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 살림지식총서 271
이은정 지음 / 살림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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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눈빛 때문에 두 번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감동이겠지만. 김수영의 눈빛과 정호승의 눈빛이었다. 사진과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형형한 눈빛에서 뿜어나오는 서늘함을 잊을 수가 없다.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 혹은 그녀의 눈빛을 평생 간직한다면 나는 문학, 특히 시를 처음 접할 때 두 시인의 눈빛과 마주친 강렬함을 기억한다.

 특히 김수영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상징이 되어간다. 그것은 이미 죽은 시인에 대한 경외감이 만들어낸 허상과 맹목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가 말하는 세상과 삶에 대한 냉소는 여전히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처럼.

 김수영의 대표작이나 그의 시세계를 대표하는 시는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시가 있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거대한 뿌리, 1977>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 시를 다시 읽어본다. 이은정의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에 언급되지 않았으나 오래된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시다. 불안한 그의 얼굴은 선명하게 각인되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그 얼굴은 누구나 가슴 속에 숨어 있다. 아니 어둠 속에서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로 해서’ 사랑을 배웠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말이다.

 이은정의 김수영론은 양극에 놓인 주제를 중심으로 그의 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진과 은폐, 방과 거리, 정지와 속도, 적과 사랑, 시인과 속인이 그것이다. 한 사람의 시를 양극에 세워두고 비교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해 보인다. 시인의 추구했던 시는 극단적이지 않으며 몇 가지 분류법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면면과 특징들을 집어내는 저자의 방법이 낯설지는 않다. 왜냐하면 김수영이 살아냈던 시대와 김수영의 삶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시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지극히 고전적인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정신’에 가장 치열했던 시인 중에 한 사람이 김수영이기 때문이다. 그의 온몸시론이 주는 울림은 여전히 유효하며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시를 정의할 순 없지만 김수영처럼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극명하고 자신있게 주장했던 시인도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언제나 끊임없는 모험 앞에 서 있다’는 에필로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흔들리는 시대 상황에서 시인이 걸어야 했던 형극의 길을 온몸으로 견뎌냈던 치열함과 열정은 ‘자유’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시적 자유와 생활인으로서의 자유, 모든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영혼의 자유를 갈망했던 김수영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정수이다. 그의 시는 물론이고 산문이 보여주는 울림은 영원하다. 손때 묻은, 웃돈 주고 구입했던 김수영 전집 초판본의 먼지만큼 세월이 쌓여가지만 그에 대한, 그의 시에 대한 경건함은 깊어만 간다.


07030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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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세트 - 전4권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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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나 방법에 객관성은 없다. 기준이나 잣대가 모두 제각각이며 상대적이다. 비교 대상에 따라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진보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역사를 놓고 이야기할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동일한 사실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 동일한 사건에 대한 평가와 시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구의 시선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역사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된다. 안중근이 독립 운동가냐 테러리스트냐의 문제는 사건을 바라보는 방향과 해석의 문제일 뿐이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史 1~4>는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그러나 그 주관적 평가와 관점 속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것은 숨겨진 사실들이다. 대충 전해진 이야기들이나 알지 못하고 추측했던 이야기들, 혹은 소문으로 들었던 이야기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부정확한 사실들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아직도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은 많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실과 거짓말들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객관적 사실 자체만을 전달하는 것도 취사선택의 문제부터 주관이 개입된다. 고무줄처럼 길이가 늘었다 줄었다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과 자신의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독자들 개인에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근대와 현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순 없지만 그 기준점들을 넘나들면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들춰내는 일은 하나의 용기이다.

 그 용기는 개인이 진실을 드러내겠다는 단순하고 치기어린 공명심과는 다르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근현대사를 지배하고 있는 검은 망령들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실천적으로 노력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그런 면에서 충분히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을만한 사람이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한겨레21>에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중간에 공백기가 있었지만 2006년 8월까지 이어진 근현대사에 대한 접근 방식은 일관되고 분명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4권으로 정리된 이 책들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과정에서 점검해야 할 쟁점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것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친일파 문제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거사 정리 문제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고 어려운 숙제가 친일파 문제이다. 용어 선택의 문제에서부터 접근 방식과 처리 방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한홍구는 구체적 대안이나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에 공감했던 것은 친일파의 범위와 대상보다도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정부 수립과 정치 분야에 미친 영향들을 관련 사건들을 짚어가며 풀어냈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사건과 정치적인 문제들은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보다도 과거에 벌어졌던 개별적인 사실들에 대한 인과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그 과정들을 일목요연하고 정확한 기술에 의해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연결시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흥분과 열정적인 목소리로 때로는 냉소적이고 감상적인 어법으로 이야기 한다. 이것이 이 책들의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이다.

