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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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은 만들어 나아갈 방향과 목적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자연은 동물과 식물의 삶과 죽음을 말한다. 인간도 물론 여기에 포함되며 누구보다도 먼저 문명을 만들어 왔고 문화를 이룩해 온 특이한 종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진화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지만 진보와 진화의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보다 편리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한 생존의 욕망에서 비롯된 인간의 물질 문명과 사회 구성 원리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통제할 수 없는 유전자들과 개체와 집단 전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기만 하다.

  1859년에 나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 자체에 대한 반성과 회의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저자의 관점이 아니라 그 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말한다. 폭풍과 해일처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끊임없이 수정되었으며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 종교에 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와 마르크스, 정신분석학과 프로이트의 영향만큼 세상을 온통 뒤흔든 사건이었다. 중세적 사고와 가치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인류가 만난 이 세 사람은 아직까지도 유령처럼 우리 곁은 떠날고 직간접적으로 생활 깊숙한 곳까지 손길과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1976년에 출판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다윈의 <종의 기원>만큼 충격이었던 같다. 전공과 무관하게 생물학이나 동물생태학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것은 당연한 충격과 후유증을 동반했을 것이다. 종이나 집단 수준의 이타주의와 행동 양태들이 연구되던 무렵에 개체 중심의 ‘유전자’를 앞세운 진화론은 새로운 과학에 해당한다.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지적했던 정상과학의 붕괴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된 것이다. 불멸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대한 도킨스의 철저한 분석과 논증이 이 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생물들 사이에서 수없이 목격되었던 이타적 행위와 행동 방식들을 새로운 해석과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분명히 낯선 일이다. 하지만 타당하고 적절한 논리와 일관성 있게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쉽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 보인다. 그 이후에도 꾸준한 연구와 노력들이 이어졌을 것이고 새로운 사실과 방법들이 나타났겠지만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알을 까고 태어난 새처럼 저자는 진화의 원리에 새로운 이정표를 새웠다.

  전체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잘 다듬어져 있고 전체의 내용과 구성 체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앞부분에서 제기된 문제점과 논의들이 책의 서술과정에서 조금씩 반론을 제기하고 이론을 설명한다. 뒤부분에서 그것들이 일관성 있는 하나의 틀로 조목조목 바뀌어간다. 생존기계인 모든 생명체에 대한 이타성은 유전자 단위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을 얻고 긍정적이고 설득적인 주장으로 독자들을 이해시킨다.

  과학의 심층부분을 이해하는 것은 낯선 이론과 수학적 통계와의 싸움이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접근하기는 더더욱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논증의 욕망을 잘 통제하고 있어 학문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넓고 깊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알고 새로운 지식과 진화의 큰 틀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이 책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만이 만들어 놓은 ‘문화’에 대한 유전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새로운 자기 복제자인 ‘밈meme'의 개념을 제시하며 인간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11장은 이 책의 또 하나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DNA 유전자와 밈의 유기적 관계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었지만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 P. 349

  밈은 인간이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인 생존기계라는 저자 스스로의 주장에 대한 유일한 희망일까? 재미있는 가설이지만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지닌, 문화를 지닌 이기적인 개체인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유일한 단서일까? 로빈 베이커의 <정자전쟁>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미시적 욕망도 <이기적 유전자>에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생명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고 유전하는 과정에 대한 새로운 눈을 빌릴 수 있었다. 30여 년간 지속되었을 이야기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듣고 싶어졌다. 인간은 얼마나 단순하며 또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이기적인 유전자보다 ‘밈’에게 관심이 간다. 인간의 미래, 아니 생명의 미래는 여전히 오늘의 모습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07082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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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3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질러서 엊그제 받았습니다.
근데 책이 쌓여서 독서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ㅠㅠ
늘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추천꾹!

sceptic 2007-08-2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읽을 수 있는 계절이 오네요...벌써 처서라니...
행복하게 읽으세요...
 
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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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규원이 보여주었던 언어의 명징성은 서정시가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다. 맑고 투명하며 일상적이고 진부한 의미를 벗어난 시어들 간의 긴장과 비약은 상상력의 한계와 절정을 보여주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명제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든 언어가 보여주는 세계는 유한하며 그 인식의 한계는 개인의 앎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데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김행숙의 시집 <이별의 능력>은 <사춘기>에서 보여주었던 발랄함과 형식들을 조금 더 밀고 나아갔다. 언어는 손에 잡히는 대상과 사물 그리고 세계에 대한 명명법이다. 존재의 형식보다 내용이 앞선다. 그러고 나면 눈에 보이는 구체적 대상들이 아닌 세계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해진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보여주었던 가상 현실의 세계는 인간의 상상이 빚어낸 극한의 세계다. 장자의 ‘호접몽’이든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든 상관없이 명칭과 해설이 아니라 만져지지 않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부단한 낚시질.



