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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리포트 - 2004년판
홍순영 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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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리포트> (이하, 리포트) 생각보다 재밌네요.
예나 지금이나 도표나 수치는 좀 따분해서 대충 흘려버리고, 흐름만 잡으려고했습니다.

제가 잡은 몇가지 주제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할께요.

1. 고용없는 성장

'노동유연화'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철밥통'이라고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저는 이게 잘못된 인식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식에는,
'노동유연화'는 능력에 따라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것이고, '철밥통'은 능력에 상관없이 고용이 보장된다는,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사전적 정의가 강한 편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리포트를 통해서 보면,
최근의 미국을 비롯한 한국의 노동시장에 대해서 -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생산활동 동맥혈이라면, 가계의 소비는 정맥혈과 같은데,
심장에서 피를 내보내기만 하고, 이 피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갑동이 엄마든 아빠든 취직을 해서 월급을 받아와야, 갑동이가 용돈을 받아 을동기업의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죠.
을동기업은 수많은 갑동이들이 아이스크림을 팔아줘야 계속 기업을 유지할 수 있구요.

한참, 노동유연화를 선전할 때,
기업이 생산의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게, 우선 해고가 자유로워져야, 사업영역이 확장되고 또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는데,
'고용없는 성장'이란, 해고만 자유로워지고, 고용은 창출되지 않는 노동유연화의 현실을 보여주는겁니다.

노동유연화와 고용에 대해서 좀 더 따져보죠.

고용이 이루어지려면, 일단 장사가 잘 되어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사가 잘 되는 분야로 따지면,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조선 정도가 있을겁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었던 석유화학, 철강, 섬유와 같은 2차 산업들은 그저 고만고만합니다.

그런데, 고만고만한 분야에서 새로운 고용을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소세에 있다고 봐야겠죠.
크게 봤을 때, 제조분야나 서비스분야에서는 더 이상 경쟁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축성이 떨어지죠.

경쟁을 결정하는 것은 정보통신분야의 기술이나 마케팅입니다.
반도체나 무선통신기기들이 그렇고, 자동차의 경우는 제조업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자동차도 디자인이 있고, 설계가 있고, 제조가 있고, 마케팅이 있고, 다양한 제조과정이 있죠. 그 과정 중에서 제조분야, 서비스분야는 이미 경쟁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디자인이나, 설계, 마케팅 분야가 경쟁의 우위를 결정하죠.

결국, 장기적인 고용창출은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맞는데,
이 고도로 발달한 분야에서 흡수할 수 있는 인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겁니다.

정치 보고 경제 살려달라고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고용의 문제는 정치보다 경제에 중점을 두고 바라보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실제, 리포트에서 고용과 관련된 부분은, 공공정책 파트 보다는 경제, 기업경영 파트에서 비중있게 다루고있구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고용에 대한 영향력을 여실히 드러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50년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만 있어도 지금의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기술의 혜택이란,
결국, 일할 수 있는 극소수와 일할 수 없는 다수로의 구분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기술은 죄가 없죠.
다만, 일하는 입장에서의 기술과, 기업하는 입장에서의 기술은 크게 다른겁니다. 일하는 사람이야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 기술을 개발하지만, 기업하는 입장에선 다르죠.

2. 중국과 인도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하고있는데, 그 속도로 말할 것 같으면 쉽게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계의 원자재 값이 오르는 이유가 중국의 원자재 구매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하니 할 말 다했습니다. 중국의 섬유 철강 분야는 이미 과잉생산 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제조업 생산 세계 4위, 100여개 품목에서 세계 최대의 생산국, 연간 10%에 가까운 성장률.

우리나라와 중국을 절대비교 할 수는 없습니다만,
덩치 작은 우리나라가 3% 성장할 때, 덩치 큰 중국이 10% 성장한다고 상상하면 대충 짐작이 가실겁니다.

