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의 기술 -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의 모든 것
앤서니 웨스턴 지음, 이보경 옮김 / 필맥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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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글쓰기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고 좀더 광범위하게는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글쓰기는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든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통상 글쓰기라고 하면 시나 소설 혹은 수필이나 일기 등 문학적인 글로 받아들인다. 학교를 다니면서 국어 시간에 배운 글쓰기는 대략 문예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살아가면서 쓰게 되는 모든 글들은 대부분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가령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레포트를 쓰거나 취업을 하기위해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잡다한 글쓰기가 문학적인 글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실용적인 글쓰기와 구별지어 생각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또 하나의 글쓰기가 바로 논증적인 글쓰기이다. 최근 논술의 열풍과 더불어 글쓰기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들불처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팔리고 누구나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의 설자리가 그만큼 좁아졌다. 숨은 대가들의 솜씨는 그것을 엮어내는 힘이 조금 부족할 뿐, 전문적인 영역에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깊이를 더해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많은 글들 속에 숨어 있는 논리적 오류와 모순들이다. 제대로 설득력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실용적인 글쓰기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이다.

  논증은 논리적인 증명의 한자어이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운 논설문이라고 한정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아지거나 형식이 뚜렷하게 고정될 것 같아 역자는 논증적인 글이라고 번역한 것 같다.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책이다. 신문의 칼럼이나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에 이르기까지 논증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런 교육을 받을 기회도 가르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판이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과 군사 정권과 유교 문화권에서 순종적이고 무비판적인 생활태도와 문화적 관습들도 한 몫 거들었기 때문이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비판은 가치중립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과 비난이라는 어휘에 대한 개념을 가까운 거리에 두고 해석한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었던 어두웠던 과거 때문이다. 논리적인 비약이 아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성적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탐탁치 않은 눈길을 먼저 받게 된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현상과 인식들은 사고력을 기르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창조적인 제안과 논의들이 활발하게 살아 숨쉴 수 있는 숨구멍을 막아 버린다. 최근들어 대학에서도 글쓰기나 작문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지식의 축적과 새로운 연구, 생각을 드러내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정이 어떤 형태로든 대부분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정리된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쉽지 않은 일들과 부딪힌다. 바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고 속이 시원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나 교육 풍토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마치 사전이나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야전 교범처럼 치밀하고 간략하게 정확하고 분명하게 쓰여진 책이다. ‘논증’을 다룰 자격이 충분할 만큼 논리적인 책이다. 머리말과 들어가는 글에서는 논증의 목적과 논증적인 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논증의 규칙을 다루고 있다. 논증이 무엇인지 논증의 규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30가지의 원칙을 설명한다. 그리고 7장부터 9장까지는 글쓰기의 규칙을 설명한다. 논증을 실제 글쓰기에 적용할 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끝으로 10장에서는 ‘오류’에 대해 설명한다. 일상적인 대화나 논쟁, 글쓰기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들에 대해 점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TV 토론 프로에 출연하는 패널들의 오류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부록에는 ‘정의’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2004년에 번역된 책의 8쇄를 사서 읽었다. 시간이 흘러도 여러 사람에게 권한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실용적인,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도구적 목적을 가진 책들은 전자제품의 매뉴얼처럼 식상해지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폐지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논증에 관한 여러 책들 중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탄력적이고 상쾌한 스텝을 밟는 쉐도우 복서처럼 빠르고 정확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읽었으면 써야한다.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성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써야 한다.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스스로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예상될 반론의 근거까지 짚어내는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가장 큰 불행이다. 칼날처럼 예리한 비판과 논리적인 토론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이 나도 행동하는 사람이다.


