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의 세계 살림지식총서 35
이윤성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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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무의미하다.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보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간이 지녀야 하는 기본적 한계 상황인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싶은 것은 단순한 인간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죽음에 대해 제각기 다른 방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죽음이 원인이 되어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원인을 밝혀내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것이 비록 죽은 자에게는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일반적인 자연사의 경우 원인은 호기심 차원이거나 질병과 죽음의 관계에서 다루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자살이든 타살이든 사고사일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가령 물에 빠져 죽었을 경우 자살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빠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단순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 내는 차원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밝혀내는 일이 ‘법의학’의 임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감상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상황과 원인의 복합적 결합이 이루어져야 정확한 죽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같다.

법의학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법률의 시행과 적용에 관련된 의학적 또는 과학적 사항을 연구하고 이를 적용하거나 감정하는 의학의 한 분야’이고, 궁극적으로는 ‘인권을 옹호하고 공중의 건강과 안전을 증진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의학’이다. 법의학의 궁극적 의미가 와 닿는다.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구현이 목적이 되는 법의학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특히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범인을 찾아내어 반드시 처벌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단순하게 과학적 수사기법과 결합된 의학의 역할이 아니라 인권 존중을 위한 중요한 학문 영역으로 자리잡아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반인의 경우 ‘법의학’의 혜택을 받지 않고 살아야 가장 바람직하다. 행복하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많은 사고와 불행에 마주친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초래한 원인을 밝혀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자신의 억울함과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법의학은 범인을 찾기위한 법의학의 역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현대사회에서 법의학은 범죄와 관련된 죽음과 교통사고에 의한 죽음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죽지 못한 이 불행한 죽음에 대한 태도는 타살과 뺑소니의 경우 가장 심각하다. 용의자를 찾을 수 없을 때 단서를 제공하는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죽음이 이야기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는 것이 법의학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흔적들이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법의학은 그 죽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검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정서는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법의학의 가장 기초 단계인 부검에 동의하지 않는 보호자들 때문에 많은 오해와 중요한 단서들을 놓칠 때가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명백한 증거와 원인이 있을 경우는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어떤 범죄 사건의 경우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특히 훼손된 시신의 경우 신원을 확인하는 일도 법의학의 영역이다.

단순하게 말해질 수 있는 죽음은 없다. 다만 그 수많은 죽음들 속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히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이다. 법의학의 목적이 여기에 있겠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여의봉이 아니라 법의학이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을 해본다. 과학 수사와 법의학이 발달해서 미제 사건이 없는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냉정한 현실 인식을 위해 보다 발달된 기술과 정확한 의학과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어주는 법의학은 우리들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미래 사회가 어떠하든 최소한의 법과 정의만이 적용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 보는 것은 나만의 낭만적 사회를 꿈꾸는 헛된 희망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060904-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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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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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돈은 동의어가 아니다. 잘못된 인식이 만연되어 있기는 하지만 돈은 여러 가지 부의 증거 혹은 상징적인 표현 중 하나에 불과하다. 때때로 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살 수 있다. - P. 37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는 이러한 욕망에 답하는 책이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다. 수많은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이론들로도 현실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어 보인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을 냉정하며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전제 조건이 있다. 냉정한 현실에 대한 분석과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이 그것이다. 이제 한 국가의 경제나 문화나 사회는 독립적이지 않다. 전지구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기본이다. 세계화에 대한 수많은 논쟁들을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통해 다시 한번 정리하고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알려진대로 70년에 <미래쇼크>, 80년에 <제3의 물결>, 90년에 <권력 이동>을 펴내면서 ‘미래 학자’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앨빈 토플러는 그의 아내 하이디와 함께 지구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수많은 자료들을 조사한다. 그렇게 발로 쓴 결과물들이 10년에 한 번 꼴로 책으로 묶여 나온다. 그의 책들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90년대 초반 군대에서 <권력 이동>을 읽고 나서 직종이 변경된 경험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감회가 새로웠다.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되기도 전이었던 무렵 전공과 무관한 SI업체에 취업했었다. 지금은 전혀 엉뚱한 일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누구든 한 번쯤 겪게 되는 인생의 결정적인 책 중의 하나가 내게는 앨빈 토플러의 책이었다.

