다.
상래가 독서후기를 썼었어요. 얼마간의 글줄을 쓰면서도 무던히 눈치를 봐야했던 그 시절, 상래 녀석은 "요즘에 누가 아나키즘을 신경쓰기나 하나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더랬죠.
상래가, 오늘날 아나키즘이 살짝 주목받고 있다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급진적이었던 사회운동은 함께 주저앉아버렸죠.
"자본주의는 틀렸다. 하지만, 사회주의도 틀렸다." 라는 정신적인 공황기에, 자유주의의 바람은 몹시도 거세었고, 거센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을겁니다.
"대안이란 무엇인가. 대안이 있기는 한 것인가."

우화적으로 얘기했지만, 아나키즘이 살짝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의 저자 조세현씨는, 오늘날 우리가 '아나키즘'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어요.

"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이 민족주의의 고양과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시대흐름에 맞서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민중연대를 주장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비록 현실 문제에 적절한 대안과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원리원칙을 고집한 것이 운동의 패인이라고 종종 지적되지만, 그래도 그들이 제시한 이상주의적 전망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듯 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던진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라구요.

# 주류를 비판하는 아나키즘

마음 급하게, 아나키즘의 던졌다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뒤적이기에 앞서, 아나키즘의 역사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나키즘이래봤자, <아나키스트>를 관람한 것이 고작이었거든요. ^^;

아나키즘 운동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가 전성기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서유럽의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등의 본류이고,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로 건너오면서 한국, 일본, 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널리 퍼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기니 지명이니 딱딱한 얘기들을 잠깐 치워두면,
아나키즘이 당시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한국의 운동세력, 그중 주류였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을 강력히 비판해왔다는 사실이 눈에 띕니다.
아나키즘 운동이란, 당시 사회상을 그리고 있는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나 <경성 트로이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족적이었으니까요.

물론, <아나키스트>에서 다루어진 '의열단'을 비롯해서, 1921년에 한인 유학생들이 조직한 '흑도회', 1924년 중국에서 조직된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흑기연맹', '진우연맹'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결국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화에 실패하고, 민족주의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으로 수렴되면서, 그 내외에서 비판자적인 역할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물론, 끝까지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한 사람들도 있다고 알려져있구요.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아나키즘의 비판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테러집단 정도로 매도되고 있는 '아나키즘' 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비판 하나 - 민족주의와 아나키즘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정신은 '국제주의' 입니다.
당시 민족주의의 사상적 바탕은 '사회진화론' 이었는데, 태백산맥의 김범우가 그랬던 것 처럼, 교육을 통해 민족의 힘을 키우는 것이 제일 우선이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주의나 국수주의 역시도 하나의 권력을 생산하려는 시도와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히려, 사회 진화의 원동력은 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라고 생각했죠.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결국 자기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민족의 힘을 키워 누르고 일어서는 방식보다는,
가깝게는 한국 일본 중국, 멀게는 국제적인 아나키스트들의 연결망을 통해서 전세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국제어 에스페란토어 역시, 아나키스들에 의해 보급되었다고 하네요.)

정부와 국가 자체를 부정했던 이들에게, 권력의 국적이란 무의미한 것이었죠.

# 비판 둘 - 공산주의와 아나키즘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아나키즘의 정신은 '모든 권력에 대한 반대' 였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키당이 수행했던 전위당의 역할 역시도 하나의 권력이라 생각했고, 더욱이 당시 스탈린 치하의 공산당이 주도했던 코민테른 - 동구권 국가들의 공산당 회의 - 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합니다.
이는 <경성 트로이카>를 보면 잘 드러나있는데요, 당시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세력은 국내파와 국제파라는 보이지 않는 구분선이 있었죠.
여기서 국제파란, 위에서 언급한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는 세력을 뜻하는 것인데, 이들은 당시 혁명을 일구어낸 소련을 선망한 나머지 소련 공산당의 패권적인 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고, 이 때문에 국내파에 의해 '사대주의' 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운동이란 주어진 조건과 주체를 고려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당시 코민테른, 그리고 코민테른을 주도했던 소련 공산당의 경우,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별 다를 바가 없었죠.
권력 자체를 부정하고 민중의 자발적인 운동만을 중시했던 아나키스트들과의 접점은 전혀 없었던겁니다.

실제, 1927년 동아시아 아나키스트들의 연합체였던 동방무정부주의연맹에서 발표한 선언문을 보면,
" (1) 불순한 조선민족운동 반대 (2) 모든 정치운동 부정 (3) 사이비 공산전제 배척 (4) 공산당의 애매한 사대주의 사상 청산 " 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 아나키즘이 던지는 질문

어떠세요. 뭔가 만만치 않은 집단 같은가요?
테러를 인정하다니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민중의 자발적인 운동, 국제주의를 주창했던 것을 보면 좀처럼 가닥을 잡기 힘든 집단이라는 생각이 드실겁니다.

