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디어는 메시지다’(『미디어의 이해』)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말은 언제나 유효할 예정이다. 1964년에 출간되었으나 60년간 변화된 과학기술의 급격한 변동에도 구조와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발신자-매체-수신자’의 소통 구조에서 레거시 미디어는 정보를 독점했다. 그러나 1인 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언론의 신뢰도, 정보의 유통 시스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수신자가 발신자로 거듭났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정보 유통의 허브 역할을 하는 수신자이면서 동시에 발신자이다.

픽션인 문학의 역할과 의미가 축소된 건 미디어의 발전 속도와 그 궤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현실이 생중계되고, 뉴스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들이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소설은 갈 길을 잃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건 소설가의 탓이 아니라는 항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종이 신문은 소설 유통의 중요한 통로였으며 문단권력을 주도하던 영광의 기억도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건, 아니 책보다 재밌는 미디어가 계속 출현하는 건 소설가나 출판사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여기’ 한국 사회를 픽션으로 보여주겠다는 한 신문사의 기획이 아니러니하다. 그러나 소설, 문학이 아니라면 피상적 현실을 톺아볼 수 있는 안목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객관적 사실 뒤에 숨은 진실은 어떻게 말해질 수 있을까. 양극화된 정치와 이념 사회로 회귀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한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소란스럽고 자극적인 미디어다. 텍스트를 통해 상상하며 생각에 잠기고 이면의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은 귀찮기만 하다. 하지만 ‘~카더라’ 통신도 하루 이틀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진실은 드러나는 법이라지만 왜곡된 사실과 숨은 진실이 끝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람들은 지연된 정의는 관심이 없듯,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지금-여기가 중요하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때 명징해지는 은유와 상징이 아니라면 이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 장강명의 「프롤로그 소설 2034」부터 최진영의 「식단 삶은 계란」까지 21편의 짧은 이야기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독자 개인의 관점과 태도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문제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개인과 대중이 문제다.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문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의 인식 방법은 소설이 아니라도 좋다. 다만,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해야 한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느 시대든 소설은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해왔다. 개연성 없는 허구에 몰입하는 독자층이 두터워지는 건 시절 탓일까. 웹소설과 환타지가 현실에 대한 외면은 아니겠으나 현실 극복 의지라고 볼 수도 없다. 본격, 순수 소설이 우월감을 갖던 시대도 끝났다. 소설은, 아니 문학은 이제 과거의 빛나는 왕관을 내려놓고 지금-여기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우스트 1,2 세트 - 전2권 괴테 전집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전영애 옮김 / 길(도서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국, 고전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절규에 가깝다. 책 숲에서 방황하고 지식과 정보를 넣어 자기만의 ‘지혜’를 얻으려는 욕망이거나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에 실패한 자들의 안식처가 고전이 아닐지 싶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으나 허명을 쫓아 『파우스트』를 뒤적이던 때가 있었다. 또 그렇게 껍데기만 핥던 시절의 고전은 얼마나 많았을까. 전영애의 번역본을 읽으면서 기억 속에 흔적조차 남지 않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다시 만났다. 아니, 괴테가 만난 모든 지식과 세상을 인식하려 애쓴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20대에 시작된 책을 80대가 되어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마무리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지는 않다. 오래 살지 못했다면 그 깊이와 넓이에 한계를 드러냈을 테다. 그렇다고 해서 찬란하게 눈부시게 빛나는 몇 작품을 남고 요절한 작가들이 작품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세월을 견뎌 여전히 당대성을 살피고 현재적 의미를 획득한 고전들은 공통적으로 근본적인 질문에 충실하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인식한 세계는 과연 그러한가, 시간 속에 명멸했던 존재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여기에 더해 유럽 사회를 지배한 ‘신’의 존재와 의미 혹은 그리스 고전에 대한 동경과 문화적 영향을 고루 살필 수 있는 괴테 필생의 역작 『파우스트』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통합된 유럽 문화의 정수에 관한 기나긴 고민이다. 물론 그 중심에 놓인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er strebt.)라는 주제의 보편성이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에게도 읽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흔히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번역되어 널리 기억되고 있으나 전영애는 다른 문장으로 재해석했다. 지향 없이 사는 현대인에게, 아니 오로지 물질만능주의에 매몰된 우리에게 ‘지향志向’ 그 자체를 고민하는 일이 우선이겠으나 그곳이 어디든, 그것이 무엇이든 ‘방황’과 고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자 방법이라는 사실부터 인정하면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궁구하고 싶었던 그 무엇을 찬찬히 다시 살필 수 있다. 아니, 각자 자기 삶의 지향점을 점검할 수도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여러 출판사의 판본을 비교했다. 이미 전자책으로 가지고 있는 김인순 번역본(열린책들)은 물론 세계문학 시리즈를 출간하는 대표적인 출판사의 정서웅(민음사), 이인웅(문학동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번역한 안인희(현대지성)까지 고루 살폈으나 전영애 대역본(도서출판 길)을 다시 구입했다. 전영애는 독일어 판본에 관한 이야기와 운문 형식을 살려 새롭게 번역한 이유는 ‘옮긴이 해제’에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일반 독자에게 대역본은 큰 의미가 없어보이지만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독일어 단어의 형태와 리듬만 확인하는 정도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독일어는 성, 수, 격에 따라 정관사가 16개, 부정관사가 12개나 된다. 독일어 선택으로 학력고사를 치렀던 일이 전생의 기억처럼 흐릿하지만 여전히 정관사, 부정관사를 주문처럼 남아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원문과 번역문을 비교하거나 그 차이를 감상할 수는 없다. 정성스레 실로 엮은 양장본을 넘기는 호사를 누리며 가독성보다 원전에 조금 충실한 번역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생겼다. 정경석의 작품해설에 파우스트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듀얼모니터 한쪽 창에 띄워 놓고 각 장의 흐름과 내용을 미리 살피며 읽으면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거의 없다. 천병희가 아니었다면 그리스 고전을 다시 손대지 않았을 지도 모르고 김희영이 아니었다면 프루스트를 만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번역 때문이든 독자의 나이와 상황 때문이든 전영애는 파우스트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의 수고로움과 노력들이 다음 세대의 출발선이 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문명이 이어진다.

