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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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창을 사랑한다는 말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는 김현승의 말이 새삼스럽다. 우리는 때때로 새롭고 시선한 눈을 책에서 얻는다.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기도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도 새삼스럽게 정리하고 확인한다. 나는 그렇게 책을 통해 같은 사물을 보고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타인의 눈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100% 모두 동의할 수는 없고 공감하기도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고 반론을 제기할 때도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의사소통 과정이고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고 말없이 정서를 공유하기도 한다.

  특히 나이, 지식, 학력, 세대, 지역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영화’라는 장르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예술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고전평론가’라는 특이한 직함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고미숙의 새 책 <이 영화를 보라>는 조금은 안타깝게 읽었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섯 편의 영화를 다 보았기 때문에 안타까웠고 같은 영화를 보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한 시선이 안타까웠다.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서편제, 밀양, 라디오스타 - 이 여섯 편의 영화를 분석한 책으로 고미숙은 머리말에서 ‘나는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인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영화를 보는 독법은 예사롭지 않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에 기초한 영화 뜯어보기는 구석구석 영화 전체를 조망하는 미시적이지만 거시적 관점을 하나도 놓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괴물’을 보면 ‘위생권력과 스펙터클의 정치’라는 부제에서 보여주듯이 교육은 학교에 건강은 병원에 저당 잡힌 채 위생과 청결이 근대화의 첩경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의 무의식을 파헤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어내야만 영화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재밌게 보았는지, 무엇이 재밌었는지 왜 무서웠으며 괴물보다 더 끔찍한 현실의 모습을 우리는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고미숙은 표상을 전복하는 ‘황산벌’을 이야기하면서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을 풀어내고 있으며 사투리로 범벅이 되어버린 전쟁의 비장미를 가볍고 코믹하게 그려버린 감독을 이해한다. 말하자면 전쟁은 미칫 짓이다! ‘거시기’를 통해 말의 무의식적 속성을 간파하고 영화를 통해 감독의 의도보다 먼저 관객에게 전달되는 반체제적인 병사 ‘거시기’에게 전쟁과 민족의 의미를 묻는다.

  포르노그라피와 멜로가 범벅이 된 ‘음란서생’, 1916년 <조선의 미>를 통해 ‘한恨’의 정서를 심어준 야나기 무네요시가 새롭게 재조명되는 ‘서편제’, 가족․고향․신으로 대표되는 폐쇄회로 속에 갇힌 ‘밀양’, 이주민들의 접속과 변이를 그려낸 ‘라디오스타’도 어느 것 하나 대충 보아 넘긴 영화가 없다. 하긴 자주 보지 않는 영화 중에 기억할 만한 혹은 인상 깊은 영화에 대해 근대를 이해하고 우리의 삶에 내재된 특징들을 그려 낸 영화들에 대해 어찌 대충 보아 넘길 수 있었겠는가. 고미숙의 영화 이야기는 그녀의 관심사인 고전과 근대, 탈근대를 통한 탈주와 유목의 세계를 누비고 있다.

  에필로그 형식으로 붙어 있는 글들 또한 영화를 이해하고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 데 유효하게 읽힌다. 앞서 소개한 여섯 편의 영화를 하나의 주제나 범주로 묶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환상과 모험을 미끼로 던진 영화 산업의 소비재로 볼 수만은 없는 영화들이다. 흥행과 작품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감독들의 고민들을 동정하거나 읽어 낼 필요도 없다. 그걸 걱정하는 감독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극히 일부분인 것 같지만 무수한 코드와 다중분할 접속 장치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벤야민의 고민이 어떠했는지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영화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안 본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꿈을 꾸고 생각하고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견하고 현실을 성찰한다.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항상 우리 곁에서 가깝게 기능하는 가장 친근한 매체인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또 하나의 가상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우리가 열망하는 세상과 그것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영화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외면하고 싶은, 알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공포와 경고, 때로는 해학과 신명으로 풀어낼 수 있는 우리 영화를 관객들은 항상 기다리고 있다. 수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킬 영화를 욕망하는 영화가 없다는 아이러니!

  고미숙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제나 영화에서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들의 봉상스(상식)를 충족시킬 영화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보여지는 혹은 만들어지는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의 패러독스(역설)를 읽어낼 수 있는 영화를 우리는 기다린다. 만국의 관객들이여 단결하라, 그리고 영화여 영원하라!