  발이 미운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나의 무용수들. 나의 자랑.

  발끝에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기도할 때 그들의 힘줄을 떠올린다.

  그들은 길다. 쓰러질 때 손은 발에서 가장 멀리 있다.


  표제시로 제시된 ‘발’은 이 시집에서 보여주는 세계의 단면이다. 구상과 추상의 간극과 대립은 그림에서 보여지는 부분과 애써 설명하고 싶은 부분들에 대한 연민이다. 발을 보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보여주거나 만들어가는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시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독자와의 공감 여부를 떠나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시의 한 단면이라면 김행숙의 시는 존중되어야 한다. 언어가 펼쳐 보여주는 찬란한 프리즘의 세계처럼 화려하게 혹은 날카롭게 사물과 세상의 이면들을 속속들이 집어내는 감각은 시인 고유의 영역이다. 좋다거나 싫다는 감상 이전의 문제이다. 다만 소통의 문제가 남는다.

  단일한 사물과 사건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양상과 감정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언어 실험이나 이미지의 극한을 보여주는 시를 독자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독자, 즉 문학 소비자를 염두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우리가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은 그리 넓고 크지 않다. 독자와의 공감이 시의 미덕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김행숙의 시들은 나름의 빛깔과 향기로 빛날 수 있다.

비에 대한 감정

그날 비는 감정적으로 내렸다

젊은 코끼리가 온 힘을 모아 코를 휘두르듯이
초목이 출렁이듯이

마침내 낙타가 해진 무릎을 꺾고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빛을 던지듯이
낙타의 등에서 기절초풍할 비단이 펼쳐지듯이
중국 도자기가 굴러 떨어지듯이

그날 자동차들은 비단에 휘감겨서 아름다웠다
커브 길에서
상욕이 튀어나왔다

그날 나는 감정적으로 비와 대립했다
함께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을 쳤다
아, 입을 벌렸다

코끼리의 위대한 코에 감겨 공중 부양된 저 아이들이 꺄르르 꺄르르 웃고
마침내 앙, 울음을 터뜨리듯이

그날 비는 감정적으로 내렸다
마지막까지 내렸다


  장마 기간에 내린 수많은 빗방울 속에 나는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장면들 보아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시인의 시선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문제이며 전달의 문제로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비에 이입된 화자의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경험을 공유할 수도 없다. 객관화 된 표현이나 매끈한 표현들을 원하는 독자들의 입맛을 달래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관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손과 발의 거리처럼 닿을 수 있으나 가장 먼 거리에 놓인 신체의 부분들처럼 그것들의 연장선에 놓인 세계는 닿을 수 없는 거리만큼 생경하고 이물스럽다. 시에 대한 평가와 영역에 한계는 없다. 그것들이 놓인 자리와 앞으로 놓일 자리만큼 다양하고 풍요로움을 기대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더 휘저어라. 나는 충분히 섞이지 않았다. 나는 생각 못한 알갱이처럼 남아 있어서 목에 걸리고

  길고 외로운 팔을 욕조 밖으로 늘어뜨리는 것이다. 당신의 목욕시간은 너무 길어, 당신은 소리치는 것이다.

  아주 길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소리치는 것이다. 식사시간보다 목욕시간보다 더 길어지면 긴 것, 연약한 것, 갈 곳 없는 것, 사라지는 것,

  그리고 극단적인 기침이 어디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사람 아닌 것처럼 구부리고

  구부렸다, 폈다, 구부리는 운동 속에서 나는 계속 되지 않는다. 나는 불연속적으로 사람들 속으로 사람들을 떠난다.


