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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
쓰루미 와타루 지음, 배조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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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복이 관계에 있다고들 하지만, 삶의 근원적인 슬픔이나 외로움이 관계로 해소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관계망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에요.”


나는 인간의 행복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고통은 관계에 있다. 삶의 근원적인 슬픔과 외로움은 인간의 존재 조건이다. 연인, 친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의지하며 관계를 맺고 행복과 기쁨을 나누지만 모든 고통과 슬픔 또한 이 관계에서 비롯된다. 우연히 나눈 대화의 한 마디를 오래 곱씹었다. 인간관계가 각자가 원하는 욕망의 교집합을 넘어서는 순간 원망과 분노, 슬픔과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겠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지나친 기대 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경계를 허문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감정과 선택으로.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거리는 어떻게 측정 가능한가. 서로의 기준과 욕망이 다를 때마다 대화와 합의를 통해 결정될 수 있는가.


일본 논픽션 작가들의 특징은 쉽고 간단하게 객관적 사실들을 요약 정리하고 간명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접근이 용이하나 깊이와 넓이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단점을 함께 갖는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대표적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숱한 저작들이 그렇다. 쓰루미 와타루 역시 『멀어질수록 행복하다』는 제목으로 눈길을 끈다.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이라는 후지하라 가즈히로의 책처럼 날카로운 통찰과 선명한 주장이 담겨있으나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충분한 사유의 즐거움이나 깊은 통찰에 닿지는 못한다. 책을 읽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차고 넘칠 수도 있으나 대개 한 권의 책으로 얻으려는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이라는 부제는 선명하고 매력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이를 “‘개인주의’란 자신과 타인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태도를 말한다. 결코 제멋대로 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건 이기주의다. 진정한 개인주의란 모든 개인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남을 배려하고, 동시에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굳건할 때, 건강하고 대등한 관계 맺기가 비로소 가능해진다.”(212쪽)라고 정리한다. 나밖에 모르거나, 내가 옳다고 착각하거나, 내가 원하는 걸 상대도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타인의 기대와 욕망, 생각과 감정에 대한 배려가 없다. 웨인 다이어는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자고 역설했으나, 이는 확대된 개인주의에 가깝다. 타인에 대한 말과 행동을 성찰하지 않으면 스스로 ‘선’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착각하기 쉽다. ‘나와 너는 다르다’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랑 혹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동일시하기 쉽다. 다른 건 잘못이 아니고, 비난의 이유도 아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그 고통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심리학자 아들러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는 문장 하나가 이 책의 출발이다. 저자는 ‘아무에게나 곁을 내어주지 말 것, 가족이란 이름의 지옥에서 해방될 것, 짝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것, 어디서나 내 마음을 편안한 곳에 둘 것’을 강조한다. 이 충고를 각각의 장으로 구별하여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소제목과 문장은 명쾌하여 실용적 목적의 독서에 부합한다.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나 워크북 형태의 자기계발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관계 지옥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 독서가 시간과 장소의 문제는 아니지만 여행, 휴가, 카페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시원한 표지 디자인은 여름과 잘 어울린다. 물성을 가진 종이책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잊지 말자. 거리를 두지 않으면 함께 멀리 갈 수 없다. -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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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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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헤어질 때, 배려의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 37쪽

알랭 드 보통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1993년)로 깊은 인상을 남긴 후에도 결코 만만치 않는 책들이 계속 번역되었고 많이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불안』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현대적 일상의 가치를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관한 숱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어떤 작가든 한두 마디는 하기 마련이다. 프루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보통씨는 특별한 문장을 남긴다.

건축, 미술,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하고 풍부한 저작들은 평균 이상이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전 에피타이저 혹은 읽은 후에 디저트로 좋은 책이다. 1871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프루스트는 평생 변변한 직장을 가져 본 적도 없고 병약한 몸으로 거의 일생을 침대에 누어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제적 작가다. 숱한 상찬과 논쟁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프루스트는, 아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몇 마디로 규정하기도 어렵고 재미와 감동이라는 전통적인 문학적 잣대로 가늠하기도 어렵다.

