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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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시절의 기억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인간의 영혼을 풍성하게 한다. 지나간 모든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은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에 대한 동경이다. 자연과 가장 유사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시간들을 객관화하면 순수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여유와 긍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짤막한 한 편의 시가 만들어 준 미소와 긴 여운이 봄날의 오후를 평화롭게 한다. 영혼의 안정과 휴식은 이렇게 타인의 경험과 기억만으로도 가능하다. 때때로 주어지는 맑은 웃음이 그대서 소중하다.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어머니가 안 계실 때 누나를 졸라서 마당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국자에 설탕을 넣어 달고나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다 탄 국자는 몰래 땅에 묻어 버리고 탄 내가 집안에 진동해서 결국 들통나고 말았다. 달콤함에 대한 기억과 두근거림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았다. 수많은 장난을 하면서 좌절과 실패를 겪고 성장통을 앓으면서 어른이 된다. 세월의 이쪽과 저쪽을 건너는 일은 어른과 아이의 세계를 구별하는 일이면서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된다.

  박상우의 <가뜬한 잠>은 이렇게 과거의 기억들을 끌어낸다. 그 기억들을 우리들 삶의 원형인 농촌 공동체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시편들에서도 금방 찾아진다. 멈춰버린 공동체의 삶이 오롯이 살아 있는 시집을 읽어가다가 3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시집 책날개에 소개된 시인의 나이를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란다. 살아온 시간과 직접적인 경험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시들이 내는 목소리는 생경하지 않고 멀리 있는 익숙함이다.

버릇

눈깔사탕 빨아먹다 흘릴 때면 주위부터 두리번거렸습니다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없으면 혀끝으로 대충 닦아 입속에 다시 넣었구요

그 촌뜨기인 제가 출세하여 호텔 커피숍에서 첨으로 선을 봤더랬습니다 제목도 야릇한 첼로 음악을 신청할 줄 아는 우아한 숙녀와 말이예요 그런데 제가 그만 손등에 커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손이 무지하게 떨렸거든요

그녀가 얼른 내민 냅킨이 코앞까지 왔지만 그보다 빠른 것은 제가 혓바닥이었습니다

  그 순박함과 직설적인 화법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는다. 꾸밈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생활 속의 솔직함이 다른 몇 명의 시인을 떠오르게 했다. 특별한 내용과 낯선 표현은 독자의 기준이 아니다. 시인의 입장에서 가장 편안하고 담백한 이야기들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 옥타브 낮은 목소리로 주변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모습을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는 시인의 이야기가 맛깔스럽다. 건조하고 메마른 언어의 모래성을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흥성스럽고 풍성한 농촌의 모습이 감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한 숨 가득한 농부의 삶과 사실적인 농촌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 숨어 있는 막막함과 답답한 현실이 낭만적인 농촌과는 거리가 멀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시에서 아름답게 작위적으로 꾸며낸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만나는 순간들과 삶의 모습들이 선택적으로 미화되지 않았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박상우의 시가 백석을 떠오르게 하는 이유는 시집 곳곳에 숨어 있다.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역설로서 목가적인 농촌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문학과 현실의 관계가 팽팽한 긴장으로만 떨린다면 오히려 역기능으로 보일 수 있다. 부작용을 감내한 참여문학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춰보기 위한 거울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 박상우의 시다. 그 대척점에 자리잡은 시를 한 편 살펴보면 박상우의 시를 앞으로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같다.