0708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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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경제학 편 청소년을 위한 교양 오딧세이 1
황유뉴 지음, 이지은 옮김 / 시그마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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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상에서 일어나는 기본적인 모든 행위들을 이제 우리는 ‘경제’라는 잣대로 들여다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드는 순간까지 경제적 동물인 인간은 자본주의의 시스템에 알맞은 인간형으로 변모를 거듭해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동가치와 상품가치를 올려놓는데 골몰한다. 컴퓨터와 영어는 물론이고 자본에 복무할 준비와 자세는 전쟁터의 군인에 버금간다.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모두의 일상이 방향 없이 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철학과 삶의 목표를 추구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준비와 마음가짐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 경제학편>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관한 간략한 역사이다. 학문적인 관심과 무관하게 역사의 진행방향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본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이기심을 극대화 한 행위가 경제의 기초라고 생각한 케인즈부터 미국의 경제대통령 그린스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상 ‘돈’과 관련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된 책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경제적 행위를 중심으로 경제학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말까지 고전 경제학 시대로 구분하면서 부아기유베르, 애덤스미스를 중심으로 초기 경제학의 특징을 설명하며 이후 정치경제학이나 한계주의, 케인즈주의, 화폐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경제학의 역사를 철저하게 인물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사건중심이나 실제 경제 현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학자들의 주장과 현실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내용을 많이 접하기 힘들다. 쉽게 풀어쓰기 위해 사례를 만들어 놓은 부분들이 있으나 어색하고 내용 자체가 연결되지 않는다.

  책의 의도는 쉽고 재미있게 경제학의 역사를 들여다 보려고 하지만 내용은 단속적이고 분절적이며 재미없고 지루하다. 각각의 경제학자들이 내세운 이론이나 대표적인 저서를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론의 타당성도 현실 적용 문제도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빈약하고 연결되지 않아 지루하다. 깊은 성찰과 핵심적인 내용의 정리가 아니라 산만하며 단편적인 나열에 불과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책은 당연히 경제학을 전공하거나 학문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청소년을 위한 교양’을 표방하고 있지만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나 나열로 교양이 저절로 쌓이지는 않는다.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된다. 화려한 컬러사진과 지나치게 좋은 지질이 부담스럽다. 편집이 화려하다고 해서 내용의 부실함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학문으로서 경제학이 어떤 것이며 그 발전 과정을 청소년들이 알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과 올바른 이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란 무엇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혹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들과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훨씬 설득력 있고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경제는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으로서 부대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경제의 힘과 구조 그리고 문제점과 모순들을 알고 가르치고 배우며 개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경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나 돈과 관련된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경제학-철학 수고>를 쓰며 칼 마르크스가 고민했던 바탕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현실을 개선했나? 정치학이나 철학과 무관하지 않은 경제학이 되어 사람을 살리는 경제학이 되려면 어떤 노력과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청소년들이 이루어나갈 사회의 모습은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고민과 방법들을 모색해 보는 책을 기다리는 것이 지나친 욕심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부족하고 필요한 책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경제학도 더 많이 필요하다. <괴짜경제학>처럼 일상과 직접 관련된 책부터 <쾌도난마 한국경제>처럼 큰 그림을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이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의 내일이므로.


07081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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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오늘에게 묻는다 - 청소년들이 만난 한국의 지성 12인, 푸른교양 001
논 편집부 엮음 / 초암네트웍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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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입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고교 교육은 정상화 될 수 없으며 초중등 교육도 마찬가지다. 대입제도는 대학의 서열화를 해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어 능력과 실력 위주의 사회 풍토를 정착시켜야 하며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승한 경쟁적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들은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대입제도 변화의 핵으로 자리 잡으며 전 국민을 ‘논술’의 광풍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논술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 학생 선발을 위해 출제되는 논술시험과 통합적 사고가 요구되는 삶을 위한 논술은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 누구나 고민을 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해답은 찾기 어렵고 모두가 준비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논술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과 공포를 빌미로 학원은 돈을 벌기 시작했고 학교와 교사들은 굼뜬 동작으로 현실을 지켜본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작은 변화와 실천적 노력의 성과들을 묶어낸 책 <내일이 오늘에게 묻는다>는 책으로서 의미보다 방향과 설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청소년들이 직접 주체가 되어 사회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지식인들을 찾아 나섰다. 열두 명의 지식인을 찾아가 한 명 혹은 여러 명이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대담들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은 내용보다 형식을, 구성보다 방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이 인터뷰 형식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심층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내용이나 형식들이 틀에 갇혀있고 답변의 내용이 전체를 조망하는 역할만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열린 지식인으로 선발됐을 법한 지성인들과의 만남이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현행과 같은 교육제도에서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기회를 가진 학생들의 생각과 의식이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에게 하나의 자극이 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권혁범, 임지현, 김상봉, 정희준, 강맑실, 백기완, 홍세화, 황대권, 정재환, 조희연, 이정우, 나희덕. 이상 열두 명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고등학생들에게 접해보지 못한 사회의 문제와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학생들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관심들이고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들이다. 교과서와 입시 위주의 현행 교육제도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짙어지게 하는 내용들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월간 <논>이라고 하는 학생용 논술 잡지에서 기획했고 초암아카데미에서 발행한 대입 논술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데 있다. 목적과 방법이 왜곡될 여지가 남아 있어 조금 아쉽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관한 부록도 학생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피상적이고 수박 겉핥기식 대담으로 깊이가 없고 짧은 분량으로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약점은 책의 의도와 학생들과 지성인들과의 직접 대면이라는 형식에 가려질 만하다.

