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의 7일간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영미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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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와 명왕성만큼 닿을 수 없는 관계가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아닐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 어머니와 딸의 관계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이다. 물론 성격과 상황에 따라 관계는 변화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그것은 나이라고 하는 불가항력적인 요인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어린시절 아장거리며 품에 안기던 기억, 선머슴 같던 유년시절을 거쳐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버지와 딸은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세대가 달라지고 시간이 흘러도 그만큼의 시차가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딸이 어머니가 되고 나이가 들면서 그 때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 둘의 관계는 또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며 또 다른 관점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차이와 세대 차이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관계는 가장 친밀하고 애틋한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애증의 거리를 회복할 수 없도록 만들기도 한다.

  <아빠와 딸의 7일간>은 환상적 리얼리즘이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황스럽고 놀랄만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어 환상적이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공감할 만한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돌아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실적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어 서로를 이해하는 상황극이나 역할극의 성격을 보여준다. 흔히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쓰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 볼 수는 없다. 다만 공감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신의 경험과 느낌으로 유추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것을 실제 상황으로 치환시켜 놓고 있다. 아버지가 딸이 되고 딸이 아버지가 되는 상황.

  고등학교 2학년 여고생과 마흔 일곱 살 중년의 아버지는 대화도 없고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부녀지간이다. 아버지는 딸에게 말도 건네고 친해보려고 무던히 노력하지만 세대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신세대 딸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진으로 인한 전차 사고로 인해 두 사람은 심한 충격을 받고 깨어나지만 몸이 뒤바뀌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부분은 소설만이 가능한 상상력의 힘이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어 신선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아버지와 딸의 몸이 바뀐다는 상상은 끔찍하지만 재미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드라마로 방영된다는 데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상황 설정이 재미있어 호기심에 읽게 되었지만 나름대로 관계에 대한 의문과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다. 문장은 가볍고 쉽게 읽힌다. 요즘 팔리는 대부분의 일본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담  이 넘어가는 책장과 코믹 터치의 문장은 흡인력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갈 만하다.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최고는 아니지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다.

  타인은 이해 불가능한 텍스트에 불과하다.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소모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무모한 도전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며 외로움과 절망 속을 헤매기도 한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은 어쩌면 산을 옮기는 것보다 힘들다. 주변을 보라. 사소한 언쟁에서 중요한 판단에 이르기까지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인정은 정말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이 현상을 나는 보수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책에서 보수적인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딸이다. 어리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으나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 노력도 부족하다. 오히려 아버지가 딸에 대한 배려와 노력이 드러난다. 물론 사고 이후에는 서로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완전히 뒤바뀐 상황과 시선이 나타난다. 자신의 장점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나의 생각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것인지 깨닫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기본적인 서사구조와 구성 자체는 지극히 단순하다. 7일 만에 사고로 다시 제자리를 찾으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그간 부녀가 겪었던 지극히 비일상적이고 황당한 순간들은 에피소드로 남겨진다. 제 자리로 돌아온 두 사람은 또 예전처럼 다정한 대화도 없고 멀고 먼 존재로 돌아간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폭과 깊이는 분명 이전과 달라진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지난 7일간의 경험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통과제의를 겪고 어른으로 성숙하는 성장소설처럼 몸이 뒤바뀐 7일간은 두 부녀에게 지독한 통과의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적당해 보인다. 다소 황당하지만 흥미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코믹하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내용 또한 그러하고 여고생의 연애와 중년 남성의 일을 꼼꼼히 담고 있어 폭넓은 계층의 관심을 끌 만하다.

  가볍고 재미있는 소재로 한번쯤 서로의 관계를 살펴보고 고민해 볼 수 있다면 소설이 할 수 있는 역할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사춘기 딸을 둔 아버지들에게, 중년의 아버지를 둔 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멀지 않은 나의 미래는 아닌가 싶어지기도 해서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아니 어쩌면 소설이 현실보다 사실적일 수 있다는 불안감을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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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환상의 물매
김영민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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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연인은 늘,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 한다”는 결여에 시달리는 법이다. 그 시달리는 방식은 은밀하고 집요하다. 수동과 능동의 정서가 변덕스럽게 교차하면서 양철판을 긁듯이 간지럽힌다. - P. 21

  결핍과 잉여는 연애의 영원한 딜레마이다. 항상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동반한 열병처럼 찾아오는 연애의 시작은 찬란하기보다 깊은 고통이다. 견딜 수 없을만큼 지독한 불면과 울렁증으로 연인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낸 열정 속에 함몰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그 지속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후 벌어지는 상황과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관계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되지만 식어버린 감정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김영민은 ‘환상의 물매’라는 말로 ‘사랑’에 대한 정의와 분석을 시작한다. 은밀하고 집요한 방식으로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는 그 모호한 감정에 대해 정의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김영민은 특유의 사색적이고 분석적인 방식으로 하나하나 사랑의 모호한 안개를 걷어낸다.