한로(寒露)

머구실 할머니는 참깨를 널고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끝물 고추 따는 날이어서
새참거리를 고추밭으로 실어다주었다
돼지고기에 호박 넣고 지진 찌개와
수수 넣어 지은 뜨끈한 밥을
감나무 밑으로 내고 홍시를 따먹었다

면소재지 농협으로 돈 찾으러 갔다 오니
그새, 고추포대는 밭두렁에 쌓여 있고
아주머니들은 다른 밭으로 가고 없다

나는 산골마을을 지키는 형과 함께
겨우내 땔 땔감을 경운기로 날라 쌓았다

해는 서둘러 먼 산을 넘어가고
경운기 소리 딸딸딸 딸딸딸딸
어둑해지는 길을 요란하게 넘었다
짐칸 가득 고추포대 싣고 오는 길에
하마 갈릴 뻔한 늙은 호박을 따서
고추포대자루 위에 앉혀 마을로 들어왔다

감장아찌 담으려고
따다놓은 먹감은 달게 떫었다

끝물인 줄 알았던 산골마을에 단맛이 들고 있었다


070507-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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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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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표정한 커피색으로 산 전체가 헐벗은 채 미동도 없이 겨울을 견디는 모습을 창밖으로 바라본다. 어떤 형태로든 봄은 바람을 앞세우고 땅 밑으로 온다. 발 딛고 선 이 땅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색의 향연이 아니라 다만 생명의 꿈틀거림을 볼 수 있다면 인간의 오만함을 버리고 자연 앞에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햇볕을 품에 안고 따뜻한 바람을 온몸에 감싼 채 파란 싹을 피워 올리기 시작하는 산은 축제처럼 진달래와 개나리를 준비한다. 진분홍 진달래 빛가루처럼 아름답게 혹은 슬프게 김훈의 <남한산성>이 내게로 왔다.

 이 소설은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계절에 읽어야 할 소설이다. 겨울을 참고 견뎌낸 4월의 잔인함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설이다. 내용의 완결성과 구성의 완고함을 넘어선 자리에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김훈의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에 대한 괴리감으로 고통은 너무 먼 안타까움으로만 읽혔다. 임금과 신하를 나누고 다시 백성을 나누어 작가가 누구의 입장에서 어떻게 역사를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분석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할 일 없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을 누비는 작가의 모습과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여행하는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이 소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 전 작품인 <현의 노래>에서 보여주었던, 우리들 피 속에 흐르는 유전자의 과거를 돌아보는 연작으로 볼 수 있다. 무심한 듯 스쳐지나가는 억겁의 세월 속에서 작은 단서를 발견하고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역사적 사실들을 떠올리는 방식은 소설과 역사의 적절한 만남이나 역사의 소설적 해설이나 여타 화려한 수식을 넘어 켜켜이 먼지 묻은 살아온 시간에 대한 내력을 쓰다듬는 애정 어린 손길이다.

  1636년 병자년 겨울, 12월 14일부터 이듬해 1637년 을축년 봄, 2월 2일까지의 인조를 비롯한 조선의 비참한 일상들을 마치 일기를 적어나가듯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은 김훈의 유려한 문장과 더불어 사실이나 스토리의 흐름보다 먼저 가슴에 와 닿는다. 남한산성의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신산스런 민중의 삶을 닮아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어렵고 임금을 중심으로 지배 권력의 모순을 그려낸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것은 이 소설이 지닌 아름다움이자 유일한 단점이다. 늘 반복하는 말이지만 하나의 소설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가자, 나는 인간이므로, 나는 살아 있으므로,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도 삶은 있다. - P. 40

사물은 몸에 깃들고 마음은 일에 깃든다. 마음은 몸의 터전이고 몸은 마음의 집이니, 일과 몸과 마음은 더불어 사귀며 다투지 않는다…… - P. 121


  소설 속에는 항상 인간의 삶이 있다. 당연한 이 진술 속에는 항상 죽음도 깃들어 있다. 성 안에서 청군을 맞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운명들이 아프게 새겨져 있다.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삶을 견뎌내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위정자들의 잘잘못이나 백성들의 민심을 들먹이거나 중세의 봉건적 사회제도나 정치를 논할 게재가 아니다. 이 소설은 그냥 남한산성에 관한 아름다운 산문일 뿐이다.

