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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의 인문학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5
김석철 지음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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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

건축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집’이 거주의 목적을 넘어서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르 코르뷔지에나 안도 다다오는 사적인 생활 영역인 ‘집’에서부터 그들의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 조건이며 거주의 목적으로 지어진 ‘집’에서 출발한 건축은 다양한 목적으로 고유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상상력을 실현가능한 현실로 바꾸었으며 건축도 예외가 아니다. 유리로 된 반짝이는 건물은 물론이고 둥글고 세모난 모양도 가능하다. 다양한 건축재와 시공법의 발달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건물들은 점점 더 크고 화려해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건축은 실용적 유용성과 미적 기능이 충돌한다. 순수 음악이나 그림, 조각의 경우는 극단적이고 추상적인 데까지 나아갈 수 있으나 건축은 ‘기능’ 측면에서 다른 예술과 구별된다. 비움으로써 가득 차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건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닐까.

그릇과 마찬가지로 실용적 측면만 살펴보자면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건축에 관해서는 세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기능이다. 얼마나 적절하게 공간을 분할하고 동선을 고려하고 있으며 실용적인가. 둘째는 예술성이다. 유사한 기능과 효용을 갖추고도 심미적인 측면에서 손색이 없어야 한다. 마지막은 주변 상황과의 어울림이다. 도시 한복판의 좁은 공간 빌딩과 빌딩 사이의 공간인지 아니면 자연과 어우러진 곳에 지어질 것인지에 따라 목적과 기능이 달라진다. 그밖에 건축재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수많은 고려 사항이 더해진다.

하지만 결국 건축의 중심에는 ‘사람’이 놓여야 한다. 자산 가치나 기능적 측면만 고려한 건축은 끔찍한 재앙이다. 대한민국만의 특이하고 기형적인 주거문화인 ‘아파트’를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나와 있으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다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위대한 건축에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선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근대 이전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신과 왕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문학과 건축

그래서 건축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건축이 예술로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의 꿈과 철학, 미적 본능과 창조적 상상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건축의 바탕에는 인간의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내야 한다. 건축가는 인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그들의 철학과 삶을 이해해야 한다.

김석철의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은 한 눈에 독자를 사로잡는다. 인간과 인문학을 이해하고 있는 건축가의 이야기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이며 석학 인문 강좌의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라서 알기 쉽게 건축과 인문학의 관계와 자신의 건축에 담긴 인문 정신을 잘 담아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김석철이 건축과 도시 계획에 대한 이력을 반복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나 그가 담아내려고 했던 각 개별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과 목적은 인문학과 구체적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건축가가 설계할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도시’를 설계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 할 만하지만 도시가 인간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지역과 목적에 따른 규모와 적정성에 대한 철학적 깊이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미디 운하같이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수로가 없어서 도시는 현대화를 쉽게 이루었지만 농촌은 무너진 것입니다. 농촌이 살아 있지 않은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이탈리아는 물론 일본, 프랑스, 영국 등 부강한 나라들은 모두 농촌이 강합니다. 우리나라는 농촌을 구제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을 살리는 일이 4대강 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 73쪽

문맥을 보면 운하가 없어서 농촌이 없다는 주장이며 농촌을 살리기 일이 4대강 사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운하 중심의 4대강 사업이 농촌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러나 책의 뒷부분에서 4대강 전체를 하나의 뱃길로 오르내릴 수 있는 운하를 만드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4대강 사업이 운하 중심인가 아닌가, 4대강 사업이 농촌을 살리는 일에 얼만큼 영향을 미치는가, 농촌과 운하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정치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못해 아쉽다.

이 책의 전체 구성은 고대, 중세,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지식산업사회, 한반도 등 크게 다섯 번의 강의 내용을 순서대로 엮고 있다. 예술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과 건축가의 경험이 함께 어우러져 알기 쉽게 설명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흐름이 없어 아쉽고 건축과 인문학에 대한 건축가의 확고한 철학이나 일관된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이 많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친환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와 인간의 삶과 건축이 맺고 있는 필연성에 대한 폭넓은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2011112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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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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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 더구나 문화유산 답사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연휴와 방학이면 해외여행이 붐을 이룬다. 좁은 한반도 그것도 반토막 난 남쪽의 반도에 뭐 볼 것이 있겠느냐는 선입견과 과시적인 해외여행에 대한 욕망은 아닌지.

