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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 개정판,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4 ㅣ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4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소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참 다양하다. 같은 소리에 대한 정서와 이성에 대한 느낌이 다른 것은 본능적인 면과 훈련에 의한 면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훈련이라는 것은 문화적 영향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소음에서부터 영혼을 울리는 음악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태어나 귀를 통해 듣는 수많은 소리들을 생각하면 즐거움과 고통의 이중주를 들려준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우리의 오감중에 유일하게 취사선택이 가능한 감각이 시각이다. 나머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소리는 더더욱 그러하다.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다. 악기의 연주와 노래로 크게 나누어지는 음악은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어떤 악기가 가장 훌륭한 소리를 내는 악기인지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것을 객관화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설령 음악이 아니더라도 잠자는 아기의 숨소리, 사랑하는 연인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 눈을 가만 감고 듣는 바람소리, 산사의 밤에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 등 주관적으로 판단되는 최상의 소리는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그 모든 소리가 음악이 아닐까?
세계적인 지휘자의 반열에 오른 금난새가 청소년들을 위한 서양음악 가이드 북을 낸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 책에 ‘서양 음악사의 라이벌’이라는 부제를 부치고 싶다. 바흐와 헨델에서 시작해서 모차르트와 하이든, 베토벤과 로시니, 슈베르트와 멘델스존, 쇼팽과 리스트, 브람스와 바그너, 차이코프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 드뷔시와 라벨에 이르기까지 서양 음악사에서 빛나는 거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소개하는 방식이 단순한 이론과 지식에 머물지 않고 동 시대인 두 사람씩을 시대별로 묶어 비교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색깔과 개성이 뚜렷한 음악가들의 차이점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음악에 반영된 정신을 읽을 수 있는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음악가들의 초상화와 관련 그림들을 풍부하게 삽입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히려는 배려가 눈에 띤다. 청소년을 예상 독자로 설정했기 때문에 전체를 조망하는 책으로는 부족하지만 클래식에 한 발 다가서고 듣고 싶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고전주의 음악을 선도했던 서양의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음악교육은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창 시절 미국의 민를 배웠고, 서양 음악가와 작품들을 암기해서 음악시험을 본 기억이 있다. 판소리나 꽹과리, 징, 북소리의 깊은 울림에 관한 설명과 감상의 기회는 전무했다. 대학의 사물놀이패와 민속음악에 대한 관심은 자발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학교교육에서 조차 차별받는 동양, 특히 한국의 음악은 설 자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동양의 고전 음악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얼마 전 중국의 전통 음악을 현대화해서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여자12악방’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팝과 클래식을 넘나들며 퓨전음악을 들려주는 여성 연주단이었다. 물론 상품화의 논란을 비껴갈 수는 없다. 미모의 여성들을 내세워 중국 전통 악기인 비파와 구젱이 주류를 이루는 연주팀으로 영화음악과 팝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주저하지 않고 CD를 사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었다. 공연장에서의 감동과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뉴에이지라는 장르가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사실을 감안한다면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돌아오는 길에 못내 아쉬웠던 것은 김영동이나 김수철 등 국악의 현대화를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했던 사람들의 음악적 실험들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사장되어 버린 것 같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제외하면, 우리 전통 음악의 현대화는 멀게만 느껴진다. 단순히 현대음악과의 결합만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처럼 여겨진다.
그에 비해 서양의 클래식은 폭넓은 교육과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장르와 기원을 가리지 않고 좋은 음악이 주는 감동과 삶의 기쁨들을 즐기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겠지만 클래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지식이 밑바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알지 못하면 잘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은 옳지 않지만 그저 듣고, 본다고 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쉽고 흥미있는 내용을 위주로 음악가들의 생애와 음악적 특징을 사회문화적 배경과 함께 설명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내공의 결과다. 가장 대표적인 음악가들과 친숙해지는 일은 클래식의 세계로 입문하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진다. 전국을 뒤흔든 함성소리도 아름답지만 창밖에 소리없이 내리는 빗소리처럼 부드러운 클래식의 바다에 풍덩!
060614-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