이쯤에서 저자인 조세현씨가 짚고있는 논점을 정리해볼께요.

(1) 볼셰비즘에 내재된 권위주의적 일당독재의 출현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2) 모든 변혁운동은 반드시 그 운동 주체가 추진해야 하는데, 그들은 '인민의' 사회주의를 제창했다
(3) 계급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기존 권력의 복잡한 그물망이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며, 가족 종교 국가 등 '전방위적' 인 투쟁이 필요하다

조세현씨는 이점들이, 아나키즘으로 부터 배워야 할 한국운동의 교훈이라고 얘기합니다.

# 학자스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제 제 얘기를 해야겠군요.
저는 조세현씨가, 운동의 원칙을 언급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떻게' 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죠.

" 왜 실패했는가?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 라는,
실천하는 운동가의 입장은 아닐겁니다.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냈고 실제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던 볼셰비키당이 어떻게 몰락의 과정을 겪었는지,
마찬가지로 아나키즘 운동이, 한국 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 어떻게 짧은 수명을 마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에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는 아나키즘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운동은 이래서 실패했고 이 운동은 저래서 실패했다' 며 논평하는데 그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학자는 학자대로 운동가는 운동가대로, 나름의 역할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가 '아나키즘의 역사와 정신' 이라는 부분을 넘어서, 지난 운동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려 했다면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 보태어 -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아나키즘의 면면은, 오늘날의 자율주의에 살아있는 것 같아요.
계급이나 민중의 개념을 포괄하고자 하는 '다중'이라는 개념과 '자율주의'. 구입만 하고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에 잘 나타나있다고 들었습니다.

혹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함께 얘기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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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서야 마지막편을 시청했네요.
전두환과 노태우가 김대중의 은총을 입어 특별사면 되는 것으로 종영이 되었습니다.

처음 방영할 때는 군 복무 중이었는데,
당직근무를 설 때면, 당직사관의 눈치를 슬슬 보아가며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

역사란, 역사가가 사료를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객관성을 잃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회의 제목이었던 '적과 동지' 는, 어쩌면 <5공화국>을 연출한 제작진의 시각을 그대로 투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뭐 쉽게 얘기하면 그렇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확실한 적으로, 김영삼은 반쯤 적으로, 김대중은 약간 적으로.
동지는 단연 시청자들이겠죠.

함께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518 대학살을 자행하며 정권을 장악했던 전두환과 노태우.
전두환의 지명과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
그런 노태우와 3당 합당을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해 준 김대중.

그런 그들이 매번 대통령에 당선되어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볼품 없는 연극에 불과할겁니다.

참으로 볼품 없는 연극.
그러나, 이 박한 평가는 이 드라마에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마치, '액자소설' 과 같은거죠.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니,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라고 했듯이,
입맛에 맞는 과거만을 골라 좋아하는 양념을 쳐놓은 과거란, 어쩌면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누더기가 되었다던 과거사청산 소동이,
전두환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니, 5공 인사들의 항의서한이니 온갖 헤프닝을 만들어온 <제5공화국>이,
꼭 그렇습니다.

이제 이 드라마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시민들이,
청와대에 국정원에 정당을 비롯해 온갖 주요 기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극장에서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을 보고나온 사람들은, 얼마간 그 감동에 휩싸여 지낼 것입니다.

보수 대 민주라는 낡은 구도 말이죠.
하지만, 차마 연극을 볼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 아직도 엑스트라에 불과한 사람들은 더 쉬이 진실을 눈치채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시 한번.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권력자도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지 못할 것입니다.
밝히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닐테니까요.

그래서,
진실은 아래로 흐른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노무현 대통령,
과거 민주화운동을, 노동운동을 20년 30년 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무척이나 들먹입니다.

"내가 노동운동 20년 했는데, 너희들처럼 하지는 않았다."
"니들이 노동운동가냐, 폭력집단이지."

2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있는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에게,
방용석 이사장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과거를 기념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이 현실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던지는 과거사 교육이란,
이렇듯 못마땅한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잘 봤습니다.

 


참, "한국 드라마 참 대단해졌다" "한국 역사 많이 발전했다" 호들갑 떠는 분들께, 한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5공이래봤자 고작 20년 전일 뿐입니다. 정확히 20년 후에 또 이런 드라마가 방영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이 드라마를 시청할 당신의 딸, 아들들이 똑같은 평을 할 것입니다. 20년 전일 오늘날을 비판하면서 말이죠.