07052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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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뫼 2007-05-25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증. 아, 어려운 부분입니다. ^^;; 저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네요.
서평 잘 읽습니다.

sceptic 2007-05-2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꾸준한 관심과 노력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양주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34
김준철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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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났을 때, 그 반가움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 잔 술이 아니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10대 후반의 사춘기 소년들이 흔히 겪을 법한 숱한 흔적과 상처와 기억들이 혼돈으로 박제되어 있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를 10여년 만에 만났다. 풋풋했던 시절의 모습을 세월과 함께 간직한 채 오랜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형언하기 힘든 느낌으로 다가오는 친구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두고두고 떠오르고 오래 소식 전하지 않아도 어제 만난 듯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되찾았다는 것은 표현하기 힘든 기쁨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씨익 웃고 한 잔 부딪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와 소주, 맥주, 압생트, 시바스 리갈을 마셨다. 며칠 전, 동생이 귀국하면서 시바스 리갈 18년산을 한 병 사왔다. 서점에 갔다가 <양주 이야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 보니 자주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양주를 자주 접하면서 궁금했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호기심에 책을 샀다. 책을 통해 그것들을 전부 확인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불현듯 밀려드는 갈증을 해소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희망과 용기를 준다. 한 잔 술은 시름을 달래고 현실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며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해 온 친구와 같다. 홀로 마셔도 좋고 좋은 사람들과 마시면 더욱 좋다. 술 한 잔의 추억과 에피소드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우리가 걸어온 길과 쌓여온 세월들 속에 술은 적당한 윤활유의 역할을 해 준다. 그것이 지나쳐 1인당 술 소비량 1위 국가의 명예를 차지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맞는 주량을 측정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비틀거리지 않을 정도 혹은 평소와 다른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정도를 말한다. 하지만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말할 정도가 아니라면 술자리는 즐겁고 유쾌하게 끝나는 것이 좋다. 근심 걱정 가득한 얼굴로 친구와 마주하거나 세상의 유일한 친구로서 술을 대할 때는 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술을 얼마만큼 마실 수 있느냐는 문제는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각 나라마다 민족이나 인종마다 특별한 문화가 있듯이 음식 문화의 일종인 술도 마찬가지이다.

  양주는 서양의 술이라는 말이다. 우리 고유의 민속주에 반대되는 개념의 말로 해방 이후 주로 미국에서 유입된 술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인 증류주인 소주가 있다. 원료와 제조 공정과 가공 방법에 따라 천양지차의 맛이 나는 것이 술이다. 김준철의 <양주 이야기>는 서양 술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돕는 책이다. 살림지식총서의 편집 방향과 의도, 제한된 분량이 말해주듯이 깊은 지식과 폭넓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다. 간략하게 브리핑하듯 핵심적인 사항들을 소개하는 정도로 그친다.

  그래서 이 책은 주변에 널려 있는 양주병의 암호들을 해독하고 스카치와 브랜디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상식을 키울 수 있다. 스카치위스키의 경우 영국에서 발달하기 시작해서 그 원료와 증류 방법 숙성 과정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의 술들이 지금까지도 전통을 잇고 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는 샴페인과 꼬냑으로도 유명하다. 샹파뉴와 꼬냑 지방의 술로 지역명이 술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지만 꼬냑이 포도주를 다시 증류한 술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단순한 정보 차원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총 맞는 자리에서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시바스 리갈과 한국인들에게 유독 인기가 높은 발렌타인 등은 독특한 향과 맛 때문인지 아니면 옷처럼 브랜드 파워가 후광효과를 발휘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J & B나 조니워커, 글렌피딕 등의 술의 기원과 역사를 안다고 해서 양주의 맛이 달라지는건 아니지만 술에 관한 이야기를 술 안주로 삼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꼬냑의 경우 최상품에 나폴레옹이라는 상표를 내세운다. 헤네시와 로얄 살루트, 까뮈 등의 술병에 X O 혹은 V.S.O.P와 같은 암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오크통이 단순히 술을 숙성시키는 저장고가 아니라 술의 일부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양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잡다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또한 진과 보드카, 럼과 칵테일, 테킬라, 칵테일, 스피릿, 리큐르 등 다양한 술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다. 간략하지만 궁금증만 해소하는 차원에서는 적당하다. 좀 더 깊이 있는 내용과 상세한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당연히 다른 책을 참고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이 책은 그저 웰빙과 음주 문화의 관점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주에 관한 상식 수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품었던 호기심이 많이 해소되었고 다른 관점에서 쓴 책이 있다면 몇 권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오래된 친구와 술 마시러 가는 동안 혹은 선물로 주고받은 양주의 내력이 궁금하다면 한 두시간을 투자해서 이 책을 읽어봐도 좋겠다.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술의 종류를 선택하기도 한다. 흐린 봄날 저녁에 어울리는 술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술 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다시 오래된 그 녀석이 생각난다.


