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아이라 재판소동
데브라 하멜 지음, 류가미 옮김 / 북북서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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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실존적 고민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어떤 속성을 지니게 되는가? 사회학적 관점이나 철학적 성찰이 아니더라도 나는 공동생활을 하는 인류의 특징에 대해 알고 싶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자명한 논리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두 사람만 모이면 규칙이 생기고 순서가 정해져야 한다. 질서는 보다 편리한 공동생활의 규칙이며 이기적 욕망을 억누르게 하는 강제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내면적 윤리의식의 함양이든 법과 제도적 장치이든 간에.

  아주 먼 그리스 시대의 직접 민주정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30세 이상의 남성들만의 민주주의였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법과 제도의 정교함과 공평한 배심원 제도는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데브라 하멜의 <네아이라 재판 소동>은 흥미 진진한 추리 소설처럼 단숨에 읽힌다. 그리스의 오래된 연설문 하나로 살펴보는 당대의 사회문화적 현상들, 법률 체계, 배심원 제도, 시민권 계승 문제 등은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또 다른 방식으로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네아이라라는 고급 창녀의 재판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삶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테오므네스토스가 네아이라를 고소한다. 고소 이유를 설명하는 테오므네스토스의  짤막한 연설과 뒤이어 그의 장인 아폴로도르스가 대리인으로 배심원들에게 한 연설문만으로 이 책은 완성된다. 전해지는 내용은 이렇게 간단하지만 네아이라의 남편 혹은 후견인인 스테파노스와 아폴로도르스의 원한에서 비롯된 이 재판은 네아이라의 삶을 고스란히 반추하며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듯 그녀를 삶을 풀어낸다.

  니카레테의 유곽에서 시작한 고급 창녀 생활에서 아테네 시민의 삶을 누리게 되는 과정과 그 모든 과정이 파헤쳐지는 재판 과정은 당대의 그리스와 아테네를 이해하는 가장 흥미있는 방법으로 채택되었다. 한 여자의 삶을 통해 한 시대를 가늠하는 것은 어떤 방법보다도 경험적 토대를 제공하며 독자들에게 실감나게 다가간다. 권력의 핵심에 서 있는 아르콘 바실레우스의 아내가 된 네아이라의 딸 파노의 인생역정 또한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네아이라보다 그의 딸 파노가 결혼한 남자의 정치적 지위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는지 모르겠다.

  파노가 네아이라의 딸인지 스테파노스의 딸인지 아니면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인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재판의 핵심은 스테파노스와 아폴로도르스 사이의 정치적 분쟁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적 원한 관계가 결국 아테네 시민권 분쟁으로 비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네아이라는 희생양이 되었으며 그의 삶은 태양아래 발가벗겨진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생의 치부를 드러내야 했던 네아이라와 파노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정작 여자는 아테네 법정에 설 수 없었다. 당연히 남편이나 가족이 대리인으로 나서야했다. 스테파노스의 연설문은 불행히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의 매력 혹은 아쉬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 쪽의 연설문을 토대로 철저하게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 수천년 전의 재판을 재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는 필자의 태도이다. 네아이라를 변호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아폴로도르스의 연설문에서 확인되지 않는 사실들과 문맥들 사이에서 보여지는 논리의 허점들을 짚어내는 것이 필자가 심혈을 기울이는 대목이다.

  당연하게도 힘없이 당해야만 했을 네아이라에게 동정을 보내고 그 과정에서 당했을 억울함을 이제와서 풀어주겠다는 공명심이 아니라 과연 아폴로도르스의 논리는 그 법정에서 어떻게 작용했을까? 아쉽게도, 숨 막히는 극적 반전이나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할 만한 결론은 없다. 이후의 재판 결과나 네아이라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판이 이토록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수많은 그리스 시대의 연설문 중에서 특별한 내용과 방법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검사도 변호사도 없었다. 배심원은 매년 6천 명이나 선발되는 시민들 가운데 무작위로 선발되었으며 원고와 피고는 스스로 변론하고 연설하며 배심원들을 설득시켰다. 이 때 배심원들도 조용히 경청하는 오늘날의 배심원과는 달리 야유를 퍼붓거나 소리를 지르고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공적 재판의 경우 501명 이상의 배심원이 하루에 선고까지 마쳐야하기 때문에 배심원들끼리의 토론이나 회의는 불가능했고 그렇게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재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네아이라 재판을 둘러싼 과정들을 시간 순서를 짜맞춰가며 재구성하고 있어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피고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법률 위반 사실을 주장하는 연설문만으로 원고의 입장과 숨겨진 사실들, 과장된 논리와 과잉반응들을 찾아내고 객관적인 사실들을 찾아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아테네의 삶과 지금 우리의 삶은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한 시대의 단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네아이라의 재판을 선택했고 아폴로도르스의 연설문을 꼼꼼하게 분석함으로써 아테네인들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하게 기원전에 존재했던 한 고급 창녀에 관한 재판 기록이 아니다. 민주정치의 토대가 되었던 아테네의 재판 제도와 진행과정은 물론 ‘시민권’이 갖는 역사적 의미, 사상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실과 재미를 제공한다.

