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뇌 - 더 좋은 삶을 위한 심리 뇌과학
아나이스 루 지음, 뤼시 알브레히트 그림, 이세진 옮김 / 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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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전체 2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무게 1.4 킬로그램의 뇌는 신체가 만들어내느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나 소비한다. 효율과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860억 개의 뉴런이 상상을 초월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소통하며 이성과 감정을 통제하며 선택과 갈등을 해결한다. 사피엔스의 뇌는 기계적, 단계적 발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진화와 적응의 결과다. 왜 이런가,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뇌의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으며 보다 효과적인 활용 방법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다만, 뇌의 작동 방식과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를 안다는 것은 ‘나’를 이해한다는 의미이며, ‘너’의 말과 행동을 짐작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브랜드와 차종이 같은 자동차도 운전자의 능력에 따라 속도와 활용에 차이가 많다. 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마다 유전, 환경적 요소가 다르니 같은 뇌는 없다. 비슷하다고 해도 이해, 공감, 학습, 창의성, 상상력 등 뇌를 활용도는 개인차가 매우 크다. 신경과학을 연구한 임상심리학자 아나이스 루는 ‘쉬고 재미있게’ 뇌를 설명한다. 신경과학, 심리학,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더 좋은 삶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뇌’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연구자가 아니라면 전문 서적을 통해 뇌의 구조를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뇌는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뇌가 착각과 오류를 일으키는 지점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쉽고 재밌는 책의 한계가 늘 그러하듯이, 심리학과 뇌과학에 관한 책을 몇 권 살펴본 독자라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 이해를 돕는 만화, 삽화를 통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 실제 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이 책의 장점이다. 다양한 미디어가 검색 기능을 대체하고 정보 활용 방법이 이전과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텍스트는 분명한 장점을 갖고 있으나 접근 방식과 전달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이런 형식의 책은 미디어와 텍스트를 사이를 이으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가볍지만 깊이를 담보해야 하는 고민을 담은 듯하다.

예를 들어, ‘공감’이 능력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남성과 여성으로 양분할 순 없으나 대체로 여성들은 정서적 공감, 즉 느낌이 발달해 있으며 이는 상향처리bottom-up 방식에 해당한다. 남성들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지적으로 공감하기 쉬우며 이는 하향처리top-down이라는 설명이 그렇다. 현상을 비교하고 분석하며 체계화하는 일은 다양한 사례를 중심으로 예외까지 점검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고로운 일이다. 그것이 공인된 이론으로 발전하든 논쟁의 중심에 서든 검증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의견이 보태지고 억지 주장과 주관은 배제된다. 불행하게도 우리 뇌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개인은 그럴만한 여유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뇌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아닐까.

낯선 길을 찾아가고, 외국어를 배우고, 셀럽이 등장하는 광고에 흔들리고, 서로 다른 추억에 절망하고, 낭만적 사랑을 꿈꾸고, 불현듯 데자뷰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가만히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자. 모든 뇌가 다르듯, 나의 뇌에서 벌어지는 일, 나의 뇌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조금은 다른 태도로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3주간 3번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뜨거운 여름 날씨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뺨 위에는 이제 흔적만 남았을까. 탄생과 소멸만큼 분명하고 확실한 진실이 없어보인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사이에도 때때로 바람이 분다. 뇌가 젊어지는 운동법을 모르고, ‘농담의 쓸모’를 알지 못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당신의 ‘뇌’는 제 기능을 잃고 삶의 주인으로 기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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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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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亡者에 대한 슬픔은 나이에 반비례한다. 어디 눈물 없는 장례식이 있을까마는 숱한 죽음들, 무덤과 화장터 사이를 떠도는 회한悔恨은 인간의 숙명이니 극복이 아니라 수용과 성찰이 필요하다. 한 시대가, 아니 한 계절은 잠시 머물다 떠난다. 하지만 우리 삶은 매 순간 어느 시대 혹은 어느 계절의 복판에 서 있다. 지금이 절정이다. 지나간 모든 것이 아름답지 않듯, 남은 시간이 두렵지만은 않기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정치’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인류 문명은 정치 발달의 문화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주정에서 민주정으로 ‘발전’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자의 욕망과 기대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 행위의 반복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우주에 발자국을 남기고, 인공지능 시대를 산다고 해도 인간은 어쩌면 ‘털없는 원숭이’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한 건 아닐까. 진화를 거듭한 현생 인류의 모습이 침팬지의 군집생활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놀랍지 않다.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을 만큼, 사회뉴스 정치인들의 정치 행태, 끔찍한 사회뉴스가 매일매일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햄릿은 ‘to be or not to be’를 고민했으나 오늘의 한국인들은 이쪽이냐 저쪽이냐로 정의와 공정과 상식과 현재와 미래까지 판단하며 선택한다. 망국적 극단적 전체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될 만큼 필터 버블이 작동하는 알고리즘에 반성은 없는 듯하다. 혹시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조차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나 저자의 의도, 책 내용과 무관하지 부디 댓글만 남기지 않기를.

