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과 철학 강의 2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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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도 우리가 쉽게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실용적인 학문이어야 한다.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생각해 보는 관념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질문들에 대해 안내자와 길잡이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은 개인의 몫으로 돌리더라도 생각하는 방식과 세상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어렵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도 않은 철학은 불가능한가?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2>는 1권 논술편에 이어 ‘철학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발에는 오른발과 왼발이 있지만 신발에는 없다. 왜 오른쪽과 왼쪽 신을 구분해서 신어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올의 어린 시절은 암담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들에 대한 관찰과 생각으로부터 철학은 시작된다. 철학은 보편을 지향하지만 절대를 말하지는 않는다. 상식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된 철학의 길은 정치와 종교에 대한 당연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철학으로 가는 길은 쉽고 간단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복잡해서 현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철학은 서양언어에서 비롯된 ‘지혜의 사랑’도 아니고 일본식 한자어인 ‘밝은 배움’도 아니다. 철학은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철학을 정의하는 사람의 관심의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지식도 아닌 철학을 우리는 왜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들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중고생을 위한 논술과 철학을 위한 강의록이라는 명분으로 쓰여졌지만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 ‘돌대가리’라고 선언하는 도올의 철학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만하다. 근엄한 제목과 들어본적도 없는 용어들 사이에서 좌절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철학의 길을 제시해 준다. 우리의 삶이 텍스트이고 세상이 콘텍스트일 때 철학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든 가능성을 전제로 한 무전제의 전제가 철학이라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우상과 편견들을 깨뜨리는 일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내 마음의 우상을 깨뜨리고 개방적인 시선과 비판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철학은 시작된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연하고도 다양한 전제 중의 하나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한 화이트 헤드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실과 이상을 분리해서 인식할 때 철학은 우주 밖으로 멀어진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데아’에 대한 탐구와 믿음은 현실과 유리된 철학을 낳았다. 동양의 장자가 이야기한 우물한 개구리는 소견이 좁을 뿐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큰 흐름속에 작은 흐름을 포함시켜 관견管見을 이야기할 뿐이다.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개구리도 결국 현실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올의 관점과 방식이 정답일 순 없다. 그가 이미 밝히고 있듯이 철학에는 절대가 없으므로.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의 차이를 통해 동양 철학의 우월성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책은 아니다. ‘철학은 문화사’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적 토양과 삶의 방식에 뿌리를 둔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가 없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언어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낳고 결국 철학적 사유를 결정 짓는다. 우리가 발붙히고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필요한 철학은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 해야 한다. 철학은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는 도올의 말이 철학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식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도올이 보여준 삶의 이력들과 그가 말해온 많은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읽는다면 도올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편견없이 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일은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도올을 지우고 그의 주장만을 놓고 보더라도 크게 실망할 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을 ‘대학 입시를 위한 논술과 철학강의’로 읽는다면 조금 거리가 멀다. 실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뚜렷한 자신의 목소리와 나름의 독특한 해석으로 철학과 세상을 읽어내는 도올의 목소리는 내게 신선한 울림을 준다. 서양 철학자 하나를 붙잡고 목숨거는 철학 교수보다 그를 비교 우위에 두는 이유는 교수가 아니라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생각 때문이다. 도올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떠나 그의 주장이 언제나 비판과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도 지나친 확신과 소신에서 비롯된 뚜렷한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독선이나 아집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방법들 중의 하나로 도올의 말에 귀기울여 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0609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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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321
남진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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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을 넘긴 다음부터
거을 앞에 서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내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거울에 비친 내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

서른여섯 거울 속의 나는 죽고
텅 빈 거울 속에 더 이상 나는 비치지 않고
거울 속 어두운 물 저편으로 흘러가
나는 흑사병이 도는 폐허의 도시에 도착한다
                                                              - ‘베니스에서 죽다’ 중에서

인간에게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다. 소중한 이유는 선악, 오호의 감정을 넘어서 한 사람에게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마디 마디가 모여 우리의 전 생애를 이루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그것이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고 쌓여온 세월이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든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뒤로 한 채 하늘을 올려다 보아야 바뀌는 것은 크지 않다. 모든 경험은 자신의 세계에서 비롯되지만 ‘용기’만으로 인생이 뒤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윤동주의 ‘파란 녹이 낀 청동거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은 너무 많다. 눈을 뜨는 순간 만나는 모든 것들이 바로 거울이고 내 얼굴의 다른 모습들이다. 갇힌 공간과 좁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자화상이다. 모든 사람들은 사물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꺼린다. 선택적 기억과 자신에 대한 안일한 태도, 미래에 대한 쓸데 없는 희망으로 치장한다. 계산된 위장과 가식이 아니라 눈감고 싶은 현실과 특별할 것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남진우의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는 이런 현실에서 일탈한다. 쉽게 일탈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는 꿈꾼다. 영원히 우리의 일부이면서 ‘타자’로 인식하는 죽음까지도.