  일과 몸과 마음이 하나인 사람들이 있고 하늘과 중국의 명을 받드는 사람들의 괴리감을 논하는 소설이 아니다. 모두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서 삶을 꾸려 나간다. 성안에 갇혀 안에서 열 것인가 밖으로부터 열릴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촉즉발의 상황보다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임금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그 길을 만드는 방법도 그 길을 걷는 방법도 각자 다르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은 삶의 길로 모아지고 모진 추위와 치욕을 견뎌내고 새로운 삶의 길을 택한다. 어떤 형태로든 열릴 길을 결국 가장 비참하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열어버린 인조와 조선의 신하들에게 백성들은 참 많은 것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

밝음과 어둠이 꿰맨 자리 없이 포개지고 갈라져서 날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 P. 179

  김훈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답다. 시간의 흐름을 이렇게 표현하는 소설가를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문장의 유려함이나 잔재주가 사뜩함으로 비춰질 정도다. 화장이 지나쳐 본 바탕의 얼굴이나 옷 매무시까지 가려버릴 정도다. 차고 넘치는 문장과 내용의 산뜻함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것 같지는 않다. 아름다움이 지나쳐 그 쪽으로 읽어야 한다. 뻔한 상황과 맥락을 읽을 바에야 삼전도의 치욕을 되새겨 무엇을 할 것인가. 진달래 산 벚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꼭 읽을 만하다.


07050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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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35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프레이야 2007-05-02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의힘님, 이 책을 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김훈이 쓰는 역사 소재의 소설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뻔한 상황과 맥락을 읽을 바에야 삼전도의 치욕을 되새겨
무엇을 할 것인지, 라는 님의 글이 해답을 조금은 주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 완곡하게 쓰셨고 훨씬 마음에 듭니다.^^

드팀전 2007-05-03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까 말까 고민중인데..^^ 제가 역사드라마를 진짜 열심히 본게 초등학교 6학년때 본 한국방송의 '병자호란'..관련드라마였어요.제목은 생각이 안나고...삼전도,임경업,효종 등등 쭈욱 이어지는 이야기였죠.그 드라마를 보고 얼마지나지 않아 여주에 가게되었습니다.여주에는 세종대왕의 영릉도 있고 바로 그옆에 효종의 무덤도 있습니다.당시 안내인이 '이 분이 죽지 않고 북벌을 했다면..꿈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왕입니다' (당시 저도 드라마를 보고 그런 마음이 간절했기에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한겨레21에 실린 <남한산성>의 리뷰를 보았지요.항복문서를 누가 쓸 것인가를 가지고 서로 미룬다고 하더군요.결국 최명길이 쓰기로 한다지요.한겨레 기자는 그 상황을 김훈이 자신의 군부정권때의 상황과 오버랩시킨다고 말합니다.김훈은 스스로도 군부정권의 용비어천가를 자기가 다썻다고 말했습니다.대신 보안사에 끌려가는 후배기자들은 때리지말라고..내가 니들이 쓰라는대로 다 써줄테니...(전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불의에 맞서다 모든 걸 잃은 언론인 분들도 계시는데..설령 어쩔수 없었다면 그저 부끄러워하면 될 일을...)
이 책은 슬퍼 보여서 못보고 있습니다.현시점과도 그대로 이입이 됩니다.남한 산성 밖에서 진을 치고 문을 열라고 하는것이 '야만적 자본주의 체제'라고 본다면 말입니다.그 안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겠지요....님은 " 이 소설은 그냥 남한산성에 관한 아름다운 산문일 뿐이다"라고 말하셨지만,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책 들기가 겁납니다.김훈은 모든 것이 소용없다고- 탈정치화해서- 중요한 것은 '민중의 삶'이고 '고통받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그런데 전 여기서 잘 감싼 '모순'이 읽힙니다. 이 책에서 처럼 '청나라'가 들어오든 '일제'가 들어오든 '야만적 자본주의'가 들어오든 '민중'의 삶은 그것들로 부터 독립된 것일까요? 그런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로운게 '민중의 삶'일까요? 이 둘을 분리시켜 버리는게 과연 옳을까요? 일제시대때도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민중들이 전부 독립투쟁하거나 친일한 것은 아니지요.밥을 먹고 논을 갈고 애를 낳고 (도시에서는) 연애를 하고 근대문화를 즐기고...이런 민중의 생활과 일상사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과 이것을 규정하고 있는 틀과 그 안의 삶을 분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 아닐까요?
어찌되었든 돌아가고 돌아가여만하는 민중의 삶이란 것이 김훈의 '허무'와 만나면 모순의 칵테일이되는듯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선뜻 손에 가질 않습니다...읽지도 않고 쓴다고 웃으시겠네요^^
제생각이 모나서 그런거겠거니 해주시길....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잉크냄새 2007-05-0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님의 리뷰와 드팀전님의 댓글을 보니 앞으로도 김훈의 이 소설은 다각도로 읽혀질것 같네요.

