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가 분량이 부족해 할 말을 못한다는건 좀 비약인 것 같은데요?
그가 적은 분량에 대략적인 논리전개만 담아내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공병호씨는 익히 알려진 시장주의자입니다. 구체적인 자료와 논증을 거쳐 충분한 분량을 써냈어도 중심 줄기에는 변함이 없었을겁니다.
그가 동전의 한면만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비판의 근거로는 충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장주의 자체가 생산, 내지 공급이라는 경제의 단면만을 중시하는 논리이니까요. 그는 그 나름대로 자신의 시장주의 원칙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어쩌다 '시장주의' 라는 단어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그에 대한 적절한 비판은 두가지 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의 처방 자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내다보는 것이 하나요, 사회적 빈곤에 대한 그의 몰상식한 태도와 발언이 둘입니다.
후자야 세심한 배려로 감당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전자의 경우는 좀 힘들겠죠? 물론, 후자는 전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공병호경제연구소에서도 『달러의 위기 세계경제의 몰락』를 추천하고 있더군요. 물론, 연구소에서는 '환율하락이 수출중심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 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후반부에는 거의 20년 가까이 세계경제를 움직여온 통화주의에 관한 논평도 있습니다.
던컨은, '생산과 소비'의 두 축을 '음주와 해독'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소비에 비해 공급이 과잉한 경제상황을, '몸이 해독하지 못할 정도로 음주를 한 숙취'에 비유하고 있어요.
공병호씨의 처방대로라면, 우리는 숙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날 아침 해장술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해장술 좋다고 할 수도 있고 나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단, 알콜중독의 지름길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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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정치 사상 현대의 지성 67
브라이언 레드헤드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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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요즘엔 빛바랜 책들을 연이어 보게 되는군요.

『서양 정치 사상』이라고, 영국 BBC 라디오 방송의 정치사상강좌 원고들을 묶어낸 책이라고 하는데,
짤막한 원고에 플라톤에서부터 마르쿠제, 한나 아렌트까지, 열댓명의 사상가들을 담고있습니다.

이번 후기도 각 사상가들에 대한 단편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는 건너 뛰었습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 『군주론』

1513년에 집필한『군주론』덕택에 '마키아벨리적인' 이라는 형용사까지 달고다니는 불명예를 감수하고 있는 분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교묘한 정책과 교활한 협잡, 폭군 정치 지향'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 불명예라고 할 만 하죠.

하지만, 저자는 『군주론』을 독해함에 있어서 시대적 배경(16세기 이탈리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변호?합니다.
구체적인 역사를 모르니 쉬이 이해하는데에 무리가 있습니다만, 16세기이면 중세의 말미이니만큼 대략적인 밑그림은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마키아벨리가 암묵적으로? 『군주론』을 헌상하게되는 메디치家의 경우 신흥교역가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에 생각이 미치는군요.

여튼, 마키아벨리는,
타락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모든 윤리적인 규범을 무시해버릴 마음의 준비를 갖춘 무자비한 군주만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고 한 덕분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있지만,
제 생각엔, 그가 내린 결론에만 천착하기 보다는, 결론에 전제되어 있는 가치판단들을 살펴보는 편이 더 생산적일 듯 합니다.

예를 들면, 군사적 기율이나 종교신앙을 중요한 정치수단으로 바라보았던 점 같은거요.
충분히 논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런지.

# 쟝 칼뱅 - 『기독교제도론』

'종교개혁' 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 칼뱅과 루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등교육의 영향이죠. 아니, 루터의 그것이 칼뱅보다 좀 더 자유분방했다는 것 까지가 고등교육의 영향입니다. 므흣

칼뱅과 루터의 차이는 칼뱅의 단언으로 더욱 두드러지는데,
칼뱅은 "기독교도의 자유가 기독교도의 의무를 결코 능가할 수는 없다." 고 했다죠.