우리 땅 곳곳에 가보지 못한 곳은 얼마나 많은가. 작은 산, 조그마한 산사를 둘러보는 데도 많은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국도를 지나면서 작은 중소도시 읍내까지 점령해버린 〇〇아파트와 〇〇빌라들을 보면 깊은 한숨부터 나온다. 마을마다 특색을 살리고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모습은 각 지자체의 특색이 될텐데 그런 모습으로 마을과 도시를 발전시키고 있는 곳을 발견하기 어렵다. 조금 더 시골이다 싶으면 활기가 없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보다 조용한 노인들이 마지막 생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숨어 있다.

인문학서적으로는 드물게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나의문화유산답사기』가 어느덧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부제로 6권을 펴냈다. 이제 시즌2로 접어든 답사 시리즈는 농익은 과일처럼 편안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몇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이다. 그 애정은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는 인문학적 토대와 정확한 역사적 지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이다. 셋째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문장이다. 현장 답사보다 먼저 텍스트로 문화를 만나는 독자들은 저자의 글솜씨에 금세 마음 한구석의 담장을 허물고 여행 가방을 챙기게 된다.

유홍준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된지 오래다. 소탈한 성격과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할 때 몇 가지 구설에 오르긴 했으나 그것은 공직자로서의 흠결이 아니라 관점의 차이로 볼 수 있는 것들에 불과했다. 어찌됐든 견고한 공직 시스템 안에서 일을 추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분도 재미있게 읽혔다.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속도와 성장을 제일의 가치로 삼았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는 이것을 증거하는 뼈아픈 교훈이 되었다. 그것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숙제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색과 성장을 결합하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강을 보존하지 않고 개발하는데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켜야할 것과 사라져야 할 것을 구분조차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라.(생떽쥐뻬리) - 120쪽

이 책은 경복궁으로 시작한다. 오랜 기간에 거쳐 중건한 경복궁의 면모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일은 얼마나 색다른 감회인지 모른다. 고등학교 1학년 봄 문예반 시절 토요일 오후에 향원정에서 만났던 그리메 회원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추억은 서로 다르게 기억되고 공간은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순천 선암사, 거창과 합천, 부산과 논산과 보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저자의 삶과 인생은 물론 여전히 아름다운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이해를 돕는 풍부한 사진과 적절한 설명은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요소 중에 하나다.

이 책의 부제인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는 바로 저자 자신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가 아닐까 싶다.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상수에게 듣는 우리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고 재밌고 구수하다.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하게 우리 것의 맛과 멋을 담백하게 전해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또 기다리게 된다. 아마도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챙겨들고 저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까운 곳들을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길 바란다. 이 책은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위한 책이고 우리문화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인생은 유수와 같다. 바람처럼 부는대로 물처럼 흐르는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적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정말 아름다운 것들, 느껴야 하는 것들, 알아야 할 것들과 멀어지게 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우리에겐 쉼표가 필요하고 떠나야 할 때와 돌아와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음먹은대로 살 수는 없지만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110606-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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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룰 - 세상 모든 음식의 법칙
마이클 폴란 지음, 서민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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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혐오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 도발적인 질문은 춘천에서 습작시절 이외수가 춥고 배고팠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질문이다.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집착과 관심과 열정은 대단하다. 음식은 맛은 물론 향과 모양으로도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좋아하는 음식에 따라 성격을 파악하기도 하고 취향을 짐작할 수도 있다. 그만큼 수많은 음식은 나름의 표정과 특징을 갖고 있다. 마치 인격을 가진 사람처럼. 그래서 음식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만큼이나 음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음식은 곧 생존이다. 하지만 이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음식을 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 지글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절대기아로 굶어죽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지구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통제하기 힘든 식욕에 대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긴다. 굶어죽지 않을만큼 살게 되면서 이제는 음식을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유기농에 대한 관심과 로컬푸드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발효식품을 통해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기도 한다. 인스턴트 음식과 탄산음료로 대표되는 정크푸드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음식은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고 우리 삶에서 건강과 직결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드물지만 나처럼 음식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도 없고, 못 먹는 음식도 없다. 배고 고프면 먹지만 음식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음식에 대한 욕심도 없고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 때로는 끼니마다 먹는 일이 귀찮을 때도 있다. 어떤 음식이 생각나거나 무얼 좀 먹고 싶다는 생각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어떤 맛집이라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여긴다. 태생적으로 위가 약하고 소화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즐거움의 하나인 먹는 즐거움을 모른다. 어찌됐든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음식은 여전히 가장 본질적인 삶의 일부이다.

