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 소설의 이론
게오르그 루카치 지음 / 심설당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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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소설이 전하는 위력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알 수도 없다. 문학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은 논란이 있겠지만 문학을 단순히 소설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이 현실 세계에서 갖는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클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그만큼 많다.

  소설 무용론을 주장했던 과거의 조선 시대 선비들도 있었지만 서사 구조가 탄탄한 소설의 매력은 여전하며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장르의 내용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소설이다. 인간이 현실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쾌락 욕구에 대한 대리 만족으로서 소설을 읽는다는 견해를 밝힌 비평가도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소설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력과 꿈을 심어주기도 하고, 비참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소설을 통해 울고 웃었던 많은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1920년에 발간된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소설의 역할과 의미를 짚어낸 고전이다. 문학이론을 다룬 책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으며 그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하지만 용어 자체가 낯설고 문장의 구성과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우저의 명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근세편을 번역했던 반성완의 85년도 번역본으로 역자의 전문성을 의심할 수는 없지만 역자 스스로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음을 군데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독일어 원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문학 전공자들이나 철학 전공자들도 반쯤 읽다가 던져버린다는 책의 소개가 무색하다.

  문학을 전공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철학적 관점에서 소설을 바라보는 일은 또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며 새로운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지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루카치가 이야기했던 소설 특유의 구체성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우매한 독자로서 시대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확인했다.

삶이란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다 그러하듯 스스로를 넘어서 있는 일체의 초월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상대적인 독자성과 그러한 초월적 구속이 가질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불가피성과 필요불가결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 P. 50

  하지만 이렇게 소설과 무관하게 삶에 대해 선언하는 부분들이나 그 삶을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가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예술과 사회는 분리될 수 없지만 역사와 철학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소설은 여전히 제멋대로 혹은 이 모든 것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버텨내고 있다.

서구의 문화 세계는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의 불가피성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논쟁적 태도 이외의 방법으로 이들 구조에 마주 서서 대항할 능력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 P. 166

  서구 사회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논쟁적 태도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문화적 토대와 학문의 성향이 달라서일까?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는 ‘학계의 금기’를 넘어서는 일도 중요해 보이지만 그들과 다른 우리 소설의 구조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외연과 내용을 확장시킬만한 동력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건과 역량을 갖춘 많은 작가들을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독자로서의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루카치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예술과 삶의 관계는 쉽게 말해질 수 없다. 애증의 관계로 이별할 수 없다면 항상 사이 좋은 연인관계일 수는 없지만 그들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소설을 바라보는 일은 항상 즐거운 일탈일 것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소설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이론들을 잊어버리고 술에 취하듯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닐까?
 
예술은 삶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Trotzdem)의 태도를 취한다. -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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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창비시선 273
최종천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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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따먹고 나면 비로소 너는
의미를 떠나 상징을 벗어버리고
하나의 실재가 된다, 아름답고 풍만한
육체가 된다.                                                         - ‘따먹다’중에서

  수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포장하고 꾸며대지만 최종천 시인은 직설적이고 대담하게 언급한다. 도대체 되먹지 않은 사랑 타령은 그만두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따먹고 나야 상징을 벗고 ‘실재’가 된다는 논리는 아름답고 풍만한 육체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선하게 만들어 준다. 비실재와 실재는 관념론과 유물론만큼의 간극을 보인다. 특히 시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빚어내는 언어의 힘에 기대다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손에 잡히는 대상에 대한 직설법에 인색해지게 마련이다.

  시간의 개념을 무화시키는 어느 봄날의 오후 소나기와 먹구름은 순차적인 선적 순환구조를 무너뜨린다. 공간에 대한 지각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자리에 시가 자리잡고 있다는 환상이 필요하기도 하다. 대낮에 알몸을 드러내듯 그로테스크한 장면들과 언어들의 충돌이 시가 되지는 않는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시가 보여주는 진정성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독자와의 공감을 통해 형성되는 지점에 있다. 언어가 보여주는 투명함과 낯선 이미지의 현란함이 또 다른 시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최종천은 오랜만에 ‘몸’의 시를 읽어준다.

  몸을 통해 노동을 이해하고 삶을 깨닫는 생활은 실재적이다. 여기에 다른 무엇이 개입할 여지는 많지 않다. 그 과정을 인식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나를 확인하는 작업은 고통스럽기 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해보인다. 내 손의 주인은 나다. 가엾은 자신의 손만 들여다보아도 자아를 찾게 된다.