물론, 그 정치 행위의 근간에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성욕과 식욕, 즉 생존과 관련된 침팬지의 모든 정치 행위는 선악의 저편에 놓여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일 뿐이다. 그것을 인간의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관찰자들은 다양하다. 제인 구달로 상징되는 1세대 동물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없었다면 출발이 조금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영장류를 통해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모르고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단순하다. 침팬지의 사회구조가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인간사회와 매우 흡사하다는 결론을 향한 거대한 관찰의 기록물이다. 그것이 놀라운가, 아니면 반가운가. 그래서 어쩌자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떻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 인간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만 또다시 남는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 침팬지와 인간의 유사성과 차별성에 논문은 과학자들의 몫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에룬의 보안관 행동이나 마마가 가진 모성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100층이 넘는 빌딩 꼭대기에 앉아 있어도 한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욕망은 라윗과 니키 혹은 마마, 이미, 테펄의 그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뭐가 다르겠는가. 누구든 식욕과 성욕이 전부일 수 있으며, 누구든 더 큰 야망과 욕심의 허망함에 무너지지 않겠는가.

네덜란드 아른험에 위치한 뷔르허스 동물원Burgers Zoo(1971년 8월 개관)의 야외 사육장이 있다. 여기 사는 침팬지들의 이야기다. 집필시기는 1979~1980년(1982년 출간), 주요 침팬지는 수컷 에룬, 라윗, 니키, 단디, 암컷 마마, 호릴라, 프란예, 이미, 테펄, 파위스트 정도다. 이름으로 호명되는 각각의 침팬지의 행동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인간과의 유사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98%의 유전자가 인간과 동일한 침팬지의 행동이 인간과 비슷하리라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정치적 행위란 무엇인가, 그 기저에 깔린 본능과 욕망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다.

권력투쟁과 기회주의, 호혜성, 전략적 삼각관계, 화해, 연합, 평화 협정, 중재, 분할 지배 등 인간사회에서도 매일 벌어지는 일들이 침팬지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다. 크든 작든 모든 관계와 조직과 공동체와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침팬지 폴리틱스는 호모 사피엔스폴리틱스의 축소판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사회의 원형prototype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생존 혹은 정치(관계)를 일컫는다. 쉽고 재밌는 일이 더 많은 인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오늘도 안녕하지 않은 일들로 가득 채운 하루를 보내며 사람들은 또 어떤 내일을 꿈꿀까. 부디 시간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들에 매달리지 않기를. 자기 위로와 합리화를 위해 너무 애쓰지 않기를. 침팬지 폴리틱스도 협력, 호혜, 연합, 중재, 의존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더 많다. 이해관계에 매몰된 걸 모두 아는데, 정의와 공정, 상식과 합리, 자유와 평화로 포장한들 사람들이 더 이상 속지 않는다는 걸 정치인들만 모르는 걸까. 아니면 우리는 알면서도 매번 속는 걸까. 이도저도 아니면 대안이 없거나 상상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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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착각 -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그레고리 번스 지음, 홍우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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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안목과 신체적 능력을 표현한다. 보통 사람에게 발견할 수 없는 예민함과 날카로움 혹은 지적 상상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철학은 이제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 걸까. 주체성, 자유의지, 자아의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가 ‘과학’의 영역과 중첩된다. 인공지능이나 챗GPT에게 내줄 수 없는 고유한 인간의 영토가 점점 줄어든다면 최후의 순간까지 ‘나’를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는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하고 분석하며 자아라고 믿는 대상이 망상에 불과하다는 도발적인 발언은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탁월한 분석일까. ‘나’는 과거의 서사에 바탕을 둔 기억의 집합일 뿐이다. 그것도 수많은 사건 중에서 특정 부분을 편집하고 맥락을 이어 붙인 ‘나에 대한 편집된 이야기’. 그러면 끊임없이 현재를 살며 이야기를 만들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상황에 대처하고 일상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나’는 누구일까. 연속선상에서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추론은 가능하지만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같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순간도 시간 위에 머물지 않으며 변화, 발전, 성장하거나 후퇴하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동하는 자아에 대한 확신은 용감한 오해가 아닐까.

