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 청소년을 위한 문화콘텐츠 직업 이야기
김봉석 지음, 박재동 외 감수 / 한겨레출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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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목표이고 자신의 정체성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말함으로써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파악하며 판단한다. 특정 직업이 갖는 특수성은 그만큼 타인에게 강력하고 깊은 인상을 주며 한 사람을 그 직업에 몰입하도록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수만 가지 직업 중에서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몇몇 직업을 제외하면 사실 다양한 직업의 종류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다. 100개쯤 적어 보라고 해도 난감할 것이다.

  전통적인 농업 기반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수많은 직업들이 명멸했고 서비스업의 종류와 범위는 점점 확장되고 있다. 정보사회에 접어들면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컴퓨터와 IT관련 직종들이 생겨났고 심지어 게임만 잘해도 수억 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학교는 무풍지대로 남아있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보다는 고전적인 공부방식과 시스템에 따라 학교와 학과를 선택한다.

  진로 지도는 요원하기만 하고 왜 공부하는지 생각해 본적도 없는 아이들이 많다. 목표 없는 공부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답답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자세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직업의 선택과 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청소년기의 고민이다.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는 이런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구체적인 직업 관련 안내서이다. 김봉석이 지은 이 책은 박재동과 주철환, 남동철, 깁부경, 정영석이 감수했다. 특정 직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설명을 한 사람이 모두 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상세한 직업의 세계를 안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며 어떤 노력과 능력이 요구되는지 알아보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컬러 도판을 사용하고 고급 종이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는 부작용을 낳았다. 관심을 갖고 흥미있게 접근시키기 위한 노력이었겠지만 일단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공자의 말은 직업 선택에서 유념해 둘 만한 충고이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몰라서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잘못된 정보나 환상만을 가지고 선택하는 경우는 그래도 낫다.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삶이 고통이고 힘겨움일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기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잘 알고 또한 그 일을 즐길 수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정보사회를 넘어 이제 ‘꿈’을 파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 컨텐츠로 명명되는 이 ‘꿈’을 만들어 가는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영화, 방송, 만화, 애니매이션, 게임, 캐릭터, 대중음악, 공연 관련 직업들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문화 컨텐츠와 관련된 직업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선망하지만 잘 알지 못하고 얼마나 세분화 되어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직업들의 상세도를 그려준다.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이 짤막하게나마 소개되고 있어 훨씬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소개나 안내보다도 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듣는 이만 못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 부분이 너무 짧아 아쉽기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거기에 있지 않으니 참아야겠다.

  문화 컨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가 접하는 영화나 방송, 만화, 애니매이션, 게임, 캐릭터를, 대중음악, 공연을 만들어 내는지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흥미있는 정보를 개괄적으로 전해준다. 어떤 분야에서 일한다고 해서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직업이든 나름의 고충과 한계가 있겠지만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볼 수 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선택하지 않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꼭 불행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일을 즐기지는 못할 것이다.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은 충분히 즐기고 있다면 인생을 더 없이 풍요롭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나 평생 안정적인 직업만을 선택하려는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책이다.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다. 보다 다양한 직업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고 적극적인 진로 지도가 이루어져야 대학을 다시 가거나 전과를 생각하는 청춘이 줄어들 것이다.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많은 방법들 중에 직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 중독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는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업을 밝히지 않을 만큼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한 한계에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완전한 만족과 맹목적인 추종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전체에도 해롭다. 선택은 신중하게 그리고 노력은 가열차게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직업을 바꿀 만한 용기를 준비하거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준비와 노력 그리고 실천적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는, 일을 즐기고 있어 다행이긴 하다.

  경마장의 말처럼 결승선만을 향해 미친듯이 질주하는 공부 기계가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나를 돌아보고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참다운 주인이 아닐까 싶다. 나를 돌아보고 사랑하는 만큼 주변을 배려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 갈테니 말이다.


08042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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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구드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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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간의 생을 돌아보면 에릭슨이 이야기 한 것처럼 ‘결정적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그 시기를 청소년기라고 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을 만나기도 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대오각성이든 가슴을 저미는 감동이든 그러한 순간을 만나게 되면 한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달라지지 않더라도 눈에 띠는 생채기로 남거나 온 생애를 뒤흔들었던 아름다운 기억이 된다.

  역사란 인간의 삶의 흔적일 뿐이다. 위대한 무엇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들이 살아온 궤적이다. 국가와 민족을 불문하고 인류 전체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사건들이나 눈부신 발전을 위해 초석을 마련한 일들을 손꼽아 본다. 그것을 선정하는 것은 물론 주관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구트룬 슈리가 쓴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은 인류의 역사에서 인상적인 순간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 순간들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역류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달리는 열차의 궤도를 바꾸어 놓을 만큼 강렬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이었다.