나의 손은 이제
실재의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며
허구조작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노동을 잃어버리고

허구가 되어간다
상징이 되어간다.                           - ‘가엾은 내 손’중에서

  ‘실재의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며 허구 조작에 전념하고 있다’는 말에 등골이 오싹하다. 평생 실재로 아무것도 만들지 않은 내 손을 들여다 본다. 가늘고 긴 손가락은 게으름과 먹물의 상징이다. 노동의 괴로움도 즐거움도 모른다. 가슴보다 머리로 부대끼며 살아온 것은 아닌 지……

상징은 배고프다

삼풍백화점이 주저앉았을 때
어떤 사람 하나는
종이를 먹으며 배고픔을 견디었다고 했다
만에 하나 그가
예술에 매혹되어 있었다면
그리고 그에게 한권의 시집이 있었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그는 끝까지 시집 종이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시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면서
서서히 미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 자신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징은 늘 배가 고픈가보다. 생존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것이 상징일까? 살기 위해 시집이라도 뜯어먹어야 하는 순간의 아득함을 상상해 본다. 극단적인 비유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희망을 꺼놓자는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 무작정 희망을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는 아이러니한 현실. 태양보다 희망이 더 빛나는 지구에 사는 일은 힘겹다. 희망을 반사해서 빛을 발하는 절망을 없애기 위해 희망을 꺼두자는 빈약한 논리에도 공감할 수 없다. 희망도 절망도 동의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가려움.

희망을 꺼놓자

인간이 희망을 켜놓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므로
희망이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은 인간에게 좋지 않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희망으로는
식물을 재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꺼버리면 어떨까요?
절망은 희망의 위성 같은 것으로서
희망의 빛을 반사하여 빛나고 있기에
희망을 꺼두면 절망도 빛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가 사막화하고 있는 것은
태양보다 희망이 더 빛나기 때문입니다


070328-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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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그림으로 읽는 세상 '근대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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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은 환상이다. 영화 ‘일루셔니스트’에서 마술사 아이젠하임이 물속에 빠져 죽은 황태자의 약혼녀 소피를 발견한다. 물속에 뛰어들어 사랑하는 그녀를 안아 올리기 전의 그 장면, 하늘을 보고 나무 가지 사이에 걸린 채 물속에 떠 있는 장면은 밀레이의 ‘오필리어’를 그대로 재현했다. 문학이 그림이 되고 그 그림은 영화에서 다시 재현된다.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될 때까지, 혹은 환상이 현실이 될 때까지 우리는 늘 꿈을 꾼다.

 그림을 읽는다고 표현하면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스키마의 작용에 따라 같은 그림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의미를 부여하고 많은 것들을 읽어내는 사람이 있다. 특히 서양의 그림들은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과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인문학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단편적인 인상 비평과 감각적인 느낌이 전부가 된다. 그런 면에서 이택광의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는 읽을만한 그림에 관한 책이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 바탕과 배경 지식은 그림을 한층 풍부하고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이택광은 철학과 문화이론을 전공한 학자로서 그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림을 이야기한다.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서양 예술 전반을 아우르거나 폭넓은 시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깊이있고 집중력있게 몰두 할 수 있었다.

 서양 미술을 ‘근대’라는 관점과 주제로 풀어내는 방법은 인문학과 그림의 만남을 의미한다. 쓸데없는 배경지식과 감각적으로 접근해야할 그림의 결합이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있을 수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특별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거나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보자.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과의 결합이거나 일반적인 시각적 이미지와의 결합이다. 그림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화가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하고, 그 이상을 관객들이 읽어내기도 한다. 결국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은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는 비관론으로 기울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읽은 그림과 타인이 읽은 그림 사이에는 분명히 공유할 수 없는 간극만큼 뚜렷하고 확실한 객관적 사실들도 숨어 있다. 이 책은 그것을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 맘대로 권법에 따라 주관적으로 그림을 감상하면 그 뿐이라는 태도를 지닌 사람에게는 무용한 책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저자는 ‘근대’의 풍경 속에서 인상파가 등장한 배경과 특징들을 짚어내고 있다. 라파엘전파와의 비교를 통해 두 유파를 분석하는데 주관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편안하고 가벼운 어법으로 그림의 주변 풍경들을 이야기해 준다. 주관적인 감상에 치우치거나 객관적인 사실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의 꼼꼼한 설명을 듣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신 중심 사회의 붕괴와 산업혁명을 통한 노동 계급의 형성, 그리고 프랑스의 파리 코뮌이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림과 정치를 연결시키려는 인위적 의도가 아니라 급격한 사회 변화는 당연히 모든 예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림 속에 숨은 화가들의 정치적 성향들을 찾아내고 숨은 의도를 읽어내는 일이 괴롭고 힘든 일이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라면 저자의 그림 읽기에 동참할 만하다.