역사는 진보합니다. 이 시절을 앞당기려면,
양념된 과거를 기념하기 보다는, 냉혹한 현실에 주목하는 당신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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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2003-03-14)  
 
  인권운동가 서준식씨가 인권운동을 주제로 15년간 진보주의자로서의 삶을 기록한 '서준식의 생각' 을 펴냈다. 저자가 겪은 17년의 감옥살이를 기록한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이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 했던 한 청년의 기록이라면 이번에 펴낸 '서준식의 생각'은 한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 서준식이 여러 지면에 인권운동을 주제로 쓴 글들을 모은 책으로 세상에 나온 이후 진보주의자로서 신념을 몸으로 실천해 온 지난 15년간의 살아있는 기록이다.
 
  양심과 진실의 인간
 
  어린 시절 일본 땅에서 "나는 조센징"임을 스스로 고백했다는 서씨는 양심과 진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런 순수함은 "누구도 인간의 내심을 간섭하고 재단할 수 없다"는 신념을 단련시켜 군사정권 시절에 집요한 사상전향에의 강요와 잔인한 고문을 견뎌내게 했다. '서준식의 생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비굴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떳떳하게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그의 용기다.
 
  "이국에서 인종차별과 싸우며 스스로 '조센징'임을 고백했던 16살 소년의 행동이 그랬듯이,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는 이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나의 행동 또한 병든 사회의 광기에 맛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믿고 싶다. 누가 이렇게 묻는다. “너 사회주의자냐?” 나는 대답한다. 자연스럽게, 담담하게 그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그래, 나 사회주의자.” 이런 사회가 빨리 오기를 소망한다."(‘서준식의 생각’, 99쪽)
 
  몸으로 쓴 글
 
  감옥살이는 서씨의 마음속에 ‘글’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희망만큼이나 인간의 실제 삶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껍데기 글’에 대한 경멸을 심어주어 그로 하여금 글쓰기를 망설이게 한 듯 하다. 이 책에 담긴 서씨의 글들은 글을 쓰기 위해 쓴 글이 아니고 인권운동을 위한 방편으로 쓴 활동의 증거물들이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감각으로 쓴 글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고 몸으로 쓴 글인 것이다. 머리로만 글을 써대며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에 대한 저자의 경멸은 차갑고 냉소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이 사회는 아직 글로써 사회가 변할 만큼 신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땅 위에 그어놓은 금 안에서만 놀아라!’ 이것이 이 사회의 룰이며 그 금을 넘어가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잘나가는’ 글쟁이들의 글이란 ‘금 안에서만 노는’ 글이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모든 글쓰기는 미망(迷妄)에 지나지 않는다."('서준식의 생각', 34~35쪽)
 
  ‘딸들에게’부분 압권
 
  1997년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레드헌트’를 검찰이 이적표현물로 규정하고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저자는 국가보안법위반을 비롯한 다섯 가지 죄명으로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된다. 당시 추운 겨울감방에서 사랑하는 두 딸에게 보낸 여덟 통의 편지는 작은 이야기들을 이루며 따뜻한 감동을 준다.
 
  "아빠가 힘센 아저씨들 여러 명에게 잡혀갔던 날, 수갑 차고 잡혀가는 자동차 안에서 뭘 생각했는지 아니? 너희들 생각이었다. ‘아차! 보슬이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어 주어야 되는데……. 참, 혜수 자전거도 비를 맞지 않도록 자전거 주차장 안쪽으로 들여놓았어야 되는데…… 이렇게 잡혀가면 안 되는데…….’ ‘에이 참, 이렇게 잡혀 갈 줄 알았으면 보슬이랑 아침공부를 더 해 둘 걸. 혜수한테도 공부를 가르쳐 줄 걸. 에이 참, 동전 가지고 하는 마술도 가르쳐 주고 올 걸. 에이 참! 에이 참!’ 그리고 지금 차가운 마루방에서 혼자 앉아서 뭘 생각하는지 아니? ‘지금 여기서 나갈 수 있으면 맨 먼저 뭘 하지? 내 친구랑 술 마시러 갈까? 아니야! 맨 먼저 보슬이 자전거에 바람 넣어주고 혜수 자전거 들여놓고, 그런 다음에 내 친구를 만나야지!’"(‘서준식의 생각’, 323쪽)
 
  새로운 책을 펴낸 서준식씨를 13일 저녁 혜화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 새 책의 내용과 그의 근황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서씨와의 인터뷰 전문.
 
