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
권인숙 지음, 유지연 그림 / 청년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남녀평등’이란 용어 자체도 남성이 용어의 앞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양성평등’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나이와 지역을 불문하고 여성에 대한 시각과 편견은 거의 유전형질처럼 변형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역사와 문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것이 차별인줄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아이에게는 빨간색이나 분홍색 옷을, 남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옷을 사준다. 집에서부터 “아니, 여자애가~~”, “넌, 남자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잔소리나 훈계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도 남자 아이는 의사 역할을 여자 아이는 간호사 역할로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각인하기 시작한다. 학교에 입학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여학생은 문과 남학생은 이과가 적성에 맞는다는 진로 지도에서부터 각종 생활지도나 암묵적인 시선과 제약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벽은 견고하고 두텁기만 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각종 고시에서 여성들의 우수성이 입증되지만 반대로 공정한 경쟁시험이 아닌 채용 경쟁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결혼이나 출산 등과 관련된 문제들은 개인의 문제를 벗어나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근본 원인이나 대책보다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심각한 출산율 저하에 대한 접근 방법과 시각 그리고 사회적 합의나 대책들이 오히려 더 심각해 보인다.

  권인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이제 나이가 제법 들어가는 세대일 것이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여성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세대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양성평등 이야기>는 시각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동일한 문제를 다르게 본다는 특징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왜 잘못 되었냐고 이야기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읽혀져야 한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고방식과 보이지 않는 편견은 암보다 무섭다. 누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부모의 역할과 관계를 학습했거나 학교나 사회에서 잠재적으로 습득한 방식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딸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딸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안한 설명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부모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물론 필독서로 권장할 만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고치지 않은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보게 한다. 더구나 미래에 여성 문제는 단순히 차별과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남성과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양성평등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 여동생, 딸에 대한 생각이나 시각과 다른 여성에 대한 그것이 다르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어머니의 희생, 외모지상주의, 남자와 여자의 성, 노동 현실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평등하거나 대등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곳이 대다수이다.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단순하게 여성을 ‘보호’하거나 ‘배려’하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수십 년 전에 비해서도 지금은 물론 여성들의 권익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의 차별과 편견들이 숨어 있다. 인간의 범주에서조차 제외되던 여성의 문제가 이제는 평등이라는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많은 선입견과 뿌리 깊은 관습적 사고들이 아직도 많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내면화된 의식과 무관하지 않으며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수많은 기득권들도 이런 이유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뒤처진 공부를 보충하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번 방학에는 이 책 한권을 부모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일 것이다. 생활과 습관 속에서, 우리의 관념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느냐의 문제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예들이 책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들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으로 만들어지기 위한 노력과 실천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의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나친 피해의식이나 대책없는 비난도 문제지만 관습적인 태도나 무의식적인 행동들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쯤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의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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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2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내가 뭘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야..^^

sceptic 2007-08-01 11:13   좋아요 0 | URL
나이들어 가는 세대 맞잖아요...^^

비로그인 2007-07-2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내에서의 여성의 자리도 생각해야할게 많지요.

sceptic 2007-08-01 11:12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가정에서는 훨씬 더 심각하죠...모든 양성평등의 출발은 가정에서부터가 아닐까 싶어요...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0
고미숙 지음 / 책세상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시대는 근대인가? 현대인가? 아직도 전근대와 근대적 특징들이 혼용된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대적 구분이나 특징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규정짓고 구별짓는 것은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며 미래를 꿈꾸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근대를 기점과 특징에 대한 허다한 논의들 중에서 고미숙의 책은 이채롭다. 먼저 접근 방법을 살펴보자. 당시의 문헌과 신문과 잡지를 뒤적인다. ‘대한매일신보’나 ‘독립신문’ 혹은 신채호의 <독사신론>을 꼼꼼히 짚어낸다. 그리고 미셸푸코의 <성의역사>나 <광기의 역사>, 가리타니 고진의 ‘병이라는 의미’,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 아노 카렌의 <전염병의 문화사>를 통해 현재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당시의 문화적 현상이나 시대적 특징을 찾아내는 혜안을 가지려면 일단 기준과 특징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과학적 접근 방법이 아니더라도 당대를 읽어나가기 위한 노력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저자 고미숙은 그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민족, 섹슈얼리티 그리고 병리학이다.

