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 숭고와 시뮬라크르의 이중주 진중권 미학 에세이 2
진중권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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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학이라는 학문이 있는 줄도 모르고 20년 쯤 살았고, 알게 된 후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 채 지금도 살고 있다. 미학은 그렇게 우리들 삶과는 무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존과 직접 관련된 학문과 지식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대중들에게 친숙하고 즐겁게 다가설 수 있는 예술은 항상 친구처럼 곁에 머물러야 한다. 전문가 집단만을 위한 고급 예술이나 이론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과 문화는 쉽게 내면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의 개념을 통해 문화적 상징 자본의 중요성을 주장했겠지만 도대체 미학이라는 것의 실체는 아직도 내게 모호하기만 하다.

  고전에 해당하는 책들을 탐독하고 그것을 해설했거나 실제 적용 사례들을 살펴보아도 내가 ‘이것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은 되지 않는다. 독학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공부하거나 이론적 토대를 체계적으로 쌓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고단하지만 즐길만하고 모호하지만 흥미로운 예술의 세계를 떠날 마음은 없다. 다만 명확한 실체가 포착되는 다른 분야의 무엇과는 구별되는 애매함이 늘 미진함으로 남는다는 말이다. 철학의 한 분파로 볼 수밖에 없는 미학의 특징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위해 보기도 한다.

  <미학오딧세이 1~3>는 내게 진지한 마음으로 그림을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고민하게 했다. 비록 남의 눈을 빌려 살펴보았지만 마그리트와 에셔의 그림에 매혹되었고 진중권의 감칠맛 나는 문장에 중독되었다. 그의 정치적 논객으로서 진중권의 포지션이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떤 식으로 열광적 지지 혹은 폭력적 비난을 받든 그의 목소리는 분명하고 논리 정연하며 나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진중권의 책들은 정치와 미학으로 양분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 두 분야 모두 탁월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날선 촉수가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책을 읽을 것이다. 오래전에 나온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는 그야말로 현대적 의미에서 미학을 풀어낼 수 있는 이론가들과 예술을 접목시키고 있다.

  벤야민의 ‘산만함’에서 출발해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에 이르기까지 ‘숭고’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예술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현대인의 관점이 아니라 다분히 철학적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따분하고 지루하며 그 의미는 안개 속에 숨어버리기도 하지만 원전의 인용이나 개념에 대한 보다 분명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어 그나마 읽을 만하다. 출판사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진중권이 들려주면 미학도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려면 조금 더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거나 이론적 깊이를 포기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 마르틴 하이데거, 테오도르 아도르노,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장 보드리야르 등 8명의 철학자는 이름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그드르이 책 한 두권씩을 건드려 보았지만 내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쉽게 하나의 축으로 꿰어지지도 않고 어설프게 그들의 이론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두둔함의 증거일 뿐이겠지만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저자는 핵심 개념들을 선택해서 집중수렴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각 장마다 조금씩 연결되고 전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살아 숨쉬기를 바라는 저자의 노골적인 요구처럼 훌륭한 텍스트인지는 증거할 수 없으나 시간과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긴 여정으로 생각한다면 또 다른 텍스트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는 충분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회이다.

  한 권의 책을 읽어나가는데 저자의 머리말은 항구의 등대와 같다. 글을 쓴 목적이나 핵심 개념을 밝혀 놓고 있으니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주변 경치를 제대로 즐기지는 못해도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여행이었으나 또 다시 떠날 채비는 갖추었나 보다. 희미한 풍경들 속에서 안개를 걷어내고 눈꺼풀의 이슬 방울을 털어내는 일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예술은 모든 현실에 대한 반영이며 결과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나 스스로에 대한 관심과 반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틈틈이 정리하고 확인하고 또 연결고리들을 찾아내는 연습은 계속되겠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속에서 그 의미를 확인하고 의도를 찾아내고 상징을 풀어내는 일은 하나의 놀이 일수도 있다. 즐거운 게임을 그만 둘 일은 없을 것 같다.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를 무한 증폭시켜 물신화하는 자본의 패턴은 이제 누구나 쉽게 적응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폭력과 그늘에 대한 시선을 거둘 수는 없다. 예술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그것에 대한 고민들이 어쩌면 현대미학의 역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학은 단순히 예술에 대한 숭고한 이데올로기가 아닐 것이므로.