07052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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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4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은 관계를 느슨하게 해주고 가깝게 해주지요.
꼬냑이라하면 프라하의 봄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소리나지 않게 입으로만 이야기하던 장면이 떠올라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sceptic 2007-05-24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소리 가득한 밤입니다. 님도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와인 한 잔의 여유가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선집 1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광규 옮김 / 한마당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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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신입생 무렵으로 기억한다. 박일문의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반향을 일으킬 제목이 주는 강렬함에 이끌렸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슬픔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라는 한 마디를 지금도 기억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시의 제목을 소설의 제목으로 빌려왔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후니까 브레히트의 시집을 처음 접한 것은 스무 살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란색 표지의 강렬함과 브레히트의 흑백 사진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더구나 김광규의 번역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나에게는 꽤나 인상적인 책이었다. 책꽂이를 뒤적이니 책이 없다. 당연히 그곳에 있을 거라 믿었던 대상의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 느껴야 하는 당혹감. 과거의 시간과 그리움들은 그렇게 추억 속에나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을 뒤적였지만 절판되었고 중고책 사이트 고고북에서 검색하니 한 권이 나왔다. 얼른 주문하고 우여곡절 끝에 수원 남문서적에서 열흘 만에 책이 도착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고 추억에 잠겼고 책장을 넘기다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 사랑함으로써 행복한 나
1997. 7. 5  蓮

  연필로 휘갈겨 쓴 책 속지의 메모가 왼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연꽃이란 이름을 보아서는 책 주인은 여성이었을 것이고 세상과 삶에 대해 고민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 사랑이 어떤 종류이든 뜨거운 가슴과 열정으로 삶을 진지하게 고민했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을 했다. 무슨 연유에서 시집을 헌 책방에 내놓았을까? 삶의 곤궁함이나 힘겨움 때문이 아니라 다만 이상적 꿈에 저당 잡힌 젊은 날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헌 책방에서 구입한 시집 한 권으로 참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브레히트도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짧은 멈춤으로 보인다.
- ‘사랑하는 사람들’중에서

세기를 뛰어넘는 ‘사랑’은 그 느낌과 감각, 대상과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혀질 것이다. 영원앞에 사랑은 짧은 멈춤일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와 그래도 사랑함으로써 행복하다고 말하는 어느 독자의 목소리는 분명히 공감하고 있다. 관점과 형식이 다를 뿐.

  1898년에 태어나 20세기를 온몸으로 시작했던 시인은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젊은 날의 열정과 뜨거움을 표출하기 시작하면서 세계 양차 대전을 맞이했고 히틀러의 악령을 피해 러시아, 미국, 베를린으로 망명 생활을 하며 끝까지 살아 남았다. 공산당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세상을 간파했다.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혹은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비참한 현실과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을 시로 토해내고 있다.