『푸드룰food rules』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음식에 숨어있는 많은 비밀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고, 민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과 과학적인 상식들도 생각났다. 세상의 모든 음식에는 나름의 법칙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은 수많은 음식의 특징과 조리법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지켜야하는 식습관 매뉴얼쯤 되는 책이다.

이 책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겨들을만한 음식에 관한 충고들이 명확하고 조리있게 설명되어 있다. 마치 어떤 기계의 매뉴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확신을 가진 저자의 목소리가 강하게 배어 있다.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고 강한 목소리로 조언을 하기 때문에 웃어넘길 수가 없다. 얄팍한 책으로 1~2시간 정도면 읽어볼 수 있어 부담이 없고 그 내용은 평생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음식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곁에 두고 때때로 확인하고 싶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음식을 먹어라. 너무 많이 먹지 마라. 되도록 식물을 먹어라.

무엇을 먹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황당하게도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음식’이 아닌 먹을 수 있는 물질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음식’을 먹고 살자는 말은 가장 기본적인 수칙이며 음식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충고이기도 하다.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어야 할까? 대체로 식물을 먹으라고 것이 저자의 충고이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어도 대체로 혹은 되도록 식물을 먹으라는 이야기이다. 육식을 완전히 버릴 수 없는 잡식성 동물에게 던지는 충고라기보다는 육식 위주의 식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충고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먹어야 할까? 너무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식욕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초래하는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 책은 이렇게 간단한 세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음식’을 먹되 주로 ‘식물’을 ‘너무 많이 먹지 마라’ 건강과 행복을 지켜나갈 수 있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음식에 관련된 책들도 수없이 쏟아진다. 이 책은 다른 책과 구별될 수 있는 뚜렷한 방식으로 독자들을 설득하지는 못한다. 다만 간명한 문장과 짧은 글들이 모여 음식에 관한 64가지 법칙으로 제시된다. 이 룰에 의해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 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음식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먹고 사는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오늘 하루 무엇을 먹었든, 또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민하고 있든 맛과 향과 건강까지 고려한 즐겁고 행복한 ‘음식’이었으면 좋겠다. 저자도 바로 이런 목적으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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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란 무엇인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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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저마다 현실 밖에서 꿈을 꿀 때가 있다. 그 꿈이 어떤 것이든 우리 모두는 꿈꿀 권리가 있다. 그 꿈은 자신만의 즐거움일 수 있고 또 하나의 세계일 수도 있다. 현실원칙과 쾌락원칙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더 몰입하고 열광한다. 상징계와 상상계가 현실계를 반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비틀리고 왜곡된 환타지어도 좋고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어도 좋다. 다만, 우리들의 삶을 즐겁게 해 줄 수만 있다면.

4년에 한 번씩 지구인들은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스포츠 축구. 세련된 형태로 발전했고 자본과 매스미디어를 등에 업은 채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지만 축구경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흥분을 반감시키지는 않았다. 축구는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지구인의 스포츠가 틀림없다.

초등학교시절에 잠시 축구선수 생활을 하다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포기했기 때문에 언제나 운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20대 중반까지 축구 경기장 계단을 올라 녹색의 잔디를 보면 미친 듯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떤 여자를 만났을 때 그렇게 내 심장이 90분간 두근거렸을까.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동경이며 환타지에 가까운 열망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축구는 때때로 관심과 증오와 환희와 열광의 대상이다.

1986년 박창선의 월드컵 첫 골 장면이나 최순호의 중거리 슛이 1982년 한일전 김재박의 스퀴즈 번트만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열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런너스하이를 경험해 본 사람은 운동 중독에 빠지게 된다. 쉬지 않고 그라운드를 달리고 드리블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순간적으로 판단하며 숨이 넘어갈 듯 달리다보면 동물적 즐거움의 극치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축구 경기를 즐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경기를 보며 몰입하는 사람의 흥분상태를 포함한다. 독일의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의 『축구란 무엇인가』는 바로 이렇게 축구에 미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아니 왜 축구여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알프레드 바알의 『축구의 역사』와 이은호의 『축구의 문화사』가 축구에 관한 에피타이저라면 프랭클린 포어의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와 닉 혼비의 『피버 피치』는 축구에 대한 본격적인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축구의 역할과 기능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책이다. 『축구란 무엇인가』는 ‘축구’라는 경기에 대하여, 축구의 역사, 축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축구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한다. 실로 축구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한 분량과 내용을 갖춘 책이다. 축구의 기원과 역사에서부터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까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축구가 관중에게 주는 매력은 본질적으로 발의 허약함에 있다. 고집 센 공을 다루는 발의 허약함으로 인하여 자주 실수가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절대 예견할 수 없고 거기에서 매력이 나온다. -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70쪽