08082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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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발달 문학과지성 시인선 35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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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시대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한 아도르노의 말은 역사와 시대현실과 詩의 거리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지금은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시대인가? 그 기준은 시인마다 다르겠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서정시는 시의 본령으로 자리매김한 채 사람들에게 언어의 쾌감과 감정의 순수성에 기대왔다. 일제 식민지 지배가 극에 달한 시절에도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을 볼 수 있는 눈은 시인의 몫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서정시를 무엇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태준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나가면서 서정시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늘의 발달>은 <가재미>로 촉발된 문태준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의 시는 다른 시인이 접근하기 힘든, 아니 걷지 않는 길에 대한 ‘경외’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말의 의미망을 확장시키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나가는 힘은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시의 특징은 말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기막힌 의성어와 의태어의 배열이나 느린 템포로 사물의 동작을 집어내고 마음의 흐름을 짚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시를 쓰는 사람은 무릇 다른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눈과 특별한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부단한 노력이나 탁월한 감성이 어우러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이든 그렇게 사랑하면 잘 알게 된다. 문태준의 눈에 비친 사물들과 사람들, 혹은 그늘들이 맑고 투명하게 비친다.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어

오늘은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어

길을 가다 우연히 갈대숲 사이 개개비의 둥지를 보았네

그대여, 나의 못다 한 말은

이 외곽의 둥지처럼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고 있으리

둥지에는 두어 개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이 있으리

나의 가슴을 열어젖히면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나의 말은

막 껍질을 깨치고 나올 듯

작디작은 심장으로 뛰고 있으리

작디작은 심장이 두근거리며 막 껍질을 깨치고 나올 듯한 ‘나의 말’은 무엇일까? 시어의 다의성은 이렇게 읽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도록 의미가 풍부하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하게 적용되지만 아무에게나 비유될 수 없는 말들의 잔치가 흥성스럽다.

그물

수풀을 지나간다

가을벌레들이 운다

몇 겹의 그물

완만하고 탄력이 있다

촘촘하다가 헐렁하다

발이 폭폭 빠지지는 않는다

내 심장보다는 크게 얽어놓아

멈추어 서게 한다

잠시 끌었다가 살짝 다시 놓아준다

당신과 내가

언제부터 이곳서 살았던가,

바람을 타고 날아 흩어지는

  가린 것도 보이는 것도 아닌, 막힌 듯 뚫려있는 그물에 대한 반응은 새롭다. 자연과 교감하거나 함께 호흡하는 사람의 모습만큼 평화로운 것은 없다. 당신과 내가 언제부터 이곳서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은 무화無化된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모든 것은 그물 사이로 달아났다.

장님

찔레나무에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그 곁에
오금이 저리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의 의혹이 생겨났습니다
그대의 가슴은 어디에 있습니까
찔레 덤불 속 같은 곳
헝클어진 곳보다 보다 안쪽
막 눈물이 돌기 시작하는 곳
그곳으로
날아오는 새와 날아오는 구름
그곳으로부터
날아가는 새와 날아가는 구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막 눈물이 돌기 시작하는 곳이 가슴일까? 세상의 모든 사랑은 가슴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그곳이 새와 구름의 둥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그곳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영원회귀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하지만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깨달음?

흔들리다

나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나는 중심
코스모스는 주변
바람이 오고 코스모스가
흔들린다, 나는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코스모스가 흔들린다고 생각할 때
중심이 흔들린다
욕조의 물이 빠지며 줄어들듯
중심은
나로부터 코스모스에게
서서히 넘어간다
나는 주변
코스모스는 중심
나는 코스모스를
코스모스는 나를
흔들리며 바라보고 있다


  기막히다. 나의 주변이 코스모스였다가 내가 코스모스의 주변이 된다. ‘흔들리며’ 바라보는 나와 너의 모습이 다를 리 없다. 하나가 되기 싶어도 중심조차 흔들린다. 가끔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코스모스가 되고 코스모스가 내가 되는 일은 없다.

살얼음 아래 같은 데 1

가는, 조촘조촘 가다 가만히 한자리서 멈추는 물고기처럼

가라앉은 물돌 곁에서, 썩은 나뭇잎 밑에서 조으는 물고기처럼

추운 저녁만 있으나 야위고 맑은 얼굴로

마음아, 너 갈 데라도 있니?