  때로는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지독한 노력과 가장 뛰어난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에 걸린 우연처럼 찾아올 때가 많았다. 이 책은 어쩌면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우연한 사건’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하다. 고뇌하는 사람만이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를 뒤집을 만한 일들은 대체로 노력의 과정에서 파생된 것들이지만 지독한 우연과 마주할 때도 많았다.

  쾰른 대성당의 정면 설계도 F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632년 만에도 공사는 마무리 되지 못했을 것이다. 5,000년 동안 썩지 않고 냉동되어 있던 ‘외치’는 길 잃은 등산객에게 발견 되었고, 공동묘지에서 진화론의 증거를 찾은 괴테는 하인의 공을 가로챘다. 2,000년 전 로제타석의 문자를 해독한 샹폴리옹은 우연에 기대지 않았지만 의학의 새 장을 연 뢴트겐 광선이나 진시황의 무덤에서 잠자던 병마용들은 우연하게 발견되었다. 실러캔스를 발견하거나 뉴턴의 사과는 우연이라기보다는 지독한 노력과 번뜩이는 지적 능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플레밍에 의해 푸른 곰팡이에서 발견된 페니실린처럼 인류 전체에게 획기적인 공헌을 한 우연도 없을 것이다. 이것도 물론 길을 가다 동전을 줍는 경우와는 다르다. 끊임없는 실험과 노력 가운데 건져 낸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낡은 장롱 속에서 획기적으로 발전된 사진의 원리나 라스코에서 우연히 발견된 동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재미있고 다채롭다. 변화가 주는 발전은 당연히 인간의 몫이었고 평균 수명의 연장이었으며 자연을 이해 혹은 지배하는 원리를 제공해 왔다.

  이 책에 나오는 발견들은 대부분 우연히 잊혀 진 사실들이 드러나거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거나 당연히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응용하게 된 순간들이다. 저자는 이 모든 순간에 감탄과 경외를 보내며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 시기’가 있었음을 흥미롭게 포착해 내고 있다.

  역사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방식이 될 수 있겠다. 가볍고 재밌는 역사를 비판적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온 과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무엇보다도 인류의 살아온 삶의 흔적이며 지금 누리고 있는 문명과 발전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에 시비를 가리는 일과는 많이 다르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애정은 나와 우리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 책은 대중적 역사서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가능하지만, 당연히 뒤따르는 아쉬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깊이와 넓이를 골고루 갖추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지 모른다. 이 책도 이면에 숨은 뜻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많이 전하지 못하고 객관적 사실들의 간략한 요약에도 분량이 빠듯하다. 각 장 뒤에 ‘좌충우돌 세계사, 그 오해와 진실’이라는 코너를 덧붙여 우리의 상식을 뒤집어 주는 간단한 사실들을 제공한다.

  세계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누구나 다를 것이지만 객관적 사실들이 발견되거나 발명되는 과정은 궁금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때때로 가볍게, 그러나 질리지 않을 정도의 교양과 깊이를 원하는 책도 나오는 법이다. 이 책은 여행용(만약 이런 종류의 책이 있다면)으로 괜찮치 않을까 싶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와 우리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심각하고 진지한 노력과 삶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한번쯤 네잎 클로버를 찾는 우연한 행운을 기대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 <테이큰>에서 아버지 리암 리슨처럼 처절한 노력과 우연한 행복이 반복적으로 겹치는 인생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맹목적으로 지켜주겠다는 불가능한 영화적 신뢰보다도 상황을 타계해 나갈 수 있는 체질로 변화시켜주어야 한다. 이 책은 우연히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인류가 반복해 온 발견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를 뒤흔든 16가지 우연’에 대해 생각해 본다.


08042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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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 사진하는 임종진이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광석이 형 이야기'
임종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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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하루 동안 나는 젖어 있었다. 오래된 조작적 기억과 얄팍한 감상과 지금의 나 사이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돌아오곤 했다. 창밖에 나무들이 보여주는 연녹색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던 시절을 더듬어야 했다. 동부전선 비무장 지대 GP에서 김광석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천지 사방 끝없이 쏟아붓는 눈과 아득한 백두대간의 능선들 사이로 봄은 꿈도 꿀 수 없었던 1월 6일이었다. 마지막 GP생활이었고 이 겨울만 견디면 지긋지긋한 곳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시간이었다. 전방 초소에 올라가 근무 중인 소대원들과 킬킬거리다 체육관에 돌아오니 TV를 보던 병장 하나가 건네준 소식이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내 죽음도 그러하겠지만.