텍스트 자체보다 프루스트에게 집중한 저자는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사랑 안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 등 원제처럼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바꾸는 방법 아홉 가지를 제시한다. 책 좀 읽는 독자들은 금세 눈치챈다. 비법과 방법을 제시하는 책은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그건 니 생각이고 난 달라,와 같은 주관적 태도와 생각 등 비판적 관점이 개입되기 때문이며 어디에나 통용되는 방법론은 수학의 정석에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정해진 길이 있다면 세상에 단 한 권의 책만 존재할 테니까. 그러니 이 책도 프루스트나 텍스트를 읽는 동안 진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매려는 사람은 기필코 이해하고 말겠다는 오기보다 보상 심리로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프루스트에 삶과 당대 상황들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다. 어떤 고전이든 ‘당대성’을 간과한 채 서사에 몰입하기는 어려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고 겨우 전화가 발명된 시기다. 잘 차려 입고 오프라인 모임인 살롱에 가지 않으면 사람을 사귈 방법이 없었고, 인스타가 없어 돈 많은 사람들이 자랑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걸 기억하자. 그러면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니, 프루스트가 자기 삶이나 사랑했는가. 친구도 없었을 것 같은데...질베르트, 알베르틴을 떠올려 보니 사랑이 뭔지도 모를 것 같은데...우리가 삶을 바꾸는 방법을 읽어낼 수 있다고?

그렇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독자’야말로 진정한 책을 완성시킨다. 무엇을 썼는지 중요하지 않다. 개별 독자가 어떻게 읽었는지가 핵심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읽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일 뿐이다. 물론 우리는 타인의 책읽기를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비밀에 감탄하고 전혀 다른 해석에 놀란다. 독서 토론이 아니라도 간접적인, 또 다른 방식의 독서 모임 같은 2차 저작물들에 손이 가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프루스트 ‘보다’ 오히려 우리 입맛에 맞는 문장과 감수성을 가진 보통씨의 특별한 문장을 읽는 즐거움 때문이면 어떤가. 어차피 독서 유목민들은 짐을 챙겨 길을 떠나면 그뿐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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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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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철학자 강신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욕망을 분석하기 위해 라캉을 데려온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당황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내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는 말의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를 통해 기호에 대한 욕망을 강조했다. 생산이 아니라 소비를 욕망하는 현대사회의 뒤틀린 욕망을 비판하고 있는 시선을 또다시 점검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안의 숨은 욕망을 부정하는 이유와 그러한 욕망을 드러낸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음험한 시선과 들키고 싶지 않은 당신의 욕망에 대해.

 

누군가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논어가 사람의 길을 열었다고 말한다. 유교적 질서는 그만큼 한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화두이면서 상반된 관점을 드러낸다. 우리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면서 행동의 준거 기준이 되었지만 그 부당함과 문제점이 일시에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가 바로 유교적 윤리다.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해서 스스로 서열을 결정하고 온 가족이 마치 가족인 것처럼 형, 누나, 동생으로 지칭하는 버릇이 그러하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간다. 태어난 순서, 직장에서의 경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사유 방식이 아닌 것으로 관계를 설정하려는 불편한 방식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느 조직이든 그것부터 확인하려는 전근대적 태도를 일시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욕망이라니!

 

 욕망해도 괜찮아를 통해 꺼내기 조차 불온한 언어를 꺼내 든 김두식의 용기에 일단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 욕망)과 계(, 규범)을 키워드로 풀어내는 개인적 삶에 대한 고백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에 해당한다. 불편해도 괜찮아와 유사성을 떠올리도록 한 제목은 출판사의 상업주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국가인권위에서 기획한 인권이야기가 담겨있는 불편해도 괜찮아의 판매고에 힘없어 책을 팔려는 의도 이외에 욕망해도 괜찮아불편해도 괜찮아와 전혀 무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해도 괜찮아불편해도 괜찮아에 못미치는 불편한 책은 아니다. 멘토 과잉의 시대, 자기 계발서 범람의 시대, 스펙 올인의 시대에 김두식의 고백은 오히려 불순한 현학적 자기 고백의 욕망에 충실한 책이다. ‘100퍼센트 장학금으로 스물일곱살에 미국에서 박사를 딴 후 서른한 살에 교수가 된 형이나 스물네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김두식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부부 교사였던 부모님의 경제적인 상황을 자 가족의 사자 가죽으로 풀어냈지만 우리 사회의 99% 입장에서는 1%의 엄살로 비칠 뿐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타인의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한계다. 김두식의 사회적 계급과 경제적 계층을 고려하면 하품나는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중산층 일반의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보면 그 어떤 책보다도 솔직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쭙잖은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의 욕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힘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불안한 욕망을 나이브하게 드러낸 김두식의 글은 읽는 사람의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욕망과 규범의 갈림길에서 갈등한다. 그것을 색과 계로 읽어내며 영화 , 의 두 주인공의 관계로 풀어내고 있다. 양조위와 탕 웨이의 관계는 색과 계의 충돌이다. 하지만 결과는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것을 조절하며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 어느쪽을 선택하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굳이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욕망을 인정하는 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학벌문제와 희생양, 신정아와 똥아저씨, 정신 승리의 비법, 중산층의 은밀한 욕망, 몸과 살의 소통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통해 때로는 김두식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고백은 나의 힘이라고 외치는 이 책은 새빨간 표지만큼 발칙하다. 그래서 단숨에 읽히며 읽고 나서도 한동안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세상의 모든 뒷담화에 던지는 도발이며 드러내지 않은 음험한 욕망에 대한 냉소다.