  먼저 민족이라는 원초적 개념과 민중들에게 파급되는 과정 그리고 교묘한 은유와 무의식적 믿음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민족담론은 여전히 굳건한 뿌리를 가지고 해체 되거나 변화의 조짐들이 일반화 되고 있지 않다. 여전히 한의 정서가 민족의 보편적 정서라는 사실이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거론되고 있으며 국가와 민족은 개인의 권익에 우선한다는 사실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기원과 뿌리를 확인하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대안은 자연스럽게 찾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인 종교 수준의 믿음은 두렵기만 하다.

  두 번째로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단순하게 ‘근대’의 특징이라고만 규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근대로의 이행기에 보여지는 특징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의 현상에 주목한다. 근대계몽기의 성담론은 조선 후기에서 이어진다. 여성 자체를 국민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시대에서 섹슈얼리티에 주목하는 사회로의 변화는 급격한 변화를 야기한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여성이 분리되고 국가에 대한 충애를 바탕으로 국민이 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로 병리학과 기독교의 문제이다.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는 이 부분에 대한 좋은 참고 도서가 될 것이다. 고미숙은 목욕탕과 병원, 교회를 근대의 성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문명개화하기 위한 위생과 병원에서 벌어지는 분리와 배제, 격리과 수용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적 기독교의 수용이 결합된다.

  고미숙의 이 책은 재미있다. 주제를 다루는 방법과 문장을 이끌어 가는 힘이 남다르다. 딱딱하고 분석적인 어조로 지루하게 이끌어가면 대개 지치고 무료해지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짧은 분량에 대한, 가볍고 흥미있는 책이 되겠다는 사명감이 투철하다. 그렇다고 논의의  초점이 무디거나 건성건성 넘어가는 법은 없다. 특유의 사유 방식과 근대를 다루는 폭넓은 사고는 저자만의 고유한 특징이 된다.

  문명과 지식을 가로지르는 유목민의 모습을 고미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은 또 한 번 고미숙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근대’가 왜 중요한 것인지, 우리들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 연장 선상에 놓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즐거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볍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민족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병리학이라는 주제와 별개로 맺음말에서 저자는 ‘기차와 인터넷’으로 분량에 대한 아쉬움과 다루지 못한 주제에 대해 미련을 말하고 있다. 근대의 상징으로 기차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맹목의 질주와 직선의 이동. 인터넷은 21세기의 기차이다. 그것이 또 다른 탈근대의 징후로서 현대를 특징짓는 기호가 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낯설고 이질적인 장 속에 능동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뿐이리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공각기동대>가 바로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로 우리도 마무리를 하자.
  “네트는 광대해” - P. 172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 소녀는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나비효과>처럼 결국 수많은 네트들의 연결은 현실의 한 칸만을 되돌리거나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현재를 이루고 있는 모든 틀 전체가 흔들리고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광대한 네트에 대한 인간들의 도전과 모험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070724-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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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6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없으면 불편한 존재로 자리잡았네요.
역사가 짧아서인지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그래서인지 배려가 부족하고 상처내는 일들이 많아서 불쾌할 때가 많아요.

sceptic 2010-01-3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 때문이 아니라 익명성때문이죠...관계 자체가 불연속이니까요...

반딧불이 2010-01-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내용을 잘 요약해주셔서 마치 책 한권을 다 본듯 합니다. 그래도 책은 읽어야겠지요? thanks to~ 수잔 손택 여사의 책은 <질병으로서의 은유>가 아니라 <은유로서의 질병>입니다.

sceptic 2010-01-31 21:03   좋아요 0 | URL
오타 수정 감사합니다. ^^
 
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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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를 쓰려고 제목을 치다가 오타가 났다. ‘대한민국 개좆론’이라고. 무의식적인 손가락의 실수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다 혼자 웃고 말았다. 우연한 오타가 그런대로 말이 된다. 육두문자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대다수의 정치인들을 혐오한다. 모두 꼴보기 싫다는 단무지형 정치 혐오증에 가까운 증상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병이 아닌가 싶다.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고도 압축 성장을 하느라 좌충우돌 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우수한 민족성 덕분인지 난파의 위기를 견뎌내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싶다. 아니 그렇다.

  이런 믿음조차 없다면 대한민국에 살 수 없다.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한 오호의 감정을 넘어 냉정한 판단력과 비판 능력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 이대로의 대한민국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만의 리그와 독주가 계속될 경우 과연 이대로 좋은가? 당신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1%쯤 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20% 되는 사람들일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은 정치인으로서 나름대로 힘겹게 또 갖은 방법으로 욕을 먹어가며 버텨내고 있는 유시민의 모습은 안쓰럽다.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서 신념과 지조라는 말을 꺼내기도 우습지만 그걸 지켜내려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신념에 대한 ‘진정성’이다. 정치인은 누구나 말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이 달라져서 정치적 행보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도 올바른 정신이 박힌 유권자라면 그의 진정성을 보고 판단한다. 수많은 변절자로 낙인찍힌 정치가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시민의 말과 행동들에 대한 지지 표현도 아니다. 다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적이 몇 번이나 있나 돌아보았다.

