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 -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개리 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갤리온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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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기체는 역사적 구조물이다. 곧 말 그대로 역사의 창조물이다. 이것은 공학 기술의 완벽한 산물이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잡동사니들을 이어 맞춘 것이다. - 프랑수아 제이콥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자신의 바보스러움에 혼자 쓴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고 위로해 보지만 별로 도움은 안 된다. 매끈하고 완벽한 신체로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몸속에는 말도 안 되는 혹은 불필요한 또는 거추장스런 신체 기관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사회의 변화 속도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 속도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체 기관이 그러한데 인간의 마음은 어떨까? 훨씬 더 하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상상력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오류 투성이인 인간의 정신 영역을 대단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정교하고 고도로 발달된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판단을 하는 이성을 내세우지만 인간은 어쩌면 여전히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서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우리들 마음안의 바보들이 여전히 숨어 살고 있는 것이다. 뻔히 보이는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안에 숨어 사는 괴물 혹은 바보들을 찾는 데 일생을 보낸다.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도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클루지kluge는 서투른 또는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고장 나기 쉬운 애물단지 컴퓨터를 이르는 말이다. 인간의 신체 기관뿐만 아니라 기계 장치에도 사용되는 말이고 그것을 확대시켜 저자는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는 용어로 비유하고 있다. 그 용어나 개념이 인간의 심리 상태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지 않고도 저자는 생각의 함정들을 잘 파헤쳤다.

  그 생각의 함정은 생각의 무기들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생각은 정해진 길과 올바른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엉뚱한 방향과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클루지를 단순하게 실수나 엉성한 대책으로 여길 수만은 없게 만든다. 그 마음의 갈피들을 잘 분석하고 쉽게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맥락과 기억, 오염된 신념, 선택과 결정, 언어의 비밀, 위험한 행복, 심리적 붕괴로 나누어 마음안에 도사리고 있는 클루지들을 해부한다. 왜 그런지 그런 생각과 행동의 패턴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 원인과 결과를 밝히고 현상을 분석하는 예리한 눈은 높이 살만하다.

  심리학과 언어학 그리고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는 저자의 글에는 학문적 통합을 통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드러난다. 다양하고 해박한 관점들을 어떤 독자이든 공감대를 넓고 깊게 형성한다. 동의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사례와 문장들은 이 책이 넓은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주변에 흔히 발견되는 수많은 심리 관련 서적들 중에 특별한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책은 아주 잘 쓰여진 심리학 서적으로 추천할 만하다.

  자신의 이론과 주장 속에 함몰되어 있지 않고 진화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를 비롯해서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 등 다른 저자들의 연구 결과를 비교 검토하고 인용하여 객관성과 합리적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들이 엿보인다. 분야별로 간략하게 다듬고 쉽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정밀한 서술이나 풍부한 연구 성과들이 생략될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되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진화는 우리에게 상이한 능력을 지닌 두 체계를 남겨 주었다. 하나는 틀에 박힌 일을 처리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반사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틀을 벗어나 생각할 때 유익한 숙고 체계다.
  우리가 이 두 체계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조화를 꾀할 때, 우리의 결정이 편향되기 쉬운 상황들을 밝혀내고 이런 편향을 극복할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 P. 149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 하나가 반사 체계와 숙고 체계이다. 모순 된 두 사고 체계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인간의 판단 능력을 증진시켰다. 지혜롭다는 말은 두 개의 사고체계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것, 인식의 틀을 바꾸고 발전시킨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판단 능력과 사고 능력을 증진시킨다는 말이다. 합리와 이성만이 인간의 특징은 아니지만 보다 정확하고 지적인 사고 능력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클루지를 알고, 인정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식은 개선을 향한 첫 걸음이다. 우리의 어설픈 본성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것의 개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P. 261

