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설희 (fromsoul@empal.com)

가리온 [GARION]

2004년 벽두부터 날아든 가리온의 앨범은, 한국 힙합에 애정이 있는 리스너라면 누구에게나 일단 반갑고 볼 음반이었다. 클럽 마스터 플랜 초창기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그들 특유의 둔탁하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비트로 아마추어 성향이 강했던 초기 힙합 씬에서 당당하게 빛났다. 하지만 어찌 되었던간에 이 큰 형님들의 정규 앨범은 이제야 나왔고, 데뷔 앨범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마치 베스트 앨범마냥) 그간 그들이 작업해 두었고 공개되었던 곡들을 정성스럽게 취합 되어 있었다. 따라서 새로울 건 없지만, 가리온의 음악을 듣기 위해 컴필레이션 음반을 뒤질 필요 없이 거라온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큰 묶음 안에서 이들의 음악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신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만들었던 그간의 결과물들을 가리온의 이름으로 거듭 생성하는 것에 대해 '새롭지 않잖아!'라고 격하시키기엔 앨범이 가진 의미가 크다. 게다가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으며 여전히 '가리온만의' 스타일이 확고한데다가 반갑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무거운 비트가 반복적으로 흐르고 MC 메타의 랩도 저음이어서 듣는 이에 따라선 지루하다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베이스 톤의 비트에 실린 짙은 힘과 다이나믹함은 이 먹통 힙합에 중독성을 불어넣었다. 따라서 형님들의 베스트인지 데뷔 앨범인지 분간이 모호한 첫 정규 앨범 [GARION]에 무조건 한 표!

각나그네 [Incognito Virtuoso] EP

재지(jazzy)하고 세련된 어반(Urban) 스타일의 곡도 곡이지만 각나그네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건실한 사상이 담긴 가사와 훌륭한 래핑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다른 MC들과 그를 확연하게 갈라주었다. 넋업샤니, 본킴, 큐빅과 함께 nusoulclassic 크루를 형성하고 있기도 한 그는 이번 EP에서도 이들의 도움은 대거 받았다. 앨범 중간에 'crescendo'라는 제목으로 Street Poetry Slam을 강행한 것도 다소 이색적이다. Poetry Slam은 시낭송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랩이라기 보다는 시를 낭송하듯 무엇인가를 읊는 것이다. Street Poetry Slam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읊음'은 길거리의 소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데 종교적인 믿음에 기대어 열정적으로 진행된다. 그가 음반에서 만들어낸 Poetry Slam는 '삶에 대한 종교적인 낭송'이었는데 랩과는 또 다른 시적인 표현들이 무자비하게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Poetry Slam가 보여주는 형식(스스로에 도취되어 라임을 만들고 그것에 몰입 되어 가는)은 낯설어서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각나그네의 EP 앨범은 설교자같이 딱딱함을 유지하지만 여기에 쓰인 음악적 재료들은 다양하게 잘 범벅이 되어 있어서 목사님 같은 그의 연설이 그런대로 재미있다. 그리고 그가 가지는 마인드와 주제도 그 자체로는 아빠의 잔소리처럼 고루해 보일지 모르나 씬에서 놓고 봤을 땐 '다양성'과 '참신성'으로 대변될 수 있을 만하다. 이정도의 EP라면 정규 앨범이 매우 궁금해 진다.

조 PD [Politics & Social change Pt. 1 / Love & Life Pt. 2]

음지의 조 PD가 인순이 선배님과 함께 양지로 나왔다. 사실 조 PD의 '친구여'는 조 PD 보다 인순이에게 더 의미 있는 곡이 아니었나 싶다. 덕분에 조 PD도 덕 많이 봤으니 올 힙합계 최고의 성공적 윈윈 전략으로 기억될 노래임에 분명하다. 조 PD는 '음지의 인물'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데뷔 때부터 매우 많은 대중들이 그를 알고 있었다. 당시가 급속도로 퍼져가는 인터넷문화에 대한 경이로움을 매체에서 앞 다투어 분석하던 시기였는지라, 당시 인터넷 상에 이슈가 되고 있던 조 PD는 9시 뉴스에도 나왔다. 그러니 온라인 안에서는 힙합이라는 음악으로, 오프라인에서는 인터넷 문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그는 전국구로 유명세를 탔다. 그가 인터넷에 자신의 음악을 올렸을 당시의 사운드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였지만 그 안에 갇혀 있어서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한계가 너무 분명했으므로 그는 결국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그의 두 마리 토끼 잡기는 두 가지 버전으로 앨범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는데, 특히나 착한 힙합 버전의 [Love & Life Pt. 2]은 그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사실 [Love & Life Pt. 2]에 좀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제 조 PD 스타일의 맹공은 더 이상 쇼킹하지 않다.

바스코 [The Genesis]

마스터 플랜의 2004년 상반기 야심작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래퍼로서 자질을 인정 받아온 터라 그의 정규 앨범은 은근한 기대를 받았다. 안정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저돌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그의 랩은 날카롭게 찌르기보다는 타이트하게 휘감아 돈다. 따라서 공격적이긴 하되 너무 예민하진 않으며 그렇다고 너무 튄다거나 반대로 너무 무던하지도 않다. 바스코의 이번 앨범은, 그 특유의 겁이 없어 보이는 마초적 성향은 드러났으며 즐겁게 들을 만큼 가치는 있으나 뭔가 바스코만의 특성을 살리기엔 부족함이 엿보인다. 함량이 미달된 건 아니고, 마스터 플랜 크루들 사이에서 엇비슷하게 들리는 고만고만한 사운드들의 전반적인 포진은 나쁠 건 없지만 익숙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탈이다. 그 익숙한 느낌이 바스코만이 가지는 개성마저 익숙함으로 무던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실망스러울 것까진 없지만 다소 아쉬움이 드는 앨범이다.