  우리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표현과 문장들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언어의 사유의 힘이며 개념은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김영민의 문장들은 대상의 분석에 천착하고 있다. 언어와 개념들 간의 관계는 일시적이고 우연적일 수 없다. 사랑이라는 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아포리즘들은 짧은 문장들의 긴밀한 긴장감을 통해 더욱 견고하고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글들이 이어진다. 때로는 한 문장으로 명징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고 때로는 탄탄한 구조의 문장들이 하나의 관계망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사유하고 공감하며 돌아본다. 김영민의 글들을 계속 읽게 되는 이 묘한 매력에 대해 뭔가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젊은 시절 2000여편의 시와 6편의 소설을 불태웠던 지난한 과정으로 길어낸 사색과 문장의 힘일까?

모욕과 상처의 기억은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여전한 폭력이다. 왜냐하면 상처의 기억은 곧 기억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 P. 46

  예를 들어 이와 같은 문장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언어를 뒤집어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전복시킨다. 상처의 기억이 기억의 상처가 된다는 동어반복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은 순간 멈칫거리게 한다. 내 기억의 상처는 무엇일까? 그것은 상처의 기억일까?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주제를 다양한 콘서트처럼 아포리즘 형식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김영민의 힘은 놀랍기만 하다. 단순하고 가벼운 놀이로서의 감정이 아니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욕망과 생활의 대체물로서 사랑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 속에서 풀어내고 있는 이 놀라운 감정을 김영민은 차분하게 사유하고 있다.

  필연이고 숙명이라 굳게 믿고 싶었던 환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사랑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열정과 자기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보다 객관적인 거리와 시선으로 사물과 상황을 바라본다. 우리는 그것을 상처의 기억이라 부른다.

  철저하게 남녀 간의 연애 감정을 전제로 한 이 죽일놈의 사랑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사랑의 실체가 아니라 타인의 관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변주되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대한 경의로움보다는 아쉬움과 기억의 상처 때문이리라.

  여전히, 사랑은 환상이며 환각이고 환유이며 환멸이고 환락이며 환영이다. 누구나 한 번쯤 정의내리는 사랑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세계를 넘어 사랑의 진경은 어디쯤에서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만 철학작 김영민이 말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감성과 파토스의 세계가 아니라 이성과 로고스의 세계로 수평 이동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그 안에서 답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그저 한가롭게 거닐다 어떤 순간을 조우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모호한 경계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는 말일 수도 있겠다. 김영민은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다. 자신의 마음조차 모른다는 사실 속에 ‘사랑의 진실’이 맥동한다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사랑은 도대체 무어냐? 책장을 덮고서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알 수 있다면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일까?

“달은 기울어 밤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경이든 오경이든, 두 사람의 마음을 두 사람조차 모른다는 사실 속에 사랑의 진실이 맥동脈動하는 법. 그 마음은 어느 먼 미래의 것이었고, 매번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속하였다. - P. 255


0806025-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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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8-06-26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보다는 여기가 한가로운거 같아요~ 리뷰도 찬찬히 읽어볼만하지만
댓글이 더 재미있어요. ^^
동무와연인 이후로 김영민한테 반해버리셨나바요~ ㅎㅎ

전 사랑은 미친짓이다, 라는 책을 보는데 잘 들어오진 않네요
그래도 윤대녕의 글은 단숨에 읽었어요
음.. 이런 사람있으면 사랑하고 싶을 것 같아요 .
시드니폴락감독은 작품을 지탱하는 건 골격이고 그 골격이 없으면 작품은 무너지지만
그건 보이지 않아야 한다, 골격이 보이면 실패작이다, 라고 말했다지요..
윤대녕이 그런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바로 그런 어떤점에서 닮아있어요..

바쁘시다면서 어쩜 이런 일기를 쓰실수 있죠?
연구대상이세요. ㅎㅎ
편안한 밤 되시길. ^^

sceptic 2008-06-27 12:30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골격에 대한 시드니폴락의 이야기...

소설이든 어떤 이야기든 서사구조는 늘 그런식이죠. 숨은 골격에 붙은 살덩이만 파먹을 수 없으니까요.

