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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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이문세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리는 가을 오면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워~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리는 가을 오면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워~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향기 더 하는데 워~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별이 빛나는 밤에>에 귀 기울이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한 시대의 흐름은 유행가의 변천 과정으로 살펴볼 수도 있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나 결정적 시기라고 하는 말들은 불가해한 심리적 변화와 예측 불가능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불안과 열정으로 대표되는 청소년기는 사춘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 청소년이다. 정확하게 세대를 규정지을 만한 기준은 없다. 그래서 명칭도 모호하다. 청년과 소년의 합성어인 청소년은 보통 1318세대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육과정으로 보면 중고등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세대마다 독특한 특징과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다. 그 세대들을 4.19세대 혹은 386세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살아온 시대가 아니라 특정한 시기를 가리켜 지칭하기도 한다. 청소년기는 어떤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성장통’을 공유하는 세대이다. 불안한 심리상태와 급격한 신체 변화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선택’에 대한 고민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다.

  주변에 훌륭한 멘토를 만나 호기심을 해결하고 마음을 의지하며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래 친구들이 아니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왜곡된 시선과 부정확한 정보로 세상을 잘못 인식하기도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는 삐그덕 거리기만 한다. 이런 시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학교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폭력적인 입시지옥과 규율은 다양성과 자율성을 철저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하나의 길로 인도하거나 결국 똑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으로 길러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인생에서 자신이 걸어갈 길을 찾기 위해 부딪히고 고민하며 다양한 삶의 가치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지고 즐겁고 재미있는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그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의 고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은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아동문학의 범람과 성인 문학의 확고한 아성 사이에서 소외되는 청소년 문학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창비청소년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시도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본격적인 창작 문학 분야에서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가 계속해서 발간되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라일락 피면>은 8명의 소설가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공선옥 ‘라일락 피면’,  방미진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  성석제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오수연 ‘너와 함께’, 오진원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 조은이 ‘헤바(HEBA)’, 최인석 ‘쉰아홉 개의 이빨’, 표명희 ‘널 위해 준비했어’

  기성 작가들과 아동 문학을 업으로 삼은 작가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써 놓은 단편들이 모여 있지만 기획의도와는 달리 전체가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의도와 명분은 높이 살만하지만 작품들의 수준(?)과 깊이가 제각각이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영화 ‘화려한 휴가’가 보여줄 수 없었던 소설만의 미덕을 잘 살리고 있다. 석진이의 내면 풍경과 그의 시선에 비친 80년 5월 광주의 봄이 라일락으로 상징되는 화려함과 겹쳐 비극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아픔을 겪지 않은 시대는 없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는 없다. 석진과 윤희의 선택을 보며 청소년들을 무슨 생각을 할까.

  작가들을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여 표제작이 되었지만 대표작이 될 만하다.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와 ‘널 위해 준비했어’는 동성애와 은둔형 외톨이라는 비주류 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 있다.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은 머리로만 되지 않는다. 가슴으로 다가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좀 더 다양한 소재와 접근 방식으로 청소년 문학이 풍성해지기 바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덟 편의 단편이 다소 불협화음을 내더라도 따로, 또 같이 그들만의 문제와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고, 보다 폭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형태로든 변화 가능한 청소년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이고 세상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고민의 단면들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 계속되길 바란다.


0710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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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향기 2007-10-2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던 중학생 딸애에게 이 책을 권해줘야겠네요.

sceptic 2007-10-25 15:27   좋아요 0 | URL
화려한 휴가를 보며...참 많은 생각과 느낌을 갖는 건 기성세대 뿐만은 아니겠지요...중학생 따님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관계심리학 살림지식총서 279
권수영 지음 / 살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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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다가 핸들을 꺾으며 정리되기도 하고 말없이 사라지던 뒷모습이 생각나기도 하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끊임없이 죽어가도 계속해서 태어난다. 인류는 끄덕없이 유지되며 아직도 오히려 좀 더 죽어줬으면 좋겠다. 쾌적한 지구를 위해서는 아직도 인구가 너무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구덩이를 파고 홀로 매몰되어 있는 듯 하지만 지구의 반대편까지 여섯 단계의 법칙에 따라 연결되어 있다. 넓고도 좁은 세상에서 우리는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문제는 사람의 숫자나 관계의 망이 아닐 수도 있다. 그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와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이러한 인간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 보면 우리의 일상과 만나게 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린왕자가 말한 것처럼 길들인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들이는 과정에 ‘동의’가 생략되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 친구 사이,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길들여지고 싶지 않은데 길들이려는 사람이 있고 길들여지고 싶은데 길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모두 불행해진다.