피타입 [Heavy Bass]

부산 힙합 크루인 DMS로부터 전달된 음반이다. 작년 말 킵루츠의 반가운 정규앨범 이후 오래지 않아 나온 피타입의 앨범은 의식하고 있지 못한 사이에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이다. 킵루츠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휘성과 빅마마의 피처링 후원까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그만큼 호기심이 더 가는 앨범이기도 하다. 둔중하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으며 약간의 재지(jazzy)함이 주는 세련되고 깔끔한 사운드는 새롭진 않지만 조금은 특별해 보인다. 너무 산만하지 않으면서도 표정을 수시로 달리하는 비트는 곡 하나하나마다도 특성과 색깔을 달리하는데 앨범 전반에 걸친 프로듀싱에 '일관성'이 존재하는 까닭에 제 각각이 따로 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점은 라임. 다양하게 들어가는 액센트와 더불어 (노래할 때 소절에 맞게 감정을 달리 넣는 보컬처럼) 랩을 하면서도 소절마다 감정을 달리 넣으면서 동시에 흐르는 것을 잊지 않는 래핑은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표정의 라임과 비트가 서로에게 화음이 되어 시너지 효과를 부렸다.

다이나믹 듀오 [Taxi Driver]

씨비 매스(CB Mass)의 최자, 개코가 둘이 되어 돌아왔다. 씨비 매스는 3집 때부터 커빈과의 불화설이 나돌았기에 다이나믹 듀오의 존재는 일찌감치 예견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이나믹 듀오의 결과물이 어떠한 형태를 띄게 될지는 정말 모를 일이었다. 씨비 매스 후반으로 갈수록 최자와 개코의 역량이 높아지면서 씨비 매스 후반의 결과물과 다이나믹 듀오의 결과물이 어떻게 차이를 보일지 사뭇 궁금해지던 차, 무브먼트 크루로는 첫 주자로 여름을 맞이하던 늦봄 그들은 자신들의 앨범을 공개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단지를 열어본 결과 그 안에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라는 의외의 복병이 들어있었다. 이와 같은 변수는 그들에게 매우 유리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요건을 만들어 주었다. 나얼을 중심으로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참여는 다이나믹 듀오의 음악을 3차원적으로 만들었다. 음반 곳곳에서 확인되는 그들의 훌륭한 보컬 피처링은 단순한 멜로디 랩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떤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각도가 달라질 때마다) 색깔을 달리하여 빛이 발하는 보석처럼 일관성과 개성을 고루 겸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마수를 얻은 그들은 씨비 메스를 넘어선 대중적 성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신인 아닌 신인 다이나믹 듀오의 데뷔는 매우 성공적으로 치루어질 수 있었다.

에픽 하이 [High Society]

무브먼트 크루의 두 번째 주자는 에픽 하이. 1집 때보다 선명해진 팀 컬러를 보여준 그들의 이번 앨범은 여러모로 1집 때 보다 삐죽이 한걸음을 더 걸어 나와 있었다. 전반적으로 랩에 쉽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붙여 '친근함의 매력'을 불어 넣었고, 가사는 [High Society]라는 제목이 주는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곡 하나하나가 가지는 메시지 자체는 이전에 비해 훨씬 밖으로 드러나와 있다. 덕분에 수록곡 중 4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에픽 하이는 원래 사운드가 진일보 하다거나 카리스마가 넘쳐 나는 힙합 그룹은 아니다. 하지만 매니아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팝적인 사운드를 내는 그들의 위치는 그들의 이지 리스닝한 음악과는 달리 '에픽 하이의 음악에 대해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사실 곱상하게 그려진 그들의 이미지도 이런 팝적인 감각에서 기인되었는데, 이번 앨범은 사운드가 더욱 미끈해져 대다수의 곡이 불가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번 앨범이 1집 때보다는 뭔가 정리되고 나아진 모습임에는 확실하나 시기적으로 다이나믹 듀오보다 먼저 나왔으면 훨씬 더 주목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드렁큰 타이거 [하나하면 너와나 (One is not a lonely word)]

어쩐 일인지 나온다고 말만 무성하게 자라더니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싶었다. 이번 앨범은 DJ Shine이 빠진 상태에서 Tiger JK가 모든 것을 진두 지휘했고 그러면서도 Tiger JK의 솔로 앨범이 아닌 '드렁큰 타이거 5집'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게다가 음악도 많이 바뀌었다. 그냥 한번 이렇게 해 보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감에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세월을 희석 시키고 싶었던 것이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은 다음 음반으로 좀 미뤄두자. 빡빡하고 날카로운 기세가 죽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들은 가오에 대한 집착을 일부러라도 버려두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곡을 이끌어가는 JK의 카리스마는 여전하고 이전과는 다른 식으로 만들되 유행을 일방적으로 따르지도 않았다. 신나는 파티넘버를 만들어도 시류의 틀과 자신의 틀이 팽팽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어 드렁큰 타이거 특유의 긴장감이 앨범을 감도는 건 여전하다. 그리고 남들 다하는 음악 나도 해본다 식의 곡이나 힙합 스타일의 구성에서 벗어난 곡들에서도 치밀한 구성력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내공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따라서 이번 5집은 타이거 자신에게도 타이거의 팬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앨범이다.

일단, 올 상반기에는 (이중에 다루지 않은 앨범까지 포함한다면) 내공이 쌓인 단단한 앨범들이 때늦게 새록새록 출시가 되었고 대체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만족을 주었다. 특히 봄에 시작된 조PD의 대박 행진에 이어 여름을 기점으로 무브먼트 크루의 대중적인 선전은 괄목할만하다. 음반시장의 장기적인 불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이제는 그러한 불황에 사람들이 적응해갈 쯤이 되고 보니 음반을 사는 사람들의 취향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가는 듯하다. 소위 좀 나간다는 음반들을 보면, 대중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몇몇의 아이돌 스타들의 음반이나 실력을 앞세운 매니아 취향의 음반이 거의 주를 이루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힙합은 단연 인기 종목이다. 얼마 전 핫트랙스 앨범 판매 차트에서 동방신기 다음으로 새겨진 드렁큰 타이거의 이름을 보았다.