마음속의 이미지는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집단에 의한 것이다. …… 마음속의 이미지는 대상에 대한 인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이미지이다. - P. 23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사르트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인간 존재의 근원을 밝히는 일은 언어의 분석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추상적인 언어가 보여주는 세계의 유한성을 극복한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림이라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예술의 형태를 제공했다. 오래된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듯이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고 즐거운 일이다. 저자의  말투는 지루하지 않고 편안하게 독자에게 속삭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때로는 입말의 어법이 지나쳐 거슬리기도 하지만 오래전 추억을 더듬듯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눈으로 더듬어 보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근대의 그림 속을 걷는다는 것은 현재 이전의 저 너머를 바라보기 위한 기초 작업이며 우리의 지금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기준이 제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술이 어떻고 철학이 어떻고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한 번 쯤 편안하게 우리의 지난날들을 아니 서양의 과거를 추억하며 읽어 볼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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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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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의 대결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는 만큼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왕성한 호기심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알아낸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들도 많고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뻔한 것들도 많다. 인류 공헌의 측면에서 문명의 발달사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지식의 발견이나 깨달음의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이 되어 돌아온 과학의 발달과 발견들은 수없이 많다.

 로빈 베이커의 <정자 전쟁>은 생물학자가 쓴 인간의 문화사에 관한 보고서로 볼 수 있다. 특히 섹스와 관련된 인간의 거의 모든 상황과 유형들을 상황으로 설정하여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종족 보존’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인간’이라는 종의 성생활은 기막히게 동물적이다. 이런 종류의 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먼저 과학적 사실들이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허구와 상상이 아닌 실험과 관찰에 의한 사실들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두 번째로 저자의 글 솜씨이다. 아무리 연구를 많이 하고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로빈 베이커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연구 논문으로 도서관에 처박혀 몇몇 학자들에게나 인용되는 죽은(?) 지식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전하고 싶은 욕구를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들을 이 책은 고루 갖추고 있다.

 학문적인 논문과 대중적인 저작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자 하는 노력은 때로 위험해 보인다. 딱딱하고 지루한 주제와 논리적인 귀결들은 수면제로 사용되거나 아예 팔리지 않는다. 한편 허구와 가상이 주가 되어 흥미 위주의 저널리즘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많은 학자들이 이 간격을 메우지 못하거나 시도하지 않는다. 학문의 거탑 안에 숨어 먼지를 마시며 죽어가거나 밖으로 뛰쳐나와 연예인 수준의 글쓰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오래 공들여 쓴 책은 독자가 먼저 그 내공에 감탄한다. 모두 37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제시한다. 각 장들은 이렇게 독자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저자가 이 상황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철저하게 ‘종족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유전자 번식’을 위한 섹스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다. 예술과 외설의 논란을 교묘하게 비껴가고 있거나 한 복판을 걸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방법이다.

 십년 전에 출판된 이 책은 사회 문화적 측면의 관심과 시선의 변화에 의해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시대를 조금 앞섰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민한 부분을, 선뜻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저널리스트가 아닌 학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연구하고 관찰해 온 사실들을 진지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용기가 인정받을 만하다.

 인간이 평생 살아가면서 2,000~3,000회의 섹스를 하면서 매번 수억 개의 정자를 쏟아내면서 왜 고작 7명 내외의 자녀밖에 두지 못하는가? 남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가 원하지 않으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패막이, 정자잡이, 난자잡이 정자가 있어 정말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가? 등 정말 궁금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과학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것들이 빚어내는 미시적인 과학의 세계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거리가 있기 때문에 동물행동학에 바탕을 두고 다른 포유류나 조류와 비교하면서 원인과 이유들을 살펴보고 있다.

 유전자가 원하는 것은 영속적이고 적극적인 종족의 보존과 번식이다. 이 하나의 분명한 원칙을 기준으로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남자와 여자의 행동으로 실현되는 과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가지 의문은 남아 있다. 피임과 강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인간의 모든 섹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과연 단 하나의 기준과 가능성만을 가지고 인간 행동의 패턴과 행동들을 읽어낼 수는 없다. 그 한계와 문제점을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늘상 그렇지만 단 한 권의 책을 통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집중적이고 뚜렷한 하나의 주제를 폭넓게 이야기하는 신선한 관점의 책을 만나기도 어렵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전쟁’들에 관해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심리적 차이만큼 섹스의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차이를 보여준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종족 보존의 생존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정자들은 끊임없이 소리없는 전쟁을 치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대한 오래된 기억은 태어나면서부터 현실생활에서 반복된다. 그 아득한 경쟁의 본능을 일깨워 오늘도 삶의 전쟁터로 모두들 뛰어 나간다. 우리들의 자화상은 이미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전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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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비뫼 2007-03-20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여러 편 읽었습니다. 읽어볼까 아직 망설이고 있었죠. 님의 서평 잘 읽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

sceptic 2007-03-2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님 늘 과찬이시구요. 리뷰와 페이퍼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 안달고 계속 봐도 되죠?