<여러 번역본들>

* 정서웅(민음사, 1999)

* 김수용(책세상, 2006)

* 이인웅(문학동네, 2009)

* 김인순(열린책들, 2009)

* 정경석(문예출판사, 2010)

* 정광섭(홍신문화사, 2011)

* 김재혁(펭귄클래식코리아, 2012)

* 장희창(을유문화사, 2015)

* 전영애(길, 2019)

* 안인희(현대지성, 2024)

비극 제2부 시작 부분 비교

- 정서웅(민음사, 1999)

쾌적한 장소

파우스트, 꽃이 만발한 풀밭에 누워 지치고

불안한 모습으로 잠을 청한다.

해질 무렵.

요정의 무리, 귀엽고 작은 모습으로 공중에서 떠돈다.

- 이인웅(문학동네, 2009)

우아한 고장

파우스트, 꽃이 만발한 풀밭에 누워 피로하고 불안한 듯 잠을 청하고 있다.

황혼이 깃들 무렵.

정령들의 무리, 우아하고 작은 모습으로 공중에 떠다닌다.

- 김인순(열린책들, 2009)

경관이 수려한 곳

파우스트, 꽃들이 만발한 풀밭에 누워서 지친 몸으로 불안하게 잠을 청한다.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우아하고 작은 요정의 무리, 대기를 떠돈다.

- 전영애(길, 2019)

우아한 지대

파우스트, 꽃이 만발한 풀밭에 누워 있다.

지쳐 불안하게, 참을 청하며,

어스름.

정령들의 무리가 둥둥 떠돌고 있는데, 우아하고 작은 자태들이다.

비극 제1부에서는 괴테의 경험에서 차용된 그레트헨(마가레테)가, 제2부에서는 그리스 고전에 등장하는 헬레나가 주요한 등장인물 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에 이르는 시대적 배경, 신과 인간 그리고 사랑과 운명, 욕망과 죽음 등 삶의 총체적 문제를 고민하는 파우스트의 갈등과 번민을 관찰하는 동안 독자들은 각자의 답을 얻어야 한다. 위대한 고전으로 일컫는 파우스트에도 정답은 없고 질문만 남는다. 이 책을 번역한 전영애의 말대로 “문학작품은, 어떤 법칙을 찾아내어 정리로 귀납하는 논리적 사유나 과학적 논리와는 다르다. 후자를 복숭아의 씨에 비유한다면, 문학이 문장이란, 달고 신 온갖 맛이 배어 있는 과육 같은 것”이다. 온갖 감각이 깨어나게 하는 달콤 쌉싸름하고 시고 떫지만 그윽한 향으로 가득한 과육의 맛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고, 먹는 사람마다 그 맛도 다를 것이다.