경제란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가 이루어져야 운영될 수 있는건데,
중국이라는 인구 10만에 달하는 소비집단이 생겨났다는 것은 큰 기회인셈이죠.
올 한해 내수부진의 여파를 수출로 막아냈다는 우리나라 경제에서 중국시장의 소비가 큰 몫을 했음은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이라는 나라 역시 소비 뿐만 아니라 생산도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내다보면, 앞으로 이 나라의 소비가 한계에 다다르고, 소비 만큼의 생산력으로 세계시장을 압박하기 시작했을 때의 효과는 그리 낙관하기 힘들죠.

인도는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기업의 아웃소싱을 법적으로 규제하려고 하자, 인도에서 무역제재로 위협을 가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인도는 세계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하는 나라로 유명하죠.

이 나라 역시도 엄청난 인구를 가지고있는 데다가, 매년 7-8%의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도의 주력산업은 IT나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인데, 인도의 모 거리가 미국의 실리콘 밸리보다 더 호황이라고 하니 지레 짐작이 가실겁니다.

세계경제에서 인도의 비중이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을 던져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빚의 경제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 행사하는 막대한 영향력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두고 '미국이 강대국이어서' 라고 하면 조금 싱겁죠.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일종의 딜러와 같은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환율이라는 것이 달러를 기준으로 해서 결정이 되니까요.
보통 게임을 하면, 돈 대신 칩으로 게임을 하잖아요. 칩을 사용하는 이유는 게임의 진행이나 교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실경제에서 물물교역이 화폐라는 교환수단을 선택하고, 경제의 크기나 교역의 규모가 커지면서 화폐 대신 수표, 어음, 신용카드, 전자화폐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한가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것은,
세계경제라는 게임에서는 딜러를 맞고있는 미국 역시도 게이머의 한 사람이라는겁니다.
( 원래는 금본위제라고 해서 금을 사용했었는데, 71년에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이를 금지시켰죠. 이것을 변동환율제라고 합니다. )

이 경우, 미국이라는 게이머가 파산을 하면,
게임장에 있는 게이머 전체가 아무 쓸모가 없는 칩을 들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

실제, 미국은 쌍둥이적자라 해서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경상수지 적자의 경우, 미국 GDP의 5% 약 5,000억 달러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미국이 이 적자를 메우는데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돈을 더 찍어내는 방법입니다. 게임장 딜러가 칩을 더 만드는거죠. 실제로는 미국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하는겁니다. 미국국민이나 해외투자가들이 채권을 구매하면, 그 돈이 미국정부로 들어가서 적자를 메워줍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돈을 찍어내다보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게되죠.
화폐가치란 실물경제에 준하는건데, 실물경제는 그대로 있고 화폐량만 늘어나니 화폐가치가 떨어지는겁니다.

화폐가치가 계속 떨어지게되면, 게이머들이 '이러다가 칩을 돈으로 못바꾸는거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게됩니다.
이 의심이 현실화되어서 달러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면, 달러가 중심이 되어 연관을 맺고있는 세계경제는 붕 떠버리는거죠.

작년 한해 미국과 유럽국가, 혹은 중국간의 환율갈등은 이래서 발생합니다.

" 한편, 미국의 구조적 불균형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졌고, 이는 외국에 대한 환율절상 압력과 통상압력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미국은 자국에 대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 일본 및 아시아 국가 등에 대해 '유연한 환율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유로의 달러에 대한 상승폭이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높아, 수출경쟁력이 저하됨에 따라 미국과 유럽간의 환율 갈등도 고조되었다. " - 삼성경제연구원 <한국경제리포트 2004> 48쪽

미국의 달러발행이 늘자, 다른 나라들에서 더 적은 돈으로 칩을 사려고 하고, 미국에선 안된다 원래대로 하자라며 갈등을 일으키는겁니다.

4. 몽땅 외국돈?