080707-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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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 철학.정치 편 -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
박민영 지음 / 청년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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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라고 물어볼 때조차 우리는 무의식에 내재된 플라톤의 현상과 본질의 문제를 끄집어 내는 것이다.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세상을 해석하고자 했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 전개된 모든 서양 철학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차지하더라도 우리에게 직면한 삶의 문제는 시대의 변화 속도와 눈부신 발전에 발맞춰 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인간이 해왔던 모든 생각의 흔적을 우리는 이즘ism이라 부른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은 앞선 시대를 정리하고 그 시대정신zeitgeist을 한마디로 명명하고 싶어하는 범주와 구별의 본능을 발휘한다. 우리는 그것을 이즘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인간의 체계적 사유의 산물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이즘이다.

  박민영의 <이즘>은 곁에 두고 오래 참고할 만한 책이다.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이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책이다. 철학과 정치편으로 나온 이 책의 다음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면 이 책은 성공적이다. 저자는 저술가로서 갖추어야할 꼼꼼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자기 판단과 신념까지 갖추고 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겠다. 세상에 객관적인 생각이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나는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해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해할 필요성을 느낀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성격을 반영하고 사회적 성격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에리히 프롬의 말은 이즘의 사회적 역할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말은 역도 성립한다. 사회경제적 조건은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즘은 하나의 문화현상이나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말이고 이 말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달라지며 사회가 변화 발전하기도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한 몽매한 현실 정치인들, 관료들, 언론들의 작태는 2008년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계층의 견해차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쏟아지는 장대비가 대한민국의 이즘을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현실에 복무하지 못하는 모든 이즘은 가라. 저자의 말대로 이즘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세계를 보는 나를 보는 일’이기도 하다.

  경제학자 하이예크는 이런 말을 했다. “이론화되지 않은 사실은 침묵한다.” 이 말을 이즘과 연관시켜 이해하면, 어떤 사물이나 사건은 ‘이즘’이라는 ‘체계화된 이론’ 속에서만 그 존재와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는 말이 된다. 이즘은 그 자체로 체계를 갖춘 하나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다.

  머리말에서 인용한 하이예크의 말이 이 책의 의미를 함축한다. 또한 저자는 이즘을 ‘관계의 산물’이라고 표현했다. 당대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 이전 역사와의 관계, 다른 이즘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 이즘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조건과 인류의 역사, 사회, 문화, 경제적 조건을 이해하는 고도의 정신 작용이다. 단순하지 않은 작업을 시도한 박민영의 노고에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남는 의문과 미진함은 무궁무진하다. 부록에 정리되어 있는 이즘 일람과 이즘 연표, 그리고 참고문헌을 뒤적이며 평생을 보내고 싶은 욕망! 한 개인의 생각이 반영된 이즘은 정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없지만 인류의 사상사를 일괄할 수 있다는 무임승차의 특권이 주어진다. 많이 팔릴 수 없는 책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책은 이런 책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철학편에서 경험론을 시작으로 계몽주의, 공리주의, 구조주의, 니힐리즘, 데카르트주의, 마르크스주의를 거쳐 칸트주의, 플라톤주의, 합리론, 해체주의, 헤겔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정치편에서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를 시작으로 관료주의 군국주의, 나치즘, 마오주의, 마키아벨리즘, 매카시즘을 거쳐 아나키즘, 유토피아주의, 자유주의, 파시즘, 페이비어니즘에 이르는 이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지향하는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전망은 늘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개인과 사회가 조화와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진화론적 관점은 아니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보다 다른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준점을 설정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게 이즘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 관계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도 사회와 사회와의 관계라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떠오르게 한다.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 않고 과거의 이즘에 대해 정리하는 데 충실하지만 그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정리된 생각들은 현재를 돌아보고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지향할 수 있는 이즘의 새로운 발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전개되고 있는 이즘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시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어떤 이즘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까, 먼 미래에.


08070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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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착해질 때
서정홍 지음 / 나라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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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로 쓰는 글이 있고 가슴으로 쓰는 글이 있다. 차가운 이성과 냉철한 판단력, 비판적 관찰력은 나를 깨어나게 하고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반면에 뜨거운 가슴과 열정으로 생에 대한 감각을 보여주는 글은 부드럽고 진한 감동을 준다. 영혼의 깊은 울림을 주는 글과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글 중 어느 것을 우위에 둘 수는 없다. 검의 양날처럼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정홍의 새 시집 <내가 가장 착해질 때>는 지금 창 밖에 후드득거리는 빗소리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슴을 적신다. 끝없는 관심과 애정어린 관찰을 통해 대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생활’이 곧 시가 되는 감동을 경험한다. 농촌에서 몸소 겪은 일들을 들려주는 솜씨가 탁월하다. 농부가 되어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은 피상적으로 낭만과 연결시킬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생활이며 힘겨운 삶의 현장이다. 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을 보듬고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우리의 걱정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시집을 읽어왔지만 정말 오랜만에 눈물이 날 뻔한 시들을 여럿 만난 시집이다. 먼 데 하늘을 바라보며 산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내겐 이미 아주 소중한 시집이 되어 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진솔한 몸짓과 꾸밈없는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보태지도 덜어내지도 않고 인상적인 순간이나 찰나를 잡아내고 혹은 긴 호흡으로 타인의 생을 숙연하게 보여준다. 시는 그렇게 우리를 조금씩 젖게 만든다. 깊은 밤 어둠을 적시는 장마처럼.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고

봄비가 내리는데
외송 할머니가 비를 맞으며
정자나무 아래 혼자 서 있다.