죽음에 가까운 늙은 학자 파우스트가 평생 배우고 익히며 얻은 것은 무엇일까. 지식과 정보의 습득과 축적이 아니라 ‘지혜’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가능할까. 사랑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죽음으로 귀결되는 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장마라기보다 우기에 가까운 날씨 탓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 놀라운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한 뉴스, 읽지 못한 책과 어차피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다가가려는 욕망이 충돌하는 것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얻고 싶은 게 과연 남아 있긴 한 걸까.

나는 놀기만 하기에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지내기에는 너무 젊단 말이야.

- 비극 제1부 서재 Ⅱ, 파우스트, 1546행 1권 223쪽


* 그리스 고전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를 읽지 않고 『파우스트』나 『율리시스』를 읽을 건 쫌 거시기합니다.

* 첨부한 PDF 파일은 인터넷 서점에 공개된 미리보기 부분으로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혀둡니다.

첨부파일
파우스트 해설_정경석, 문예출판사, 2010.pdf
파일 다운로드

* 비극 제1부 ‘그레트헨의 방’을 읽을 때는 슈베르트의 「실 잣는 그레트헨」을, ‘감옥’을 읽을 때는 「죽음과 소녀」를 찾아 들어도 좋다. 베토벤의 레퀴엠,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등 클래식과 함께 읽으면 무대와 배우들을 상상하며 읽는데 도움이 된다.

비극 제1부 그레트헨의 방

Wallis Giunta - Gretchen am Spinnrade (Schubert)【HD】

비극 제1부 감옥

슈베르트 - 현악4중주 제14번 죽음과 소녀. Schubert - String Quartet No.14 Death and the Maiden [Alban Berg Quartet]

you're a hopeless romantic in the dating app era - classical music

<몇 개의 문장들>

문학작품은, 어떤 법칙을 찾아내어 정리로 귀납하는 논리적 사유나 과학적 논리와는 다르다. 후자를 복숭아의 씨에 비유한다면, 문학이 문장이란, 달고 신 온갖 맛이 배어 있는 과육 같은 것일 게다. - 옮긴이 해제, 1권 14쪽

단테의 『신곡』이 유럽의 기독교적 중세의 세계관을 집약한 작품이라면, 『파우스트』는 고대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중세를 거쳐(성서가 배어들어 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3,000여 년”의 유럽 남북방을 다 아우르는 작품이다. - 옮긴이 해제, 1권 15쪽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Es irrt der Mensch, solang’er strebt. - 천상의 서곡, 주님, 317행 1권 90쪽

지옥도 악마도 날 겁나게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개선 모든 기쁨이 사라졌고

뭔가 바른 걸 안다고는 망상하지 못하겠고

뭔가 가르칠 수 있겠다고는 망상하지 못하겠다,

사람들을 보다 낫게 만들고 바꾸어놓겠다고는.

또 나는 재산도 돈도 없고

세상의 명예와 영화도 없고

개라도 이 꼴로 더 살고 싶지는 않으리!

- 비극 제1부 밤, 파우스트, 369행 1권 101쪽

오 맙소사! 예술은 길고!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비판적인 추구 가운데서도 저는

자주 머리와 가슴이 두려움에 찹니다.

참으로 어렵지 않습니까,

근원까지 이르는 방도를 구하는 일은!

- 비극 제1부 밤, 바그너, 558행 1권 119쪽

근심은 항시 새로운 가면을 쓰고

집과 뜰로, 아내와 아이로 나타나고

불, 물, 단검과 독약으로 나타난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모든 게 두려워 너는 덜덜 떨고

결코 잃지도 않을 것, 그런 걸 두고도 노상 징징 운다.

- 비극 제1부 밤, 파우스트, 647행 1권 129쪽

나는 놀기만 하기에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지내기에는 너무 젊단 말이야.

- 비극 제1부 서재 Ⅱ, 파우스트, 1546행 1권 223쪽

대지여, 너 지난밤에도 굳건했구나,

이제 새 힘 얻어 내 발치에서 숨 쉬며

벌써 나를 즐겁게 에워싸기 시작하는구나,

힘찬 결심을 네가 북돋우고 어루만져 주는구나.

가장 높은 현존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게 하는구나.―

- 비극 제2부 제1막 우아한 지대, 파우스트, 4681행 2권 19쪽

이 무지개, 인간의 지향(志向)을 반영하는 구나.