내가 너를 잘 안다는 착각보다 내가 나를 잘 안다는 믿음이 더 위험해 보인다.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나 모호한 기억 속에서 내가 그랬을 리 없다는 확신,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다른 존재라는 주장, 그보다 너는 너를 잘 몰라도 오래 너를 지켜본 내가 너를 잘 안다는 생각들이 모두 ‘망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라. 자아가 뇌의 발명품이라면 믿음과 확신은 사전적 의미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수만은 다중인격에 관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떠올랐다. 서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면 편집된 자아에 불과한 나는 누구일까. 진화는 개인주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의 선택이라는 착각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신’을 주장하는 리처드 도킨스보다 만들어진 ‘나’를 주장하는 그레고리 번스의 주장이 낯설다. 하지만 이 주장의 이면에는 ‘내가 원하는 나’와 ‘내가 믿는 나’ 사이의 간극에 대한 고민이 놓여 있다. 우리가 가진 몸은 분명한 실체가 있으나 그 안에 깃든 자아는 불안정하며 다양한 면을 갖는다. 자아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뇌가 만들어낸 허구라면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은 실체가 없다. 무수히 많은 자아가 내 안에 숨어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노래하던 가수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나’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 ‘나’는 착각과 망상에 불과하다면 진짜 나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지금, 이 순간에 나에 집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결과의 총량이 각자의 인생이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후회를 줄이고 변화를 지향하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저자가 안내하는 우리의 마음, 생각, 뇌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강박과 불안, 후회와 갈등에서 조금 자유롭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정답 없는 문제집을 푼 적이 없는 학창 시절을 거치고 세상에 나가면 단 하나의 정답도 찾을 수 없는 순간들,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선택지들이 만기가 도래한 어음처럼 우리를 기다린다. 내가 해봐서 안다는 충고도 도움이 되지 않고, 고전과 철학에게 물어도 답이 없으니 현대인의 혼란과 번뇌는 계속된다. 각자 정답을 외치는 세상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나 쉽고 빠른 비법을 파는 사람에게 속기도 쉽다. 자연과학이나 예술 분야의 책이 진정한 자기계발서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건 뇌가 착각한 ‘나’처럼 인생의 의미나 성공한 삶에 대한 망상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책은 책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로 고개를 돌리면 또 다시 책 속에서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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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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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를 떠올렸다. 인간의 몸은 자유의 본질이며 출발이다.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물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합의는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 또한 인간의 기본권이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할 권리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과 거리가 멀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매력적인 몸이 다르고 특정한 몸을 추앙하던 사람들도 변한다. 질병과 장애로 일그러진 표정과 뒤틀린 몸을 로트렉이나 에곤 실레처럼 색다른 관점으로 표현한 화가도 있으나 대개 몸에 대한 미의 기준과 사회적 관점은 본능에 가까운 직관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니 몸과 관련된 주제는 정치, 사회, 역사, 예술 분야에서 조금씩 다르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빌 브라이슨은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되고 흥미로우며 미지의 대상인 인간의 몸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피부에서 뇌와 머리 입과 목, 심장과 피, 면역계와 소화기관뿐 아니라 음식, 잠, 직립 보행과 심호흡에 이르기까지 몸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은 ‘우리 몸 안내서’라는 부제답게 외계인을 위한 인간 이해 매뉴얼 같은 느낌이다. 해부학 도판으로 충분한 설명을 굳이 텍스트로 설명할 이유는 없다. 『그림과 함께 읽는 바디』가 따로 출간된 사실을 토론 도중 알았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라디오 드라마 극장’을 듣는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빌 브라이슨의 목적이 인체 해부도 설명에 있지 않았으리라는 건 누구나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입증한 지식과 정보의 편집력, 유려한 문장과 매끄러운 설명력, 재치 있는 입담과 적절한 비유를 무기로 다양한 인문학적 양념이 뿌려진 책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 책 또한 의학 분야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잡학 다식한 읽을거리로 가득하다. 과장하거나 주관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몸을 바라보며 다양한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무나 쓸 수도 없다. 지식과 정보의 깊이와 넓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글쓰기 능력을 우리는 숱한 책에서 매일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 대란은 어느 쪽이 옳고 그름으로 판정할 수 없다. 응급 의료 체계부터 진료 과목 편중, 지방 의료 붕괴 등 이해관계로만 따질 수 없는 의료 문제는 교육보다 더욱 심각하게 공공성을 따져 거시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토론에서 다뤄진 ‘좋은 의학과 나쁜 의학’ 뿐만 아니라 ‘건강과 노화’, ‘뇌와 기억’ 등 우리는 몸을 통해 자기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의대 증원 문제가 숫자놀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성적순으로 의대에 진학하는 동안 무너진 기초 과학, 특정 직역의 상상을 초월한 이기주의, 의료 보험의 보장성과 실비보험 문제 등 이야기는 결국 현실과 닿고 우리 몸이 곧 삶이 되는 현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더 오래 살기 위해 불노초를 캐오라던 진시황제를 떠올렸을 테고 누군가는 덧없는 삶에 대한 환멸로 자살한 숱한 예술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과 다르다. 우리는 언제까지 직립보행하며 살 수 있을까.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아니 그렇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인 실존적인 몸과 건강 문제 앞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순 없다.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만큼 건강권도 소중하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오늘을 살 수 있는 ‘행복’이 허락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두 발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남은 시간에 경의를.