이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에서 기인된다. 하나는 그만큼 요즘 한국 힙합 씬에서 주조되는 음반들이 살만한 가치를 지닐 만큼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내고 있다는 뜻이며, 또 하나는 힙합 음악이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뜻이다. 언더에서 시작한 일부 힙합 그룹들이 (매니아적 아티스트쉽을 가지고) 잘 만든 힙합 음반으로 공중파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간 매니아들만의 음악으로 치부되었던 힙합 음악이 길지 않은 시간동안 대중들에게 얼마나 많이 인지되었는가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잘 만들었지만 기회가 좁아서 소개되지 못하는 앨범들도 많지만, 잘 만들었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힙합 그룹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으로 통하는 문이 넓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어쨌든 긍정적이다. 방송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푸념으로 넘기기엔 그들 앞에 닥쳐 있는 현실이 매우 딱딱하므로 힙합에 관한 생각을 마냥 긍정적으로 몰고 갈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종목에 비해선 상황이 낫다라는 말은 틀리지 않다. 남은 가을과 겨울에도 출시를 기다리는 힙합 앨범들이 많다. 그중에 기대되는 몇몇 팀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소박한 보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씬에 관심을 잊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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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나(soulgarden@hanmir.com)

한창 여름이 될라 치던 5월 중순께 소문이 흉흉했던 CB Mass가 전격 해체되고 최자 개코 체제의 다이나믹 듀오가 데뷔앨범을 냈다. 다이나믹 듀오의 1집 [Taxi Driver]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도움으로 한결 입체적이고 세련된 어반이 되어 나타났기에, 앨범은 대박이 났고 그들은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뒤를 이은 7월, 2003년 힙합씬에서 최고의 기대를 모았던 에픽 하이가 소포모어 앨범을 들고 나왔다. 게다가 별로 거칠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앨범이 네 곡을 제외한 모든 곡에서 심의의 제지를 받았고, 이러저러한 정황들은 다이나믹 듀오에 이어 에픽하이에 이르기까지 무브먼트 크루 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켰다. 그리고 어느새 달려와 버린 8월, 무브먼트의 숨은 고수 바비김이 실로 오랜만에 솔로 앨범을 냈다. 이렇게 반가움과 더불어 질적으로도 포만감을 줬던 무브먼크 크루가 여름 내내 몰아치던 2004년, 정작 나온다던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은 예약 판매라는 딱지를 붙이고 꽤 오랜 동안을 대기하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무브먼트의 깃발 드렁큰 타이거는 사실, 에픽 하이가 나오기도 전부터 5집에 관한 모든 준비를 마친 채 출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드렁큰 타이거는 DJ Shine이 거의 빠진 상태에서 앨범을 만들었고, 이런 와중에 기존과는 또 다른 변신을 꾀하기까지 하였다. 안그래도 무브먼트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유난히 집중되어 있는 요즘이 아니던가? 이 곳의 수장인 드렁큰 타이거는 (DJ Shine이 빠진 자리에) 패밀리를 대동하여, 이미 무브먼트라는 집단에 시선을 모으고 있는 팬들에게 새로운 분위기로 포효를 시작하였다. 한국말이 서툴긴 했지만 드렁큰 타이거의 랩실력은 데뷔할 때부터 유명했다. 그리고 무브먼트라는 일가를 이루면서 패밀리 안 밖으로 Tiger JK가 갖는 입지는 매우 견고했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덧 5집을 발표 했고, 한국판 갱스터 랩으로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던 그들은 매우 새삼스럽게도 한결 부드러워진 자태를 취하고 있었다.

인트로 스킷 없이 다짜고짜 시작되는 첫 곡의 제목은 '긴급상황'이다. '지금은 긴급상황/ 하던걸 중지해 지금 당장'이라는 다급한 훅을 먼저 날리는 이 곡은 비트 또한 매우 다급하다. 비트가 익숙한 듯 들리지만, '팀버랜드 견고하게 베끼기'가 어반(Urban) 음반에 있어 '고급스러움'의 잣대가 되고 있는 요즘의 시류와는 그다지 연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트로트 멜로디를 전면에 깔아 놓은 '편의점'은 중간 중간 '투둑'하고 들어가는 드럼 프로그래밍이 마치 젓가락 장단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 곡은 새벽에 편의점을 찾았다 그 곳의 아르바이트 여(女)를 한 눈에 사랑하게 된 (언뜻 듣기에)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의 애심가(愛心歌)로, 심각한 상황을 코믹하게 만들어 삼류 분위기를 내는 것이 DJ DOC의 '허리케인 박'과 정서가 닮아 있다. 훅 부분에서 울먹이는 소리로 앵앵 거리는 것과 애절하기 짝이 없는 바이올린 소리는 '허리케인 박'에서 우스운 멜로디와 창법을 써 나름대로 심각한 멜로를 삼류로 만들었던 것처럼, 심각을 가장한 삼류 멜로를 우스워 지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소스로 작용하였다.

파티 넘버의 '이 놈의 Shake It'은 바이올린과 기타, 베이스를 실제로 사용하여 각자 다른 높이에서 움직이는 현의 파장들을 서로 엇갈리도록 엮어 촘촘하고 특이한 그물을 만들었는데, 그에 반해 멜로디와 가사는 매우 단순하다. 귀에 확 꽂히는 멜로디, 끝에 가서 터트리는 야마, 그리고 가슴을 후비는 가사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저미는 음악의 세가지 요소를 요구하는 매니저의 말에 그들은 전인권 컨셉의 오천원 송 '가수 지망생'으로 보답한다. 고작 오천원 인생의 절규가 그 세가지를 다 충족해 버리고 마니, 노래가 우스워서 내 인생이 우스워서 실소가 절로 나온다. 레게처럼 엇박으로 훵키하게 절며 가는 'Liquor Shot(술병의 숟가락)'은 이 모든 연주의 중심에 기타가 있으며 쉴 새 없이 빠른 그루브를 그린다. 연주는 단순하지만 타이거 JK의 멜로디 랩은 매우 다이나믹 하며 중간에 잠시 흐르는 스크래치나 탐바레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난타, 그리고 어느 순간 삽입되는 아주 부드럽고 쌉쌀한 앤(Ann)의 보컬이 매우 정신 없이 어우러져, (짧지 않은 런닝 타임을 가졌음에도) 언제 끝나는 지도 모르게 흥겹다가 일순간 종료되어 버린다.