  인간의 삶이라는 보편적 정서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인간의 이기적 욕망, 제도와 질서에 대한 회의, 권력과 금전의 위력 등에 대해 고대 사회와 현대를 비교할 수도 있겠다. 인간의 삶은 계속되어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방식이 더 발전되어왔고 정교해졌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법은 여전히 돈과 권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우리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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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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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상대적 개념은 미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문질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사회를 일컫는 미개사회나 미개인이라는 말은 상대를 낮잡아 보려는 편견이 내재해 있다. E. 사이드의 개념으로 보면 타문화에 대한 유럽의 관점에 다름 아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사회, 기계적 합리주의와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은 사회를 우리는 여전히 미성숙된, 미발달된 사회로 본다. 학교에서 아무리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해 가르치고 배운다고 해도 나와 다른 삶에 대한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만난 것은 인류의 지성사에 축복도 재앙도 아니다. 단순한 친분관계나 학문적 동종 교배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당대의 지적 흐름에서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배태된 구조주의는 역사적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실존주의를 앞세운 사르트르의 말과 글들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역사란 인간 사회를 더 좋은 상태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 의식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역사적 발전이라는 연속선에서 우월한 양식과 열등한 양식을 구분했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구조주의가 마르크스 지향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이 과학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구조적 분석이 변증법적 방법을 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역사적, 비실존적 정신으로 인간을 추상적, 이념적으로 파악했으며 현실적인 요구를 주장하지 않고 오직 사실들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 치중하는 기계론적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양차 대전을 겪으며 최연소 철학교수 자격 시험을 통과한 유대계 프랑스인의 지적 편력은 그의 기나긴 생애만큼 광범위하게 펼쳐진다. 프랑스에서 브라질 다시 프랑스와 미국으로의 망명 등 그의 생애와 사상은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다. 앙가주망을 외쳤던 사르트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 대한 모색과 탐구의 열정을 놓지 않았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슬픈 열대>는 멀고도 길었던 브라질 여행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기록물이다.

  1935년 브라질 상파울로 대학 교수로 부임한 27세의 레비-스트로스는 1938년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 남비콰라족과 투피 카와이브족 등 브라질 원주민 사회를 조사한다. 그리고 15년 후 1954년 10월부터 1955년 3월까지 역작 <슬픈 열대>를 집필한다. 이후 <구조인류학>, <야생의 사고>, <신화학> 등 대표적인 책들이 출간되지만 <슬픈 열대>은 조금 특별한 책이다.

  철학으로 출발한 학문적 토양이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을 만나기까지 레비-스트로스의 관심은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처음부터 방법론이나 신념을 정해 놓고 시작한 연구가 아니라 원시사회의 모습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관찰함으로써 얻어진 경험의 산물이며 문명화된 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얻어낸 값진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미국 뉴욕으로 밀항하는 과정으로 시작되는 1부를 추억담으로 할애하고 있다. 2부에서 4부까지는 시간을 거슬러 브라질로 가는 과정과 예비답사 내용이다. 5, 6, 7, 8부가 바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을 조사하게 되는 과정과 각각의 원주민 사회의 문화가 소개, 분석되어 있다. 마지막 9부는 돌아오는 길에 인도와 파키스탄 여행기가 추가되어 그가 경험했던 인류학적 연구의 문제점들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있다.

