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역사 - 역사를 만든 우리가 몰랐던 사건들의 진실
조셉 커민스 지음, 김수진.송설희 옮김 / 말글빛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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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으면서 병사들을 생각했을까? 아니면, 조국과 민족이라는 혹은 역사적 사명이라는 혹은 자신의 영웅심과 사명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했을까? 히틀러는 영국을 폭격하면서 세계 제국의 꿈이 코앞의 현실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게르만족의 위대함과 유대인이 멸종된 세상을 생각했을까?

  역사에 가정법을 들이대는 가장 멍청한 짓을 해보는 것은 본능적인 호기심 때문이다. 프루스트가 말한대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영원한 아쉬움은 한 사회를 추동하는 또 다른 힘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벌어진 사실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역사가들의 판단은 과연 ‘진실’에 얼마나 접근했을까? ‘진실’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르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의미 있는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조셉 커민스의 <만들어진 역사>는 ‘역사를 만든, 우리가 몰랐던 사건들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진실일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일반적인 상식에 기대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 상식 뒤집기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거창한 제목과 과대 포장은 오히려 책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시킨다.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는 훌륭한 책이지만 부제에는 동의할 수 없다.

  조셉 커민스는 이 책에서 자신있는 목소리로 역사적 사건들을 재해석하거나 특별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는 않다.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에서 시작하여 2001년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움직인 중요한 사건들을 점검하고 그 순간을 묘사하여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역사의 최종 의미는 아니겠지만 기본 전제임에는 틀림없다. 저자는 이 기본 전제에 충실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해석이나 잘못 전해진 이야기들 그리고 역사적 평가와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사를 다룬 다른 책들과 구별짓는 특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하나의 사건을 정확한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역사 시대를 구분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현재형으로 들려주고 그 결정적 순간이나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의미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물론 이 사건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가정법을 들이대고 싶은 사건들이다. 그래서 익숙하게 들어왔지만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420페이지 분량이지만 중간 중간 사진과 그림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의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넣고 가정법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전 세계 역사를 고루 연구하고 통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내용이다. 여기서 ‘전 세계’란 물론 유럽과 미국을 이르는 말이라서 서글프다.

  특히 동양에 관한 역사는 ‘베트콩’(원문이 어떠하길래 역자는 이런 표현을 썼는지 그 저의가 대단히 의심스럽다)의 구정 총공세가 전부이다. 저자의 세계사에 대한 안목을 탓할 필요는 없겠다. 이쪽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관심이 없거나 아는게 없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에서 전부를 얻을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에 동의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나름의 가치와 재미를 지니고 있다.

  대체로 전쟁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기준에 부합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잔인한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십자군 전쟁이나 잔 다르크의 죽음,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 솜므 강 전투, 히로시마 원폭 투하 등의 사건을 접할 때마다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우리의 삶은 엄청난 살육과 전쟁과 고통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물론 지금도 팔레스타인 문제는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고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침공 등은 만들어진 역사가 아니라 진행형의 역사이다.

  미국인의 시각이라는 한계로 볼 수는 없다. 객관적인 역사책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책은 세계사에 대한 상식 바로잡기 정도의 의미로 읽는다면 재밌다. 더 이상의 깊이와 깊은 성찰은 관련 분야의 다른 책을 통해 충족시켜야 할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과 중요한 사건들을 재조명해보는 책으로 접근한다면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한 가지 문제는 24,500원이라는 책값이다. 표지와 판형과 삽입된 사진과 도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내용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보급판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내용 자체에 대한 독자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조금 망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인류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역사에 관련된 수만 권의 책들 속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의 특별한 관점에서 시작해서 객관적 사실들에 대한 다양한 접근, 특정 사건이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책이라면 동서양을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과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이렇게 욕심많은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앎과 고민의 힘으로 세상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도 조금씩 그리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담론이 없는 죽은 역사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역사는 역사일 뿐이 아니라 역사는 과거이며 현재이고 우리들의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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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8-07-0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극히 서양중심적인 역사책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번역된다면 큰 호응을 얻지 않을 것을 알았을텐데 말이죠. 좀 의아했어요. ^^

sceptic 2008-07-01 22: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습니다. 미국인이 눈에 비친 유럽과 미국 중심이라서 현실감은 많이 떨어지지만 흐름을 이해하기엔 괜찮았습니다.
 