은비뫼님 이 책은 네이버 북꼼 서평 도서라서 많이 보셨을겁니다. 생각보다 한번쯤 볼만하다고 권할 수 있습니다...즐거운 책읽기 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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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봉 전 영화를 예매하듯이 나올 예정인 책을 예약 주문하는 것은 오로지 필자에 대한 믿음만으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은 많이 망설였다. 필자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출판 의도와 내용에 대한 의심은 지울 수가 없었다. <엽서> 영인본이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그림과 함께 엮었다면 재탕 출판의 전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영복’이라는 또 하나의 상업 브랜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원저자의 의도와 달리 가볍고 빠른 템포로 독자에게 접근하는 책들을 무수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예약 주문을 하고 한 달 이상 책을 묵혔다가 책장을 열었다. 1시간 남짓 선생님의 글과 그림 그리고 글씨에 취한다. 전날 마신 ‘처음처럼’의 부드러운 목넘김을 떠올렸지만 <처음처럼>의 글들은 목에 턱턱 걸려버린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재탕에 대한 우려와 내용을 부분적으로 드러내면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을 깊이 우려했던 작가의 고민이 전해진다. 그래서 안심하고 본문을 열었다. 새로 쓰고 그린 60여편이 있다니 그만하면 충분하겠다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시각적 이미지가 전해주는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에게 선생님의 글씨나 그림은 편안함 이상을 전해준다. 글씨의 내용과 글씨의 모양새가 어우러져 ‘더불어함께’가는 모습이다. 형식과 내용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결합이라고 볼 만하다. 오랜 수형기간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고 밝히시는 내용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살과 살을 부대끼며 온몸으로 부딪혀 인간을 배우고 펜대나 굴리면서 현장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던 삶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이 곳곳에 배어 있다.

 내용과 글씨들은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하다. 저자의 책들을 읽고 강연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다시 사서 볼 필요가 없다. 이 책의 목적은 내용에 있지 않고 조화와 연합에 있다. 글씨와 그림들이 내용을 바탕으로 연합군이 되어 드러내는 힘은 예상치 못한 효과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30, 40대를 넘어 10대와 20대에게도 하방연대의 힘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세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우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낸 노인의 재미없는 책이 아니라 친근하고 편안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책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희망해 본다. 랜덤하우스의 기획과 신영복이라는 이름이 결합되어 탄생한 책이지만 외적 조건들보다 서화에세이가 갖는 파괴력쪽에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바람이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부담없이 권할 수 있는 책도 한 권쯤 필요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P. 18

 처음이 갖는 무수히 많은 의미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술을 처음 마실때처럼 아침에도 개운하고 뒤끝이 없는 소주의 의미도 마찬가지겠지만. 언제나 새날인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다른 의미에서 하루살이가 되고 싶다. 오늘과 다른 새로운 희망으로 시작할 수 있는 매일 매일은 얼마나 근사한가. 근사한 꿈은 꿀수록 좋은 것이 아닌지.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 - P. 50

 말없이 깊이 공감하며 실천으로 대답할 일이다. 머릿속의 앎과 지식들이 손과 발로 실천되지 못하거나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갑론을박하고 있다. ‘더불어함께’라는 방법론은 더더욱 모호하고 어렵기만하다. 실천적인 사람들의 일관된 모습을 부럽기보다 두렵다.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보람과 행복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으니 그곳에 있을 것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발’까지는 언제 가나……

올바른 인식은 과학적 분석이나 많은 정보가 아니라
대상과 필자가 맺는 ‘관계’로부터 옵니다.
애정의 젖줄로 연결되거나 운명의 핏줄로 연결됨이 없이
대상을 관찰하는 관계는 ‘관계없는’ 것과 같습니다. - P. 191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려워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성향의 나 같은 사람은 사회생활이 힘들다. ‘관계없는’ 것으로 전제하면 편하지만 ‘이성’과 ‘감성’ 부분의 부조화는 개인의 성향을 넘어 ‘관계’의 기본을 부정한다. 관계 맺기의 기본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인지 믿음과 배려인지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어려운 일이지만 올바른 ‘인식’은 과학적 분석이나 많은 정보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관계’로부터 온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가슴’을 만나면 곧바로 ‘발’에게 가야겠다.


070317-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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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7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3-2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약주문하고 받은후 얼핏 넘긴 책장에서 기존의 책과는 다른 약간은 재탕 형식의 분위기가 있지 않나 싶어서 아직 펼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불식을 없애주는군요.

sceptic 2007-03-2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살다보면 헷갈릴수 있지요...^^

잉크냄새님, 출판사가 마케팅에 능한 회사라서 좀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만 책은 걱정보다 괜찮았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