  "서준식의 생각은 90년대 한국인권의 파노라마"
 
  프레시안 : 이번에 책을 낸 동기는?
  서준식 : 오래 전부터 책을 내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운동의 필요로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예전에 글을 쓰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교도소에 있을 때는 ‘나가서 소설을 써 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 ‘서준식의 생각’은 어떤 책인가?
  서준식 : 90년대 한 인권운동가의 희망과 좌절을 담은 책이다. 90년대 한국인권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프레시안 : 그럼 ‘인간 서준식’이 지금 생각하는 바는 무엇인가?
  서준식 : 내가 처한 자리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생각을 집중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이젠 인권운동의 현장에선 약간 물러난 것으로 안다.
  서준식 : 인권운동가 중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데 내 덕이 부족했다. 내가 뭔가 자리를 탐낸다는 오해를 받기도 할 때는 정말 참담했다. 책에 그 이야기도 나온다. 또 인권운동사랑방의 후배들도 역량이 성장했다. 나는 이제 후배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주고 이론적인 부분을 공부시키고 연구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권공부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그동안 장기수, 양심수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서준식 : 1988년에 밖에 나오니 세상이 장기수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처음 나와서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소설을 쓸 계획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알리지 않으면 ‘배신’이라고 느껴 활동을 하다가 그것이 인권운동이 됐다. 민가협에서 2년간 활동을 하고 그 후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수인들의 인권이나 다양한 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프레시안 : 책에 조카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된 고문장면은 그 설명만으로도 읽기가 끔찍할 정도다. 투옥 중 그런 일을 진짜 당했나?
  서준식 : 비녀 꽂기, 개밥, 곤봉 등 거의 대부분 직접 당했다. 이젠 잊으려고 노력한다.
 
  "제도적인 개혁이 따라야 한다"
 
  프레시안 : 국내 인권문제의 현안이나 이슈에 대한 견해는.
  서준식 : 인권이 어떤 이슈로 주목받기 보다는 빨리 전체적으로 신장이 될 수 있는 제도적인 개혁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의문사, 전쟁 중의 여러 학살문제, 삼청교육대 등이 법적인 조사와 보상이 필요하다. 검찰도 지금 개혁, 개혁 하지만 구체적인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야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현안으로 가면 이전에는 자유권 문제가 중심이 이었다면 물론 그 문제도 아직 해결이 다 안됐지만 사회권 문제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실제로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문제와 여러 소수자에 대한 권리문제라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책에서 어린이의 인권문제와 자녀교육을 연결한 것도 인상적이다.
  서준식 : 내 딸이 고등학생이 되서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 정말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라가 다 망했다’며 법석을 떨지는 말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실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은 ‘권리’만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것은 1989년에 나온 유엔의 ‘어린이권리조약’이다.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학부모들이 정독해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이것은 헌장이나 선언과 다른 ‘조약’이다. 우리나라도 국회에서 도장 찍고 약속한 것이다. 지금 한국은 ‘어린이권리조약’을 사보타지 중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 교육에 ‘인권’을 추가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준식 : 개인적으로 수직적인 질서를 가르치는 ‘도덕’보다는 수평적이 ‘인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한다. 물론 여기에는 선생님의 권위주의와 입시지옥을 없애는 일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프레시안 : 책에는 ‘유서대필사건’의 진상에 대한 글도 많다. 현재 관련자들의 근황은 어떤가?
  서준식 : 강기훈씨 본지는 오래 됐다. 컴퓨터 회사를 다니며 조용히 지낸다고 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강기훈씨가 와일드한 사람이 아니고 조용한 사림이라 모든 것을 혼자 속을 삭이는 것 같다. 이런 문제는 본인이 막 화를 내고 다녀야 진상이 들어나는데……. 이 사건과 관련된 마지막 코미디는 그 사건을 지휘한 강신욱 검사가 대법관이 돼 있다는 점과 얼마 전 법무부장관으로 하마평까지 오른 것이다. 세상이 참…. 그렇다.
 
  프레사안 : 프랑스의 ‘드뢰피스’ 사건하고 닮은 것 같다.
  서준식 : 이상하게 많이 닮았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른다.(웃음) 한 마디로 표현이 힘든데…. 그 당시 사건배경은 이렇다. 강경대군이 경찰 쇠파이프에 살해를 당하고 모든 시위를 봉쇄하고 있는 상태에서 분신이 이어지자 청와대에서 대책회의 중에 ‘배후설’이 제기되고 다음 날 김기설이 자살을 하자 바로 거기에 억지로 연결을 시켰다. 내가 김기설을 몰랐으면 뛰어들지 않았을 텐데 같이 활동한 사람이라 그 문제에 끼어들어 싸우는 동안 나는 신문에서 완전히 ‘인권운동가’로 소개가 됐다.
 