  눈에 보이는 클루지를 어쩌지 못하는 것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인간적인 모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게 굴복하지 말고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다는 것은 이미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우리 안에 또 다른 자아를 인정하기 위해서도 클루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마다 반사 체계와 숙고 체계가 충돌을 일으킨다. 우리 모두는 클루지의 노예인지, 숙고 체계의 하인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는 것은 행동하느니만 못하다는 당연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클루지를 알았다면 이제 판단과 행동에 분명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야말로 저자의 분석이 유용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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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객관적으로 처신하고 있다는 우리의 주관적 인상은 객관적 현실과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사고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의 신념은 기억에 의해 매개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어렴풋이 의식하는 사소한 것들의 영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 P. 76

우리의 법률체계는 ‘유죄로 증명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원칙을 토대로 할지 몰라도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 P. 107

  진화는 우리에게 상이한 능력을 지닌 두 체계를 남겨 주었다. 하나는 틀에 박힌 일을 처리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반사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틀을 벗어나 생각할 때 유익한 숙고 체계다.
  우리가 이 두 체계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조화를 꾀할 때, 우리의 결정이 편향되기 쉬운 상황들을 밝혀내고 이런 편향을 극복할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 P. 149

우리는 정신을 딴 데 두거나 일을 뒤로 미루거나 우리 자신을 속인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통제의 산에 오르기 위한 평생의 투쟁이다. 왜냐하면 진화는 우리에게 분별있는 목표들을 세우기에 충분한 지적 능력을 주었으나, 그것들을 관철하기에 충분한 의지력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P. 239

인식은 개선을 향한 첫 걸음이다. 우리의 어설픈 본성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것의 개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P. 261

클루지를 이겨내는 13가지 제안

1.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되도록 함께 고려하라
2.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3.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4. 여러분이 가진 표본의 크기를 결코 잊지 말라
5.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6.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7.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8.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9. 누군가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10.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11.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화적인 것을 경계하라
12.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13.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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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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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싸, 가오리!”가 떠올랐다. 에쿠니 가오리의 이름을 보고 처음에 ‘쿡’하고 웃었던 것 같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인상 깊게 보았다. 원작자가 에쿠니 가오리라는 걸 알았지만 찾아 읽고 싶지는 않았다. 한때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거부 전부 찾아 읽었으나 이후 일본 작가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가끔 나쓰메 소세키나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찾아 읽지만 요시모토 바나나 유의 책들에 몰입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정서의 샘에 물이 고이지 않나보다. 아니면, 세월과 나이를 탓할 수밖에.

  어쨌든 간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낙하하는 저녁>을 읽었다. ‘실연을 담은 소설’이라는 부제는 결말을 알고 시작하는 추리소설처럼 흥미를 떨어뜨리지만 이런 유의 소설은 마음의 갈피들과 섬세함으로 승부를 건다는 걸 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실연의 아픔을 겪었을 것이고 감정은 이입되기 마련이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유사한 상황이나 감정들을 일반화 시킬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람들은 나에게 책을 선물하지 않는다. 특별히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가끔 아쉬울 때도 있다. 손에 책을 놓지 않기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 오랜만에 선물받은 책이다. 내용이야 어떠하든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읽혔다. 선물하는 책은 둘 중 하나다.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거나 선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거나. 이 책은 전자에 해당된다. 휴일에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잠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실연했다면 더더욱.

  사랑은 두 사람이 하지만 이별은 혼자서 한다. 쌍방향과 일방향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안을 야기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연인 관계가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가능한 일이지만 이성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경험적으로 혹은 주변에서 흔히 발견하는 과정과 결과들을 통해 인간의 마음도 학습을 하게 된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고 상처나 치유의 과정을 반복하기도 한다. 조작적 기억은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만큼의 러브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모든 사랑은 유일무이하다. 이 소설의 나레이터 리카는 연인이었던 다케오와 이별하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린다. 8년간의 연애가 3일 만에 끝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리카는 어쩌면 지나간 시간들을 정리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한 부분을 누구에게 떼어 준 것은 아니지만 다케오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의 깊이나 농도는 측정할 수 없다. 다만 유추의 방식을 통해 타인의 사랑과 나의 감정들을 비교할 수는 있겠다. 이 소설은 모든 독자들의 사랑과 이별할 수 있는 바로미터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이별하는 방법이나 정리하는 기술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저 이별하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하니 더더욱 가슴 아플 수밖에.