“할머니, 누굴 기다리세요?”
“읍에 일 보러 나간 영감
하매나 올랑가* 하매나 올랑가
기다렸는데 아직도 안 오네.”
“할머니, 옷이 다 젖었어요.
감기 들면 어쩌시려고.”

눈치도 없이 비는 자꾸 내려
야윈 할머니 어깨 위에 뚝뚝 떨어지고
멀리 개 짖는 소리만 아득한데
하매나 올랑가 하매나 올랑가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고…….

* 하매나 올랑가 : 이제나저제나 오려나.

  그리움엔 나이가 없다. 읍내 나간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청춘의 그것과 다름없다. 생의 기억과 행복의 순간들은 늘 반복되고 온몸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삶에 충실한 사람들은 순수하며 거짓이 없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고개 숙이게 한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장면들이 마치 거울처럼 우리를 되비친다.

사람이 그리운 날

여럿이 어울려
산밭에서 고구마 싹을 심다가도
여럿이 어울려
저녁밥 먹다가도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워 미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혹은 익숙한 곳에서 우리는 사람을 그리워한다. 어깨를 부대끼며 혼잡한 거리를 걷다가 느끼는 군중속의 고독이 차라리 행복할 지도 모르겠다. 산밭에서, 어울려 먹는 밥상에서 갑자기 사람이 그립다는 말은 무엇인가. 감당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겠다. 미치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겠다.

아름다운 시절 3
- 외식하던날

  한 달에 한 번 우리 식구들 외식하는 날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미리 저녁밥을 먹이고 통닭집으로 데려갔다. 한 달에 한 번 닭고기 맛을 볼 수 있는 날, 한창 자랄 나이에 닭 한 마리씩 거뜬하게 먹어 치우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흐뭇할 텐데 왜 저녁밥을 먹이고 데려갔을까?

  아이들이 다 자란 이제야 알았다. 닭 한 마리 값이라도 아껴서, 가난한 셋방살이 퍼뜩 벗어나려고 저녁밥을 먹이고 외식했다는 것을. 그런데 스무 살이 지난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빈속에 고기를 먹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밥을 먹고 나서 고기를 먹는 버릇이 들었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세상인데, 왜 문득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거시적인 안목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갈등을 분석하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다가 이런 시를 만나면 맥이 탁 풀린다. 추상적 이론보다 삶이 구체성이 주는 감동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법이다. 밥을 먹이고 닭고기를 먹으러 가는 가족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이와 유사한 우리의 이웃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들만의 리그는 더더욱 치열해지고 가슴만 따뜻한 이웃들은 그 이유도 모른 채 어떻게 이 현실을 바라보고 실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조차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김수영의 말대로 우리는 왜 작은 것에만 분노하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도 한다.

이른 아침에

감자밭 일구느라
괭이질을 하는데
땅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
툭 튀어나왔습니다.

날카로운 괭이 날에
한쪽 다리가 끊어진 채
나를 쳐다봅니다.

하던 일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내내
밥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물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가슴이 뻐근했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사람이 있다는 말인지. 착한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그 마음의 언저리가 헤아려지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진 착한 인간은 결국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착해질 때’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고 씨를 뿌려 착해질 수 있다면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고 싶다. 모두 나가 이 땅의 흙을 만져보고 씨를 뿌려 보라고. 타인의 배려와 나눔을 교실에서 배울 수 있을까?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순간들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안다고 하는, 배웠다고 하는 것은 결국 몸의 기억이며 습관이다. 그렇게 배워야 이런 시를 쓸 수 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내가 이른 새벽부터 일하면
누군가 아무 걱정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기를.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내가 사나흘 굶으면
누군가 아무 걱정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기를.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내가 세상 걱정 때문에 잠 못 들면
누군가 아무 걱정 없이
깊은 사랑 나눌 수 있기를.


