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는 법
류시현 지음 / 따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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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이 『인간다움의 순간들』에서 “개인은 자기를 기록함으로써 태어난다.”라고 썼다. 어떤 블로그의 인상적인 기록 혹은 일기 혹은 단상들을 읽다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적이 있다. 나탈리 제인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를 읽을 때처럼 미시사의 관점으로 한 개인을 통해 시대와 문화를 읽었다. 학창시절의 나이브한 귀여운 감성뿐만 아니라, 김연수의 말대로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버린 청춘의 고민, 자책, 방황, 불안에 이어 성장과 인정 욕구에 이르는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의 독서일기처럼, 오랜 시간 공들여 적은 누군가의 일상과 기록 그 많은 흔적들이 한 ‘개인’을 완성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역사다.

그렇게, 역사는 대단한 위인과 영웅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지 않는다. 내가 아이였을 때 『플루타크 영웅전』은 읽은 적이 있다. 천병희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로저 에커치의 『밤의 문화사』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는 세종과 나폴레옹처럼 뛰어난 개인뿐 아니라 이완용이나 히틀러처럼 저열한 개인의 충격과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채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생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친 류시현의 『역사를 읽는 법』은 감동 그 자체다. 역사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관점, 즉 사관史觀에 따라 전혀 달리 해석 가능하다. ‘사실은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출토된 문화재, 텍스트로 남은 기록 등 숱한 사료를 재구성하고 연결지어 그들(he)의 이야기(story)를 만드는 작업이 역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류시현은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법, 역사를 보는 관점과 태도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결국 역사는 기록된 자료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즐거움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물론 사건의 인과관계를 살피고 시간 순서와 주고 받은 영향을 살펴 재해석하는 일이 독자 개인에게 버거울 수 있으나 주체적인 인식의 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모든 지식은 ‘동료 압박’이라는 착각과 검색 정보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대개 대중적 역사서로 출판되는 책들은 재미와 가독성, 이면의 진실, 엇갈린 해석에 관한 것들이라면 류시현은 역사란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과거의 기록으로서 텍스트가 아니라 오늘, 여기를 사는 우리의 문제를 살피라고 요구한다.

흔히, 역사를 ‘오래된 미래’라고 한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살아숨쉬며 오늘을 만들고 미래를 꿈꿔야 한다고 요구하는 듯하다. 기원과 시간성, 시대적 맥락과 시기 구분, 사료의 선택, 우연과 필연, 해석과 관점, 인물의 평가, 역사교육과 상상력 등 각 장은 에세이 형식으로 저자의 소회와 경험이 녹아 있어 감성 독자든, 인문 독자든 모두에게 감동과 통찰을 줄 수 있다. 독특한 형식과 서술이라서가 아니라 저자의 ‘진심’은 좋은 책을 만드는 기본 요소다. 강만길의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님 웨일즈의 『아리랑』, 이사벨라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등을 읽으며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에 만났던 이야기들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 사이의 공감 때문도 아니다. 자기 삶에 열정을 다한 이의 겸손과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계속 여러 책을 읽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가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역사가의 역할과 임무가 무엇인지에 관해 여전히 고민하게 된다.” 이제 환갑이 된 역사가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겸손한 태도와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이 없는 책을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은 없고 책은 많다. “역사학자가 되었지만, 인문학자가 되고 싶었다.”라며, “문제에 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책을 준비했는데, 갈증이 심해져간다.”라는 고백이 가장 마음에 드는 개인적인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해와 공감은 관점과 태도에 기인한다.

생각을 유연하게 하고 싶다. 생각이 유연한 것은 균형 감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삶, 나의 판단, 나의 결정 등을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맺음말,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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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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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남부의 고대 유적 도시 페르세폴리스는 지명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리엔탈리즘만큼 위험한 옥시덴탈리즘이 서양 혹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듯 한 몸처럼 움직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면 중동 혹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구별 없는 편견은 또 우리 안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이란 여자 마르얀 사트라피의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는 크게 두 개의 층위를 드러낸다. 중동을 부분과 전체로 구별해야 하는 관점, 중동 안에서 또 다른 개체인 여성 차별의 관점. 이란의 ‘강남좌파’라 할 수 있는 테헤란 북부 좌파 마르지(작가)는 혁명과 전쟁 혹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피해 유럽으로 도피(유학)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여성이다. ‘3루’에서 태어났으나 히잡을 쓰고 홈베이스를 향해 슬라이딩을 해야 하는 불리함을 극복하는 정도라고 하면 지나칠까.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통해 70여 년간 이어진 분쟁의 실상을 실감나게 표현했던 작가들과 달리 마르지는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보여준다. 흑백의 담담한 그림체는 선과 악,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유럽과 중동, 근본주의와 민주주의 등 양립할 수 없는 이란 사회의 갈등과 충돌을 이분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1969년생 외동딸이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의 동시대인이지만, 어떤 인생은 그 자체가 그대로 한 편의 소설이며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미국의 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생중계로 시청한 세대에게 각인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처럼, 한 이란 여성의 일상과 경험으로 중동의 문화와 전통, 종교와 차별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훌륭한 한 편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은 내밀한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지는 “일단 한계를 넘어서면,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웃어넘기는 것이다.”(275쪽)라는 말로 개인의 무력감을 표현한다. 목숨을 건 일상적 혁명과 종교적 도그마에 매몰된 근본주의자들의 만행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까. 이념과 종교로 포장된 권력과 정치세력은 놀랍게도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명분으로 챙긴 실리 때문일지 모르겠으나, 더디게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도 어느 순간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목도했다.