 철저하게 저널리즘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읽히고, 시의성이 있으며 쟁점과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들과 어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한 역사학자의 진심어린 목소리에 담긴 감동과 애정 어린 시선들 속에서 발견하는 울분은 다른 어떤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는 그대로 우리들의 지금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군대 이야기가 무척 많이 나온다. 현역병들의 역할과 인권 문제에서부터 군 전체의 편제와 감축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일들은 현실에서 월급 인상과 병역기간 단축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던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와 감군, 모병제 등 이제는 수면위로 떠올라 군대도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국민들에게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홍구의 주장으로 관철된 문제들은 아니겠지만 그간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논란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라는 사실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가장 가슴 아픈 100만 양민 학살 문제가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벌어진 학살자 수가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전장에서 총을 들고 싸우다 죽어간 군인이 아니라 이념과 복수심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국가적인 관심과 대책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 유가족들은 아직도 생존해 있으며 앞으로도 그 아픔은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사실들을 일단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를 척결하는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현실에서 근대/전근대의 이분법적 도식은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 1권, P. 19

 이 책의 시작 부문에서 저자의 이 말이 다소 낭만적으로 들렸다. 단 한 번도 왕의 목을 쳐보지 못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혁명이란 말을 모른다. 시민 혁명에 의해 이전의 전근대적 요소를 척결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던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유럽을 떠올렸을 저자의 낭만적 시선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며 역사학자로서 가정법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들에 목매고 있다가 현재의 문제들이나 미래를 향한 발걸음에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냐는 그들(?)의 주장은 이제 식상하다. 또 과거사 문제냐고 볼멘소리를 내는 언론들도 지겹다. 과연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과거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인가.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일 뿐이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아픈 역사지만, 고통스런 역사지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볼 때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유산을 남겨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역사학자의 길고 지루한 싸움은 계속 될 것이며 우리는 방관자나 구경꾼이 아니라 자각하는 민중으로 거듭나며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임을 확인할 때까지 그의 역사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비록 체계도 계통도 없고 일관된 흐름이나 시대적 구분도 없는 역사책이지만 한홍구의 <대한민국史 1~4>는 21세기를 출발하는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한다. 좋은 책은 독자의 정수리에 쏟아지는 맑은 샘물과 같다. 그 시원한 물, 기꺼이 뒤집어쓰고 하늘 한 번 쳐다보아야 하는 책이다.


070301-028~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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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3-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읽으면서 평소 가지지 못했던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내용에는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약간은 자의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책에 나오듯이 미워할만한 놈을 응당 미워할 수 있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sceptic 2007-03-05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뚜렷한 하나의 주관도 또 하나의 시선으로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의학사상사 살림지식총서 272
여인석 지음 / 살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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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학문의 발달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여인석의 <의학사상사>는 인류가 걸어온 의학의 발달의 역사를 더듬고 있다. 의학이 무엇이고 질병이 무엇인지 그리고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에서 출발한 이 책의 내용은 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역사와 철학적 배경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먼저 에피스테메이다. 이 지식은 모든 실용적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식으로 앎 자체가 목적인 이론적 지식이다.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지식이다. 사물과 세상에 대한 원리와 원인에 대한 지식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지식은 테크네이다. 테크네는 실용적 목적이라는 점에서 에피스테메와 구별된다. 예를 들어 대학의 인문대나 자연대는 에피스테메에 해당하고 공대는 테크네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엠페레이아가 있다. 이 지식은 경험적 지식이다. 전체에 통합하지 못하고 개별적이며 단편적인 지식을 말한다.

 의학은 엠페레이아에서 출발했다. 경험을 통해 개별 질병들에 대한 치유법과 처방을 내렸다. 차츰 테크네로 발전해서 에피스테메를 추구하는 학문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의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일반론일 수 있지만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고대 의학을 발달 과정을 돌아보는 일은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에게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의사에 따라 환자의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증상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원인과 처방을 내릴 수도 있고 객관적이고 관습적인 치료나 처방이 아니라 개별 환자들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질병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지속하는 의사는 분명히 구별될 것이다. 의사 한 명이 신체의 모든 분야와 질병에 대해 통달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환자와 질병을 다루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가벼운 증상인 경우 평균 진료 시간 3분을 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의 몸은 정형화된 질병들의 이름 속으로 규정된다. 같은 곳에 같은 증상이 있어도 원인과 처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막연한 것일까.