  문화인류학의 고전으로 빈번하게 언급되며 원전을 보지 않은 채 인용된 부분이나 혹은 레비-스트로스의 영향, 사상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다른 책을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해소할 목적으로 두툼한 책에 매달려 꼬박 닷새 동안 책 속에 파묻혔다. 70여 년 전 이기는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아마존에 생존했던 원시 공동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충격에 가까웠다. 책의 앞쪽에는 그들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책을 읽다가 앞으로 돌아와 그들의 눈을 들여다 보며 대화를 시도한다.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할 길에 대한 낭만적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기도 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 관심이나 <슬픈 열대>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과거의 인류를 만난 느낌이었다. 저자의 독특한 시선이나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 객관적 관찰과 분석, 철학적 성찰이 어우러진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꼭 읽어야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는 말은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할 여유가 있을 나이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지금 만났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관점에서 문화라는 관점에서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던 인간이 이제는 사람을 우주 정거장에 보내놓고 그곳의 생활을 생중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눈이 부시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삶의 원형은 어떠했으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문명인이며 그들은 야만인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인류학적 상상력이 극한까지 발휘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레비-스트로스가 살아있었다면 이 시대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하다. 1981년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가 100세의 나이로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아드 총서’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인류의 삶은 계속되고 생태학적 상상력은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개발의 논리와 자본의 횡포는 지칠 줄 모르고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식과 학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삶의 철학과 생활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그와의 대화를 시도한다면 독자들은 보다 진지하고 풍요로운 저자와의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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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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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익점은 정말 붓두껍 속에 목화씨를 숨겨왔을까? 행주산성에서 행주치마를 사용했나? ‘현모양처’는 전통적인 여인상일까? 광화문 앞 해태는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세워졌나? 베트남 파병은 미국의 요구 때문이었나?

  우리는 얼마나 부정확한 사실들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믿음은 상식이 되고 곧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된다. 그렇게 잘못 전해지는 한국사에 대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바로잡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박은봉의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하나하나 그 진실을 밝히고 있는 책이다.

  마흔 네 가지 상식들에 대해 역사적인 근거와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잘못 전해지고 있는지 그 유래를 밝히고 있다. 크데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어원, 인물, 유물 ․ 유적, 책․ 문헌 ․ 사진, 정치․사회 ․생활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있는 책이다. 하나의 작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관련 사료와 사진을 첨부했고 관련된 책을 소개하고 있다.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사료 속으로’를 간단하게 정리해서 관련 사료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편집과 구성 면에서 신경을 많이 쓴 책이다.

  책의 내용 또한 구성이나 편집만큼 꼼꼼해서 누구나 읽을 만하다. 역사적 사실들을 쉽게 풀어쓰고 있는 것은 대중 역사서의 기본이다. 이 책도 물론 이 기본에 충실하다. 흥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잘못된 상식’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독자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명확한 근거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책은 누구나 흥미를 가질 만한 재밌는 역사서로 손색이 없다. 이렇게 책을 즐기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다면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조선이 패망한 것은 시민혁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서이다. 뼈아픈 과거를 통해 우리가 교훈을 얻었다면 그 이전에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 역사는 항상 냉정하게 충고하고 엄숙하게 경고한다.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항상 인간뿐이다. 이 책은 이런 사실들을 왜곡하거나 주관적으로 해석한 오류들에 대한 변명이다. 명확하게 잘못 전해진 상식들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확인되는 것도 있고 소문처럼 흘러와 사실처럼 굳어진 것도 있다. 어쨌든 근거 없는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다른 상식에 대해서도 비판적 관점을 갖게 한다.

  고려장, 현모양처, 바보 온달, 홍길동, 첨성대, 운현궁, 명성황후, 담배, 처가살이 등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사실이 무엇일까 싶을 정도로 오해하고 편견을 가진 일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몇 가지 사례로 분류할 수 없지만 일제 식민지 지배 체제를 거치면서 35년간 왜곡된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세뇌된 사실들이 많고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한 국민 홍보, 계몽용 전시성 역사도 많았다.

  시민혁명을 거쳐 근대화를 이루고 부국강병의 길을 걸었다면 있을 수도 없는 코미디같은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이런 사실들이 확고한 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소한 역사적 사실 하나를 제대로 안다고 해서 현실이 순식간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와 잘못 전해진 사실들은 편견이 되고 왜곡된 역사로 굳어져 모두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사실을 바로잡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흥미 위주의 대중 역사서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 하나를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다. 책이 현실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현실을 바꿀 뿐이다. 책은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현실을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이 된다.

