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타인의 다른 행동들을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정한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고찰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실험적 방법에 의존한다.(클로드 베르나르, 실험의학 연구 입문)” 내가 앞서 말한 모든 것은 과학자의 문장인 이 마지막 세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 P. 25

고전주의적, 낭만주의적 문학이 스콜라 철학과 신학 시대의 문학이었던 것처럼, 실험소설은 한마디로 우리 과학 시대의 문학이다. 이제 응용과 윤리라는 중요한 문제로 넘어가자. - P. 37

소설가는 재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 감각 다음으로 작가의 개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위대한 소설가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은 현실 감각과 개성적 표현이다. - P. 81

소설에서, 인간 탐구에서 나는 전술한 대로 인간을 결정하고 완성하는 환경을 그리지 않는 모든 묘사를 단호히 비난한다. 지금까지 충분히 많은 오류를 저지른 덕분에 이제 나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안목, 심지어 권리를 가졌다고 자부해도 좋지 않을까. - P. 88

스무 살의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들은 아직 모색 단계에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역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서 모든 것을 다시 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그것은 진정 아름다운 시절이다. 이 시절의 젊은이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후일 조심성 많은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은 이 뜨거운 욕망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 P. 102

빵과 명예에 대한 탐욕은 반드시 고결한 정직성을 훼손하기 마련이다. - P.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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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4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늙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나이를 먹고보니 요즘은 102쪽의 글들이 늘 가슴에 남아요.
하루하루 꽉 채워서 살고 싶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군요.
좋은 주말,멋진 주말 보내세요.

sceptic 2007-03-2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 인생은 언제 늙고 언제 젊은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 전부하고 생각하는 하루살이가 되려고 노력해요. 행복하세요.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 시선 16
김경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권혁웅 시인으로부터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라는 찬사를 받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단 한 줄에 기대어 시집을 샀다. 우연히 만난 젊은 시인에 대한 평가 때문에 책을 사는 일이 드문데 무모할 정도의 평가에 호기심이 동했다. 게다가 ‘랜덤하우스중앙’에서 발간한 시집이었으니 뒤적거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종의 편견이지겠지만 창비나 문지, 실천문학사나 민음사 등 몇 개의 출판사는 시집을 선택하는 데 있어 내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편식과 편견은 귀차니즘과도 연결되어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돌아다니며 찾아 나서는 게 귀찮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좋은 책을 놓칠 기회도 많아진다.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너무 거창한 평가와 기대 때문에 편안한 읽기가 불가능했다. 시집 전체를 훑어내거나 단편들 속에서 명문을 찾아내거나 하는 재미를 잃어버렸고 초조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  - ‘우주로 날아가는 방1’중에서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 ‘내 워크맨 속 갠지스’중에서

 다소 당황스럽다. 외로움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하는 시를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서정시라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시인의 능력이라지만 ‘외로움’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파장 자체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라는 선언 앞에서 무력해진다.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에 대해 토해내는 시인들의 말이 이제는 진부할 만큼 감동과 울림이 없는 이유는 삭막해진 가슴 때문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사치스러운 상황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나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되는 시대에 외로움이나 고독이 설 자리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근원적인,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은 감정들에 대해 말해야 하는 ‘서정시’의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지는 시인들만의 몫은 아니다. 전업작가로, 특히 시인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시를 길어 올리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끌어내는가에 대한 관심과 개인적인 호기심을 넘어서 문학에 대한, 혹은 시에 대한 전망이 안개 낀 유리창과 같아 보인다.

 김경주의 첫 시집은 주목받을 만한 첫 시집은 그만한 찬사가 어울리든 아니든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대한 촘촘한 그물망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에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중에서

 일상을 벗어나서 우주나 존재론적 측면에서 인간에 대해 접근하는 시들에게 주어진 사명과 김경주의 이 시집에 드러난 접근 방식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한국어의 의미와 영역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실험하게 될 시인의 목소리는 이후에도 계속되리라 믿는다. 극찬과는 무관하게 묵묵히 그리고 자신의 길이 무엇이라는 생각도 없이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들어볼 참이다.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라고 평가를 받은 시인이 도대체 다음에 어떤 시를 써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권혁웅 시인의 평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도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프로스포츠 신인왕 2년차의 징크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시인의 몫이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고 박수치는 소리에 어리둥절하지 않기를. 한 동료시인의 주관적 박수소리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07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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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
조안 드잔 지음, 최은정 옮김 / 지안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루이 14세를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구역질이 났다. 환갑이 넘은 나이의 노인네가 각선미를 드러내기 위해 망토를 들추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과 뮬을 신고 있는 그의 모습은 기괴하다. 미의 기준이 아무리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할 지라도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17세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사내였던 그를 바라보는 일은 괴로움에 가깝다.