고위 성직자들의 전제정치, 가톨릭 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부와 권력.
칼뱅은 딱 거기까지만을 바랬던 것 같네요. 복음이 지향하는 바대로, 순수하고 물욕을 버린 영혼성의 회복. 이런거요.

어쩌면, 칼뱅과 루터를 묶고있는 '종교개혁' 이라는 분류?가 다소 피상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저자 역시도 후일의 자유주의 사조가 칼뱅에게 빚을 지고있다고 표현했지만,
본원의 종교로 돌아가려했던 칼뱅과, 잠재적이지만 종교로 부터 벗어나려 했던 루터의 그것은, 방향 자체를 달리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나마 생각해봅니다.

참, 종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김규항씨가 『예수이야기』라는 책을 준비중이래요.
지금 집필이 끝물이라는데, 동네 주민들하고 마가복음인가 누가복음 읽기?토론?을 하고있답니다. 내년 3, 4월 중이면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이야기』돌베개 출판사와 계약했답니다. 후후 개인적으로 김규항씨 좋아요.

# 토마스 홉스 - 『리바이어던』

홉스의 성장기를 보면서, 아담 스미스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거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귀족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는 출세구도?라고나 할까.
아담 스미스는 OO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있다가, 무슨 귀족집안 가정교사로 들어가 대륙여행을 한 것이 기회가 되어 대륙의 자유주의 사상가 - 흄이나 밀과 같은 - 들과 교류할 기회를 맞게 되거든요. 홉스 역시도 윌리엄 카벤디쉬 집안의 가정교사 노릇을 해야했다고 합니다.
당시 섬나라의 학자들에게는 일반적인 출세구도라고 하는군요.

저자는,
홉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홉스 이전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좀 더 정확하게 종교개혁 세력의 도그마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리바이어던』도 그렇고, 홉스는 쉬이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 존 로크 - 『인간오성론』, 『관용론』, 『정부에 관한 두 논고』

서유럽의 철학이니 정치사상 사조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라도, 로크부터는 친숙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신민들의 동의('신민'이 뭐죠?)가 정부의 정통성을 근거한다는 점이나, 종교적 신념과 실천의 자유에 대한 옹호, 재산권의 근거로서 노동을 중시했던 점, 등 오늘날에는 꽤나 당연시되는 논리들이 그 당시에는 굉장히 급진적인 주장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 장 자크 루소 -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회계약론』, 『에밀』, 『엘로이즈』

드디어 루소가 나왔군요.
루소는 우선, 정치를 인간의 삶의 핵심적인 요소로 보았다는 점에서 특이할 만 합니다. 관념이 아닌 물질적인 조건에 천착했다는 점이,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겠죠.
우리들의 악함은 본성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나쁜 방향으로 통치되었기 때문이라는건데. 그는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으로, 제도나 문명 자체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전 종교개혁이나 계몽주의에 가려진 루소의 다른 관심사들에 더 매력을 느꼈는데요.
루소는 정치사상 외에도 교육이나 음악, 인류학, 식물학,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고 합니다.

특히,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에밀』에 서술되어 있을 교육에 대한 관점이나,
「연극론」에 쓰여있는 문화에 대한 입장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본문에 짧게 소개된「연극론」을 보면,
루소는 직업적인 배우들에 의한 연극의 대안으로서, 인민들이 함께하는 그리고 우애가 넘치는 페스티벌을 제안하였다고 하네요. 집단적인 자기 표현의 아이디어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이는 독재에 대한 인민 주권이라는 그의 정치사상과 같은 맥락을 타고있구요.

모르긴 해도, 루소의 「연극론」은 예의 문화의 상품화를 걱정하는 예술인? 문화인?들의 고민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고있는 듯 합니다.
'집단적인 자기 표현의 아이디어' 무대나 마당에 서봤던 분이라면 한번쯤 설레였던 고민거리 아니었을까요.