김영민의 문장은 탄탄한 골격을 겉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물스럽지만 그 점이 맘에 들기도 하구요. 현학적이거나 작위적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소화시키고 싶은 욕망과 여운이 남으니까요.

바빠도 일기는 써야죠...^^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시죠?

2008-06-29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3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3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릇 연인은 늘,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 한다”는 결여에 시달리는 법이다. 그 시달리는 방식은 은밀하고 집요하다. 수동과 능동의 정서가 변덕스럽게 교차하면서 양철판을 긁듯이 간지럽힌다. - P. 21

결여감은 곧 잉여감을 낳고, 잉여감은 다시 결여감을 불러들인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했던 사람을 동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은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동경한다. - P. 39

모욕과 상처의 기억은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여전한 폭력이다. 왜냐하면 상처의 기억은 곧 기억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 P. 46

사랑은 운명적인 접슬接膝이 아니다. 사랑은 우연하게, 그리고 우연한 ‘사이’에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찾아 나온다. 알리바이가 아닌 사랑, 칸트의 물자체Ding-an-sich 같은 사랑을 보았는가? - 85

물건들 사이의 인력이 아닌, 연인 사이의 그리움이 대칭적일 리 없고, 또 흔히 그리움이란 그 속성상 비대칭성에 의해서 그 빈도/강도가 높아지는 법이니, 그리움은 인력이긴 하되 바로 그 물매 효과에 의해서 생기는 경사의 템포 탓에 일종의 공포, 혹은 위기의식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 140

그리움도 만남을 연기하는 과정이요, 애무도 섹스를 연기하는 과정이요, 연애도 혼인을 연기하는 과정이요, 사랑도 그 완성을 연기하는 과정일 수 있을 터. 심지어, 과연 삶인들, 죽음을 연기하는 기술적 과정이 아닐런가? - P. 223

고백과 소문은 서로를 모른 체하면서도 실은 내연의 관계다. 우선 둘 다 반칙이며, 둘 다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 P.250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의 화제畵題는, “달은 기울어 밤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경이든 오경이든, 두 사람의 마음을 두 사람조차 모른다는 사실 속에 사랑의 진실이 맥동脈動하는 법. 그 마음은 어느 먼 미래의 것이었고, 매번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속하였다. - 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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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역사 - 역사를 만든 우리가 몰랐던 사건들의 진실
조셉 커민스 지음, 김수진.송설희 옮김 / 말글빛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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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으면서 병사들을 생각했을까? 아니면, 조국과 민족이라는 혹은 역사적 사명이라는 혹은 자신의 영웅심과 사명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했을까? 히틀러는 영국을 폭격하면서 세계 제국의 꿈이 코앞의 현실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게르만족의 위대함과 유대인이 멸종된 세상을 생각했을까?

  역사에 가정법을 들이대는 가장 멍청한 짓을 해보는 것은 본능적인 호기심 때문이다. 프루스트가 말한대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영원한 아쉬움은 한 사회를 추동하는 또 다른 힘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벌어진 사실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역사가들의 판단은 과연 ‘진실’에 얼마나 접근했을까? ‘진실’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르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의미 있는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조셉 커민스의 <만들어진 역사>는 ‘역사를 만든, 우리가 몰랐던 사건들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진실일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일반적인 상식에 기대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 상식 뒤집기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거창한 제목과 과대 포장은 오히려 책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시킨다.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는 훌륭한 책이지만 부제에는 동의할 수 없다.

  조셉 커민스는 이 책에서 자신있는 목소리로 역사적 사건들을 재해석하거나 특별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는 않다.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에서 시작하여 2001년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움직인 중요한 사건들을 점검하고 그 순간을 묘사하여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역사의 최종 의미는 아니겠지만 기본 전제임에는 틀림없다. 저자는 이 기본 전제에 충실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해석이나 잘못 전해진 이야기들 그리고 역사적 평가와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사를 다룬 다른 책들과 구별짓는 특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하나의 사건을 정확한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역사 시대를 구분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현재형으로 들려주고 그 결정적 순간이나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의미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물론 이 사건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가정법을 들이대고 싶은 사건들이다. 그래서 익숙하게 들어왔지만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420페이지 분량이지만 중간 중간 사진과 그림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의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넣고 가정법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전 세계 역사를 고루 연구하고 통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내용이다. 여기서 ‘전 세계’란 물론 유럽과 미국을 이르는 말이라서 서글프다.