  이러한 ‘관계’는 맺어진다고 표현하는데 특히 한국에서의 ‘관계’는 조금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문화적 특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들이 무슨 무슨 ‘향우회’로 똘똘 뭉쳐진 모임에 나가 한 표를 구걸하는 모습은 코미디에 가깝다. 21세기에도 고향이 같은 사람들의 힘은 그만큼 막강한 것이다. ‘관계’는 그렇게 인위적인 선택이 아니라 우연적인 필연에 의해 발생한다. 그 첫 번째 관계가 가족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가장 큰 ‘사랑’을 나누어 주기도 하지만 죽음과도 같은 가장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특수 관계라는 말로 규정짓기에 우리에게 가족은 너무 큰 멍에와도 같다. 부모형제 모두 마찬가지다. 독립적인 개인이나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선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끔 부러울 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문화의 불편부당함과 부자유스러움은 목을 죄는 사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혈연과 지연에 의해 묶여 사는 우리의 모습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아주 느리고 점진적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가부장제와 장자중심의 문화에 제도적인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 호적법이 바뀌고 결혼이나 가족제도에 변화가 밀려오면 우리는 더 이상 근대 혹은 전근대적인 ‘관계맺음’에서 자유로워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경계를 인식하거나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거나, 부당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공격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P. 38

  관계는 이렇게 취향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며 선호도도 다르다. 특히 ‘효孝’나, ‘우애友愛’ 등으로 묶인 사람들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집착과 소유의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관계심리학>이라고 하는 매력적인 제목의 책은 핵심을 짚었지만 별 생각은 없어 보인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에서 보여줬던 탁월한 분석이나 정리를 목적으로 한 책은 아니지만 결론이 애매하다. 한국인 사이의 ‘관계’의 의미를 밝히고 그것을 나누는 ‘경계’가 인간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경계’와 윤리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따로 또 같이’ 문화를 만들어 왔던 우리를 돌아본다. 결국 한국인의 관계를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사람 사이에 힘의 균형을 이룬 ‘경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안전하기 위해 담을 높이 쌓아 올릴 것이 아니라, 함께 하면서 공감하고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관계가 공존할 수 있도록 남을 배려하는 바로 ‘관계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의 존재 밑바탕에 경계와 경계의 사이를 관계로 메울 수 있어야 한다. - P. 93

고 정리하는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고민한다. 아니, 우리가 더 고민한다. 사람들에게 한참 회자되었던 정현종의 ‘섬’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한 시가 된다. ‘가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가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에 대한 열망이자 영원한 시지프스의 신화가 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07102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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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읽기 - 알베르토 망구엘의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미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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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림은 미술의 한 분야이지만 때때로 예술을 대표하기도 한다. 통념상 미술하면 그림을 떠올린다. 조각이나 건축도 미술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예술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수많은 시간들을 그림 그리기에 할애한다. 목적도 이유도 없다. 그림은 그저 하나의 놀이이고 유희일 뿐이다. 그것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초상화나 종교화와 결합되었고 예술의 중추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실용적인 목적이든 예술적인 목적이든 우리는 그림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다만 박물관과 전시관 속에 박제되어 버린 예술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관람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새로운 예술의 향유 방식이기는 하다. 내가 내 발로 미술관을 찾아간 것은 10년도 되지 않는다. 슬픈 일인지 모르지만 책을 통해서 그림과 예술에 흥미를 느꼈고 직접 찾아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술의 전당이나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회나 덕수궁, 인사동 전시회는 기회가 될 때마다 찾게 된다. 사진이나 다른 전시회도 마찬가지지만 막연한 감상 속에서 부딪히게 될 희열이나 정서적 충격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덕수궁에서 합스부르크가에서 소장했던 비엔나미술관의 그림들을 보면서 당시와 역사와 왕가의 계보를 모른다면 얼마나 미적 감흥을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중간 중간 배경 지식을 깔아 놓기도 했고 오디오 설명기계도 비치해 놓았다.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도 감상하고 확인하는 그림 감상 방법은 상징과 알레고리로 똘똘 뭉쳐진 그림들의 해석 방법이다. 시대와 그림에 따라 감상 태도와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는 책에 관한 책으로 손 꼽을 만한 책이다. 학문과 예술을 넘나들며 유목하는 지식인들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와 다른 지적 풍토 때문인지, 교육환경 때문인지 모르지만 바다 건너편에는 그런 인간들이 많다. 진짜 부럽다. 단순 비교를 통해 그들의 비교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적 편력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망구엘의 눈을 빌려 몇 명의 작가를 살펴보고 몇 장의 그림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내 방식대로 예술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안목이 중요하다. 그것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타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포용적인 시선과 넓은 시야를 가능하게 한다.