# 잠시, 사물놀이와 풍물굿에 대해서

루소의 「연극론」이 이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새 서너해가 지나버렸지만, 연이은 술자리와 함께 하나 둘 동기들을 춘천으로 의정부로 떠나보내던 그 해에,
전 입대도 전자전기공학도 다 물리치고 문화만을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덕분에 다시금 같은 술자리에서 떠나보낸 동기들을 맞이하고, 또 그 자리를 빌어 느지막히 의정부로 떠나는 동기가 되었지만.
참 행복했던 한해로 기억을 합니다. 루소의 「연극론」이 그때 끌어안고 있었던 고민들에 '자기 표현으로서의 풍물굿' 이라는 제목을 붙여주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해요.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스물하나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전라북도 고창으로, 홍대 근처의 사회패로, 인터넷 자료실로, 무던히 돌아다녔습니다.

열정의 깊이에서 쉬이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사물놀이를 만든 김덕수씨가 그랬을까요.
그 역시도, 풍물굿 역시 하나의 문화상품이 될 것이라는 시안을 가지고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풍물굿에서 다른 요소들은 차치하고, 음악적인 요소 시각적인 요소만을 뽑아 특화시켰고, 오늘날엔 '사물놀이' 라는 파생명사가 '풍물굿' 이라는 본명사를 압도할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저와 제 몇다리 선배들, 그러니까 90년대 중후반에 풍물을 고민한 사람이라면 의례 김덕수씨에 대한 묘연의 감정들을 가지고 있을겝니다.
'외다리 풍물굿' 이라 비꼬았던 사물놀이에 대한 반정립을 합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학교축제에 관성적인 공연만 올리던 우리들이었으니까요.
(선배님들 미안 훌쩍)

하지만, 우리의, 최소한 제 깊은 바램은,
풍물굿의 '자기 표현적 요소'를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애가 넘치는 페스티벌' 설레이지 않나요?
루소의 표현 역시도 풍물'굿'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건 '굿판'이 '공연'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미있는 몸부림의 제목이기도 하구요.

# 아담 스미스 - 『도덕감정론』, 『국부론』

오랜만에 그나마 친숙한 분이 등장했네요.

스미스에 대한 언급을 재차 접하면서 더욱 뚜렷해지는건,
스미스로부터 배우고자 한다면, 이제껏 그를 상징해왔던 '보이지 않는 손' 의 무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스미스는 오늘날의 시장신봉자들과는 다르니까요.

저자의 경우, 익히 알려져있는 스미스의 태도, 이를테면 시장의 자율적 질서나 정부 역할의 축소에 대한 부분 외에,
스미스의 두 저작 사이의 연관관계를 밝히면서 이 부분을 좀 더 명확히 밝혀주고 있을 뿐 아니라, 스미스의 정치적 견해의 단편 또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두 저작의 관계는 '인식의 확대'라고 생각하시면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도덕감정론』에서 다루고있는 한 사회의 도덕적 문제에 대한 응답을 정치, 제도의 차원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국부론』이죠.

이는 『국부론』에 대한 곡해를 줄인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흔히 경제적인 변화들은 기존의 정치나 제도의 압력을 이겨내려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치, 제도의 변화들은 다시금 경제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미 종교개혁이나 왕정의 붕괴와 같은 정치, 제도의 변화의 시점에서,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원리를 논증하는 성격을 띄고있다는겁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진보적이었던거죠.

그 외에도, 스미스가 이윤율의 지속적인 감소 경향이나 계급 분화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나, 당시 영국의 식민지 시절 (오늘날 미국의) 식민지 주권에 대한 스미스의 입장들을 주목할 만 합니다.

# 존 스튜어트 밀 - 『자유론』

고전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는 평론이었습니다.
단편은 말 그대로 단편으로 그치고, 『자유론』꼭 한번 읽어볼 참입니다.