  그들은 우리의 내일이다. 책의 제목처럼 ‘내일’이 ‘오늘’에게, 미래가 현재에게 묻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나아갈 방향과 지표들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이라는 망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눈과 비판적 안목을 길러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학생들의 자세가 절실한 현실에서 학생들이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다.

  삶의 방향과 생의 목적을 묻는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기였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살아가야할 사회에 대하 보다 진지하고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청소년들에게 열린 공간과 기회를 주어야 하며 현재의 어른들이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과 그들이 고민해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의미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오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아닌가 싶다.


0708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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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6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리뷰, 추천입니다^^

sceptic 2007-08-1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게 너무 진지하다는 단점이 있죠...^^
 
자유와 인간적인 삶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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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적인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한다.’는 하이데거의 말은 이미 반세기 전의 진단이지만, 모든 사실과 언어가 대중 매체의 언어 조작이 되어버린 오늘에 특히 맞는 말일 것이다. 무세계의 어두운 시대는 오늘도 계속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 P. 36

  김수영의 영원한 시적 탐구가 ‘자유’로 귀결된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삶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지칭해도 좋을 김우창의 <자유와 인간적인 삶>은 깊은 ‘자유’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현실적인 삶에 대한 고민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한 시대나 세대를 대표하며 생의 정리 단계에서 쏟아내는 감성과 이성 그리고 심미적 세계에 대한 선생의 발언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장의 내적 긴장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고리에 팽팽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고 있으며 전체가 단단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3부 심미적 질서 부분이 그러하다. 1부에서는 무세계의 세계성에 대해 2부에서는 적극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부분들이 책의 핵심적 사유를 드러낸다. 심미적 질서는 쉴러의 저작과 사상에 대한 해석들이고 선생 자신의 생각들이 교차되고 있지만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미적 기준과 역할들을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나누어 적극적 자유 의지를 실현하는 개인적,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다루는 부분에 핵심적인 내용이 숨어 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목표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 가는 투쟁에 불과하다. 철학과 역사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에 대한 의미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저자의 선언은 조용하고도 분명하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진보의 역사이다. 이 역사 발전에서 도덕은 매우 착잡한 현실적 연관을 가지면서 나타나게 된다. 도덕은 너무 쉽게 왜곡되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외적 구속으로 작용한다. 그 왜곡은 그 자체의 속성보다도 현실 상황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 P. 123

법이나 도덕을 외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에서 신적인 것을 성스러운 것이라기보다 힘으로써,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 P. 123


  법과 도덕과 자유에 관한 개인의 생각과 태도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 외연적 요소들이 왜곡되고 뒤틀려서 개인과 사회에 미쳤던 해악과 위험들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과연 신자유주의와 매스미디어와 자본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의 삶을 예로 들어 자유와 현대인의 삶을 반추하고 있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수학적 난제를 해결하여 수백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에 풀이과정을 공개하고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메달 수상을 거부했으며 돈과 명예가 보장된 직위들을 모두 거부한 채 어머니를 모시고 등산을 하며 버섯을 따는 일이 하겠다는 페렐만을 단순히 이 시대의 기인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연 공적인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하는 것인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당장 오늘 하루와 내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자유의 의미를 묻는 것은 배부른 유행가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자유 속에 태어나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말로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시작한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선언인지도 모른다. 과연 ‘자유’란 무엇이며 저자의 말대로 ‘진실 안에 산다’는 말이 그렇게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몸에 묶인 사슬을 끊고 진실 안에 살 수 있는 삶은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할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아닌가?


070809-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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