  그렇게 옳은 얘기를 저렇게 싸가지 없게 말할 수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던 동료 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시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싸가지 없어도 좋다. 나는 내 갈 길을 가자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태도와 방법을 수정해 보자고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복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그가 무슨 일을 저질렀고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대한민국 개조론>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의 비망록이며 대국민 보고서이며 참았던 억울함에 대한 변명이다.

  그의 말이 다 옳지는 않다.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먼저 그의 진정성이다. 언제든 정치를 그만 둘 각오를 하고 누구보다도 국민여러분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토해내는 그의 육성은 한 번쯤 귀기울여 들을만하다. 한나라당 지지자든 민노당 지지자든 노빠든 상관없다. 옳은 이야기에 대해서 냉정하게 들어보고 차갑게 비판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는 알아두고 들어보아야 할 만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올해는 대선 정국이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흥미롭게 혹은 잔혹하게 또는 가장 혐오스럽게 펼쳐질 예정이고 이미 서막이 올랐다. 절치부심 한나라당이나 길거리에서 지갑을 주었던 열린우리당이나 여전히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민노당이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달리는 기호지세의 형국이다. 유시민이 어떤 역할을 하든 정치인으로서 어떤 행보를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격으로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들어 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국민여러분을 왕으로 자신은 신하로 비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으로 당연한 주장이고 정치인들이 투표가 끝나기 전날까지만 내세우는 말이기도 하다. 임금이고 왕인 국민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아뢰는 말에 거짓이나 사심이 담겨 있다면 누가 그의 말을 듣겠는가. 자신을 과대 포장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선전물로 활용하기 위한 책이라면 독자들이 먼저 눈치 챌 것이다.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선진통상국가로 나간다.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기 위해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한다.” - P. 33

  이 한마디가  이 책 전체를 요약한다.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라는 양 날개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대한민국을 상상하는 유시민을 상상한다. 나머지 각론에 대해서는 책의 내용에 관한 개인적인 판단과 객관적 자료와 검증이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보다 엄밀한 분석과 국민들의 동의와 정치권의 야합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서 뭔가 바뀌기를 바라지만 않는다면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도 있겠다. 사학법은 거꾸로 돌아가고 국보법은 여전히 존재하며 연금개혁은 서로 못 본체 한 지 너무도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국민들께도 말씀드립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왕이 왕 노릇을 못하고 누군가의 수렴청정을 받게 됩니다. - P. 122

  조중동의 기사가 자신의 생각이고 한겨레의 칼럼이 내 이야기가 되어 논쟁한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패배주의! 누구의 수렴청정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국민들에 대한 발칙한 경고와 불만이 은근히 드러나지만 사실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그것이 궁금해서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썼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수많은 노동 계급은 어찌하여 조선일보의 주장을 자신의 머리로 착각하는 것일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와 지도자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은 곧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씀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처럼, 저도 정치적 사망을 각오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 P. 262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굴원의 <어부사>로 시작한 이 책은 남명 조식 선생의 ‘단성소’를 되새기며 끝맺는다. 너무 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문제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유시민의 이야기는 정치적 투정도 언론에 대한 불만도 국민에 대한 객기도 아니다. 그래서 참고 들을만했다.

070723-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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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줄을 읽으며 웃다 셋째줄에서 단무지형을 '단순무지형'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단무지형은 뭔가요?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집에 있지만 안 읽었는데
한번 실망하면 더이상 기회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겠지요.

sceptic 2007-07-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무지는...단순무식지랄..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데...아닌가요?ㅋㅋ
그책도 읽을 만한데요...

kdh6390 2007-07-2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이글 제 블로그에 올리면 안될 지 문의 드립니다. 제 블로그는 아래랍니다.

http://www.mediamob.co.kr/BACH2138/blog.aspx

sceptic 2007-07-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관없는데요...^^...예전에 어떤 사람처럼 별것도 아닌걸 가져다 리포트 장사하는 사이트에서 파시지만 않는다면...ㅋㅋ...농담입니다...