마르지는 단순히 현상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4년 동안 경험한 서구문화는 이란의 전통문화와 충돌을 일으키며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다. 일반적인 사춘기 소녀와 다른 시간을 통과한 마르지의 경험이 단순히 부모의 사랑과 올곧은 태도로 극복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단 한 번의 인생을 산다. 타인의 그것을 대리 경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공평하다.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목적과 방향을 가늠하지만 태도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 페르세폴리스를 통해 이슬람 문화와 전통을 조금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마르지의 선택과 고민이 어디를 향하는지 눈여겨볼 수도 있다. 물리적 공간만 다를 뿐, 어쩌면 전쟁 같은 일상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혁명은 자전과 같아서 바퀴가 멈추면 끝장이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넘어지면 깊은 상처를 감당해야 하며 남은 길은 어떻게든 스스로 페달을 밟아 나가야 한다.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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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사
알베르 소불 지음, 최갑수 옮김 / 교양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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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지는가?”(롤랑 부인) - 87쪽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얼마나 많은 말이 허망해지는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약속이 부질없어지는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앞에 ‘자유’를 붙여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얼치기가 날뛰고 준엄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위정자들이 또 얼마나 개인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불철주야 헛된 말들과 약속을 남발하고 있는가.

독학자의 서재를 채우는 귀한 가르침을 만날 때마다 옷깃을 여민다.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혁명사』는 대중의 인기와 시류에 영합했던 작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대조되는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시작하며 필연적으로 만난 책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처럼 어떤 책과의 인연도 시절과 맥락이 존재한다. 선택이 오롯이 개인의 자유의지가 아니듯 숱한 책을 만나고 읽고 잊는 일도 경험과 나이와 시기에 따라 자연스레 물 흐르듯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알베르 소불은 프랑스 혁명을 계급 충돌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습격 사건으로 상징되는 혁명을 제3신분 부르주아가 헤게모니를 거머쥔 사건으로 규정한다. 대다수 농미노가 장인은 신흥자본가와 이해관계가 다르다. 성직자, 귀족을 위한 앙시앙 레짐의 혁파에는 공감하지만 국가의 질서와 체제에 대해서는 관점이 같을 수 없다. 1792년 8월 10일 혁명이 민주주의 혁명에 가깝다면 그 이후에 벌어진 공포정치와 밀물처럼 밀려왔던 반동과 또 다른 혁명과 좌절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과 프랑스의 역사를 다시 보게 한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 2권 ‘워털루 전쟁’에서 장엄하게 묘사했듯 “만약에 1815년 6월 17일과 18일 사이의 밤에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유럽의 미래는 달라졌으리라.” 유럽의 헤게모니를 넘겨준 프랑스는 1830년, 1848년 그리고 1968년에도 계속해서 ‘혁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마치 혁명의 활화산처럼 폭발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며 유럽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792년 이후, 유럽의 모든 혁명들은 프랑스혁명에 불과하다. 자유는 프랑스로부터 사방으로 비쳐 간다. 그것이야말로 태양의 행위 같은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자는 소경이다! 그렇게 말한 것은 보나파르트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우리에게 각인된 1789년 이전과 이후의 전후 맥락을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영국과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역학관계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동한다. 합스부르크가의 이야기가 여전히 숱한 영화, 드라마로 재생산되며 흥미를 유발하는 건 단순히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숱한 우연과 필연이 빚어내는 결정적 순간에 대한 아쉬움 혹은 환희가 아닐까.