  누구나 자신의 아픔과 상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생각하며 이별의 고통을 견뎌내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드러내는 방식과 숨기는 방식의 차이로 고통과 생채기의 크기를 측정할 수는 없다. 연인의 연인과 동거라는 특별한 상황을 연출한다고 해서 그것이 더욱 비극적이지 않다. 모든 상황은 상황일 뿐이며 감정은 감정일 뿐이고 시간은 모든 것들을 변화 시킨다. 시니컬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랑 얘기는 하품을 유발하거나 따분한 신문보다 지루하다.

다케오와의 만남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하고 비슷하다. - P. 67

  소설의 내용과 무관하게 눈에 들어오는 몇 개의 문장들. 하늘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이 겹쳐진다. 하늘만큼 좋아하다니,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무수한 풀벌레 소리, 그렇게 세상은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다. 내 인생의 바깥쪽에서. - P. 71

  군대에서 처음 느껴 본 감정이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졌는데도 세상은 어김없이, 그것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갈 장소가 없었어. - P. 160

  간혹 예외는 있지만 돌아갈 장소, 돌아갈 사람이 없어져 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다.

“한 번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거야.”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그런 거야.” - P. 177


  안과 밖의 경계, 눈에 보이지 않는 금 넘어가기.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돌덩이와 같은 것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성숙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영혼의 고통을 동반한다. 당연한 말인가?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 언제였던가 절망적인 진실을 얘기했던 하나코가 떠올랐다. - P. 190

  사람들은 스스로 믿고 스스로를 배반한다. 그러면서 타인을 원망하며 스스로는 반드시 피해자가 된다. 정혜신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배신은 착각 혹은 의존적 심리현상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소설의 결말은 짐작대로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길고 지루한 시간들. 물론 본인에게 죽음 같은 고통이겠으나 리카는 비명 지르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죽음은 오히려 예기치 못한 곳에 찾아온다. 비현실적이서 현실에 발붙이고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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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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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보다 하늘을 사랑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세상 혹은 사람들과의 유리벽을 절감하면서부터였을까? 나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혹시, 그때부터 책이 내게로 온 것은 아닐까?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은 왜 먹어야만 살 수 있는거지? 난 왜 사는 걸까?

  아마도 이 많은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한 건 사춘기가 겪는 자연스런 변화가 아니라 책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을 알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생겼을 의문들이지만 답을 찾을 방법을 알지 못했지도 모른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을 책을 통해 찾아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적어도 막연한 의문과 불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게 책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었다.

  단 한 권의 책을 통해 그 답을 찾으려 한 적도 없었지만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종횡무진 영역을 넘나들며 길을 찾아 헤매고 절망하고 때로 공감하며 마음을 빼앗겼다. 어느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가장 정확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면에 숨은 진실 찾기 게임은 나에게 주어진 몫이었지만 결코 두렵거나 힘겹지 않았다. 즐길만한 고통이었고 절망이었으며 현실에서 찾아야 할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살아가면서 경험으로 익힌 것은 작은 세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진짜 중요한 것들은 선생님에게 배울 수 없었고 깨달음의 즐거움은 책을 통해서 가능했다. 개인적인 불행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겐 그러했다. 책은 내게 참 스승이었고 무엇보다 숭고한 대상이었다. 그런 책도 어쩌면 하나의 세계에 불과할 것이고 책들이 모여 이룩한 거대한 왕국도 허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인식의 수단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만한 즐거움을 주는 일도 아직 찾지 못했다.