이전의 그의 책들에서 보여줬던 논의는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과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 그리고 마지막 제3의 물결인 지식혁명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권력 이동>에서 권력은 물리적인 힘(power)에서 돈(money)을 거쳐 지식(knowledge)으로 이동한다는 주장이었다. 연장선에서 <부의 미래>는 혁명적인 부의 창출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가지 심층 기반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과 지식이다. 너무 당연하거나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었던 요소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명확하다. 지금까지 소홀히 다루었던 부분들에 대한 저자의 현상과 분석들은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 통찰들은 독자들의 감각과 현실에 대한 적응력으로 찾아내야 할 부분이다.

토플러는 쉽게 독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해답과 정답을 안내하지 않는다.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리라. 그의 말대로 수많은 이론과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미래의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한 적이 없다. 예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어디로 갈 것인가? “미래는 도착지를 신경쓰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알 수 없는 미래지만 도착지를 신경쓰는 사람들은 부의 혁명적 변화를 가늠해 보고 싶어 한다. 시간의 비동시화 문제 공간적 범위의 확대 그리고 지식과 프로슈밍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들은 귀기울여 들어 볼만한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앞서 말한대로 그것은 저자의 노력과 수고가 이루어낸 결과다. 자신의 독특한 이론과 견해를 피력하는 획기적인 논문도 아니고 경제학적 관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도 다르다. 학문적으로 보면 심리학에서 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문,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광범위한 분석과 통합은 앨빈 토플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낙관적 전망과 자세를 강조한다. 전 세계의 부의 형평성 문제나 에너지 문제,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 등 산적한 현안들을 생각하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그것이 각국의 이타적 배려를 통해 해결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부의 혁명적 변화를 통한 새로운 세상을 꿈꿔야 한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빈곤의 문제는 해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미래에 다가올 지각변동을 위해 우리 모두가 시간과 공간과 지식을 잘 활용하자는 교훈을 읽어내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심층 기반을 통한 부의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 낼 대안과 현실적인 방법들을 마련하는 데 논의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한 권의 책은 미래를 위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생각의 방향을 설정하고 문제를 점거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노력들이 중요하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仄맛?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바꿔 나갈 수는 있다. 인간의 미래는 인간에 의해서만 달라질 것이다. 앨빈 토플러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미래의 경제와 사회가 형태를 갖추어 감에 따라 개인과 기업, 조직, 정부 등 우리 모두는 미래 속으로 뛰어드는 가장 격렬하고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사항을 고려했을 때, 이것도 한 번 살아볼 가치가 있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미지의 21세기에 들어온 것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한다! - P. 570