왕국 1 - 안드로메다 하이츠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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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가장 대중적이면서 가장 재미있는 문학의 장르임에 틀림없다. 모든 것이 ‘산업’의 이름으로 자본과 결합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소설의 서사 구조는 ‘스토리 텔링’ 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게임을 비롯해서 다양한 문화 산업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창의성과 다양성은 미래 사회의 황금어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투자대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고 자원이 부족해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과연 그런가? 소설의 전통적인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진부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최소한 인간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눈이 없다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쓰레기다. 고도의 지성과 감성을 자극하고 성찰적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소설은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매 순간 고민해야 한다.

  대단히 고급한 장르가 아니라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진짜’ 소설은 그래서 만나기 힘들다. 그런 소설을 쓸 만 한 작가를 우리는 존경하며 그의 작품을 기다린다. 쉽고 재미있는 내용만으로 판매부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해서, 즉 best seller가 best novel이 될 수는 없다.

  몇몇 일본 작가의 소설은 젊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예민한 감수성과 감각적 문체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즉각적인 몰입의 상태로 이끌어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맛보지 못한 환상을 제공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을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독자들은 빠져들고 열광한다. 게다가 시각적 영상 정보를 제공하는 영화로 제작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키친>과 <하드보일드 하드 럭> 두 편을 읽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세 번째.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지만 다시는 읽지 않으리.

  <왕국> 시리즈는 3권으로 나왔는데 195*136 손바닥 만한 변형 판본 세 권을 합쳐바야 440여 페이지 밖에 안된다. 세 권의 책값을 합치면 무려 25,500원이다. 하드커버로 열심히 꾸몄으나 책보다는 돈에 혈안이 된 앵벌이로 보인다. 종이에 대한 예의가 없는 책이다. 한 권짜리 9,000원에 10,000원이면 충분하고도 남겠다. 책값은 차치하고라도 유명 작가라고 해서 신작을 이런 식으로 출판하고 독자들의 주머니를 털 작정이라면 출판사는 대오각성해야 할 것이다.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독자들은 바보가 되었나?

  그렇다면 이제 내용을 살펴보자. 완간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재밌고 환상적인가? 오랜만에 기다렸던 대가의 신작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천천히 읽을 만큼 심오한가? 이 책은 짜증스런 상태로 책을 읽어나가기는 참 오랜만의 경험이다.

작가도, 출판사도 반성하라는 위험한 충고를 감히 드린다. 리뷰를 쓰는 것도 부끄럽다.

08062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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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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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로 시작하는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은 허수경의 시집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지 않는  시이다. 당연하겠지만 한 권의 시집을 읽는 동안 시인과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며 아파한다. 물론 때로는 기뻐하고 함께 상상하며 즐거운 환상을 갖기도 한다. 부드러운 바람과 뺨을 간질이는 들풀을 만나기도 한다. ‘당신’처럼 무심하게 사용하던 말에 주목하고 다시 생각하고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시인의 눈이고 능력이며 의무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안타까운 몸짓들을 보듬으며 일상적인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눈을 빌려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다. 안도현의 그 시인의 역할을 넘어 길잡이와 안내자의 역할까지 떠맡았다. 도종환의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에 이어 육성 시낭송 CD와 함께 독자들을 만난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는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나눔사무국에서 기획, 제작한 책이다. 이메일로 배달되는 시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니 느낌이 새롭기는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문학의 대중화에는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겠지만 단편적인 시 하나가 줄 수 있는 감동의 무게는 한계가 있다. 애니매이션과 함께 분위기를 살려주는 배경음악과 더불어 즐기는 시 한 편이 나쁘지는 않다. 시는 음악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내게는 산만하고 어지러운 느낌이다. 한 시인의 목소리를 꾸준히 그리고 차분하게 들어 볼 수 있는 시집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안도현의 눈을 빌려 읽는 재미 혹은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제 정확히 세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400여 권 쯤 되는 시집들을 뒤적이며 내가 좋아하는 시들을 엮고 간단한 감상이나 느낌들을 적어본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은 책이 되지 않는다. 내가 유명한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충분하고 가끔 인용할 때도 있지만 공유하고 공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안도현은 이 책에서 다양한 시인들의 다양한 시들을 골라냈다. 한 편 한 편 애정을 가지고 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을 나름의 기준으로 골랐다. 시가 마음에 닿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다면 이런 종류의 책은 참 지루해지기도 하고 손이 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보편적 정서를 읽어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낸 시인이 들려주는 다른 시인들의 시와 시와 관련된 짧은 단상은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찾아 읽고 손수 베껴놓은 시만한 게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동과 울림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누군가 권해 준 한 권의 시집, 누군가 보내 준 한 편의 시가 전하는 느낌은 보내준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어 색다르다. 안도현이 권하는 시를 읽어보는 것은 개인적인 친밀감은 없지만 쉽고 편안하게 시와 친해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지퍼 - 송승환