  단편적으로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상식들을 바로 잡으면 현실의 왜곡된 측면들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오래된 미래일 뿐이다. 단순하게 심심풀이용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적 태도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도 왜곡되고 비틀리고 잘못 전해지는 사실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국사에 대한 상식을 바로잡는 일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바로잡는 일이고 내가 살아가는 우리 사회 현실을 바로잡는 시작에 불과한 일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전공한 저자의 입장에서 잘못된 역사적 사실들을 바로잡는 일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잘 할 수 있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 왜곡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격려가 필요하다. 저자와 출판사의 의도가 독자의 필요나 요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널리 읽혀지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줄 수 있는 책은 좋은 책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물론, 생각의 변화가 무엇이며 어느쪽이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080409-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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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4-0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것처럼 보여요, 물론 역사에 대한 지식이 워낙 희박해서, 생각이 뒤집히게 되는 게 아니라, 그냥 형성될 것 같은 지식도 많을 것 같지만 말이죠 ㅋㅋ

sceptic 2008-04-10 22:58   좋아요 0 | URL
참 애매한 표현인데...읽을 만 합니다...그렇게 확실하게 자리잡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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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면 타인에 대한 충고는 오만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문제가 발생하면 사실 모든 해답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 조언과 충고는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확신을 얻고 싶은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조언이나 충고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드시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생각과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격려와 덕담, 충고와 조언은 때로 힘이 되지만 잔소리에 불과할 때가 더 많다. 자신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은 정리되고 자연스럽게 최선의 방법들이 떠오르며 속은 후련해지고 미래는 작은 희망으로 반짝이게 된다. 시간만한 멘토가 없다. 상처와 고통은 세월의 흐름이라는 진통제가 마련해주는 안락함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과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고 상담을 요청한다.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지식이 밑바탕이 된 사람일지라도 객관적인 상황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상담자를 분석해주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주관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강력하게 충고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 카운슬링 사례집이다. 이 책은 대상과 주제가 선명하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에 이르는 ‘청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상담 내용은 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현재의 상황, 진로에 대한 선택, 자신의 결정에 대한 망설임 등이 주를 이룬다.

  시대가 변해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청춘들에게 영원한 고통일 것이다. 특히 희망 없는 청춘은 얼마나 불안한가. 자신을 진로와 직업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분야에 뛰어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 경우가 그러하다.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면 경쟁은 지옥을 방불케 하고 자본의 논리는 바늘하나 꽂을 땅을 허용하지 않는 현실은 두렵기만 하다.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채 끝없이 다른 사람을 밟고 이겨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논리는 시대정신이 되었고 숭고한 가치가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없을까?

  스스로 무규칙이종카운슬러라고 칭하는 김형태의 충고는 대담하기만 하다. 주관적 관점과 논리가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지독한 가난을 통해 단련된 육체와 영혼은 저자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냉정하고 비판적인 판단력을 만들어 준 듯하다. 일면식도 없을 인터넷 상담자들의 사연에 대해 김형태는 그들의 나태함과 안일함, 소극성과 우유부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껌 좀 씹었던 동네 양아치의 개과천선 프로젝트라고 비유할 만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듯한 저자의 종횡무진 카운슬링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많다.

  의뢰인들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나 가까운 친구와 부모, 선생님 등 지인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자신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좀체 드러내고 싶지 않은 환부를 도려내고 싶거나 아픈 충고와 냉정한 질책을 통해 스스로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이 타인과의 사교를 유지하는 이유가 고독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막상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를 위로하고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한 하는 사람들의 역설적 모순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두 줄짜리 짧은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기만 하다. 그 수많은 섬들에 가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지만 도착한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열정, 미래에 대한 불안과 준비, 박제된 청춘의 날개, 외로움 - 단순하게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 적어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심리적으로 신포도 기제가 작동될 때가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과 평가 절하 말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게 볼 수 없다. 끝없는 경쟁 논리와 고용 없는 성장이 가시화 되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괴물이 살아 숨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갈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주로 경제적인 측면이나 진로와 직업에 관한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은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평범한 청춘들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특권을 누리는 청춘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이제 모든 국민들이 리얼리스트가 되어 간다는 증거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과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은 참담하다.