밀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은 일종의 비주류적인 그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라는 세풍 밑에서,
밀은 법률이나 여론, 관습의 질곡에 대해서,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로 전락할 가능성에 대해서,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물론이요,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의미한 문제제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외에도 밀은, 정치와 교육, 산업 전반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대한 저자의 논평까지 함께 담겨있습니다.

" 창조적인 갈등이 빈번히 표출되는, 그리고 서로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되 자신들이나 남들에게 결코 무비판적이지 않은 사회, 개인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그러면서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고, 시장 경쟁의 장점을 보존하는 사회 "

밀이 꿈꾸었던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라고 합니다.

# 칼 마르크스 - 『자본론』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역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저자는 논평 전체에 걸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치고 있습니다만, 두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첫째는, 마르크스의 경제학에 대한 주된 오독 중에 하나인 경제결정론에 대한 반비판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흔히 마르크스-엥겔스로 불리우는 엥겔스의 그것을 마르크스와 차별화시키는 점입니다.

"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그것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직접 맞닥뜨려지는, 주어지는, 그리고 전승되어지는 상황 속에서 그것을 만드는 것이다. " - K.마르크스

# 버트런드 러셀, R.H.토니, 존 롤즈
# 허버트 마르쿠제, 한나 아렌트 - 각각, 『에로스와 문명』, 『전체주의의 기원』

마지막 두 단락의 경우 논평 자체가 그리 매끄럽지는 못한데,
각 사상가들이 주목받게 된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고는, 특징적인 측면만을 짧게짧게 언급하는 것에 그칩니다.

어디까지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원고라는 제약이 한몫 한 것 같아요.
대략의 분위기를 옅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나오며

입문서는 어디까지나 입문서인지라, 몹시 빈약한 후기가 되었습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루소의 『에밀』『사회계약론』 『연극론』,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밀의 『자유론』,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몇편의 고전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게 된 것이 나름의 소득이기도 했습니다.

입문서. 참 계륵(鷄肋)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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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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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다양성' 이라는 단어가 오래도록 남네. 주위 사람들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인데.
그런데, ‘반개발’ 과 ‘탈중심화’ 라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생각은 충분히 긍정적이긴 하지만,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음 일상의 스트레스에 아둥바둥 하면서 사람들이 흔히, “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싶다. ” 는 흰소리들을 많이 하는데, 이 흰소리가 어찌보면 개발중심적이고 소비중심적인 사회에 대한 내면의 저항일수도 있겠다 싶거든?
그런데, 실제 시골 내려가서 농사 짓는 사람은 거의 없지. 역설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값싼 부동산을 매입해서 전원주택을 짓는 경우가 훨씬 많고.

‘반개발’ 과 ‘탈중심화’ 는 늘 한편의 기획으로 끝나버리곤 했다는거야.
‘라다크 프로젝트‘ 그룹에서 시행한 유기농업을 장려라던지, 지역 전통공예품과 소규모 태양열 기술의 개발, 그리고 라다크 사람들에게 생태적 인식을 높이는 일 역시도,
본래의 긍정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편의 기획으로 끝나거나 변형 왜곡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건데..

라다크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곳이 이미 세계경제의 일부분으로 충분히 편입된 이후라면, 유기농업이나 전통공예품과 같은 생태적인 기획도, 결국 ‘상품‘ 으로 평가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렇게 되면 비용상에서 밀리는 라다크의 상품들은 시장에서 밀려 자취를 감추거나, 혹은 오늘날의 웰빙상품들처럼 변형 왜곡될 여지가 있을 수 있고.
거기서, 헬레나 할머니는 ‘시장과 상품을 소비하는 합리적 개인만을 상정할 때 그렇겠지요.’ 라고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지.