금융 부문은 그동안 제가 관심있게 지켜본 세계화라는 이슈에 대해서 현실적인 감각을 보태줄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소유지분이 40% 정도 된다고 하네요.
작년이었나요? 소버린자산운용이 취득한 지분으로 SK하고 경영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냥 흘려듣는게 아니었습니다.
은행의 경우도 제일은행, 한미은행, 등 외국계로 넘어가는 것을 익숙하게 지켜봤습니다만, 보험ㆍ생명 분야까지 넓게 퍼져있는 줄은 몰랐구요.

SK경영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계로 넘어가는데 대해서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해서 언론보도가 이루어졌던 것 같은데, 사실 기업의 국적, 돈의 국적 자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돈이나 기업의 국적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 운영의 목적이겠죠.
필요 산업을 육성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기타 등등의 것을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것.

그런데, 리포트에서 분석한 외국계 금융자본의 성향은,
장기투자성향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100%(95.7%) 매매차익을 노린 거래라는 점이라는데,
사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이나 외국계 투자자들이나 별반 다를바가 없으니까요.

뭐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주식이 아닌 실물자산에 투자했다는 통계도 있긴한데,
실물자산이래봤자 부동산이니까 큰 차이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외국계 자본은 내수기업이 아닌 수출기업에 투자했을 뿐이고, 우리나라 자본은 주식이 아닌 부동산에 투자했을 뿐입니다.

5. 기타

글이 많이 길어져서 쓰긴 좀 뭣한데,
가계부채나, 문화산업 동향의 경우는 꼭 한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고,
자동차 산업과 백화점ㆍ할인점 업계의 세력 재편도 굉장히 흥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사회ㆍ문화텀에서는 얼짱몸짱문화, 웰빙문화, 저출산고령화, 환경갈등, 등에 대해서,
공공정책텀에서는 노동정책과 농업개방문제, 평준화논란, 국민연금제도, 국가균형발전, 등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은 공공정책텀인데, 여기서 다루기는 다소 곤란스러운 내용들이 많이 있는 것 같네요.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꼭 구입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여튼 현란한 수치들만 무시할줄 알면 지극히 일상적인 얘기들의 순차적인 나열이니 만큼 연말에 어울리는 책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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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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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로 읽는 경제학이라.

조나단 B.와이트의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소설로 읽는 경제학입니다.
폭우가 억수로 솓아지는 어느날, 리처드 번스 박사를 찾아온 의문의 한 남자 해럴드 팀스. 팀스가, '애덤 스미스'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을 괴롭힌다면서 번스 박사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얘기는 시작됩니다.

리처드 번스 박사는 미국 유수의 경영대학과 MBA과정을 거친 유망한 경영 컨설턴트.
두달 후 세계 유수의 무역회의에서 러시아 알루미늄 시장의 민영화와 관련해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발표를 하게되어있었고, 경제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라는 새뮤얼슨상을 수상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런 급박한 일정을 앞두고, 번스 박사는 해럴드 팀스의 몸을 빌려 영적대화를 행하는 애덤 스미스와 얘기를 시작하게 되죠.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애덤 스미스와.

2.
수치나 그래프의 나열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따분한 경제학을 소설로 풀어낸다는 시도 자체에 의의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갑동이와 을순이가 등장하는 소설의 형식은,
경제학이라는 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따분함과는 전혀 다르게, 우리 일상 생활에 꽁하니 자리잡고있는 편견의 집합임을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라면,
'경제학 풀이'에 집착한 나머지 소설 자체가 굉장히 따분해 질 수 있다는 점이겠죠.

그런 점에서, <애덤 스미스 구하기>에 쓰여진 영적대화라는 방법은 다소 유쾌합니다.
특히, 애덤 스미스가 활약했던 1700년대 철학자, 경제학자들이 만나는 과정은 억지스러우면서도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네바다주 올드 뒤랑고 살롱에서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 장자크 루소, 볼테르, 심지어 케네박사까지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거든요.