sceptic 2007-05-0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잉크냄새님도 읽어보시고 나름의 느낌으로 정리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드팀전님 댓글을 보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 공감하고 동의하고 또 다른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셔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님이 모나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생각들이고 그 오만가지 생각중에 저는 대체로 그저 문학이라는 관점과 테두리 안에 소설을 한정지으려는 의도된 오류라고 변명하고 싶습니다. 김훈이 걸어온 길이나 정치적 성향, 자본주의와 민중에 대한 생각들에 고개를 끄덕였고 저는 보다 왼쪽에 있지 않나 스스로 점검도 해 보았습니다. 리뷰보다 더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니 오해 마세요. 댓글에 익숙치 않아 조용히 들러 보고 가는 무례도 용서하시고요. 행복한 봄날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명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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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문민 정부의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전공이 철학이었다. 세상이 달라졌나?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는 철인 정치였지만 진정한 철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철학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이상 국가가 실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노태우와 김종필, 셋이서 한 화면에 잡힌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철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철학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국가라는 제도와 형태 자체가 가진 모순을 완전하게 가릴만한 차양은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아나키즘에 대한 열망과 관심은 현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기 보다 국가를 비롯한 모든 권력과 제도에 대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는 몸짓이다.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한 개인의 생각을 적어 놓은 ‘마음의 철학’으로 보기에는 그 위치가 주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단순한 개인의 철학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했던 황제의 생각은 단순한 철학자의 그것과는 확연한 변별점을 지니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군주’가 지녀야할 덕목과 치세의 도를 말하는 처세술과 관련된 책이라면, <명상록>은 황제의 자리를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던 인간과 세상에 대한 경험적 추론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의 2장 3절에 ‘네가 불평하면서 죽지 않고 즐겁고 참되고 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으려면 책에 대한 갈증을 버려라!’는 구절이 나온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책에 대한 갈증으로 항상 목말라 하는 내가 개인적으로 곰곰이 뜯어본 구절이다. 아는 것이 힘이거나 모르는 것이 약이거나 상황과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진정한 행복을 구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 방법과 태도도 나름대로 다 달라진다.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필요한 것에 대한 ‘마음’과 그 마음을 다스리는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조언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시대를 초월해서 죽음과 인간의 생에 대한 통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인간이다.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보편성에 기대어 개별적 상황과 개인의 특수성과 무관한 본성에 대한 인식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다. 로마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생각을 빌어 현재의 나를 돌아보겠다는 생각이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주의 본성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이와 넓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재적 유용성을 전해주고 있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로 로마의 황금시기가 저물 무렵에 황제에 오른 아우렐리우스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우주 그리고 생의 본질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짧은 생에 대한 감각이다. 이 책에는 인간의 생 순간에 불과하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그 깨달음은 철학자나 황제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단순한 진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짧은 생에 대한 인식과 그 찰나와 같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면 지나치게 건방져 보인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목소리는 높지 않고 차분하며 분명하고 명확하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놀라다니 이 얼마나 가소롭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인가!