  "그러나 누군가가 복수 할 것"
 
  프레시안 : 책을 보면 강신욱씨나 고문기술자들에 대한 ‘정당한 복수’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
  서준식 : 자신이 교도소에 또 갈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복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인권운동가로 이런 말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악행에 대한 보복’이 너무 없는 사회인 것 같다. 다른 나라는 집 앞에 폭탄을 던지는 등 개인적인 보복도 있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모두들 너무나 무기력하다. 내가 기개가 없음을 스스로 탓하곤 한다.
 
  강신욱 검사 같은 인간들을 내가 나서서 복수할 기개는 물론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복수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에도 그래서 ‘안두희가 어떻게 죽었나를 기억하자’고 썼다.
 
  프레시안 :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레드헌트’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된 때의 심경은?
  서준식 : 그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총 다섯 가지 죄목이었는데 홍대에 상영허락을 안 받았다고 야간주거침입(도둑), 검열을 안 받았다고 음반·비디오법(주로 파렴치한 포르노업자에게 적용하는 법), 보호관찰법(괘씸죄!), 국가보안법 등이고 또 하나는 공연법인가를 어겼다고 나를 잡아갔다. 그런데 막상 잡혀서 장안동 대공분실에 갔더니 내가 대학생들에게 ‘한총련을 탈퇴하지 말라’고 쓴 글을 문제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말’지에도 실린 그 글이 문제라고 하면 ‘필화’가 돼서 난감하니까 ‘불법영화제’로 나를 걸었다. 갔더니 그 사람들 영화에는 관심도 없었다.(웃음) 다른 논객들이 당시에 ‘나라에서 한총련을 반국가 단체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은 문제를 삼지 않다가 학생들에게 ‘탈퇴를 하지 말라’고 한 내 말에는 경악을 한 것 같았다. 조사받는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프레시안 : 17년간이나 자신들이 잡고 괴롭힌 사람은 심하게 하진 않았을 것 같다.
  서준식 : 그들이 심하게 해 봐야 안 되니까 이젠 아예 고문을 안 한다. 맞을 때 마다 면역이 되면 맷집만 좋아져서 때리면 맞는 놈 성질만 나빠진다.(웃음) 감옥 안에서 최하의 위치까지 겪은 인물에게는 그들도 방법이 없다. 고문도 안 통하니까 그쪽도 다루기가 무척 곤란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월드컵 때 박노자 교수와 함께 ‘민족의 역적’취급도 받았다.
  서준식 : ‘붉은악마’에 관한 글은 개인적으로 하나의 ‘커밍아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소식지에 글이 오르고 대부분이 ‘어떤 놈이 이런 글을 썼냐!’는 험악한 분위기였다. 내가 쓴 글이다. 당시에 그런 것을 말하기 너무 힘든 분위기였다. 서글펐다. 우리가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도 느꼈다.
 
  개인적으로 재일동포였기에 나를 키운 것이 민족주의 사상이었고 자연스럽게 진보사상을 그 위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일종의 통합사상이라 거기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들의 소외와 박해를 월드컵 때 생각하게 됐다.
  당시에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겼다.
 
  민족주의 역사를 보면 국민을 한민족으로 통합하는 대가로 그 안에 소수자를 박해하고 제외시켰다. 민족주의에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민족주의가 역사적으로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 강대국(미국)의 횡포에 맞서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반인권적인 함정’에서는 깨어 있자는 것이다. 그때는 분명 아무도 깨어있지 않았다.
 
  나도 ‘만능의 스포츠맨’으로 불릴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지만 프로스포츠의 ‘마취’같은 역기능 대한 우려도 그 글을 쓴 계기 중 하나였다.
 
  프레시안 : 지난 번 ‘피의자 사망’사건의 딜레마는 피해자가 조직폭력배라는 점도 있었다. 우리가 흉악범의 인권을 지켜야 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서준식 :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로 못된 인간과 정상적인 인간의 한계가 사실 모호하다. 예를 들면 국정원 앞에서 ‘간첩이라도 고문은 하지 말라’는 데모는 아직도 않는다. 사람들도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문이 그러다가 어느 날 나를 찾아온다.
 
  두 번째로 더 근본적으로 ‘그놈들은 나쁜 놈’이라는 관점의 문제다. 우리사회의 어리석음과 잘못이 낳은 것이 범죄와 죄인들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만든 배설물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들의 나쁜 짓은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넘치는 상업문명과 여성의 상품화를 만든 것은 바로 우리다. 우리의 책임이다.
 