  불연속적 세계관을 무장한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며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 ‘있던’ 김광석이 없어진 것이다. 그는 가고 노래만 남았다. 밤과 낮을 바꾸어 살아야했던 시간들이기 때문에 소형 카세트와 라면 박스로 배달되던 책들이 지루한 시간들을 꾸역꾸역 메우고 있었다. 김광석의 테입들은 하품하듯 늘어지기 시작했고 GP안의 책들도 바닥이 나고 하루 한 갑씩 피우던 담배도 말라가고 있었다. 30명 가까운 소대원 전체가 길고도 지루한 겨울을 나고 있었다. 망망대해의 섬처럼 GP는 비무장 지대의 외로운 섬이다. 그 안에서 광석이 형의 죽음을 맞았다.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손 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에 편지를 고이 접어 보내오


  김광석의 목소리 만한 가수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목소리와 어우러진 노래는 가슴을 후비고 영혼을 울린다.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눈은 자연스레 하늘을 향하게 되고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잠시 동작이 느려지고 사물이 멀게 보이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 감상적인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그의 노래는 때때로 폐부를 찌르는 알콜이나 니코틴처럼 혹은 보이지 않게 가슴까지 스미는 커피 향처럼 치명적일 때가 많다.

  사진하는 임종진의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는 오롯이 광석이 형에게 바치는 추모곡이다. 흑백 사진 속에 묻혀버린 그를 추억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임종진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컥.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또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책을 보는 동안 내내 이어폰으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죽음은 망각으로 비로소 완성된다면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잉게보르그 바하만의 <삼십세>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로 1년을 보냈던 스물 아홉. 청춘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사라졌음을 어느날 문득, 깨달아버렸다. 임종진의 넋두리처럼 ‘서른 즈음에’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더 가슴에 와 닿는 건 아닐까?

  거실이 책장으로 채워지기 전, 한 밤에 홀로 불꺼진 거실에서 김광석의 DVD를 보며 홀짝였던 알콜 기운이 하루 종일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김광석과 안치환과 정태춘만 듣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재즈나 피아노나 바이올린보다 크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돌고 돌아 그에게로 온다. 종착역은 아니지만 시골 마을의 간이역처럼 그에게 쉬었다 걷고 또 쉬게 될 것이다.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는 그의 노래를 듣는다. 정호승의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붙인 ‘부치지 않은 편지’처럼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 그대여,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잘 가라.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080417-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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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 연인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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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에 두고 오래 사귄 벗을 친구라고 한다. 동무는 무엇이라고 규정될까? 단순히 정서적 동반자를 동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동무는 스승이자 친구이고 연인이다. 말과 살의 관계처럼 동무와 연인은 쉽게 단정 지어 그 관계를 말할 수는 없다. 그저 함께 걸어가야 할 동행이며 사상적 동지이자 거처이다. 연인과 동무는 멀리서 그리워하다가 하나로 겹쳐져 같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교수였다가 스피노자의 삶을 선택한 철학자 김영민의 <동무와 연인>은 신문 칼럼 모음이지만 최근에 읽은 가장 인상 깊은 책이다. 깊이와 넓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 매력적이다. 지극한 상찬이 이어져도 지나치지 않겠다. 이 책은 스물 한 명의 서른아홉 명을 소개한다. 한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를 묶어 그들의 관계가 동무이며 연인이고 친구이자 스승이었음을 증거한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로 포문을 여는 저자의 이야기는 문장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점착인 문장은 다음 문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하나의 단락은 완벽한 의미의 덩어리로 살아 움직인다. 글쓰기 교재로도 손색없을 만큼 잘 다듬어져 있으며 탄탄하고 긴장감 넘치는 필력을 보여준다. 이덕무와 박제가 하이데거와 아렌트, 프로이트 융, 윤심덕과 김우진, 매창과 유희경 등 동서양은 물론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팀을 이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그들의 말과 살과 삶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

  쇼펜하우어와 그의 어머니 요한나의 관계나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애인들의 관계,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의 관계처럼 특이한 경우에 더 눈이 가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다. 생의 비극과 열정, 부조리에 대한 보편성에 대한 성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 반복하고 있을지 모르는 이 관계들은 이 책을 통해 배우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사물화하고 객관하며 하나의 유형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유형화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비슷한 경우의 수를 더듬어 볼 뿐이다. 이 책은 그것을 제공해 주고 있는 걸까?

  역사에서 눈에 띠는 특별한 관계들을 고찰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색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성과 감성은 말과 살로 분해되고 나와 세상은 관계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남는 걸까? 보부아르에게 죽음이란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사르트르가 죽음 앞에서 그녀가 가장 슬퍼한 것은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고 하는 말을 다시 되새겨 본다.