살얼음 아래 같은 데

흰 매화 핀 살얼음 아래 같은 데


  살얼음 아래 같은 데 조으는 물고기처럼 사는 게 마음이 아니라면 그렇게 시리고 맑고 투명하게 빛날 수 없다. 갈 데 없는 마음은 고여 있고, 고인 마음은 어디 흐를 데를 찾아 헤매게 마련이다. ‘조촘조촘’ 가다가 혹은 얼어버리기도 하지만 살얼음은 언젠가 녹아 흐른다.

이별이 오면

이별이 오면 누구든 나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후련하게 들려주었으면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듯이 우악스럽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
그러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가장 아픈 데가 깔깔하고 깔깔한 그 바지락 씻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겠지
오늘은 누가 나에게 이별이 되고 나는 또 개흙눈이 되어서


  그렇게 사람 사는 세상과 이별의 순간이 오겠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물들과 이별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시인은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별의 고통이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우악스럽게 바지락을 씻을 때처럼 온 힘을 다해도 그렇게 서로 부대끼며 생채기를 내도 결국은 제자리 걸음이다. 어디 떠나 본 적도 없고 한 걸음 다가서지도 못했을 뿐!

  <그늘의 발달>은 문태준의 지금과 우리시의 내일을 함께 보여주는 것같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신호탄을 쏘아올리지만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제각각이다. 문태준 시의 진경을 이제부터 가만 기다려 볼 참이다.

  엉뚱한 상상 하나. 동갑내기 동향출신인 김연수와 문태준은 친구일까?

0808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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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아파트 - 바보, 문제는 아파트야! 우리 시대의 위험한 문화코드 읽기
허의도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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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1980년대

  “아파트로 이사갈래?”
  저녁 식사 자리로 기억하는데, 어머니의 말에 모든 식구가 반대한다. 그게 사람 사는 집이냐, 닭장에서 어떻게 사느냐, 성냥갑처럼 갑갑하다……
  “싫으면 혼자 간다.”
  그렇게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었다.

# 장면 2. 2000년대

  “그 집이 국회의원이 나온 집입니다. 터가 좋은가 봐요.”
부동산 중계업자의 말을 듣고 입맛이 떨어졌다. 정치인이 살던 집이면 정말 재수 없는 집이라고 생각하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누군데요?
  “단병호라고, 왜 있잖아요, ……”
  민노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전 민노총 위원장 단병호. 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 분이 아파트에 사셨다니……. 농담이 아닌가 했고 사실이라면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운동의 대부 전 민노총 위원장의 이름을 듣는 순간 고민은 사라졌다. 전 전주인이긴 하지만 존경하는 분이 살았던 집이라니……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중계업자에게 계약하자고 말해 버렸고 그 곳에서 밤마다 책을 읽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참 대책 없는 인간이다. 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배곯아보지 않은 먹물의 배부른 푸념일 수도 있겠지만 돈의 위력과 힘에 압도되어 본 적도 그것을 부러워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생활은 생활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아파트 생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농촌 생활을 해 본적도 없으면서 늘 마음은 산에 가 있다. 단순한 동경과 낭만이 아니라 최소한 땅과 호흡하고 나무를 볼 수 있는 공간들이 필요하다. 언제 그 도서관 같은 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을 지 기약할 수 없으나 누구에게나 소박은 희망은 있는 법이다. 사방팔방 아파트 콘크리트 덩어리로 둘러싸인 이곳은 수용소나 군사시설을 연상시킨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생활의 터전이 되지 못한다. 이곳은 신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욕망의 블랙홀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과연 ‘아파트’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묻는 것은 실존적인 고민해 해당된다. 삶의 뿌리와 기반의 문제이기도 하고 사회적 계층과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면 미래와 희망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나친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허의도의 <낭만 아파트>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치적 입장과 사회경제적 위치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반칙은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 허의도의 입장은 매순간 삐걱거린다. 책을 쓴 목적도 입장도 모호하고 구석구석에 드러나는 모순은 읽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중앙 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월간중앙’ 편집장이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인인 그는 아파트가 없다. 나의 경험을 본문에 소개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아파트 투기 광풍의 피해자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업은행에 다니던 시절 아파트를 분양받고 퇴사하면서 팔아버린 사연이나 그 후 최근에 구입 기회를 놓쳐 버린 경험은 책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저자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것이 어떤 사회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했는지 설명한다. 먼저 아파트를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는 1부는 박정희와 건설 공화국의 의미를 고찰하는 데서 출발해서 IMF를 거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이르기까지 경제 문제와 아파트의 상관관계를 짚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 논의는 대단히 주관적 판단에 의지하고 있으며 감상에 기대고 있는 면이 많다.