  자기 희생을 통해 타인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지극히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생각은 배울 수 없다. 스스로 깨닫거나 체험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다. 나를 통해 너를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을 시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머리고 쓰고 정제된 언어로 매끄럽게 표현된 시가 울림과 감동이 없는 이유는 바로 서정홍과 같이 온몸으로 쓰는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시인은 다섯줄 짜리 시작법을 시로 썼다.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한 진리를 여러 권의 책으로 묶어낸 수많은 평론가와 시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재밌는 말장난이 아니라 시란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낸 기막힌 구절이다. 서정홍은 이 시를 통해 그리고 앞서 인용한 시들을 통해 시의 본질을 말하고 있으며 그 진경이 무엇인지 소박하고 깨끗하게 펼쳐 보여준다.

  편안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읽기만 하면 되는 이 책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배웠다.

시인이란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다.                                                   


08070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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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통합적 사유를 위한 인문학 강의 1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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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온다는 예보를 믿고 남쪽 행을 포기했다. 예약을 취소하고 영화 한 편으로 위로하니 흐린 하늘이 한결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창가에 앉아 얇은 책 한 권을 꼼꼼하게 읽으며 간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바쁘고 해야 할 공부(?)와 욕심나는 책들은 여전히 늘어만 간다. 일종의 강박증이거나 또 하나의 벗어나기 힘든 욕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이렇게 마음 맞는 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진지하면 더욱 그렇다. 강유원의 책은 예전에 김광석의 노래가 그랬던 것처럼 무조건 사서 읽는다. ‘래디컬’이란 단어를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이 나와 일치할 순 없겠지만 그의 생각과 공부 방법,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은 더 없이 매력적이다. 물론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점으로 그렇다. 친구가 없을 것 같은 그의 삶의 태도와 공부 방식은 의도적으로 언론을 기피하고 대인관계를 정리하는 강준만의 방식과는 또 다를 것이라고 짐작한다.

  스스로를 삼가고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독서와 강의를 통해 앎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공유하며 더불어 공부하는 그의 방식은 ‘공부’에 관한 한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방식과 강유원의 태도는 여전히 도전하고 노력해야 하는 대상과 공간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없다는 말 같지 않은 핑계로 미루고 있지만 마음의 빚처럼 청산되지 않고 조금씩 더디지만 발걸음을 내딛뎌야 하지 않나 싶다.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시간은 없고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제대로 살기는 제대로 죽기보다 어렵다.

  강유원의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는 통합적 사유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노트처럼 묶어 낸 책이다. 그러니 더없이 자유롭고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저자의 목소리는 생생하고 의도와 감정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하는 부분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올 상반기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많이 배운 책을 꼽는 다면 이 책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책을 읽는 근본적인 이유와 태도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고 성찰하게 해 준 책은 없었다. 다른 책들을 통해서 조금씩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겠지만 나는 강유원의 이 책을 통해 가장 많이 공감하고 고민했으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진지한 모색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수박 껍데기만 핥아대는 책읽기에 대한 뼈아픈 충고와 고전을 제대로 읽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방법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강유원이 제시하는 방법이 최선을 아니겠지만 적어도 노력과 태도 면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더구나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그것들을 정리하고 공부를 마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일치되는 공통된 견해이다.

  ‘정치사상’이라는 주제로 묶어 놓은 책은 플라톤의 <국가>와 <정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로크의 <통치론>이다. 이에 앞서 고전을 읽을 때 유념할 점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제목만 옮겨 보겠다. ‘오늘날 통용되는 분류 방식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기록매체나 편집 방식이 오늘날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라. 저자 자신과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해 알아야 한다. 기본 개념을 철저하게 익혀라. 텍스트의 형식을 살펴라.’ 깊은 공부와 꼼꼼한 책읽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생각들이다. ‘정치사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거시적인 관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제 서양 고전을 통해 서양의 정치사상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화려한 말빨을 앞세우지도 대단한 이론도 없다. 그가 주장한 대로 있는 사실 그대로 서술함으로써 얻어지는 이 놀라운 결과는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특별함이다. 책 자체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고 분석하고 정리하는 능력과 노력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나는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지만 강유원이 제시하는 방식으로 따진다면 반절도 읽지 못한 셈이 된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데 비법이나 정답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반적으로 취하는 방식은 책을 읽고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많은 걸 얻었다. 제시한 방법대로 읽지 못하더라도, 그대로 따라하기 힘들더라도 책을 보는 안목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참고로 제시한 몇 권의 책을 얻었고 로크의 <통치론>이 숙제로 남겨졌지만 200페이지도 안되는 이 얇은 책을 통해 두고두고 새겨야할 지침과 방법들을 배웠다.