 조안 드잔의 <스타일 나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행의 근거지로 루이 14세를 지목한다.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미시사에 해당되는 이 책은 헤어드레서와 패션, 구두 부츠에서부터 샴페인, 거울, 우산, 향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물건과 패션에 관련된 일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 기원을 찾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의 환영을 제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거품과 허상이 빚어낸 꿈들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책이다.

 전우익 선생이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사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그걸 사면 버리고 또 사고 그리고 또 버리고 그러다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다. 물건의 노예가 된다고. 같은 물건이라도 같은 스타일이라도 모방 심리와 집단적 무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사람들에게 획일성과 유행이라는 선물을 안긴다.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이다. 무리 사회에서 혼자만 고립된다는 두려움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것을 이겨낼 만한 이념도 철학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더욱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얼마나 비슷한 것들을 추구하는지.

 전근대 사회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사치와 허영을 들여다보는 일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일이다. 그들이 머리 모양이나 옷, 구두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했던 민중들의 삶은 검은 밤의 커튼 뒤에 가려져 있다. 생존을 위한 노동과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은 이면으로 사라지고 밝고 화려한 왕과 귀족들의 생활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자연스럽게 모방하며 그들이 선도했던 패션과 스타일은 유행이 된다.

 그렇게 시작된 미용 산업과 패션 등 전체적인 스타일을 위한 소품들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그 중심에 선 사람들은 또다시 자본의 노예가 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옷에 대한 관심과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고 전부가 되어버린 현실은 어지러운 환각처럼 느껴진다.

 첨단 패션과 유행을 탄생시킨 루이 14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프랑스의 문화가 있었고, 그것을 흉내 낸 유럽의 문화가 탄생했다면 결코 기꺼운 마음으로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필요하겠지만 마음 한 구석 삐딱한 시선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이 책은 패션과 유행에 관한 ‘스타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필요한 책이다. 루이 14세와 당시의 프랑스를 중심에 놓고 그 이면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꼼꼼한 정보와 흥미로운 이면사가 펼쳐진다. 스타일로 자신을 말하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스타일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과 현실에서 만나는 일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책들이 많다. 특히 여성들의 입장에서 매일 매만지는 머리나 뿌리는 향수 그리고 보석이나 거울 하다못해 접는 우산에 이르기까지 그 기원을 들여다보는 일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대답과 같은 책이다.  ‘스타일, 그것이 알고 싶다’

 어떤 패션과 유행이든 실용적인 목적과 미의식에 바탕을 두겠지만, 그것을 누리고 향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상상할 수 없는 가격과 소위 명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또 다른 책과 현실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해서 재미있는 주제가 될 수 있겠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추적 추적 내리는 빗소리로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의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책 속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 이 책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결국 독자의 몫일 뿐이다.


07021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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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1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설 잘보내시기를.......

sceptic 2007-02-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황대권 지음 / 열림원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미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화려한 외모와 강렬한 붉은 빛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서양의 꽃이지만 특별한 행사와 기념일을 위해 사람들은 장미를 준비한다. 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하지만 장미는 꽃이 진 후에 가장 흉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꾸로 뒤집어 정성스레 말려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지저분한 낙화의 모습은 절정의 순간과 대비되어 참혹하기까지 하다.