kdh6390 2007-07-2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의힘님 고맙습니다. 저도 님과 같은 고민을 한 적이 많습니다. 님의 글은 pdf파일로 올려 보겠습니다. 블로그관리자에게 복사방지기능을 달아 돌라고 해도 반영이 안되어서 제 블로그에 실린 다른 분에 대해서도 미안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알라딘에 서평쓰시는 분들 글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재삼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BACH2138드림~~~~~~~~~~

sceptic 2007-07-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넘 신경쓰지 마세요...^^
 
조선왕비실록 - 숨겨진 절반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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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니, 나는 얼마나 지독하게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 왔는지 확인했다. 사물 혹은 사건들 속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씨줄과 날줄들이 얽혀 있다.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방향과 눈높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기준과 판단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시선들이 주관적이며 하나의 기준과 판단일 뿐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이것은 양시론 혹은 양비론이다. 모두가 그럴 수 있고 전부 다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좋은 변명이고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 있는 오류이긴 하지만 설득력 있게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책을 읽고 몰랐던 사실을 확인하고 앎의 범위를 넓히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즐거움은 단순히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이기 이전에 인간적 삶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며 즐거움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런 면에서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은 내게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안겨준 책이다. 역사는 기록에 의해서만 후대에 전달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의 역사는 오로지 활자에 의해 책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물론 건축이나 미술품 유물과 유적을 통해 당시의 삶과 문화를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과거는 오로지 기록된 문자로만 전달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아니, 내가 얼마나 맹목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반성하게 된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어떤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는 역사에 대한 접근 방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것을 사관이라고 하는데 단순하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관련된 문제들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근본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며 현재적 관점에서 적용하고 이해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인물과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은 역사가의 고유 권한일 수는 없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것이며 정확하고 타당한 인과관계와 논리적 사유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우선 목적과 방법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역사의 기록 자체가 왕이 중심이 되어 국가 단위의 사건과 흐름들을 위주로 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미미하다. <한국생활사박물관>가 주목받고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선조들의 일상들이 어떠했는지 우리처럼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는지가 서술의 초점이 되기 때문에 훨씬 더 흥미있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소외된 이웃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이며 국가의 주인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체는 항상 왕과 양반들이었으며 권력을 쟁취한 자들의 잔치였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주제는 여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어쩌면 이 책의 부제처럼 ‘절반의 역사’이다. 기록되지 않은 ‘숨겨진’ 절반의 역사는 누구에 의한 것인가? 당연히 그것은 여성들의 몫이다. 근대 이전에 여성에 대한 문제는 다른 책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며 본격적으로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한 것은 불과 100년도 안된다. 지금도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지구 위의 절반이 넘는 여성들은 인권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조선시대에 비추어 판단하거나 비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역사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신사임당이나 유관순이 아니라 권력의 핵심에 놓여있던 조선의 왕비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떻게 살았을까? 이렇게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호기심에서 출발한 책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태조를 왕위에 오르게 한 신덕왕후 강씨, 태종 이방원의 아내였던 원경왕후 민씨,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아내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어머니이자 광해군의 할머니였던 인수대비 한씨, 선조의 왕비였던 인목왕후 김씨,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 너무나 유명한 고종의 아내 명성황후 민씨. 이렇게 일곱명의 파란 만장한 인생사가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그려진다.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극적이었던 대표적인 왕비들을 선발했다. 왕비가 되기 전 태어나는 과정과 왕비로 간택되거나 왕실의 며느리가 되는 과정 그리고 왕비가 되는 과정은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머나먼 이야기로 읽힌다. 대표선수로 발탁된 일곱 명의 왕비는 그 어느 왕비보다도 사연 많은 여인들이다. 한 나라의 왕비로 한 남자의 아내로 무엇보다도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그녀들의 삶은 눈물과 한숨으로 점철되어 있다. 저자는 단순한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헌과 사료를 통해 생략되거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유추한다. 결국 이 부분들은 역사가의 해석과 판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조선왕조에서 벌어졌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왕조의 운명을 뒤바꿀 만한 역할을 했던 왕비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비로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역사의 중심에 선다. 남성들보다 더욱 치밀하고 냉정한 판단력을 보여주며 남편과 아들과 손자의 운명을 뒤바꾼 여인들의 열정과 눈물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실에 근거한 판단과 해석, 질문과 상상들 사이에서 즐겁게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이다. 일방적이고 직설적인 설명이 아니라 독자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실록이나 관련 서적을 인용하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솜씨도 믿을 만했다. 깊은 여름밤 혹은 낯선 휴가지에서 이 책과 함께 과거의 역사 속으로 잠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07072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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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호오 이야기 - 규슈 지쿠호오 탄광을 중심으로 한 격동의 민중사, 평화교육시리즈 03
오오노 세츠코 지음, 김병진 옮김 / 커뮤니티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책은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헤어진 인연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몰랐던 지식을 전해주기도 하며, 잊고 있던 과거를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책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사색에 잠기고 나를 돌아본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 과정과 진행 방식들이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고 미래의 모습이다. 한 권씩 책을 읽어나가면서 책을 통해 인류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고 나의 삶과 우리의 현재를 조망한다. 직접적인 행동과 실천의 문제가 늘 숙제로 남겨지지만 인식의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과 깊은 사색과 성찰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식이 아닌가 싶다.

