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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과학 - 혐오 범죄를 일으키는 인간 행동의 어두운 비밀
매슈 윌리엄스 지음, 노태복 옮김 / 반니 / 2022년 4월
평점 :
심리학과 사회학에 관한 대다수 연구가 ‘평균적인’ 백인 중산층 소년, 또는 더 일반적으로 서양의Western, 교육을 받은 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회―WEIRD 사회―의 구성원들이 인간 행동에 관한 과학 연구의 주된 피실험자들이다. 그래서 인간 행동에 관한 지식의 대부분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WEIRD 사회의 구성원들만을 대변한다는 주장이 나왔다.(J. Heinrich er al., ‘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33(2010), 61-83.) 실험심리학의 아버지 분트부터 프로이트를 거쳐 최근의 다양한 심리실험에 이르기까지 대상은 주로 WEIRD가 아닐까. 단순한 의심을 넘어 대체로 우리 사회의 주류(술 좋아하는 아재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586으로 과대 상징되는 50대가 그렇다.(신진욱은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이 문제를 적확하게 짚어낸다. 1~2%에 해당하는 80년대 대졸 엘리트 5060세대와 2030 세대와의 갈등의 본질일 수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혐오, 불평등, 공정과 정의에 대한 숱한 논쟁과 주관적이고 감정적 해석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가 단순히 성별과 세대로 표현될 수는 없다. 경제적 세습을 넘어 문화, 상징자본의 격차, 세대 내 교육 환경, 비정규직, 노인 빈곤, 에너지와 환경 문제 등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혐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닐까.
범죄학 교수 매슈 윌리엄스는 대학 졸업 즈음에 게이 바 앞에서 혐오 폭행을 당한 경험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은 깊고 고통스런 상처를 남긴다. 선택할 수 없는 모든 생래적 조건에 대한 비난과 폭력은 자기검열과 자기부정으로 이어질 만큼 위험하다. 여자, 아재, 노인, 성 소수자, 인종, 장애, 지역 등 거의 모든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고 혐오로 표현되는 과정은 ‘왜?’라는 본질적 의문을 남긴다. 인간이 그런 존재로 태어나는지, 사회화 과정에 의한 편견일 뿐인지 그 논쟁은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가 가진 혐오 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질이다. 진화를 통해 얻은 신체적, 심리적 구조가 그러하다. 다만 이 속성이 촉진되는 요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관심사다. 어느 사회, 어느 시기에 혐오에 노출되어 편견이 혐오 범죄로 이어지는지 살피는 과정은 내 안의 나와 또 다른 나를 이해하는 일과 다름없다.
혐오에 대한 범죄학 지식의 상당수는 편견에 관한 연구에서 나온다. 편견은 고정관념, 즉 조잡한 일반화와 범주 나누기를 바탕으로 한 개인 또는 사람들의 집단에 부여된 특징을 먹고 자란다. 편견은 어떤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감정이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바탕으로 결정될 때 생겨난다. 그러므로 편견은 심리학 용어로 외집단(‘그들’)과 내집단(‘우리’)에 초점을 맞춘다. - 29쪽
저자 스스로 경험한 혐오에 대한 물리적 폭력만큼 보편적인 혐오의 형태는 외면과 냉소와 침묵이다. 구별 짓기가 생존을 위한 유전적 본능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실험결과를 통해 입증된 태도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맹목적 내집단에 대한 충성과 우월감으로 자리 잡는 순간 편견과 혐오가 무럭무럭 자란다. 성별, 세대, 지역, 종교, 인종 등 그 분화 과정과 미묘한 차이에 따른 심리적 거리는 분류나 증명이 불가능하다. 지극히 개별적인 데다 미묘하고 복잡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차이와 다름의 다른 표현인 편견과 혐오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에 영역에 속한다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옥시토신은 혐오 범죄 발생에 관여할지 모르는데, 특히 가해자가 그걸 생성해낼 가능성이 높을 때(가령, 어린 아이를 돌보는 부모일 때) 그리고 이질적 외집단(가령, 다른 인종)한테서 위협을 느낄 때 그렇다.”(181쪽)라는 지적이 이를 증명한다. 호르몬에 내재된 생존 본능에서 촉발된 혐오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태어난 그대로, 본능적 자연인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은 없다. 혐오의 과학은 사실 부단한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문명사회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다.
야만의 시대를 지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의 토대가 마련된 민주주의는 차별을 넘어 자유와 평등, 정의와 진리, 공정과 상식을 추구하려 애쓴다. 저마다의 옳고 그름이 분노와 증오와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혐오가 벌어지는 실세 상황을 통해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뿐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혐오를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런 다음 ‘촉진제’에 집중한다. 무엇이 혐오 폭력을 일으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가. 왜 일부만 그 폭력을 실행에 옮기는가. 이는 물리적 혐오와 폭력에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댓글로 빚어지는 키보드 워리어들의 혐오문화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릴까.
저자가 제시하는 혐오를 멈추게 할 해결책 일곱 가지가 추상적으로 들린다. 핵심은 ‘관심’이다 의식적 노력 없이 변화는 불가능하다. 혐오는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싹튼다. 관습적 사고 습관적 행동이 무의식적 혐오에 동조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편안하고 안전한가.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갈 줄 몰라서 매슈 윌리엄스가 평생 혐오 범죄에 매달렸을까. 불편과 불안은 타인이 아니라 내 안의 무엇이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혐오를 멈추게 할 일곱단계
1. 가짜 경보를 알아차려야 한다.
2. 우리와 다른 이들에 대한 섣부른 판단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3.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접촉하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4. 시간을 내서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아야 한다.
5. 분열을 조장하는 사건이 우리를 노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6. 필터 버블을 터뜨려야 한다.
7. 우리 모두는 혐오 사건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