  책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책에 목숨을 거는지. 도대체 책의 매력은 무엇인지.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앎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집착에 가까운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내게 도대체 책은 무엇인가. 왜 읽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김열규의 <독서>는 책을 통해 쓰여진 자서전이다. 열혈 독서가들의 모임에서 우수 회원이 될 법한 그의 삶을 독서의 이력으로 풀어냈다. 70이 넘은 노교수의 이야기는 어깨에 힘을 쫙 뺀 상태에서 바람이 나부끼듯 펜을 휘두른 느낌이다. 억지스러움이 없고 편안한 문장으로 책을 이야기 한다. 유년시절 할머니와 어머니의 듣기에서 출발한 그의 생은 문화 자본 자체가 풍부했다. 자연스럽게 말과 글에 눈을 뜨고 낭독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몰입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경험한 소년은 책을 통해 또 하나의 세상을 얻는다.

  신체적으로 허약해서 놀림감이 되고 책 속에서 고독과 깨달음을 얻는 <토니오 크뢰거>를 자화상으로 삼는 저자는 병적으로 책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유년과 성장 과정에서 그 열등감은 책을 통해 자신감의 세계를 구축한다. 듣기에서 노년의 책 읽기까지 한 생애를 정리한 저자는 본격적으로 읽기의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꼼꼼하게 읽기, 클로즈 리딩, 속독과 숙독, 삼단뛰기와 장애물 경주 등의 비유를 통해 다양한 읽기 방법을 소개한다. 필요와 목적에 따라, 글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읽는 방법과 태도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그 과정과 방법들을 설명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거침없고 막힘이 없다. 힘주어 강조하거나 대충 얼버무리는 법이 없다. 적당한 강약으로 편안하게 독서를 이야기한다.

  방법 뿐만 아니라 내용에 따라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요령도 적고 있다. 게임을 하듯이, 물고기를 잡듯이, 이를 잡듯이,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이, 사금을 캐듯이. 비유는 어떤 이론보다 쉽게 스며든다. 특별한 법칙을 세우거나 번호를 붙이거나 단계를 말하지 않고 편안하게 풀어간다는 말은 상대에게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시와 소설 그리고 논설문을 읽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영향을 미친 작품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저자의 독서 이력을 수필처럼 편안하게 펼쳐놓은 1부와 책읽는 방법을 풀어쓰고 있는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인생의 황혼녘에 자신의 독서 이력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있고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 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의 문제는 독자에게 있는 듯하다. 강요하거나 설득하는 내용이라기보다 쉽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건네듯이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독서에 관한 읽을 만한 책 목록에 올려도 좋을 만하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저자를 이렇게 다시 만나는 일은 새롭기만 하다. 책과 함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야 어디 한 둘일까마는 유년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독서>가 취미가 되고 일이 되고 삶이 되는 과정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지독한 책벌레들과 함께 해 온 인류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책을 던져 버리고 총을 든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될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삶이 달라진다. 사회와 역사는 그렇게 조금씩 진보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더딘 발걸음이더라도 말이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연말이지만,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지만, 정치와 역사는 거꾸로 가고 있지만 손놓고 앉아 망연자실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war of position)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은 개인적인 판단이다. 책을 통해 현실 개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황당할 수 있겠으나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하고 행동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책의 역할이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타령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도 있으나 저자의 이런 종류의 책들은 일단 사람들을 <독서>의 세계까지 끌어들이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나치게 주관적 판단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풍찬노숙을 견디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안온한 온실 속의 평화가 아니라 혹독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강철같은 정신을 단련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때론 힘겹고 고통스럽겠지만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야 작은 길을 만들고 물줄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것이 책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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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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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안정적이고 확실한 미래를 욕망한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예측 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열정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학과 과학의 발달은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년 전에 비해 100만 배 복잡해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200년 전보다 훨씬 더 예측하기 힘든 현재를 살고 있다. 그래서 경험론적 회의주의자는 말보다 행동을 중시한다. 각종 데이터와 통계를 프로그래밍한 이론과 시뮬레이션과 정교한 법칙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허무주의와 회의론에 빠지게 된다. 9.11 테러를 예견한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의심과 황당함은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게 한다. 나아진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이성이 발달하고 시스템이 정교해지면서 보다 안정적이고 확실성이 높은 사회 구조를 만들어간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이전보다 불안정성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역사는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약한다는 작은 제목들에 주목하며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꼼꼼이 읽었다. 심리학과 경제학과 철학과 수학과 통계학과 사회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탁월한 저서라고 평가한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이 책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통찰의 힘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통찰력은 철학적 사유에 의해서 혹은 통계적 분석에 의해 또는 경제적 지표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통찰력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인간들의 ‘확인 편향의 오류’로부터 출발해서 사고의 맹점들을 살펴보는 것은 다른 책에서도 수없이 반복했던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검은 백조’라는 선명한 상징을 통해 예측 불가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검은 백조가 발견된 순간 우리의 상식과 믿음과 경험적 지식은 모두 전복된다. 이러한 사건은 사회 곳곳에서, 경제 현상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연구와 실험을 거쳤다고 자부하는 이론과 시스템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한다. 결국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인가? 극단적 회의주의와 허무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범하고 있는 오류들에 대한 솔직하고 직설적인 비판이고 자기반성이다.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문제라면 이 책은 정확하게 문제를 찾아내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과학자의 시선이 아니라 현장의 허슬러만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감각과 다양한 이론과 예시들을 통해 저자는 이 모든 허약한 예견 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인식의 귀족으로 극찬하는 몽테뉴와 끝까지 경의를 표하는 칼 포퍼를 제외하고는 저자에게 비판받지 않는 경제학자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냉정한 시선은 예외없이 정상분포곡선을 창안한 가우스에게 겨누어진다. 그 수학적 진실과 현실의 적용 불가능성에 대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른 저자는 칼끝을 철학자들에게 돌린다.