  아파트를 키워드로 우리 경제의 발전과정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일관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아니면 2부에서처럼 문화사회학이라는 측면에서 아파트의 의미와 역할을 집중적으로 풀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두 다양한 관점이 하모니를 이루는 게 아니라 이성과 감성의 어설픈 만남으로 읽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나만의 감상일 수 있으나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과 분석을 전제로 하는 기획이거나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아파트를 들여다보는 문화적 관점에 철저했다면 훨씬 읽을 만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시인으로 등단해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문장들은 읽을 만하고 인용된 내용이나 적절한 비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낸다.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나와 무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아파는 건설 공화국, 아파트 공화국으로 명명될 만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아프게 그려낸다. 개발 독재 시절의 고통과 아픔은 이 시대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고 향수에 젖은 사람들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물론 노무현의 ‘아파트’는 한 두 마디로 말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는 어느 아파트 광고의 카피를 기억한다. 역겨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슬픈 천민 자본주의의 단면을 드러내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오늘도 안녕한가? 아니 내일도 모레도 영원히 안녕할 것인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뒤적여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옹호론자든 반대론자든, 강남 공화국 시민이든 아니든 입장은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 손은 뜨거운 물에 한 손은 얼음물에 담근 사람처럼 묘한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된다.


08081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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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8-08-1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찜했는데.
벌써 93권. ^^
잘 지내시죠, 건강하신거죠?


sceptic 2008-08-20 18:26   좋아요 0 | URL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08-08-20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22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 비평정신 1
박홍규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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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기본적으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기 위한 안내다. - P. 19

  나라 안에서 고도의 자율성을 갖는 지역사회와 집단이 존재해야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유와 자치의 인간이 존재해야 하고, 그 인간들로 자유와 자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와 자치의 인간과 사회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 P. 491


  첫 번째 문장과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저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첫 문장을 시작한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나 목적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고 가장 기초적인 전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전체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마지막 장의 정리이기도 하다. 어쨌든 첫 문장과 마지막 문단의 인상과 중요성은 책 전체를 일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박홍규의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전에 박홍규의 사상적 배경을 알고 있거나 다른 저서를 읽어온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더구나 이상 열풍처럼 우리에게 아렌트가 전해지고 그녀의 책을 접한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나는 첫 문장에서 제시한 두 권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순서대로 읽어야 할지 박홍규의 안내서로 만족할 지 망설이고 있지만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은 인연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70여 년 전에 출판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50여 년 전에 출판된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 어떻게 묶일 수 있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현실 정치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두 저서에 나타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본질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그들의 계급적 위치와 사상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두 권의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고 점검하는 책이다.

  들불처럼 타올랐던 광화문의 촛불이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로 어떻게 꽃 필 수 있어야 하는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바라볼 수 있는지 반성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시대를 보는 안목과 정치를 바라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아니다. 시민 혹은 국민으로 명명되어온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양식은 권력자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었고 조작된 욕망과 가치는 세상을 미혹케 한다.

  이 책은 내게 2008년의 대한민국을 위한 망원렌즈와 같은 역할을 했다. 현실의 한 복판에서 개인이 서 있는 정치 지형도를 점검하고 정치와 경제,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은 그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전망과 성찰이라는 관점에서 박홍규의 주장과 논의는 보다 활성화되고 다양한 비판과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홍규는 아렌트를 번역, 소개한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거침없이 비판하며 그들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태도에 일격을 가한다.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자화상에 대한 도전이며 당찬 주장들이 여과없이 전개된다. 조금은 위험스러워 보이는 표현들이 특유의 논리와 일관된 주장으로 펼쳐진다. 그 모든 저자의 주장이 진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토크빌과 아렌트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충분한 깊이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토크빌의 사상이 아렌트에게 얼마큼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하고 있으며 아렌트의 보수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공통점이 우리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일한 정치체제로 인식하고 있는 우매함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위해서도 적절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그들의 저서를 꼼꼼하게 읽어나가며 인용하고 비판하고 해석하며 이전의 논의들에 대한 비판을 빼놓지 않고 있다. 또한 각 장은 두 사람의 주요 저서와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의 개인적인 독법과 두 사람의 주저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실 정치에 대한 적용 문제는 주관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존경하는 인문학자의 용기로 비춰졌다.