알베르 소불의 이야기에 파묻혀 3박 4일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혐오, 분노, 좌절, 환희, 안타까움, 희망, 비참, 안도, 허망......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숱한 감정의 회오리를 경험했다. 여전히 논쟁 중인 혁명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관점’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최갑수가 역자 후기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듯 소불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역사들의 몫이다. 지구 반대편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프랑스 혁명사를 들여다보며 느낀 감회는 남다르다. 문학, 역사, 철학, 사회,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그 빛과 그림자가 여전한 프랑스 혁명의 세세한 기록을 살피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1789년 조선은 영조 13년으로 수원 팔달산 화산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현륭원을 조성한다. 11살에 뒤주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목격한 아들의 슬픔이 수원화성으로 빚어질 무렵이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보나파르트의 워털루 패배가 밤새 내린 비와 숱한 우연의 겹침인 것처럼 역사는 때때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정법’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직자와 귀족의 비율, 그들이 점유한 토지...왕의 절대 권력과 신의 이름을 팔아 교회와 수도원, 성직자들이 누린 특권, 세습 귀족이 가진 부와 명예를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라는 생각은 결과론적 판단이 아니다. 오로지 생존의 극단에서 벌어진 반란과 혁명의 불씨가 횃불로 번진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것이 당대 프랑스와 유럽 그리고 현재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들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반영한 정치인들의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 용인되고 친 재벌 정책과 사학재단의 비리에 관대한 시민들의 시선과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경제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간극이 메워지지 않는 건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부족한 현실 인식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그냥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프랑스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날 수 없다.

구체제에 위기가 부르주아 혁명과 민중 운동을 초래하고 혁명정부가 들어섰으나 결국 유산자가 지배하는 부르주아 공화국으로 귀결됐다. 알베르 소불은 결론을 덧붙여 혁명과 현대 프랑스를 조망한다. 국민적 통합과 권리의 평등 그리고 혁명의 유산을 살피는 과정은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대사회는 거대한 인류 공동체로 기능하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으나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미래를 돌아보는 데도 『프랑스 혁명사』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다.

혁명, 그것은 ‘위로부터’ 강제될 수 없다. ‘개혁’이 ‘위로부터’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혁명은 필연적으로 ‘아래로부터’ 강제되는 것이다. 개혁은 사회의 기본 구조를 흔들지 않으며, 오히려 지배적인 사회 범주들의 지속적인 이익을 위해 기존의 구조를 보듬는다. - 혁명이란 무엇인가(‹사상› 제217~218호, 1981년 1월~2월, ‘국가’와 ‘사회’ 특집호), 7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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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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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는 왜 필요할까.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충격적인 전쟁에 대한 경험도 개인에 따라 다르고 그 의미는 더더욱 같지 않다. 국가와 민족마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는데 이의가 없다. 권력 쟁탈에 실패한 자, 패전국의 이야기는 묻히기 마련이다. 개인도 국가도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선택적 기억뿐 아니라 오해와 소문이 겹치면 사실fact는 사라지고 진실truth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김시덕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서술 방식과 내용 전달 방법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책이다. 연구자의 결과물은 논문의 형태로 일반에게 읽힐 목적의 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연구소, ○○대학교에 적을 둔 사람들의 책은 대체로 노잼이라는 편견이 생겼다. 아카데미즘의 울타리를 넘어 저널리즘의 세계로 진입하려면 하얀 가운을 벗고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챙겨야 하는 게 아닐까. 학벌과 현직을 믿고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 읽기 시작하면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대개 그러하다. 내용이 허접하고 별 볼일 없다는 평가가 아니다. 읽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항변이라면 할 말 없다. 너의 선구안을 반성하라면 그도 할 말 없다. 그래서 연구 결과물, 학문적 성과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자는 언제나 출판시장에서 환영받는 저자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벌어졌다. 16세기 중반부터 오백년간 벌어진 동아시아의 생존경쟁과 권력다툼은 국가가 전쟁 혹은 민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이 책은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과 중국, 러시아, 타이완 등 유라시아의 전쟁사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인명과 지명이 수업이 등장하고 일본의 국내 사정을 사정이 인용된 자료를 통해 상세히 제시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지극히 개인적인으로 놀랄 일은 나의 무지無知. 익숙하지만 가본 적 없는 오키나와, 이오지마 섬의 위치를 구글 지도에서 확인하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역사는 시간공간의 좌표축 위에서 3D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2D는커녕 겨우 시간의 흐름만 줄줄 꿰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르 강과 사할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러시아의 충돌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벌어졌는지 다시 확인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정 위치가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공간적 위치와 거리가 새삼스러웠다. 확대, 축소가 자유자재로 가능하고 해양과 대륙의 높낮이까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던 구글 지도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계지리부도지구본이 전부였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점점 높아지는데 디지털로 확보된 자료를 읽어내는 눈과 파편화된 정보 사이를 가늠할 수 있는 안목은 점점 낮아지는 건 아닌지.