  물론 이렇게 냉소적인 목소리로 놀라게 하기도 하는 12절 13장을 보면 냉철한 분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에도 살아 있는 친구의 충고처럼 살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고전을 읽는 목적이 인류의 역사를 더듬거나 발자취의 향내를 맡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선인들의 지혜를 빌려 오늘을 살펴보려는 무모함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키에르케고르의 목소리가 뼈에 사무치는 순간과 마주치기도 하는 법이다.

  로마의 황혼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전장에서 일기를 적듯 쓰여졌다는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한 처세술로도 혹은 특별한 무엇인가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인생에 대해 냉소하는 철학자의 고백담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 두고 두고 가슴에 새겨지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오래 남는다면 이 책은 그런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07043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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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4-3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읽으셨군요. 저는 구판으로 읽었는지라^^
참 배울 것이 많았던 책이었습니다. 그의 심오한 철학의 깊이 빠질 수 있었던 책이라고 할까요.

sceptic 2007-05-0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판, 신판이 상관있나요...암튼 이중, 삼중역보다는 천병희의 번역은 꼼꼼하고 주석을 통해 스스로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하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 - 새로운 아름다움이 세상을 지배한다 살림 H classic 3
심혜련 지음 / 살림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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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으로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해 논하는 전통 미학과는 달리, 매체 미학은 예술 작품, 또는 예술적 미적 감응을 주는 대상이 어떻게 지각되고 수용되는가를 다룬다. - P. 29

  발터 벤야민이나 아도르노의 이론에 정통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들의 논문을 잘 씹어 줄 수 있는 책들이 필요했다. 미학의 전통적 이론에서 파생된 매체 미학은 과학 기술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영화나 사진이라는 장르가 예술로 인정받기까지 지난했던 세월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만 우리는 우선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 매체 미학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영화나 사진의 무한 복제 시대에 돌입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술이 어떤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가였다. 벤야민이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나 사진을 옹호할 수 있었던 근거는 분명하게 읽히지 않는다. 다만 시대의 흐름과 문화적 충격 속에서 예술에 대한 개념과 구분 자체가 모호해졌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이라는 정보 혁명으로 이제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또 하나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이원화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 메트릭스가 경고한 세계가 바야흐로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장자의 나비가 현실인지 꿈인지 알수 없는 원본 없는 이미지와 모방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할 때가 있다. 심혜련의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은 매체 미학을 중심으로 이러한 궁금증들에 대한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필름 영화와 사진 시대를 넘어 이제는 디지털 이미지를 수용하는 관객들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중 최근에 <300>이라는 영화가 주목을 끌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승리라는 평가와 촬영과정이 소개된 것을 보았다. 이제는 영화 속 장면조차도 이차적인 현실이 되어버렸다. 아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장면들을 관객들에게 이미지로만 전달되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가 어차피 현실과 거리가 먼 하나의 환상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기능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의심하는 수준에 이른다.

“벤야민은 영화관에서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접하는 관객들은 분산적 지각과 시각적 촉각성에 의해 영화를 즐기면서 또 비판할 수 있다고 믿었다.(67페이지)”는 말은 영화라는 예술의 무한 가능성을 예고한 듯하다. 일상의 공간과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일종의 프리즘 역할을 하는 것이 영화라면 인간의식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영역을 재발견하기 위한 예술적 장치가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시간과 공간이 사이버스페이스로 옮겨 간다. 움직이는 포착해야 하는 긴장감 속에서 감상하는 예술을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야하는 것일까?

현재 디지털 매체 예술은 두 가지 방식으로 수용자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는 상호 작용적 환경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버스페이스, 즉 온라인에서의 작품 전시다. - P. 143

  이 책에서는 주로 디지털 매체 예술에서 전통적 회화나 상호작용적 예술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이나 매체 미학에 수용될 수 있는 익숙한 개념들을 잘 녹여서 설명하고 있지만 새로운 개념이나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마지막 장에서 영화 <올드 보이>를 분석하고 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실제 영화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읽을 만하다.