  ‘활동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버려야 한다
 
  프레시안 : 책 중에 활동가의 생활에 대한 글도 눈길을 끈다.
  서준식 : 좀 길게 이야기를 하겠다. 처음 인권운동사랑방을 시작한 후에 활동비를 끌어다가 지급하는 것이 내가 하는 역할이었는데 뭔가 문제가 있었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이 돈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 급여지금이 현재 어느 단체나 예산의 3분의2 정도일 것이다. 90년대부터 월급을 받고 활동을 하는 분위기가 됐는데 우리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월급 받고 하지는 않았다.
 
  90년대에 운동의 내부가 한쪽은 ‘조직규모를 키우고 활동가 월급도 줄 수 있도록 여러 금전적 도움을 받자’는 것 이었고 다른 쪽은 나 같은 경우인데 ‘조직은 활동비정도만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요즘 작은 단체들 중에는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회지를 보내고 집세내고 자신들의 월급을 받고 하는 것이 ‘주 업무’인 단체들도 있다.
 
  참여연대는 비교적 건전하게 재정이 운영된다고 본다. 환경연대는 대기업 돈도 받는 데 그런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참여연대는 시민들이나 중소기업의 돈은 받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일반시민들에게 후원금 받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꼭 싸워야 할 때 돈을 낸 회원들의 ‘눈치’를 볼 수도 있다.
 
  그럼 이제 운동가는 뭐로 먹고 사느냐가 문제다. 우리는 자기가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 반박에 일을 못한다. 그럼 두 사람이 나눠서 하면 된다. 좋은 의미에서 자원봉사자와 활동가 사이의 벽이 없어진다고 본다.
 
  또한 운동하는 사람들은 ‘활동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버려야 한다.
 
  이런 결론을 내기까지 2년이 걸렸다. 달라진 것은 내부의 민주화다. 전에 내가 후원금을 끌어 올 때는 활동가들이 ‘물주’인 내 눈치를 봤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먹고 살며 좋아서 하는 일로 긍지가 생기자 조직 내의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시작됐다.
 
  외국의 경우도 이런 식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는데 국내에는 소개가 잘 되진 않고 있다. 우리의 시도가 성공을 하면 새로운 활동의 방법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본다.
 
  "새로운 사회주의, 문제가 없는 사회주의를 만들자"
 
  프레시안 : 운동하는 사람들은 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나오고 있다.
  서준식 : 물론 포용력이 더 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위험한 생각일수 있다. 정체성과 포용력은 결국 반대방향인데 정체성도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포용력을 키우다가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다. 정체성을 확보한 후에 조금씩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정체성 확립 후 넓은 포용력을 갖는 것이다.
 
  프레시안 :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한 화두를 준다면?
  서준식 : 나는 사회주의자다. 자본주의 구조가 악의 구조라고 생각한다. 이 구조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을 한다. 자유와 평등의 참뜻이 사회주의적 발상에서 올바르게 구현 된다고 본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언제 어떤 형태로 사회주의가 구현될지 모르지만 ‘사회주의는 나쁘다’고만 말하지 말고 새로운 사회주의, 문제가 없는 사회주의를 만들자.
 
  프레시안 :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서준식 :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3년간 노력했었다. 검찰영향하에 두느냐 마느냐 즉,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두는 것에 중심을 뒀고 결국 해냈다. 그러나 다양한 관료들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럽다. 인권위의 경우 다른 행정기관의 공격을 막아주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시민단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 도와줘야 하는 데. 인권위는 또 시민단체를 무시하고 의심하곤 한다. 나는 힘들다. 내 후배들은 그렇게 하길 빈다.
 
  '인권위원장의 착각'
 
  프레시안 : 인권위와 관계악화는 ‘인권위원장자리를 노린다’는 소문 때문인가?
  서준식 : 인권위를 만들 때 여러 단체가 참가 했으나 지향이나 정서의 차이로 힘이 들었다. 도식적인 구분은 힘들지만 이렇게 둘로 의견이 갈라졌다.
 
  민주당이 낸 독립적인 국가기구는 골격은 좋았다. 문제는 그 안이 구체적인 세부안은 (강제)조사권이 없는 안이었다. 나는 받아들이자는 쪽이었고 다른 쪽은 받지 말자는 쪽 이었다. 그런데 위원장이 도와달라며 은밀히 부른 인물들이 나중에 보니 앞에서는 ‘받지 말자’는 주장을 한 쪽 이었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자신들끼리 준비·기획을 했다. 그 와중에 나와 몇몇 인물들이 정보에서도 제외됐다. 받지 말자 던 쪽의 몇몇은 ‘단순한 준비단계에 잠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공무원이 됐다.
 
  자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나는 ‘간첩죄 17년’이라 그런 자리에 갈 수가 없다. 난 확고하다. 활동가들은 밖에서 견제·비판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도 나를 ‘너 자리욕심이 나서 그렇지’하고 지금도 의심을 한다.
 
