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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여행 - 갤브레이스교수와 함께 떠나는
존케네스갤브레이스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1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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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인지 전쟁사인지 구분하기 힘든 경제사 한편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의 약력이라는게,
여섯살에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경제사에 극적인 반전이 있었던 1920년대에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2차 세계대전엔 전시의 물가안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일했고, 등등.
전쟁을 빼놓고는 도무지 써내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자의 약력에 혀를 내두르며 질문을 다시 던져봅니다.
" 경제사에서 전쟁이 그리 중요한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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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익히 알려져있는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그의『경제사 여행』은 전쟁 얘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납니다.
어쩌면,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그만큼이나 구체적으로 서술한 학자가 드물기 때문일겁니다.
어디까지나 짐작이긴 하지만,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 그것이 전시경제이든, 전후경제이든 - 은 아마도 청년 갤브레이스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주된 과제였을겁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그가 경제학을 수료했다는 프리스턴 대학의 경제학 커리큘럼이 전후경제 - 특히, 물가안정 - 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라면,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 1930년대 초의 분위기 역시도 장년이 된 경제학자에게 전시경제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수 없게 했을테니까요.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사건 위주로, 드라마적으로 나열하는데 익숙합니다.
2차 세계대전은 누가 누구를 총으로 쏴서 일어났더라- 거나, 혹은 이것이 너무 유치했던지 20세기 역사 전부가 보이지 않는 정부의 조작 결과인 양 - 하지만, 소위 '음모론'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 생각하는 것 말이죠.
『경제사 여행』은 이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쓰여진 20세기 역사입니다.
1차 세계대전 - 전후호황 - 대공황 - 2차 세계대전 - 뉴딜 - 한국전쟁 - 스태그플레이션 -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은,
철저히 각 사건이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설명되고 전개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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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사의 대전환점, 다시 말해 다른 어떤 전환점보다 더 확실히 현대의 경제시대를 예고해주었던 전환점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대전이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1차 세계대전을 '경제사의 대전환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책읽기가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가 '대전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기준을 둔 것은 아마도 '경제주체'일 것입니다.
흔히, 자본주의의 시작점을 17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에 둡니다만,
어찌보면,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경제주체의 탄생을 의미할 뿐이니까요.
즉, 경제사를 한편의 영화에 빗대자면, 그는 신인배우보다는 주인공에 관심을 두고있는 것입니다.
영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가 이 대목, 그러니까 산업혁명 이후에 새롭게 떠오른 신흥 부르주아들이 기존의 토지귀족과 갈등하는 19세기초의 유럽역사 - 에서 떠올려야 할 적절한 영화가 <타이타닉>일겝니다.
Jack과 구구절절한 연애담을 그려내는 Rose는 다름아닌 몰락하는 토지귀족의 자제입니다. 구태의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녀의 사연을 뒤로 하더라도, 그녀의 어머니가 집안의 경제사정을 들먹이며 울먹이는 장면은,
사실, 그 당시 많은 토지귀족들이 일반적으로 처했던 경제적 어려움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Jack에게 멋진 정장을 선물했던 벼락부자 아줌마.
이 벼락부자 아줌마 - 물론, 그녀는 금광을 발견한 남편 덕에 호사했습니다만 - 는 Rose 네를 비롯한 여러 토지귀족들의 못된 험담을 들은체 만체 하며 그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합니다.
재력만 있을 뿐, 출신성분이란 천하기 짝이없는 벼락부자 아줌마와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며 식사를 나누는 사람들이란,
19세기 초반의 경제주체간의 갈등을 묘사한 그럴싸한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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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브레이스 감독의 스펙터클 블록버스터, 『경제사 여행』전편이 주인공과 신인배우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면,
전편의 클라이막스가 바로 1차 세계대전입니다.
후편에서 이 신인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감독에게,
산업혁명이란 전편 시작 전에 나오는 '줄거리' 정도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막연함을 덜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볼께요.
전편의 주인공 토지귀족과 신인배우 신흥 부르주아는 각기 다른 배우, 즉 다른 '경제주체'입니다.
그것은 단지 '역사'라는 충무로에 데뷰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이 영화의 제목이 『경제사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사에서 경제주체를 구분하는 것은, 그들의 각기 다른 생산양식이죠.