이를 따라 생각하라, 하면 그대는 더 정확히 이해하리.

색색깔로 비친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을 포착한다.

- 비극 제2부 제1막 우아한 지대, 파우스트, 4725행 2권 23쪽

공덕과 행복은 얽혀 있다는 것,

그 생각이 저 바보들에겐 절대로 안 떠올라.

그들에게 설령 현자의 돌이 있더라도

그 돌에는 현자가 없어.

- 비극 제2부 제1막 제국령 팔츠. 옥좌가 있는 홀, 메피스토펠레스, 5063행 2권 59쪽

하지만 경직됨 가운데서 나의 안녕을 찾진 않겠다,

전율은 인간의 최상의 부분,

세상이 제아무리 인간에게 그런 느낌을 쉽사리 안 줄지라도,

감동되었을 때, 엄청난 것을 가장 깊이 느끼지.

- 비극 제2부 제1막 어두운 회랑, 파우스트, 6272행 2권 195쪽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즉 놀라며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려 있음을 인간이 지닌 ‘최상의 부분’으로 보는 것은 괴테의 중요한 생각이며, 또한 파우스트의 추동력의 핵심이다.)

그 그 소리의 여운은 남았는데, 이렇게 들렸다―궁핍(Not)

그다음에 음산하고 운이 맞는 단어가 따랐다,―죽음(Tod).

- 비극 제2부 제5막 한밤중, 파우스트, 11400행 2권 809쪽

그가 인식하는 것, 붙잡힌다.

지상의 날을 따라 그렇게 거닐지라,

유령이 출몰하면, 걷던 걸음을 그냥 걷거라,

계속 걸어가는 가운데서 고통과 행복을 찾으리,

그, 그 어느 순간에도 만족하지 않는 자!

- 비극 제2부 제5막 한밤중, 파우스트, 11448행 2권 815쪽

그 힘을 겪어보세요, 제가 얼른

저주를 내리며 당신을 떠날 테니!

인간은 평생토록 맹목(盲目)이니,

이제, 파우스트! 당신도 종국에 눈머시오.

- 비극 제2부 제5막 한밤중, 근심, 11495행 2권 819쪽

모든 무상한 것은

다만 하나의 비유.

다다를 수 없는 것이

여기서 이루어지네.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여기서 행해졌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가네.

- 비극 제2부 제5막 심산육곡, 신비의 합창, 12104행 2권 889쪽

<차례>

헌사

무대 위에서의 서연(序演)

천상의 서곡(序曲) 연극

비극 제1부(현재)

성문 앞에서

서재 Ⅰ

서재 Ⅱ

라이프치히의 아우어바흐 술집

마녀의 주방

길거리 Ⅰ

저녁

산보

이웃 여자의 집

길거리 Ⅱ

정원

정자

숲과 동굴

그레트헨의 방

마르테의 정원

우물가에서

성벽 안 좁은 길

성당

발푸르기스의 밤

발푸르기스 밤의 꿈 혹은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금혼식

흐린 날. 벌판

밤. 트인 들판

감옥

비극 제2부

제1막(중세 궁정)

우아한 지대

제국령 팔츠. 옥좌가 있는 홀

부속실이 딸린 드넓은 홀

궁전 정원

어두운 회랑

환하게 불 밝힌 홀들

기사의 홀

제2막(고대 그리스)

높고 둥근 천장의 좁은 고딕식 방

실험실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

[페네이오스 강 상류에서]

[페네이오스 강 하류에서]

[페네이오스 강 상류에서]

[에게 해의 바위 만(灣)]

제3막(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궁전 앞

[성 안뜰]

[그늘진 숲]

제4막(전장)

고산 지대

앞산 위에서

대립 황제의 막사

제5막(근대)

트인 지대

궁전

깊은 밤

한밤중

궁전의 큰 앞뜰

매장

심산유곡

<등장인물>

비극 제1부

단장 DIREKTOR

시인 DICHTER

광대 LUSTIGE PERSON

라파엘 RAPHAEL

가브리엘 GABRIEL

미카엘 MICHAEL

주님 DER HERR

메피스토펠레스 MEPHISTOPHELES

파우스트 FAUST

대지의 영 GEIST

바그너 WAGNER

브란더 BRANDER

프로쉬 FROSCH

알트마이어 ALTMAYER

지벨 SIEBEL

마녀 DIE HEXE

마가레테 MARGARETE

(그레트헨 GRETCHEN)