그 대상들이 사자와 악어 같은 짐승이다가 낯선 장소이다가 비가 내리는 기후이기도 하다. 낯선 세계를 꿈꾸는 자는 현실에 부유하는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길들여진 습관은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지금-여기에 단단히 뿌리박지 못한 꿈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없는 곳을 꿈꾸는 자의 절망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간다. 남진우의 시는 그렇게 마술 같은 현실을 반영하는 만화경이다. 프리즘처럼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방 연속 무늬를 반복하는 만화경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준다. 내게는 그렇다.


얼마나 먼 길을 걸어 빗소리는
내 곁에 찾아온 것인지
깊은 밤 잠 깨어 내 머리맡 적시는 빗소리를 듣는다
비를 맞지 않아도 이미 빗소리만으로 나는 축축히 젖어
잠자리 위를 아득히 떠내려가고
연못가 흰옷 입은 여인들 버드나무 아래 울고 있다
그 울음 다 그치기 전 이 비는 또 누구를 깨우기 위해
먼 길 떠나는 것인지
가고 또 가버려도 빗소리는 남아서 내 머리맡을 적시고 있다
                                                                                   - ‘오래된 정원’ 중에서

누구에게나 비에 대한 기억은 있다. 오래된 정원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특별하진 않다. 세상 자체가 오래된 정원이다. 이 세상에 내리는 모든 비는 누군가를 찾아간다.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는 주관적 판단과 인식이 독자와 공감할 때 시는 의미가 있다. 세상과 소통하는 모든 방식은 이기적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객관과 이성과 합리를 가장한 모든 주과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혼란을 가져온다. 때때로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시인의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막 꿈에서 깨어난 듯한 나른함이 묻어난다.

여기가 어디인가, 새벽 세시에 목마른 사자 한 마리가 방 문 앞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방문을 열자 사자의 꼬리만 슬쩍 비친다. 그가 기다린 것은 과연 사자일까. 동화적 상상력을 넘어선 자리에 대입할 수 있는 주관적 대상은 모두 독자의 몫으로 파악해야만 하는 막막함!

독서

독이 묻은 페이지를 넘긴다
나를 암살하기 위해 누군가 발라놓은 독을
침과 함께 나는 삼킨다
독 묻은 책을 읽는 것은 독에 잠겨 서서히 익사해가는 일
피 속에 움트는 날카로운 외침에 귀 기울이며
다시 페이지를 넘긴다
그 어느 시인도 독으로 일생을 살진 못했다
그가 남긴 독이 책에서 책으로 돌고 돌다
어느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책을 펼쳐든 나를 깨문다
서서히 독에 마비되어가는 몸을 젖히고
나는 책 속을 빠져나가는 독사 한 마리를 본다

무릇 모든 독서란
독사 한 마리씩 길들이는 일이니


이 시집의 마지막을 ‘독서’가 차置構?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이후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시들은 여전히 낯선 감각 속에 살아 있다.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읽고 나를 읽는 것이다. 물론 ‘너’를 읽기 위한 모든 독서는 ‘너’를 길들이기 위한 행위이다. 독사와 독서의 유사성은 치명적인 ‘독’에 대한 해석이다. 읽는 행위가 독이 된다는 전제는 그 대상이 책이든 세상이든 사람이든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인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반복되는 일상 속의 치명적 ‘독’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중독성은 뿌리칠 수 없는 강렬한 유혹만큼 치명적이다.


0610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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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윌리엄 슈니더윈드 지음, 박정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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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같다.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쌍한 영혼이다. 절대자나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나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회가 없었다. 책으로 만나는 그들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따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친구를 따라 딱 한 번 교회에 가 본 적이 있지만 심드렁한 느낌으로 기억한다. 난 어렸을 때부터 애늙은이였다.

가끔 어머니가 절에 가신다. 마음이 복잡할 때나 사월 초파일 등 기껏해야 일년에 몇 번이지만 등산 겸 해서 절에 다시시는 어머니의 그것을 한 번도 종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종교는 나약한 인간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영혼의 아버지뻘 쯤 되겠지만 여전히 호기심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태도는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로지 관심뿐이다.

그러나 한 인생을 살면서 종교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다만 ‘믿음’의 문제와 부딪히면 고개를 외로 튼다. 무식하고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 성경을 읽어도 불경을 읽어도 책을 통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당연한가? 종교에 대한 관심과 신앙심과는 무관한 것 같다.