문 : 건강한 사람을 정의한다면?

답 :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 - 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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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기쁨 - 세상을 구할 과학자의 8가지 생각법
짐 알칼릴리 지음, 김성훈 옮김 / 윌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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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객관적 진실일까. 인간의 호기심은 때때로 비극을 낳는다. 그것이 자연과 사회로 향할 때는 탐구와 관찰로 이어지나 개인을 향할 때는 관음과 무례를 빚어 관계의 파탄을 만든다. 인문, 사회과학과 달리 자연과학자들은 전혀 다른 관점과 언어를 사용한다. 짐 알칼릴리는 과학의 기쁨은 결국 과학적 방법론을 터득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판단과 선택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 이해도scientific literacy가 짧지만 강렬한 이 책의 특징을 요약한다. 사회학과 심리학에서 언급되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 탈진실post-truth,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등의 개념은 인간의 습성과 타성적 사고 특성을 나타낸다. 적응과 생존을 향한 몸부림은 다양한 인지 부조화를 극복하도록 각자의 뇌를 재구조화한다.

어쩌면 진실truth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외치는 사람처럼 팩트fact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지 않을까. 우리는 개인이 속한 다양한 공동체의 도덕적 기준을 내면화 하지만 실제 그 경계는 모호하며 각자의 선택과 결과도 차이가 있다. 자연과학에서 주장하는 객관적 진리가 설 자리는 도덕적 진리의 대척점이 아니라 최소한 합의해야 하는 사회, 정치, 경제 등 교집합의 영역이다.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가치판단에 관한 논쟁은 종교와 이념 논쟁만큼 소모적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결정적 특성은 칼 포퍼의 주장대로 ‘반증 가능성’이다. 블랙 스완이 등장하는 순간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주장은 부정된다. 따라서 우리가 합의 혹은 동의할 수 있는 최솟값이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결과여야 한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진리가 사회적 과정을 통해 구성된constructed 것이다. 대개 사회적 대립, 정치적 갈등, 이념 논쟁은 이 구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통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반한 인간 사회는 지역과 국가와 민족에 따라 합의의 기준과 영역이 다르다. 허나 시대와 공간을 가로지는 공통 언어를 우리는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의견이 아닌 증거에 집중하라는 조언, 타인의 관점을 평가하기 전에 할 일 등 저자는 ‘생각 바꾸기’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독려한다. 기준틀이 의존적reference frame dependent보다 무서운 건 기준틀이 독립적 reference frame independent인 사람이다. 주체적인 사고, 판단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의 겸손을 모르는 우월감이 더 큰 비극을 낳는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는 이제 통계의 계절이 돌아왔다. 데이터에 기반한 확신과 주장이 넘치고 해석과 관점이 판을 친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정치와 생활의 틈에서 과학이라는 빛이 들 수 있을까.

우리가 나눈 각자의 경험 혹은 자기 성찰과 반성 그리고 세상을 향한 시선은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은 복잡하게 흔들리고 엉뚱하게 선택한 후에 황당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다. 아주 먼 바닷가에서 책 이야기를 나누기 올라 온 분의 열정 앞에 생각이 많아지는 건 가까운 거리에서 치열하게 사람들의 고민이 적어 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책과 현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섬이 있다. 그 섬에는 갈 수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그 거리를 인정하며 아주 조금 가까워질 수 있는 다음 모임의 기회를 엿볼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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