  그래도 희망은 청춘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저자도 돈이 안 되는 이 짓을 하고 책으로까지 묶어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들에게서 나온다. 개인적인 고민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고민이 되고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이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기적인 욕망과 개인적인 고민이 때로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다. 저자가 충고하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주먹 쥐고 뛰면서 생각할 일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잃지 않고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당신의 미래가 된다. 나는 지금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다.


080406-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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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4-0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에 실제로 그렇게 좌충우돌했었는지 생각해봤어요.
남자들은 그렇게 흔들렸는지 몰라도, 여학생들은 그러지 않았던것 같거든요.
그래도 지나고보니 대학 초반에 그렇게 열심히 데모를 하고 고민을 거듭했기에 조금 나은 사회를 이루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sceptic 2008-04-08 23:16   좋아요 0 | URL
그게 남녀의 차이는 아닐텐데요...^^

암튼...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통과할 때가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싶네요...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미친 사람들은 읽는 것만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때로 다른 사람들의 독서 습관과 독후 활동이 궁금하다. 암중 모색기를 거쳐 독자가 아닌 작가로 때어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써야 하는가, 글을 쓸 능력은 있는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고민은 깊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글의 종류에 대해서 문학적인 글인지 실용적인 글인지 결정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다양한 종류의 실용적인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것인지 자신의 능력과 취향 그리고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면 고민은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물론 두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의 글쓰기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떤 글이든 가능 할 수도 있다.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음식에 대해 혀의 반응을 밝히고 맛을 품평하는 것과 음식을 만드는 일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맛있는 음식은 누구나 먹을 수 있듯이 독서는 누구나 가능하다. 물론 문식성은 단순히 어휘의 의미를 이해하는 수준부터 재해석하고 논리적인 비판에 이르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긴 하다. 책의 수준과 영역도 차이가 많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일보다는 쉽다. 글쓰기는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고 지적 능력의 종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쓰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것이 직장에서 쓰는 기획안이나 연애편지, 일기나 메일, 숙제와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글쓰기의 형태가 필요하지만 학교에서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독학만이 살 길인가?

  서점에 가면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실전에 적용할 만한 충고나 적용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글을 쓰는 목적과 방법은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는 그런 면에서 독자들의 욕구를 골고루 충족시켜주고 있다.

  오랫동안 읽히고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는 사실로 책의 내용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켜왔다는 안전장치는 믿을 만하다. 저자는 글쓰기에 대해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실전 경험을 통해 정확하고도 직접적으로 위험신호를 보낸다. 몇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들은 하나의 주제와 충고로 집약되어 있고 그것은 실전에서 필요한 요소로 가득하다.

  나를 발견하는, 간소한, 군더기를 다 버린, 나만의 것만 담은, 나를 위한 글쓰기가 좋은 글이라는 충고로 이 책은 시작된다. 스물 네 가지 작은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문장의 시작과 끝, 통일성에 대한 원칙을 제시한 후 문학,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과학과 기술, 비즈니스, 비평, 유며 등의 종류의 구분해서 일상에서 우리가 써야하는 수많은 종류의 글들을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에 제시된 단어와 용법 등은 영어 글쓰기를 위한 조언이기 때문에 편집과정에서 생략해도 좋을 법했다. 책을 읽어가면서 번역자의 고충이 곳곳에 배어있음을 발견한다. 굴절어인 영어와 교착어인 우리말의 차이는 예문을 번역하거나 사례를 인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서 밝혔듯 일부 오류가 지적되더라도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충고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가장 솔직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다. 책 한 권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물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함께 나눌 만한 글이 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대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내가 저자의 의도를 읽어냈다면 이 책은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큰 방향과 글을 쓰는 자세를 가다듬기 위한 책으로 적당할 것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충고하는 책도 많이 있으니 실전 연습용 책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권할 만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생각을 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글이든 말이다.

  산다는 일이 온몸으로 생의 의미를 써 나가는 일이라면 굳이 화려한 수사와 기막힌 솜씨로 장식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열정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면 일단 준비는 끝난 상태이다. 무엇을 왜 써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언제까지 쓸 것인가를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자, 이제 쓰기 시작하자.


08040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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