  직접 강의를 듣지는 못했지만 이 시리즈는 계속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다려진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50번 읽었다는 전설적인 공부 방법만으로 그를 존경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고전을 읽는 방법과 태도가 이러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 나가면서 부끄러워졌다. 좀더 갈고 닦고 배로 노력할 일이다. 무릇 공부는 이제부터라고 믿는다. 마음을 닦고 몸을 닦고 뜻을 바로 세우고 영혼을 말게 하는 인문학 공부는 깨닫는 즐거움을 전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목적도 없고 끝도 알 수 없지만 묵묵히 걸어야 할 길이다.

  덧붙여 글쓰기 훈련에 대한 충고는 더더욱 깊이 새겨진다. 요약문 쓰기, 보고서 쓰기, 소논문 쓰기로 나누어 2장과 3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데 강유원만의 방식이 아니라 군살을 뺀 정확하고 잘 벼려진 칼날같은 글쓰기가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서술이 보여주는 힘이 무엇인지 잘 소개되어 있으며 힘을 빼고 감상적이지 않으며 정확하게 쓰는 방식에 대해 천천히 고민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갈 길은 바쁘고 공부해야 할 책은 넘쳐 난다. 그것이 무엇이든 왜 선택을 했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안 되는 공부를 선택한 강유원이나 그 강의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나 그의 책을 보고 고개를 숙이는 나 같은 사람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뜻이 통할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진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꼭 이 책을 읽어야 한다.


080629-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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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8-06-30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쓰신 <몸으로하는 공부>의 리뷰를 읽고 저도 따라 읽었습니다. 참 기쁘고도 부끄러운 경험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번 책도 여력이 닿는대로 따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리뷰에 대한 감사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이 Thanks To밖에 없어 몇자 남겼습니다. 고맙습니다.

sceptic 2008-06-30 23:44   좋아요 0 | URL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책도 머리로 읽는 책이 있고 마음으로 읽는 책이 있는데 가끔 몸으로 읽는 책이 있지요... 공감해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인문학 고전 공부는 대학에 다니거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세계의 근본적인 바탕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 P. 14.

우리가 어떤 책을 읽을 때 그 책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그 책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개념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 P. 26

철학은 한 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를 우리 함께 고민해 보자는 시도이다. 그래서 환상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한마디로 딱 부러지는 구원의 메시지도 없다. - P. 34

어떤 사람들은 플라톤이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인 시대에 독재를 찬양했으며, 그에 따라 그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독재를 찬양한 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존재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플라톤 읽기의 요체다. - P. 80

고전은 역자해제를 먼저 읽어서 참조한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 P. 100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잘못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범주 착각의 오류이다. 가령 이명박이 성공한 CEO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보자. - P. 113

글을 쓸 때는 증거가 많고 결론이 간결해야 한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과 많이 벗어난 멋있는 말을 마지막에 장식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 P. 114

논술시험 볼 때 느낀 점 쓰면 감점이다. 100명이 논술을 보면 90명은 느낀 점을 쓴다고 한다. 객관적 사실만 있는 그대로 서술해서 전제와 결론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만 점수를 받는다. 보고서는 100퍼센트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 P. 115

보고서는 앞서 말했듯이 어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중에서 좁은 범위의 주제를 정한 다음 그 내용을 책에 있는 그대로 정리하는 것이다. 소논문은 보고서와는 달리 자신의 주장이 들어가는 글이다. 그렇지만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장을 정해 놓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모아서 규모 있게 제시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 P. 115

보고서든 소논문이든 자신이 서술하고 주장하는 주제의 범위는 좁을수록 좋다. - P. 115

먼저 좁은 범위의 주제를 잡는다. 그런 다음 해당되는 주 텍스트를 읽고 해당 주제에 대한 간략한 정리글을 쓴다. 이 개요를 가지고 참고문헌을 찾는다. - P. 116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글을 쓰는 데 창의력은 중요하지 않다.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은 인문학 공부를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의력 뛰어난 사람은 돈 되는 일을 한다. 인문학은 보잘 것 없더라도 온전히 자기 것을 갖고자 하는 이들이 몸으로 때워가며 공부하는 거다. 그러니 창조적인 메시지를 넣으려 하지 말자. 진짜로 무서운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서술했는데 그 서술을 읽고 난 독자가 폭풍을 맞은 것처럼 떨게 되는 그런 것이다. - P. 117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핵심은 다음 네 가지이다. 소논문의 주제는 범위를 좁게 잡아라. 자신이 쓸 글의 목차를 짠 다음에 참고문헌을 찾는다. 참고문헌을 읽을 때는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다. 글을 쓸 때는 메시지 강박증에 빠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것만 서술해야 한다. - 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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