이 책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백과사전류가 아니다. 저자는 독일 축구의 주요 장면을 실감나는 문장으로 되살려내고 있으며 역대 월드컵을 기억한다. 축구에 대한 깊은 애정과 깊이 있는 분석을 토대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는 축구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샅샅히 훑어내고 있다. 참 많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책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이다.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지만 단기간의 축제여도 좋고 분위기에 휩쓸려 흥겨움을 즐겨도 좋다. 집단적 애국주의와 전체주의의 광기라고 욕하지 말고 국가주의를 공고히 하는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지 말고 ‘축구’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의외성 그리고 몰입의 즐거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여긴다. 나는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축구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빌 생클리, 리버풀 감독) -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507쪽

미쳐야 미친다. 무엇에든 미치지 않고서야 그 지극한 즐거움의 언저리를 맛보지 못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 간다. 축구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역사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재미있게 즐겨보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스타디움이 아닌 TV를 통해 봐야하는 아쉬움은 사치에 불과하다.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공은 둥글다’는 말을 믿어보자. 승부와 상관없이 이미 축제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우리들의 생이 늘 축제일 수는 없겠지만.



100616-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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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 일조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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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조상은 왜 두 발로 걸었을까? 인간 진화의 주역은 남성 사냥꾼인가, 여성 채집가인가? 백인은 가장 진화된 인종일까? 일부일처제가 가장 합리적인 결혼제도일까? 인종, 종족 그리고 민족이란 무엇인가? 왜 먹고 살만큼만 일하면 안 되나? 종교는 정치에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수많은 질문들 중에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인류학자다. 쉽게 말해서 문화는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습관을 가리킨다. 종족마다 생각이 다르고 지역마다 생활습관이 전혀 다르다. 문화에는 우열은 없으며 차이만 있을 뿐이다. 차별과 차이가 다르다. 우리 혹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문화를 우습게 보는 것은 정말 우스운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고리타분한 ‘인류학’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인류학은 흥미진진한 분야다.

  21세기의 한국인을 위한 ‘문화인류학’ 입문서를 지향한다는 취지아래 여러 명의 인류학자가 공동 작업을 해서 펴낸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은 소설보다 재미있다. 어떤 학문분야든 이론과 개념에 대한 지루한 설명 그리고 연구 방법론을 소개하며 시작하는 개론서와 전문서적들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실제 생활에서 빈번하게 부딪치는 문제들이나 막연한 호기심을 해결해 준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배운 대로 본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 P. 22

  이 책은 14장으로 나누어 문화가 무엇인지부터 인간의 진화, 여성과 남성, 혼인과 가족, 경제, 정치, 차별, 몸, 아름다움, 종교, 역사, 세계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통해 문화인류학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어렵고 개념적인 설명을 다룬 책이 아니라 인류의 실제 생활과 밀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문화의 기원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 곳곳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우리를 비교한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저절로 답이 나온다. 우리가 생활하는 방식과 사소한 생각의 차이는 모두 사회화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어떠한지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다른 문화와 대면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문화적 가치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삶의 방식이 유일하고도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문화상대주의는 때때로 고통과 혼란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다른 문화와의 대면은 성장 과정에서 무뎌지거나 억압되었던 자신의 문화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과 감수성을 회복시켜 준다. 즉, 자기 문화를 보다 잘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 P. 30

  개고기를 먹는다고 우리를 욕하는 프랑스의 여배우나 손으로 밥을 먹는 외국인 노동자를 비웃는 우리들은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편견 덩어리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상대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나도 인정받기 힘든 것이다.

  문화는 집단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마다 풍습이 조금씩 다르듯이 이 넓은 지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상대주의는 단순한 지식과 이해의 수준을 넘어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삶의 자세다.

 이 책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문화’라는 동일한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화인류학회에서 공동 작업을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데 빈 말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호기심이나 타문화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 우리를 낯설게 바라보고 우리의 선택이 최선인지 확인하는 것이 인류학이다. 문화인류학은 다른 문화를 통해 우리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꼼꼼히 살펴보자. 바로 그 안에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또 다른 누군가에 얼마나 신기하고 낯설게 느껴질까 생각해보자. 세상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게 해주고 다양한 관점을 얻을 수 있는 이 책을 모든 사람에게 읽히고 싶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의 경험 세계의 차이를 꼼꼼하게 되짚어 보는 훈련은 인류학자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 P. 291


09082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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