  현실참여의 목소리가 지니는 문제점은 거칠고 투박하게 문학을 수단화하는 데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 없지만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에 대한 지루한 논쟁은 이제 화석이 되어간다. 브레히트는 시의 내용과 영역이 지니는 의미를 넘어 선 자리에 위치한 고급한 문학이 아니다. 설익은 구호는 아닐지라도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참함과 불가해함을 타계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읽힌다. 지나친 냉소와 아이러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이 되고 직설적인 묘사와 열정에 찬 목소리는 시인의 젊은 날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여러 권의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선집의 형태로 펴냈기 때문에 브레히트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맛보기 수준의 작품들을 엄선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시가 전하는 힘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때가 있다. 초판이 발행됐던 1985년을 생각해 보면 이 시집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추억은 사진보다 선명하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 ‘임시 야간 숙소’중에서

배워라, 난민 수용소에 있는 남자여!
배워라, 감옥에 갇힌 사나이여!
배워라, 부엌에서 일하는 부인이여!
배월, 나이 60이 넘은 사람들이여!
학교를 찾아가라, 집없는 자여!
지식을 얻어라, 추위에 떠는 자여!
굶주린 자여, 책을 손에 들어라. 책은 하나의 무기다.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 ‘배움을 찬양함’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열망들에 대해 목숨을 걸 수 있는 특권을 가져본 사람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겪었던 무수한 시행착오와 삶에 대한 열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 순수함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조폭 영화의 대사처럼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은 강한 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린 걸까. 옛 전우들은 사라져 버렸고 추억은 흑백 사진처럼 앨범을 장식하고 있는 시대는 아니다. 진행형의 역사는 여전히 도도히 흐르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고 새벽은 어둡기만 하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가슴에 ‘사랑’이 남은 사람들이다. 친구에 대한, 혹은 삶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남은 생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하늘이 생각난다. 그 시퍼런 투명함에 눈을 베이고 마음을 씻어 볼 수 있는 작은 행복을 감사히 여기며 자신을 미워하더라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고스란히 간직해야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07052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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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때 한 선배가 선물해줘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읽었던 기억도 다 흐려졌는데 <살아남은 자의 슬픔>만 뚜렷이 남았습니다.
요즘은 가끔 생각합니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건가. 아니면
살아남은 게 결국 강한 건가...

비로그인 2007-05-2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읽을 때는 그 전에 읽었던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묘한 분위기인데요.

sceptic 2007-05-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 님,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거겠죠?
그래서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承姸 님, 간만에 헌책방에서 책 구입하고 참 많은 생각과 추측과 상상으로 옛 생각을 좀 했고 원래 주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承姸


비로그인 2008-10-1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외국시집이라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리뷰 쓰셨쿤요. 좀 냉소적인지 모르겠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모두 슬퍼해야 하는 건 아니길 빌며....Thanks To~~~

sceptic 2008-10-14 13:58   좋아요 0 | URL
살아남은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순 없죠...어떻게 살아 남았느냐에 따라 부채감 정도는 가져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은 아닐런지요...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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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짓고 사는 동물은 인간만이 아니다. 조류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여러 동물들이 집을 짓고 산다. 다만 기능적인 목적 이외에 아름다움이라는 목적을 더해서 집을 짓는 동물은 없다. 더구나 주거공간인 집의 개념을 넘어 예술이 되어 버린 ‘건축’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영역이 되었다. 건축은 ‘공간’이다. 비움으로 얻어지는 공간.

  그릇은 비어있는 공간을 위한 도구이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도자기라도 마찬가지도 실용적 측면에서 보면 빈 공간을 위한 낭비적 요소일 뿐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실용적 목적에서라면 기후나 지형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가장 최적의 공간만을 고려하면 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주거의 형태와 문화가 형성되면서 집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 나가기도 한다.

  건축은 이제 인간의 행복과 직결된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건축물 안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는지 생각해 보자. 인간의 옷만큼이나 친숙하고 중요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이다. 그 조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 건축가만의 몫일까?