우리는 입증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례들을 통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관찰된 사실들로부터 보편적 규칙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틀렸다. - P. 121

  지금까지 믿었던 사회와 경제에 대한 관점을 모두 폐기처분하라는 극단적이고 혁명적인 선언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의 의도는 분명히 지나치게 복잡한 경제, 사회 분석 시스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인다. 책 곳곳에서 비춰지고 있지만 수학자나 경제학자들로부터 통렬한 비판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논리적이며 우리가 반복했던 실수들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고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의 논의는 단순하게 이론적이거나 책상머리에 앉아 잔머리를 굴리는 종류와 거리가 멀다. 실전에서 익힌 감각을 바탕으로 경험적 회의주의가 단단한 기초를 이룬다. 그 위에 이론적 토대와 실명 비판이 더해지는 실제 사례들은 예상 반론까지도 차단하는 논리 구조를 갖추게 된다. 물론 저자의 수학과 경제학에 대한 이론들이 정교화되어 현실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연구와 합리적인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할 듯 싶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대해 쉽게 반론을 제기하거나 그것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책이 주장하는 이야기의 오류들은 사실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순환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나에게는 진지한 성찰과 비판의 시간을 전해 주었음에 틀림없다.

  니체가 꼬집었던 ‘교양속물(buildingsphilister)’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저자는 아랍인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 고향집이 어찌되었는지 모르는 저자의 개인사와 그의 생각이 완벽하게 분리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외자의 시선으로, 제 3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 밖에서 현실을 들여다 보려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역사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대한민국의 2008년이지만 검은 백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극단의 힘과 마이크로 트렌드가 미래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미래 예측을 모두 비웃는 검은 백조를 만났다.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이 책의 부제가 현실에서 마주할 때 얼마나 큰 공포로 다가오는지 우리는 매일 매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그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검은 백조는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상상!

기억할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검은 백조라는 사실이다. - P. 464

08122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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