 

자기를 계발하라고 부추기는 세상의 모든 책들, 모르는 것을 가르치겠다는 세상의 모든 멘토들,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망할 거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세상의 장삼이사들이여 진정 용기 있다면 이 책을 읽고 김두식에게 손가락질을 하시기를. 나는 내 손이 부끄러워 슬며시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다.

 

 

120606-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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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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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재벌 회장은 1명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릴 것이라며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말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알게 된다. 인간은 나눔과 배려를 통해 협력해 왔고 공동체를 만들어 더불어 함께 살아왔다.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의 어원도 따지고 보면 폴리적 존재 즉,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존재라는 뜻이다. 효율과 경쟁이라는 관점만으로 바라볼 때 1명이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는 발상이 가능하다. 재벌의 눈에는 신기술로 많이 벌어줄 사람을 천재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 또한 이 사회에서 교육받고 사회적 자산을 공유하며 성장한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뛰어난 기술개발을 통해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더라도 삶의 목적과 방향은 새롭게 발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무엇을 위해 왜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나이와 무관하게 진짜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이든 기업이든 오로지 을 목적으로 한 삶은 얼마나 불쌍해 보이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을 우습게 여기거나 하찮게 여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인간도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 뚜렷한 목적과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깊은 철학적 고민에서 나온 주체적인 삶인지 말이다. 돈을 벌기위해 재테크에 미치라고 권하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며 상속을 하며 불법을 가르치는 재벌 회장, 국민에게 봉사할 줄 모르고 권력과 치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국회위원 등 우리 주변에는 1인분 만큼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석훈은 1인분 인생을 외치는 것일까. 특이한 제목의 이 책은 우석훈의 산문집이다. 에세이의 특징은 우선 자유로운 형식에 있다. 분량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는 저자의 감성과 이성을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우석훈은 똥 고양이에 대한 살뜰한 애정과 태권도 사범 실력을 갖춘 아내에 이르기까지 일상적 삶의 모습을 공개한다. 트위터를 통해 잘 알려진 우석훈의 고양이는 이 책의 시작을 알린다. 길고양이로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녀석을 통해 우석훈은 자본과 생명에 대해 성찰한다.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참담함이 묻어난다.

 

 일상적 삶의 모습이 이 책을 편안한 수다로 읽을 수 있는 장점이라면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C급 경제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는 감성 에세이로만 읽을 수 없는 장점이 된다. 88만원 세대이후 우석훈의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 나와 너의 사회과학등 경제학자의 관점이 뚜렷한 책들이었다. 하지만 생활인으로서의 우석훈은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다. 국제기구에서 활동했고 정부의 요직에서 일했지만 자본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권력의 달콤함에 녹아버리지 않은 삶의 태도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석훈은 우러러 보고 존경받아 마땅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이 선망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외모와 나는 꼽사리다를 통해 들려주는 어눌한 목소리를 가진 한 남자의 외로움이다.

 

세상을 향해 최소한 1인분어치의 삶을 제대로 살자고 외치는 경제학자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들리는 이유는 얼마나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인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책읽기와 글쓰기 강연과 팟캐스트를 통해 가난한 자유를 누리는 우석훈은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지금은 성공회대 외래교수와 타이거 픽처스의 자문을 맡고 있으니 먹고사니즘에서는 조금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경제와 사회, 문화와 생태에 대해 날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들의 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그는 보다 나은 삶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있다. 그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해결될 수는 없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 정책 결정자들의 생각과 실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우리들의 삶을 직접 지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석훈은 이 편안한 에세이들을 통해 그 질문에 간접적으로 답하고 있다. 1인분의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것조차 힘겨운 세상이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부지런하다. 근면하고 성실함으로 한 세상을 살아온 부모와 그 윗세대를 살펴보자. 신산스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폐허 위에서 생존을 강요했다. 위정자들에게 기대지 못하고 스스로 한 목숨을 부지해야했던 사람들은 모질게 세상을 버텼다. 생존을 위한 경쟁과 나부터 살고 보자는 마음은 여전히 각박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나눔과 배려, 소통과 대화보다는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고민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남의 자식은 곧 나의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내 자식만 잘 되는 방법을 고민하고 내 가족만의 행복을 추구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고 있다면 그건 불가능한 게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분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개인의 게으름과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구조적인 모순과 시스템의 문제가 많다. 고개를 들고 전체를 보고 내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외부를 분석해보자. 우리의 삶은 근면 성실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1인분 인생을 충실히 살기 위해서는 타인도 1인분을 살고 있는지 반칙을 하거나 남의 1인분을 뺏어가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자. 불신과 비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자는 말이다.