  철학자보다 에세이스트로 우리에게 익숙한 알랭 드 보통의 신작 <행복의 건축>은 건축에 관한 에세이다. 건축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고 건축의 학문적 관점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전문 건축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필요한 이야기들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건물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과 역할 그리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축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놓여 있다. 단 하나의 개인과 가족을 위한 집을 짓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사람을 위한 건물을 짓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위한 건축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건물들은 그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제 역할과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과 미감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보통은 이 책을 통해 건물을 통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의미를 곱씹게 해 준다. 다소 사색적이고 주관적인 느낌과 개인의 감정과 정서가 객관적 대상을 왜곡할 우려가 있으나 저자의 관점은 한 쪽에 치우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만큼 삐딱하거나 독선적인 것은 아니다. 건축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과 불행 혹은 건축의 역사와 문화가 각 지역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여유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책의 장점은 뒤집어 보면 단점으로 바뀐다. 건축과 관련된 인문학적 접근이라는 나의 개인적인 판단과 다르게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건물들에 대한 인상 비평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책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을만큼 다양한 색깔을 띤 책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자칫 ‘건축’에 대한 지식이나 건축 관련 서적으로 오해하는 독자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을 법하다.

  행복을 위한 건축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우선 이렇게 평범하지만 거시적 관점의 주제를 던지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집이라는 사적이고 물질적인 장소와 심리적인 공간으로 변화해온 과정들을 살펴보면서 왜 건축이라는 분야에서까지 인간의 삶과 행복이라는 문제를 연관지어 살펴보아야 하는지 저자는 말하고 있다.

“유용하고,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뭔가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건축의 의무다.”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은 그렇게 주장했다. “건축이 단순한 집짓기와 구별되는 것은 장식 때문이다.” 조지 길버트 스콧 경도 그렇게 말했다. - P. 52

  건축과 관련된 옛 문헌들과 전문가의 견해를 통해 저자는 건축의 의미와 역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자주 제공한다. 숨 쉬고 살아가는 공간 전부가 건축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축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치 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는 것처럼 이제 건축은 우리 생활의 필수 여건이 되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역할을 깊이 생각하거나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신선한 충격이다.

  어떤 스타일로 지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말하는 건물에 대한 설명도 저자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건물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비평을 통해 답을 찾아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건축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추억의 공간, 이상과 꿈을 실현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소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이 책은 빈 들판에 인류가 이룩해 놓은 수직에 대한 꿈들을 점검하고 있다. 수많은 빌딩과 콘크리트 건물들의 삭막함 속에서 건축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어쩌면 사치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삽입된 건물들과 집들이 보여주는 공간과 건축에 대한 생각들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적인 한옥이나 옛 공간들이 보여주는 여유를 떠올렸지만 현재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을 둘러보면 여전히 먼 곳에 위치한 그들만의 담론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예술 작품에서는 질서의 베일을 통해 혼돈이 아른거려야 한다.”(노발리스) - P. 198

혼란과 질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건물에서만 우리는 질서를 세우는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 수 있다. - P. 203

  건축에 대한 다양한 정의 속에서 저자는 “아름다움은 부분들 사이의 일치된 관계의 산물이다.(233페이지)”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겨 놓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공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곧 행복과 직결된다. 고정관념을 깨거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그 둘이 잘 조화를 이루거나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 삽화가 들어간 비닐 하드 커버로 표지를 감싼 책의 디자인만큼만 행복을 전해주는 집에 살고 싶다. 이 책은 손에 잡히는 촉감과 시각적 이미지, 물리적 실용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07052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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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뫼 2007-05-21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구입할까 하다가 미뤄둔 책인데 읽고 싶어집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
건축과 인간의 삶 그들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sceptic 2007-05-2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인간을 둘러 싼 모든 것들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건축도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됩니다.