06090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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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과 철학 강의 2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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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도 우리가 쉽게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실용적인 학문이어야 한다.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생각해 보는 관념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질문들에 대해 안내자와 길잡이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은 개인의 몫으로 돌리더라도 생각하는 방식과 세상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어렵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도 않은 철학은 불가능한가?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2>는 1권 논술편에 이어 ‘철학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발에는 오른발과 왼발이 있지만 신발에는 없다. 왜 오른쪽과 왼쪽 신을 구분해서 신어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올의 어린 시절은 암담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들에 대한 관찰과 생각으로부터 철학은 시작된다. 철학은 보편을 지향하지만 절대를 말하지는 않는다. 상식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된 철학의 길은 정치와 종교에 대한 당연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철학으로 가는 길은 쉽고 간단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복잡해서 현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철학은 서양언어에서 비롯된 ‘지혜의 사랑’도 아니고 일본식 한자어인 ‘밝은 배움’도 아니다. 철학은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철학을 정의하는 사람의 관심의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지식도 아닌 철학을 우리는 왜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들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중고생을 위한 논술과 철학을 위한 강의록이라는 명분으로 쓰여졌지만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 ‘돌대가리’라고 선언하는 도올의 철학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만하다. 근엄한 제목과 들어본적도 없는 용어들 사이에서 좌절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철학의 길을 제시해 준다. 우리의 삶이 텍스트이고 세상이 콘텍스트일 때 철학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든 가능성을 전제로 한 무전제의 전제가 철학이라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우상과 편견들을 깨뜨리는 일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내 마음의 우상을 깨뜨리고 개방적인 시선과 비판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철학은 시작된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연하고도 다양한 전제 중의 하나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한 화이트 헤드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실과 이상을 분리해서 인식할 때 철학은 우주 밖으로 멀어진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데아’에 대한 탐구와 믿음은 현실과 유리된 철학을 낳았다. 동양의 장자가 이야기한 우물한 개구리는 소견이 좁을 뿐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큰 흐름속에 작은 흐름을 포함시켜 관견管見을 이야기할 뿐이다.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개구리도 결국 현실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올의 관점과 방식이 정답일 순 없다. 그가 이미 밝히고 있듯이 철학에는 절대가 없으므로.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의 차이를 통해 동양 철학의 우월성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책은 아니다. ‘철학은 문화사’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적 토양과 삶의 방식에 뿌리를 둔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가 없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언어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낳고 결국 철학적 사유를 결정 짓는다. 우리가 발붙히고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필요한 철학은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 해야 한다. 철학은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는 도올의 말이 철학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식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도올이 보여준 삶의 이력들과 그가 말해온 많은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읽는다면 도올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편견없이 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일은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도올을 지우고 그의 주장만을 놓고 보더라도 크게 실망할 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을 ‘대학 입시를 위한 논술과 철학강의’로 읽는다면 조금 거리가 멀다. 실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뚜렷한 자신의 목소리와 나름의 독특한 해석으로 철학과 세상을 읽어내는 도올의 목소리는 내게 신선한 울림을 준다. 서양 철학자 하나를 붙잡고 목숨거는 철학 교수보다 그를 비교 우위에 두는 이유는 교수가 아니라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생각 때문이다. 도올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떠나 그의주장이 언제나 비판과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도 지나친 확신과 소신에서 비롯된 뚜렷한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독선이나 아집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방법들 중의 하나로 도올의 말에 귀기울여 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0609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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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유혹 살림지식총서 132
오수연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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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제목으로 안재찬이 번역했다. 류시화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전에 사용하던 본명이니 지금 안재찬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쨌든 24세의 나이에 군상 신인상과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지만 번역 즉시 판금 당했던 책이다. 마약과 섹스와 광란의 음악을 보여줬던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읽고 나서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이미지만을 상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을 통해 그 세계를 만나고 싶은 욕망보다 상상속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감각은 당연히 시각일 것이다. 처음부터 안보였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나중에 시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해보면 솔직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상상을 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걱정과 연민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흑백도 아니고 컬러다. 초등학교 아니면 중학교 때 처음 컬러 TV를 봤을 때의 그 환희를 기억한다. 사람의 눈은 몇 만 화소쯤 될까?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개라고 불행하란 법은 없지만 총천연색 칼라 화면의 경이로움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가 없는 황홀경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나뭇잎의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살아 숨쉬고 있는 모든 순간들이, 그 섬세한 감각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은 단순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상상력의 출발이고 근원이다. 생각의 시작이고 감각의 총착역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이다. 보라색 옷을 입은 여자의 하늘하늘한 치맛자락과 감색 수트를 입은 남자의 넓은 어깨 사이에는 문명화된 인간의 복장에 대한 격식 이전에 색이 말해주는 무엇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색에 대한 감각과 느낌은 당연하게도 학습과 사회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원형적 상징으로서 각각의 색은 우리들에게 다양한 대화를 시도한다. 때때로 대화가 아니라 강요와 습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색도 판다. 마케팅의 마술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색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텍스트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은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다. 그것이 적당한 색과 결합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맹목적으로 상품이나 제품들을 수용하게 된다. 코카콜라는 빨강을 위해 목숨을 건다. 비수기인 겨울에 콜라를 팔기위해 현재와 같은 전형적인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보급시켰다는 대목에서는 감탄보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우리는 전도력이 강한 ‘자본’이라는 종교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기업의 상품 판매와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BI나 CI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디자인과 이미지가 아니라 색이다. 반복적인 노출과 광고는 소비자에게 제품이나 기업을 각인시킨다. 판단할 필요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다. 광고와 이미지가 만들어 준대로 선택을 하고 비슷한 패턴을 반복한다. 단순히 색을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키거나 자본에 복무하는 그릇된 대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수연의 <색의 유혹>은 마케팅의 원리에 적용되는 색의 이미지와 느낌들을 설명하고 성공한 기업이나 제품을 위주로 예를 들어 내용을 확인 시켜 준다. ‘색채 심리와 컬러 마케팅’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내용이다. 색에 관련된 심리학적 접근이나 사회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무용한 책이다. 상식 수준의 이야기들을 대표적인 색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도식적이고 단편적인 내용들이 반복된다. 늘 생각하지만 한 권의 책에서 많은 것을, 혹은 완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가지 정도는 건지고 싶은 본전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 책은 짧고 싼 책이지만 본전 생각이 났다. 이 철저한 자본주의적 평가 방식이 오히려 인간적일 수 있다. 상품과 색의 이미지에 대한 상관성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과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좋은 흥밋거리가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수백 권의 살림지식 총서가 모두 고른 수준과 내용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일 수 있다. 촌철살인의 잘 벼린 칼날 같은 시리즈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화려한 제목 앞에서 맥을 못 추겠지만. 06092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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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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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
이희재 역 / 제레미 리프킨 저
민음사