고집스러운 무브먼트 크루의 피처링이 다양한 가사를 엮은 '고집쟁이'는 곡의 진행에 있어서는 다른 곡들에 비해 조금 평이하지만, 클럽 공연에서 재미있는 연출이 가능하도록 짜여진 훅이 인상적이다. 'Once Upon A Time'은 이민 1.5세대인 타이거 JK의 힘들었던 어린시절 타향살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지럽게 널려 있었던 미국에서의 게토 생활과 이를 떨쳐버리고 래퍼가 되기까지의 아픔이 있는 개인사를 자서전처럼 읊어나간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클럽 공연 절정 분위기용 노래인 '백만 인의 콘서트(노래방 Rap)'는 '고집쟁이'보다 훨씬 헐렁한 그루브를 그리며 놀새떼들의 한량기를 자극한다.

드렁큰 타이거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카리스마는 여전하지만 이번 앨범은 이전의 작품들과 확연하게 차이 진다. 랩도 랩이지만 사운드 메이킹에 보다 많은 치성을 들였으며 직설적이고 가오를 중시했던 랩 가사도 '비꼬는 투'로 다소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삐죽 삐죽하고 날카로운 원형은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들로 가시와 가시 사이를 메웠는데, 가시와 가시 사이의 공간을 땜질한 그 물질들은 드렁큰 타이거라는 물질 본연의 것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물질에서 추출하여 붙인 것이 아니라 양 갈래로 갈려진 생채기사이에서 새살이 돋아 생채기를 없애듯 자신들이 가진 원재료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불거져 나온 그것은 기존의 자신들이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들로선) 새로운 것들이어서, 멀찌감치 떨어져 봤을 땐 색깔이 동일하지 않아 얼룩 덜룩해 보인다. 특히 앨범 상단에 자리 잡은 트랙들은 사운드에 대한 아이디어나 짜임만으로도, 타이거 JK가 쌓아둔 내공이 많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번 앨범은 보다 대중적인 포즈를 취하면서도 그 대중성을 음악성이라는 내공으로 일구었기에 단순히 '랩 잘하는 형님'을 선을 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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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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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로 복원된 조선시대 사회주의운동

요즘엔 꼭 소설책 한권은 곁에 두려고 합니다.
두꺼운 책들을 읽다보면 자칫 지루해지기도 하고, 사실적이고 분석적인 책들과는 사뭇 다른 멋을 지니고있는 것이 소설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대부분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인데,
소설을 읽으며 머리 속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일이 굉장히 재밌습니다.

이번에 단양에 다녀오는 길에도 소설책 한권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안재성씨의 이력은 말 그대로 386. 60년대 생에, 8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으나 광주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제적을 당했고, 이후에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동구권 몰락과 함께 과거를 청산해버린.

요즘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끔 글을 쓴다는 안재성씨의 책 <경성트로이카>는 1930년대 일제치하에서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청산해버린 과거의 사회주의운동을 우연한 계기로 다시 접하게됩니다. 경성트로이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효정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죠.

구도와 내용 면에서는 손석춘씨가 쓴 <아름다운 집>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아름다운 집>이 혁명가 이진선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다면 <경성트로이카>는 이효정 할머니의 회고와 저자가 공부했던 김경일 교수의 <이재유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 내용에 있어서는 조선시대 사회주의자들의 일대기를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김경일 교수가 연구한 '이재유' 라는 사람은 <경성트로이카>의 주인공 격이기도 한데, 당시 경성지방 - 오늘날의 서울 - 노동운동 및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혁명가입니다.)

# "허무한 일이요"

책을 읽으며, 내내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떠올랐습니다. 대부분 일독하셨겠지만, <태백산맥>은 일제 말기의 빨치산 투쟁을 그리고 있죠.

시대적 맥락에 따른다면, <태백산맥>은 <경성트로이카>의 후반부에 붙일 수 있을겁니다. <경성트로이카>에서 경성을 비롯한 조선, 만주, 중국 곳곳을 넘나들며 일본의 지배에 맞서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꿈에 그리던 해방된 조선에서 일본군이 아닌 한국정부와 북한정부에 의해 스러지게됩니다.

"일정 때 우리가 놈들의 힘을 빼앗으려고 싸우는 동안 당신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웠소. 우리가 학업과 생업을 포기하고 공장과 감옥을 떠도는 동안 당신들은 국가를 운영할 기술을 배우고 사람 고용할 돈을 모았소. 일제가 물러나고 보니 우리 같은 사람은 쓸모가 없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구려. 참 허무한 일이요. 허무한 일이요"

마지막으로 체포된 혁명가 김삼룡이 자신을 심문하는 경찰관에게 던진 말입니다.
과거 자신의 운동을 스스로 청산해버리고 홀홀히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안재성씨가 굳이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을 복원한 소설을 써낸 이유가, 김삼룡의 한마디에 담겨있습니다.

일제시대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더불어 일본의 지배에 맞서 싸우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합니다.
이 두 세력은 일본제국주의라는 적을 상대로 하나로 뭉치게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간회'입니다. 그런데, 신간회는 광주학생운동 -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인 학생이 조선 여고생을 희롱하면서 생김 - 을 기점으로 다시 나뉘게됩니다.
항일시위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 두 세력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데, 먼 장래를 위해 당장의 싸움을 자제하고 힘을 기르자는 주장과, 당면한 싸움을 전면화해야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을 가르게됩니다.