드팀전 2007-06-0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해요.^^

sceptic 2007-06-1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메일 받고 알았어요...^^...감사합니다...이 달 책 구입비 줄게됐어요...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2
이지양 지음 / 샘터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창문 너머 멀리 바라다 보이는 녹음이 짙은 산에 바람이 분다. 나무들은 제멋대로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 같은 방향으로 때로는 다른 방향으로 뒤척인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의 나무들이 서로 엉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바람 소리가 들린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모으던 숲의 바람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다.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본다. 그렇게 소리를 듣지 않고 볼 수도 있다. 눈으로 보는 소리도 때로는 마음을 흔든다.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홀로 잔을 들어 마시니
거문고 소리는 이미 내 귀를 거스르지 않고
술 또한 내 입을 거스르지 않네
어찌 꼭 지음(知音)을 기다릴 건가
또한 함께 술 마실 벗 기달 것도 없구려
뜻에만 맞으면 즐겁다는 말
이 말을 나는 가져보려네

  세상을 벗어나 절대 고독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시가 아니다. 조선 시대 어느 선비의 시 구절에서 청아한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대의 지향하는 이상향이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세월 따라 변해왔다. 우리 선조들의 지향점을 오늘에 되새기는 일은 복고적 현학취가 아니라 우리들 삶의 모습에 대한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늘 현재에 있지 않다. 과거 우리의 삶과 미래의 희망에 비추어 끊임없이 비교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절대적 척도가 없는 상대적 가치라고 말한다.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얼마나 가졌는지 확인하고 나의 행복이나 불행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해서 결정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행복은 이 시를 지은 선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지양의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는 고문서에서 건져 올린 우리 전통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지 묻은 책들 속에서 소리를 건져 올리는 일은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귀에 들리는 소리의 느낌들을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통해 상상하게 해 준다. 직접 듣지 않고 음악과 관련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백번 읽어도 한 번 듣느니만 못하다. 그런 줄 알면서도 이 책을 쓴 저자의 목적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음악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오늘 한겨레에 최장집 교수의 ‘거대 담론’에 대한 비판을 읽으면서 입맛이 썼다. 논리와 정교함을 비판하기에 앞서 평화나 인권과 같은 거대 담론이 우리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자명한 진리가 그 첫 째 이유였고 그와 같은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유감스러웠다. 우리 삶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들을 쉽게 결론 내리거나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가 없다. 다만 건강한 토론과 논쟁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 가치들이 떠오르고 정치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론들이 도출된다면 좋겠지만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드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치 지향적이지 못하다는 개인적인 생각때문인지도 모른다.

  책과 관련된 잡다한 비판이나 분석도 마찬가지다 우리 음악이기 때문에 들어야 한다거나 옛것이니까 되살려 전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작은 소득이다. 듣기 싫지만 우리 음악이니 열심히 찾아 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귀에 익숙하고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과 우리 음악은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우리 옛 음악에 관한 문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수룡음이나 염양춘, 봉황곡, 대취타 등 개별 곡을 통해 역사와 그 주변을 상세히 설명하는 대목은 기억에 오래 남을 수가 없다. 제목만 들어보았거나 처음 듣는 곡들에 대한 설명이 가슴에 남지 않는다. 한 곡 한 곡 찾아 들으면서 이 책을 음미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이 책의 사용법이다. 도산십이곡이나 농부가, 회심곡에 대한 설명들은 가사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가늠해 볼만 했다. 선비들의 애환과 멋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겼던 곡들도 소개되어 있으며 5장에서는 우리 귀에 가자 익숙한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다행스럽다.

  지루한 음악 이론이나 우리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인 서술 방식은 저자 개인의 감상과 역사적인 관점의 해설이다. 객관적 사실들과 주관적인 감상이 적절하게 뒤섞여 지루하지 않고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특히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상당한 분량의 그림들이 이해를 돕는다. 듣는 대신 그림을 보며 상상할 수 있다. 다양한 풍속화와 민화, 사진 등 정성을 쏟은 자료들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편집이 돋보이는 책이다. 공을 들인 흔적들은 독자에게 말없이 전해진다.

  노래 가사와 한글 번역 부분들은 들리지 않을 뿐 분위기와 내용을 감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는 ‘회심곡’ 같은 노래는 꼭 한 번 제대로 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저자의 의도는 절반쯤 성공한 것 같다. 알지 못해서 보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다. 들리지 않는 우리의 귀를 조금은 더 열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나 소리를 찾을 수 있는 책이다.


07051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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