마르테 MARTHE

발렌틴 VALENTIN

악령 BÖSER GEIST

마법사 HEXENMEISTER

장군 GENERAL

장관 MINISTER

벼락부자 PARVENU

작가 AUTOR

제르비빌리스 SERVIBLIS

극단장 THEATERMEISTER

해설자 HEROLD

오베론 OBERON

퍽 PUCK

에이리얼 ARIEL

티타니아 TITANIA

비극 제2부

제1막

황제 KAISER

재상 KANZLER

국방대신 HEERMEISTER

재무대신 SCHATZMEISTER

내무대신 MARSCHLK

천문학자 ASTROLOG

의전관 HEROLD

푼치넬라 PULCINELLE

희망 HOFFNUNG

지혜 KLUGHEIT

소년, 마부 KNABE, LENKER

플루투스 PLUTUS

인색 GEIZ

건축가 ARCHITEKT

제2막

학사 BACCALAUREUS

바그너 WAGNER

호문쿨루스 HOMUNKULUS

에리히토 ERICHTHO

그라이프 GREIF

아리마스펜 ARIMASPEN

스핑크스 SPHINX

페네이오스 PENEIOS

케이론 CHIRON

만토 MANTO

세이렌들 SIRENEN

세이스모스 SEISMOS

피그미들 PYGMÄEN

다크틸로이들 DAKTYLE

라미에들 LAMIEN

엠푸사 EMPUSE

오레아스 OREAS

아낙사고라스 ANAXAGORAS

탈레스 THALES

드리아스 DRYAS

포르키아스 세 자매 PHORKYADEN

네레이스들과 트리톤들 NEREIDEN UND TRITONEN

네레우스 NEREUS

프로테우스 PROTEUS

텔키네스들 TELCHINEN

프실레와 마르시들 PSYLLEN UND MARSEN

도리데들 DORIDEN

제3막

헬레나 HELENA

합창대 CHOR

판탈리스 PANTHALIS

포르키아스 PHORKYAS

망루지기, 린케우스 TURMWÄCHER, LYNKEUS

에우포리온 EUPHORION

소녀 MÄDCHEN

제4막

총사령관 OBERGENERAL

황제 KAISER

막때려 RAUFEBOLD

바로뺏어 HABEBALD

얼른챙겨 EILEBEUTE

꽉쥐어 HALTEFEST

친위병들 TRABANTEN

대원수 ERZMARSCHALL

대시종 ERZKÄMMERER

대궁정집사 ERZTRUCHSESS

대헌작관 ERZSCHENK

대주교 ERZBISCHOF

대재상 ERZKANZLER

성직자 DER GEISTLICHE

제5막

나그네 WANDERER

바우키스 BAUCIS

필레몬 PHILEMON

망루지기 린케우스 LYNKEUS DER TÜRMER

세 용사 DIE DREI GEWALTIGEN GESELLEN

결핍 MANGEL

빚 SCHULD

궁핍 NOT

근심 SORGE

레무레스들 LEMUREN

천사의 무리 HIMMLISCHE HEERSCHAR

파터 엑스타티쿠스 PATER EXTATICUS

파터 프로푼디스 PATER PROFUNDUS

파터 세라피쿠스 PATER SERAPHICUS

천사들 ENGEL

마리아누스 박사 DOCTOR MARIANUS

마그나 페카트릭스 MAGNA PECCATRIX

사마리아의 여인 MULIER SAMARITANA

이집트의 마리아 MARIA EGYPTIACA

영광의 성모 MATER GLORIOSA

접힌 부분 펼치기 ▼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율리시스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9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율리시스』는 두 민족(이스라엘-아일랜드)의 서사시인 동시에 인체의 순환이자 하루(생활)에 대한 작은 이야기입니다. - 제임스 조이스가 쓴 ‘편지’ 일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죽는 순간 자기 삶의 모든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는데, 그중 몇 권의 책이 마지막 순간에 떠오를까. ‘가장’ 인상 깊었던, 재미있었던, 감동적이었던 책을 아직 잘 모르겠다. 모든 순간에 각각의 깊이와 속도로 몰입했던 책들 사이에서 언제나 길을 잃거나 오솔길을 발견한 듯하다.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나무 사이에는 틈이 있다. 그 틈 사이로 빛이 들거나 알 수 없는 검은 침묵이 놓여 있다. 질문에 답하지 않는 작가, 고통스런 외침을 외면하는 저자, 갈급하게 새 책을 뒤적이게 하는 문장, 멍한 눈길로 푸른 하늘만 쳐다보게 했던 시인을 떠올릴까.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새로운 것이 승리하는 것을 도와주는 가장 확실한 중개자는 옛것에 대한 지루함”이라고 선언했다. 사진기와 영화가 예술가와 작가들을 불안하게 했을까. 아우라가 사라지기 시작한 위기의 시대에 에피파니를 경험한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통해 소설의 위기를, 아니 예술의 종말을 예감했을까. 죽기 전에 읽지 않아 못내 아쉬웠던 책의 목록에 남겨질 뻔한 책들을 이제 하나씩 만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율리시스』다.