앉은 자리에서 이리저리 재면서 볼 일 다보겠다는건 아니지만,
‘반개발’과 ‘탈중심화’ 가 가진 일종의 ‘한계지점‘ 을 고민하게되는 대목이지.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코피 쏟아가며 수능 시험을 준비해야하는 고3 수험생들에게 공부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 듯이, 오늘날의 개발도 그런 것 아닐까. 그들 모두는 고된 현실에서 벗어나길 꿈꾸지만, 그러지 못해. 여기서 벗어난다는건, 단지 수능시험에서 벗어나는게 아니라 취업이며 자아실현의 기회에 대한 박탈, 생존에의 박탈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

그런데, 한 학생이 있다고 해. 이 학생이 진심으로, 게을러서가 아니라, 자신을 비롯한 고3 수험생들의 고된 현실이 안타까워서 ‘반수능’을 외쳤다면? 아니, 좀 더 나아가서 ‘대안학교’ 모델은 어떨까?
‘반수능’의 결말은 물론이요, 건방지긴 하지만 대안학교 모델 역시도 흔히들 동경하는 서구식 교육까지가 최선은 아닐까?

‘수능지옥에서 벗어난‘ 으로 시작하지만 ‘이번에 어디학교 수시로 합격했어요’ 로 끝나는 모 TV 프로그램의 씁슬한 대안학교 소개장면처럼.

‘반개발’과 ‘탈중심화’가 개발지상주의에 길들여진 입맛에 별미 정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헬레나 할머니의 ‘반개발’ 이 그저 개발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면, ‘탈개발’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은데. 벗어난다는 ‘탈‘ 은, 죄 없는 ’개발‘ 과 죄 있는 ’지상주의‘를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발’에서 ‘지상주의‘ 만을 떼어내는 일일테니까.

헬레나 할머니의 오래된 미래 속편, ‘(가칭) 라다크 프로젝트’ 가 마저 나왔다면 좋았을거야.
프로젝트의 이모저모며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궁금하네.
아 그에 앞서 헬레나 할머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싶고.

마음에 들었다면 프로젝트 후기도 알려주세요-
당신의 후기는 계속 되어야 할 듯. 므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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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미국사 - 한 권으로 풀어 쓴, 이야기 역사 시리즈 한 권으로 풀어 쓴 이야기 역사 시리즈
김종일 엮음, 청솔역사교육연구회 추천감수 / 청솔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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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곧잘 샛길로 새곤 합니다.

달러약세에 관한 책을 읽고있었는데, 70년대 환율제 운운하더니, 비교를 한다고 40년대까지, 20년대까지 내려가기에,

결국, 오래된 미국사 한권을 구해 보았습니다.


한국문인협회에 계신 분들이 집필하셨다는데,

고등학생 필독서 시리즈 인 듯, 그저 정치적인 사건을 나열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책을 뒤적거리며 떠올렸던 몇가지 메모를 정리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할까 합니다.


# 독립전쟁


이주민의 역사로 알려져있는 미국의 초기, 그러니까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미국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이주민들의 정부(식민지 정부)와 본토정부(영국 정부) 와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주민들의 경우,

유럽의 식민지산업에 의해 건너온 무리와, 종교적 박해를 피해 건너온 신교 무리가 있다고 익히 알려져있는데,

실제 갈등의 표출은, 정치적 갈등 보다는 무역제재에 따른 경제적 갈등이 대부분입니다.


식민지에서 모자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자법을 비롯해서 제철법, 설탕법, 인지세법, 타운센트법, 그리고 잘 알려진 보스톤 차(茶) 사건까지.

대부분 직접적인 무역제재나 관세조치, 교역에 필요한 행정조치들에 대한 세금부과입니다.


결정적으로, 화폐도 만들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데,

『빚의 경제』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화폐의 발달은 산업규모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화폐 생산 자체를 규제했다는 것은, 경제 자체를 움켜쥐고 있는 것과 같았겠죠.