건너편 사람들 틈에 환영처럼 그녀가 있다

한번 벌어지면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선로 위 끊임없이 지하철이 달려온다


와온(臥溫)의 저녁 - 유재영

어린 물살들이 먼바다에 나가 해종일 숭어 새끼들과 놀다 돌아올 시간이 되자 마을 불빛들은 모두 앞다퉈 몰려나와 물길을 환히 비춰주었다


  짧은 시 두 편이 보여주는 정갈하고 깔끔한 매력은 냉수처럼 시원하다. 일상에서 ‘지퍼’를 통해 관계를 설명하고 바닷가 마을의 저녁 풍경을 수채화로 전해주는 시는 설명이 필요없다. 안도현은 이런 시를 고르면서 마음까지 깨끗했겠다.

저곳 - 박형준

공중(空中)이란 말
참 좋지요
중심이 비어서
새들이 꽉 찬
저곳

그대와
그 안에서
방을 들이고
아이들 낳고
냄새를 피웠으면

공중(空中)이라는


뼛속이 비어서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새떼


  시를 참 잘 쓰는 시인이다. 탁월한 감각과 절제된 언어로 공간을 점유하는 박형준의 이 시는 정중동의 감각을 보여준다. 천상 시인들의 향연이 벌어지는 곳에서 저마다 한 칼 한다고 외치고 있으니 어찌보면 독자들은 즐거운 만찬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달빛 소나타 - 신현정

가을밤을 앉아 있는

그녀의 목덜미가 하도 눈부시게 희어서

귀뚜라미가 사는 것 같아서

달빛들이 사는 것 같아서

손톱들이 우는 것 같아서

그녀의 등 뒤로

살그머니 돌아가서

오오 목덜미에

단 한번의

서늘한 키스를 하고

아 그 밤으로

그대로 달아난 나여


  그래서 이렇게 서늘한 키스와 마주하기도 한다. 가을밤, 달빛, 목덜미……. 달아났던 혹은 달아나고 싶었던 수많은 ‘나’는 이 시의 독자가 되어 그 오래된 기억과 마주하고 당혹해하고 웃음짓기도 하고 하늘을 더듬기도 할 것이다.

청춘 1 - 권혁웅

그대 다시는 그 눈밭을 걸어가지 못하리라
그대가 낸 길을 눈들이 서둘러 덮어버렸으니
붕대도 거즈도 없이
돌아갈 길을 지그시 눌러버렸으니


  이제 덮여버렸나? 뒤돌아 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도록 붕대와 거즈로 지그시 눌러버렸으니 이제 돌아갈 길이 없다, 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과거형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고 ‘청춘’은 아득한 곳으로 사라지며 김연수의 말대로 들고양이처럼 소리도 없이 그리고 느닷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오오, 밤의 하늘이여! 밝아올 내일이여! 그리고 보고 싶은 친구여!


08062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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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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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의 흐름에 온몸을 맡겨보자. 우리의 생애는 영원 속에서 점으로도 찍힐 수 없을 만큼 짧다. 덧없는 인생이란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깊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생의 유한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한 번은 죽는다. 인생의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면 인생은 그렇게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겸손해지고 숙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을 돌아보게 된다.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여행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이 순간과도 같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본다. 역사가 항상 우리에게 정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타당한 것일 때가 많다. 특히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 여행은 인간에 대한 경외감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고고학은 그저 옛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결국 어떤 학문이든 그것은 인간의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지적 호기심은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고 시간에 대한 탐구와 앎에 대한 욕구는 땅을 파게 했다. 역사에 전해지는 시간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그 시간여행을 시도한다. 때때로 그것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인간의 기록이나 기억보다 더 진실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유물과 유적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노력은 순전히 과거에 대한 동경과 인류 역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고고학 여행이 절대로 ‘낭만과 모험’으로만 가득할 수는 없다. <인디애나 존스>류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낯선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고고학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관찰이고 과거에 대한 경의로움이다. 스티븐 버트먼의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은 ‘doorways through time'이라는 훨씬 낭만적인 원제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평범해져버린 제목이 아쉬움을 남긴다.