 ‘연인의 살이 이윽고 고기[肉]로 느껴질 때에도, 그 고기를 다시 살로 되돌리는 법은 오직 말 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은 동무와 연인을 ‘말, 혹은 살로 맺은 동행의 풍경’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짐작케 한다. 종교와 연애, 가족과 사랑에 대한 지극히 보편적인 관계들이 주는 환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갖는 것은 철학자들만의 특권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사람과 관계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은 순전히 저자의 힘이다.

연애의 열정은 어느 무지(無知)에 근거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무지는 어느 특권적 지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 P. 46

바타이유나 베블런 등이 종교의 본질을 낭비와 사치로 규정한 바 있지만, 종교와 더불어 인류의 양대 환상인 사랑이야말로 낭비를 위한 낭비의 방식에 다름아니다. - P. 109

동무의 길은 인정과 배려를 통해 사랑의 열정을 생산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서 트인다. - P. 114

  짤막한 경구처럼 쏟아지는 문장들은 폐부 깊숙이 들어와 박힌다. 사랑과 연애에 관한 통찰은 열정적이지도 그렇다고 냉소적이지도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 왔는가. 혹은 그 안에서 얼마나 맹목적인 행복과 좌절을 맛보았던가. 아찔한 순간들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생의 뒤안길에서는 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자책과 후회 혹은 아쉬움과 미련에 잠 못 들어 하는 법이다.

  세기의 연인도, 더없이 부러운 사제지간도, 그 둘이 합쳐진 사람들도 이제 모두 사라져 버렸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우리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것 뿐이다. 신기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으로 끝날 수 있는 내용은 결코 아니다.

  어떤 책이든 반은 독자가 만들어간다고 하지만 이 책은 너무 먼,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엮어 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삶에 대한 반성이자 성찰이고 확인이자 전망이다. 지금 내 곁에는 누가 있지?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살을 만져 본 적은 있는지 혹은 그것들을 소중하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080416-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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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에게 죽음이란(바흐친과 비슷하게)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죽음을 놓고 그녀가 가장 슬퍼한 것은 물론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 P. 17

조국은 남자의 발명품이다.

그것은 효도가 부모들의 발명품이고 우정이 약소자(弱小者)의 발명품이며 연애가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사실과 다를 바 없다.

중세는 신(神 )이 있다는 듯이 사는 세상이고 근대는 조국이 있다는 듯이 살아가는 세상이며, 현대는 가족이라는 게 있다는 듯이 살아가는 세상인 것이다. - P. 21

연인의 살이 이윽고 고기[肉]로 느껴질 때에도, 그 고기를 다시 살로 되돌리는 법은 오직 말 밖에 없다.

인간의 사랑은 워낙 어리석은 짓이긴 하지만, 무릇 사랑의 현명함을 가꾸려는 이들이라면 살과 말이 섞이는 묘경(妙境)의 이치에 세심해야 한다.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에서는 말을 매개로 삼아 살 이후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긴요하다. - P. 42

신(神)의 시선이 특별히 나만을 주목하리라는 종교적 환상극, 애인의 관심이 오직 내게만 집중되리라는 연애 환상극, 그리고 엄마-아빠-나 사이를 잇는 완벽한 가족 삼각형의 환상극 등은 완악한 자기중심성의 존재인 인간에게 좀처럼 피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연애의 열정은 어느 무지(無知)에 근거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무지는 어느 특권적 지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 P. 46

바타이유나 베블런 등이 종교의 본질을 낭비와 사치로 규정한 바 있지만, 종교와 더불어 인류의 양대 환상인 사랑이야말로 낭비를 위한 낭비의 방식에 다름아니다. - P. 109

동무의 길은 인정과 배려를 통해 사랑의 열정을 생산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서 트인다. - P. 114

“당신(학생)이 나(스승)처럼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다머식의 해석학적, 혹은 실천적 권위가 사라진 세상, 그것이 표절과 짜깁기와 얇은 번역의 천국, 한국 지식계의 비밀이다. - P. 128

플로베르였던가, “두 연인은 동시에 똑같이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 그러나 한 순간이나마 제정신인 연인이라면 그 사실의 절절함에 절망하지 않을 자 그 누구던가? “더불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R. 바르트)는 연애의 진실은 연인들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만고의 고민처럼 보인다. - P. 135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는 ‘독립하되 고립되지 않는 삶’의 양식을 조형하려는 이들에게 주어진 생산적인 삶의 가능성이다. - P. 156

호의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며 기껏해야 일종의 사회적 무의식이거나 생물학적 에너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족관계만큼 극명하게 증명하는 곳도 없다. ‘호의로 포장된 지옥’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실로 모든 가족적 관계의 별칭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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