윌리엄 슈니더윈드의 <성격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는 종교에 대한 또 다른 질문에 답한다.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불교든 정전의 힘은 막강하다. 코덱스(책)의 형태로 묶여진 성경이나 코란이나 불경은 그 종교를 대표하는 권위를 지닌다. 처음부터 그랬을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유대교와 그리스교의 정전인 ‘성경bible’은 ‘비블리아biblia’라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비블리아의 뜻은 ‘책들’ 혹은 ‘두루마리들’의 뜻을 담고 있다. 이렇게 성경을 뜻하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성경을 누가 썼는지 왜 썼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현재의 책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두루마리로 쓰여진 모세 오경이 바탕이 되어 있던 텍스트들을 순서를 정해서 지금과 같은 책이 되었다.

현재까지는 대략 페르시아 제국과 헬레니즘 시기(기원전 5세기 ~ 3세기경)에 구약성서가 기록되고 편집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슈니터윈드는 고고학적 고증을 통해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경으로 그 시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흥미롭게 전개되는 성경의 시작과 끝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구전 문화와 기록 문화의 충돌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력한 종교적 권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문자가 등장하면서 문자는 왕과 제사장들의 절대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행정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 문자가 대중화되면서 ‘말씀’과 ‘글’에는 충돌이 생겼고 그것은 권위와 믿음에 대한 종교의 기본적인 믿음의 대상에 대한 충돌로 이어진다. 결국 ‘글’이 ‘말’의 권위를 눌렀으나 그 변화 과정은 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당연히 적용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

어쨌든 게임은 끝났고 성경이라는 ‘책’은 종교인들에게 ‘말씀’을 넘어선 권위를 지키게 되었다. 기록된 한 권의 책이 가지는 사회적 권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후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은 유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종교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러한 종교의 사회적 역할 때문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보여주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물론 모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종교의 순기능을 축소하려는 생각도 없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일 뿐.

성경은 언제 기록되었을까? 왜 글로 기록했을까? 성경은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을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독자들을 고대 이스라엘로 인도한다. 기록된 글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성경의 역할과 책으로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가 안내하는 고대로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은 독자는 성경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나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나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책이라는 형태의 기원과 탄생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고 싶은 사람이어도 좋을 것 같다.

글과 문자성은 자유를 줄 수도, 억압할 수도 있는 두 가지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 P. 165

엉뚱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어면서 이 한 줄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 책이 각각의 독자에게 다르게 해석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이 책은 나에게 또 하나의 책에 관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도 성경은 사라지고 책만 남았다.


06100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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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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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보면 어둠 속에 빛이 아름답다. 저물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숲속의 외등에서 퍼져나가는 부드러운 빛은 손에 만져질 듯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다. 그림은 이미지다. 하나의 이미지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이성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다른 그림들처럼 비현실적이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지만 ‘빛의 제국’은 우리들 인식의 틀을 또 한번 두들기게 한다.

푸르고 맑은 하늘과 평화롭게 떠 있는 하얀 구름은 가장 일반적인 하늘에 대한 이미지이다. 그에 비해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그림자들의 배후에는 무엇이 숨어있는지 알 수 없다. 외롭게 서 있는 외등은 겨우 어둠을 몰아내고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것같다. 어둠과 희미한 빛의 조화로움 때문에 눈이 부시지도 않고 특별히 주목을 받지도 못한 외등의 불빛은 푸른 하늘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과연 빛은 주변의 조건과 긴밀하게 관련된 개념일 뿐이다.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의미의 빛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네가 서 있는 그 곳이 어디냐고. 어떤 모습으로, 어떤 형태로, 왜 서 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보호색에 불과한 빛의 이미지는 부드럽고 편안하지만 본질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이데아의 빛과는 다르다. 맹목적인 삶의 형태와 집단적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빛은 어떤 강렬함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김영하의 장편소설 <빛의 제국>은 다른 소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준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읽힌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가 작가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빛의 제국>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빛의 제국>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서 사용했던 시간을 사용한다. 표절했다는 말은 아니다. 하루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장편의 긴 호흡에 긴장을 불어넣지만 독자들을 긴장감있게 밀어붙이거나 다른 생각을 할 틈과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 김기영을 따라 다니며 그의 생각과 사고한 행동들을 통해 우리의 80년대를 반추하게 한다. 후일담 문학과는 거리가 멀지만 21세기 초반의 한국 사회를 분명하게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는 80년대와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남과 북의 분단상황에 대한 비극과 민족과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에 대한 고찰은 이 소설과 무관해 보인다. 이 소설에 대한 오독일 수 있으나 남파 고정간첩인 김기영의 신분은 중요한 소재와 흥미로운 요소일 수 있으나 소설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한다. 그의 아내와 중학생 딸을 중심으로 파편화된 가족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논의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다. 폴 발레리의 시구를 인용한 부분을 보자.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그는 운명을 잊고 있었지만 운명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 P. 200