세계의 석학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책을 보면 일단 부지런함에 감탄한다. 그 부지런함은 단순한 열정과 근면한 노력에서 오는 것만이 아님은 물론이다. 끊임없는 독서와 방대한 자료에 대한 분석은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다. 종합적인 판단능력과 통찰력은 단순한 사유의 과정이나 고민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순전히 개인적인 능력으로만 보기에는 질투가 난다. 경외에 가까운 찬탄이다. 놀라운 시야에 대한 감탄은 현실에 대한 반성과 실천의 문제로 이어진다. 늘 그러하듯이.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은 21세기 벽두인 2000년에 출간된 책이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책이 제시했던 현상이나 의미들이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이 책의 탁월함을 반증한다. 몇 년 만에 폐기되어 버릴만한 단견이나 예측이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책에 대한 평가는 저자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복잡한 현실 세계에 대한 해석과 전망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매달리고 있지만 부분적인 현실이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 경우가 많다. 스스로 경험하고 예측하는 내용은 미시적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주관적 견해와 편협된 시선일 경우 독자는 금방 시선을 돌려 버린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와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이론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리프킨의 이야기들은 들을만하다. 객관성이 확보된 예측과 전망이 돋보이며 게다가 과거와 현재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토대가 되기 때문에 더욱 믿을만하다.

이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어쩌면 단순하다. 첫째, 소유에서 접속의 시대로의 이행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사유 재산이 곧 자유의 상징이었던 시대를 거쳤다. 로크에 의해 사유 재산에 대한 권리가 가장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권리로 옹호받기도 했다. 소유는 곧 개인의 가치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물적 증거가 된다. 그러나 미래, 아니 현재도 그러한 변화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간을 토대로 한 사적 소유에서 접속을 통한 관계의 지속성이 중요한 것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물질의 차원보다는 시간의 차원이 훨씬 중요하다.(143페이지)”는 저자의 말은 확신에 가깝게 들린다.

둘째는 산업 사회에서 문화 사회로의 변이과정이다. 문화에 대한 리프킨의 주장과 전망은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상업주의와 결합된 세계 각국의 문화 파괴와 고갈에 대한 우려는 설득이 있게 들린다. 팔기 위한 상품의 발굴과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보인다.

사회의 구조적 측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각국의 상황과 시대, 문화적 배경 등 통시적 관점과 공시적 관점의 교차점에서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소유의 종말>은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현재와 미래 사회에 대한 지침서이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정확한 과거와 현실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우리들 삶의 모습을 점검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조언으로 들을만하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 P. 392

참여의 수준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그의 견해로 이 책이 마무리 된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에 대한 고민은 한 두 사람의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다함께 같이 풀어내야 할 문제들이다. 늘 그러하듯이 모든 문제의 귀결은 이론과 고민이 아니라 참여의 실천의 문제이다. 이 책을 읽고 ‘소의 종말’이 도래 했으니 ‘접속’을 통해 뭔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역점을 둔 사업 전략의 다각화를 고려하는 CEO도 있을 것이고 삶의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수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집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 평생을 한숨으로 보내?수많은 서민들이 대한민국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면 과연 올바른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소유의 시대가 끝났으니 집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버리라고 말하는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목적과 방법 속에서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갈등은 이 책 한 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는 끊임없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탁월한 혜안을 가진 그들의 이야기에 내가 귀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06102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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