그러나 읽었다,라는 독서 경험 외에 무엇이 남았을까. 소설의 역할과 기능을 떠나 재미와 감동이라는 본질적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문학 작품들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기 어렵다. 단순히 어렵다거나 이해되지 않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개별 독자들을 설득할 명분에 관한 이야기다. 문학사에 남긴 뚜렷한 영향은 대개 이후에 등장하는 작가들에게서 그 흔적을 찾기 마련이다.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소설가와 시인에게 오스카 와일드의 말대로 “일관성은 상상력 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하니 옛것에 대한 지루함을 견디고 상상력을 발휘한 작가들의 ‘고전’은 보편성을 확보하거나 충격적일 만큼 새로워야 한다. 이 책의 명성에 걸맞은 편견을 걷어내고 읽어보자. 누구나 곧 잠이 들 것이다.

『율리시스』 출간 102주년, 완독 후에 감상은 ‘이 소설을 읽은 독자보다 이 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농담으로 대신하고 싶다. 연구자들을 위한 소설이란 다양한 문학적 실험들,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표현과 언어유희, 반영론적 관점에서 살펴야 하는 장치와 비교문학의 요소 등이 포함된 작품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소설로 학위를 받을 사람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겠다. 제임스 조이스가 스스로 “끔찍한 괴물소설”이라 불렀던 이 소설은 평행이론으로 시작해야 한다.

해설에서 이종일은 이를 ‘호모 평행’이라고 명명한다. 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아》와의 유사성은 제목, 구성, 인물 등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으려는 독자는 ‘호모 평행’으로 풀어 놓은 각 장에 대한 해설과 등장인물부터 읽는 것이 좋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단 하루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순간을 포착한 작가의 눈에 매료되거나 그 미친 디테일과 치밀한 묘사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침을 흘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블룸과 그의 아내 몰리, 친구 스티븐을 중심으로 집을 떠나 방황하다 귀가하는 원점 회귀형 혹은 여로형 구조를 간파하기도 어렵다. 정확한 시간과 동선은 해설을 통해서야 겨우 파악했기 때문이다. 열여덟 개의 장은 각각의 에피소드로 기능하면서도 부분으로서 전체의 일부를 이룬다. 1장 텔레마코스부터 18장 페넬로페까지 각 장의 제목은 오디세우스의 경로를 따라간다. 블룸과 몰리 그리고 스티븐이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그리고 텔레마코스에 대응하는 듯하지만 무작정 ‘호모 평행’을 따라가면 이 소설을 고전 패러디에 불과한 작품으로 읽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어쨌든 소설의 흐름은 ‘시간’의 축 위에서 벌어지는 개별적 사건으로 유기적 결합 없이 파편화된 종말에 이른다. 그 결말은 어떤 의미도 추측도 가능하지 않은 ‘무의미의 축제’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한국의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문학 시간에 배웠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천변풍경》등 당대 현실을 그대로 담아 고현학考現學이라 할만큼 마치 사진처럼 풍경을 담아냈던 박태원이 이 소설을 완독했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차피 소설은, 아니 작가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분석과 해석에 천착할 뿐이다. 현실을 추동하는 힘을 가진 리얼리즘 문학이 없지 않으나 대개 독자는 변화와 실천이 아니라 불가해한 삶의 이면, 그 진실을 파악할 수 없는 인간 삶의 부조리를 위로받기 위해 책장을 넘기는 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읽는다면 제임스 조이스가 시도한 거의 모든 형식적 실험과 잡학다식한 내용으로 독자의 의식을 무아의 경지로 풀어놓고 무의식의 세계를 따라가는 ‘재미’를 느끼는 변태같은 독자가 없지 않겠다. 각 장마다 주요 인물의 내면 독백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은 없다. 사건의 유기적인 결합은 기대하지 마시라. 작가의 불친절한 서술로 인해 독자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등장인물의 복잡한 내면세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낯설게 보고 새롭게 만들기 위한 조이스의 노력은 헛되지 않기에 독자들은 1400쪽 모두 읽기 전에 책을 던져버리거나 숙면의 밤을 맞을 것이다. 그렇게 읽다만 『율리시스』를 책장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는 대의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항상 실패한 대의에 충실했어. 교수가 말했다. 우리에게 성공이란 지성과 상상력의 죽음이야. - 1권, 23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600
시의 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지시인선 뒤표지 박스 안의 글이 좋아 서점에 가면 우선 시집을 뒤집어 먼저 읽어보고 내용을 살핀 적이 많다. 나만 그랬을까. 600권 기념호가 창비 500권 기념호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이번에는 501~599권에 실린 시 모음 기념 시집이 아니다. 시인의 말, 아니 시의 말이라 명명한 뒤 표지 글을 모았다.