  이 책에는 조앤 미첼의 <두 대의 피아노>, 로베르 캉팽의 <화열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 티나 모도티의 ‘무제’, 라비니아 폰타나의 <토니나 초상화>, 메리애나 가트너의 <서 있는 네 사람>, 필록세누스의 <이수스의 전투를 묘사한 모자이크화>, 파블로 피카소의 <통곡하는 여인>, 알레이자디뉴의 ‘성 베드로 조각상’, 클로드-니콜라 를두의 ‘아르케스낭’, 피터 아이젠만의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 모형, 가라바조의 <일곱 가지 자비스런 행동>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적혀 있다. 저자의 박학과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과 문화적 배경은 물론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공시적, 통시적 관점의 시선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 작가의 한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와 그를 둘러싼 주변 풍경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특별한 형식 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풀어나가는 글이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편안하게 그림들을 즐기며 감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인쇄 상태와 지질이 양호하기 때문에 조잡하지 않다. 편안한 음악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이 책과 함께 해도 좋겠다. <독서의 역사>에 대한 좋은 기억과 강유원의 추천을 믿고 본 책이다. 책을 선별하고 도서목록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즐거움이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미술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 책이 도구가 되어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안목이 길러진다면 나름대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해설이나 주관적인 감상, 배경지식의 나열을 통해 독자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될 수도 있지만 해설서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예술작품은 우리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창조행위다.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결코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다. 물론 예술작품은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도 역시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예술작품의 본성 때문에 완전하고 결정적인 해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은 많은 것을 시사하면서도 동시에 애매모호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 230

  수전 손택은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저자는 예술작품은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타당한 설명과 감상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밝힌 두 사람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를 문제이다. 그것은 관찰자 혹은 독자 개개인의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알고 보든, 보는 것만으로 느끼든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진실은 다양하게 변주될 것이다.

  그것이 단 하나의 해답을 품고 있거나 직관적인 감상만 가능하다면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닐 것이다. 현실과 예술의 관계, 해석과 감상의 문제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자연보다 아름다운 예술은 없다. 자연에 대한 모방과 외경에서 예술이 출발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창 밖에 가을비가 아름답다. 이 비 그치고 나면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여주겠지만.

그림이든 조각상이든 결국 모든 형상은 망막을 현혹시켜 발견이나 기억의 환상을 야기하는 얕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우리가 입자 하나하나마다 우리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고 있는 미립자로 이루어진 무한소의 나선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 P. 432

운이 좋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진실의 작은 조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막론하고 예술작품 속에 담긴 진실을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반신반의하면서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적어 내려간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 P. 432



07101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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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이야기는 그림과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과 관념이 많이 혼합되어 있을수록 이해가기가 한결 쉽다.”
헨리 제임스의 『기 드 모파상』중에서

  그림도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고의 과정에는 반드시 이미지가 개입한다고 했다. - P. 14

형식적으로 말하면 이야기는 시간 속에 존재하고, 그림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 - P. 20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의해 해석된 그림이다. 베이컨의 지적대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미 본 적이 있는 형태나 모양과 비슷한 것만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아는 만큼 보는 것이다. - P. 23