물론, <경성트로이카>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상을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파업이라는 무기를 통해서 항일시위를 벌였으며, 일년이 멀다하고 일본군에 의해 체포와 고문을 당해야했던 조선시대 사회주의자들.
책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체포'일 정도로, 이들은 헌신적으로 싸웠고, 그만큼의 견제와 억압을 받은 것이죠.

# 스러진 천덕꾸러기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활동을 계속하던 이들이 해방을 맞은 것은 1945년 8월 15일.
이들은 꿈에 그리던 합법적인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조선인민공화국'과 '조선공산당'을 수립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일제 치하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은 대중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고, 조선공산당은 불과 몇 달 만에 수만명의 당원을 확보할 정도로 세가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좌초되는 것은 그 해 12월의 신탁통치.
미국과 소련은 모스크바 삼상회의를 통해서 신탁통치를 결정하게 되는데, 조선공산당은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반대하고도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 곧 급추락하게 됩니다.
유일한 견제세력이던 사회주의 세력의 추락은, 미군정과 친일파, 우익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었고, 그토록 해방을 기다렸던 사회주의자들은 해방된지 일년 만에 다시 불법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다시 일제시대처럼 지하활동을 시작하거나, 월북하게되죠.

하지만, 박헌영을 비롯해 이천여명에 가까운 남로당 출신 월북 사회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을 비롯해 북한 공산당에 의해 견제를 받았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숙청되는 운명에 처합니다.
남쪽에 남아서 지하활동을 하던 이들, 즉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빨치산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한정부와 남한정부가 벌이는 휴전협상 아래, 그(녀)들은 천덕꾸러기 처럼 소탕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 이질감

이질감입니다. 본문 내내 등장하는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의 처절하고 헌신적인 투쟁과, 그(녀)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해방 이후의 허무한 몰락의 과정은 이질적입니다.

물론, 이질감은 몸뚱이의 죽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월북한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자유조차 보장하지 않는 북의 현실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자는 현실을 왜곡했습니다. 몸뚱이의 죽음보다 더욱 처절한 것은, 정신의 죽음이었죠.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주의의 늪에 깊숙히 빠져들었던 남한사회에서 이 이질감은 논의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과거의 상흔을 잊은 채 깊이 가라앉았어요.

하지만, 한번 깊이 가라앉아버린 이질감은, 반공주의가 어느정도 사라진 후에도 다시 떠오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무릎을 꿇었을 저자 안재성씨 역시, 이 이질감을 극복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는 겁을 내는 어린아이처럼, 보고싶은 과거만을 회상하고 복원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가 복원한 사회주의는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질감의 원인, 코민테른

두개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르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안재성씨와 이효정 할머니가 아무리 애를 써서 과거를 복원한다 한들, 복원된 사회주의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의의는 허공에 흩어질 테니까요.

사회주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극중 일면에서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극중 국제선과 국내선과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주인공 이재유가 결성한 '경성트로이카' 조직과 같이 경성지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사회주의자 권영태 그룹. 이 두 그룹은 경성지역 사회주의운동을 위해 통합하려고 하나 갈등하게 되죠. 권영태 그룹은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 세계 공산당의 연합조직 - 의 별칭)의 지시를 받는 국제선 조직이었고, 이재유 그룹인 '경성트로이카'는 자생적인 국내선 조직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갔다가 돌아온 후 신문사나 잡지사에 취직하는 등의 비슷한 경력을 쌓고 있었다. 현장의 대중 조직 건설 보다는 국제선과 연결되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같았다. 이재유는 이들 지식인 출신 사회주의자들을 신용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공산당이 노동자와 농민 출신 중심으로 재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국제선과 국내선이 얼마나 현장에 기반을 가지고 있느냐를 떠나서,
소련 공산당을 위시로 한 스탈린의 코민테른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지령적이고 일방적인 지도체계를 유지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코민테른의 경직성은 <태백산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 당시 남한 뿐 아니라 북한의 사회주의 운동에서 코민테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죠.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코민테른으로 등치되는 그 순간, 사회주의는 정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조선공산당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입장을 급선회 한 것 역시 코민테른의 지시였는데, 민중의 요구보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지령적으로 수용했던 박헌영 선생은 되려 북한에서 미국의 간첩으로 몰려 숙청을 당하게 됩니다. 이미 코민테른은, 세계의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어 갈 조직이 아니라,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여타 연합국과 한반도 나눠먹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온전한 얼굴, 그리고 살아있는 운동

코민테른의 발자취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운동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죠.
사회주의 국가를 모델화 시켜 소련이나 북한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코민테른 운동과 등치시키는 순간, 그 운동은 죽게되고 정체하게 될 것입니다.

동구권이 몰락하고 많은 운동권들이 운동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그(녀)들중 누구도 동구권의 권력구조, 산업구조, 소련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오류에 대해서 돌아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들의 운동이 죽어있고 굳어있는 무엇이었다는 것은 아닐까요. 동구권이 몰락했다 한들 한국의 상황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그(녀)들을 떠나게 만든 것입니까.
그(녀)들에게, 저자인 안재성씨에게 운동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실제, 유럽에서는 1930년대, 즉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집권을 하던 즈음부터,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였고,
동구권 몰락 이후에도, 적어도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 이념이 권력을 잡기 전인 일제시대에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다 죽어 간 혁명가들의 생애를 복구하는 일은 의미가 있지만, 사회주의자들의 긍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그 이념이 가진 근원적인 문제를 가려 버리는, 내 스스로 원치 않는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저자 서문에서

극구 서문에서 자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가며 조심스러움을 내비치는 안재성씨,
그가 이효정 할머니와 복원해낸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얼굴은 단지 반쪽이 아닙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온전한 얼굴일 뿐입니다.

애써 반쪽을 만들고저 하는 저자의 서문과, 책 말미의 처참한 죽음들이 이질감을 주는건 그 때문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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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시대의 불꽃 8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 책을 집어들며

80년 광주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윤상원 열사의 평전을 집어들었습니다.