  평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이며 그것이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현실정치에서 실현될 때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이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다양한 사상가들의 예지력과 탁월한 안목을 시대를 넘어 현실의 문제를 점검하는 잣대가 된다. 두 사람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하이예크처럼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낳는 것이고, 세계화에 의해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비평정신 총서 1권으로 이 책 뒤에는 이택광과 김영민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기다려진다. 세상은 어떤 곳인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들처럼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080817-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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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모닝빵을 밤에 자주 뜯어 먹는다. 아이 주먹만 한 빵 속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무미건조한 맛이지만 맛이 섞여 있지 않아 우유와 먹기 좋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밤에 책을 읽다 허기질 때 공복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빵보다 뜯어먹기 좋은 것이 책이다.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책을 놓아두고 무료한 시간이면 언제든 책을 펼쳐든다. 산책을 나가면서도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나서야 마음이 편하다. 여행을 갈 때는 물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체의 일부처럼 여분의 책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불안하지 않다.

  가끔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다. 어디엔가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비웃기도 했지만 문득문득 나에게서 그들의 모습을 본다. 중독 혹은 집착에 가까울 때도 있지만 쉽게 조절할 수가 없다. 그리 나쁜 습관도 아니고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몸에 해롭지도 않다면 굳이 끊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라고 자위해 본다.

  어쨌든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책이 없었다면 나는 참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이나 생활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상과 영혼의 색깔을 의미한다. 지금도 무언가 배울 것이 있으리라는 얄팍한 기대로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나를 키운 것 팔할이 책이었다. 물론 공부와 책읽기가 별개일 수 없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많은 것들을 나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직접 확인했으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책장부터 기웃거리고 누구를 만나든 그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확인한다.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와도 배경으로 서있는 책장의 목록을 확인한다.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없으나 관심은 온통 한 쪽으로 집중된다. 읽고 또 읽어도 언제나 목마르다. 영혼을 위한 처방전은 백약이 무효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책 이야기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책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책, 세상을 탐하다>는 책벌레들의 경험담을 모아놓은 책이다.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견디기 위해 책을 선택했지만 책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는 29명의 책벌레가 책에 관한 에피소드를 풀어 놓는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추억들이 재미있고 정겹다.

  때때로 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관심을 갖던 시절부터 책을 읽지 않는 현실에 대한 개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변주된다. 만화가와 코미디언, 시인, 소설가, 출판인, 선생님, 언론인과 NGO에 활동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책사랑은 애틋하기만 하다. 책과 함께 생활하며 꿈을 꾸고 늙어가며 사는 모습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만화경처럼 즐겁기만 하다.

  제한된 분량에 자신의 간단한 경험이나 추억, 책에 관한 생각이나 일화를 소개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읽는 사람은 향좋은 뷔페의 음식을 음미하듯이 그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즐겁게 들어주면 그만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깊은 공감과 긍정의 미소를 보내면 될 것이고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책을 가까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 이외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1년을 보내는 학생과 선생님이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서 준비하거나 꿈꿀 수는 없다. 일단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고 욕심을 내자면 한이 없는 책읽기의 진경을 맛본다면 과연 공부도 즐거울 수 있고 읽어야 할 책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뚜렷한 목적을 위한 책읽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재테크, 자기계발서의 열풍이나 칙릿으로 분류되는 가볍고 감각적인 소설에 한정된 독서는 편식보다 정신건강에 해롭다. 의무여서는 안되겠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꾸준한 독서는 정신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인생관을 바꾸어 준다. 세상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고 사람에 대한 안목을 만들어주며 나의 행동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을 찾아 줄 수도 있다.

  책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널려있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들과 공감하며 책 속에서 많은 꿈을 꿀 것이다. 절대 늙지 않는 ‘청년 정신’을 잃지 않게 위해 노력할 것이며 세상이 어떤 곳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기 위해 공부할 것이다. 그것은 목적없이 걷는 산책과 같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며 혹여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이 보인다면 주저없이 그 길을 걷고 친구가 생기면 발걸음을 맞춰 볼 것이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은 이미 가을에 대해 속삭였고 이제는 서늘한 바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책상에 쌓여있는 몇 권의 책이 있고 밝은 불이 있기 때문에 오늘밤도 행복하다. 중요한 시험이나 무더위 따위는 책 속에 묻어 버릴 수 있을 듯하다. 내일이 지나면 이제 홀가분하게 다시 책 속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벌레들이여, 안녕들 하신가? 각자 제자리에서 열독!


080813-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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