예술작품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이중적인 인식과정을 거친다. 먼저 예술가가 상상했던 이미지가 존재하고, 나중에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 P. 26

모든 예술작품은 끝없는 해설과 비평을 통해 점점 그 의미와 가치가 증폭된다. 따라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누적되어 온 해설과 비평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각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작품을 감상하는 궁극적인 실체는 개인이다. - P. 30

2.
“침묵을 복구하는 것이 사물들의 역할이다.”
새뮤얼 베케트의 『몰로이』중에서

유진 이오네스코(1912~1914,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극작가)가 자신의 희곡에서 “언어는 침묵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 P. 44

3.
“장기판을 주제로 한 수수께끼를 낼 때 말하면 안 될 단어는 뭘까?”
나는 잠시 생각한 뒤 “그야 장기라는 단어죠”라고 대답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갈림길의 정원』중에서

4.
“…오직 카메라의 렌즈만이 진실이다. 렌즈는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는
단단하고 확고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악마의 군침』중에서

5.
“인간은 피부를 쓰고 있을 때에만 인간이다. 피부를 벗겨내고
해부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곧 이해할 수 없는 물질로 이루어진 기계장치가 드러난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폴 발레리의 『노트』중에서

6.
“다른 종류와 형태로 변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중에서

오늘날의 이미지는 대부분 효율성과 이익, 감각적 만족을 위한 성적 표현이라는 공통양식을 지닌다. - P. 186

예술이나 철학 혹은 과학이나 의학 모두 인간이 결국에는 죽어 해골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다. 이 해골은 클라라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서 있다. 이것은 우리가 겪게 될 운명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죽음의 순간에 끝난다. 살아 있는 우리도 죽음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클라라의 곁에서 순서가 오기를 기다린다. - P. 224

다만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관찰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의 의도에 맞든 맞지 않든 나름대로 그림을 이해할 뿐이다. 나는 여러 자료를 참고해 내가 만들어낸 의미를 작품에 부여한다. 내 해석이 맞든 틀리든 나의 생각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 P. 225

스페인 철학자 미구엘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는 “존재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P. 228

우리 시대의 예술언어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개인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림의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때와 장소, 또한 관찰자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게 마련이다. - P. 229

7.
“모든 것이 제대로 생겼는지 보려고 이 거울, 저 거울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만족할 수 없다.
나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의 내 얼굴을 찾는 중이다.”
W. B. 예이츠의 『젊으면서 늙은 여인』중에서

예술작품은 우리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창조행위다.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결코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다. 물론 예술작품은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도 역시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예술작품의 본성 때문에 완전하고 결정적인 해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은 많은 것을 시사하면서도 동시에 애매모호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 230

모든 초상화는 어떤 점에서는 관찰자를 비추는 자화상이다. - P. 235

만일 모든 초상화가 관찰자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관찰자는 그 초상화를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다. - P. 269

8.
“동물들, 학살당한 동물들이 보인다.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해

9.
“오직 보이지 않는 것만이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다.”
테오도르 주프루아의 『미학 강좌』중에서

10.
“건축은 생각의 표현방식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1936년 9월 23일자 편지에서

11.
“뼈대로만 존재하면서 피라미드처럼 덩치만 클 경우
영속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토머스 브라운 경의 『항아리 무덤』중에서

12.
“그것이 이전에 존재했든 아니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애정이
지니는 성스러움과 상상력의 진실, 곧 상상력은 미(美)를 통해 진리를
포착해 내야 한다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존 키츠가 벤저민 베일리에게 보낸 1817년 11월 22일자 편지 중에서

“극장은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아우구스토 보알의 『카데르노 데 아노타송이스』중에서

그림이든 조각상이든 결국 모든 형상은 망막을 현혹시켜 발견이나 기억의 환상을 야기하는 얕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우리가 입자 하나하나마다 우리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고 있는 미립자로 이루어진 무한소의 나선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 P. 432