  특히 동양에 관한 역사는 ‘베트콩’(원문이 어떠하길래 역자는 이런 표현을 썼는지 그 저의가 대단히 의심스럽다)의 구정 총공세가 전부이다. 저자의 세계사에 대한 안목을 탓할 필요는 없겠다. 이쪽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관심이 없거나 아는게 없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에서 전부를 얻을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에 동의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나름의 가치와 재미를 지니고 있다.

  대체로 전쟁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기준에 부합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잔인한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십자군 전쟁이나 잔 다르크의 죽음,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 솜므 강 전투, 히로시마 원폭 투하 등의 사건을 접할 때마다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우리의 삶은 엄청난 살육과 전쟁과 고통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물론 지금도 팔레스타인 문제는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고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침공 등은 만들어진 역사가 아니라 진행형의 역사이다.

  미국인의 시각이라는 한계로 볼 수는 없다. 객관적인 역사책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책은 세계사에 대한 상식 바로잡기 정도의 의미로 읽는다면 재밌다. 더 이상의 깊이와 깊은 성찰은 관련 분야의 다른 책을 통해 충족시켜야 할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과 중요한 사건들을 재조명해보는 책으로 접근한다면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한 가지 문제는 24,500원이라는 책값이다. 표지와 판형과 삽입된 사진과 도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내용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보급판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내용 자체에 대한 독자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조금 망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인류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역사에 관련된 수만 권의 책들 속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의 특별한 관점에서 시작해서 객관적 사실들에 대한 다양한 접근, 특정 사건이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책이라면 동서양을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과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이렇게 욕심많은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앎과 고민의 힘으로 세상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도 조금씩 그리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담론이 없는 죽은 역사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역사는 역사일 뿐이 아니라 역사는 과거이며 현재이고 우리들의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080623-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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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8-07-0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극히 서양중심적인 역사책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번역된다면 큰 호응을 얻지 않을 것을 알았을텐데 말이죠. 좀 의아했어요. ^^

sceptic 2008-07-01 22: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습니다. 미국인이 눈에 비친 유럽과 미국 중심이라서 현실감은 많이 떨어지지만 흐름을 이해하기엔 괜찮았습니다.
 
왕국 1 - 안드로메다 하이츠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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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가장 대중적이면서 가장 재미있는 문학의 장르임에 틀림없다. 모든 것이 ‘산업’의 이름으로 자본과 결합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소설의 서사 구조는 ‘스토리 텔링’ 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게임을 비롯해서 다양한 문화 산업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창의성과 다양성은 미래 사회의 황금어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투자대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고 자원이 부족해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과연 그런가? 소설의 전통적인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진부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최소한 인간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눈이 없다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쓰레기다. 고도의 지성과 감성을 자극하고 성찰적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소설은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매 순간 고민해야 한다.

  대단히 고급한 장르가 아니라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진짜’ 소설은 그래서 만나기 힘들다. 그런 소설을 쓸 만 한 작가를 우리는 존경하며 그의 작품을 기다린다. 쉽고 재미있는 내용만으로 판매부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해서, 즉 best seller가 best novel이 될 수는 없다.

  몇몇 일본 작가의 소설은 젊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예민한 감수성과 감각적 문체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즉각적인 몰입의 상태로 이끌어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맛보지 못한 환상을 제공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을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독자들은 빠져들고 열광한다. 게다가 시각적 영상 정보를 제공하는 영화로 제작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키친>과 <하드보일드 하드 럭> 두 편을 읽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세 번째.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지만 다시는 읽지 않으리.

  <왕국> 시리즈는 3권으로 나왔는데 195*136 손바닥 만한 변형 판본 세 권을 합쳐바야 440여 페이지 밖에 안된다. 세 권의 책값을 합치면 무려 25,500원이다. 하드커버로 열심히 꾸몄으나 책보다는 돈에 혈안이 된 앵벌이로 보인다. 종이에 대한 예의가 없는 책이다. 한 권짜리 9,000원에 10,000원이면 충분하고도 남겠다. 책값은 차치하고라도 유명 작가라고 해서 신작을 이런 식으로 출판하고 독자들의 주머니를 털 작정이라면 출판사는 대오각성해야 할 것이다.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독자들은 바보가 되었나?

  그렇다면 이제 내용을 살펴보자. 완간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재밌고 환상적인가? 오랜만에 기다렸던 대가의 신작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천천히 읽을 만큼 심오한가? 이 책은 짜증스런 상태로 책을 읽어나가기는 참 오랜만의 경험이다.

작가도, 출판사도 반성하라는 위험한 충고를 감히 드린다. 리뷰를 쓰는 것도 부끄럽다.

08062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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