애덤 스미스가 잠시 몸을 빌린 해럴드 팀스는 리처드 번스 박사 일행과의 여행 중에 뜬금없는 이유로 사라지게 되고,
리처드 번스 박사가 그를 찾아낸 곳이 네바다주 올드 뒤랑고 살롱, 번스 박사가 찾아낸 애덤 스미스는 모조리 다른 이들의 몸을 빌린 유수의 할아버지 철학자 경제학자들과 여유로이 카드놀이를 하고있었고, 번스 박사는 이를 옅듣게 되는거죠.

상상해보세요.
장자크 루소가 카드를 집어던지며 이렇게 말하는거에요.
" 이 패로는 게임 못하겠어! 흄이 벌서 내 걸 다 봤다구. 나한테 잡혔어. "

3.
사설이 좀 길었군요.

여튼, <국부론>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익히 알려져있는 애덤 스미스는 자칭 그의 추종자라는 오늘날의 경영 컨설턴트와의 대화를 통해서,
오늘날의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아담 스미스의 권위를 빌려 시장의 원리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유쾌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아담 스미스의 저작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국부론> 보다는 <도덕감정론> 입니다.
사실,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그의 별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가 <국부론>을 출간하기 이전에는 딱히 경제학이라는 과목 조차 없었죠. 그 역시도 논리학 교수로서 영국의 글래스고 대학에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가 출간한 책이 바로 <도덕감정론> 입니다.
그런데, 이름조차 생소한 이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이, 실제로는 <국부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는겁니다.
다시 말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전제한 내용을 바탕으로 <국부론>을 집필했다는거죠.
그런데, <국부론> 만도 아니고, 심지어 <국부론>에서 발췌된 일부분의 내용만이 그의 사상인양 사용되고, 아니 오용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습니다.

물론, " 넌 아담 스미스를 몰라. " 라고 얘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인용하는 경제학자들이 1,200여쪽에 달하는 <국부론>을 일독 조차 하지 않았다느니, <국부론>의 전제가 되는 <도덕감정론>을 들어보지도 못했다느니 하는 얘기들은 그저 웃고 넘어갈 얘기들입니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를 알고싶은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인 경제논리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고싶어하고,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내가 느끼는 경제적 갈증을 풀고싶은거니까요.

물론,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촉망받는 리처드 번스 박사의 갈등을 통해 오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스 박사가 두달 후 발표를 하게 되어있는 논문은,
러시아 민영화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리스크(risk, 위함)를 분산하는 법, 즉 러시아에서 한몫 챙겨보려는 기업들이 투자한 돈을 잃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렇게 화두는 기업 경영과 윤리로 넘어가는겁니다.

4.
조나단 B.와이트는 애덤 스미스의 저작과 논문을 주로 연구해 발표한 학자이지만,
사실,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기업 경영과 윤리.

물론, 기업이 비윤리적 경영이 아담 스미스에 대한 몰이해 때문은 물론 아닐겁니다.
어차피 경제학이란 중립적 일 수 없는 학문, 기업은 그들 나름의 생존논리를 아담 스미스의 권위를 빌어 정당화하는거죠.

오늘날 기업 윤리 수준의 심각성을 꼬집고싶었던 조나단 B.와이트는,
아담 스미스의 권위를 빌어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 심지와 밀랍만 있으면 뭐 하나, 정작 산소가 없으면 양초는 탈 수 없지. "

자본주의의 시장이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조직, 사회적 가치가 모두 얽혀 통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제도적 조직과 사회적 가치를 무시한 채 내달리는 시장의 몰락을 경고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얼마 전 주형씨가 독서후기를 올린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조지 소로스의 경우, 자본주의 경제의 경기변동이 우여곡절 끝에 평형을 이룰거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하고 나섰는데,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다른 이름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이죠.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앞에는 구고전학파가 있었을테고, 구고전학파의 대표주자는 단연 아담 스미스.