 우리 나라 길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와 장미를 비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손쉬운 대비 효과를 가져오지만 적절한 방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장미는 장미대로,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나름의 아름다움과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과 사회적 상징이 부여될 뿐이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장미도 민들레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야생초편지>의 작가 황대권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시대에 대한 반론이다. 1985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3년이나 복역한 작가의 이력은 신영복 선생의 그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후광효과를 가지게 된다. 환경과 생태적 측면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인간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자의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유토피아같은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현실성’ 측면에서 살펴보는 사람이 있고, 논리와 이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서와 공감대를 맨 앞에 두는 사람도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어떤 측면에서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독자 개인의 문제로 돌려야겠다. ‘산처럼 생각하기, 똑바로 바라보기, 멀리 내다보기’라는 세 부분으로 엮인 책은 저자의 마음과 생각들을 담아낸 맑은 물과 같다. 농촌과 환경을 앞세워 맹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과격하지도 않고 억지스럽지도 않다.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잃은 것이 없이 많은 것들을 성취하고 만들어가며 산다고 생각했던 도시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와는 다르면서도 유사한 측면이 많다. 스스로를 ‘생태 공동체 운동가’로 불리기를 원하는 작가의 생각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이론을 펼치는 책이 아니기는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신선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정확하고 분명한 목소리는 부족하고 책의 구성은 엉성하다.

 마음밭에 심어놓은 작은 풀꽃들이 피어난다고 해서 그것들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꺾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아니면 필요한 꽃들만 꺾어야 한다. 그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사물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궁금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정갈하고 깨끗한 마음의 결들을 담아내고 있지만 시골 냇가에서 맑은 물 한 잔을 마신 후의 덤덤함 이상은 얻지 못했다.


07021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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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콘크리트 냄새 자욱한 섬에 떠 있다. 현대판 공중부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메마르다. 성냥갑처럼 똑같이 생긴 집을 쌓아놓고 똑같은 위치에 앉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본다. 아침에 일어나 똑같은 입구에서 쏟아져 나왔다가 저녁에 똑같은 입구로 들어간다. 병정놀이 하듯 현대인의 삶은 기계적이다. 노동에 바쳐지는 시간과 휴식에 바쳐지는 시간들로 나뉘어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다가 비슷한 종류의 행복을 느끼거나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우울해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아파트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어둠속에 괴물처럼 솟아 있다. 칸칸이 불 밝힌 대한민국의 저녁은 안녕한가.

 피에르 라비의 삶을 그린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의 삶은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나무와 바람과 대지와 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그의 인생은 도시와 문명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흉내낼 수 없는 삶으로 보인다.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손쉽게 혹은 낭만에 기대어 전원생활을 상상한다. 하지만 피에르 라비에게 자연은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머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숨을 쉬고 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생을 영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과 대면하게 되면 낭패감을 느끼게 된다. 알제리 오아시스 출신의 피에르 라비는 프랑스 부부교사에게 입양되어 문명의 혜택을 받지만 그의 피부색과 출신 성분을 숨길 수는 없다.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문명에 대한 혐오는 피에르 라비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 뿌린 만큼 거두고 자식을 낳고 기르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귀농한 한 외국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이 경험한 삶의 방식과 땅을 대하는 법을 나눈다. 그 속에서 깨달은 생의 의미를 이웃과 나누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질적 풍요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다국적 기업과 거대 자본에 의한 농업과 기계식 산업이 불러온 재앙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마치 성자와 같다. 뚜렷한 목표와 진지한 태도는 미래의 농업과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하고 맑은 정신을 소유한 피에르 라비의 삶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낭만적인 태도로 그의 삶을 기웃거리자는 말이 아니다. 현실 속에 발딛고 사는 우리들이 한 번쯤 먹거리를 위한 자세와 태도를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

 장 피에르 카르티에와 라셀 카르티에 부부가 그를 찾아가 보낸 일주일간의 기록이 이 책의 내용이다. 피에르 라비의 말과 생각을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두 부부의 태도는 진지하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삶을 소개하는 흥밋거리가 아니라 우리들 안에 살고 있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겸허한 반성의 목소리로 들린다.

 돈 주고 사는 주말 농장이나 노년을 자연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들 속에는 땅에 대한 인간들의 원형적인 그리움이 내재해 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지침서나 참고서가 아니라 생에 대한 태도와 도시에서의 척박한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생길 때 이 책은 고민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게 하는 피에르 라비의 삶은 우리를 경건하기에 충분하다.


070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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