사실, 평전 내지는 위인전은 한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어왔는데,
적어도 투쟁을 하다 돌아가신 열사들의 평전은 개인의 삶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열사의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는 늘상 '투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투쟁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점 때문이죠.

뭐 여튼 저 역시 열사의 평전을 통해서,
80년 광주가 광주 시민을, 그리고 학생 출신 노동운동가 였던 열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옅보고 싶었습니다.

일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일반적인 수준에서 80년 광주는, 군부의 독재, 공수부대의 잔인한 진압, 시민들의 민주화 항쟁,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늘날 광주를 이렇게 기념행사 수준으로 전락시켜버린건,
흔히 비판받듯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나버린 사람들이 아니에요. 한정지은 광주의 의미 자체죠.
그래서, 기존에 부여해놓은 공식적인 멘트를 뛰어넘는 것, 광주를 단지 '죽어있는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교훈'으로 배우는 것이 제 출발점이 됩니다.

# 봉기

가장 먼저 주목했던 점은, 광주의 봉기적 성격이에요.
아시겠지만, 광주 항쟁의 불길을 당긴건 전남대 조선대 학생들의 시위였죠.

'서울의 봄' 이라고 해서, 10ㆍ26 이후부터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시키기 전까지의 평화시기를 뜻하는데,
물론 평화적 분위기는 표면적이었을 뿐이고, 실제 정계에서는 전두환의 암투가 시작되고 있었죠.
이 시기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학도호국단을 없애고, 민주적 학생회 건설을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여튼, 처음에 시민들은 학생들의 시위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는데,
나중에 이들은 광주 항쟁의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는거죠.
소수의 학생들과는 다른 시민들의 압도적 숫자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거에요. 실제, 이후 도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은 시민들이었으니까요.

이건 굉장히 재밌는 구도입니다.
학생들이 주도한 시위가 시민들에 의해 본격화된다는 사실이 말이죠.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혁명의 구성요소를 들어 '의식성'과 '자생성'을 얘기했는데,
광주를 두고 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어려운 경제 정치적 상황 - 당시 광주는 두가지 모두에서 고통받고 있었죠 - 에서,
학생들은 의식성을, 시민들은 자생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의식성과 자생성이 결합될 경우에만, 봉기는 가능해지는거죠.

결정적인 시기, 이를테면 87년 노동자대투쟁이나 97년 노동법개악저지투쟁과 같은 시기가 아니라면,
운동은 소위 활동가라 불리우는 이들, 이를테면 노동조합 상근자나 노동운동가, 학생운동가, 정당활동가, 등등의 몫인 것 처럼 보여져요.

그런데, 이들의 운동은 자생성과 결합되지 못할 경우에는 분명히 한계를 가질거에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처럼 운동이 숨죽이고 있는 때에도, 참을성있게 활동을 해나가며, 극단적인 오류 - 고립된 소수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보려는 - 로부터 벗어나야겠죠.

# 지도부 그리고 <투사회보>

두번째는, 시민들이 모두 일어난 이후의 문제인데요,
윤상원 열사가 광주 항쟁 당시에 발간했던 <투사회보>는 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거에요.

윤상원 열사는 광주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봉기와 도청으로의 진격이 무질서하게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민합니다. 힘이 한곳으로 모아지지 않는다는 점을요.
<투사회보>는 이런 고민에서 만들어 진 것인데, 공수들과 물리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그 혼란스럽던 정국에서, 많게는 40,000부 적게는 5,000~6,000부 가량 찍어내어 시민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하게됩니다.
<투사회보>는 공수의 진압이 시작된 19일부터 열사가 산화한 26일까지 10차례 발행되었고, <투사회보>를 통해서 시민들은 소식을 공유하고, 조금씩 집중된 힘을 발휘하게 되는거죠.

공수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후, 투사회보 작업실에서 벌어진 후배 서대식과의 대화가 열사의 심정을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형님, 공수놈들이 총을 쏴대는 데 이까짓 종이쪼가리난 만들어서 뭐합니까. 시민들이 총을 쏘고 있다구요!"
"야, 이 자식아. 유인물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총칼 들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흥분해 가지고 총든 시민들 통제할 수 있겠어? 감정만 앞서 가지고 계엄군을 이길 수 있겠냐구. 우리가 할 일이 없어서 이 짓을 하고 있는 줄 알아? 시민군을 통제할 수 있는 지도부가 없는 현실에서 선전선동은 생명과 같은 거야. 투쟁열기를 높이고 투쟁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할 일임을 명심해! (중략) 전두환이는 총칼보다 투사회보 한 장을 더 무서워해. 알았어?"

저는 광주와 같은 봉기에서 지도적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지도적 역할' 이 자체만으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실제 봉기의 주체, 운동의 주체를 잘 이끌어 줄 수도 있고, 반대로 억압할 수도 있죠.

# 지도적 역할의 양면성과 수습위원회

정말, 지도적 역할의 양면성이란, 광주 항쟁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데,
사실 알만한 사람만 아는 것 같아요.

광주에 대해서 안다 하는 사람들도,
도청 장악 이후에 장열히 산화했다는 사실만을 기억할 뿐, 장악 이후의 시민들 내의 갈등이나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아요.
역사는 교훈을 얻지 못하면,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는데 말이죠.

아시겠지만, 공수들은 도청을 스스로 비우고 시 외곽으로 퇴각하죠.
일종의 권력의 공백기. 도청으로 밀려든건 시민이지만, 공백상태에 있는 권력을 잡은건 시민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광주시 부시장을 비롯한 광주지역 명망가 - 교수, 변호사, 등등 - 들이었죠.
이들은 수습위원회를 꾸려 지도부의 역할을 자처하는데, 광주의 상황실을 차지하고는 계엄사와의 협상에 들어가더니, 곧 이어 무기를 반납하자는 선무방송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진으로 한번즈음 봤을 법한 도청 앞 시민궐기대회 역시도, 시민들을 흥분시킨다는 이유로 열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수습위원회의 협상에 귀기울여 줄 것을 당부합니다.