  인권위원장이 ‘왜 자리 안 주느냐’고 우리가 요구하고 화를 냈다고 말 하는데 한 마디로 내 글 제목대로 ‘인권위원장의 착각’이다.
 
  프레시안 : 생활 중에 ‘일본인으로 귀화하고 싶다’거나 수감 중에 ‘전향을 할 걸’하는 식의 인간적인 후회는 없었는지?
  서준식 : 내 경우엔 어려서부터 조국에 살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나 같은 사건이 많았는데 고생하고 돌아가 버린 사람도 많다. 나는 ‘나가도 안 돌아 간다’고 굳게 결심했다. 일본생활의 고통은 ‘당신 고향이 어디에요’라는 질문에 대한 망설임의 축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에 사는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고통의 큰 축적’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아 고통이 적은 것 같으나 자신의 국적을 거리낌 없이 말하기 힘들고 일어로 이야기하면서 이상한 미안함과 답답함이 죽을 때까지 따른다.
 
  여기에 살며 17년 감옥에 가서 살고 또 두 번 감옥을 갔다 왔고 신체적으로 더 고통스럽지만 나는 주저 없이 ‘작은 고통이 쌓이는 큰 덩어리’가 더 괴롭다고 본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나에겐 이쪽이 편한 것이다.
 
  프레시안 : 왜 그 서슬이 퍼런 시절에 ‘북한’을 갔다 왔느냐는 질문이 아직도 있다.
  서준식 : 재일동포 정서가 그렇다. 민단과 조총련이 결혼도 하고 친구로 지내고 한다. 상층부만 서로 이야기 않고 지낸다. 친구네 집에 가면 김일성 초상화가 있고 그런 식이다. 일본에 고등학교 다니던 단짝친구 5명중 3명이 ‘조선대학’을 갔다. 참 착하고 공부도 잘한 친구도 있었다.
 
  재일동포는 북한에 대한 이상한 혐오감이나 적개심이 없었다. 물론 여기서 몇 년을 살아서 법에 저촉이 되는 것은 알았으나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사건을 정권이 51명의 ‘간첩단’으로 불려서 71년도 대선 6일전에 터트렸다. 그 점은 지금도 묵은 상처다. 젊은 나이에 철없이 쓸 때 없는 짓을 해서 3선반대등 민주화 운동에 장애가 된 점이 있다. 하지만 도덕, 윤리적으로는 지금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재일동포 문제에 대해 따로 언급할 것은 없는지?
  서준식 : 난 그 문제에 대해 말을 할 위치가 아니다. 떠나온 지가 너무나 오래됐기에 대답하기 힘들다. 이야기를 하면 동포들이 웃을 것이다.
 
  "너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나도 너와 같은 인간이다"
 
  프레시아 : 일상에서 우리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바로미터’ 같은 것을 제시해 준다면?
  서준식 : 미흡한 비유이긴 하지만 ‘너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나도 너와 같은 인간이다’라고 할 수 있다. 내 인권이 소중 하듯이 남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늘 인식해야 한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어떤 말과 행동을 당하는 것이 싫고 부당하다고 느끼면 나도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인권침해 여부도 ‘내가 그 일을 당 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회사가 신입사원의 ‘지나온 인생’을 적어 내라고 하듯이 회사 측에 ‘회사의 지나온 길’을 사원에게 제출하라고 한다면 사장 기분이 어떻겠는가.
 
  프레시안 : 한달이 안 된 노무현정부에 당부할 말이나 조언할 것이 있다면?
  서준식 : 그냥 잘 하기를 바라며 지켜보겠다.
 
  "변절하지 말자"
 
  프레시안 : 17년의 끔찍한 수감생활과 고문을 당하고도 정신이 멀쩡한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서준식 : 무너지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긴 침묵) 변절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말이 전향한 분들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고통을 참고 전향을 거부한 사람들은 평생 표정이 밝다. 꼭 감옥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며 핑계대고 변절하지 말자.

손봉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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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 코스터 2집 - 일상다반사 - 재발매
롤러코스터 (Rollercoaster)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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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라는 제목에서 지레짐작하여,
어떤 멜로디와 내용으로 꾸몄을지 다소 긴장하여 들음.

02  가만히 두세요

흔히들 감내하며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온갖 부담스러운 기대들에 대한 작은 항변.