TV는 시계이자 달력이고 교회이며 친구이자 애인이다.(올드보이) - P. 164

  영화 <올드 보이>가 선태된 이유는 TV라는 매체 때문이다. 오대수는 오로지 TV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한다. 이우진의 연인이 강물로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찍힌 선명한 사진들은 앨범이 된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사이의 관계를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개념을 적용시켜 적절하게 풀어내는 방식도 재미있다. TV와 사진이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방법이나 분석적 태도는 <올드 보이>를 보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것들이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의 개념과 방법론을 알아야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공감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눈부신 날에>에서 보여주었던 새로운 가족의 개념과 삶의 이유들은 사이버스페이스가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들이다. 박광수의 의도가 어떠하든 우리에게 눈부신 날은……



070427-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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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7대 불가사의 - 과학 유산으로 보는 우리의 저력
이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TV를 거의 보지 않아서 대화에 끼기 어려울 때가 있다. 세간에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주몽>에 한나라의 철기군이 등장하고 고구려에서 그것을 물리치거나 배우려는 시도가 역사적으로 볼 때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종호의 <한국의 7대 불가사의>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불가사의不可思議는 불교에서 온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마음속에 떠오르지도 않으며 생각할 수도 없는 오묘한 이치라고 한다. 말하자면 현실 밖의 세상을 말한다. 니나와 폴이 여행하던 4차원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시간여행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모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은 진보하며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누적적인 형태로 발전한다고 굳게 믿는 직선적인 세계관에 기대어 인류의 특별한 문화 유산을 두고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먼저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보자.  ①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왕(王)의 피라미드 ②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空中庭園) ③ 올림피아의 제우스상(像) ④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神殿) 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능묘(陵墓) ⑥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대거상(大巨像) ⑦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파로스 등대(燈臺)가 있다. 그 밖에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로마의 원형극장(콜로세움), 영국의 거석기념물(巨石紀念物, 스톤헨지), 이탈리아의 피사 사탑(斜塔), 이스탄불의 성(聖)소피아 성당, 중국의 만리장성,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7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유적들을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인류의 과학과 기술은 중세이후 이성 중심의 서양의 직선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지금보다 장비와 기계들이 발달하지 못했지만 인간의 지혜와 지적 능력은 오히려 뛰어났을 것이라고 판단해 볼 수 있다. 굴삭기가 발명되면 삽질하던 인간의 근육은 퇴화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놀라고 있는 것들이 그 당시에는 당연하거나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이종호는 <한국의 7대 불가사의>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① 고인돌 별자리 ② 신라의 황금 보검 ③ 다뉴세문경 ④ 고구려의 개마무사 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⑥ 고려 수군의 함포 ⑦ 훈민정음.

  위에 소개한 일곱 가지 문화유산이 과연 모두가 동의할만한 것들인가 하는 문제는 의미가 없다. 저자 개인의 선정이나 역사학자 일반인들의 견해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 문화유산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세계 문화유산에 견주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신념을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신념은 지식과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건축을 전공한 저자의 유럽의 중심지 파리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민족주의적인 것인지 하는 문제는 책을 통해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민족적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한 발상도 아니고 애국심의 발로도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한국 문화의 가치를 새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도 위험하지만 우리 것은 무조건 안 된다는 패배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야 어차피 불가능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방법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말에게까지 철갑 옷을 입혔던 고구려의 개마무사나 서기 3000년 전에 이미 별자리를 관찰하고 고인돌에 새겨 넣었던 우리 조상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일은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즐거운 시간 여행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통해 우리 것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시도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단 문화재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불가사의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만들어 갈 문화유산들이 우리가 걸어왔던 역사보다 더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저자가 꼽은 문화유산들은 우리들 일상에서 마주칠 수 없는 거리감이 있는 것들이다. 민중들의 삶과 생활에서 묻어나는 불가사의나 지금보다 발달했던 물건이나 제도들에 대한 검토와 반성도 필요하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가장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간 여행은 계속 되어야 한다.


07042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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