윤상원 열사는 이런 수습위원회의 태도에 반대했죠.
그는 계업사와의 협상을 할 수 있는 힘은 수습위원회가 아니라 시민들의 결집된 힘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장을 유지 혹은 강화한 상태에서 시민궐기대회를 통해 시민들의 힘을 더욱 모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열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시 시민군의 상황실장으로 수습위원회와 갈등하던 박남선을 만나게되고, 결국 새로 지도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당시 수습위원회와의 갈등은, 도청 장악 이후에 협상이 한참이던 23일, 박남선의 수기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시간이 갈수록 수습위에 대한 나의 불만은 더해가고 있었다. 구속된 몇 사람을 빼와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자기들이 했단 말인가? 지금까지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은 왜 신경을 써 주지 않고 엉뚱한 일만 하는가? 왜 총을 회수해 가 계엄당국에 바치는가? 왜? 지금도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에 죽어가고 있는데 무기회수가 웬 말인가?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런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무기를 절대 넘겨주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권총을 빼들고 가서 무기고를 지키고 있는 시민군에게 '만일 내 허락이 없이 무기를 내주었다간 죽여버리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 '들불야학'과 <투사회보>

시민들이 도청을 장악한 22일을 전후로 한 상황은,
실제 봉기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열사의 삶은, 단지 도청을 지키다 죽어간 민주열사 이상으로 열사가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나갔는지를 - <투사회보>제작, 수습위원회 장악, 무기반납 반대, 도청 사수 - 보여주는 것 같구요.

덧붙여, 제 개인적인 관심사 덕분에 거의 언급하지 못했지만,
광주 이전에 열사의 삶은 '들불야학'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전대 정외과를 졸업했고,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주택은행 행원으로 입사했던 그는, 1년 남짓한 은행원 생활을 접고 광주로 내려와 '들불야학'과 함께 현장의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고, 이 '들불야학'은 이후 <투사회보>를 제작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게되죠.

실제, 평전에는 열사의 대학생활 이후에는, '들불야학'과 <투사회보> 두가지를 주로 다루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저와 달리 '들불야학'에 초점을 두고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 마치며

마음 같아선, 좀 넉넉하게 잡아 한국의 근현대사를 둘러보고 싶은데,
사정이 별로 여의치가 않아요.

광주와 관련해서는 익히 읽혀왔던 황석영 선생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제가 알고있는 광주 관련 서적 중에서 사료로서의 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 같군요. 윤상원 열사의 평전이나 박남선씨의 수기의 경우는, 지도부 내부의 갈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지만, 시민들의 분위기를 옅보기는 쉽지 않거든요. 황석영 선생의 책이 기록형식으로 되어있으니, 그 부분의 부족함을 메워주리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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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관점

지난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GP에서, 근무병 한명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동료 부대원 8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은 사건 직후 합동조사단을 현장에 파견하고 수사를 진행하였으나, 끊임없이 책임소재로부터 벗어나고 사건의 원인을 은폐하려는 무책임으로 일관하여, 심지어 자본가 정치인, 언론으로부터도 지탄을 받았다.

또한, 자본가 정당인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대적관이 해이해졌다”며 날뛰었고, 심지어 국방장관 해임, 내각총사퇴와 같은 자본가 정치판의 정치공세로 끌어갔다. 열린우리당 역시, 이번 사건을 군사문화의 탓으로 몰며, ‘병역문화 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 라는 부질없는 캠페인을 주장했으며, 민주노동당도 캠페인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민간인이 참여하는 ’군 인권감시기구‘ 의 설립을 주장했을 뿐이다.
이들 중 가장 가관인 것은, 단연 군 합동조사단이었다. 이들은 김일병의 성격결함이나 정신병 경력 등을 조사하는데 집중하였는데, 이것은 이들이 자본가 군대 내에서의 범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범죄를 바라보는 관점을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의심하지 않으며, 자본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히 복무하는 자본가 계급은,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문제의 원인은 결코 분석해 낼 수 없고, 분석해내지 않는다. 이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자본주의로부터 떨어뜨리려 노력할 뿐이며, 그 결과는 결국, 근본적인 원인의 주위만 맴돌 뿐이다. 캠페인 수준의 생색내기는 오히려 나은 편이며, 더러운 자본가 정치판의 정치공세, 심지어 개인 병력을 들추어내는 조잡함까지 보이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자본가들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자본가들 역시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하락하는 노동조건과 비정규직화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산재와, 고용불안, 실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책임지기를 거부하며, 심지어 그것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바쁘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의 아무리 부산스럽게 소란을 떨며 문제를 진정시키려고 발악해봤자, 그것이 결코 문제의 해결과 요원함은 자연스레 증명이 될 것이다. 가혹행위 금지, 병사 인권 존중, 병영문화 개선과 같은 공문구는 물론이고, 병영 내 시설보강, 인권기구, 상담기구의 확충과 같은 해결책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지리하게 등장했던 해결책들이며, 이런 해결책들이 군대 내 사고사례를 줄이는데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 노동자들은 잘 알고있다. 최근 2~3년간의 병영 내 연간 자살사고만 해도 70여건에 달한다!

이번 총기난사사건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병영 내 의문사들, 숱한 자살사고들은, 근본적인 원인에서 동일한 동전의 양면일 뿐인 것이다..