그동안 시는 나의 돛이자 덫이었다. 시가 부풀어 나를 설레게 했고 사해를 항해하게 했으며 닻 내릴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때로 시는 나를 괴롭혔다. 버리기 싫은 덫처럼 말이다.

_방부제가 썩는 나라┃최승호┃문학과지성 시인선 514「시작 노트」, 24쪽

한 편의 시는 시집 한 권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비교할 수 없다. 시 한 편은 소비하지만, 시집 한 권은 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들은 시작 노트 일부를 꺼내놓기도 했고, 시집을 출간하며 느낀 소회를 적기도 했으나 시인의 말이 따로 있으니 이 글들의 성격이 모호해졌나. 한 권의 시집에 모여 사는 시들이 내는 목소리라고 해도 좋다. 시의 말이든 시인의 말이든 행간을 건너 뛰어 미처 내뱉지 못한 한숨이어도 나쁘지 않았다. 허술한 푸념, 아니 단단하게 벼리지 못한 성긴 의미라서 머리보다 가슴에 닿았는 지도 모른다.

시의 목표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런 시는 내게 필요 없는 존재다. 왜냐면 세상은 보기보다 잔인하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시는 삭막한 세상에서 상처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_천사의 탄식┃마종기┃문학과지성 시인선 545, 58쪽

시가 삭막한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리라는 의사 시인 마종기의 생각은 나이브하다. 아니 시의 목표가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시를 쓸 수 없으리라. 알면서 펼치는 시집의 첫 페이지 그 숱한 서시를 읽기 위해, 그 두근거리는 ‘첫’을 위해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건 아닐까.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남의 것과 비교할 수도, 비교해서도 안 되는 자기만의 꿈과 사랑은 제각기 다른 모양과 빛깔로 빛난다. 획일화된 세상, 자본주의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을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를 읽지 않을 테다. 아니 무용해서 아름다운 걸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시를 쓰고 그 소중함에 기꺼이 읽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어떤 스무 살은 마흔 속에 가 있고

어떤 마흔은 스무 살 속에 와 있다.

_겨를의 미들┃황혜경┃문학과지성 시인선 568┃시 「핵核」에서, 85쪽

어쩌면 어떤 마흔 살은 예순 속에 가 있고, 어떤 예순은 마흔 살 속에 와 있다. 시간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존재는 없다. 어떤 틈에 대하여 알고 싶다고 양자물리학의 원자와 핵 사이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때때로 오늘 지는 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과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강동호는 발문에서 문지시인선 뒤 표지의 글들을 “하나의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글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음악적 코다(coda)처럼 시집의 종결을 고지하는 자기 지시적 텍스트”라고 규정한다. 일종의 종결사라는 의미일 텐데, 나는 미련과 아쉬움이거나 그다음 시집의 서시를 고민하는 글로 읽힌다. 마지막이 아니라 미리 온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시간 앞에 한 인간의 죽음이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듯이. 개별적 존재로서 하나의 우주와 같은 한 사람의 소멸이 세상의 끝이 아니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죄가 없습니까?” 그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K가 말했다.

자신의 모든 유고를 불태워달라는 카프카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던 막역한 친구 막스 브로트 탓에 우리는 카프카의 장편을 읽는 고역을 감내하는 걸까.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장을 덮고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널 안다.’, ‘내가 그걸 이해했다’라고 생각한 순간 오해가 시작되어 스스로 불신을 만들고 배신감에 몸을 떨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원고를 태울 용기가 없었거나 미련을 남긴 카프카에게 요제프 K가 묻는다. 미완의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하고픈 말은 아도르노의 분석대로 “모든 문장이 ‘나를 해석해보라’고 하면서 어떤 문장도 그것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이게 뭥미?