재밌죠?
대부분의 경제학사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시카고 학파에게 붙여져있는 신고전학파라는 이름. 아담 스미스에 대한 평가는 의례 그와 같은 시장만능주의자 쯤으로 되어있던겁니다.

5.
여튼, 뭐 이런 분위기에서 해결은 기업의 자정능력으로 귀결되는 모양입니다.
여러 책들이 신랄하게 비판해놓고 결론에 와선 " 겁나지? 그러니까 잘하자. "라는 용두사미의 전개구조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 구하기>는 소설의 형식을 빌고있느니 만큼, 대안이란 것도 소설처럼 등장합니다.

여행을 떠난 번스 박사와 아담 스미스가 캠핑을 하던 도중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대목.
아닌 웬걸. 파도에 휩쓸려 갈 뻔 했던 이 사람의 이름은 피터. 그는 휴렛 팩커드니 인텔이니 썬, 시스코, 모토로라, 록히드 마틴과 같은 유수 IT 업체들이 결집해있는 실리콘 벨리에서 특수 반도체 공장을 경영하는 CEO 였던겁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 촉망받는 경영 컨설턴트 번스 박사, IT 산업의 CEO 피터.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후유증은 어디 갔는지, 그날 저녁 세사람의 화제는 기업경영으로 집중되고,
결국 여행중이던 번스 박사와 아담 스미스는 실리콘 밸리의 공장에 견학 아닌 견학을 가게되죠.

아직 아담 스미스에게 교육을 덜 받았는지 이윤에 따른 냉정한 구조조정이며 실리적 운영을 부르짖는 번스 박사,
그는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의 발전이라는 피터 사장님의 의견에 발끈해 회사를 찾아가게됩니다.

어디 그런지 보자며 씩씩거리는 번스 박사의 견학일에, 공교롭게 피터 공장의 주고객은 공장의 회계직원에게 된통 못된 짓을 하죠.
피터는 번스 박사 보란듯이 회계직원을 위해 주고객과의 거래를 끊어버립니다.

6.
조나단 B.와이트가 일종의 대안모델로 제시한 피터공장.
하지만, 현실은 정해진 이상향을 향해서 직선으로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실제, 극중 스미스는 이렇게 말하죠.
" 피터가 직원의 높은 포부에 호소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리고 이건 물론 중요한거지만, 생산성에서 얻는 이득이 그의 비용을 능가한다면 이윤은 증가하겠지. 다른 회사들은 그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으면 큰 손실을 입게 될거야. "

결국, 문제는 '생산성에서 얻는 이득이 그의 비용을 능가하는 것' 이라고 자기고백을 하는겁니다.
<도덕감정론>의 제도적 조직, 사회적 가치에 찍었던 초반의 강조점이, 다시금 비용의 문제, 즉 시장의 논리로 회기하는 순간이죠.

자신있게 주고객과의 거래를 끊어버리고 회계직원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 후 피터의 얘기는 한술 더 뜹니다.
" 어쩌면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어요. 직원에게 힘을 실어 준다고 말하는 건 좋지만 회사가 부도나면 의미가 없어지죠. 결국엔 직원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될 거구요. "

저는 이것이 유토피아 문학가가 아닌 경제학 박사 조나단 B.와이트의 솔직한 자기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책의 전면이 <도덕감정론>의 진정한 이해에 대해서 씌여졌다 하더라도, 경제학자는 현실의 이해를 반영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7.
언제나 제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책 표지의 온갖 홍보문구들.