노동자 병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

군에서는 이 쟁점과 관련해, GP관련 시설의 전면 재보수, 병사월급 인상, 등과 같은 노동조건 개선안과 더불어, 병사들의 인권을 위해 고충심사 기구의 확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문제를 봉합하기 위한 생색내기가 아니라면, 실제적으로 병사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을 우리는 환영해야 한다.
병사들에게는 더 많은 휴식시간과 임금이 주어져야 하며, 현재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에 우리는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조건의 개선 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병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더불어, 병사들의 심리적인 압박과 고통, 이에 따른 부적응 사례가 문제의 중심에 놓여있음을 알고있다.
자본가 군대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 병사들에게 동지적 애정을 갖고있는 진지한 선진투사라면, 물리적 심리적인 폭력에 대한 병사들의 고통을, 자본가 언론의 무책임한 논평처럼 단지 문화적 현상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본가 군대 내에서 노동자 병사들은 끊임없이 장교들과 갈등한다.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이지만, 정치적인 중립을 표방하며 이루어지는 쇄뇌성 정신교육,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관료적이고 폭력적인 명령체계와 복종에의 강요, 일과시간과 자유시간의 구분이 없는 고통스러운 노동착취,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 마저도 없는 징계와 영창의 위협, 외부와의 완전한 단절, 마지막으로 장교들의 지배체제를 체내화 해버린 노동자 병사들 사이의 또 다른 폭력이 그것이다.
덧붙여, 오랜 군부독재를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한 조건에서는, 과거 군부가 입지를 마련해왔던 장관과 같은 정부기관의 요직, 국회의원, 국영기업체에서 군부의 입지가 좁아진 이후, 장교들에 대한 진급압박과 더불어 이러한 통제와 착취가 더욱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주적은 장교들이다.” 라는 병사들의 은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러한 신체적 정치적 자유의 억압은, 일상적 시기에는 장교에 의한 폭력, 혹은 병사들 상호간의 폭력을 통해 일시적으로 봉합되는 듯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불완전한 봉합은 휴화산 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의문사, 자살사고, 항명, 수류탄과 총기난사에 이르는 이번 사건으로 각기 다르게 터져나오는 것이다.

정당한 신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라

하지만, 자본가 군대는 일시적인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생색을 내고 상담기구의 확대 정도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면서, 병사들의 자유 확대를 근본적으로 막아설 것이다.

상담기구의 확대란 무엇인가. 그동안 군대에서 시행해왔던 ‘관심병사 분류작업’ 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신체적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이 봉합을 끊어내는 고리가 되지 못하도록 격리하여, 심리적 회유와 정신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병사들의 자유가 확대되지 않는 한, 그들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어떤 말장난으로도 병사들의 저항을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군이 국회 조사단에 제출한 ‘비전캠프 - 심리 치료 및 상담 프로그램 - 운영현황’ 만 보더라도, 03년 11월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3,000여명이 넘는 병사들의 대다수인 75%가 그대로 ‘복무부적응 상황’ 이나 ‘부대적응 관리병사’ 로 분류되어 퇴소하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관심병사 분류작업은 자본가 군대에 입대한 젊은 노동자 투사들을 대중과 분리시키는 계략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선별 분류하여 사업장 내 전환배치, 및 공격적 직장폐쇄, 공단 내 블랙리스트 배포, 등을 자행했던 자본가들의 공격과 완전히 닮아있는데, 이들은 이러한 탄압을 통해 끊임없이 병사들의 자유 확대를 막아설 것이다.

우리는 비정규직화, 폐업과 실업, 산재에 의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열악한 노동조건, 신체적 정치적 자유의 억압에 의한 병영 내 젊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동일한 동지적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병영 내 병사들의 신체적 자유, 사상의 자유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울 아래 이루어지는 도서 및 음반에 대한 검열을 철폐하고, 정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병사들이 좀 더 자유롭게 사회와 교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군대, 계급적 본질의 폭로

병사들의 정당한 신체적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북의 군사적 대립구도, 안보논리,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구와 기만을 꿰뚫고, 반드시 대중적으로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기만은, 일상적인 시기에 폐쇄된 군대 안에서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미화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실제, 복무신조 1항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된다.” 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이야 말로 가장 체제 지향적인, 따라서 정치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병사들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채 중립성이라는 허울을 둘러쓰고, 자본가 체제의 수호, 한미동맹의 강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정당화를 세뇌적으로 주입받고 있는 것이다.

군대는 창설 이래 지금까지 자본가들의 오른쪽 날개를 자임해왔고, 일상적 시기에는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본가들의 지위를 뒤흔들 때면, 어김없이 중립성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졌다.
61년 이후 30여년간의 지속되었으며 아직도 정계 곳곳에 남아있는 군부정치의 그림자가 그것이며, 사전에 전문적인 시위진압훈련을 받은 특수전사령부의 공수부대가 80년 광주를 열사들의 피로 물들였고, 대중적으로 폭로된 계급적 투사들에 대한 녹화사업과 삼청교육대, 그리고 90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 투쟁을 미포만의 군함으로 짓밟은 바가 있지 않은가.

안보논리 역시 마찬가지로 노동자 · 병사들의 입과 귀를 막기 위한 책동에 불과하다. KAL기 사건, 수지김 사건과 같이 이미 폭로된 북풍(北風)사건들 뿐만 아니라, 정치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제일 먼저 북한 정권과의 협잡을 시도했던 것이다.

모병제추진국민연대(이하 모추연)와 같은 시민단체, 소부르주아 학자, 논평가들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병제(징병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모병제 추진은, 이러한 군의 정치성과 계급적 본질을 명확히 폭로를 수행하지 않고 드러나는 현상적 문제들에만 치중하면서, 군의 효율적 축소라는 자본가 계급의 관점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저들의 이권각축장일 뿐인 각국 자본가들의 더러운 군비경쟁을 위해서는 단 한푼의 세금도 보태줄 수 없다.
우리는 오로지, 노동자 병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에 지지를 보낼 뿐이며, 병사들의 정당한 신체 정치적 자유가 확장시키고, 허울뿐인 안보논리 대신 사회와의 원활한 교류가 보장될 때 만이, 이번 총기난사사건과 같은 사고를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과 자본가 정당에서 내어놓은 잡다한 캠페인과 인권기구 확대안은 착취받는 노동자의 아들을 교정하고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지만, 우리는 이들을 동지적으로 바라볼 것이며, 이들이 자본가들의 이해에 동원되는 2중대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동지적 연대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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