소설 도입부를 읽다 내려놓은 책들이 꽤 많다. 어디 소설뿐인가. 첫인상에 기대 선입견을 갖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모든 텍스트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독자에게 발화되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읽었다는 만족감을 위해, 또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고 색다른 방식의 위로를 받으려고, 그리고 누군가는 망각과 도피의 수단으로 책 속에 숨기도 한다. 목적이 무엇이든 내게 50쪽을 넘기는 책은 나와의 인연이 없다고 판단한다. 카프카의 『소송』을 꺼내 다시 읽기 시작한 건 필연을 가장한 우연일 테다. 인생 전체가 우연히 휘말린 소송에 불과하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고, 아무 상관없이 욕을 먹고, 영문도 모른 채 불이익을 감내하며, 남의 잘못으로 손해를 보는 게 인생이라면 지나치게 부정적일까. 낭만적 사랑과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곁에 머물러야 행복도 전염된다면 요제프 K 같은 사람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아야 한다. 바틀비는 물론.

소송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소설이 끝난다. 공소장을 확인하지도 못한 주인공은 건물 꼭대기층 다락에 설치된 법정을 기웃대며 이들의 피를 빠는 훌트 변호사와 법원 중재인 화가 티토렐리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다소 그로테스크하고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이어지는 음울한 분위기의 소설을 읽는 내내 식은땀으로 젖은 속옷을 벗지도 못하고 뜨거운 선풍기 바람이 오히려 온몸에 열기가 올라오는,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밤에 읽지 말아야 할 소설 맨 윗자리에 올리고 싶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주의로 흘러가는 현대 관료 체제는 매일 뉴스를 통해 목도한다. 상식과 합리에 바탕을 둔 판단과 선택과 거리가 먼 경찰과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 선악을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싶다. 원고와 피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억울하다고 아우성인 세상에서 요제프 K가 선 법정은 종교 혹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 혹은 종교적 가르침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할까. 비인간화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소외와 불안은 법정으로 상징되는 권위, 가치, 규범들이 내면화된 죄의식을 만들어 낸다.

1883년 체코에서 태어나 1924년 겨우 40년을 살다 간 프란츠 카프카는 파혼으로 인한 죄책감, 자기 증오, 자기 처벌의 심정으로 이 소설을 썼을 것이라는 추론은 그의 생애와 무관치 않다. 제1차 세계전을 일으킨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를 ‘빌렘’과 ‘프란츠’로 등장시켜 우회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1914년의 세계를 반영했다는 해석도 일리가 있겠다. 그러나 세계가, 아니 우리 삶 전체가 법정과 다름없다는 설정은 공화정 아래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 산다고 믿는 근대 이후 인류에게 던지는 카프카의 질문이다. 넌 괜찮으냐고, 과연 그게 맞는 거냐고.

“개 같군!” 그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치욕은 살아남을 것 같았다.


* 등장인물

요제프 K :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은행 재무담당 부장, 주인공 화자

감독관 : 요제프를 감독

프란츠, 빌렘 : 감시인

그루바흐 부인 : 하숙집 주인

뷔르스트너 양 : 타이피스트, 건너편 방 거주자

라벤슈타이너, 쿨리히, 카미너 : K의 은행 동료들

엘자 : 술집 여종업원

법정 정리, 그의 아내 : 법정이 열리는 장소를 제공하며 살아감

베르톨트 : 법학 전공 대학생, 예심판사 밑에서 일하며 법정 정리의 아내를 짝사랑

알베르트(카를) : 요제프의 숙부

에르나 : 사촌인 숙부의 딸

훌트 변호사 : 숙부의 동창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자

레니 : 홀트 변호사의 시중 드는 아가씨

사무처장 : 홀트 변호사의 지인

티토렐리 :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이자 비공식적 법원 중재인

블로크 : 상인으로 변호사의 의뢰인

*

체포

그루바흐 부인과의 대화 이어서 뷔르스트너 양

첫 심리

텅 빈 법정에서 / 대학생 / 법원 사무처

태형리

숙부 / 레니

변호사 / 제조업자 / 화가

상인 블로크 / 변호사와의 해약

대성당에서

종말

**미완성 장들

B의 여자친구(몬타크)

검사(하스테러)

엘자에게로

부행장과의 싸움

관청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