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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내면의 상처를 회복하고, 한층 더 성숙한 의식을 갖기 위해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치유하는 글쓰기’이다. - 『치유하는 글쓰기』, 5쪽
글을 쓴다는 것은 알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르찌스의 시선이다. 또한 영혼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가장 정치(精緻)한 고백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경험한 것, 아는 것, 생각한 것 이상을 쓸 수 없다는 자명한 논리 앞에 모든 허위와 주장은 무화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 말이다.
박미라는 『치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말하고 있다. 내면적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쓰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글이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그 상처를 치유(healing)할 수는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책 전체는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글쓰기 체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전하고 있으며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글이 인용되어 직접 그 과정을 증거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다고해서 외면할 수도 없고 보인다고 해서 인정하지도 않는 그것에 대해 우리는 때때로 침묵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오독(誤讀)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치유하는 글쓰기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정면으로 직시해야하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치유도 없다.
사람들은 글을 잘 쓰려면 화려한 미사여구나 매끈한 문장으로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글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타인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글이다. 문장의 형식과 아름다운 수식어는 그 다음 문제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와 더불어 읽는 셰퍼드 코마의 『치유의 글쓰기』를 읽었다. 젊은 시절 편두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50년이나 일기를 써 온 저자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체험 그대로의 것이다. 오로지 ‘치유’를 목적으로 한 글쓰기는 다른 글쓰기와 어떻게 다른가를 웅변한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해 외치는 웅변 혹은 잔잔한 떨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미라와 달리 매우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글쓰는 방법과 예시를 들고 있어 훨씬 실전에 가깝게 느껴진다.
“글쓰기를 통해 당신 안에 잠자고 있는 예술가를 만난다는 거창한 목표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를 통한 마음의 평화로, 이미 수많은 경험자들이 효과를 증언하고 있다. 진정으로 치유를 원한다면 펜과 종이, 그리고 글을 쓰겠다는 각오만 있으면 된다. - 97쪽
글쓰기가 주는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영적, 통합적 이점을 나열하는 저자의 서문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며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지점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일기를 쓰듯 서평을 쓰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미리 유언장을 써보는 행위는 우리들 삶 그 자체이다.
산다는 일이 때로 외롭고 힘들겠지만 가끔 푸른 하늘이 주는 위안이 있는 것처럼, 조금 열린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백지 앞에 두 손을 가만히 올려놓는 겸손함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을 드러내고 주장하고 외치고 속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진지한 행위가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강룡은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감’에 주목한다. 공감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치유’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의 화원』에서 선생 김홍도가 제자 신윤복에게 했다는 말은 이렇다. ‘그림이란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일이다.’
글쓰기도 어쩌면 이 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정서와 개념을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다. 그래야 글을 통해 본질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실전 글쓰기의 면면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는 구체적으로 쓰라고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쓸수록 보편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면 세상도 움직인다. 글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부분과 전체, 개념 재규정, 예시와 비유 등 실전에서 초보자가 실수하기 쉬운 글쓰기 전략을 수정해 주고 실용적 글쓰기의 실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말하자면 글쓰기의 교과서가 아니라 글쓰기 실전 활용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 권의 책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나만의 글이다. 글은 한 사람의 분신처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모든 사람의 얼굴 생김이 다르듯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개성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자신만의 문체를 가진 사람을 그래서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수많은 글쓰기 책들 속으로 묻혀 버릴 세 권의 책이 아쉽지 않은 것은 다만 자신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글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healing)할 수만 있다면 책읽기든 글쓰기든 등산이든 낚시든 음악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이다. 그 삶의 과정과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행복을 얻고 삶의 기쁨을 찾지만 마찬가지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죽음보다 큰 고통을 맛보기도 한다. 이 삶의 아이러니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수많은 ‘나’와 대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진짜 내 이야기를 써 보자.
120516-04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