" 부활한 애덤 스미스, 분노하다! "
" 시장경제의 필수사항인 신뢰와 도덕과 덕성을 강조하는 애덤 스미스의 철학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철학이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경제이론소설이라는 장르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다. " - 존 모톤, 미국경제교육협의회 부회장
"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와 함께 떠나는 뜻 깊은 경제학 여행! "

그러나 저는,
이 책을 두고 오늘날 필요한 철학을 제시해주었다고 매듭짓는건 책을 반밖에 읽지 않은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심지어 역효과가 날 수 있는 몰이해라고 생각해요.
책의 전면은 <도덕감정론>에 담긴 중요 철학을 서술하고 있지만, 숨겨져있는 현실적인 논리적 귀결의 공허함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철학이든 경제학이든 현실의 쓸모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덮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죠. 애덤 스미스의 명예를 되찾았고, 우리 시대의 철학을 되찾아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보탬 하나]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함정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쪽으로 방향을 맞췄는데,
사실, 전면의 내용은 <도덕감정론>을 통한 아담 스미스의 이해인지라 그 부분을 빼놓은 것이 좀 아쉽네요.

<도덕감정론>에 대해서도 하고싶은 얘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회원분들하고 같이 얘기해보고 싶네요.

[보탬 둘]

그리고, 저도 몰랐는데, 이 책 사니까 책 한권 더 줬어요. (인터파크에서 샀음.)
이 책을 옮긴 분이 안진환님이신데, 같은 출판사(생각의 나무)의 책 중 그 분이 번역한 책이 한권 더 왔더라구요.
<젊을 때 시작하라> 는 책인데, 보나마나 재테크 관련한 책이겠죠?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그때가 잠깐 이벤트 기간 이었을 수 있으니 한번 더 알아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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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꿈
배일도 지음 / 위즈덤아카데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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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도둑이, 지하철에서 퇴근길 시민의 지갑을 여럿 훔쳤다.

이 때 누군가가 " 내 지갑! " 하고 외쳤고,
도둑은 열린 문을 박차고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순간 자신의 지갑도 없어진 것을 깨달은 서너명의 피해자들이 도둑을 뒤쫓는다.

한참을 쫓아 따라잡은 도둑은 품에서 흉기를 꺼낸다.
그리고, 1:4 의 싸움이 벌어진다.

흉기를 가진 도둑이지만, 서너명의 협공을 당할 수가 없었고 땅에 쓰러진다.
지갑을 도둑맞은 피해자들은 도둑을 제압하기 위해 몰매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목격한 또 다른 시민이 나타나 싸움을 말린다.
비겁하게 4명이서 1명을 몰매하느냐는 것이다.
평소, 모든 싸움은 잘잘못 가릴 필요 없이 쌍방 모두의 과실이라고 생각해오던 이 사람은, 서로를 화해시키려 애를 쓴다.

2.
'21세기 새로운 문명 전환 시대의 생존법을 찾는 한 노동운동가의 자전적 에세이'라 선전된,
배일도씨의 <공존의 꿈>은 나에게 이런 그림으로 다가온다.

이 선배 노동운동가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공존의 철학'이란,
결국,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재판에 불과한 '민주적 시장주의'라는 도구를 가지고,
두 계급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신변잡기적인 에세이라지만,
그가 10년 가까이 고민했다는 노동운동의 미래는 몇줄에 불과하다.

정말 몇줄.
계급투쟁(그는 '대립구도'라고 표현했다.)은 비과학적이며, 현실적 대안이 사회복지제도에 기반한 '민주적 시장주의'라고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나머지 글의 대부분을 근거없는 '공존의 철학'이 뒤덮고 있다.

3.
물질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그저 공존의 가치가 가진 우월성만 나타내는 것이 공존의 철학이라면,
그것은 감정적 화해와 다를 바가 없다.

계급투쟁과 감정적 화해.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다른 영역의 언어인 것이다.

유물론이니 관념론을 구분하는 현학적인 태도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 화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이 단지 관념적 언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존의 철학'은 그가 진보라 규정한 '실천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념적 계몽은 계급투쟁의 물질적 기반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배 노동운동가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더욱이 그가, 오늘날 노동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 '관료'의 한 사람으로 상징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가 공존의 철학을 세웠다는 10년은,
남한 노동운동이 후퇴한 10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쉽다.
그가 공존의 철학을 실천하는 행위는,
계급투쟁과 갈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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