 

이제 40대 후반에 들어선 우석훈의 에세이 한 편 한 편에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개인적인 소회와 감상적 일상으로 점철된 산문이 아니라 진솔하고 애정 어린 타인에 대한 시선과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국민 모두가 정치를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감시자의 시선으로 권력을 바라보며 우리 삶의 조건을 성찰하고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세상이다.

 

120318-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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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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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십년 만에 알고 황당했다. 여덟 장 짜리 컴필레이션 앨범 중 두 장은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채 CD사이에 꽂혀 있었다. 잡스런 CD와 빈 케이스를 버리려고 정리하다가 발견한 여덟 장 사이의 두 장은 들어보지도 않았다는 말이니 선물한 사람에게 미안해졌다. 컴필레이션 앨범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뷔페와 흡사하다.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잔뜩 쌓아놓았지만 뭘 먹었는지 알 수가 없고 무엇보다도 각자 먹는 속도와 양이 달라 수시로 오로지 먹는행위에만 집중하는 방법도 내키지 않는다. 좋은 것만 골라 놓는다고 해서 최고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전체적인 어울림이다.

이런 방법은 음악뿐만 아니라 책도 가능하다. 목적과 방향에 따라 다르게 기획되고 편집될 수 있지만 독특한 아이템이 아니면 잡탕 찌개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문학사상에서 나온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월간 <문학사상>에 연재됐던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작가의 창작 노트를 한데 모은 책이다. 동시대의 소설가들에게 듣는 창작론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읽을거리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열일곱 명의 작가를 한 번에 만날 수 있으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다만, 한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짧다는 아쉬움은 뷔페의 모든 음식을 무한정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여러 작가의 창작론은 서로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색다른 장점이 생긴다. 김경욱부터 함정임까지 가나다순으로 배열된 작가들의 나이와 개성이 제각각이다. 자신의 소설에 대한 창작론이라니 본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많이들 곤혹스런 눈치다. 작가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창작의 과정을 들려준다. 독자들은 맛있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소설가들의 편안한 형식의 진지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사건을 떠올리고 인물을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방식과 소설에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다른지 즐기면 되는 책이다. 숱한 질문과 심각한 고민은 필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혹시 읽지 않은 작가라면 그의 소설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김경욱은 자신의 창작론을 이렇게 결론짓는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실존적 전언을 떠올려본다면 화자와 주인공의 타자성이라는 지옥을 작가가 견뎌낼 때 실존의 문학은 문학의 실존을 견인하지 않았는가. - 김경욱, 25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며 스스로 다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인 화자와 주인공은 분명 작가에게 지옥일 것이다. 그것을 견뎌낼 때 문학의 실존보다 먼저 드러나는 것은 우선 독자들의 기쁨이다. 살아 숨쉬는, 손에 잡히는 또 하나의 세계와 마주하는 기쁨을 욕망하는 독자들은 기꺼이 작가들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다.

 

이외에도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이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소설과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나열하고 보니 그들이 보여주었던 소설의 세계가 중첩되며 펼쳐지고 저마다 다른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그 즐거운 비명은 독자들을 위해 충분히 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 아쉽다. 지난 90년대, 2000년대 소설들의 치열함이. 개인적인 소회겠지만 현실 사회에 대한 분석과 이해 치열한 고민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소설을 만나기 힘들다.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고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 인간의 삶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비밀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작가들은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새로움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의 현실적인 고민과 아픔들을 성찰하는 이야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소설은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는 가장 선명한 거울이 아닌가.

 

삶은 잠이고 사랑은 꿈이다. 자는 동안에는 계속 꿈을 꾸고 싶다.’는 김연수의 말은 창작론을 넘어 삶에 대한 반성이 아닌가 싶다. 자는 동안에도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분석이기 전에 작가의 소설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사랑을 외친다. 누구나 사랑을 말하고 어디서나 사랑을 욕망한다. 그러나 그보다 지독한 미움과 분노와 폭력이 난무한다. 나르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랑과 세속적인 조건과 관계를 고려한 사랑을 꿈꾸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과 이별이든 삶과 죽음이든 친구와 가족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뻔한 스토리의 삶을 견디고 있는지 모른다. 보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욕망하는 독자들을 위해 작가들은 어떤 창작론이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의무가 있다. 수많은 독자들은 여전히 소설을 통해 잠을 자고 꿈을 꾸기 때문이다.

 

120208-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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