토지귀족이 주인공이던, 즉 토지귀족이 경제주체이던 시절에는,
그 정치적 권위란 토지소유권 혹은 토지 소유 귀족의 전통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군사적 권력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통치자가 되거나, 의회에 진출하거나, 혹은 군대의 장교로 복무할 수 있도록 보장된 것은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반면, 이 시절 신인배우로 갖은 고생을 하던 신흥 부르주아들.
이들은 재화의 생산, 유통, 혹은 운송을 공급하면서 분위기를 끌어가지만, 토지귀족들에 의해 정치적 권위에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던 이들이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각기 다른 생산양식을 가진 주인공 토지귀족과 신인배우 신흥 부르주아들이,
한 사회의 정치적 주도권을 두고 갈등하던 시기인 셈입니다.
(물론, 각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은 유념하셔야 합니다. 독일이나 서유럽, 제정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주인공이 주인공이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의 상황은 조금 달랐죠.)
전편의 클라이막스 1차 세계대전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납니다.
전편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난 토지귀족들이니 만큼, 전쟁 역시 주인공 마음대로 '더 많은 영토의 획득'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프랑스와 독일이 사이에 두고 업치락뒤치락 하는 알자스-로렌이라는 땅덩어리나,
동부전선에서 쟁점이 되었던 폴란드 장악,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동까지 미쳤던 당시의 식민지 정책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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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후편의 주인공이 되는 신인배우 신흥 부르주아들은 토지에 별로 욕심이 없습니다.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별로 없죠.
이유는, 이 새로운 경제주체가 기반하고 있는 생산양식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 장년이 된 주인공은 아예 소리없는 전쟁(금융전쟁)까지 일으키는데,
하물며 토지라니. 그에게 토지란, 적어도 생산의 중심적 요소는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후편의 주인공.
후편 중반즈음 등장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는, 급기야 식민지들을 죄다 놓아주게되죠.
이 새로운 경제주체에겐 그다지 의미 - 경제적 가치 - 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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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브레이스 감독의 영화에 흥미가 생겼다면,
후속작 '전시경제'도 꽤 볼만 하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사실, 이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란, 굳이 한 문장으로 표현해서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과 정책상의 변화' 정도가 되니까요.
그런데, 그의 후속작을 보기 위해서는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뜸들이지 않고 얘기한다면, 그가 주목하는 것은 전시경제 그리고 전후경제의 혼란상인데, 그는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 이미 이 혼란의 뿌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한개의 소제목을 달아줍니다.
"인력과 물리적 설비 및 자원을 전시용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다음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강제에 의한 방법, 둘째는 세금에 의해 모인 기금으로 필요한 전환에 지불하는 방법, 셋째는 찍어내거나 그 목적을 위해 새로 만든 돈으로 지불하는 방법, 일반적인 용어로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방법이다."
그가 이후의 혼란한 경제상과 관련해서 주목하는 항목은 셋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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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면? 빌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빌리긴 빌리는데 공적인 자리이니 만큼 증서도 한장 떡하니 써줍니다. 채권입니다.
국가가 빌리니 국가의 채권이라고 해서 국채 혹은 공채라고 합니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시사적인 제목을 붙여주면 더욱 그럴싸합니다. 'OO공채' 역사에 실재했던 이름으로는 '자유공채'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채를 주고 받은 돈은 써야하니,
빌려준 사람들이 돌려달라고 할 경우를 대비해서 돈을 좀 찍어둡니다. 일반 사람들이 하면 '범죄'지만, 발권은행(한국은 한국은행, 미국은 연방준비은행)이 하면 '통화발행'입니다.
실물경제는 그대로 있는데, 화폐가 늘어났으니 응당 화폐 1장이 대변하는 실물가치는 떨어집니다. 인플레이션(Inflation)입니다.
이런 인플레이션엔?
가만히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혹은 수입이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됩니다.
게다가, 전쟁규모라는게 한두푼이 아닌 이상, 이것은 전후 금융의 무질서를 초래하는 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뭐 어디까지나, '미리' 알아두어야 할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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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서 꽤나 유명한 배우를 우리는 마주치게 됩니다.
저 이름도 유명한 '존 메이너드 케인즈'.
그 역시도 전쟁의 포화가 한참일 때 장성했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는 1929년 대공황 이전에 이미 유명세를 떨친 사람입니다.