하긴, 음모론으로 익히 알려져있는『그림자 정부』의 이리유카바 최는,

미국의 독립전쟁이, 미국의 화폐를 말살하기 위한 영국 거간꾼들의 음모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전쟁을 하게되면 물자의 생산과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니 빚을 내어 화폐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전쟁을 배후조정한 것도, 빚을 내어준 것도 영국 거간꾼들이라는 겁니다.

영국의 거간꾼들이 전쟁을 이용해서 미국의 신용(화폐)을 고의적으로 확장했다가, 급격히 수축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미국을 장악한다는 것이죠.


실제, 미국은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를 비롯해서 외국에 많은 빚을 졌을 뿐만 아니라, 국내 발행 화폐량도 만만치 않게 많았어요.

그래서, 결국 화폐량을 규제하기 위해서, 화폐로 세금을 징수하고, 화폐 대신 금화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 화폐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데,

그 때문에 많은 파산자들이 발생하고, 심지어 세금징수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셰이스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는군요.


# 남부와 북부


이주민의 역사가 독립전쟁으로 끝나면,

'남북전쟁'과 '미국 정당 변천사'가 새로운 이슈가 됩니다.


독립 초기 정당은 연방파와 공화파, 쉽게 연방주의를 주창하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로 나뉘어 시작하게 됩니다.

각 무리의 대표적인 인물이 해밀턴과 제퍼슨. 이 두사람의 지지기반은 각각 북부의 상공업세력과 남부의 농업세력이었구요.


이후에 연방파가 쇠퇴하면서, 공화파가 국민공화파와 민주공화파로 나뉘고, 다시 국민공화파가 민주당-휘그당으로, 결국에는 오늘과 같은 민주당-공화당 구도가 완결되는데요,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퇴색된 측면이 많겠지만,

적어도 초기에는, 구도의 핵심이란 지지기반이 어디인가 - 상공업 세력(공화당)과 농업세력(민주당) - 하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독립 초기로 돌아가서,

연방파의 해밀턴은 초대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했던 인물인데, 그가 시행한 일련의 경제정책들이 재밌습니다.

그는 우선, 연방정부가 전쟁을 통해 지고있던 상당액수의 빚을 국채로 교환해주고, 상공업을 보호 육성하는 정책을 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잉글랜드 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을 미국에도 설립하려고 했죠.

이는 철저하게 북부의 상공업세력에게 유리한 정책들이니까요.


주로 자유무역에 대한 태도, 중앙은행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를 보였던 정책상의 갈등 역시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후일 남북전쟁으로 비화되는 남부와 북부의 갈등 역시 흔히 노예제 폐지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노예제도라는 정치적인 사건의 배경이, 남부의 면화산업 북부의 상공업이라는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 주목할만하구요.


실제,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한 인물로 잘 알려져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역시,

" 노예제도는 연방을 수호하는 데 관련된 정도만 중요할 뿐이다. " 라고 강조했는데,

노예제도는 정치적인 이슈였다기 보다는,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주도권을 둔 갈등이었던 것 같아요.


# 록펠러와 카네기, 그리고 노동절


남북전쟁이라는 진통을 겪고 난 이후, 미국이 본격적인 성장을 하게되는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입니다.

이 시기를 이해하는 다양한 코드 중의 하나는, 단연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서부진출이겠구요,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석유왕 존 록펠러, 강철왕 카네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흥미로운 점은,

미국 노동운동의 역사 또한 이 시기, 즉 성장의 시기에 쓰여지기 시작했다는겁니다.

( 전국노동연합, 노동기사단, 미국노동총연맹과 같은 단체들이 설립된 것이 이 즈음이고, 5월 1일 '노동자의 날' 의 발단이 되었던 '헤이마켓 광장 사건'이 벌어진 것 역시 1886년입니다. )


노동조합운동이 경제의 성장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80년대 후반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인데,

이는 분배를 기본적인 이해관계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이 경제의 순환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일면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노동조합운동에 의해 꾸준히 분배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가 이후 두번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시기를 거쳐 1차 세계대전까지 주욱 성장기(호황기)를 유지했다는 것은,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투자 아니면 분배'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와 분배가 만들어내는 선순환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구요.