아주 오래 전부터 기억하고 좌우명처럼 가끔씩 되내이는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속에서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읽힌다. 자신의 인생과 운명에 대한 오만을 지적하고 있다고 극단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운명과 생에 대한 선택권은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통찰은 신선하고 놀랍다. ‘생각한 대로’ 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더구나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끌려가는 수동적인 자세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생각한 대로 사는 것만큼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는 알면서 지키지 못하는 ‘운명’이나 ‘숙명’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나 개인의 선택은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괴물같은 대상이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악몽을 꾸는 것은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을 떠올리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내 집으로 들어가는 아파트 엘리베이트에서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켜보는 그들의(?) 눈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배우고 확인하는 것은 모두 개인 독자들의 몫이지만 이 소설은 단편이나 중편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영하의 다른 소설과는 다른 종류의 다른 맥락의 시도는 신선하지만 개성을 벗어난 새로움이 늘 성공적일 수는 없지만, 현재 보다는 앞으로의 소설을 기대해 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작가의 이런 말들이 오히려 소설 전체를 압도하는 생활의 재발견이 된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沮?돌아오는 길은 슬픈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어린 모습을 간직한 채로 늙어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은 늙어 늙은 소년이 되고 소녀도 늙어 늙은 소녀가 된다. - P. 285


060918-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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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기주의자
웨인 W. 다이어 지음, 오현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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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으로 텅 빈 공간에 앉아 커피향을 느낀다. 창밖의 시원의 바람이 뺨을 스치고 녹음이 우거진 나무숲이 고요하다. 시간이 멈춘듯한 정적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무념무상의 지금 이 순간!

행복의 다양한 정의와 나름의 방식을 떠들어대는 무수한 책들은 심하게 말하면 거의 쓰레기에 가깝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왜 불행한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고치거나 해결할 방법들을 행동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데 아픔이 있다. 읽다보면 똑같은 소리의 반복들이다. 자기 개발 프로그램이나 처세술에 관한 책들은 별 효용을 가지지 못한다. 물론 방법을 모르거나 자신을 분석하기 어려운 경우 지인의 충고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하지만 생각과 감정은 계량화할 수 없다는 데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저자 웨인 다이어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에서 단계와 상황별로 그 이유를 점검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들을 제시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저자는 두 가지로 선언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째는 감정은 선택 가능한 것이고, 둘째는 현재의 순간들은 통제 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대전제이다. 대전제를 부정하면 다음의 이야기들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가 일치할 수는 없다. 다만 부단한 노력으로 어느 정도 개선되거나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겠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자신을 위한 감정을 선택하고 순간 순간 벌어지는 상황들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1976년에 ‘당신의 오류지대your erroneous zones’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이 아직도 번역 출판된다는 것은 물론 의미있는 일이다. 이 책이 가지는 폭넓은 공감대가 첫째 이유가 되겠지만 그것은 일반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별함은 없다. 다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현실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답답함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겠지만 자기 반성의 시간과 기회를 갖는 것 이외에 특별한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신지식으로 선정되었던 심형래의 말처럼 ‘못하니까 안하는게 아니라, 안하니까 못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 그것 이상의 말을 찾기 어렵다. 전체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내용은 보면,

1. 남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2.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라
3. 자신에게 붙어있는 꼬리표를 떼라
4. 자책과 걱정은 버려라
5. 미지의 세계를 즐겨라
6. 의무에 끌려다니지 말라
7. 정의의 덫을 피하라
8. 결코 뒤로 미루지 말라
9.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라
10. 화에 휩쓸리지 말라


마지막 11장이 행복한 이기주의자이다. 위의 10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새로운 인간형 행복한 이기주의자! 틀린 말이 별로 없어 시비걸고 싶진 않으나 남는 것이 없는 맹물같은 책이다. 다만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주는 함의는 두고두고 책내용과 상관없이 되새겨 볼 만하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수많은 방법들을 누구에게 배우겠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 뿐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는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방편으로 여겨야 한다. 더불어 잘 살아야한다는 도덕 교과서 같은 말씀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게 불행을 주는 이기주의자가 느끼는 행복은 오만과 아집이다. 행복과 이기주의라는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의 조합이 인간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또다른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저자의 주장과 책의 방향과 무관하게 우리들 삶에서 행복은 빼놓을 수 없는 삶의 목적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행복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는 물론 개인의 선택이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수많은 방법들 중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과의 사소한 싸움에서 번번이 지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심리적 처방전이 될 수는 있겠으나 문제를 알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쓸데없는 잔소리에 불과할 수 있겠다.


060609-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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