운이 좋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진실의 작은 조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막론하고 예술작품 속에 담긴 진실을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반신반의하면서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적어 내려간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 P.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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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 - 여자와 남자의 99% 차이를 만드는 1%의 비밀
루안 브리젠딘 지음, 임옥희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는 다르다. 이 말 속의 비교 대상은 당연히 남자다. 항상 인간의 기준은 남자였고 기준에서 벗어난 여자의 행동이나 심리에 대해서는 열등한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21세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21세기를 여는 키워드를 ‘여성’과 ‘환경’으로 꼽은 사람들이 많았다. 환경에 대한 관심만큼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은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다면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남성과 다른 여성의 특징은 당연히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신체와 심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루안 브리젠딘은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에서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단 1%의 유전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유전자의 차이가 호르몬의 차이로 호르몬의 차이가 신체와 심리 상태의 차이로 발현된다. 신경 정신과 의사이면서 정신분석학자인 저자의 분석은 진화 심리학과 진화 생물학을 기초로 자신이 겪은 환자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

  여자의 뇌를 알면 여자를 알 수 있다. 그 심리적 변화와 신체적 메커니즘은 모두 뇌에서 촉진되는 호르몬의 분비와 그 영향에 따른 신체적 발달과 심리 상태로 나타난다.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프로게스테론을 비롯해서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분비 작용과 행동 변화, 심리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생물학적 관점만으로 여성을 분석하거나 해석하는 책은 아니다. 수많은 환자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문제점과 치료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주변에서 마주치는 상황들을 예로 들어 여성의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행동 변화의 관계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적당한 호르몬의 투여와 상담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여성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과학적 접근 방식은 이전의 잡다한 설명들보다 신뢰가 간다. 더구나 여성인 저자가 스스로의 변화와 상황들 속에서 느낀 점들을 설명하는 부분에 공감이 간다.

  여성에 관한 문제는 단순히 과학적 접근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두 가지 목소리와 씨름했다. 하나는 과학적인 진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목소리였다. 과학적 진실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정치적 올바름보다 과학적 진실을 강조하기로 했다. - P. 278

  정치적으로 양성 평등에 관한 논의와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조심스럽게 과학적 진실을 말하고 있다. 차별을 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그 차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종류의 인류가 보이는 행동의 패턴들이나 갈등의 요소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해결이 눈앞에 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말이 없어지는 남자와 언어 능력이 발달하는 여자, 20~30대 남자는 85퍼센트가 52초마다 섹스를 생각하고 하루에 한 번만 생각하는 여자, 갈등과 경쟁을 즐기는 남자와 그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여자에 관한 진실은 여자의 뇌에 숨어 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뇌에 관한 연구와 실체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신비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싶었던 호기심들은 하나씩 밝혀질 것이다. 특히 여자의 뇌를 통해 여자를 새롭게 발견하려는 저자의 임상적 결과들이나 과학적 방법들은 여자에 대해 오해하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들에 대해 명쾌한 결론과 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 심리학이나 진화 생물학의 연구 결과와 뇌과학과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학문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상호 보완된 연구가 진전될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인간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아니라 갈등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자와 남자의 유전자 코드는 99퍼센트 이상이 같다. 3만 개에 달하는 인간 게놈(genome)의 유전자에서 남녀 양성의 변이로 인한 차이는 단 1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런데 바로 그 1퍼센트가 신경계의 세포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쳐 남자와 여자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 P. 14

  향후 연구 결과도 이 책처럼 흥미롭고 재밌게 대중화될 수 있다면 기꺼이 관심을 갖고 읽을만하다. ‘여자와 남자의 99% 차이를 만드는 1%의 비밀’에 대한 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보편적 관점에서 이 책의 내용을 접근한다면 보다 객관적으로 읽어 나갈 수 있다.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의 비극과 생의 아이러니는 바로 그 1%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 출발조차 알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답답함을 덜어줄 수 있는 책은 아닐까 싶다. 여자의 뇌가 남자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것만은 확실하다. 단순한 남자와 복잡한 여자의 차이를 만드는 작은 비밀이 이 책 속에 숨어 있다.


07101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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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7 1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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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1 1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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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0 2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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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1 1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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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2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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