 질병은 몸의 균형상태가 깨지면서 시작된다. 수많은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을 찾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한다. 같은 증상이 반복되는데도 같은 처방이 효과가 없을 때가 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혹은 생명 자체에 대한 인간의 탐구는 계속되겠지만 현대 의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현상들은 의학의 발전 단계에서 우리가 어디쯤 걸어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충돌이나 대립보다 상호 보완적인 측면에서 관계 맺고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협진 체제가 요구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것을 한의원에서 손쉽게 낫게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허다하다. 현대인들은 사회의 발전이나 문명의 발달에 따라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에 의한 질병들에 의해 고통 받는다. 고통 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의학의 발달 과정을 돌아보고 하나의 고정된 의사 양성과정과 치료법이 주는 형식들을 걷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연구과 숙련을 거쳐 환자의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의사들의 질병과 생명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궁금하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 집단의 노력과 자세에 따라 그 대상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의학의 경우 중요성을 두 번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의학이 걸어온 역사와 의학에 대한 관점들을 들여다 보는 일은 우리 몸에 대한 관심이다. 한 마디로 규정될 수도 없고 규정된다고 해서 의학의 발달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겠지만, 의학이 나갈 방향과 의사들이 질병과 생명에 대해 갖는 연구 태도와 환자에 대한 자세를 반성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갖는 의미이다.


070226-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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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2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들어와 리뷰를 읽고 갑니다. 잘지내고 계시죠.

sceptic 2007-02-2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님도 늘 건강하세요.

외로운 발바닥 2007-03-05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 의사들이 많아서 기본적으로는 의사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별로 의사, 또는 병원과 관련하여 가진 경험으로 인해 의사들에 대한 생각이 정말 크게 차이나는 것 같습니다. 의료사고문제, 보험수가 적정화문제, 전공의들에 대한 착취문제, 의과대학 내부의 군대보다 더한 권력구조, 의사들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심의 사회적 확산 등 정말 골치아픈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의사들도 만족하면서 환자를 볼 수 있어야 결국 환자들한테도 이익인데 주변에 보는 의사들 중 상당수가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낮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sceptic 2007-03-05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사라는 직업 자체보다도 의사의 역할과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의학에 대한 개념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하지 않을까 싶어져요...
 
자살 살림지식총서 222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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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시절 문예반 시화전에 걸었던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사춘기의 우울한 자화상의 반영이기도 하고 생에 대한 환멸을 다른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자살과 살자를 뒤짚어 결국 ‘살자’로 결론 내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죽음을 염려하거나 두려하는 것과 자살은 다른 문제이다. 생명의 탄생과 소멸 과정을 생의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들의 운명이다. 그 자연스러움에 대한 반역이 자살이다.

 자신의 생에 대한 주체적 권리로서 자살을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자살의 문제를 개인과 사회,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자유인의 권리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인지의 문제는 남게 된다. 인간이 자신에게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인가, 생의 극단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절망인가.

 2005년 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1.5배나 된다.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시간마다 마주하는 교통사고와 사망자들의 모습 이면에 감추어진 자살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1만 2천여 명이 한 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대한민국에서만 매일 30여명이 자살로 죽는다는 이야기다. 최근의 연예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 뉴스에 오르내리지만 신분과 나이, 직업, 종교와 무관하게 지속되는 자살은 무엇인가.

 이진홍의 <자살>은 사회적 측면에서 그리고 문화와 환경, 윤리적 측면에서 다각도로 자살의 의미를 살펴보는 책이다. 살림지식총서의 특성상 제한된 분량이지만 에밀 뒤르깽의 <자살론>이나 죽음과 관련된 책들이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접근해 볼만 책이다. 자살을 역사적 측면에서 고차원적으로 바라보는 책도 아니고 심리적 배경이나 사회 문화적 관점으로 깊이있게 다루고 있지는 못하지만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읽을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살은 설사 그 사람 자신에 있어서는 부정한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국가에 대해서는 하나의 부정이다”라고 단언했다.(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15장) - P. 25

아주 오래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은 자살을 개인이 아닌 국가의 차원에서 바라본다. 개인의 인권보다 국가의 권력이 우선시되던 시대이니 당연한 말이다. 관점은 달라졌지만 종교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때로는 유행처럼 번져나가기도 한다. 주변에서 마주치는 사고사나 병사, 자연사와 달리 자살은 그 휴유증과 파장이 만만치 않다.