  커뮤니티에서 출간된 평화교육시리즈 중 한 권인 <지쿠호오 이야기>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내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탄광 갱도가 무너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4살 때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세발 자건거를 탄 아버지의 모습이 흑백 사진으로 단 한 장 남아있다. 그 사진이 내가 알고 있는 할아버지에 대한 전부이다. 한국에 돌아와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며 세 딸과 외동 아들을 키우셨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혹은 그 시절 모든 어머니의 이야기로 친척들이나 고모들에게 후일담으로 명절 때마다 귀동냥하며 자랐다.

  할아버지가 일했던 탄광이 어디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건너갔는지 물어본 적도 없다. 나와 관계없는 너무 먼 이야기였고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설처럼 가끔 흘려듣곤 했었다.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 운동본부’라는 이름이 긴 단체에서 이런 책을 만들고 번역해서 한국에서 출판한다는 것은 역사 바로 알기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일일 것이다. 일본이라고 해서 왜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없겠는가. 한국의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마는 맹목적인 일본문화에 대한 추종이나 비이성적인 반일 감정이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로 알고 올바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한일 관계는 재정립되어야 한다. 더욱이 지나간 역사에 대한 왜곡이나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아픈 과거에 대한 반성도 성찰도 그리고 미래를 향한 제대로 된 방향 설정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쿠호오는 일본의 대표적인 탄광을 말한다. 이곳은 단순히 메이지 유신 당시부터 일본의 부의 원천과 상징이 되는 곳이 아니다.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한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민중들이 쏟았던 피와 땀의 현장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탄광이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였고 과거였다면 우리가 돌아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곳이 한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부터 시작해서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한국인의 수가 급증했다. 토지몰수와 생활난을 이기지 못한 반강제적 이주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시간과 인간 이하의 노동 환경은 짧은 설명과 간단한 삽화였지만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먹먹했다.

  다른 역사책을 통해 객관적으로 서술된 텍스트를 접하는 것과 달리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들이 상징적이었지만 상세한 설명보다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지쿠호오 이야기 뿐만 아니라 야마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한일 병합과 연락선에 실려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근현대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이야기들이다. 위안부와 징용에 동원된 한국인의 구체적인 수치가 분노를 배가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이 책을 통해 그 심각성과 사실 여부 자체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다양한 교육 방법과 역사에 대한 접근 방법이 있겠지만 이렇게 민간의 노력과 적극적인 성과물들은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과 과정들이 국가의 개념을 넘어서 연대와 참여의 장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제이다. 단순히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중국과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가 모두 연계되어 있는 역사이다. 국가와 국가간에 벌어진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였을까를 생각해 보자. 국경을 넘어 전쟁터에서 총을 쏘며 아비규환의 지옥을 헤매였던 그 많은 사람들을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웠을까? 갱도에서 숨이 막혀 생손톱이 다 빠지도록 벽을 긁다가 질식사한 사람들의 시체에는 성한 손톱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이 책보다 먼저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어린 시절에 전해 들었다. 그들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분노해야 하는가?

  하방연대는 계층과 계급을 넘어 국경을 넘어 현실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만의 전쟁과 그들만의 갈등 속에서 대다수 민중들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리고 누구를 대상으로 싸워야했는지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 원인과 문제점들을 짚어보면 실타래가 풀리듯 해결방법도, 대안들도 찾아지게 된다. 물이 빠지고 바닥이 드러나듯 그렇게 선명하고 정확한 눈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미래의 주인이 될 청소년들에게 뿌연 시야를 걷어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삽화와 일본어 원문 표기라는 방식을 택한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책이 크고 무겁고 비싸다. 군살을 빼고 좀 더 가볍고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졌으면 좋았겠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일본의 민중사와 조선인 탄광 노동자의 삶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070719-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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