1차 세계대전을 매듭짓는 1919년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서 일국의 - 영국 -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뿐 아니라, 회의 중간에 회의장을 뛰쳐나오는 '사건'까지 만들어냈으니까요.
이 대목에서 청소년의 역사상식을 키워주신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선생님께 감사드려야 겠으니,
1919년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서 독일협상단이란 한껏 울상을 짓고 제 나라로 돌아갔더랩니다.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4,000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전후배상액 때문이었죠.
승전국이었던 영국이나 프랑스로서는,
전쟁이랍시고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빌려왔으니,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아야 했겠죠.
그런데, 이 장면에서,
승전국의 협상대표가 협상 중에 대표직을 그만둔 것도 모자라, 책 한권을 써낸겁니다.
이름도 노골적으로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고 붙여서 말이죠.
내용인 즉은, 복선 그대로입니다만.
패전국 독일에 대한 전후배상이 장차 세계를 뒤흔들 경제적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거였죠.
사실, 남의 얘기니까 이렇게 편히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이 케인즈라는 사람 보통 내기가 아닙니다.
가뜩이나 폐허가 된 집이며 땅을 두고 분노에 가득차있을 영국 국민 전체에게 따 당할 각오쯤은 하고 있어야 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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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가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빚에 대한 관점'이란,
빚쟁이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분노에 가득찼던 채권자들이 2차 세계대전에 휩싸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그는 상당히 약삭빠른 채권자인 셈입니다.
그는 폼나게 이렇게 말하고 있죠.
" 이 조약에는 유럽의 경제적 재건을 위한 조항이 없다. "
당시, 독일에 불어닥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그린 기가 막힌 사례가 있었으니,
1923년에 미국의 한 국회의원이 무려 10억 5,000만 마르크를 주고 식사를 했으며, 4억 마르크의 팁을 주었다고 하네요.
여튼, 이 승전국들은 차후에 상당 액수의 배상금을 변제해주게 되나,
1923년에 독일에 새 화폐가 발행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1933년에 히틀러가 채무불이행 - 오늘날의 모라토리엄인가요? - 을 선언하고 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터뜨리게 됩니다.
이쯤되면,
이 약삭빠른 채권자가 차후 IMF를 설립해서, 각 국가의 모라토리엄을 막기위해 동서분주하도록 한 것도 꽤나 그럴 듯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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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끝난 새로운 10년이기도 하고,
갤브레이스 교수가 대학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이 당시 주류적인 경제학은 신고전파 견해였다고 합니다.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로 대표되는 고전파 이론을 약간 수정한 것으로서,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시장의 자기조정능력일겁니다.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경기순환이겠죠.
일시적인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면서 시장은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경기순환.
그런데, 여기서 얼마전 읽었던 변형윤 교수님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제 후기를 읽으셨던 분이라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구조중시의 시각'에서 변 교수님의 언급 말이죠.
변 교수님 역시 이렇게 말하고있죠.
"전쟁에 기인하는 경제현상의 대변혁으로 인해서 종래의 경기변동론 내지 경기순환론으로서는 파악되지 않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대목에서 갤브레이스 교수와 변형윤 교수님의 시각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겁니다.
케인즈주의. 시장의 균형을 마법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영속적 질풍>으로 인해서 기성의 노쇠한 것이 일소되고, 새롭고 위대한 업적이 도래할 길이 닦이게 되었다. 투기적 주연, 전쟁과 그 여파 등이 이 현상과 관련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결국 고전파의 완전고용 공약, 즉 그 체제가 기본적인 경제적 힘에 의해 회복되는 정상적 상태는 아직 남아있다.
이제 나는 이 체계에 대한 맹공격으로 내 주의를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학식보다는 그동안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 의거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후 맹공격을 받는 사람들이나 맹공격을 하는 갤브레이스 교수나,
사실,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데에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차이는, 그것 - 시장의 균형 - 을 전적으로 시장에 내맡기느냐 아니면, 그에 대해서 정부정책이 관여할 여지를 허락하느냐에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기존의 고전파 경제학에서 주장해온 완전고용이나 경기순환론은,
이제 정부정책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의 운동을 하지못하는겁니다.
갤브레이스 교수의 경우, 그 원인을 '전쟁에 기인하는 경제현상의 대변혁'에서 찾는다는데에 핵심이 있습니다.
전쟁이 경제의 무엇을 바꾸어놓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