 

한국이 일본을 대하는 태도, 북한과 중국, 미국과 일본의 역학관계가 초미의 관심사다. 저자가 가진 관점이 옳다고 볼 수는 없으나 역사적 안목이 필요한 부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힘의 논리, 각국의 역학 관계는 이제 한두 가지 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시대다. 위아래로, 안팎으로 깊고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갈 길은 멀고 날은 금세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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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각국의 교류 양상을 이해하고 얽힌 역사적 관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정수일의 한국 속의 세계 (), ()가 좋다.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도 여러 사람의 지혜를 빌릴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최근에 나올 신간 동아시아 지식인의 대화, 김소영 편,현실문화연구, 2018.03.30동아시아 고전의 이해, 문현주 외, 경상대학교출판부, 2018.02.28.이 기대된다. 어렵지 않게 서술된 다음 책들도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 한겨레출판, 2005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박노자, 한겨레출판, 2007

동아시아의 역사 1~3, 동북아역사재단, 2011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 신윤환 외, 이매진, 2011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 아사히신문취재반, 창비, 2008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박태균 외, 창비, 2011

우리 안의 타자 동아시아, 김만수 외, 인하대학교한국학연구소, 2011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 워렌 코헨, 일조각,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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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 2018-06-20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 좋은 정보 매번 잘 읽고 갑니다~!

sceptic 2018-06-23 00: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내가 쓰는 한국 근현대사
한상철.이영복 지음 / 우리교육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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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개정교육과정의 뚜렷한 변화 중 하나는 <근현대사> 과목의 폐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것에 우리는 동의할 수 있을까. 수능 체제 개편과 함께 사라진 <근현대사>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과목이었을까.  

 

몇 권의 한국 근현대사를 다시 읽다가 마음이 너무 무겁고 우울해졌다. 우리에게도 분명 행복하고 찬란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근현대사는 어찌도 이렇게 잔인한 슬픔으로 가득하단 말인가. 19세기와 20세기의 200여 년간 우리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정적 시기를 왜 지혜롭게 극복하지 못했을까.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의 근현대사는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순간들로 가득하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길은 없고 한 사람 두 사람 걷다보니 길이 생겼다고 말한다. 인간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삶을 영위하는 과정이 역사라고 한다면 백지 같은 시간과 공간에 그려진 역사는 우리들이 걸어온 길이며 또한 걸어갈 길의 목적과 방향을 예고해 준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국제 정세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시점부터 일제 식민지는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불행한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열지 못한 안타까움은 지금 현재 우리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489빈민족행위처벌법을 만들었으나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특별경찰대원들을 체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내가 지시한 것이라고 옹호했고 반민법의 공소 시효를 1949831일로 줄인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성과 나치 부역 언론을 청산한 프랑스의 사례와 비교하면 통탄할 노릇이다. 사회적 갈등과 현재의 불행은 과거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역사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와 민족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나를 확인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고 말한 스웨덴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말은 근현대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현재 내 삶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된 일부터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근현대사를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식적인 기록, 민족주의적 관점, 자존심을 내세우는 역사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기록을 확인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비판적인 판단 능력을 길러나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역사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한상철, 이영복의 내가 쓴 한국 근현대사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 사실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정치사가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제사와 사회사 그리고 문화사도 빼놓지 않고 있으며 1800년부터 20006. 15 남북 공동선언까지 폭넓고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도 관점에 따라 180˚ 다르게 평가된다. 역사는 관점과 기준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테러리즘에 반대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은 의사(義士)’라고 한다. 일본인들에게는 암살범에 불과하지만 누구의 관점으로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달라지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인권, 평등, 노동, 환경, 평화 등의 가치를 담아내려고 노력한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최소한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확인하고 넘어가야할 역사의 한 장면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역사책이다

 

서중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해방 이후 1945년부터 2000년 남북 정상회담까지 현대사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영향 아래 놓인 한반도의 운명은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이후 첨예한 이념 대립과 갈등으로 분열되었다. 그 고통과 상처로 인한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은 우리 민족의 비극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참혹한 양민학살, 정치인들의 욕심, 군사 독재는 우리 역사의 아픔이고 그늘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진실은 학교에서 배운 역사, 널리 알려진 역사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근현대사는 우리에게 조금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그 원인을 고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를 척결하는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현실에서 근대/전근대의 이분법적 도식은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한홍구의 대한민국1~4는 살아있는 현대사의 이면을 정확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주는 책이다. 역사는 대체로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편견을 깰 만큼 도발적인 글쓰기로 읽는 사람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혼란스런 해방 정국에서부터 친일파 청산, 고문치사, 좌우대립, 맥아더, 주한민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신영복, 유시민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들의 현실을 포함한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매우 현실적이다.  

 

살아 숨 쉬는 역사는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다. 다양한 사회 문제와 내 삶의 조건이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근현대사는 지금 우리들의 현실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편견과 이념을 넘어 객관적 정보와 사실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차후의 문제이다. 선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역사책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비판적 관점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여기의 역사를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들 삶의 과정이며 그 과정이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120507-04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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