03  힘을 내요. 미스터 김

이 노래, 나름대로 히트곡 아니었나요? 굉장히 귀에 익었음.
이 시대의 직장인의 이미지를 도맡고 있는건 '미스터김'이요, 그에게 속삭이는건 롤러코스터의 그녀.
" 거울을 봐요 충혈된 두눈에 언제나 용모단정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등만대면 잠이 와요 "

04  Love Virus

이번엔 사랑 노래. 흔하디 흔한 것이 사랑 노래이지만, 흔한 것이 사랑이니 어쩔 수 없지.
기억에 남는건 곡 중간에 삽입된 해금 연주.

05  Crunch (Instrumental)

crunch [kr?nt?] n. ① 우두둑우두둑 부서지는 소리; 짓밟아 부숨, 또 그 소리.
대략 비슷한 것 같은데, 악기 이름을 모르니 뭐라 할 말이 없음.

11  일상다반사

정말 일상다반사 스러운 멜로디를 들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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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 타이거 5집 - 하나하면 너와나 (One Is Not A Lonely Word)
드렁큰 타이거 (Drunken Tiger) 노래 / 지니(genie)뮤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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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었던 몇몇 곡에 대한 간략한 느낌.

01  긴급 상황 (Feat. Gemini)

굉장히 급한 비트의 노래. 무얼 얘기하는지는 잘 모르겠음.

02  편의점 (Feat. Gemini)

늦은 새벽까지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던 남자가 김밥이며 라면, 담배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어간다.
거기서 마주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걸쭉한 로맨스.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남녀의 생각이 트로트 가락에 실려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부분은 T가 featuring 했다.

03  이 놈의 Shake it (Feat. Gemini)

"흔들어 제껴 이놈의 shake it"

04  Skit Intro - 가수지망생 1. (5,000원)

매니저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독백? 잔소리? 타이거JK의 대답은 다음 곡에.

05  Skit - 가수지망생 1. (5,000원)

음악의 3대 요소가 멜로디, 야마, 가사라는 윗곡 남자에 대한 타이거JK의 대답.
전인권풍. 무척 깬다.

06  Liquor Shots (술병에 숟가락 - Feat. 바비 킴, Ann)

이 곡이 타이틀이었던 것 같은데, 당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단, 한가지. 그의 노래에는 '훅(hook)' 이니 '어퍼컷(uppercut)' 과 같은 권투용어가 종종 등장하는데, 어쩌면 그의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건 아닐까.
말로 풀어내긴 영 힘드네.

12  Symphony 3 (Feat. Sean2slow, YDG)

'공짜로 약자 대변해주는 노래' 라는데,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건, '강자'이거나 '강자에 기댄 자'가 아닐런지.
여튼, 션2슬로우의 플로우(flow)에는 다시 한번 감동.

13  고집쟁이 (Feat. Dynamic Duo, 은지원)

음반의 주인인 타이거JK 를 비롯해서, 다이나믹 듀오, 은지원, 등 무브먼트 크루가 함께 한 곡.
삶의 고집들을 한가지씩 늘어놓는, 함께 부르기에 걸맞았던 노래. 최자와 은지원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음.
"감사의 말씀 천만에"

14  Once Upon A Time (나의 어리석은 방황)

소문으로만 듣던 타이거 JK 의 5집 앨범을 들으며.
몹시 난해한 와중에, 그만의 뚜렷한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물론, 난해하다는 것도 하나의 스타일인데, 과격하지만 무엇에 대해 과격한지 아리송하다.
"Once Upon A Time" 은 얘기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곡 중 하나. 재미교포(맞나?)인 그의 어린 시절의 방황을 옅볼 수 있다.

15  Skit - 가수지망생 3. (동문서답 - 호랑정권 & 판돌이 Shine)

힙합도 쉽게쉽게, 누구나 따라할 수 있게, '오픈마인드'로 가자는 음반의 감초, 매니저아저씨의 마지막 주문.

16  백만인의 콘서트 (노래방 Rap)

"이제 힙합을 한번 배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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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cool 2006-04-0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이거 jk의 lyricism은 이중구조를 알지 못하면 이해가 힘들죠. 역시나 님도 인상깊었던 곡 리스트에서 채인,체인이 빠졌군요. 이 곡은 전체가 비유법이고 본인의 음악인생에 대한 격려와 의지를 드러낸 곡입니다.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가사를 가진 곡인데...한국방송특성상 타이틀곡은 거의 타율적으로 정해진다는(힙합의 경우 가사가 특히) 법칙에 의해 술병에 숟가락같은 경우 역시 가사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그룹의 정수를 드러냈다보긴 힘들죠. 역시나 리스트에서 빠진 내 인생의 반의 반 같은 경우는 상당히 멋진 트랙이고...가사나 음악적으로나 난해한 면이 있지만 저는 그것도 국내 힙합의 스펙트럼을 넓힌 의미있는 시도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