  어쨌든 이 책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눈에 띠는 유물과 유적을 고고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딱딱하게 이론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책이 아니다. 마치 드라마나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재현하고 발굴과정을 소개하며 놀라운 광경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 경이로운 순간을 기록한 사람들의 책과 말을 직접 인용하면서 해설을 덧붙이고 있어 짧은 글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학문적인 깊이가 있고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눈이 있는 전문가가 대중적인 글을 잘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번역 소개되는 외국 서적 중에서는 그런 종류의 책이 자주 눈에 띤다. 우리에게도 없지 않지만 아쉽고 부러울 때가 많다. 학문의 다양성과 자유로운 관점은 사회적인 분위와 학문적 풍토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요원한 일인 것 같아 안타깝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치 눈앞에 펼쳐지듯 서술한 ‘폼페이 최후의 순간들’이다. 초등학교 때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계몽사 세계명작문고에서 읽었던 그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생생한 일상의 모습들이 그대로 잿더미에 묻혀 참혹하지만 비장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위대한 자연 앞에 항상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그 모진 역경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자연의 대재앙을 만들어내는 오만한 인간의 모습이 두렵다.

  신화 속에만 존재할 것이라 믿었던 트로이의 유적 이야기나 잉카 제국의 이야기는 전쟁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투탕카멘 왕과 진시황제의 무덤은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후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유산이고 자랑스러운 역사적 현장이겠지만 그것을 만들었던 민중들의 삶을 생각해 보면 야만의 시절이었고 통곡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늘 꿈을 꾸고 그것을 찾아 어디론가 떠난다. 현실에 발붙이고 살지만 마음은 언제나 허공을 딛고 힘차게 날아오른다. 때로는 몽상이나 환상으로 끝나버리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현실이 되고 실제 과거에서 벌어졌던 일일 수도 있다. 꿈은 언제나 현실을 위한 상징이다. 그것은 때대로 환각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행복을 위한 처방전이 되기도 한다. 지나간 역사가 들려주는 그 수많은 이야기와 묻혀버린 시간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자. 한 권이 책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즐거움은 상상이며 공상이고 환상이며 꿈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언제나 처절한 투쟁과 피로 범벅된 참혹한 역사 속에서 꾸었던 꿈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080616-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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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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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들 가슴속에는 뚜렷이 남는
한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잡으러


  소설의 제목을 보는 순간 최인호의 <고래사냥>과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떠올랐다. 당연한 반응인지 조건 반사인지 모르겠지만 ‘고래’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느낌은 아득한 꿈이고 동경이며 신화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신화처럼 숨을 쉬는’이 주는 느낌은 여전히 생생한 감동과 울렁거림으로 남아있다. 아련한 기억과 추억 속의 노래가 되어버린 ‘고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근거림으로 남아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당장 경춘선을 타거나 동해안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시간이 흘렀고 세대가 달라졌으니 공감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었지만 ‘고래’가 주는 상징은 여전하다고 믿는다.

  김형경의 소설 <꽃피는 고래>는 장르가 모호하다. 니은이라는 여자 아이를 내세운 성장 소설로 볼 수 있겠지만 정작 주인공은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로 볼 수도 있다. 소설의 구성이나 전달 방식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형식을 떠난 내용은 상상할 수 없고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 또한 무의미하다. 색다른 시도나 파격적인 형식의 소설이 아니라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는 고백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거나 롤러코스터의 즐거움은 없다.

  첨예한 갈등과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몰아붙이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비슷한 감성 가졌거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겠다. 그 진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작가의 몫이겠지만 쓰고 싶은 소설의 내용과 바탕을 폭넓게 아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소설은 세대를 넘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없다. 다만 인생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소녀의 입장에서 황혼기를 맞은 노인들의 삶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세대 간에 고민의 흔적이 겹치고 결국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장포수 할아버지의 고래잡이 배는 한 시대를 대표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상징한다. 왕고래집 할머니의 한글 익히기와 짧은 글들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의 의미를 확인하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인물들 간의 심리와 내면의 풍경들이 잘 묘사되어 있고 한 옥타브 낮은 목소리로 읖조리듯 풀어나가는 니은이의 이야기도 들을 만하다.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그냥 글자만 쓰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깊이 뒤집어 밭을 가는 것도 같고 맘속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같고.” - P. 137

  한글을 배워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할머니는 마음 밭의 고랑들이 깊기만 하다. 처용포라고 하는 가상의 공간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이야기들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그림으로 치자면 맑고 투명한 수채화를 닮았다. 순수하고 깨끗한 느낌의 소설이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감동을 의미한다.

  김형경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천 개의 공감>과 같은 책을 통해 만날 때와 색다르다. 산문으로 먼저 그녀를 만났지만 소설도 나쁘지 않았다. 정이현의 소설처럼 감각적이고 공지영의 소설처럼 감칠맛이 나고 은희경의 소설처럼 몰입하게 하는 소설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저 잔잔한 바다의 수면 위로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고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럼 이제 동해로 가야하나? 고민에 빠진다.


080614-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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