대개의 경우에는 오직 스스로를 파괴해 버리고자 했던 강력한 의지를 제외한 다른 분명한 해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의 원인은 영원한 비밀로 남을 뿐이다. - P. 53

유서로 밝혀진 단순한 이유만으로 알 수 없는 자살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생에 대한 욕망을 극복할 만한 강렬한 유혹은 무엇일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은 자살의 유혹이나 충동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비록 미수에 그치건 성공하건 개인의 운명은 이후에 극명하게 갈라지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과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고 더 쉽게 잊는다. 지나간 시간들과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망각은 생을 좀 더 행복하고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 되는지도 모르지만 묻혀버린 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 이진홍은 이런 말로 <자살>이라는 책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극지에 서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다.”(태공망, 文師)


07022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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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소설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9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책세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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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불효했던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난센스 퀴즈의 답은 에밀 졸라.

 소설보다 먼저 드레퓌스 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는 선언문을 통해 행동하는 양심과 지식인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프랑스 문학과 지성사에 빛나는 별들 중에 가장 문제적인 소설가 중 한 사람이었던 에밀 졸라는 <목로 주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책세상’에서 나온 <실험소설 외>는 ‘실험소설’과 ‘소설에 대하여’, ‘비평에 대하여’, ‘공화국과 문학’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 대한 견해과 문학 정신의 뿌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글들이 묶여 있다.

 계몽 철학의 시대를 거쳐 도달한 19세기는 다양하고 중요한 문예사조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자연주의’는 낯설고 새롭다. 기존의 문학에 대한 통념이 사라지고 자연과학적 방법을 문학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과격하기까지 하다. 자연과학적인 실험과 관찰의 방법을 그대로 문학에 적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실험소설’은 과학과 문학의 만남을 필연적이라고 강변한다.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연구 입문’을 읽고 깊이 감명받은 에밀 졸라는 의사를 소설가로 바꾸어 놓으면 그대로 자신의 주장이 된다고 말한다.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이렇게 강렬하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용기에 해당한다.

 우회적인 방법은 안전하지만 개성이 없다. 에밀 졸라의 선명한 주장이 담고 있는 위험성만큼이나 매력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소설에서 직접 적용했지만 그의 시대는 길지 않았다. 그를 따르는 소설가가 많지 않았고 문학적인 성취가 뛰어난 작품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순환하고 역사는 반복된다.

 작가는 의사처럼 사회의 메커니즘을 파악해서 처방전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놀라운 주장이다. 작가의 역할과 문학의 효용에 대한 지루하고 역사적인 논의와 관련해서 이렇게 명쾌하고 자신있는 주장을 했던 사람이 있을까 싶다. 뚜렷한 목적의식과 작가의 소명의식은 작품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에밀 졸라는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것을 실천한다.

 졸라의 ‘실험소설’에서 주장하는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의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타인의 다른 행동들을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정한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고찰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실험적 방법에 의존한다.(클로드 베르나르, 실험의학 연구 입문)” 내가 앞서 말한 모든 것은 과학자의 문장인 이 마지막 세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 P. 25

고전주의적, 낭만주의적 문학이 스콜라 철학과 신학 시대의 문학이었던 것처럼, 실험소설은 한마디로 우리 과학 시대의 문학이다. 이제 응용과 윤리라는 중요한 문제로 넘어가자. - P. 37

 인물들의 태도나 행동은 자연과학적인 실험과 관찰, 즉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현상으로 나타난 결과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고 밝혀 나가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에밀 졸라는 주장한다. 소설을 읽는 목적과 대하는 태도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현대 소설은 에밀 졸라에게 일정 부분 빚지고 있는 부분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설가들에게 내면화 되어 있는 부분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에밀 졸라의 영향력을 확인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재현하고 우리의 처한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돕는 역할을 소설은 할 수 있다. 그것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작가의 역할이며 사명이다. 그의 주장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소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주의로 분류되는 그의 주장이 가진 문제점은 사실주의와의 변별점이다. 현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 자연주의는 보다 과학적이고 인과적인 관계에 무게를 둔다. 실험과 관찰이라는 과학적 방법에 철저히 기대고 있지만 이전의 소설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사실적이고 치밀한 완결성을 보여준다. 명확하게 분류할 수는 없지만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초점은 아니다.

 <실험 소설 외>는 에밀 졸라의 소설과 비평 그리고 문학에 대한 생각들을 명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역자 유기환의 해설은 에밀 졸라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에 도움을 준다. 가보지 않은 길을 누군가 먼저 걸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무관하게 용기와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자신의 신념에 기댄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0702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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