이후 미국경제는 물자소비가 많은 전쟁(1914-1919,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성장하게됩니다.


# 29년 경제대공황(Black Monday)과 뉴딜(New Deal)


1차 세계대전을 빌은 전시호황 이후에는,

'29년 경제대공황'과 '뉴딜정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익히 알려진  이 두 사건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타운센드 계획' 이라는 사회보장 입법과 국가산업부흥법, 국가노동관계법과 같은 경제불황기에 시행된 지원법이었습니다.


위 단락에서 서술한 19세기 중반 이후가 대표적인 호황기였다면, 1차 세계대전 이후는 대표적인 불황기였는데,

극과 극으로 보이는 두 시기에 사회보장법이니 노동조합운동과 같은 분배 관련 이슈들이 공통적으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전시에 경제가 호황인 까닭은, 다름아닌 전쟁이 물자의 소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전쟁의 종료와 함께 소비라는 순환고리를 잃으면 순환은 깨어지게 됩니다. 생산만이 남게되죠.


생산은 원활한데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비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상품들은 가격의 하락, '디플레이션(deflation)' 을 부르게됩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서 기업이 생산을 멈추고 실업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있을테니, 좀 다른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선순환이라는 도식에서 빠진 것은 소비. 소비라는 고리만 다시 이어주면, 선순환은 다시금 이루어 질 것이라는 직관적인 판단이 가능합니다.

유수의 경제정책 시행자들이 저처럼 직관적인 판단에 의존하지는 않았겠지만, 여튼 뉴딜정책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등장합니다.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가 '소비 자체' 를 자극하는 방법, 즉 신용거래의 활성화나 금리의 인하, 마케팅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후자는 '소비할 수 있는 능력' 을 자극하는, 다소 우회적인 방법입니다. 바로, 고용을 늘리는 방법이겠죠.


뉴딜정책은 후자에 초점을 둔 국가정책이었습니다.

'테네시 계속 개발공사' 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공공사업을 벌여 고용을 만들어내는겁니다. 한마디로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소비라는 선순환의 고리를 채워넣겠다는 것이죠.


불황기에 나타난 사회보장입법과 국가노동관계법의 시행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만들어내는 판에, 극빈층 노동자들의 얼마 안되는 소비마저도 위축시킬 필요는 없었던거죠.


당시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는,

" 이 법은 개인의 욕수충족과 함께 경제의 한정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


투자와 성장을 동일시하거나, 역으로 분배를 성장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통속적인 관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일겁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뉴딜정책은 그다지 실효성을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정부의 재정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었는데, 빚을 내서 부양한 경기가 다시금 정부의 빚에 의해서 위축당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경제는 1937년을 기점으로 해서 1939년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된 전시호황기 때까지 불황에 빠져들게됩니다.


# 마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20년만에 집권하는 공화당의 트루먼,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마셜플랜을 비롯한 반공정책. 케네디, 닉슨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월남전, 히피문화, 반핵운동. 카터, 레이건, 부시에서 클린턴으로 주욱 이어지고 있네요.

( 95년에 초판된 책이라 클린턴 대통령이 제일 마지막입니다. )


익숙하게 접하는 서유럽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발칸분쟁사』이후로 두번째였는데.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 좋습니다.

앞으로 더 읽어보고 싶어요. 상대적으로 외소했던 남미나 일본에 대해서도.


아 쓰고나니 후기가 좀 그렇네요.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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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렐 카버의 논점

1. 과학적 사회주의의 과학성에 대해서 - 사회과학은 과학일 수 있는가

2. 가치 / 잉여가치 / 이윤율의 문제

3.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적 지지 과소평가 / 혁명적 열기 과대평가

4. 마르크스 논문에 대한 엥겔스의 이해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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